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 16. 띨제 - 자갓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고소적응일-빙하호수 방문)

3,680m

3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 티베트 국경 방문

4,2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20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7년 만에 만난 안나푸르나 서키트 길

2007. 10. 28(일)


 

Lamjung_google.jpg어제 아침에 비하면 이곳은 완연한 봄날이다. 텐트 안 기온이 10도를 가리키고 있다. 남쪽으로 터진 계곡 위로 설산이 보인다. 람중히말(Lamjung Hima, 6986m)이다. 그 오른쪽에 뾰족하게 튀어 나온 봉우리는 안나푸르나 2봉(7939m)이다. 2000년 가을,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 시작 마을인 베시사하르에서 처음 본 설산이 바로 람중히말이었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의 설산을 보고 감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포카라에서 보면 제일 오른쪽으로 보이는 설산이다.

pokhara_pano.jpg다들 뽀리지를 싫어해 마지막 남은 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유는 너무 달다는 것이다. 우유에 설탕을 더 넣었는지 모르지만 웬만하면 음식에 입맛을 맛추기로 작정한 나 혼자뽀리지를 먹었다. 모두 단 음식을 전혀 안 먹는 사람처럼 손사래를 치는 것이 이상하다. 요즘 먹을거리에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평소 크림빵은 잘 먹으면서 뽀리지가 조금 달다고 싫어하다니...

외국에 나와서도 꼭 한식을 고집하는 노인네들이 아니라면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 특히 히말라야에 들어와서는 더 그렇다. 식성이 까다로와 잘 먹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밉다. 트레킹 때는 더 밉다. 에너지 부족으로 당사자가 고생하게 되니 옆에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하더라도 운행에 '민폐'를 끼칠 수 있다.

7시 15분 출발. 롯지 바로 아래에 있는 카니를 지나니 바로 현수교가 나온다. 빔탕 이후 처음으로 강을 건넜다. 대나무와 무성한 잡목 숲으로 이어진 산허리길이다. 얼마 후 언덕에 오르니 멀리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의 주 트레일이 지나는 마을 다라빠니(Dharapan)가 보였다. 그 아래 보이는 마을은 톤제(Thoje, 2015m)다. 톤제 아래로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현수교가 보인다. 그곳까지 가려면 한참 내려가야 한다.

출발한지 1시간 지난 8시 20분 경 출렁다리 앞에 도착했다. 힘룽히말과 체오히말에서 발울한 두드콜라의 최하류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아주 길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강폭이 넓어 다리가 항상 길다. 이곳에 비하면 마나슬루 지역의 다리는 높고 짧다. 다리를 건너다 중간쯤 되는 지점 난간이 뻥 뚫려 있어 무심코 지나가다 깜짝 놀랐다.

톤제 마을 입구의 카니는 티베트 초르텐의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지금까지의 마을과는 다른 전형적인 안나푸르나 트레킹 롯지 마을의 깔끔한 모습이다. 마당에는 백일홍이 한창이고 길가 담장에는 장작을 많이 쌓아두었다. 지나가던 한 집 마당에는 어미 염소가 풀을 먹고 있는데 새끼는 그 어미의 젖을 먹고 있는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톤제에서 다시 강을 건넜다. 이번은 마르샹디 강이다. 강을 건너 조금 오르니 바로 다라빠니가 나온다. 안나푸르나 주 트레일로 접어든 것이다. 띨제에서 1시간 30분 걸렸다. 속도가 빠른 팀이라면 빔탕에서 다라빠니까지 당일 바로 올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지나친 속도는 트레킹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골목을 빠져 나와 안나푸르나 주 트레일과 만났다. 7년 만이다. 입구에는 마낭과 라르케로 가는 안내판이 있다. '주의!(Notice)'라는 말을 세 번이나 써 놓아 처음에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 빔탕 쪽으로 가려면 따로 허가를 받아야 된다는 말을 써 놓은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빔탕까지는 안나푸르나 보존지역에 해당하므로 마나슬루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는 사람은 따로 안나푸르나 지역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안나푸르나 허가서만 있으면 빔탕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삼거리에 체크포스트가 있다. 우리는 이미 카트만두에서 ACAP허가를 받았다. 타시가 체크하러 간 사이 잠시 그 앞에서 쉬었다. 몇몇 사람은 허가서를 카고백에 깊이 넣어 둔 상태라 보여줄 수 없었지만 단체로 움직이는데 빼 먹을 일이 있겠느냐고 말해 그냥 넘어갔다. 세 가지나 되는 트레킹 허가서는 나눠주지 말고 처음부터 타시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았다.

