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 - 빔탕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고소적응일-빙하호수 방문)

3,680m

3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 티베트 국경 방문

4,2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20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라르키아 라를 넘어 빔탕으로

2007. 10. 26(금)


 

3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감 탓인지, 아니면 황홀한 달밤을 본 탓인지 잠을 푹 자지 못했다. 텐트 안은 0도로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텐트 안이 영하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물통의 물에 살얼음이 어는 경우는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침낭속에서 모닝콜을 기다렸다. 짐은 대부분 어제밤 미리 싸두었다. 잠시 후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지더니 빠상이 어김없이 "띨레리~"하며 차를 가지고 왔다. 오늘 아침 세숫물은 생략이다.

뜨거운 홍차로 속을 덥힌 후 짐을 챙겨 식당텐트로 갔다. 밖으로 나오니 아주 춥다. 영하 10도는 될 것 같다.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다행히 모두 어제보다 컨디션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식욕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인지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있다. 오늘 긴 일정을 생각한다면 잘 먹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0-brynje_arctic.jpg새벽 운행이 추울 것에 대비해 어제 잘 때 입은 브린제 악틱(Brtnje Arctic) 고소내의는 그대로 입었다. 어제까지는 잘 때만 입었다. '고소내의계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내의는 원래 남극이나 북극 등 세계 오지탐험을 위해 노르웨이의 브린제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제품 설명에 의하면 안감은 브린제 고유의 메라클론 망사조직으로 되어 있어 내부의 땀을 신속하게 배출하고 겉감은 100% 메리노울로 직조하여 외부 한기를 차단할 뿐 아니라 내부 발산열을 가두어 보온력을 높혀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옷에도 결점이 있으니 그것은 부피와 무게가 다른 고소내의에 비해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원정대처럼 고산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몰라도 15일 트레킹 중 이삼일 정도만 고산에 머무는 코스에는 굳이 무게와 부피에 대한 부담이 큰 이런 장비까지 가져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4000m 이상에서 제법 오래 머무는 쿰부 서키트 트레킹 때는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옷을 2년 전부터 토굴에서 입고 있다. 겨울이 되면 내가 거주하는 방안은 기온이 10도 내외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 난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했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난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땅이 거칠어 다니기 불편하다고 모든 땅에 부드러운 가죽을 깔 수 없다. 너의 발만 가죽으로 싸면 온 세상을 가죽으로 싼 것과 마찬가지다."

이말은 원래 현상계는 자기의 마음 상태에 따라 보이므로 모순되어 보이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는 비유의 말씀이다. 그 말에 힌트를 얻어 나도 넓은 공간의 난방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난방이 필요한 내 몸을 직접 따뜻하게 하는 옷에 신경쓰기로 했다. 보온 기능이 뛰어난  등산복은 그 목적에 제격이다.

토굴에서 브린제 내의와 폴라텍 파워스트레치 상하의는 기본이다. 등산양말을 신고 상의는 우모복을 하나 더 걸친다. 목에는 네팔의 특산물 파슈미나 목도리를 두른다. 그리고 빵모자로 마무리 하니 천하가 태평하다.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은 추운 산골살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무리 방이 춥다해도 히말라야  4천 고지의 페리체 롯지보다 따뜻하니 견딜만하다.  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샤워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매일 짐을 싸지 않아도 되고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침낭에 들어가지 않는 잠자리는 편안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집에 머무는 것이 제일 편하다. 돈도 들지 않는다. 짐을 챙기느라 몇 날 며칠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공항까지 끙끙대며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아도 된다. 고소도 없고 두통이나 식욕부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춥고 힘든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 할까? 사람마다 각자 이유가 있을 것이나 인간사를 관통하는 다음의 한 마디 말은 트레킹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

코 아래 얼굴 전체를 가려주는 안면마스크(face mask)와 머리 전체를 뒤집어 쓰는 바라클라바(balaclava)도 이번에 준비했다. 오늘 새벽 단 몇 시간만 필요한 장비지만 없으면 고생이다. 2000년 안나푸르나의 토롱 라를 넘을 때와 2002년 쿰부의 촐라패스를 넘을 때 추워서 혼이 난 경험을 한 이후로 트레킹할 때마다 추위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바바클라바는 써보니 너무 답답해 안면마스크를 쓰고 고소모자를 눌러썼다.

