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과학자의 10가지 공통점

2003년 09월 05일

성공한 과학자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필자는 장차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나 현재 실험실에서 고민을 하는 젊은 과학도에게 도움이 되기는 바라는 마음에서 그동안 인터뷰했던 33명의 과학자들의 공통점을 모아 ‘성공한 과학자의 10가지 공통점’으로 정리했다. 이글을 읽고 장차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가 한국에서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1. 큰 발견은 행운이다. 하지만 집념이 없으면 행운은 스쳐지나간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틸든 공원에서 함께 한 김성호 교수와 가족, 동료.
지난 70년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원으로서 tRNA의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내 지난 20여년 동안 노벨상 후보로 여러차례 거명됐었던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김성호 교수의 사례는 큰 발견이 우연히 온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tRNA 결정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엑스선으로 구조가 잘 분석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무렵,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우연히 <바이러스>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힌트를 얻어 질 좋은 tRNA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마침내 구조까지 밝혀냈다. 그는 “운은 모든 사람에게 일정량이 오는데 집념이 없는 사람은 운이 그냥 지나쳐 가고, 집념이 있는 사람은 운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최고의 실험물리학자로 꼽히는 칼럼비아대의 이원용 교수도 지난 65년 운 좋게 세계 최초로 반물질을 찾아냈다. 당시 이 교수는 ‘무거운 쿼크’라는 가상의 소립자를 찾기 위해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의 가속기로 입자 충돌 실험을 하고 있었다. 사실 무거운 쿼크가 존재한다는 가설은 틀린 이론이었는데, 이 이론를 믿고 고에너지 입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다가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가 결합된 중수소의 반물질인 ‘반중수소’가 만들어져 운좋게 이를 발견한 것이다.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그렇듯이 큰 발견은 대부분 우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우연히 부딛친 현상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매달림으로써 중요한 자연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만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라.
최재경교수 홈페이지(www.math.snu.ac.kr /~choe/)에는 유학생활기가 소개돼 있다.
60여 년만에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등주부등식과 비유클리드공간에서의 등주부등식을 연속해서 증명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분기하학자인 서울대 최재경 교수는 과학자들에게 기분 전환과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수학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자나 깨나 등주부등식 문제를 푸는데 몇 년 째 매달려 왔던 그는 집에서 아이들과 장난을 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지난 88년 첫 번째 증명 문제를 풀었다. 또 두 번째 증명문제는 문제는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하던 91년 깊이 잠든 아이들을 어머니께 부탁하고 부인과 함께 포항 시내의 한 다방에 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불현 듯 방법이 떠올라 증명에 성공했다.

성공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남들이 생각치 않는 색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어려운 난제를 해결했다. 과학자는 독창적인 연구를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실험실에서 오래 지내는 버릇을 들여라.
캐나다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면서 세계적인 바이러스 학자인 강칠용 박사는 지난 92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자연대 학장으로 초빙을 받아 가면서도 대학과 전체 근무 시간 중 35%는 실험을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특히 지루한 실험이 계속되는 생물학자에게는 실험실을 얼마나 끈기 있게 지키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

미국미생물학회가 성공한 과학자들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들의 공통점은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 가운데 퇴근 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느즈막히 실험실에 출근해 늦은 밤까지 실험에 몰두한 사람들이 많았다.

4. 아는 것을 털어놓고, 협동 연구를 해라.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순수한 초전도체를 만든 이성익 교수.
미국 과학계에서는 요즘 ‘협동해서 연구하지 않으려면 그만두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또 서로 다른 학문의 접점에서 새로운 발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1세기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뇌 연구만 놓고 보더라도 생물학, 화학, 물리학, 해부학, 약리학, 생리학, 행동학, 심리학, 전자공학, 인지과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이 총동원되고 있다. 혼자의 힘만으로 좋은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던 시대는 사실상 종말을 고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순수한 초전도체를 만든 포항공대 이성익 교수는 93년부터 매년 두차례씩 5박6일 동안의 ‘초전도 계절학교’를 열고 있다. 이 학교의 구호는 ‘아는 것 모두 털어놓기’이다. 합숙에 참가하는 연사는 무려 7시간 동안 계속되는 강의에서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아야 한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가 초전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5. 편지를 쓰는데 주저하지 말라.
한국 최고의 수학자로 꼽히는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대 명예교수인 이임학 박사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지난 49년 구미의 과학잡지에 논문을 발표한 인물이다.
해방 직후 미군이 남대문 시장 근처에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미국수학회지의 문제를 풀어, 미국의 수학자에게 편지로 보낸 것이 바로 한국인 최초의 해외 발표 논문이다. 그가 53년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수학잡지를 보면서 미국 수학자가 쓴 논문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강칠용 학장이 세계적인 바이러스 학자의 대열에 끼인 것은 젊은 연구원 시절에 노벨상까지 받은 유명한 바이러스 학자에게 용기를 내 편지를 써서 자신을 연구원으로 고용해달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전북대 김익수 교수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민물고기 신종을 발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루마니아 날반트 박사와의 오랜 편지 교환이 큰 힘이 됐다. 김 교수는 정부가 지난 74년 공산권 국가와 학술 목적의 서신 교환을 허용하는 조처를 발표하자마자 민물고기의 권위자인 그에게 수집한 표본과 연구결과를 보냈고, 그 뒤 22년 동안 서신 교환을 하면서 자신이 발견한 민물고기가 신종인지를 함께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쉽게 전자우편을 보낼 수 있는 시대에는 편지를 쓰는 노력을 아낄 필요가 전혀 없다. 편지야 말로 과학자와 과학자를 엮어주는 가장 큰 무기이다.

