카라코룸 하이웨이(Karakorum Highway)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필자가 대략 초등학교 3, 4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 학교 도서관을 들락거리던 꼬마에게 학생과학이란 잡지에 이 기사가 눈에 띈 것이다. 이것은 어린 꼬마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남아있었다. 이 도로는 중국과 파키스탄 양국이 1966년에 착공하여 1978년에 개통하기까지만 장장 12년의 세월이 흘렀고, 86년이 되어서야 정식개통이 된다.


▲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중국 신강성 카시카르까지 1,300여km에 달하는 카라코룸 하이웨이의 대부분은 한편은 강을, 한편은 산을 끼고 달린다.

이 도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험준한 지역을 지난다.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중국의 카시카르까지 가는 1,300여km의 기나긴 여정이다. 힌두쿠시 산맥, 쿤룬산맥(崑崙山脈), 카라코룸 산맥, 히말라야 산맥 북단을 가로지르거나 근처를 지난다. 천상의 아름다운 비경만큼 비정하며 쌀쌀 맞다. 도로는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오픈된다. 그러나 여름 7, 8월 몬순 기간에는 비가 내려 낙석이나 산사태 등으로 위험하고,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막혀 폐쇄된다.


필자는 정적인 전문직 일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1년에 한 번씩 괴롭고 힘든 원정을 통해서 안일하고 나태한 나의 삶을 보완할 백신(vaccine)을 맞는다. 괴롭지 않고 어찌 높아질 수 있겠는가(非苦면 何以高乎)!


그러나 원정을 계획하고 있을 때 아프카니스탄 탈레반들에게 샘물교회 교인들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있어 원정이 결렬되기 일촉즉발인 상황이었다. 여름비는 줄기차게 내렸지만 내리는 비 사이로도 가을은 오고 있었다. 예정대로 9월20일 공항으로 갔다. 이번 원정은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종단하면서 기회가 되면 간단한 의료봉사를 하고 갈 계획이었다.


칠라스에서부터 라이딩 시작


필자는 기내식을 먹는 그 순간부터 여행의 출발이라고 선언한다. 이 때는 기존의 현실과 멀어져가는 실존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고통이 가려진 장밋빛 기대에 부풀기도 하다. 오후 2시가 아니고 3시간 연착해 5시경 라왈핀디에 도착했다. 늦게 저녁식사를 하고 이슬라마바드 밤거리를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다음날 스카루두행 비행기가 결항이라 밴을 타고 원래 계획대로 칠라스까지 가기로 했다. 이번 원정은 산이 아니고 길이다. 인더스강은 외롭지만 강하다. 그 강이 인더스 문명을 낳았다. 밤 12시쯤 칠라스의 파노라마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다. 밤 12시까지 운전해준 운전사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를 넣고 버너를 켜서 압력밥솥에 밥을 하고 장비를 세팅했다. 칠라스에서 오전 8시30분 서둘러 출발하였다.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혼재돼 있다. 완만하던 산세가 오후가 되면서 약간 거칠어지지만 아직은 이렇다할 심한 경사는 없다. 다만 강을 따라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 백색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과 녹음과 파란 하늘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가는 카라코룸 하이웨이의 오른편이 히말라야, 왼편이 힌두쿠시산맥,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전방에 카라코룸산맥이 펼쳐진다. 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곳이 유니크 플레이스라는 곳이다. 오후에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멀리 하늘을 바라보니 시커멓다. 인샬라!

우리같이 늘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 거친 자연의 흡인력에 경도되곤 한다. 이 황량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알라하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도다)’란 말을 수도 없이 속삭였다.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벗어나 시내로 4km 정도 들어가 길기트의 루팔인(여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45분이다. 길기트는 카시미르의 옛 주도고, 더 오래 전에는 소발률국의 도읍지였다고 한다.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는 747년에 1만여 군사를 이끌고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4,600m)을 넘어 현재 길기트(소발률국)와 인근 72개국을 정복한다. 신라 출신 혜초 스님도 천축국(인도)에서 이곳을 거쳐서 타시쿠르칸으로 넘어갔다.


루팔인에는 스카르두에서 온 한국 원정대의 일을 도맡아서 하는 알리 마부라는 자이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저녁을 대접한다고 한다. 그는 중간중간에 엉뚱하게 한국어를 구사해서 폭소를 자아냈다. 심한 후두염과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밤 나의 제물이 될 것이다! 방으로 들어와 마부의 틀어진 몸을 기본적인 것부터 맞추어 주었다. 그리고 침을 놔주니 그는 잠시 후 깊은 잠에 빠진다.