몸은 추위를 느끼면 자동적으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심장에서 먼 손끝이나 발끝의 말초혈관으로 가는 혈액을 줄인다. 그 결과 그곳은 체온이 떨어진다. 만일 추운 상태가 계속되면 몸은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말초혈관으로 가는 혈액공급을 줄이다가 마침내 단시킨다. 혈액이 중단되면 세포가 괴사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동상이다. 그러니까 동상은 문자그대로 '수뇌부'가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시키기 위한 최선의 조치로 생기는 현상이다. 손발이야 잘라도 살 수 있지만 심장이 멎으면 바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텐트에서 나오자마자 세르파들과 포터들이 텐트를 철수시키기 시작한다. 어둡고 추운 새벽에 철수작업을 하느라 고생이 많다. 장갑도 없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정말 그들은 아무리 임금을 받고 고용된 사람들이지만 레이놀즈의 말대로 '인간트럭'이 아닌 '전문노동자'로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짐을 지고 고산을 오르는 일만큼은 지구상에서 네팔사람을 따라 갈  종족이 없다.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를 터전으로 살고 있으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몇 달 전 우연히 디스커 버리채널에서 방영한 <에베레스트, 한계를 넘어서(Everest, Beyond the limit)>를 보았다. 2006년 봄 뉴질랜드인 러셀 브라이스가 지휘하는 상업등반대의 에베레스트 등정 상황을 기록한 내용이다. 6부작이라는데 다 보지는 못하고 점심시간에 어쩌다 나오면 보았다. 내용은 등반 도중 악천후로 동상을 입어 두 다리를 잃었지만 의족을 달고 나선 사람, 암수술을 받고도 참가한 사람, 오토바이 사고로 온 몸의 뼈를 쇠로 이어붙이 사람, 무산소 등정을 시도하는 천식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승리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편에서는 등반대원 중 한 명이, 하산 때 죽어가는 등반가를 발견하지만 구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그 사람을 그대로 두고 지나가는 등반가들이 비정하다는 여론이 있지만 그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8000m  고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오르는 길 가에는 그렇게 죽은 사람의 시신이 많이 있다고 한다, 7년 전쯤 <산>지에서 그런 시신이 방치되어 있는 비인간적인 모습의 사진을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프로에서 내가 받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의지의 군상들이 벌이는 인간한계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다. 캠프 2인지 3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 캠프를 차리고 대장이 세르파 6명에서 2km의 로프를 주고 정상까지 로프를 설치하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 지난 후 무전이 날아온다. "대장님, 모두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다. 정상에 한 번 올라가보겠다고 아래에서 고소 등으로 갖은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세르파들은 이웃집 마실 가듯이 가볍게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무거운 로프와 산소통을 매고. 원정대원들이 할 일은 그들이 깔아 둔 로프를 잡고 오르는 일이다(물론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히말라야 세르파들의 강인함과 위대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진정한 등반은 알파인 스타일의 단독 등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히말라야 14좌를 처음으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메스너는 1975년 가셔브룸 1봉을 등정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루트로 등정을 한다. 게다가 산소용구, 고소포터, 중간캠프, 고정로프를 쓰지 않는 순수한 알파인 스타일로 올라간다. 그는 알프스의 4000m 급 산을 오르는 방식으로 8000m 급 고봉을 사흘 만에 올랐다. 이런 등반방식은 전통적인 방법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죽음을 무릅쓴 도전이기에 메스너의 성공이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로부터 8000m 고봉에 대한 도전 방식이 바뀌게 된다. 메스너는 8000m 급 고봉 14개를 처음으로 모두 오른 사람이다. 게다가 그것도 쉽게 오른 것이 아니라 알파인 방식으로 올랐고, 또 한 시즌에 8000m 이상의 고봉 3개를 등정하는 해트트릭도 한 사람으로 20세기 최고의 등반가라고 한다. (향기로운 책글방 1163호,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마운틴북스)>에서 인용 )

등반의 세계에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가 있다. 등정주의는 루트에 무관하게 정상 등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등로주의란 보다 어렵고 험난한 루트를 택해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이다. 세계적인 등반가들은 당연히 등로주의를 추구해왔고, 한국 산악인들 역시 등정주의에서 점차 등로주의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AppaSherpa.jpg그런 메스너도 네팔 세르파들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 산악인과 비교할 때 출중할 뿐이다. 2002년 쿰부트레킹 때 남체바자르 서쪽 타미(Thame)의 서미트 롯지에서 머물 때 롯지 주인인 압빠 세르파(Appa Sherpa, 1962~ )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롯지 식당 벽에는 얼마 전 에베레스트를 12번을 올랐다고 해서 기네스북에서 수여한 세계기록증이 식당에 걸려 있었다.

어릴 때부터 원정대와 트레킹 팀의 포터 일을 해온 그는 1990년 뉴질랜드 팀의 세르파로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2007년 5월 17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따져보니 17년 동안 매 년 한 번씩 오른 셈이다. 만일 그가 원정대처럼 스폰서의 후원을 받아 마음먹고 오른다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가장 빠른 기간 내에 마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는 항상 알파인스타일로 오른다. 왜냐하면 그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원정대가 정상에 잘 오르도록 로프를 깔고 대원들을 안내하기 위해 고용한 세르파이기 때문이다. 네팔에는 그와 같은 세르파들이 부지기수다. 압빠 세르파는 2006년 미국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가족(아내와 네 자녀)이 모두 유타주의 드래퍼(Draper)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현지 등산점에서 일하고 강의도 하며 필요하면 에베레스트를 안내하는 세르파 일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신기록은 계속 진행중이다. 말을 하다보니 잘 알지 못하는 등반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세르파와 포터가 없으면 히말라야 등반도 없고 트레킹도 없다. 그러니 항상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자."

