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시반에 기상하여 고양이 세수를 하고 로비에 나가니 벌써 여정을 같이할 일행과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한대장과 남기형이 나와있다. 클라이온 호텔과 공항 연결 통로를 따라 코펜하겐 2터미널로 이동하며 비행전광판을 보니 92, 93데스크에서 체크인한다는 정보가 보인다. 영어가 능통한 남기형이 바르샤바를 경유해 인천으로 간다고 설명하고 화물은 곧장 인천행 비행기로 자동 연결되도록 조치하고 우리는 여권과 코비드 음성 확인서를 보여주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남기형과 작별의 포웅을 하고, 한대장과 우리도 작별 포웅을 하자고 제안하니 엄청 쑥스러워한다.
6시 50분 게이트문이 열리고 우리 일행은 비행기에 탑승, 비행기에서는 이침이라고 하기에는 간에 기별도 안갈 정도의 작으마한 빵한조각을 준다. 8시 20분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 시간까지는 장장 세시간이 넘는 기다림이 있었다. 환승지역을 지나 13N번 게이트 앞에 자리늘 잡고, 정교수가 보내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책을 읽으며 마음의 평안과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페로제도가 우리의 떠남을 시기라도 하는 듯 그동안 보여주었던 미친년 널뛰듯한 날씨는 온간데없이 화창한 날씨를 보여준다.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오늘 일정의 시작은 코비드검사이다.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정이다.

한국에서의 요구 사항이 입국72시간전에 실시한 코비드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비행기 탑승이 허락된다고 한다.
만약 양성이 나오면 탑승이 거부되고 이곳 호텔에서 1주일간 격리를 하고 다시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된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오전 페로제도의 비경을 간직한 Saksun 트레킹 들머리 입구에 도착하니 오늘도 어김없이 소낙비가 내리고 있다. 들머리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거대한 폭포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산사면을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산행길이 없어져 버렸다. 양치기들이 만들어 놓은 소로를 등산로로 잘못알고 들어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19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 앞사람 뒷굽치만 보면 따라가니 버려진 일이다. 업친데 겹친격으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한참을 방황한 끝에 다행히 길을 찾았다. 안부 정상에 올라 이제 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비도 점점 잦아들고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장관이다. 모두들 경치에 취해버려 촬영하느냐 정신이 없다.

초원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깍아지른 듯한 거대한 해식애(海蝕崖)가 용두머리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우리나라 전설에 많이 등장하듯 촛대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파도가 해식애에 부딪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자세히 보면 참 신기하다. 거품이 많이 일고 있는 곳은 어김없이 해식동(海蝕洞)이 있을 것이다. 

폭포의 나라다. 노르웨이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물론 거대한 폭포는 아니었지만.

대항차 두대가 도로 한가운데 계속해 정차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씨암닭한마리가 차의 진로을 가로막고 있는 웃지 않고는 넘길수없는 기막힌 일이 벌어 지고 있었다. 결국 조수석에서 한사람이 내리는 장면까지 목격, 이곳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오후에는 Nordradalur 트레킹을 하였다. 트레킹은 오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바람에 간단히 뷰포인트에 도착하여 도로를 따라 약간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으로 대치하였다.
오늘의 트레킹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그동안 묶어던 호텔에 저녁식사가 5시반에 예약되어 있어서 약 한시간 동안의 여유 시간을 갖게 되었다.

페로제도 Klakkur 전망대와 Slaettaratindur산 트레킹

보르도이섬으로 이동하여 클락스쿠르봉에서 클로이섬을 조망하였다.
산행 들머리에 도달하니 비가 제법오고 있다. 잠시 비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우비를 챙겨 입었다.
비가 잠잠해지자 산행을 시작하었다. 산행길은 비로인해 질척거렸고 미끄러운 길을 피해 초지위를 걷는 일행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였다.
산행이 어느정도 진행될 무렵 가이드 남기형이 일행들을 불러모와서 LNT 산행에 대해서 설명을 하신다.
사실 산이라고 할것도 없지만 산정상에 올라서니 흡사 뱀이 길게 늘어져 있는 듯한 모양의 Kalsoy 섬의 모습이 보인다.