조금 내려가니 우리가 내려 온 두드콜라 계곡이 왼편으로 보였다. V자 계곡 아래 꼭지점에 하얀 설봉이 조금 보인다. 마나슬루는 아닐 것이고 라르키아 피크 근처 쯤이나 될 것이다. 지난 16일 동안 저 산군 건너편에서 빙 돌아 깊고 깊은 계곡과 눈덮인 높은 고개, 그리고 다시 골짜기를 지나왔다. 언제 다시 또 그 길을 걷게 될런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다. 아래에서 서양 노인네 단체팀이 올라오고 있다.

안나푸르나의 길은 역시 넓다. 그리고 전체 규모가 크다. 마르샹디 강도 마나슬루 지역의 부리 간다키 강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골짜기도 깊다. 마을도 자주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조랑말 행렬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티베트와의 무역로였다는 관록이 길에 나타나 있다.

Kartenauschnitt_Naar_phu_volle_Grosse.jpg이곳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 토롱 라를 넘어 묵티나트로 간 후 상무스탕을 경유하는 길과 차메(Cheme)에서 오른쪽 꼬또(Koto)로 가는 나르콜라로 들어가 피상피크 동북쪽의 나르(Naar)와 푸가온(Phugaon)에서 바로 티베트로 넘어 가는 길, 그리고 마나슬루 지역의 라르키아 라를 넘어 가는 길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그곳에서 넘어 온 티베트 상인들이 모두 이곳 다라빠니에서 만난다. 그래서 이 지역의 티베트 이름은 갸숨도(Gyasumdo)로 '세 길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넓고 깊은 장대한 계곡과 5416m의 설산 고개, 그리고 티베트 고원 풍의 황량한 들판과 넓고 바람이 거센 깔리 간다키 강, 수백 년간 티베트와의 교역으로 다져진 마을, 저지대의 힌두 문화와 계단식 논밭.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이다. 이런 생태계와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는 네팔에서 이곳 말고는 없다.

경작지를 찾아 강 양쪽으로 마을이 있으니 계속 이쪽 저쪽으로 건너갔다 건너와야 한다. 7년 만에 만난 길이라 그런지 영 낯설다. 그 때는 히말라야 트레킹이 처음이었으니 제대로 주변을 감상할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지금은 마나슬루 '깡촌' 마을을 본 직후여서 더 그럴 것이다. ABC, 쿰부, 랑탕 트레킹은 이런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지만 최근 방문한 곳이 공교롭게도 네팔에서도 오지인 무스탕과 마나슬루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다리빠니에서 다시 현수교를 건너 왼편으로 넘어간 후 카르테(Karte)에 도착했다. 새로 신축중인 롯지가 몇 채 보인다. 이곳에 도나(Dona) 빙하호수로 가는 길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다라빠니의 안내판도 그렇고 이 안내판도 7년 전에는 본 기억이 없다. 도나 호수로 가려면 이곳 동쪽 도나콜라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마헨드라왕 자연보호재단(KMTNC)의 홈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dona_lake .jpg도나 호수는 마나슬루 남서쪽, 해발 4700m 지점에 있는 호수로 마나슬루 호수로도 알려져 있다. 마낭지역에서 틸리초 호수 다음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수로 점차 방문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곳까지는 이틀이 걸린다. 가는 길은 나체(Nache) 마을을 통과하여 빽빽한 푸른 소나무 숲과 다양한 색의 랄리구라스 숲, 그리고 초지를 지난다. 이 지역은 사슴, 사향노루, 꿩, 붉은 판다 같은 야생동물들의 좋은 서식지이며 가축들의 방목지로도 이용되고 있다. [주의] 이 호수로 가는 길은 야생 상태라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없다. 방문자들은 경험많은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고 장비와 식량을 가져가야 한다. 방문시기는 7-8월과 4-5월이 가장 좋다.

