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여행기

(가네쉬히말에서 고사인쿤드까지)

(2011.12.31~2012.1.16)


글 : 영원한 자유인 설상욱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막상 가보면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불편한 나라, 다녀와서는 그 불편이 그립고 아이들의 눈망울과 산의 향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희말라야....... 한 해가 끝나는 날 나는 희말로 가기위해 비행기 안에 있다.


12. 31(토)

광주에서 카고백(등산갈 때 짐을 많이 넣기 위해 만든 커다란 가방)과 배낭을 짊어지고 아들 설창환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는 같이 갈 청소년들과 지도교사들 30명이 합류해서 수속을 밟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인천공항은 정말 크고 어수선하다. 세계속의 한국이 실감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에 취해있을 시간에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1월 1일

오전 7시경에 도착한 카투만두(해발1400M) 국제공항은 우리 광주공항보다 적어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도착한 것에 비해 컴퓨터하나 없이 모두 수작업으로 입국절차를 하는 탓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카고백 50여개를 찾아 트럭에 싫고 버스에 타니 우리를 안내할 포터들이 작은 꽃송이로 만든 목걸이를 환영한다며 걸어준다. 향기가 좋고 비행기에서 답답했던 맘이 조금은 편해진다.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로얄싱기호텔로 가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한 먼지, 매연, 약 7M정도의 도로를 버스, 화물차, 경운기, 오토바이, 자전거, 릭샤(소형택시) 등등이 동시에 이용을 한다. 시속 30KM를 넘지 못하고 도로 포장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먼지가 심하고, 경제난으로 불량 저질 중국산 휘발유, 경유를 쓰는 탓에 매연이 심해 눈이 따가울 지경이다. 더 심각한 것은 주유소마다 적게는 5KM 많게는 10KM씩 기름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서 최소 6시간 이상 기다린단다. 차량의 경우 10L 오토바이의 경우 3L 이상은 팔지 않는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어수선한 도심을 통과해 도착한 호텔에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전력사정으로 오후 6시만 되면 정전에 단수로 시내 모든 호텔과 상점에서는 자가 발전기와 살수차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인구 200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에 약 450만명이 살고 있으니 당연한 것임에도, 현 공산당 정부는 중국만 쳐다보고 있었고 매일 1명의 장관이 새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임명되고 있다고 한다. 참 신기한 것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텐데 정작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불평불만이 없다.

이런 원인은 전 국민의 90%가 힌두교도이고 이들의 신은 정말 다양하다. 소, 코끼리, 원숭이, 비둘기 등등 거의 모든 짐승이 다 신이다. 가난하지만 신을 숭배하고 현재 자신의 어려움은 전생의 업이고 현재의 불편을 잘 견디고 수행하면 내세에는 정말 좋은 곳에서 태어난다는 확신??을 믿고 살기 때문이란다.


1월 2일

카투만두-트리슐리-둔체-샤브르벤시


고소적응을 위해 카투만두를 벗어나 트리슐리로가는 길은 하나의 여정이었다. 내륙에 위치한 탓에 인접국과 국경이 겹쳐있기 때문에 검문소마다 군인들이 실탄이 들어있는 총을 들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기름을 확보하기 위해 수KM씩 줄을 서 있는 오토바이와 트럭, 버스 등을 보며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이런나라에서 50년 6.25전쟁때 파병과 물자를 보내주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내를 벗어난 길은 보통 폭이 5M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앞차가 마주치면 마치 곡예를 하듯 피하거나 기다렸다 지나간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만약 앞에 가던 트럭이나 버스가 고장나면 그 차를 수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부속을 구하려 카투만두로 왕복하면 몇시간이고 기다려야하고 심지어 날을 새는 경우도 허다하다. 길이 외길이고 좁다보니 방법이 없다. 우리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2번이나 고장난 차가 있어서 5시간 정도면 도착할 길이 8시간 이상 걸려 사브르벤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이 비포장 길은 기본이고 거의 절벽을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난다. 희말에서 이런 절차는 필수라는 말을 들을 무렵에야 도착했다.


1월 3일

샤브르베시(1,647M)- 골중(1946M)- 탐브체트(1,768M)- 칠리매- 따또바니(2,607M)


새해 첫날은 아니지만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쿡이 떡국을 끓여 아침을 대접해 주었다. 오늘은 고소적을을 위해 2박 3일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길고 긴 여정의 시작으로 모두 각오가 비장하다. 어제 타고 온 버스를 이용해 샤브르베시에서 탐브체트까지 이동한다. 어제 온 길도 천길 낭떠러지로 힘들었는데 오는 가는 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간이 크다는 나도 오줌을 절일 정도로 길이 험하고 어떻게 이런 산에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길이 험하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진다.

공중에서 바라본 가네쉬(코끼리)희말의 전경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탐브체트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경 드디어 문명과 작별을 하고 산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가볍게 몸을 풀고 시작하는 산에서 처음 마주치는 네팔 여인들이 전하는 말은 나마스테(안녕하세요) 네팔인들은 남녀노소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 반갑게 인사한다. 아주 밝고 맑은 웃음과 눈빛으로...

약 3시간을 걷고 난 후 칠리메 언덕에서 미리 준비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하는데 2천미터가 넘어가니 평소 체력이 약한 중학생이 고소가 오기 시작해 고생을 한다. 배낭을 들어주고 물을 마시게 하니 힘이 나서 다시 열심히 걷는다. 역시 젊다는 것은 좋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오후 5시경에 도착한 따도바니(2,600M)는 놀랍게도 자연온천이 있었다. 시설은 어설프지만 온천수는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린 여기서 정말 즐겁게 온천을 했다. 남성들은 팬티만 입고 여성분들은 반바지에 티를 입고 즐기는 온천에 하루의 피로고 모두 날라갔다.

해발 2600M에서 풀을 먹고 자란 염소(1마리 30만원)로 저녁을 먹었다. 보통 염소는 요리를 하면 묘한 냄새가 나서 잘 먹지 못하는데 여기 염소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전력사정은 카투만두나 여기나 좋지 않다. 솔라이트로 저장한 희미한 불빛은 곧 꺼지고 우리는 해드렌턴을 이용해서 저녁을 먹고 산노래로 하루를 마감했다.


1월4일

따또바니- 브림당 곰파(2,848M)- 나그탈리 기양(3,100M)


아침을 먹고 난후 잠시 소란이 있었다. 우린 따또바니에서 숙박을 하니까 온천이 당연히 공짜?인줄 알았는데 마을에서는 1인당 우리돈으로 5천원씩 내라고 한다. 참 고약하다. 수입이 없으니까 이해는 가는데 미리 말하지 않고 끝나고 가는 길에 돈을 달라고 하니까 참 야속하다.

희말라야 겨울 날씨는 낮에는 무척 덥고 밤에는 몹시 춥다. 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되지만 저녁에는 두터운 침낭속에 있어도 많이 춥다.

곰파를 지나 나그탈리로 향하는 길은 정말 볼 것이 많았다. 3천미터를 넘어서자 눈발이 날리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저지대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식물들과 야생화,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코사인군도의 장관 등등

나그탈리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한 쿡이 팝콘을 커다란 바구니 하나 가득 내 놓는다. 이렇게 팝콘이 맛있었나?? 팝콘에 홍차를 몆잔 마시고 네팔 민요(우리나라의 아리랑) 레쌈피리리를 배웠다. 노랫말이 부르는 사람에 따라 흥겹기도하고 우울하기도 한 곡이다.