억센 낙타풀 가시에 타이어 펑크


다음날 아침 식사가 너무 늦어서 그냥 출발했다. 아침이 빠르면 모든 것이 여유롭고 쉬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카라코룸 하이웨이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리운 훈자를 향해서 페달을 밟았다.


▲ 전형적인 인더스강의 모습. 단애를 이룬 계류와 경작지를 제공하는 평탄면, 그 위로 솟구친 산들.

길기트는 오래된 도시답게 관개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많은 초록을 볼 수 있다. 훈자를 향해 가는 길 중간 중간 오아시스 마을이 끝없이 이어진다. 길기트에서 훈자의 중심이 되는 카리마바드까지 105km 정도 된다. 날카롭고 남성적인 산세와 그 사이를 흐르는 여성적인 훈자강과 사주, 그리고 푸른 오아시스 마을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다.


공사 중 폭파 구간을 지나고 점심 무렵 다리를 건너서 가파르게 언덕을 오르는 도중에 펑크가 났다. 억센 낙타풀 가시에 찔린 것이다. 이 풀이 어릴 때는 연해서 양들도 뜯어 먹을 수 있지만, 조금 더 자라면 가시가 억세져서 낙타도 어쩔 수 없어 이 풀을 뜯어 먹을 경우 피를 철철 흘리며 먹는다고 한다. 생존이란 절대적이고 무서운 사명 같은 것이다. 낙타풀은 삭막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장한 것이다.


카라코룸 하이웨이는 인간만의 위대함(세계 8대 불가사의)을 현장으로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길기트에서 훈자까지 대략 2/3를 넘어서면 라카포시의 빛나는 봉우리가 하얀 구름과 함께 생생하게 보인다. 가게에 앉아서 서성준 대원과 과자와 음료수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사과를 사려고 하니 주인은 그냥 준다. 만년설은 두터워 어느 곳엔가 무너질 것 같다. 라카포시를 보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필자도 산에 관심이 많지만 주거간산(走車看山)이다. 산은 산, 길은 길, 갈 길을 서둘러 가자! 훈자 계곡은 키가 큰 나무들이 계곡을 채우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훈자 계곡은 연두색 광채가 아우라(aura)처럼 솟아 보인다.


▲ 1.무스타그아타가 보이면 타시쿠르칸이 가까워진 것이다. 2.카라코룸 하이웨이의 이정표. 3.낭가파르밧 루팔 쪽으로 갈리는 삼거리. 4.셋이서 함께.

훈자에서 거의 어디에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훈자왕국의 작은 성인 발티트 요새(Baltit Fort)가 보인다. 발티트 성은 명실공히 훈자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티베트의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어 티베트 건축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훈자 풍경의 기조는 높고 낮음이다. 어느 곳에서든 위를 바라다보면 암갈색 산과 하얀 영봉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아래를 내려다보면 낮은 계곡이 보인다. 절대 숲에 함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6,000m 이상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훈자에 가까이 오니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이들은 파키스탄인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좀 다른 용모를 하고 있다. 파란 눈과 하얀 피부, 갈색 머리들이 눈에 띈다. 치트랄, 칼라시 지방과 훈자지방에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후 남은 그리스 군인들이 씨앗을 퍼뜨렸다고 한다.


언덕 위에 있는 힐탑 호텔이 우리 숙소다. 언덕 위에 하얀 집은 노래 가사에서는 낭만적인 집이지만, 라이더의 입장에서는 입에서 단내, 쓴내를 검은 매연처럼 토하면서 가야하는 마지막 힘든 길이다. 비버리힐즈처럼 훈자힐즈라고 부르면 적당할 높고 전망이 좋은 언덕 위에 있는 나그네 집이다.


마을 풍경이 멀리 아름답게 들어온다. 가파른 산 아래에는 학교가 있고 발티트 성이 굽이쳐 내려다보고 있다. 긴 숨가뿜 뒤 여독 탓인지 포근한 평화와 안식이 다가온다. 아 훈자여!


훈자왕국은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 4대 장수촌이다. 파키스탄의 훈자왕국, 중국 신강성의 위구르지역(실크로드지역), 러시아의 코카서스지방, 남미 에쿠아도르의 빌카밤바가 세계 4대 장수지역으로 불린다. 이번 코스가 본의 아니게 이 훈자왕국과 신장 위구루 자치구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훈자에는 파키스탄에서 거의 유일하게 양조장이 있어 제법 독한 증류주를 만들어낸다. 무슬림 국가답게 술이 아니고 훈자워터(Hunza Water)가 양조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할 때 이집트에서 가져온 술 증류법이 전달된 것 같다.