Tilicho.jpg구글어스에서 찾아보니 도나 호수는 길이 2300m, 폭 400m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같은 고도에서 틸리초외 비교해 보니 틸리초가 두 배 정도로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호수는 4000m 이상의 높이에 있는 히말라야 호수 중 제일 큰 호수에 속한다. 쿰부의 고쿄 호수, 촐라초, 임자초도 이들보다 작다.

트레킹 초심자는 이런 코스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 그러나 네팔 3대 메이저 트레킹 코스를 마치고 캠핑이 필요한 코스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이런 코스도 '땡기기' 시작한다. 안나푸르나 서키트를 캠핑트레킹으로 할 경우 이곳에서 도나 호수를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곳에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고소적응이 된다. 그리고 다시 틸리초 호수를 다녀오면 더 좋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자금을 더 많이 모아야 한다.

카르테를 지나가는데 한 롯지 식당 입구에 "맛있는 김치 있어요"라고 쓰여 있는 나무판이 놓여 있다. 금년부터 인천-카트만두 직항 정기노선이 생기면서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점점 더 많이 방문하고 있다는 증거다. 롯지촌을 벗어나니 바로 강을 건너는 현수교가 나와 다시 오른쪽 사면으로 건너왔다.

10시 경에 나타난 작은 마을 코또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롯지 식당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조금 이르긴 해도 다음 마을인 딸(Tal)까지 가려면 여기서 1시간 이상 더 가야 한다. 이미 주방팀이 먼저 도착하여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에 얼마 후 바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11시 15분에 다시 출발했다. 계속 트레커들이 올라오고 있다. 중년 이상의 트레커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최근의 경향이다.

골이 깊은 안나푸르나 서키트 길은 초반 계곡길에 폭포가 많다. 마나슬루도 폭포가 많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 않다. 규모도 엄청 나 처음 보는 사람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카르테 아래의 폭포는 지그재그 다단계형의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쏟아지는 물의 양도 굉장하다.

골짜기 풍경이 웅장하다. 다시 현수교를 건너 강바닥으로 내려섰다. 원래는 위로 오르는 계단이 있지만 건기에는 강바닥을 이용할 수 있으니 힘을 덜 수 있다. 위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는 길이다. 잠시 후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가 강바닥 길을 걷는다. 그러나 곧 오르막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안다. 계곡은 항상 이런 식이어서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도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롯지가 중간에 많아 언제든지 쉬어 갈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아주 많아 하루 서너 시간 운행으로 만족할 때의 일이다. 그런 식의 운행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소한 오후 두세 시까지 운행하게 되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힘들다. 거기에 4000m 가까이 가면 고소의 영향으로 한 걸음이 천근같다. 그러므로 트레킹을 가기 전 근력과 지구력 강화훈련을 차분히 해 두어야 덜 고생한다.

절벽길에 올라 코너를 도니 멀리 딸(Tal, 1707m)이 보인다. 이 절벽길도 바닥의 흙과 축대를 보니 산사태로 무너진 것을 다시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상계에서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12시 25분 도착한 딸 마을도 그동안 많이 변했다. 좋게 보면 세련되었고 아쉬운 마음으로 보면 자본주의화 되었다. 자본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가치관은 인심을 각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 도시 문명을 벗어나 히말라야에 왔는데 다시 이곳에서 그런 분위기를 접하는 일은 썩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곳은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 코스에 있는 마을 중 유일한 강변마을이며 가장 목가적인 분위기를 지닌 마을이다. 주변의 산이 높고 계곡이 넓다. '딸'이란 '호수'를 뜻하는 네팔말이다. 한때 이곳은 호수였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아래쪽으로 침식작용이 일어나 물이 많이 빠지자 넓은 터가 생겼고 그곳에 마을이 들어섰다. 안나푸르나 서키트를 한다면 이곳에서 하루 묵는 일정을 고려할 만하다. 네팔 행정구역에서 이곳 딸까지 마낭지역이다. 이 아래부터는 람중지역이다.