5시경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네팔에와서 처음 맞는 눈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리는 눈에 즐거워하고 청소년들은 눈싸움에 열심이다. 항상 입시에 찌든 아이들이 이렇게 자연속에서 즐겁게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념에 빠져본다.

눈이 그치고 새벽녘에 화장실을 가기위해 밖에 나섰다, 바라본 하늘에서는 별이 마치 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손으로 잡으면 잡힐 것 같은 수천수만의 별들이 맑고 투명하게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경이로운 체험 앞에 시간가는 줄도 추운 줄도 모르고 내내 서 있었다.


1월 5일

나그탈리(3,165M)- 뚜만(2,338M)- 샤브르베시


고소 적응을 마치고 하산하는 날이다. 하산 도중 오전3시간 동안 뚜만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과 체험학습을 하고 우리가 모금한 돈과 노스페이스에서 기증한 학용품, 옷가지 등을 전달하기로 했다. 지도 교사들 다수가 교사들로 미술과 체육 수업을 했다. 네팔의 학교는 대부분 산 꼭대기에 있다. 여기 초등학교도 2,300여미터 산자락에 있어 학생들이 학교 오기가 힘들텐데도 학구열일 대단하단다. 네팔 초등학교 학생들의 맑은 눈과 꾸밈없는 표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덩달아 맑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네팔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하루종일 걸어서 다시 도착한 샤브르베시는 어둠에 싸여 있었고 우린 충분히 지쳐있었다. 물이 귀해 3일동안 씻지 못해 답답했던 몸을 찬물에 씻고 나서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잤다.


1월 6일

샤브르베시(12,467M)- 툴루샤브르(2,250M)


고소 적응을 끝냈다 해도 고산에서의 산행은 힘이든다. 오늘부터는 많이 걷지 않고 고소 적응을 위한 기나긴 시간의 여정이다. 오늘은 5시간 정도만 걷고 툴루샤브르에 쉰다. 이미 고소적응을 했지만 산행경력이 짧은 청소년들은 힘들어한다. 툴루샤브르에서 점심으로 먹은 볶음밥은 정말 맛있었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빨래도 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지친 몸도 쉬는 하루였다.

네팔사람들은 롯지(우리 민박)를 운영해서 먹고 사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의 꿈은 건물을 지어 롯지를 운영하는 것이고 롯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다. 네팔 사람들은 고산지대여서 농사를 짓는 것 이외에는 따로 벌이가 없다. 특히 겨울에는 남자들이 대부분 그냥 놀고먹는다. 그래서 궁핍하다. 특히 여성들의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가축을 기르거나 살림을 하는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두 수도인 카트만두로 떠나, 마을에는 여성들만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에 한번씩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3일정 머물다 다시 떠난다.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다 커서 알 수 있다. 학교를 가보면 정말 궁핍이 실감난다. 학교에 교사가 1명이고 책상이 없고, 나무 의자와 칠판만 있다. 산 중턱이나 정상에 있기 때문에 운동장도 없다. 그런 곳에서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운다. 땅 바닥에 글을 쓰면서....


1월 7일

툴루사브르(2,250M)- 두르사강(2,650M)- 포프랑단다(3,250M)- 싱곰파(3,350M)


오늘은 하루 종일 걷는 날이다. 그것도 계속 오르막길을 걸어서 싱곰파까지 가야한다. 깊어지는 랑탕계곡을 뒤로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걷고 걸었다. 실컷 걷고 나니 어느새 포프랑단다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가네쉬히말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정말 각별했다. 지금까지 본 경치중 최고였고 점심도 최고였다.

다시 걷는다. 걸으면서 상념에 빠져든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와 있는가? 왜 여기에서 이런 힘든 여정을 보내는가? 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곁에서 말없이 걷고 있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등등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나무를 보며 상념에서 벗어난다. 전나무과로 이름이 랄리글라스다. 높이만 해고 100M 이상에 둘레가 어른 세명이 보둠어야 할 정도로 큰 나무다. 네팔의 1호 국립공원이란다.

싱곰파 롯지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병 마시고 바라본 경치는 참으로 신비롭고, 지는 석양은 길 떠난 여행자를 우수에 젖게 한다. 산 정상에서 노을은 참으로 오랬 동안 이어진다.


1월 8일

싱곰파(3,350M)- 촐랑파티(3,654M)- 라우리비나야크(3.910M)- 고사인쿤드(4,380M)


날짜의 개념이나 요일의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다. 오늘이 무슨요일이고 몇 시인지도 사실 의미가 없다. 전화도 되지 않고 시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들은 이렇게 수천년을 살아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다가 후손에게 이 장소를 물려주고 사라질 것인데!!!

목욕을 하지 않고 2일을 버티면 그 뒤부터는 서서히 감각이 없어지고 가렵지도 않는다. 물이 귀하니까 양치만 하고 얼굴을 물티슈로 해결한다. 사람이 신기한 것이 이런 상황이 되면 거기에 맞게 적응을 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오늘은 고사인쿤드까지 기나긴 여정이다. 하루에 약 1,000미터를 넘어가는 강행군으로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아직까지 아들이나 나는 고소로 고생은 하지 않았는데 체력이 약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걱정이다.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3,900미터에 자리한 라우비나야크호텔에 도착했다. 벌써 여러명이 고소로 고생을 한다. 비라그라를 먹게하고 따뜻한 물을 계속 먹어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평소 운동을 해야 한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고소모를 개당 4달러에 단체로 구입했다.

점심 후 고사인쿤드를 향해 출발하는 우리 모두는 힘들었다. 4천미터를 넘어서면서 기압이 650이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숨쉬기가 많이 힘들었다. 몇 발 걷고 나면 쉬어야 했다. 한 참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고 쉬었다 다시 오르고 우린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바라본 하늘과 고사인쿤드 산자락은 위용 그 자체였다. 거대한 산이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경이였고 신비로웠다. 우리가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산행을 하는지 그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한 참을 걷다보니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큰 산이 양쪽에서 무너져 생긴 것으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여기에서 8월 보름에 열리는 ‘자나이 푸르네마’ 고사인쿤다 페스티발은 힌두인들의 최대 축제로 이날 여기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사라진고 한다.

다운이나 자켓을 입고 걷고 있는데도 몹시 춥다. 높이가 실감난다. 물을 많이 마셔도 화장실을 갈 일이 없다. 워낙 건조해서 피부를 통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워낙 고산이라 나무가 없다. 그래서 난방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말 춥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롯지에 들어가 누웠는데 추워서 참이 오지 않는다. 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오리털파카를 입고 침낭에 들어가 있어도 춥다. 이런 저런 상념에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얼굴이 추워 잠이 깼다. 물을 먹기 위해 저녁에 배낭에 넣어두었던 따뜻한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영하 25도 이상이다.


1월 9일

고사인쿤드(4,380M)- 라우리비나야크(4,610M)-페디(3,730M)- 곱테(3,430M)

이제 이번 여행의 최고의 높이를 체험하는 날이다. 몸과 맘이 최고로 긴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고소가 심하지는 않고 약간 어지럽고 머리가 멍하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아들의 상태를 보니 전혀 이상이 없다. 역시 평소에 산행을 많이 한 덕을 보고 있다. 어린 학생들과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쿡들이 어렵게 준비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 출발, 고사인쿤드의 새벽은 정말 춥다. 고소 장갑을 끼고, 두툼한 파카를 입었음에도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정말 춥다. 눈보라가 무섭게 몰아친다. 햇빛에 반사되는 눈부심 현상은 시야를 가리고 숨은 턱 밑까지 올라선다. 기압이 거의 550정도로 지상의 절반 수준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다시 걷다 다시 쉬고를 수없이 반복하니 어느새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곧 정상에 올랐다. 이런 것이 삶이다. 힘들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정상이 보이고 정상의 가치를 안다. 누가 업어주던지 헬리콥터를 타고 왔다면 이런 감격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요, 내려가서 더 열심히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같이 온 청소년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긍심과 내부로부터 무한한 에너지가 넘쳐남을 말이다.


