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걸리고, 시장 외면받고, 전문가 없고

국산 수술 로봇 상용화 3대 악재

2009년 09월 28일



수술로봇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 인투이티브서지컬사의 ‘다빈치’. 세계 대형병원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이 로봇을 이용한 시술 방법은 각종 질환의 표준치료로 인정받고 있을 만큼 명성과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집게 등이 붙은 가느다란 막대를 몸 속에 넣어 수술하는 ‘복강경’ 수술도구지만 일반 복강경 수술을 할 때 의사가 겪는 문제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수술로봇은 몸 속에 로봇팔을 넣어 바느질이 가능할 정도로 정밀한 동작이 가능하고, 비좁은 수술부위도 원근감과 함께 널찍하게 보여주는 3차원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수술로봇을 개발하는 곳은 국내에도 있다. 국립암센터의 의공학연구과는 수술용 로봇을 비롯해 다양한 수술장비를 의료현장에서 개발한다. 병원 내에 공학연구팀이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관절경 수술장비 ‘라파로봇(LAPAROBOT)’로 불리는 이 로봇은 수 차례 동물 실험에 성공했을 만큼 안정된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상용화 계획은 없다. 적잖이 뛰어난 성능을 가졌지만 아직까지 이 로봇을 제품화 해 시판하고자 하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 로봇이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 해 5월. 대한의사협회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의료 관계자들 사이에 소개됐다. 동물 실험을 준비해 두고 원격수술 시연회를 여는 등 관심을 끌었지만 이런 의료계의 관심도 곧 식었다. 제품화 되어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 병원들이 앞 다퉈 다빈치 로봇을 도입해 왔기 때문이다.

걸림돌은 특허… “의사들 아이디어 모아 틈새시장 공략해야”

라파로봇을 비롯한 국산 수술로봇이 상용화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암센터 내부 연구진들은 가장 먼저 특허부담을 꼽는다. 라파로봇을 상용화 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있더라도 특허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선뜻 나설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 의공학연구과 김광기 과장은 “다빈치 제작사가 가진 특허와 교묘하게 특허가 엇갈리는 것들이 많다”며 “이런 것들을 꼼꼼히 챙겨 제품화에 문제가 없도록 도와줄 특허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로봇수술 특허는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라며 “수술 현장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외과의사들의 도움을 얻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이뤄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직 부족한 성능을 더 끌어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라파로봇 개발에 참여했던 김영우 위암연구과장은 “라파로봇을 상용화 하려면 다빈치 제작사가 선점한 수많은 특허권과 싸워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면서 “아직 의사들을 유혹할 만한 기능이 조금 부족한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반 복강경 수술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점을 증명해야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면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로봇을 만들어 낼지, 라파로봇 자체를 상품화할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왜 국산수술로봇 개발을 서둘러야 할까? 비싼 외국산 수술로봇 가격 때문이다. 현재 다빈치 로봇의 대당 도입가격은 환률에 따라 대략 30~40억원 수준. 더구나 높은 소모품 가격 때문에 수술비도 1회에 1000~1500만원에 달한다. 일반시민이라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다빈치 보다 작고 내구성 높아… 특허 문제 등 걸림돌 해결해야”

라파로봇은 다빈치와 유사한 형태의 국산 수술로봇. 성능 자체만 으로 본다면 거의 완성단계였다.

그렇다면 라파로봇의 완성도는 어떨까? 18일 심포지엄에 앞서 암센터를 찾은 기자는 사전 협조를 얻어 의과학연구과 실험실을 방문했다. 안내를 맡은 의료진이 “병원 내에 의료장비 연구실이 별도로 있는 곳은 암센터가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기자는 이미 수술로봇 다빈치 등을 직접 살펴본 적이 있어 비교도 쉬웠다. 일단 외관은 다빈치 만큼 세련되지 못했다. 개발 중인 로봇이다 보니 깔끔한 케이스도 없었고, 곳곳에는 각종 기계부품의 내관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기능 자체만을 놓고 보면 전 세계 의료진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다빈치와 큰 차이가 없는 듯 했다. 관절경 로봇 앞에 붙은 집게 팔은 다빈치 못잖게 자유롭게 움직인다. 다빈치가 필요한 전용 수술도구가 장착된 로봇팔을 장착해 가며 수술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라파로봇은 기본 로봇장치에 일반적인 복강경 수술장비를 덧붙여 사용하는 형태다. 김광기 암센터 의공학연구과장은 “일반적인 복강경 수술장비로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라파로봇으로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다빈치처럼 미세동작을 조정할 때 와이어를 사용해 조정하지 않아서 반 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다빈치가 수술용 로봇팔 하나를 교체하는데 수백만원을 지불해야 했던 것과 비하면 큰 차이다.

라파로봇이 다빈치와 다른 또 다른 점은 아직 3차원입체시각을 갖추지 못한 점. 현재는 2차원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복강경 카메라가 달려있다. 하지만 의료진에 따르면 앞으로 다빈치와 같이 3차원 입체 시각 역시 제공할 예정이다.

이런 카메라 역시 암센터 의과학연구과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2개의 렌즈로 사람의 눈과 같은 원근감을 제공하는 3차원 복강경 카메라는 지금까지 100% 수입에 의존해 왔다. 김광기 과장은 “이 렌즈를 별도 성과로 다음달 경 공식 발표하고 라파로봇에도 장착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라파로봇의 가장 큰 특징은 원격 수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빈치는 수술실 한 켠에서 의사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수술하는 콘솔이 함께 위치한다. 하지만 암센터 의공학연구과는 라파로봇의 수술콘솔을 옆 방에 마련해 두었다. 인터넷으로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격 수술기능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다. 필요에 따라선 얼마든지 먼 거리에 있는 환자도 수술할 수 있어서 미국에서 다친 환자를 한국에 있는 전문 의사가 치료할 수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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