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입자’ 있을까? 한국인이 찾을까?
2008년 06월 20일 | 글 | 김상연, 이현경, 제네바=목정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ㆍdream@donga.com, uneasy75@donga.com, loveeach@donga.com |
 
빅뱅 순간 재현할 사상최대 실험장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가동 눈앞에


신이 숨겨 놓은 마지막 입자를 찾기 위한 금세기 최대의 물리 쇼가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서 곧 시작된다. 한국인 과학자들도 세계의 천재들과 머리를 맞대고 신의 입자 찾기에 나선다. 과연 신의 입자를 찾는 그날, 그곳에서 “심봤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올까.


우주에서 가장 추운 곳


제네바 근교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지대 땅속 100m 지하에는 지름 8km, 둘레 27km가 넘는 원형 터널이 설치돼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14년 만에 완공을 눈앞에 둔 거대강입자가속기(LHC)다. 가속기를 짓는 데 쓴 돈만 수조 원, 상주하는 과학자만 2500명에 이른다. 가속기는 이르면 7월 초에 가동될 예정이지만 다소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LHC가 가동되면 거대한 터널 안에서 화려한 입자 쇼가 펼쳐진다. 원자핵을 만드는 입자인 양성자의 충돌 실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양성자는 빛의 99.99%의 속도로 터널을 1만 바퀴 이상 돌다가 반대 방향으로 달리던 양성자와 충돌한다. 14조 전자볼트의 거대한 에너지가 발생하며 우주의 빅뱅 순간을 재현한다. 이때 신의 입자가 탄생한다.

양성자의 궤도를 유도하는 초전도 자석은 영하 271.1도로 유지된다. 우주 공간(영하 271도)보다 온도가 낮아 자석들이 있는 곳은 우주에서 가장 추운 셈이다.

큰그림 보러가기



“힉스 입자를 찾아라”


CERN의 40동 연구동의 RH32호 연구실에는 태극무늬 부채가 걸려 있다. 한국인의 연구실인 이곳의 터줏대감이 7년째 CERN에서 상주하고 있는 노상률 박사다.

그는 물질에 질량을 생기게 하는 힉스 입자를 찾고 있다. 가속기 터널 안에서 양성자 2개가 충돌할 때 1초에 약 1억 개의 입자가 생긴다. 여기서 힉스를 찾아내려면 나머지 입자를 없애야 한다. 노 박사는 “나머지 입자를 30개까지 줄였다”며 “마지막 하나까지 없애 오차를 줄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노 박사 외에도 성균관대 물리학과의 최영일(한국CMS그룹 단장) 교수와 최수용 교수 등이 이곳을 자주 방문해 힉스 입자 찾기에 나설 예정이다.

양성자는 1초에 6억 번이나 충돌하지만 힉스 입자는 하루에 하나 나올까 말까다. 신의 입자를 보려면 좋은 눈, 입자 검출기가 필요하다. 현재 40여 개국에서 입자 검출기를 제작했다. 박성근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도 ‘뮤온입자 검출기’를 직접 만들어 가속기에 설치했다. 과연 한국인이 만든 검출기에서 힉스 입자가 먼저 발견될지 주목된다.

두 개의 양성자가 충돌할 때 아주 작은 미니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박성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박사는 “미니 블랙홀은 3차원을 넘어 6개 또는 7개의 다른 차원을 보여 줄 수 있다”며 “양성자가 충돌할 때 내놓는 입자들의 모습을 통해 미니 블랙홀과 여분의 차원을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귀년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도 새로운 차원에서 중력을 일으키는 입자인 ‘그래비톤’ 등을 찾아 나선다.

가속기에서 초대칭 입자를 탐색할 계획인 김동희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국내 입자물리학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LHC의 한국 과학자들이 수는 적지만 주제를 잘 잡고 팀워크를 발휘하면 다른 나라보다 앞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둘레만 27km에 달하는 거대강입자가속기의 내부. 양성자가 이동하는 터널 내부 모습(왼쪽)과 양성자 충돌 후 나올 신의 입자를 찾아내는 검출기. 사진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LHC를 넘어서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100달러 내기를 해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예언한 영국 에든버러대 피터 힉스 교수와 설전을 벌였다. 만일 힉스 입자가 LHC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더 큰 가속기를 짓거나 새로운 물리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LHC보다 더 큰 가속기를 만들 수 있을까. 최수용 교수는 “둘레가 200km를 넘는 슈퍼가속기를 구상한 과학자도 있지만 아이디어 수준”이라며 “지구 전체만 한 터널을 파서 가속기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야말로 공상과학의 단계”라고 밝혔다. KAIST 최기운 교수와 ‘신기루 초대칭 깨어짐’ 현상을 LHC에서 연구하고 있는 한스 닐레스 독일 본대 교수는 “LHC는 우리 세대가 볼 수 있는 최대한의 크기”라면서도 “우주 데이터나 양성자 붕괴 실험 등 다른 연구로 가속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우주물리와수학연구소 무라야마 히토시 소장은 “미국에선 작은 건물만 한 가속기로 LHC 정도의 성능을 내려는 연구도 하고 있다”며 “20, 30년 뒤에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