*   *   *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4시에 출발했다. 오늘 구간이 마나슬루 트레킹에서 제일 힘든 구간이다. 그리고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몇 안되는 최고의 풍광을 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다람살라에서 라르키아 라까지 763m 올라간 후 그곳에서 빔탕까지 1493m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트레킹이든 고개를 넘는 구간은 다 비슷한 상황이니 특별할 것은 없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야크와 말이 넘을 수 없는 촐라패스보다는 쉬울 것이다. 촐라패스와 고쿄 사이에는 초오유에서 내려오는 고줌파 빙하를 횡단하여 건너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에서 토롱페디 하이캠프(4800m)에서 토롱 라까지 616m 올라갔다가 묵티나트까지 1616m 내려간다. 쿰부 트레킹에서 촐라패스를 넘자면 닥락에서 고개까지 720m 올랐다가 종라까지 570m 내려간다. 랑탕에서 헬람부로 넘어가는 고개인 로우레비나 패스는 5000m 이하라 조금 수월한 편이지만 그곳도 4321m의 고사인꾼드에서 383m 오른 후 고개 넘어 로우레비나 페디까지 1060m를 내려가는 일정이다.

고개를 안 넘으면 모를까(안나푸르나 라운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넘으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고개를 넘지 않는 4000m 이하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아무래도 설산의 멋진 풍광을 멀리서 보기 때문에 웅장한 느낌이 떨어진다. 예외가 있다면 ABC 트레킹처럼 장엄한 안나푸르나 남벽의 일출을 코앞에서 보는 경우인데, 그 경우 역시 막다른 골목으로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는 하산길은 큰 재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길은 바로 오르막이다. 어두운 새벽에 반딧불 같은 헤드렌턴 불빛이 날아다니고 있다. 타시가 앞장서고 내가 제일 뒤에서 불을 밝혔다. 이번에 오면서 강력한 헤드랜턴을 하나 마련했다. 지금까지 쓰던 프랑스의 페츨(petzl) 헤드랜턴은 작년 무스탕 벽화 감상 때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좀 더 강력한 후레시가 필요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뒤진 끝에 독일제 헤드랜턴 루시도를 발견했다.

lucido.jpg이 헤드랜턴은 정말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자동차의 하이빔처럼 120m 전방을 강력하게 비추는 서치라이트 기능은 압권이다. 트레킹 첫날 밤중 아루갓바자르를 가는 구불구불한 찻길에서 나는 이 랜턴을 든 손을 창문밖으로 내밀어 길을 비춰주었다. 차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어두운 밤길에서도 불도 없이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가는 포터들을 뒤에서 비춰주었다.

평소에는 2단 정도면 족하다. 그러나 오늘 같은 달이 진 후의 어두운 새벽에는 뒤에서 서치라이트로 비춰주면 앞에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내가 살 때인 2006년 8월에는 74,000원 했는데 최근 새 모델이 나오면서 값이 많이 올라 108,000원이나 한다. 그래도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사 둘만하다).

트레커들은 각자 헤드랜턴이 있으니 알아서 잘 가지만 얼마 후 따라 온 포터들은 어두운 길을 불도 없이 추월해 간다. 포터들에게도 오늘 새벽은 헤드랜턴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별로 가져오지도 않고 여행사에서도 지급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네팔의 현실이다. 한참 비춰주며 따라갔다. 속도가 빠른 포터들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dharamsala-larkyala.jpg두꺼운 고소장갑을 껴도 손이 시럽다. 안면마스크가 없었다면 얼굴이 고생했을 것이다. 모레인 언덕길을 오르는 시작부터 모두들 힘들어 한다. 라르키아 라까지 가는 길 전반부는 라르키아 피크에서 내려오는 빙하 모레인지대를 따라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오늘부터 보명화 보살님의 배낭은 타시가 맡고 무진행 보살님의 배낭은 밍마가 맡았다. 이 두 분의 컨디션이 제일 좋지 않다. 고소와 식욕부진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뒤에서 보니 계속 발걸음이 늦어진다. '쉬면서 오르기' 주법을 따라하도록 내가 앞장을 섰는데 얼마나 잘 따라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출발한지 1시간 지나자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왼편으로 빙하호수가 보였다. 타시가 돌맹이를 던지니 호수 위에서 팅겨 나간다. 꽁꽁 얼어 있다. 6시 40분, 일출이 시작되어 해가 서쪽 산 꼭대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이미 만년설 지대로 들어와 주변에 눈이 쌓여 있다.  오르막이라 30분 이상 계속 운행하기 어려워 틈나는 대로 쉬면서 운행했다. 제법 많이 쌓인 눈길로 접어들었지만 얼어 있고 러셀이 잘 되어 있어 체력이 문제지 운행하기에는 어렵지는 않다. 햇볕 속으로 들어오니 일단 추위는 가셨다.