1월 10~12일

곱테(3,430M)- 타레파티(3,690M)- 마긴고트(3,420M)- 구트상(2,470M) 1박

쿠트상(2,470M)- 치풀링(2,170)- 파티반장(1,830M)- 치소바니(2,160M) 1박

치소바니(2,160M)- 보르랑반장(2,451M)- 물카라(1,855M)- 순다리잘(1,460M)- 카트만두


곱테를 지나 하산하는 날 오후 내내 눈이 내렸다. 희말라야에서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아이젠을 착용해도 미끄러운 구간이 많아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구트상까지 내려왔고 이어지는 하신길은 마냥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만나는 네팔인들도 정말 반가웠고 길에서 놀고 있는 네팔 어린이들과 기념 촬영도 수줍어하며 카메라를 피하는 여학생들의 미소도 싱그럽고 상큼했다.

12일 도착한 카트만두는 역시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사람과 오토바이를 포함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류와 이동가능한 모든 짐승들이 한데 어루러져 카트만두를 욺직이고 있다. 정말 신기하다.

나는 네팔에서 많은 것을 보고 체험했다. 인간의 순수성, 어린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 어렵지만 참고 견디는 지혜, 여인들의 한없는 가족 봉사, 수행자들의 고행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문명을 떠나 세계 오지 중 오지인 네팔에서의 산행은 참으로 인간의 본성과 내면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점이다. 현재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신에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매래를 위해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다시 만들고 싶다.


1월 16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카트만두를 떠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다시 올 것이다. 열심히 살 것이고 부족한 체력이나 헤이해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도 다시 올 것이고, 네팔 아이들의 맑고 고운 눈을 보기 위해서 다시 올 것이다. 긴 여행 동안 말없이 견뎌준 아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힘들어 가기 싫다던 아들이 내년에 다시 오자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래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가슴속 저 안에서 소리치고 싶을 땐 정말 좋은 곳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해준 노스페이스 성기학 회장님과 청소년위원장이신 김영식대장님 등 모두에게 감합니다. 나마스테

 

2012. 01. 12.[]

 

  트레킹의 마지막 날, 배달된 모닝콜에 잠을 깨어 홍차 한 잔 마시고 카메라를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부지런한 윤석주 자문위원님, 박종웅 자문위원님, 김영식 대장님 등 몇 분은 벌써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일출과 함께 붉게 물들어 있는 치소파니 계곡의 운해사진을 몇 장 찍었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오늘도 예외없이 730분에 출발 준비를 하였다.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은 오늘이 마지막날이라 시바푸리 국립공원으로 들어서기 전 마을 어귀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설산과의 작별이 너무 아쉬워 모두들 청소년처럼 연령대별로 그룹을 지어서 점프샷을 찍기도 하였다. 나도 50대 그룹과 점프샷에 동참은 하였으나 무거운 등산화에 몸이 무거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들 몇 번씩이나 재도전을 하여 사진을 찍었다. 여성대원들은 소녀들처럼 좋아하며 점프샷을 하였는데, 역시 최선을 다하는 여성대원들의 점프샷이 어느 그룹보다도 가장 유연하고 좋았다.

 

 

[점프샷에 최선을 다하는 여선생님대원 채영수, 지용희, 오인숙, 권현진선생님(좌로부터)_김영채 사진]

 

 

  우리가 점프샷을 하며 사진을 찍는 동안 가이드 핀죠는 국립공원사무소에서 입장권을 사왔다. 치소파니에서 순다리잘까지의 하산 길은 새로운 국립공원 지역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국립공원 입장권을 새로 사야 했다. 이곳은 카트만두에서 가까운 시바푸리 국립공원(Shivapuri National Park)이다. 시바푸리 국립공원의 수목들은 열대우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고사리 종류의 식물도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사람 키를 훌쩍 넘겼고, 대부분의 나뭇가지에는 수염이끼가 길게 매달려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넘기 전에는 북사면의 응달이라 나뭇가지에 서리가 하얗게 얹혀있었으나 고개를 넘으니 따뜻한 햇살을 받아 꽃이 핀 나무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정원수로 많이 쓰이는 서향나무가 많이 있어 한창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치소파니에서 물카르카를 향해 가는 동안 아름다운 헬람부의 자연과 마을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걸음이 늦어져 자연히 대열에서 맨 뒤로 쳐졌다. 우리 대열의 맨 뒤에는 클라이밍 셀파인 리마가 있어 자연스럽게 리마와 얘기를 많이 하며 걸었다. 리마(34)는 키가 크고 약간 깡마른 체격을 지녔는데 외유내강형 사람처럼 친절하면서도 매우 강인해 보였다. 고향이 네팔의 동쪽지방인 쿰부 히말쪽이라고 했다. 내가 8천 미터급의 산을 등정한 경험이 있느냐고 했더니, 에베레스트를 네 번이나 등정을 했고, 마칼루에는 네 번을 가서 두 번 등정을 했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셀파이지만 대단한 등반가였다. 리마는 자녀가 아들 둘과 딸 둘로 네 명이라고 하는데, 막내아들은 이제 태어난 지 두 달 되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 탐사대의 맨 뒤에 서서 뒤에 쳐지는 대원이 있으면 묵묵히 뒤에 남아 기다렸다가 함께 행동하며 우리 대원의 뒤를 지켜준 믿음직한 스텝이었다. 가끔 내가 사진 찍느라 뒤에 남겨지면 저만치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꼭 함께 가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우리 대열의 맨 뒤에는 항상 리마가 있어 매우 든든하였다. 내년에도 히말라야에서 리마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탐사대의 대열 후미를 지켜준 믿음직한 클라이밍 셀파 리마(34)와 함께_탐사대(김영채) 사진]

 

 

  마을과 가게들을 지나 1050분경에 물카르카(Mulkharka 1,855m)에 도착하였다. 롯지 옆 큰 나무에 걸린 이정표를 보니 치소파니에서 물카르카까지 트레일코스는 14km, 도로로는 22km가 떨어져 있다고 돼있다. 우리는 약 3시간 20분 만에 도착하였으니 내리막길이라서 운행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물카르카에서 라면으로 이른 점심식사를 하였다. 긴 트레킹을 마치고 하산하여 등산화를 벗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쉬는 짧은 시간이 이처럼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물카르카에서 점심을 먹을 때, 고사인쿤드에서 만난 일본인 젊은 커플을 다시 만나 우리 탐사대와 함께 점심식사를 같이 하였다. 약간 매운 맛의 한국 라면이 매우 맛있다고 했다. 헤어질 때 일본인 여성은 일본인 특유의 예절바른 모습을 보이며 우리 대원들과 낱낱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물카르카에서 순다리잘(Sundarijal 1,460m)까지는 한 시간 거리가 못되었다. 물카르카의 마을 아래를 지나면 작은 댐이 나오는데 카트만두에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 저수지라고 하였다. 시바푸리 국립공원은 카트만두에서 가까워 많은 네팔의 젊은이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국립공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젊은 아가씨들이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시바푸리 국립공원 사무소 옆을 지나 민가 사이를 내려가다가 집 텃밭 주변의 나무에서 작은 원숭이들이 모여 나무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야생의 원숭이들이 마치 마을의 애완동물처럼 보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게도 많아져 콜라 회사의 붉은 간판도 줄이어 있었고 길거리에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1220분에 순다리잘의 바자르에 도착하였다. 순다리잘의 버스 터미널은 마치 시골에 오일장이 선 것처럼 매우 붐볐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였다. 순다리잘의 번잡한 바자르에서 우리들을 태운 대형 버스가 출발하였다. 카트만두를 향하는 버스와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트레킹을 떠나기 전에 카트만두에 와서 묵었던 로얄싱기호텔에 한 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호텔 로비에 앉으니 지난 트레킹 일정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정말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풍경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새록새록 생각이 나겠지만 몇 시간 전까지도 걸었던 히말라야에서의 하루하루가 아련히 먼 일들처럼 느껴졌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내년 겨울에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먼저 샤워부터 하였다. 거의 2주일 만에 샤워를 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몸과 마음까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남쪽의 유리창으로 호텔 객실 깊숙이 봄 햇살 같은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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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11.[]

