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은 시작됐다

[기자의 눈] 미크로네시아 해양연구 전초기지 무너질수도

2010년 09월 14일

태평양의 중요성이 부각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일본과 미국의 군사력이 대치하며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전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미국의 기지가 있던 진주만과 일본의 태평양 전초기지가 있던 미크로네시아 축주의 웨노 섬이다. 미국은 웨노 섬을 공략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주둔시켜 물자 보급을 막고 비행기로 공습했다. 당시 많은 일본군이 사망했는데 대부분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태평양에서는 또다시 강대국의 다툼이 시작됐다.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태평양에서 산호초가 발달한 해역에는 풍부하고 다양한 해양생물이 산다. 독이 있고 화려한 산호와 공생하거나 이를 이용하기 위해 생물들이 나름의 변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나 해양생물을 가져갈 수는 없다.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라 하더라도 엄연한 주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태평양전(戰), 외교전은 앞서고 있다

태평양은 지구에서 가장 넓다는 바다다. 하지만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설정된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이 넓은 바다에 공해는 거의 없다. 태평양 대부분은 넓은 바다에 점점이 있는 작은 섬나라의 EEZ에 포함돼 있다. 참치 같은 수산물을 잡거나 새로운 생물자원을 채취하려면 작은 섬나라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작은 섬나라라고 얕볼 수는 없다. 이들 정부는 이미 생물자원의 가치를 알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공동연구를 제안하려 하면 얼마나 많은 투자가 선행될 것인지 따진다. 그래서 강대국은 공항의 활주로를 새로 깔아주거나 공항에서 연구소까지 도로를 놓아줄 수 있는 막대한 ‘군자금’을 동원한다. 하지만 이런 군자금이 없는 나라는 ‘외교력’으로 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태평양 외교전(外交戰)에서 다른 나라에 뒤지고 있지는 않다. 일본의 전초기지가 있던 웨노 섬에 2000년 일찌감치 한국해양연구원 한·남태평양연구센터라는 생물자원 연구를 위한 전초기지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8월 31일 개소 10주년을 맞은 이곳에서는 한국인 과학자와 현지 인력이 10년째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태평양 생물자원 전쟁의 첨병인 전초기지는 많이 고립된 상태다. 일단 연구센터와 미크로네시아 정부 관료 사이의 협업은 잘 이뤄지지만 이를 문서로 남기기 위해 정부 양식의 서류를 만들려면 절차가 번거롭다. 괌의 영사관이 아닌 피지의 대사관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항공편으로 미크로네시아에 가는 방법은 괌에서 ‘콘티넨탈 항공’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 항공사는 태평양의 섬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을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괌에서 피지에 가려면 축-괌-필리핀-피지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해야만 한다. 박흥식 센터장은 “남태평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피지 대사관에서 처리한다”며 “10년 전부터 외교부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군자금 부족한 전초기지, 국지전 승산 있을까?

군자금(연구비)도 적고 아무 데다 쓸 수 없는 것도 문제다. 현재 연구센터의 운영예산은 연간 3억원이다. 연구원이 한국과 웨노 섬을 오가는 항공료와 현지에서 발전기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연료를 사면 대부분이 소모된다. 웨노 섬은 하루에 12시간만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자체 발전을 하지 않으면 전력 공급이 끊긴다. 전력이 끊겨 바다에서 채취한 해양생물을 키우는 수족관의 산소 공급과 온도 조절이 되지 않으면 오랫동안 키운 생물 종이 몰살된다.

연구를 맘껏 할 수도 없다. 연구센터는 해양생물 종 보존을 위해 현지인에 의해 남획되는 생물 종 양식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을 지급하는 관계 부처에서는 다른 부처에서 할 연구라며 제지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식 방법 연구는 생물 종 보존뿐만 아니라 미크로네시아의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과 미크로네시아가 서로 이익을 얻는 ‘윈-윈’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연구다.

태평양은 지금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 중이다. 옛날처럼 무기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대신 자본과 외교력으로 싸울 뿐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남보다 앞서 전초기지를 세웠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미크로네시아를 아군으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보급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이 기지를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다. 미크로네시아는 한국이 아닌 또 다른 나라의 연구소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이곳을 둘러싼 국지전이 시작된다면 과연 한국은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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