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과학의 제도화와 뉴턴주의의 발전

 

제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유럽에서 뉴턴주의가 전파되는 데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했던 과학아카데미 운동 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18세기를 통해서 프랑스에서는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수가 증가하면서 활발한 과학 활동을 전개했다. 과학아카데미의 학술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파리뿐만이 아니라 지방에도 아카데미가 생겨나 1760년에는 그 수가 무려 60여개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 지방 아카데미는 중앙의 파리 과학아카데미의 지방 분회 형식으로 밀접한 연결을 맺으면서 활동했다.

프랑스 이외의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18세기를 통해 과학아카데미가 계속 만들어져 뉴턴 과학의 확산을 도왔다. 프로이센에서는 베를린 아카데미 가 설립되었고, 오일러 의 노력에 의해서 러시아에는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 가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여러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도 과학아카데미가 만들어졌는데, 파리의 과학아카데미는 이들 아카데미의 학술 활동에서 구심적인 역할을 했다.


쿨롱

과학아카데미 이외에도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지원하는 많은 과학 관련 기관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천문대 , 경도국 (Bureau des Longitudes), 성인교육 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 (Collège de France) 등은 모두 정부의 지원 아래 과학자들이 아주 활발한 연구 활동을 전개했던 기관들이었다. 특히 프랑스에는 그랑제콜 (Les Grandes Écoles)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속속 설립되면서 아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연구가 진행되었다. 포병 및 공병학교(École de l'Artillerie et du Génie), 광산학교 (École des Mines), 토목학교 (École des Ponts et Chaussées) 등은 모두 프랑스가 자랑하던 그랑제콜의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토목학교는 토목공학의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당시 유명한 과학자들 가운데에는 토목공학자가 많았는데, 전기 및 자기 연구로 유명한 쿨롱 (Charles-Augustin de Coulomb, 1736-1806)도 토목공학자였다.

고전역학은 최초의 전문적인 공학 교육기관이었던 에콜 폴리테크니크 (École Polytechnique)의 설립과 함께 더욱 세련되게 발전하면서 새로운 변신을 꾀하게 된다. 18세기말의 프랑스 대혁명 기간 동안 교육제도 개혁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러 전문 교육 기관이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1794년 전문 기술교육을 목적으로 창립된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뉴턴주의 과학과 수리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개교 당시 400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는 당대 일류의 과학자들이 교수진이 되어 학생들에게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라플라스 (Pierre-Simon Laplace, 1749-1827), 화법기하학을 창시한 가스파르 몽주 (Gaspard Monge, 1746-1818), 라그랑주 , 베르톨레 (Comte Claude-Louis Berthollet, 1748-1822), 결정학자 아위 (René Just Haüy, 1743-1822) 등은 모두 당시 이 새롭게 창립된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수들이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수많은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을 배출하면서 그 동안 수리과학과는 다른 전통 속에서 성장해온 경험과학 분야를 수학화시키고 뉴턴 과학을 고도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푸아송 (Siméon-Denis Poisson, 1781-1840), (Jean-Baptiste Biot, 1774-1862), 푸리에 (Joseph Fourier, 1768-1830) 뒬롱 (Pierre-Louis Dulong, 1785-1838), 아라고 (François Arago, 1786-1853), 프레넬 (Augustin-Jean Fresnel, 1788-1827), 카르노 (Sadi Carnot, 1796-1832), 게이뤼삭 (Joseph-Louis Gay-Lussac, 1778-1850) 등 19세기 초 프랑스 과학계를 이끌었던 대부분의 우수한 과학자들이 바로 이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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