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환경이 과학자 만든다”
책을 많이 읽는 가정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 때 뛰어난 과학자를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과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교육학과 오헌석 교수팀은 국내 대표 과학자 31명을 분석해 최근 발표한 ‘과학 인재의 전문성 개발 과정에서의 영향 요인에 관한 연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1987년에서 2007년까지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한국과학상, 젊은 과학자상 등을 수상했거나 각종 기관에서 업적을 인정받은 과학자 31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들의 공통된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대부분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자기 주도적 학습태도’와 ‘다양한 분야에 관한 관심과 강점’을 지녔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책을 많이 읽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거나 어릴 적에 과학자와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진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도 전체의 70%를 넘었다.

또 조사 대상 과학자 90%가 대학시절에 자신의 미래 계획을 혼자 세우거나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에 신경을 쏟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석ㆍ박사 과정과 박사후과정에서 특정 과제에 한껏 몰입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역시 90%에 이르렀다.

창의연구단장 경험서 입증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과학자들의 성장 과정은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집단인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장들에게서도 확인된다.

분석대상인 과학자 31명 가운데 창의연구단장은 6명으로 △유룡 기능성나노물질연구단장(KAIST 화학과 교수) △김빛내리 마이크로RNA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효철 시간분해회절연구단장(KAIST 화학과 교수) △조윤제 구조생물학연구단장(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김규원 혈관·신경계 통합조절연구단장(서울대 약대 교수) △김은준 시냅스생성연구단장(KAIST 생명과학과 교수)이 포함됐다.

이들에게선 자기 주도적 학습태도, 어린 시절의 지적 자극, 연구 과제의 조기 선정과 몰입 등의 특성이 골고루 나타난다. 이달 초 ‘국가과학자’에 선정된 유룡 단장은 고등학교 시절 흐릿한 등잔불 아래에서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경험이 있다. 자신이 정한 공부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유 단장의 활동 무대인 ‘다공성 물질’은 그가 학자로서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 시작한 90년대 초반 이전부터 집중하던 분야다. 당시에는 이 같은 연구가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그는 다른 과제에 한 눈을 판 적이 없다.

과학계의 신인상 격인 ‘젊은 과학자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인 김빛내리 단장도 어린 시절이 범상치 않았다. 여고 때 읽은 고대 과학사 책이 김 단장을 과학자의 길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간접 경험이긴 했지만 아르키메데스 같은 과학자들의 활동상이 김 단장에게 남긴 인상이 컸던 것이다.

마이크로RNA라는 그의 연구 분야도 이미 박사 시절에 모색한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RNA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박사후과정도 관련 연구를 할 수 있는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보냈다. 이 같은 준비과정에 있었기에 지난 2001년부터 쉴 새 없이 연구성과를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김빛내리 교수는 “생명과학 분야로 진로를 정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며 “현재 수행 중인 연구의 가능성에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이정호 기자 sunrise@donga.com (2007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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