07:10 호텔 체크아웃 후 버스로 공항으로 출발

9:10 오슬로행 비행기

페로제도 Vagar 공항

가사달루르 폭포(삼성 갤럭시 광고)

쇠르보그스바톤 호수와 폭포

쇠르보그스바톤 호수 옆 트레이라니탄(거대한 해식애와 해식동) 관광

 

오늘 스타방에르에서 버스를 타고 프레이케스톨렌 펠스뷰까지 가서 트레킹하여 프레이케스톨렌(마당바위)을 둘러보고 다시 프레이케스톨렌 펠스뷰로 돌아와 버스로 스타방에르로 돌아왔다.

프레이케스톨렌(Preikestolen)은 600m가 넘는 높이의 절벽위에 네모 반듯한 설교단 처럼 생겨 풀핏 룩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한 마디로 거대한 넓적 바위다. 프레이케스톨렌에서는 뤼세 피오르드의 풍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트레킹 총길이는 왕복 8km, 고도 차는 335m, 총 소요시간은 4~5시간 정도이다.

트레킹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 트레킹로는 네팔이 노르웨이의 원조에 감사의 의미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가다보면 네팔의 히말라야 도처에 걸려있는 오방색 깃발이 걸려 있어 이색적이다.

앞에 보이는 피오르드가 바로 뤼세 피오르드다.

오늘은 쉐락볼튼을 트레킹한다. 세군데의 험한 암릉구간을 지나 피오르드 해안가 절벽 위로 난 트레킹로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쉐락볼튼에 이른다.

쉐락볼튼(Kjeragbolten)은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절벽 사이에 낀 둥근 바위로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쉐락볼튼에 올라서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담력은 대단한 것이라 인정 받는다. 이 바위 위에서 인생 사진 한 컷을 찍기 위해 전세계에서 트레커들이 몰려들고 있다.

쉐락볼튼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인생 샷을 찍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 사이로 코발트 색 뤼세피오르드가 보인다. 섬찟한 아름다움이다.

오늘은 트롤퉁가(Trolltunga)를 트레킹하는 날이다. 트롤은 북유럽의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악마같은 거인족이나 도깨비를 의미하고 퉁가는 혀를 의미한단다. 그러니 트롤퉁가는 '악마의 혀'라는 의미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가려면 먼저 우리가 타고 다니는 큰 버스는 제1주차장에 세워두고, 소형버스로 2주차장까지 가서 다시 소형버스를 갈아 타고 3주차장으로 가야만 했다. 3주차장이 트레킹 출발하는 지점이다. 또 그 지점에서 적어도 왕복 21km이상을 걸어야 한다.

온통 바위뿐인 산에는 물이 고여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물이 고여 있는 곳 주변은 어김없이 식물들이 자라고 꽃을 피우고있었다.

트롤퉁가 트레일에는 조그만 탑들이 많이 보인다. 이 탑들은 탑의 기능과 역할과는 상관없고, 트롤퉁가로 가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정표 역할을 위해서는 그냥 바위나 조그만 자연석을 바로 세워 방향을 표시해두면 된다. 그런데 왜 굳이 탑을 만들어 방향을 표시 한 것은 트롤퉁가를 희구하는 트레커들의 소망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주기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트롤룽가는 링게발 호수(Ringedalsvatnet Lake) 주변에 있다고 한다. 운무가 자욱한 곳은 바로 링게발 호수 탓일 것이다.

돌탑들이 세워져 있다. 이 돌탑들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우리 일행들은 현지 시간 오전 9시 10분 경에 트레킹을 출발하여 트롤퉁가 입구에 오후 1시 12분경에 도착하였다. 때로는 운무 속에서 때로는 비를 맞으며 장장 4시간여를 걸어온 셈이었다.

◆ 트롤의 혓바닥에 서서

짜릿한 맛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다. 이게 바로 고생끝에 낙이 오는 것이다.

베르겐에서 관광하고 오다(Odda)로

 

한왕용 대장이 보내준 스케줄표늘 보고 이번 여정 중 비행기 탑승 횟수를 헤아려 보니 무려 8번이나 된다.
8박 9일의 짤은 기간에 8번이라니 무려 하루에 한번꼴 비행기 탑승이다.
비행기 탑승에는 최소한 두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아야되니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코펜하겐에서 베르겐으로 이동하고 관광하고 첫 트레킹을 위해 오다로 이동하는 날이다.

