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 블루스Ⅳ] 문서의 초벌구이 작업

지난 회에서는 간단한 레이아웃을 작성했고 그에 대한 일반적인 작성 원칙을 여러 장의 슬라이드를 통해 설명했다. 이번 회에서는 지금까지 기획했던 내용들을 슬라이드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놓고 전체 문서의 밸런스를 조감해 보기로 하겠다. 이제, 드디어 초안이 나오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조 : 영화감독과 관객

두 번째 이야기 '문서작성의 전단계'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이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가 되도록 작업했던 사실을 떠올리기 바란다. 그때 필자는 집요하도록 이야기의 '구조'에 집착했다.

우리가 보여주려는 문서는 한편의 영화와 같아서 원작의 내용이 아무리 좋은들 그것을 한정된 지면에 설득력 있게 펼쳐놓지 못하면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주인공이 억울함을 당할 때 관객 역시 억울함을 느껴야 하고 분노하는 장면에서는 관객 역시 분노하는 것이 감독이 의도한 바다. 가끔 영화가 지루하고 정말 못 봐주겠다고 느끼면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기도 하는데 이건 문서를 보는 사람 역시 똑같다.

문서 역시 높낮이와 리듬, 단락간의 연결성, 논리성, 설득력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철저하게 관객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먼저 설계하란 것이다. [그림 1]의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그림 1] CEO대상의 ‘IT와 비즈니스의 전략연계성’문서의 구조


첫 번째 예는 CEO들을 대상으로 했던 IT 전략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이다. [그림 1]의 왼쪽은 실제 모든 슬라이드를 펼쳐놓은 모습으로 총 27개 슬라이드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내용은 표지와 마지막 슬라이드를 제외하고 25장이다. 그림상으로는 5줄이지만 총 3개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첫 3줄이 첫 단원이다.

[그림 1]의 오른쪽은 첫 단원의 14개 슬라이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14개 슬라이드가 네 가지의 크기로 되어 있고 그 위아래에 주요 키워드들과 강조해야 하는 사항들이 적혀 있다. 가장 큰 슬라이드가 2장인데 여기에 1단원의 키워드가 각각 하나씩 들어있고 나머지 작은 슬라이드들은 모두 이 2장의 슬라이드를 위한 조연 역할을 수행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서는 앞뒤의 맥락을 감안해서 작성하고 중반부에 등장할 키워드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앞부분에 많은 장치들을 만들어 둔 상태이다.


[그림 2] 경쟁우위 달성을 위한 벤치마킹과 차별화 계획


두 번째 예는 실제 슬라이드의 구성이 아니라 복잡하고 방대한 문서를 이해시키기 위한 문서의 구성체계를 서두에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인터넷비즈니스 1위 달성을 위해 경쟁사 웹 사이트의 구성요소들을 여러 개의 부문과 요소로 나눈 뒤, 냉정하게 각 부문별 Best를 선정하여 우리회사와의 Gap을 파악하고, 그 요소들에 하나하나 투자하여 전부문에 걸쳐 경쟁우위를 달성하겠다는 모델이다.

[그림 2]의 왼쪽을 보면 8단계에 걸쳐 수십 개의 요소로 구성된 기존 큐브 형태를 새로운 색깔의 큐브로 재조합하여 탈바꿈시키는 과정이 나오고 오른쪽 그림은 4단계의 3개 경쟁사의 각 부문별 경쟁력을 큐브의 컬러로 표시하여 비교한 모습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구조화 시키는 방법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아이디어를 쥐어짜내야 한다. 여기서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노하우를 하나 공개하겠다.

이야기 구조화 : 허들 뛰어넘기

필자는 이야기의 구조를 구상할 때 허들경기를 생각한다. 문서를 통해 누군가를 설득하면서 크게 의사결정을 하거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허들로 추상화 한 것이다.


[그림 3] 문서설계는 허들경기와 같다


우리는 '시스템 보안 중장기 Roadmap'이란 예제를 가지고 계속 작업 중인데 이것을 가지고 허들경기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지난 칼럼까지 1.개요-2.현황 및 대응방향-3.대안평가-4.예산 및 일정의 4개 단원으로 시나리오를 짜고 정보를 수집했다.

이 과정을 통해 경영진이 크게 3가지 정도를 머리 속에 기억하고 공감한다면 이번 보고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이번 사건의 재발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재발시 피해규모가 크다는 것, 세 번째는 시스템적인 대응방안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3가지에 대해서 공감하고 설득할 수 있다면 보고서 후반부에 나올 솔루션 구매나 선정 등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3가지 사항이 각각의 허들이 되는 것이고 문서는 이들 3개의 허들을 넘는데 집중해야 한다.

첫 번째 허들은 사건의 재발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영진이 이에 대해 공감하고 추가적인 위험성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1.개요’단원이 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2단원에서 이어질 위험성에 대한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림 4] 첫 번째 허들 : 문제의 제기


두 번째 허들은 '충격'을 주고자 의도한 것이다. 즉, 상황재발시의 위험성과 가능성을 구체적인 숫자로 언급함으로써 보고서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에 대한 대책수립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하려는 목적이다. 물론 이 두 번째 허들을 넘으면 곧바로 나오게 될 내용은 ‘그 대책’에 관한 것이 된다. 허들은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림 5] 두 번째 허들 : 충격요법


마지막 허들은 실제로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두 번째 허들의 예상피해액이 경영진의 머리 속에 맴돌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두자. 보안솔루션에 투자하는 것이 앞으로의 위험성에 비해 낫다는 것을 2단원의 후반부나 3단원의 첫머리에 먼저 선언하는 것이 좋다.