 

  730, 쿠툼상의 롯지인 쿠툼상호텔을 떠날 때의 주위 풍경은 장관이었다. 동남쪽 아래의 계곡에는 운해가 가득하여 바다처럼 넘실대었고, 마을 북쪽은 눈 덮인 랑탕 히말의 능선이 북쪽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탐사대는 갈 길을 재촉하는 데도 한 발짝 떼고 뒤돌아보고 한 발짝 떼고 뒤돌아보기를 수차례, 여러 장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옮겼다. 10분쯤 걸어 마을 어귀에 있는 스투파(불탑)와 마주쳤는데, 크기는 3m 정도로 어제 보았던 스투파에 비하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스투파 건너편에는 마을 보건소도 있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마을 보건소의 문이 잠겨있었다. 트레킹 도중 아침에 마을을 떠날 때 보게 되는 보건소들은 하나같이 문이 잠겨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탐사대가 아침에 너무 일찍 마을을 떠나다보니 직원의 출근 전이라 잠겨있는 보건소 문만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치플링에서 만난 순박한 어린이들_김영채 사진]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 따뜻한 남쪽을 향하여 계속 고도를 낮추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네팔의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서 남쪽의 카트만두 사이에 있는 평야지대를 헬람부(Helambu) 지역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현재 걷고 있는 곳이 헬람부 지역이었다. 특히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구간은 고사인쿤드 트렉헬람부 트렉이 겹치는 구간이다. , 곱테와 마깅고트 사이에 있는 타데파티반장(Thadepati Bhanjyang 3,690m)에서 순다리잘까지 두 트렉이 겹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 겹치는 구간을 걷고 있는 것이다. 헬람부 지역의 가장 큰 특징은 좁은 계단식 밭인 것 같았다. 급경사의 산자락을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밭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계단식 밭에는 곡식이 자라고 있어 푸르름이 짙게 보였다. 민가 근처의 밭에는 노랑 유채꽃이 핀 곳도 많이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봄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쿠툼상에서 30분 쯤 걸어 내려와 빈 롯지 마당에서 오래 쉬었다. 김영식 대장님이 전 대원들의 인물사진을 한 컷씩 찍고 각 그룹별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학교 선생님그룹과 학교 선생님이 아닌 그룹, 다시 학교 선생님그룹도 퇴직한 선배님그룹과 현재 재직 중인 후배그룹, 여교사그룹과 남교사그룹, 초등선생님그룹과 중등선생님그룹, 청소년그룹, 청주그룹과 충주그룹, 광주전남그룹 또 무슨 그룹과 무슨 그룹 등 웃고 떠들고 즐겁고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짧지만 되돌릴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매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니.

 

 

[치플링을 향해 가는 행복한 길에서(좌로부터_설상욱, 연철흠, 오인숙, 김영채 대원)_탐사대 사진]

 

 

  2시간쯤 걸어 골푸반장(Golphu Bhanjyang 2,130m)에 도착하였다. 구릉족이 사는 제법 큰 마을이라 마을에는 대장간도 있었다. 길가의 가게 앞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따스한 햇볕을 쬐려고 앉아있어 주민들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카메라를 보여주면 마다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사진찍기에 좋았다. 마을을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했으나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딱 한두 번 뿐이었으니 정말 순박한 인심이었다.

  골푸반장에서 2시간을 더 걸어 치플링(Chipling 2,170m)에 도착하였다. 치플링의 라마게스트하우스(Lama Guest House)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메뉴는 요리사 리마가 만든 티베탄브레드와 김치볶음밥인데, 김치볶음밥을 먹고도 숭늉 한 그릇은 다들 마다하지 않았다. 서양인이 빵 먹고 커피는 기본이듯이 우리에게는 숭늉이 식후의 기본음식이었다. 나는 평소에 식사 후 커피 마시는 것을 즐겨했으나 트레킹 중에는 커피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식사 후에 뜨거운 숭늉을 한 그릇 먹어야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한낮의 치플링은 날씨가 얼마나 따뜻한지 우리나라의 5월 어느날 야산에 소풍나온 기분이 들었다. 마당 한쪽에는 촌닭들이 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우는 황구같은 누렁이가 배를 드러내고 자빠져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개 잡아먹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놈의 개팔자가 상팔자였다. 우리 탐사대도 점심식사 후에는 릴랙스하게 쉬는 시간을 가졌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마당의 잔디를 밟고 이리저리 걷는 대원도 있고, 식당 앞마당의 수돗가에서 시원하게 머리를 감는 대원도 있었다. 이러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한가로운 풍경은 네팔에서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쉽지만 1250분 치플링을 출발하였다.

 

 

[치소파니에서 본 히말라야의 일몰 풍경처럼 아쉬움 속에 우리의 트레킹도 끝을 향하여 간다_김영채 사진]

 

 

  치플링을 떠나서는 상당히 급한 경사길을 내려가야 했다. 경사진 산길을 40분쯤 걸어 내려와서 큰 도로와 만났다. 자동차 길이었다. 간간히 오토바이도 지나갔다. 파티반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오후 2시 무렵에 길가의 판잣집 주막에서 쉬었다. 주민들이 주막 안에 몇몇이 앉아 있었고 주모는 양념한 닭고기를 냄비에 끓이고 있었다. 주막 안에서 아궁이도 없이 나무를 때어 요리를 하니 판잣집 속이 연기로 가득 찼다. 네팔 막걸리인 창을 마셔보았다. 어쩐지 위생적이지 않아 보여 한 모금만 마시고 더 마시지는 않았는데, 물을 많이 탔는지 우리 막걸리보다 묽어 심심하고 맛이 없었다. 주막 안에서 요리를 하므로 더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 때문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창 한 모금만 하고 밖으로 나와서 쉬었다. 1월인데도 한낮의 햇살이 따갑고 눈이 부셔 마치 우리나라의 따뜻한 어느 봄날 같았다.

