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툴루샤브르-신콤파-찰랑파티   

 

  트레킹의 피크를 향하여 우리는 또 걷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고산지대에서 비를 맞으면 체온 저하가 우려된다. 각자 준비한 우산과 우비를 쓰고 출발한다. 나는 비닐을 이용하여 즉석 우비를 만들어 입었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기 시작한다. 숨이 차다. 200-300m정도 올라가자 비는 진눈개비에서 눈으로 변했다. 사실 겨울은 여기에서 건기에 해당된다. 비교적 비나 눈을 만나기 어려운 기후 환경인데, 드물게 많은 눈이 내린다. 히말라야에서 눈을 맞으며 걸으니 색다르고 눈구름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경치도 장관이다. 수 백 년은 묵은 듯한 고목들도 장관이다. 포터들에게 물으니 덤(dum tree)나무라고 했다. 침엽수도 아닌 것이 활엽수도 아닌 것이 아열대의 고산 나무 같이 보였다. 오늘 점심은 찐 감자로 해결했다. 이곳의 감자는 알이 작다. 그러나 감자는 이곳에서 아주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굵은 설탕이나 으깬 고추에 찍어 먹으면 맛도 좋은 아주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3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이곳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추우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도 상 아열대 기후대에 속하여 대륙성 기후의 추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 혹독한 겨울 날씨와는 전혀 다르다. 단지 고도가 높아지면서 추워지지만 해가 나오는 낮은 그리 춥지 않다. 밤낮의 일교차가 아주 큰 편이다. 엄청난 원시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나무와 덤 나무가 혼합된 이곳은 어마어마한 원시림 지대이다. 교통이 아주 불편하여 이 거대한 목재를 운반할 길이 없다. 또한 주변에 연료도 비교적 풍부하고 사는 사람의 숫자도 적고, 이곳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공경심이 원시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것 같다. 14시경에 찰랑파티에 도착한 우리는 눈도 내리고 내일의 코샤인쿤드의 절정을 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네팔 당구도 즐기면서. 아주 재미있는 게임이다. 저녁에는 최광옥 선생님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우리의 요리사 덴지가 만든 즉석 케익과 촛불, 그리고 퉁바의 원초적 술 맛이 운치를 더한다. 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깊은 히말라야 고산에서 더없이 경건하고 아름다운 밤이 깊어간다.


1/18 찰랑파티 “코샤인쿤드를 허락하지 않은 히말라야의 신”

 

히말라야의 대 파노라마를 보면서 트레킹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던 우리의 계획을 히말라야의 신은 허락하지 않았다. 술도 마음껏 마시고 희희낙락한 내가 죄인 이었나보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새벽에 잠을 깨어보니 밤새 눈이 많이 쌓였다. 계속 내리는 눈 때문에 우리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1그룹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라우레비나와역을 지나 이번 트레킹의 최대 하이라이트이고 힌두교의 발상지인 코샤인쿤드까지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고(코샤인쿤드가 4400m의 고지라서 그곳에서 숙박하는 것은 무리라고 김영식 대장은 말함) 2그룹은 주변 경치가 가장 좋은 라우레비나와역까지만 가서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감상하기로 했다. 평소와는 달리 아침 6시 30분 여명에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 시점부터 눈은 폭설로 변해가고 있었다. 1진은 박연수 부대장과 트레킹 가이드 파샹이 지휘하고, 2진은 김영식 대장이 지휘하기로 했다. 눈보라를 무릅쓰고 출발했다. 약간 어두운 상태였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린다. 내 생애에 이렇게 눈보라가 심한 것은 처음이다. 1시간 반 쯤 갔을 때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어찌 히말라야의 폭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연수 부대장, 파샹, 최창원, 최광옥, 임성주, 김하돈, 그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대원 전원은 롯지로 되돌아가고 7명은 아루레비아역까지 간 다음에 상황을 보아 판단하기로 했다. 눈보라는 점점 더 거세어졌다. 이미 발목을 훨씬 넘고 있었다. 등산화도 약간 젖고 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2시간 정도를 더 간 다음에야 우리는 라우레비아역에 도착하였다. 16세의 소녀와 그 동생이 롯지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따끈한 차를 건넸다. 해맑은 웃음이었다. 부모님은 둔체에 계신다고 했다. 4000m의 고지에서 폭설을 피해 만난 롯지의 난로불은 우리를 감동시켰다. 어찌 인간이 대자연에 감히 도전한다고 말하겠는가? 눈보라를 막는 작은 롯지와 장작불, 그리고 어린 소녀의 정성에 우리는 한파를 녹일 수 있었고, 이내 그들의 작고 순수한 마음에 추위에 얼었던 내 마음도 모두 녹아내리고 있었다. 1시간 정도 몸을 녹인 우리는 철수를 결정했다. 더 기다린다는 것이 무모할 수 있다. 이미 눈보라에 길은 없어졌다. 가이드 파샹이 길을 내고 우리는 뒤를 따르며 13시가 조금 넘어서 롯지로 되돌아 왔다. 기다리던 김 대장은 너무 걱정을 한 것 같다. 히말라야 베테랑인 김 대장은 이 눈발 속에서 강행을 선택한 우리를 나무라고 있었다. 무사히 돌아온 자체가 좋았던 모양이나 내심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김 대장의 말로는 상황이 순식간에 돌변하는 히말라야에서 눈이 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점심으로 먹은 김치 볶음밥이 정말로 꿀맛이었다. 오후에도 눈이 그치지 않아 일부는 잠을 자고 일부는 네팔 당구를 하면서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안희상 선배님과 럭시를 한 잔 하고 주변의 치즈 공장을 보러 갔다. 직원이 여러 명 있었다. 예의 그 순수한 얼굴로 우리를 기꺼이 반겨주었다. 이곳은 야크 젖으로만 옛날 방식대로 만든다고 했다. 치즈를 약간 사서 먹어보았다. 냄새가 약간 고약하나 고소한 맛이었다. 그들 역시 눈이 오는 오늘은 장작불 난로 가에서 쉬는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순박한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고 장작불은 너무도 따스했다. 치즈 공장 사장은 아주 정확한 사람이었다. 속이지도 더 주지도 않고 저울이 말하는 대로 친절하면서도 결코 과장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만 적용하는 산속의 멋쟁이였다.

  오후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 지금 눈은 그쳤지만 여기 랑탕히말의 롯지 주변은 온통 눈 세상이다. 이제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 히말라야의 신이 멋진 파노라마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내게 인생에서 가장 멋진 눈 세상을 보여주었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건방져 있을 뿐이다. 이제 내일은 둔체로 철수하고 모래는 카투만두로 가야 한다. 어렵지만 아쉽다. 내일 철수 길도 만만치 않을 것만 같다. 박원래씨가 저녁을 먹으라고 한다. 저녁을 먹고, 퉁바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일 날씨가 좋기만 기다릴 뿐이다. 어찌 하늘의 일을 사람이 시시비비 할 것인가. 그런데 2층에서 이광승씨가 몹시 아프다고 손가락 사혈을 하라고 연락이 왔다. 고소 증세가 아주 심한 것 같았다. 달리 방업도 없고 손가락을 땄다. 손에 열이 아주 심하게 났다. 손가락을 땄는데 가는 핏줄기가 솟구쳤다. 이날 밤이 이광승씨에게는 사상 최대의 고통스러운 밤이었던 것 같다. 밤새 토하고 토했지만 무엇이 나오겠는가? 옆의 주덕 동창들이 간호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자고 나니 그 다음날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다행이었다. 아마도 광승씨는 히말라야의 고통스러운 그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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