[그림 6] 세 번째 허들 : 대안수립


아마 내용이 설득력을 갖는다면 경영진은 대부분 위험을 감수하는 방법보다는 솔루션을 도입하여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자연스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서로 보자면 중반부 정도를 지날 무렵, 경영진(관객)은 주요 의사결정을 머리 속에서 내리고 있어야 한다. 후반부의 실제 솔루션 비교선정이나 세부적인 가격, 기능비교, 일정 등은 아마도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허들을 설계할 때에는 이와 같이 철저하게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고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관객이 모든 허들에 대해 기억할 수 있도록 허들의 갯수 역시 최대한 줄여야 한다. 위의 예제가 모범답안은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여러분들이 힌트를 얻기 바랄 뿐이다. 이상이 대략적인 이야기 전개방향이다.

초벌구이 : 슬라이드 전개하기



두 번째 칼럼에서 설명한 MS-Word로 작성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세 번째 칼럼에서 작성한 레이아웃을 이용해서 초안을 늘어놓아보자.

왼쪽 그림의 시나리오는 이후에 계속 보강작업을 거친 것이다. 내용을 보면 각 단원마다 몇 장의 슬라이드로 표현될 것인지와 각 슬라이드의 타이틀, 내용의 개요수준까지 작성했다. 물론 더 상세한 내용들은 별도의 폴더에 알아보기 쉽도록 따로 모아 놓은 상태이다.

1단계 작업은 간단하다. 표지, 제목, 간지, 내용 순서대로 시나리오에서 구상한 대로 빈 슬라이드를 만들어 배열해 놓는다.
그리고 나서 위에서 설계한 3개의 허들이 어디쯤 들어가게 될지 예상해 보기 바란다. 보통 허들 하나가 하나의 슬라이드가 되며 그것이 전체 문서의 가장 핵심적인 슬라이드가 된다.

아래의 [그림 7]이 실제 빈 슬라이드를 늘어놓은 모습이다. 총 23개 슬라이드로 구성되고, 8,13,14번 슬라이드가 3개의 허들 슬라이드이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특정 단원에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던가 하는 점을 집어 낼 수 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러한 비대한 단원들을 분리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이미 모두 작성된 슬라이드를 조정하는 것보다 이런 예비단계를 거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림 7] 1단계 작업 : 슬라이드 늘어놓기


필자의 생각으로는 위와 같은 모양새와 분량 정도면 적당해 보인다. 관객에 대한 설득은 실질적으로 2단원에서 모두 끝나고, 나머지 3, 4단원은 결론이 이미 내려진 상태에서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후속절차이다.

2 단계 작업은 시나리오에 적어두었던 내용을 빈 슬라이드에 거의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들어가지 않았지만 머리 속으로 어떤 것이 들어갈지 구상해 둔 상태이다. 실제로 이렇게 슬라이드에 옮겨보면 2장으로 분리해야 할 일도 생기고 합쳐야 할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럼 '1.개요' 단원의 초안을 실제로 작성해보자. 이것도 간단한 작업이다. 아래 연속적으로 제시한 4장의 슬라이드 [그림 8]~ [그림 11]을 시나리오와 비교하면서 보기를 바란다. 시나리오에서 추가된 부분은 헤드라인 메시지 정도이다.


[그림 8] 개요: 1.1 현상



[그림 9] 개요: 1.2 원인



[그림 10] 개요: 1.3 조치사항



[그림 11] 개요: 1.4 문제점 및 시사점


아직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미약하지만 전체적으로 초벌, 재벌구이를 하면서 한장한장 완성시키기보다는 전체를 한꺼번에 완성시킨다는 생각을 하기 바란다.
이 단계부터, 시나리오는 버리고 보강되는 내용을 초안의 각 슬라이드에 곧바로 삽입해라. 그 형태가 단순한 메모형태이든 완성된 형태의 표나 그림이든 상관없다.

헤드라인 연결하기

앞 뒤의 내용이 논리적으로 단단하게 연결되게 하는 또 하나의 팁이 있다. 나는 논리적인 내용의연결에 대해 나름대로의 원칙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헤드라인 메시지의 연결이다. 아래 [그림 12]와 같이 각 슬라이드의 헤드라인 메시지를 서로 연결하면 1~2 페이지의 말이 되는 짧은 이야기가 되도록 말이다.

앞뒤 문맥이 제대로 소통되는지 유의하고 우리가 넘으려는 허들의 키메시지가 제대로 강조되는지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 헤드라인 메시지를 모두 연결한 A4 1-2장 정도의 요약 보고서만으로도 전체적인 문서의 맥을 파악할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그림 12] 헤드라인을 연결하여 짧은 에세이 만들기


물론 헤드라인 메시지는 1-2줄로 슬라이드 1장을 요약하는 역할을 하므로 헤드라인 메시지에 맞게 세부내용도 구성하고, 그 때문에 전체 세부내용까지 강하게 결속되는 효과를 가진다.

이제 전체 초안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전개가 되었고 헤드라인도 모두 작성되었으면 이 초벌구이 작업을 반복적으로 리뷰하면서 내용을 다듬어 나가기 바란다. 파워포인트 블루스 연재 내내 계속 반복하여 강조하는 '이야기의 구조'를 상기하면서 말이다.
세부적인 다듬기가 끝났다면 비록 슬라이드의 모습은 절반도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져도 실제로는 80%이상의 공정이 마무리 된 것이다. 다음시간에는 전체 문서를 완전하게 완성해 보기로 하자.@

☞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사항이나 정보를 바라는 분들은 필자의 블로그(Sonar & Radar : http://www.demitrio.com:8088)나 e-mail(demitrio@demitrio.com)을 이용해주기 바란다.

[저자] 김용석 CJ시스템즈 정보기술연구소소장

[안철수연구소 20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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