오전 7시, 돌집이 있는 대피소에 도착했다. 키친보이 푸르바가 점심을 가지고 동행하고 있다. 배는 고프지 않고 오직 목이 말라 보온병에 담아 온 레몬 티 한 잔씩 마셨다. 5000m 가까운 고도의 눈길에서 3시간 운행을 한 탓에 모두들 지쳐 양지녁에 돌 위에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다. 아직 정신이 말짱한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나도 두통이 조금 있지만 참을 만하다. 앞으로 두 시간만 가면 고개가 나올 거라고 격려를 했다.

고소를 느끼는 사람은 다이아목스를 먹고 두통이 있는 사람은 두통약을 먹었다. 그곳에서부터 라르키아 라까지는 예상보다 40분 늘어난 2시간 40분 걸렸다. 2시간 40분이라고 하니 가벼운 운행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4000m 이하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5000m 고도에서 두 시간 이상 오르막을 오르는 일은 평지의 10시간처럼 느껴진다.

예전 기록을 보니 2000년 토롱페디 하이캠프에서 토롱 라까지 2시간 30분 걸렸다. 그 때도 무척 힘들었다. 2002년 쿰부의 촐라패스는 출발하여 고개까지 점심시간 포함하여 무려 7시간 15분 걸렸다. 제일 춥고 힘들었다. 2004년 랑탕 헬람부에서는  3641m의 로우레비나 페디에서  4700m의 로우레비나 패스까지 4시간 50분 걸려 올라갔는데 그 때는 중간 모레인 지대에서 간식을 먹고 오르는 등 그리 힘들었다는 기억은 없다(그래도 현장에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라르키아 라로 가는 길은 낮은 언덕을 계속해서 넘는 일이다. 이정표로 언덕에 세워 놓은 말뚝을 보고 저곳에 가면 고개가 보이려나 하는 기대를 갖는데 막상 올라가면 또 다른 말뚝이 멀리서 "나 잡아 봐라~" 하며 서 있다. 그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시야가 너무 탁 터진 것도 걷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운을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그만큼 풍광이 좋다. 끝없이 이어진 넓은 설원과 주변 설산의 풍경은 과연 밥(Bob)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주었다. 라르키아 라에 대한 그의 글은 이번 마나슬루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히말라야의 많은 고개를 넘었다. 그러나 라르키야 라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장엄한 고개 중 하나이다. 아마 가장 장엄할 것이다. 우리 너머로 고개는 빙하로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고 빙하 위로는 거칠 것 없는 수 천 미터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대부분 7000m미터 급(힘룽 히말 등)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도 있다. 안나푸르나는 앞으로 계속 보게 될 것이다. (Bob Rosenbaum, Bob's explores the Manaslu and Nar-Phu region, 2004)

눈표범의 발자국을 본 것은 뜻밖이었다. 눈표범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영광이 없겠지만 은밀하게 움직이는 눈표범을 직접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BBC 다큐멘터리 촬영팀은 위장막을 치고 몇 주씩 기다려서 겨우 찍었다. 우리에게 이런 행운이 온 것은 눈이 내린 덕분이다. 그런데 이 높은 곳까지 어슬렁거리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결론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이곳에도 산양 등이 서식한다는 말이다.

추위는 가셨다. 바람이 불지 않아 이제는 오히려 더워 고소모자를 넓은 챙의 운행모자로 바꾸어 썼다. 장갑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아윈드 스토퍼도 벗었다. 폴라텍 파워스트레치 차림만으로도 충분한 날씨다. 그리고 안면마스크도 벗으려다 설면에 반사되어 오는 복사열이 엄청 뜨거워 그대로 착용했다. TV에서 원정대들의 얼굴(특히 코)이 시커멓게 탄 것이 이 복사열에 의한 화상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뜨겁길래 저 정도일까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니 실감이 난다.

설원에서는 설맹의 위험도 크다. 설맹이란 에서 반사 햇빛 때문 각막이나 결막 일어 염증으로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선글라스를 껴도 눈이 부실 정도다. 도대체 눈에 반사되는 햇빛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서 선그라스를 슬쩍 내려보았다. 그랬더니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이 들어오는데 마치 예리한 칼이 눈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시가 선글라스가 없는 포터들을 위해 일찍 넘자고 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이런 넓고 긴 설원은 처음이다. 랑탕의 로우레비나 패스 넘어 고사인 꾼드 쪽으로 넘어갔을  때 잠시 눈밭을 걸었지만 이처럼 온 사방이 눈으로 둘러싸인 곳은 그리 길지 않다. 촐라 패스도 정상 부근에 있는 만년설을 지나면 그뿐이다. 토롱 라도 눈이 내려 끝없는 설원이 펼쳐진 사진을 보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전혀 내리지 않아 달표면을 걷는 듯 삭막했다.