  치플링을 떠난지 1시간 30분쯤 지나 파티반장(Pati Bhanjyang 1,830m)에 도착하였다. 파티반장은 네와르족의 마을이라고 하는데 롯지와 찻집이 있었다. 파티반장의 마을 어귀에서 잠시 쉬었다가 작은 언덕을 한 시간 정도 올라가서 자동차 도로와 만날 수 있었다. 오후 340분에 치소파니(Chisopani 2,170m)에 도착하였다. 숙소인 호텔 안나푸르나마운틴뷰의 옥상에서는 저 멀리 보이는 가네시 히말과 랑탕 히말의 전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제 이 아름다운 풍경과 작별을 해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한라산 정상보다도 높아 석양이 되자 날씨가 추워졌지만, 이 풍경을 두고 객실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많은 대원들이 옥상에서 추위를 참아가면서 히말라야 설산의 일몰 풍경을 놓치지 않고 감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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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10.[화]

 

  어제 많은 눈이 내린 곱테의 롯지 나마스테호텔(3,930m) 주변은 온통 은세계로 변해 있었다. 곱테의 아침은 맑게 개어 있었고 카트만두 방향의 남쪽 계곡은 운해로 가득차 있었다. 마치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7시 30분, 우리 탐사대는 롯지에서 계곡을 향해 내려간 다음 눈길을 따라 서서히 40분을 걸어 올라가 지도상에는 나와있지 않으나 롯지 하나가 있는 카르카에 도착하였다. 응달진 곳에 있는 작고 외딴 롯지인데 겨울인데도 관리인이 있었다. 잠시 쉰 후 다시 발목보다 깊이 빠지는 비탈진 눈길을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숲길을 빠져나와 산허리로 올라붙으니 이제야 아침 햇살을 볼 수 있었다. 백옥같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쓴 키 작은 나뭇가지가 눈속에서 아침햇살을 받으니 그 영롱한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아침햇살을 받은 그 빛나는 풍광을 놓칠 수가 없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면서 걸었다. 이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능선에 올라서게 되었고, 그곳에 몇 개의 롯지가 드문드문 있었다. 곱테의 롯지를 떠난지 약 1시간 30분 만에 타레파티반장에 도착하였다.

 

[곱테의 롯지를 출발하여 눈 덮인 산길을 오르는 탐사대_김영채 사진]

 

 

  이곳은 지도상에는 타데파티반장(Thadepati Bhanjyang 3,690m)으로 표시되어있지만, 가이드 핀죠를 비롯한 모든 현지인들은 타레파티(Tharepati)반장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반장이란 말을 살펴보면, 랑탕국립공원의 네팔지도에는 ‘패스’보다는 ‘반장’이란 말이 훨씬 많이 나오는데, 네팔어로 ‘반장(Bhanjyang)’은 ‘패스’처럼 고개라는 말로 쓰이지만 ‘패스(Pass)’보다는 낮은 고개를 ‘반장(Bhanjyang)’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반장’은 히말라야산맥 근처가 아닌 남쪽의 헬람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타레파티의 롯지들은 고사인쿤드의 롯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다. 산 능선 위의 타레파티에서는 조망이 매우 좋았다.

  우리가 어제 힘들게 넘었던 눈 덮인 라우레비나 패스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매우 높게 보였다. 한마디로 고봉준령(高峯峻嶺)이었다. 해나 달도 넘기 어려울 것 같은 저렇게 높은 고개를 어떻게 넘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보니 패스 왼쪽에는 수르야쿤드가 있고, 패스의 오른쪽에는 삼각형으로 뾰쪽하게 보이는 하얀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는데, 이것이 수르야피크(Surya Peak 5,145m)였다. 타레파티는 전망이 매우 좋아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안성마춤의 장소였다. 사진가인 박종익 부대장님이 대원들에게 많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대원들은 박 부대장이 전문가용 카메라인 캐논 마크파이브를 가지고 있으므로 박 부대장이 찍어주는 사진을 매우 좋아하였다. 매번 사진 찍어달라고 하기에 미안하니까 다들 “이왕이면 왕다마로 박아야 한다…”면서 카메라 앞에 서곤 했다. 나도 여러장의 독사진을 부탁을 드렸었다.

 

 

[눈 밭 속에 핀 가시나무 눈꽃_김영채 사진]

 

 

  눈 덮인 타레파티는 추울 것 같았지만 예상외로 따뜻하였다. 타레파티반장 롯지의 평상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상당히 긴 시간을 쉬었다. 타레파티에서의 하산길은 햇살을 받으며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므로 오버자켓을 벗고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어도 추운 줄을 몰랐다. 타레파티에서 평탄한 능선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 12시 15분경에 롯지가 세 개 있는 마긴코트(Mangengoth 3,420m)에 도착하였다. 첫 번째 나오는 롯지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롯지의 햇살 고운 양지바른 마당에서 따뜻한 홍차를 마시니 마치 봄나들이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30분쯤 능선을 향해 올라가면 롯지가 하나 있는 고갯마루에 도착하는데, 이 고개가 큐올라반장(Kyuola Bhanjyang 3,280m)이다. 고갯마루에 있는 롯지 앞마당에는 호박을 얇게 채썰어서 말리고 있었는데, 롯지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뭐냐고 물어보니 호박죽을 쓸 재료라고 하여 몇 개 집어 맛을 보았다. 달콤한 맛이 나고 향긋한 호박향 냄새가 났다.

 

  이제부터는 급한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1시간 30분 정도 숲길을 걸어 내려가니 길가에 민가가 한 채 있고, 계단식 밭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흰색 스투파에 도착하니 마을에 다 온 것 같았다. 높이가 5~6m는 됨직한 엄청나게 큰 스투파였다. 스투파에는 ‘지혜의 눈’과 함께 눈동자 세 개가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스투파에 그려진 동서남북을 향한 세 개의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스투파에서 롯지가 있는 마을 중심지까지는 20분이나 걸렸다.

  롯지로 가는 길은 계단식 밭들이 있는 목가적인 풍경이 계속되었다. 오후 4시 20분에 쿠툼상(Kutusang 2,470m)의 롯지 쿠툼상호텔에 도착하였다. 쿠툼상 마을도 백두산 정상 높이에 근접하니 해발고도가 상당히 높은 곳이라 조망이 매우 좋았다. 롯지 앞마당에서도 북동쪽으로 멀리 랑탕히말의 설산이 보일 정도였다. 오늘 트레킹은 약 9시간 정도 걸렸다. 험준한 산악지형에서부터 부드러운 구릉의 농경지가 있는 큰 마을로 내려오니 긴장이 풀리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였다. 이제 우리의 트레킹 일정도 거의 끝나가고 있어 아쉬움과 시원함이 교차하였다. 되돌아보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꿈같은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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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9.[]

 

  오늘도 예외없이 아침 6시에 우리를 깨우는 뜨거운 홍차가 배달되었다. 이 추위 속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팀이 고마웠다. 뜨거운 차를 마시니 몸이 훈훈해졌다. 오늘 트레킹은 추위와의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630분에 식당에 모여 아침식사를 하였다. 몇몇 대원이 아침식사를 못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뜨거운 물이라도 많이 마셔야할텐데~.  오늘 산행 코스는 눈이 많고 바람이 강한 고개를 넘어야하니 나 또한 대비를 든든히 하였다. 등산바지 위에 오버트라우져를 한 장 더 입었고 상의는 다운 조끼 위에 우모복을 입었다. 고소모와 방수 장갑을 끼었고,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여 출발 준비를 마쳤다. 언제나 그러하듯 730분에 출발 채비를 한 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먼저 식당 앞 빈 공터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출발하였다.