호텔에서 탑승 체크인을 하고 공항에 도착하여 셀프 짐 발송을 하니 탑승 수속이 훨씬 간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서 편리하고 시간이 절약 되었다.
이런 제도른 이용하면 조금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비행 탑승 시간이 지연되어 12시 탑승하니 좌석이 비상구가 있는 곳이라 기분이 좋았으나 그것도 잠시 승무원이 다가와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일행에게 쌀라쌀라 비상시 행동요령을 설명해 주고, 이해하였느냐고 묻는데,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뒷자리에 앉아있는 외국인과 자리를 바꿔앉으라는 수모를 겪었다.

대절 버스로 베르겐 시내 도착하여

베르겐 항구에서 항구와 맞은 편에 보이는 브뤼겐(Bryggen)을 사진에 담고, 브뤼겐 어시장을 구경하며, 4명이 어죽을 비롯한 물고기 요리를 하나씩 주문하여 맛을 보았다. 꽤나 신선하고 먹을만한 요리였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곳 어시장은  베르겐 시민들은 물가가 너무 비싸 거의 찾지 않는 곳으로 가격이 무려 우리나라의 두배 수준으로,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뜨내기인 관광객들에게는 비싸게 바가지(?)를 씌워도 그게 먹혀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란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든 싸든 간에 관광객으로서 외국의 풍물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있다는 것이 여행의 재미를 한층더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제 맛볼 것 맛보고, 배도 채우고, 베르겐에 있는 중세 도시역사지구. 한자 동맹의 중요한 무역활동 중심지로 남겨진 지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브뤼겐(Bryggen)으로 이동한다.

 

브뤼겐 지역은 노르웨이 베르겐의 구항구에서 밝게 칠해진 목조 건물 수십 채가 바다를 향해 일렬로 늘어선 지역이다. 날카롭게 솟은 박공 지붕을 한 똑같은 외양에 색깔만 다른 중세풍의 건물들이 있는 이곳이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겐(Bryggen, 노르웨이어로 항구를 의미한다) 지역인데, 중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소속 상인들이 거주하면서 무역활동을 하던 한자동맹의 북해지역 사무소였다고. 이곳에 처음 사무소가 생긴 것은 1360년이며 이를 계기로 이후 400년 동안 지역의 해상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해안에 늘어선 특이한 목조건물들은 항구로 들어오는 무역상품들을 저장하는 창고이자 한자동맹을 주도했던 독일 상인과 점원들의 숙소 겸 사무실이 결합된 다용도 공간이다. 브뤼겐이 한자동맹의 북해지역 거점으로 명성을 날리던 14~16세기에는 독일인을 비롯한 많은 상인과 점원들로 활기가 넘쳤던 곳이다. 물론 창고에는 대표적인 취급 물품이었던 노르웨이 건어물과 곡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고 현대적인 의미의 무역이 발전하면서 중세적인 무역을 대표했던 브뤼겐은 무역항으로는 의미를 상실했다. 다만 당시의 건물들 중 일부가 남아 해상무역 중심지로서의 영화와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브뤼겐의 과거 무역사무소 건물들은 전성기의 4분의 1 정도 규모라고. 현재 브뤼겐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들은 한자동맹이 한창이던 14~16세기에 지어진 것은 아니다. 브뤼겐의 건물들은 주로 목조로 되어 있어 화재에 취약했으며, 건설된 이래 총 여섯 차례의 대화재를 겪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화재가 일어났던 1702년에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려 현재 건물들은 대부분 그 뒤에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브뤼겐의 건물들은 화재가 일어난 뒤에도 항상 과거 모습 그대로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외관은 물론 내부구조도 한자동맹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은 건물들은 대부분 상점이나 레스토랑, 미술가의 작업실,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한자동맹 당시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자 박물관도 있다. 목조건물들이 있는 중세 거리 근처에는 이미 구경하였고 해물 음식을 맛본 바있는 유명한 베르겐의 어시장이 있고, 12세기에 건축된 성마리아 교회(St. Mary's Church)가 있다는데, 이 교회는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 건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이 건물은 관람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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