눈이 있으면 더 힘들기는 해도 그림이 좋다. 그러나 눈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 11월 이곳을 지나간 쉴즈부부와 한달 후 지나간 칼스텐은 모래땅만 보았다.  2004년의 밥과 2005년 12월 안드레스는 눈밭을 지나갔다. 운이 좋으면 우리처럼 며칠 전에 눈이 내려 굳어 있는 상태에서 다른 팀이 먼저 러셀을 해 놓는다. 운이 보통이면 황량한 모레인 지대를 지난다. 운이 나쁘면 눈이 하루나 이틀 전 내려 새로 눈길을 만들며 가야 한다.

가장 운이 나쁠 경우는 눈이 내릴 때다. 이때는 출발 전 기상 상태를 보고 웬만하면 출발하지 말아야 한다. 히말라야의 눈이나 비는 며칠씩 계속 내리는 법이 드무니 하루나 이틀 기다리면 그친다. 눈이 계속 내린다면 눈이 그쳐도 당분간 길을 뚫기 어려우니 미련만 남겨두고 되돌아와야 한다. 목숨까지 담보하면서 고개를 넘을 필요는 없다. 마나슬루 여신의 뜻으로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다. 대자연 속에서는 항상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가 몸에 이롭다.

모두들 지쳐 비몸사몽의 상태다. "내가 짱군가 보다. 뭐하러 이 힘든 곳을 왔지? 절대로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힘이 드는 운행이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편의시설이 완비된 도시의 생활을 하다보면 입에 맞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의 고마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일상이 따분해지면 다시 히말라야의 설산을 꿈꾼다. 그때는 당시의 고생은 옛날 전설처럼 실감이 나지 않게 된다.

오전 9시 40분, 드디어 라르키아 라에 도착했다. 백산스님이 일착이고 내가 두 번째다. 수직으로 오르는 마지막 5m가 그렇게 힘들 수 없다. 돌아보니 가쁜 숨을 쉬며 오는 동포들이 힘들어 보인다. 10여 분 지나 차례로 도착했다. 중간에 오던 혜명화 보살은 꼴찌로 쳐지더니 마지막 오르막 아래에서 "스님, 저는 여기서 쉬면 안돼요?" 한다. "뭐, 거기서 쉬나, 여기서 쉬나 관계없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낭을 풀더니 그 위에 엎드린다. 지치긴 지쳤나 보다. 잠시 후 다시 말했다. "웬만하면 올라와서 쉬지?"

무진행 보살님은 오자마자 물부터 정신없이 마신다. 이삼일 음식을 잘 못먹어 에너지가 많이 부족하다. 입맛이 여전히 없는 것이 문제다. 원래 이곳에서 도시락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아무도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초코릿바도 사양한다. 이럴 때일수록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너무 지쳐 식욕이 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초콜릿바는 나와 스태프들만 먹었다. 나중에 고개를 내려 온 후 누군가 백산스님에게 어떻게 그 힘든 고개에 제일 먼저 도착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백산스님의 대답이 걸작이다.

"말 마세요. 얼마나 두통이 심한지 빨리 고개를 넘어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죽자사자 걸었습니다."

Manaslu_1133.jpg이곳에 걸려고 보드나트에서 산 타르초와 카타를 카고백에 넣는 바람에 허공만 쳐다보고 말았다. 어제 저녁 식당텐트에서 '카고백에 있는 타르초를 배낭에 옮겨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돌아서서 잊어버렸다. 산소가 부족한 고산이 뇌에 미친 영향이다(나중에 타르초와 카타는 토굴에 걸었다). 산 아래쪽으로  지붕이 미완성인 대피소용 돌집이 하나 있다.  안드레스는 "아마 이 건물은 삼도 사람들이 지었는데 이곳을 지나가던 어떤 상인들이 나무를 뜯어 화목으로 썼을지 모른다."라고 쓰고 있다.

갑자기 라르키아 피크 상단부에서 연기가 나더니 구름으로 변한다. 눈사태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처음에는 아주 약한 연기처럼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 내려오는 모습으로 변한다. 사실은 모두 눈이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눈사태를 보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운행중이었다 해도 길과 산 사이에 낮은 계곡이 완충지대로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그래도 눈 바람은 피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열흘 전 내린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오늘 오전 10시, 햇볕에 녹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쓸려 내려온 것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눈사태 위험이 있는 곳은 ABC와 다울라기리 트레킹인데 그 구간을 통과할 때는 반드시 햇볕에 눈이 녹기 전인 오전 일찍 지나가야 한다.

이번 트레킹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마모트에 산양에 눈표범 발자국에 눈사태까지. 마나슬루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티의 발자국까지 보았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2004년 이곳에서 밥은 예티의 발자국을 보았다고 한다. 사진이 없으니 증명할 수는 없으나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yeti_3.jpg예티라는 말은 티베트어 '예'(yeh-눈의 계곡)와 '테'(teh-사람)에서 왔다. 고산지대에 사는,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포착하기 어려운 동물에 대한 개념은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도 적용되어 왔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것을 예테(ye-teh), 마테(mah-teh) 혹은 메턴 캉미(mehton-kangmi)라고 부르는데 메턴 캉미는 '설인'으로 번역된다. 예티 발자국 사진은 1951년 에릭 쉽턴이 에베레스트에서 찍은 것이 가장 유명하다.