 

 

[고사인쿤드의 호수가에 있는 힌두교 사원(호수 바로 옆 건물)_김영채 사진]

 

  이 곳 고사인쿤드는 힌두교도에게는 매우 신령스런 성지라고 한다. 호수 속에 힌두교의 주신 중 하나이며 우주의 수호신인 비슈누(Visnu) 신이 잠들어 있다고 믿고 있어, 호수가에 시바신의 상징으로 숭배되는 링가(Linga)를 모신 사당이 있었다. 사당을 지나 라우레비나 패스로 향하는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눈과 바람과 추위를 헤쳐 한참을 걸으니 고사인쿤드는 산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고개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추위는 더 심해졌고, 눈이 깊게 쌓여 걸을 때 마다 발목보다 깊이 빠지니 걷는 속도는 느려지고 힘은 더 들었다. 힘이 들어도 천천히 오르니 어느덧 고개 정상 가까이에 왔다. 

  고사인쿤드가 사라지고 새로운 호수가 나타났는데 수르야쿤드이다. 고갯마루 가까이 등산로 오른쪽에 있는 수르야쿤드(Surya Kund)의 안내판을 지나니 이번 트레킹에서 최고 높이인 라우레비나 패스(Laurebina Pass 4,610m)의 정상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 10분이 걸렸다. 고개 정상에서 탐사대원들 모두 뿌뜻한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지만 눈이 쌓여있어 빨리 걸을 수는 없었다. 고개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한참을 내려가니 롯지가 하나 나왔다. 수르야쿤드의 이정표에는 롯지가 있는 페디까지 2시간 거리라고 했으나 우리는 2시간 30분만에 페디(Phedi 3,730m)에 도착하였다. 롯지만 하나 있는 페디에서 뜨거운 국수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이제 춥지 않았다. 우리 탐사대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고비를 탐사대원 모두가 무사히 넘겼다.

 

 

[라우레비나 패스 정상 근처의 수르야쿤드 안내판_설상욱 사진]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출발할 때, 나는 우모복을 벗고 오버자켓으로 갈아 입었다. 고개를 넘어 남쪽으로 오니 고도가 낮고 남향이라 고사인쿤드를 출발할 때처럼 춥지는 않았다. 페디의 롯지를 나와서는 롯지 뒤편의 계곡을 향하여 급경사면을 내려간 다음 산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곱테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몇 개의 산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가야하는 험한 길을 따라 점차 고도를 낮추어 나갔다. 오전에 흐리기만 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니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눈발이 점점 더 심해져서 잠시 쉬는 동안 배낭에 커버를 씌어야할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어젯밤의 달무리가 눈을 몰고 온 것 같았다. 오전에는 심설산행을 하더니 오후에는 눈꽃산행인가! 히말라야의 설원에서 눈까지 맞으면서 산행을 하다니 정말 다양한 겨울산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오늘 내리는 눈은 우리 탐사대에 대한 축복인 셈이다. 앞 사람의 어깨와 배낭 위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 탐사대원들이 지쳐갈 무렵 3시간 10분만에 곱테(Ghopte 3,430m)에 도착하였다.

  곱테에는 롯지만 2개가 있었는데, 트레킹 도중 만났던 롯지 중에서 가장 허접하였다. 침대 2개가 있는 방이 어찌나 좁은지 침대와 침대 사이가 3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등산화는 침대 아래에 넣고 카고백은 복도에 두었다. 방과 방 사이도 얇은 나무판자로 허술하게 막아서 옆방의 불빛이 그대로 스며들어왔다. 옆방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 지경이었다. 옆방에서 랜턴을 끄니 내 랜턴불빛이 옆방까지 스며들어가 잠을 방해할까봐 미안해서도 랜턴을 꺼야했다. 불빛도 스며들고 코고는 소리도 훤히 들리는 그런 판자벽 롯지이지만, 이렇게 허술하기는 해도 오늘밤에 내리는 눈비와 추위를 막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오후에 내리던 눈은 저녁식사 이후에도 그치지 않고 내리는 모양이 밤새 내릴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젯밤보다는 고도가 천 미터나 낮아 그리 추울 것 같지는 않았다. 저녁식사 후 난로가 있는 식당에서 쉬다가 9시 30분에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추위와 눈보라 속에 큰 고개를 넘어 피곤한지 오늘은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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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7.[토]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30분이 늦은 6시 30분에 기상하였다. 7시에 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숭늉이 곁들여 졌다. 트레킹 기간 내내 김치, 고추장, 젓갈 등 한식음식을 먹게 되니 음식 트러블이 없어 대원 모두의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다른 국을 끓여내는 쿡의 솜씨가 놀랍지만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치밀하게 식단을 짠 탐사대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더 놀라울 뿐이다. 오랜 히말라야 등반 경험을 통한 대원들의 체력관리 노하우가 탐사 일정과 식단 속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전문가다운 리더십이다.

  8시에 모두 모여 아침체조를 하였다. 롯지에는 마당이 없어 곰파의 마당에서 체조를 한 후 싱곰파를 향해 출발하였다. 마을 곰파를 나와 군부대 아래 쪽 길로 가다가 보건소 앞에서 농경지를 지나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반 쯤 오르면 2개의 롯지가 있는데 겨울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약 10분 쯤 더 오르면 산 사면에 두르사강(Dursagang 2,650m)의 티숍(Tea Shop)이 있고 전망이 좋은 마운틴뷰롯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쉬었다. 아침 햇살이 따뜻하였다. 이 롯지의 입구 문 위에는 바람으로 돌리는 작은 마니차가 있었다. 이곳 두루사강은 마을이 없고 롯지만 서너 곳이 있었다. 트레킹 코스 중간 중간에는 두세 시간이나 서너 시간을 걸으면 마을이 있거나 롯지가 있었다. 트레커들을 위하여 국가 차원에서 롯지들을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당한 거리마다 쉬거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롯지는 꼭 있었다.

 

 

[두르사강(Dursagang 2,650m)에 있는 마은틴뷰 롯지의 대문 위에 있는 바람으로 돌리는 마니차_김영채 사진]

 

  숲속 길을 2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탁 트인 능선 위에 롯지가 2개가 있는데, 여기가 풀룽능선(Phulung Danda) 위에 있는 포프랑(Phoprang 3,210m)이다. 롯지 선셋뷰호텔 간판에도 「단다(Danada)」라는 말이 있는데 단다는 능선을 뜻하는 말이다. 시간이 11시 40분, 전망 좋은 곳에서 가네시 히말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쉬면서 여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햇살은 화창하나 3천미터가 넘으니 금방 추위를 느껴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었다. 운행 중에는 가벼운 복장으로, 쉴 때는 파카를 입어 보온을 하는 일이 고산 트레킹 중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쉽게 말해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잘하여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레이어링 시스템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등산을 하는 사람이 가장 등산을 잘하는 사람인 것이다. 땀을 흘리는 일은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하므로 그렇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김치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김치볶음밥을 먹고도 숭늉은 나온다. 우리 탐사대의 조리팀은 참으로 대단한 조리팀이다.

 

  오후 1시에 포프랑을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3천미터 이상의 고소 산행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텽탄힌 길을 따라 걸었다. 롯지를 출발하자마자 바로 전나무 숲이 나왔다. 숲속 음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열대 우림지역이라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숲 속에서 나무하러 온 싱곰파의 어린이들을 만났다. 눈 속을 슬리퍼를 신고 오는 아이도 있었는데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떠들고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1시간 30분정도 숲속 길을 걷다가 산 모퉁이를 돌아가니 싱곰파의 마을과 롯지가 보였다. 길은 마을 입구에 있는 롯지 앞에서 둔체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였다. 지도에는 둔체에서 싱곰파까지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포프랑에서 점심시간에 한가로운 탐사대원 모습, 모처럼 여선생님 대원이 다 모였다_김영채 사진]

 

 오후 2시 40분에 싱곰파(Singh Gompa 3,300m)의 레드판다호텔(Red Panda Hotel)에 도착하였다. 규모가 큰 롯지였다. 식당 건물과 숙소 건물이 분리되어 있는데 숙소도 트레킹 도중에 만난 롯지 중에서는 시설이 가장 좋았다. 2층으로 된 숙소 건물은 각 거실을 중심으로 2인용 객실이 4개가 있으며 거실 한 편에 좌변기의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고산에서는 밤에 자주 깨어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화장실이 방 밖에 있지만 실내에 있으므로 매우 편리하였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 온다면 전망도 좋고 실내가 편리하게 되어 있어 며칠 묶고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만난 롯지 중 가장 좋은 숙소였다.