안나푸르나 산군의 동쪽지역은 크게 람중(Ramjung) 지역과 마낭(Manang) 지역으로 나눈다. 딸 이전의 마을은 람중 지역이다. 람중 지역은 낮은 지대여서 산에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마낭 지역은 험한 산악 지대여서 계단식 논을 잘 볼 수 없다. 쉽게 티베트 풍의 마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람중 지역은 힌두문화권이고 마낭 지역은 불교문화권이다. 딸은 마낭 지역의 가장 남쪽 마을이다. 마을은 제법 큰 편이다. 롯지와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ACAP 체크포스트도 있다. 큰 마을답게 우체국도 있고 보건소도 있다. 그러나 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이곳 사정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길이 왼편 산기슭으로 급하게 오른다. 작년 몬순 때 홍수로 마을이 고립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물길이 바뀌어 원래의 길을 덮쳤고 그 물길이 고착되어 원래의 길은 물 속에 잠겨 버렸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도도한 물길을 이 낙후된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차라리 새로 길을 내는 것이 더 쉽다.

trek16_map2.jpg그래서 만든 길이 이 산기슭 길이다. 기계가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래도 수작업으로 완성시켰다. 길이 완성되기 전에는 건너편 기슭으로 난 길로 다녔다고 한다. 그 길은 현지인들이 다니는 높은 길이다. 트레커들은 딸을 생략하고 바로 높은 산기슭을 넘어 다라빠니로 가느라 힘이 훨씬 들었을 것이다. 작년(2006년) 여름 마나슬루 트레킹을 마치고 우리처럼 내려가는 길에 이곳을 지난 김지나 씨의 글에는 그 길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있다.

산중턱에서 보니 멀리 앞쪽으로 원래의 길이 보인다. 카니에서 강바닥으로 내려오는 길을 강물이 막고 있다. 카니 아래로 보이는 현수교가 바로 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산중턱에 있는 가랑(Gharang)이라는 마을을 지나 다라빠니로 가는 길이다.  산기슭길을 한참 지나 입구에 도착하니 마오바디들이 책걸상을 갖다놓고 통행세를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마나슬루 지역에서 냈기 때문에 그냥 통과했다. 그곳에서 보이는 가야할 길이 가물가물하다.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정신없이 올라가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트레킹이다. 그래서 체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험한 히말아야 트레킹 길도 산악자전거를 타기 위해 오는 친구들도 있다. 서양인 친구나 앞에 오고 뒤에 네팔인 친구가 따라 온다. 짐을 진 포터는 뒤에 따라 올 것이다. 어쩌면 이들보다 앞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디스커버리 채널인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인가에서 본 적이 있다. 대단한 친구들이다. (나도 일주일만 더 젊었으면 산악자전거를 탔을텐데... 아깝다, 일주일!)

멋지고 웅장한 폭포를 향해 강 아래쪽으로 내려 갔다. 긴 폭포가 아주 인상깊다. 폭포를 지나면 곧 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 오른편 기슭으로 오르니 참제(Chemhe)가 나왔다. 막 오후 3시를 지나고 있다. 마을 중간에 있는 큰 롯지 을 보니 반가웠다. 롯지 모습은 여전하다. 7년 전 묵은 곳이고 그때 이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동포들을 만났다.  당시의 기록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3층짜리 목조 건물인 라사(Lahsa) 호텔에 짐을 풀었다. 우리 방은 3층에 있는 방이다. 방은 갈수록 좋아졌다. 복도를 돌아가니 화장실 겸 샤워장도 있다. 미지근한 물에 땀을 씻었다. 태양열을 이용하여 물을 데우기 때문에 이 시간까지 미지근한 물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다. 옷가지를 빨아 발코니 빨랫줄에 널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잘 마를 것 같았다. 빨래집게가 줄에 몇 개 있었다. 빨랫줄은 준비했는데 빨래집게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빨래집게도 다음부터는 꼭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숙소에는 빨래집게가 없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현지에서는 요긴하게 쓰인다.

여기서 한국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을 못했다. 3층에 올라가니 안쪽 방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반가웠지만 짐을 풀고 씻는 것이 급선무라 나중에 확인을 하기로 했다. 내가 씻고 나서 덕문스님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 한 청년이 왔다. 양평에 산다는 남기범(23세)이라는 친구였다. 세 사람이 같이 왔는데 스님도 한 분 있다고 한다. 그 친구가 가고 잠시 후 선일이라는 스님이 왔다. 초면이었다. 그러나 내가 덕문스님과 같이 왔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알고 보니 덕문스님과는 수계도반이며 여러 철 같이 살았다고 한다. 이번 여름에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정진했다고.