20여 분 쉰 후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15분 거리의 두 번째 고개로 갔다. 이 두 고개 사이는 거의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나누는 것은 편의상 붙인 것이고 실제로는 라르키아 라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이라고 해야 한다. 전망은 빔탕 방향인 동쪽이 좋다. 서쪽 고개는 북쪽의 산비탈이 전망을 비스듬하게 가로막고 있다.

trel_14_sat_1.jpg동쪽 고개에서 본 풍광은 과연 소문대로 굉장하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서쪽인 삼도쪽 풍경은 줄곳 보던 모습이라 이젠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동쪽은 새로운 풍경이다. 강인한 인상을 주는 검은 바위 연봉인 키치게(Kichke) 히말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그 뒤 왼편으로 람중히말과 안나푸르나 2봉(7937m)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오르편으로는 강구루(Kang Guru, 6981m)와 힘룽(Himrung) 히말(7125m)이 고깔모양의 머리를 보여주고 있다. 히말라야는 역시 이런 호쾌한 파노라마를 보는 기분이 제일이다.

일단 동쪽과 서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조금 쉬다가 10시 35분 하산을 시작했다. 그래도 두 고개에서 머문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된다. 급경사 내리막길이라고 하지만 오르막길 보다는 쉽다. 잠시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오더니 말 그대로 고꾸라지는 듯한 비탈길이 나왔다. 눈도 이제 많이 녹은 상태라 발이 빠진다. 아이젠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차라리 눈길이 낫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미끄러운 모래길이라 운행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동쪽 경치는 고개보다 내려오는 도중이 더 좋다. 고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체오체오히말(Cheo Himal, 6912m)까지 파노라마로 보인다. 아래쪽으로는 빙하지대와 파란 빙하호수도 보인다.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스레 걸어야 하니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여유는 없지만 잠시 서서 쉴 때마다 마음껏 풍광을 즐겼다. 길은 지그재그로 끝없이 내려가고 있다. 이제는 눈이 질퍽하여 가끔 미끄러지기도 한다.

멀리 앞에 가던 보명화 보살님이 미끄럼을 타며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잘못하면 빙하 계곡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까이 가 보니 정말로 그랬다. 얼마 전 통화를 할 기회가 있어 그 때 왜 미끄럼을 탔느냐고 물어보았다(네팔에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이 역시 깜박했다). 대답은 일부러 미끄럼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도 힘들어서"였으며 곧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는 내리막길도 힘든 법이다.

12시 15분, 눈밭이 끝나고 모레인지대가 시작되었다. 앞에 가던 타시는 쏜살같이 내려가 이미 모레인 아래에 앉아 있다. 힘이 드니 슬며시 짜증이 났다. 고개에 오를 때에도 먼저 가 버려 따라가던 사람들의 기운이 빠졌다. 각자 자기의 속도로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웬만하면 속도를 비슷하게 해야 뒤에 따라가는 사람의 힘이 덜 빠진다. 하물며 가이드라는 작자가 손님들은 내팽개치고 혼자 휭하니 가 버리다니.

제일 먼저 내려가 인상을 잔뜩 쓰며 앉아 있는 타시를 불렀다.

"타시, 당신은 트레커입니까, 가이드입니까?"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타시가 긴장한다.
"써, 가이드입니다."
"가이드라면 항상 트레커와 같이 움직여야 되지 않나요? 내리막길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약품가방까지 든 당신이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떻합니까? 나는 당신이 트레커인줄 알았어요."
"소리, 써."
타시가 계속 죄송하다고 한다.

일단 알아들었을 것이라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어떤 식으로 가이드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2004년 랑탕 헬람부 트레킹 때 삼툭도 오늘과 비슷한 일로 나에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까다로워 그런 것이 아니다. 짐만 나르는 포터라면 상관없지만 가이드는 항상 고객을 밀착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임금도 더 많이 주는 것 아니겠는가.

4600m.jpg시간을 보니 12시 30분이다. 현재 고도는 4600m. 2시간 동안 줄기차게 내려왔지만 고도를 보니 600m밖에 내려오지 못했다. 이곳의 고도는 다람살라와 비슷하다. 목적지 빔탕이 3720m니 아직도 1100m를 더 내려가야 한다. 풍경은 이곳도 굉장하다. 바로 오른편에 있는 장엄한 산과 빙하는 다른 어느 곳과 견주어도 자랑할 만하다. 마나슬루 트레킹을 "네팔 트레킹에서 가장 장엄한 풍광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칭송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곳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세 개의 거대한 빙하가 하나로 합쳐진다.

풍광은 좋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몸은 지쳤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펼쳤지만 모두 식욕이 없어 삶은 계란만 먹는둥 마는둥 한다. 보온병에 담아 온 레몬티도 다 마시고 없다. 물통의 물도 달랑거리고 있다. 타시가 밍마를 먼저 보내 주방팀에게 누룽지와 물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어떨지 묻는다. 여기서 빔탕까지 얼마 걸리느냐고 물으니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가깝다고!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렸다가 누룽지를 먹고 힘을 내어 내려가도 될 것 같다.