  오늘 일정은 7시간이 못되어 트레킹이 끝났다. 호텔방에 짐을 정리하고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어 마을에 있는 치즈공장을 방문하였다. 공장 내부는 볼 수 없었으나 야크 젖으로 만든 치즈는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맷돌크기의 치즈 덩어리에서 1kg 단위로 잘라 팔고 있었다. 몇 대원이 야크치즈를 구입할 때 나도 1kg을 샀다. 가격은 1kg에 570루피(1루피는 14원) 하였다. 잘 숙성되었으나 가미되지 않은 치즈 맛은 느끼하고 짠 맛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먹던 슬라이스 치즈 맛은 아니었다.

 

  저녁식사 전까지 식당에서 이야기며 노래하고 시간을 보냈다. 6시에 저녁식사를 할 때 박종익 부대장님이 내일 일정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를 하였다. “내일 우리가 머무를 장소는 고사인쿤드인데 해발고도가 4,380m나 되므로, 이번 트레킹 일정 중에서 내일 일정이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정이다. 현재의 고도에서 약 1천미터나 고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며, 내일 운행만 잘하면 모레부터는 힘들지 않고 순탄할 것”이라고 하였다. 박 부대장님의 권유로 내가 간단하게 덧붙였다. “고산병이 오지 않도록 물을 많이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혹시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은 잠자기 전에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였다. 나는 컨디션이 아주 좋아져 저녁식사도 충분히 하였다. 룸 메이트인 연철흠 선생님의 컨디션도 매우 좋아 다행이었다.

  저녁식사 후 우리팀의 포터들이 노래와 춤을 추며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와 ‘심심해’를 부르며 춤까지 추었다. ‘레삼피리리(Resham Firiri)’는 네팔의 산에서 온 유명한 민요 중의 하나인데, 우리말로는 ‘비단 두건이 바라에 날리네’라는 뜻이라고 하며, 이 민요는 낭만적인 젊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한다. 또 ‘심심해’라는 노래는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신청하여 포터들이 불러 주었는데, 노랫말 속에 우리말 심심해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우리끼리 ‘심심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심심해’라는 노래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심시메 파니마(Sim Sime Panima)’라는 노래인데, 네팔의 브라만(Brahmans)과 체트리(Chhetri) 공동체의 전통 결혼식에서 새로운 커플에 대한 환희에 찬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며 축하할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하였다. 매우 경쾌하고 즐거운 가락이었다. 우리도 아리랑을 불러 우리 민요를 들려주었으며, 나중에는 ‘레삼피리리’를 같이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년에 트레킹 준비할 때는 우리 가요의 노랫말도 꼭 적어 와야 하겠다. 탐사대 수첩에 가사가 적힌 ‘레삼피리리’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겠는데, 막상 우리 가요를 부르려니 도통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게 다 나이 먹은 탓인것 같기도 하다.

  모든 대원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나와 연 선생님도 방으로 와서 내일 운행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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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7.[]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30분이 늦은 630분에 기상하였다. 7시에 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숭늉이 곁들여 졌다. 트레킹 기간 내내 김치, 고추장, 젓갈 등 한식음식을 먹게 되니 음식 트러블이 없어 대원 모두의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다른 국을 끓여내는 쿡의 솜씨가 놀랍지만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치밀하게 식단을 짠 탐사대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더 놀라울 뿐이다. 오랜 히말라야 등반 경험을 통한 대원들의 체력관리 노하우가 탐사 일정과 식단 속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전문가다운 리더십이다.

 

  8시에 모두 모여 아침체조를 하였다. 롯지에는 마당이 없어 곰파의 마당에서 체조를 한 후 싱곰파를 향해 출발하였다. 마을 곰파를 나와 군부대 아래 쪽 길로 가다가 보건소 앞에서 농경지를 지나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반 쯤 오르면 2개의 롯지가 있는데 겨울이라 문이 잠겨있었다. 10분 쯤 더 오르면 산 사면에 두르사강(Dursagang 2,650m)의 티숍(Tea Shop)이 있고 전망이 좋은 마운틴뷰롯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쉬었다. 아침 햇살이 따뜻하였다. 이 롯지의 입구 문 위에는 바람으로 돌리는 작은 마니차가 있었다. 이곳 두루사강은 마을이 없고 롯지만 서너 곳이 있었다. 트레킹 코스 중간 중간에는 두세 시간이나 서너 시간을 걸으면 마을이 있거나 롯지가 있었다. 트레커들을 위하여 국가 차원에서 롯지들을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당한 거리마다 쉬거나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롯지는 꼭 있었다.

  숲속 길을 2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탁 트인 능선 위에 롯지가 2개가 있는데, 여기가 풀룽능선(Phulung Danda) 위에 있는 포프랑(Phoprang 3,210m)이다. 롯지 선셋뷰호텔 간판에도 단다(Danada)라는 말이 있는데 단다는 능선을 뜻하는 말이다. 시간이 1140, 전망 좋은 곳에서 가네시 히말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쉬면서 여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햇살은 화창하나 3천미터가 넘으니 금방 추위를 느껴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었다. 운행 중에는 가벼운 복장으로, 쉴 때는 파카를 입어 보온을 하는 일이 고산 트레킹 중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쉽게 말해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잘하여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레이어링 시스템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등산을 하는 사람이 가장 등산을 잘하는 사람인 것이다. 땀을 흘리는 일은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하므로 그렇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김치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김치볶음밥을 먹고도 숭늉은 나온다. 우리 탐사대의 조리팀은 참으로 대단한 조리팀이다.

 

  오후 1시에 포프랑을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3천미터 이상의 고소 산행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텽탄힌 길을 따라 걸었다. 롯지를 출발하자마자 바로 전나무 숲이 나왔다. 숲속 음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열대 우림지역이라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숲 속에서 나무하러 온 싱곰파의 어린이들을 만났다. 눈 속을 슬리퍼를 신고 오는 아이도 있었는데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떠들고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1시간 30분정도 숲속 길을 걷다가 산 모퉁이를 돌아가니 싱곰파의 마을과 롯지가 보였다. 길은 마을 입구에 있는 롯지 앞에서 둔체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였다. 지도에는 둔체에서 싱곰파까지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포프랑에서 점심시간에 한가로운 탐사대원 모습_김영채 사진]

 

  오후 240분에 싱곰파(Singh Gompa 3,300m)의 레드판다호텔(Red Panda Hotel)에 도착하였다. 규모가 큰 롯지였다. 식당 건물과 숙소 건물이 분리되어 있는데 숙소도 트레킹 도중에 만난 롯지 중에서는 시설이 가장 좋았다. 2층으로 된 숙소 건물은 각 거실을 중심으로 2인용 객실이 4개가 있으며 거실 한 편에 좌변기의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고산에서는 밤에 자주 깨어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화장실이 방 밖에 있지만 실내에 있으므로 매우 편리하였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 온다면 전망도 좋고 실내가 편리하게 되어 있어 며칠 묶고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만난 롯지 중 가장 좋은 숙소였다.