잠시 후 덕문스님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덕문스님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라 무척 반가워 한다. 또 한 사람은 서울에서 온 이정숙양(여, 29). 세 사람은 각기 따로 인도를 여행하고 네팔로 들어와 포카라에 있는 인드라 호텔에서 만났으며 호텔 분위기가 트레킹을 하는 분위기여서 덩달아 트레킹에 나섰다고 한다. 파카 등 장비도 포카라에서 빌렸다는데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준비한 우리보다 엉성했다. 신발도 운동화를 신고 있다. (붓다아이, <2000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 day 3)

원래는 이곳 참제에서 오늘 운행을 마칠 생각이었다. 시간상으로도 적당하다. 그런데 점심 때 밍마가 참제에는 캠프사이트가 좋지 않다고 자갓으로 가자고 한다. 사실은 레이놀즈의 가이드북에도 자갓까지 하루 일정으로 나와 있지만 일정을 짤 때 지도상으로 너무 멀어보여 참제로 정한 것이다. 캠프사이트가 좋지 �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어 밍마의 의견을 따라 자갓까지 가기로 했다. 조금 더 걷겠지만 그만큼 내일 일정은 단축될 것이라고 피곤해 하는 동포들을 위로했다.

Manaslu_1456.jpg아닌게 아니라 유일한 캠프사이트인 마을 끝에 있는 학교 마당은 길보다 지대도 낮고 분위기도 영 아니다. 길가로 하수도도 흐르고 있다. 하수도보다 낮은 곳에서 잠을 자고 싶지는 않다. 그대로 통과한 것은 잘한 일이다.

자갓(Jagat) 에 도착한 시각은 4시 20분. 참제에서 1시간 20분 걸렸고 중간에 두 번 쉬었다. 폭포도 지나고 강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오르기를 몇 번 반복했다. 연 3일간의 강행군으로 다들 많이 지쳤다. 체력이 좋은 젊은 사람이라면 5:30~6시간 걸린다고 레이놀즈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8시간(-점심시간 1시간 15분) 걸렸으니 어지간히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자갓은 톨게이트(toll gate)라는 뜻이라고 이미 마나슬루 지역의 자갓을 지날 때 이야기 했다. 즉 이곳은 티베트를 오가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던 곳이다. 그런 까닭에 이곳 주민들은 티베트계인 보티아(Bhotia)족이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지던 소금무역은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국경을 폐쇄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대신 1975년 안나푸르나가 일반 트레커들에게 개방되면서 관광업이 주 산업이 되었다.

아담한 롯지 정원에 스테프들이 캠프를 치고 있다. 바나나 나무도 보이고 꽃이 만발해 있다. 이곳 고도가 1314m이니 이제 따뜻한 중산간 지역으로 내려왔다. 라르키아 라와는 고도차가 4000m 가까이 되는 곳이다. 오늘은 뜨거운 샤워를 할 수 있으려니 기대를 했다. 그러나 늦게 도착한 탓인지 따뜻한 물은 잠시 나오더니 아예 찬물까지도 잘 나오지 않아 여성동포들은 주방에서 데워 준 물로 간단하게 �었다. 나는 오늘도 물수건의 신세를 졌다.

모처럼 분위기 있는 정원 식탁에서 바나나를 사 먹었다. 저녁은 여행사에서 서비스로 준비한 특식이란다. 한국식으로 요리하기 위해 두 분이 주방을 다녀왔다. 무진행 보살님이 요리법을 설명하고 영어가 전공인 보명화 보살님이 통역했다.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생애 최고로 맛있게 먹은 음식"이라고 찬탄했다. 어쩌면 '말짱 도루묵'의 일화와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동안 '배가 고팠다'는 반증일 것이다.