6. 최근의 과학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라.
제1회 대한민국 과학상을 수상한 김진의 교수
유력한 암흑물질의 후보인 액시온의 존재를 예언해 제1회 대한민국 과학상 대상을 수상한 서울대 김진의 교수는 항상 제자 물리학들에게 연구의 최전선에 서서 학문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해 무엇이 풀어야할 문제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자신이 액시온 가설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무엇이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이 큰 발견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노력과 능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에 가장 첨단의 정보와 우수한 연구집단이 모여 있었던 연구소나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워낙 발전돼 있어 굳이 유학을 가지 않아고 최첨단의 정보와 논문을 받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분야에서 나오는 논문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어보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7. 영어를 못하는 과학자는 성공할 수 없다.
고등학교 때 흔히 학생들은 수학을 잘 하면 이공계쪽을 지원한다. 물론 수학적 자질은 과학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요 조건이다. 하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아무리 수학의 천재라 하더라도 요즘처럼 지식의 유통이 중요한 시대에는 영어 꿀벙어리가 돼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영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최근의 과학동향을 알 수 없을 뿐더러 요즘에는 국내 학술지에조차 논문을 내기 어렵다. 국제적 공인을 받기 위해 국내 학술지들도 영어로 쓴 논문만 받기 때문이다.

통일장이론의 기초를 닦은 논문을 발표해 유명해진 서울대 조용민 교수는 국내 토플 시험 사상 가장 높은 990점을 받은 인물이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의 강칠용 학장은 요즘도 영어 공부를 위해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구약성서 두 장, 그리고 신약성서 한 장을 꼭 읽는다.

8. 인생의 동반자가 연구에도 동반자라면 금상첨화다.
노벨상에 근접했다는 소리가 들리는 한국인 과학자들은 이상스런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노벨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분자생물학자인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김성호 교수는 자신이 소장을 겸직하고 있는 로렌스 버클리국립연구소에서 중국계 분자생물학자인 부인과 함께 일하고 있다.

김성호 교수의 뒤를 이어 현재 노벨상 후보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젊은 유망주인 매사추세츠공대의 피터김 교수 역시 부인이 자신의 대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브랜다이스대의 생물학과 교수이다. 한국 최고의 화학자로 꼽히는 서울대 서정헌 교수도 화학자 부부로, 부인인 백명현 교수가 같은 대학 화학교육과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물론 연애가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의도적인 교제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연구가 둘이서 하는 연구를 당해내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9.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연구에 알맞은 대상을 잘 선택해 세계 최초로 식물이 지닌 자가불화합성을 증명한 배현숙 박사.
똑같은 능력과 지식을 갖고 있다면 어떤 실험 대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경쟁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연구 대상을 잘 골라 성공하지만, 어떤 사람은 실험 대상을 잘못 선택해 번번히 실패하는 일이 과학계에서 흔히 벌어진다.

생명공학연구소의 배현숙 박사는 페츄니아라는 식물을 선택해 식물이 지닌 자가불화합성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이로써 배 박사는 최고의 과학권위지인 <네이처>에 표지로 소개된 논문을 발표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1백년 이상 풀리지 않았던 이 문제를 배 박사가 쉽게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은 페츄니아란 식물이 유전자 이식과 발현이 뜻밖에 잘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배 박사와 경쟁을 벌이고 다른 연구팀은 실험 대상으로 적절치 않은 담배 등을 갖고 실험을 했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졌다.

10. 과학자로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하라.
과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있는지, 기여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혹시 사회의 발전과 인류의 복지에 오히려 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로서 현재 명성을 날리고 있는 서울대 임지순 교수는 경기고 재학 시절 3선 반대 시위를 준비하다가 발각돼 정학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 포항공대 이성익 교수도 대학 4학년 때 유신헌법 반대시위로 제적돼 가정 교사, 공무원 학원 강사, 대입반 학원 강사 등을 전전하다가 무려 9년만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다. 이들 두 사람은 늦게 공부에 뛰어들었지만, 탁월한 연구업적을 냈으며 물리학계에서도 지도자적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갖지는 않더라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자신이 하는 연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는 과학자가 많아 개개인이 자신의 흥미를 지닌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면 저절로 기술이 축적되고 사회가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전문 인력이 훨씬 부족하다. 따라서 한국의 과학자들은 개개인의 흥미 외에도 내가 하는 연구가 사회의 요구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더욱 더 깊이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연구비가 한정돼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는 사회적 기여도가 큰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신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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