  오늘 일정은 7시간이 못되어 트레킹이 끝났다. 호텔방에 짐을 정리하고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어 마을에 있는 치즈공장을 방문하였다. 공장 내부는 볼 수 없었으나 야크 젖으로 만든 치즈는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맷돌크기의 치즈 덩어리에서 1kg 단위로 잘라 팔고 있었다. 몇 대원이 야크치즈를 구입할 때 나도 1kg을 샀다. 가격은 1kg570루피(1루피는 14) 하였다. 잘 숙성되었으나 가미되지 않은 치즈 맛은 느끼하고 짠 맛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먹던 슬라이스 치즈 맛은 아니었다.

 

  저녁식사 전까지 식당에서 이야기며 노래하고 시간을 보냈다. 6시에 저녁식사를 할 때 박종익 부대장님이 내일 일정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를 하였다. “내일 우리가 머무를 장소는 고사인쿤드인데 해발고도가 4,380m나 되므로, 이번 트레킹 일정 중에서 내일 일정이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정이다. 현재의 고도에서 약 1천미터나 고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며, 내일 운행만 잘하면 모레부터는 힘들지 않고 순탄할 것이라고 하였다. 박 부대장님의 권유로 내가 간단하게 덧붙였다. “고산병이 오지 않도록 물을 많이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혹시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은 잠자기 전에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였다. 나는 컨디션이 아주 좋아져 저녁식사도 충분히 하였다. 룸 메이트인 연철흠 선생님의 컨디션도 매우 좋아 다행이었다.

  저녁식사 후 우리팀의 포터들이 노래와 춤을 추며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네팔 민요인 레삼피리리심심해를 부르며 춤까지 추었다. ‘레삼피리리(Resham Firiri)’는 네팔의 산에서 온 유명한 민요 중의 하나인데, 우리말로는 비단 두건이 바라에 날리네라는 뜻이라고 하며, 이 민요는 낭만적인 젊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한다. 심심해라는 노래는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신청하여 포터들이 불러 주었는데 노랫말 속에 우리말 심심해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우리끼리 심심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심심해라는 노래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심시메 파니마(Sim Sime Panima)’라는 노래인데, 네팔의 브라만(Brahmans)과 체트리(Chhetri) 공동체의 전통 결혼식에서 새로운 커플에 대한 환희에 찬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며 축하할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하였다. 매우 경쾌하고 즐거운 가락이었다. 우리도 아리랑을 불러 우리 민요를 들려주었으며, 나중에는 레삼피리리를 같이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년에 트레킹 준비할 때는 우리 가요의 노랫말도 꼭 적어 와야 하겠다. 탐사대 수첩에 가사가 적힌 레삼피리리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겠는데, 막상 우리 가요를 부르려니 도통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게 다 나이 먹은 탓인가?

  모든 대원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나와 연 선생님도 방으로 와서 내일 운행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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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1. 06.[]

 

  오늘은 새로운 루트로 트레킹을 가는 날이다. 둔체에서 순다리잘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고사인쿤드 트렉(The Gosain Kund Trek)인데 우리 탐사대는 샤브루베시에서 툴로샤브루로 가서 고사인쿤드 트렉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느 때처럼 아침 6시 기상, 630분 아침식사, 730분 트레킹 출발이다.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우리 탐사대는 예정 시간에 정확히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은 조용하였다. 우리 탐사대는 찻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찻길에서 벗어나 오른쪽의 작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강을 따라 있는 마을을 조용히 지나쳤다. 보테코시 강(Nadi)에 걸린 다리를 건너 오래된 샤브루벤시 마을을 통과할 때 주민들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막 잠에서 깬 꼬마아이가 우리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마을이 끝날 때쯤 이번에는 랑탕 콜라(Khola, 하천)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넜다. 랑탕 콜라를 따라 계곡 상류쪽으로 이어진 이 길이 랑탕 트렉(The Langtang Trek)이다. 영국의 탐험가 틸만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 그 랑탕 계곡으로 이어진 길이다.

 

  마을에서 30분쯤 걸으면 랑탕으로 가는 길과 툴로샤브루로 가는 길이 갈린다. 우리 탐사대는 계곡을 따라가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오른쪽의 가파른 길로 접어들었다. 툴로샤브루로 가는 길이다. 샤브루베시와 툴로샤브루는 고도차가 약 800m 가량 나므로 앞으로 계속 고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갈림길에서 한 시간 쯤 올라가서 물레방아가 돌리는 마니차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람 손으로 돌리지 않고 물레방아가 돌리는 마니차 옆만 지나가도 내가 마니차를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니 얼마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가. 우리 탐사대에게 축복을 주는 마니차는 물레방아의 힘만으로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말이 능숙한 가이드 핀죠의 설명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입구 능선 가까이에 올라서니 멀리 흰 눈에 덮여있는 가네시 히말이 보였다. 언제 보아도 하얀 설산 히말라야는 아름다웠다. 히말라야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샤브루베시 마을을 출발한지 4시간이 조금 못 된 1120분에 툴로샤브루의 숙소 라마호텔(Lama Hotel)에 도착하였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속에 있는 모든 숙소들이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롯지로 이해하면 되겠다. 툴로샤브루는 따망족의 마을로서 상당히 큰 마을이었다. 네팔어로 툴로(Thulo)()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던데 역시 툴로샤브루는 샤브루라 이름을 붙인 마을 중에서는 큰 마을이었다. 마을의 집들도 벽을 돌로 지었고 오래된 것처럼 보였으며 대개 집들도 크게 지었다. 우리말로 하면 부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묶은 롯지의 옥상에서는 가네시 히말의 장관이 아주 잘 보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조를 키질하는 일을 감독하는 지용희 선생님_김영채 사진]

 

  마을 안에 있는 곰파(사원)를 구경하였다. 곰파 관리인의 딸인 9살짜리 소녀가 열쇠를 가져와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티벳불교의 곰파인데 정면 중앙에 불상이 있고 그 옆에 보살상과 벽화가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찰의 내부와 비슷하였는데 내부에 타르초(Tarchog, 경문 등이 쓰여 있는 깃발)가 많이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찰과는 달랐다. 곰파를 구경 한 후에 툴로사브루 마을을 구경하였다.

  청주에서 오신 지용희 선생님과 마을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집 앞에서 대나무로 발을 엮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하니 이 분도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이고 나마스테인사를 하고나서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가 안내를 받아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산골 마을에 사는 중년 남자로서는 영어를 매우 잘하였다. 집에는 부인과 젊은 여자가 멍석 위에서 키질을 하며 깨알보다 작은 조를 바람에 걸러내고 있었다. 옆에는 작은 쟁반에다가 쌀튀김을 넣어두고 간식으로 먹고 있었는데, 우리에게도 먹으라고 권하였다. 쌀튀김을 직접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카트만두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잠시 후에 아저씨가 홍차를 대접해주었다. 홍차를 다 마실 때까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 보았다. 내가 부인 앞에 있는 사람이 딸이냐고 물으니 큰며느리라고 한다. 큰아들은 고사인쿤드의 롯지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카트만두에 있는데 총각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22녀가 있는데, 두 딸은 모두 결혼을 하여 한 명은 툴로샤브루에, 한 명은 샤브루베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시골이지만 편안하고 행복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고 있는 네팔인의 모습이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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