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하면 16년 젊어진다?

운동중독도 ‘병’인 만큼 스스로 경계해야

하이서울마라톤..8400명 가을과 함께 달렸다 제7회 하이서울마라톤(주최 서울시, 특별후원 동아일보사)이 11일 청계천과 한강변 일대에서 열렸다. 참가자 8400여 명은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서울숲에 이르는 풀코스와 챌린지코스(34km), 하프코스, 10km를 달리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청계천변을 가득 메운 채 달리고 있다. 출처:동아일보 자료사진

기원전 490년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약 30㎞ 떨어진 마라톤 평원. 페르시아
군과 그리스군은 이곳에서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만약 그리스 군이 패해 정해진 시간까지
승전보가 없으면 아테네시를 불태운다는 고육지책을 마련해 둔 상태였다. 페르시아 군의
약탈을 막기 위해서였다.

예상과 달리 1만의 그리스 군이 5만의 페르시아 군을 물리쳤지만 정해진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전령 페이디피데스는 최대한 빨리 아테네 시에 승전보를 전해야 했다. 그는 수십
㎞나 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승리했다”는 말을 전한 페이디피데스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마라톤은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1896년부터 첫 근대 올림픽의 육상 마지
막 종목으로 채택됐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을 즐긴다. 매년 가을이면 각 종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동호회 수만 어림잡아 1400여 개가 넘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달리기의
계절’이라 여겨질 정도다.

달리기의 계절을 맞아 마라톤을 톺아봤다. 마라톤은 노화를 늦추고 삶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마라톤 중독도 병인만큼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늙음은 더디게 사망률은 낮게

지난해 8월 미국 스탠포드대 의대 연구팀은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이
를 먹는 속도가 더디다는 연구결과를 미국의학전문지 ‘내과학 기록’에 발표했다. 이는 ‘달리기를
격하게 하면 빨리 늙는다’는 기존 통설과 반대되는 연구결과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달리기를 하면 몸 안에서 활성산소가 만들어져 노화를 촉진한다고 여겼다.
활성산소는 세포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산화반응과정에서 생겨난다. 운동으로 산소소비량이 약
10~15배 정도 증가할 경우 들이마신 산소의 95% 이상은 세포대사과정에 사용되지만 나머지
2~3% 산소는 반응성이 큰 상태로 남기 때문이다. 이 활성산소는 DNA, 단백질 등에 붙어 상당
한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연구팀이 1984년부터 달리기를 즐기는 50대 이상 538명을 분석한 결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걷고, 물체를 집는 것 같은 일상적인 생활능력을 16년 이상 더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인 나이가 같더라도 신체적인 능력이 16년 젊다는 것이다.

사망률도 현저히 낮았다. 달리기를 즐기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34%가 사망했지만 이들 가운데
목숨을 잃은 사람은 15%에 그쳤다. 20년 전 주당 평균 240분을 뛰었던 이들은 지금도 1주일에
평균 76분을 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에 참여한 제임스 프라이 연구원은 “달리기를 즐기
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며 “달리기의 효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고 말했다.

건강한 몸은 정신의 전당

마라톤이 단순히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을 넘어 삶의 질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말마따나 ‘건강한 몸은 정신의 전당이고 병든 몸은 감옥’인 셈이다.

동아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연구팀은 마라톤 동호회 회원 52명(남성 37명, 여성 15명)과 연령
과 체격이 유사한 일반인 52명을 대상으로 심리상태 검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전반적인
삶의 질이 동호인들에게서 높게 나타났고 특히 정서적 반응과 사회적 고립감 항목에서 큰 차이를 보였
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2006년 12월 ‘대한스포츠학회지’에 실렸다.

연구진에 따르면 마라톤 동호인의 웰빙지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81.3점인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보다 10점 낮은 71.7점을 기록했다. 노팅검 건강지수에서 마라톤 동호인은 평균적
으로 사회적 고립감 6.6점, 정서적 반응 3.4점을 받았다. 일반 대조군은 사회적 고립감 14.4점,
정서적 반응 11.9점을 기록해 마라톤 동호인보다 2~3배 높은 점수를 받았다. 노팅검 건강지수
는 삶의 질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0점에 가까울수록 삶의 질이 높다고 본다.

연구진은 “마라톤 동호회를 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 마라톤은 다른 운동보다 성
취도가 높기 때문에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라톤 중독도 ‘병’

그러나 과하면 아니 한 것만 못하다. 경북대 체육교육과 임수원 교수 연구팀은 2005년 ‘한국체
육학회지’에 마라톤 참가자의 운동중독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건강이나 체중조절 등을 이유로 시작한 마라톤이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단계를 지
나쳐 자기통제 불능 단계에 이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 불리는 상태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봤다.

러너스 하이는 마라톤과 같은 운동을 30분 이상 계속할 때 느끼는 행복감을 말한다. 이 용어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자 아놀드 맨델 교수가 1979년에 발표한 ‘세컨드 윈드’라는 논문에
처음 소개됐다. 러너스 하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과학자들은 아편,
헤로인과 비슷한 구조를 갖는 오피오이드 펩티드가 많이 분비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
로 보고 있다.

임 교수는 “운동이 곧 건강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운동중독은 다른 중독현상에 비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운동중독이 일시적인 행복감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결과는 역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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