밍마가 임무를 지니고 내려갔다. 동포들은 모두 편안한 자세로 쉬었다. 실제로는 쓰러진 모습이다. 에너지 고갈인 상태인데다 아직 고소의 영향권에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다. 조금 쉬다가 문득 기왕이면 내려가다가 만나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 1시 경 모두 깨워 출발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결정이었다. 네팔리들이 말하는 시간은 항상 자기들 기준으로 말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느긋했던 것이다.

조금만 생각하다면 1100m 하강을 한 시간에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적어도 두 시간 이상 걸린다. 길은 한결 수월했다. 키치케 히말은 여전히 앞에서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작은 고개에서 잠시 쉬면서 체오 히말과 빙하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제부터는 빙하 모레인 언덕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빙하가 보이지 않는다.

Manaslu_1190.jpg그런데 내리막길이 완만하여 도대체 4000m 이하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며칠 전만 해도 언제 수목한계선으로 올라가나 조바심을 냈다. 이제는 반대로 언제 수목한계선 아래로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라르키아 라는 운무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슬슬 운무가 낄 시간이 되었다. 2시 30분이 되어서야 처음 나무를 만났다. 이제야 수목한계선으로 내려온 것이다. 아직 목재는 아니고 '관목 형님뻘' 정도의 가는 가지가 있는 나무다. 가지마다 실 같은 모양의 이끼류 식물이 붙어 있다. 오후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운무의 습기로 생긴 현상이다. 산 아래 작은 개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그곳에서 쉬는데 모두 물이 떨어져 목이 말랐다. 각자 지니고 온 1리터의 물이 모자랐다. 대부분 고개에 올랐을 때 이미 3분의 2를 마셨다. 목은 타는데 물이 없으니 난감하다. 그제서야 이 지점에서 쉴즈부부 팀이 정화제 아이오다인을 이용해 냇물을 마셨다는 대목이 기억났다.

약 2시간 후 우리는 포터들이 자기들의 점심을 짓고 있는 작은 평지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배낭을 풀고 1시간 가량 쉬었다. 우리는 고산병과 싸우고 다이아목스를 먹느라 물을 많이 먹은 탓에 모두 물이 떨어졌다. 톰이 아이오다인 정제를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근처 개울물을 물통에 채우고 아이오다인을 넣었다. 빌도 중화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계속 내려가는 도중에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 (Tom & Louisa Shields, )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정화제를 사용한 적이 없다. 롯지트레킹 때는 끓인 물을 사먹을 수 있으니 굳이 물값을 아끼느라 정화제를 쓸 일이 없었다. 타시에게 물병을 주며 냇물을 좀 떠오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 히말라야 계곡의 물을 몇 번 먹은 적이 있고 별 탈이 없었다. 이곳은 빙하에 가까운 물이나 지류 계곡이라 그런지 물이 맑다. 랑탕의 랑시샤 카르카에서는 맑은 물이었어도 석회냄새가 진하게 났다. 다행히 이곳은 물맛이 좋다. 모두들 한 모금식 마셔 목을 축였다.

그 때 물은 잘 먹었지만 돌아와 레이놀즈의 글 <트레킹 중 건강문제(On-Trek Health Matters)>를 보다가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경련, 설사, 탈수를 일으키는 불결한 기생충인 편모충은 빙하에서도 살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모험을 하지 않고 정화제 아이오다인을 준비할 생각이다.

길은 점점 넓어졌다. 몇 군데 넓은 초지도 지났다. 운무가 점점 올라와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오후 2시 40분, 주방팀인 빠상과 푸르바가 기다리고 있는 풀밭에 도착했다. 어찌나 반가운지 저절로 "만세~"하는 소리가 나왔다. 멀리 모레인 언덕 아래 끝으로 빔탕이 보였다. 그곳까지는 아직 한참 더 가야 한다.

중국제 보온병에 누룽지를 끓여 담아오고 감자를 삶아와 맛있게 먹었다. 무진행 보살님은 아직도 식욕이 없어 누룽지는 별로 먹지 않고 숭늉만 마신다. 모두들 지쳐 있지만 이제 목적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한결 느긋한 표정이다. 가장 어려운 코스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수고한 빠상과 푸르바에게 팁으로 100루삐씩 주었다. 안주어도 당연히 제공하는 서비스지만 기분이 좋으면 가끔 특별팁을 주는 것도 좋다.

아주 넓은 초지가 있는 빔탕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20분. 소박한 롯지가 몇 개 보인다. 긴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새벽 4시에 다람살라를 출발했으니 11시간 20분 걸렸다. 웬만한 사람은 9시간 걸린다는데 노약자가 대부분인 우리팀의 +2시간 20분은 그런대로 양호한 성적이다. 이미 텐트는 다 쳐 놓았다. 넓은 초지는 오늘도 우리팀의 독무대다.