이 동네는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마력이 있다. 훈자에서 추석차례를 지내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아래로 사정없이 다운힐로 내려와 카라코룸 하이웨이에 합류하여 바로 다리를 건넜다. 알리 마부는 소스트는 국경도시라 숙박시설이 삭막하니 굴미트에서 1박 하자고 한다. 마을에 가서 옷과 학용품 등을 나눠주고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의료봉사도 할 수 있고 그런대로 괜찮은 제안이다.

굴미트에서는 의료봉사활동도 펼쳐


굴미트의 실크루트 호텔은 사과나무 꽃들이 만발해있다. 멀리 훈자강 건너편 하얀 첨탑은 고딕식 성당의 첨탑을 닮아 캐시드럴봉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아래 훈자강에는 모래톱들이 백사장에 넓게 펼쳐져 있다.


▲ 굴미트에서 보이는 캐시드럴봉. 선당의 첨탑처럼 생겨서 얻은 이름이다.

일단 마을에 들어가 아픈 사람을 왕진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30대 젊은이(?)의 모친이 노환이시다. 이 집은 700년이 되었다는 집이므로 이 마을은 적어도 700년 이상 되었다는 말이다. 한 마을의 역사가 이렇게 변함없이 흘러온 것이다.


일단 무릎을 교정해주고 침을 놓아 주었다. 학교수업이 이미 끝나서 마을을 지나며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학용품도 나눠주었다. 시골 마을 특유의 정적과 평화로움이 흐른다. 오후가 되니 동네 환자들이 호텔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호텔 사장방에 임시 캠프를 차렸다.


마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주로 요통, 각통, 슬통 증상이 많았다. 그냥 ‘차고, 치고, 누르는’ 교정법을 위주로 치료했다. 오늘 밤은 추석 풀문(full moon) 세레모니를 해야겠지만 내일을 위해서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결전의 날이다. 이민국 업무 시간에 맞춰 서둘러서 짐을 챙겨 차에 실었다. 구름이 끼면서 스산한 가을 분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이 소스트(2,800m)는 국경 마을답게 약간은 설레고 어수선한 분위기다. 간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른 먼지와 낙옆들. 타시쿠르간까지 갈 국경통과용 랜드크루저에 짐을 옮겨 싣고서 이미그레이션에서 수속하고 자전거를 탈 준비를 하는데 이 국경구간에서는 자전거 타는 것이 금지됐다고 한다. 실망 또 실망하면서 차에 올라서 국경구간으로 들어갔다.


우리 마음과 상관없이 청량한 바람(風)과 맑은 하늘 빛(景)은 그냥 아름다운 서정을 만든다. 국경지역 아무도 없는 빈 포장도로에는 낙옆이 한가롭게 구른다. ‘가을이었지. 하염없이 낙엽은 지고…’ 에밀넬리강의 시가 흘러나온다. 쿤제랍 패스 직전 17km 구간이 가장 어렵다. 이 길은 자일을 풀어놓은 것 같은 실띠 같은 열두 굽이 길이다. 오인환 선배는 이 지역은 군인들이 없으니 자전거를 타자고 한다. 우리는 마지막 구간을 임영주, 서성준 대원과 함께 천천히 아껴가며 지그재그로 오르기 시작했다.


▲ 1.파키스탄과 신강성 국경인 쿤제랍 패스(4,750m). 2.굴미트에서의 의료봉사활동. 3.마을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고 있다. 4.낙타풀 가시에 펑크난 타이어를 수리하고 있다. 5.쿤제랍 패스 오르막.

길 아래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잿빛 하늘, 싸늘하고 냉량한 고원의 향기는 정신을 각성케 한다. 자전거를 타고 커다랗게 이정표가 있는 고갯마루까지 타고 올라갔다.


카시카르 438km, 알마아타 1,320km까지 거리가 표시된 이정표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느끼게 한다. 쿤제랍 패스(Khunjerab Pass·약 4,750m)에 올라선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가서 중국쪽 초소가 나타나기 전에 MTB를 차에 실었다. 아쉽지만 마지막 최고 어려운 부분을 올라서 기분이 좋다.


이제 차를 타고 눈물처럼 아름다운 파미르고원을 지나간다.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고원은 넓고 아득하지만 사람과 낙타나 야크 같은 동물들의 흔적이 곳곳에 있어서 아주 적막하지는 않다.


무스타그아타(7,546m)가 보이기 시작한다. 타시쿠르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숨 가쁜 수직과의 싸움을 마치고 수평을 향하는 타클라마칸 사막 종단을 위해서 발길을 옮겨야할 것 같다.<계속>


/ 김규만 굿모닝한의원 원장

 

출처 : 우리클라이밍클럽
글쓴이 : 김영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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