저녁을 잘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힘든 트레킹이 거의 끝나는 시기여서 그런지 동포들의 얼굴이 한결 여유롭고 좋아보인다. 내일이면 실질적인 트레킹은 끝나기 때문에 내일 묵을 나디에서 쫑파티를 준비하라고 타시에게 150불 주었다. 포근한 밤이다.
 

trek 16. 띨제 - 자갓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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띨제 캠프에서 멀리 남서쪽으로 보이는 람중히말. 오른쪽 봉우리는 안나푸르나 2봉(7939m)이다. 띨제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 뒤를 마을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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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지 45분 쯤 지나 언덕에 오르니 다라빠니가 보였다. 그 아래 마을은 톤제 마을이며 톤제로 가는 긴 다리가 두드콜라 하류에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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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제 다리 중간 난간 철망이 뻥 뚫여 있어 깜짝 놀랐다. 톤제 마을 입구 카니는 티베트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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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빠니 도착. 빔탕으로 가는 안내판이 있고 맞은 편에 체크포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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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포스트 앞에서 체크할 동안 휴식. 다리빠니를 벗어나자 마르샹디 강과 두드콜라의 합수점에 있는 계곡 사이로 마나슬루 산군이 조금 보였다. 줌으로 당겨서 그렇지 실제로는 멀어 아주 작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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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서키트 구간은 이런 현수교를 자주 건넌다. 짐을 싣고 오가는 조랑말 무리도 자주 만난다. 이 길은 수백 년 동안 티베트를 오가던 소금무역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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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코또의 롯지 초우따라에서 쉬며 일정을 살피고 있는 �은 두 서양 트레커. 그곳에서 조금 내려가자 지그재그형의 웅장한 폭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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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지나는 트레킹은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가물가물한 길을 따라 내려가면 강을 건너는 현수교가 나온다. 건기에는 위로 가는 계단길 대신 아래 강바닥길을 이용할 수 있어 힘이 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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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길을 지나면 당연한 일지지만 다시 오르막이 나온다. 그리고 계곡이 갑자기 넓어지며 '호수'라는 뜻의 마을 딸(Tal)이 나타났다. 안나푸르나 서키트 지역에서 유일한 강변마을이며 목가적인 분위기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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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까지 가는 길도 산사태가 나 새로 다졌다. 절벽길을 내려와 평화로운 마을를 향해 가고 있다. 제일 뒤에 가는 사람은 밍마 세르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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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는 마니월은 예전에 못 보던 것이다. 그냥 무심코 지나쳤는지도 모르겟다. 그러나 컬러 마니석은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있었다면 당시의 여행기에 이 독특한 물건에 대한 묘사가 없을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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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큼은 낭만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딸은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가장 멋진 곳임에는 틀림없다. 옛길은 물에 잠기고 새로 만든 절벽길로 올라왔다. 예전에 다니던 길에 있는 카니와 길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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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보면 물길이 옛길을 덮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언덕 산허리길은 작년에 사람들이 100% 수작업으로 뚫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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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 마오바디들이 통행세를 거두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야할 길이 가물가물하다. 강바닥 가까이 한참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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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오르막길 꼭대기에 거의 다 올라왔다. 점심 먹고 3시간 운행을 하고 있으니 이제 슬슬 피곤이 몰려왔다. 그곳에서 산악자전거를 타고 온 사나이들을 만났다. 이 친구 뒤로 네팔인 친구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저 자전거를 끌고 토롱 라를 넘어갈 모습은 상상만 해도 숨이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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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웅장한 폭포가 나와 경치를 즐겼으나 다시 아래로 한참 내려가야 했다. 폭포를 지나 오른쪽 사면으로 건너 잠시 오르니 참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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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묵었던 참제의 라사 호텔을 지날 때는 옛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머나먼 길을 바라보며 걸었다. 저쪽 산 모퉁이를 돌아야 오늘의 목적지 자갓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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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마을 자갓의 롯지들. 참제에서 1시간 20분 걸렸다. 우리 포터들이 롯지 입구에서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호텔> 마당의 캠프사이트는 푸른 정원으로 싸인 아늑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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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에서 서비스로 마련한 특별식을 코치하는 두 보살님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트레킹을 마쳐갈 즈음이어서 그런지 차와 바나나를 먹으며 식탁에 앉아 저녁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한결 여유 있어 보인다. 음식은 먹기 바빠서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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