타시에 의하면 우리를 추월했던 포터들은 대부분 오전 10시 30분 경에 도착했다고 하니 얼마나 빨리 고개를 넘었는지 알 만하다. 한 포터는 오전 8시에 도착했다고 해서 혀를 내둘렀다. 사고도 있었다. 한 친구가 눈길에서 넘어져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무릎에 약간의 타박상만 입어 절뚝거리는 정도다. 이 친구는 다람살라에서도 감기로 고생해서 약을 타갔다. 무진행 보살님이 가지고 온 한방파스를 붙여주고 진통제를 주었다. 여분의 파스를 주어 내일 또 붙이라고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나머지 4일간의 일정을 마칠 때까지 문제가 없었다.

라르키아 라를 넘었으니 마나슬루 트레킹에서 어려운 구간은 이제 다 마쳤다. 내일부터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라르키아 라를 넘은 기념으로 맥주 두 병(한 병에 270루삐)을 사서 건배를 했다. 3700고지라 밤이 되니 쌀쌀했지만 오랜만에 고소에서 벗어나 편안한 잠을 잤다. 감기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 - 빔탕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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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지 두 시간 지나 왼편으로 나타난 얼어붙은 방하호수. 길에서 한참 아래에있다. 6시 40분 일출이 시작되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에게 스패츠가 필요없다고 한 타시 자신은 스패츠를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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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대피소 오두막 앞에서 휴식. 5천미터에서의 3시간 운행으로 모두 지치기 시작했다.  6249m의 라르키아 피크가 손에 잡힐 듯하지만 실제로는 제법 멀다. 산 중간에 쌓여 있는 눈은 나중에 눈사태로 쏟아져 장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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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나나타는 오르막 언덕. 꼭대기마다 서 있는 말뚝이 약을 올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뜻밖에 눈표범의 발자국을 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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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언덕은 계속 되었다. 며칠 음식을 잘 먹지 못한 무진행 보살님이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가고 있다. 아무튼 대단한 노익장이다. 젊은 사람들도 모두 힘들어 헤매는 중이다. 힘이 드니 이 멋진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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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라르키아 라임을 알리는 타르초가 보였다. 제알 앞에 가던 백산스님이 길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고개에는 9시 40분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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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 마지막 주자인 혜명화 보살이 제일 힘들어 하고 있다. 고개에 도착하여 정신없이 물을 마시는 무진행 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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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고개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눈사태가 일어났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서 눈사태를 보는 것은 행운이다. 도중에 선글라스 알이 하나 빠진 타시는 카타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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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쉰 후 15분 거리의 두 번째 고개로 가다. 조그만 동산에 말뚝이 하나 서 있는 곳이다.  가는 도중 뒤를 돌아보니 팡푸치가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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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키아 라에서 서쪽과 북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히말라야 전체 트레킹 코스에서도 트레킹 도중 이렇게 풍광이 좋은 고개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 춥지도 않은지 밍마 세르파는 어제부터 계속 반팔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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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시 피곤모드로 돌아가 잠시 쉰 후 하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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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 내리막 눈길. 길은 중앙이 아닌 왼편 언덕으로 나 있다. 그래도 눈이 있어 모래길보다는 운행이 쉬웠고 경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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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해 미끄럼타고 내려가는 보명화 보살님을 백산스님이 놀라 돌아보고 있다. 그곳에서 보는 체오히말과 빙하는 정말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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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보이는 키치케 히말의 검은 바위 산 연봉. 이제 눈길은 끝나고 팍팍한 모레인 지대가 나타났다. 멀리 아래쪽 빙하 옆에는 쏜살같이 내려간 타시가 앉아 있다. 나중에 타시는 나에게 한 소리 들었다.

그곳에서 삶은 계란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각자의 취향대로 쉬었다. 아직도 고소의 영향이 빵빵한 4600m 지점이고 이미 8시간 30분 간의 운행으로 많이 지쳤다. 타시가 심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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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케 히말을 바라보며 다시 하산 시작. 마지막 언덕에서 본 체오히말과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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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좀처럼 4000m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 왼편 산모퉁이를 돈 후에도 한참 더 가야 빔탕이 나온다. 돌아보니  라르키아 라는 운무가 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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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팀 빠상과 푸르바가 누룽지와 삶은 감자를 가지고 마중나왔다. 꿀맛이다. 멀리 개여울이 흐르는 넓은 분지의 빔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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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산길에서 초지로 내려왔다. 그리고 오후 3시 20분, 롯지 몇 채가 있는 넓은 초지의 빔탕에 도착했다. 기나긴 하루의 운행이 끝났다. 마나슬루 트레킹은 오늘 일정을 끝으로 어려운 구간은 더 이상 없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텐트를 보니 반가웠다.


라르키아 라에서 본 서쪽 파노라마

라르키아 라에서 본 동쪽 파노라마

라르키아 라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는 도중 본 파노라마

4600m 지점에서 본 북동쪽 체오 히말과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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