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몽골의 심장에 우뚝 서다

칭기즈칸 동상을 중심으로 몽골 정부청사와 국회가 들어서 있다. 그 구조가 마치 칭기즈칸을 호위한 듯하다. 칭기즈칸광장은 본래는 수흐바타르광장이었다. 수흐바타르 장군은 몽골을 중국에서 독립시킨 몽골의 또 다른 영웅이다. 그러다가 2013년 칭기즈칸광장으로 바뀌었다가 현재에는 다시 수흐바타르광장으로 바뀌었다..

광장은 광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민주화 요구 등 각종 시위가 칭기즈칸광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 또한 기억과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각종 기념할 만한 날에 만나는 약속의 장소로도 통한다. 가령 졸업 25주년이나 30주년을 맞이한 날에 동창생들이 칭기즈칸광장에서 재회를 하는 것이다.

젊은층에선 웨딩 사진촬영의 단골명소로도 두루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칭기즈칸의 존재는 몽골인의 자부심이면서 몽골 국가와 동일시되는 듯하다.

칭기즈칸광장 왼쪽에는 국립역사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국립역사박물관도 칭기즈칸이 중심이다. 전시실을 오르는 메인 통로의 정면에서 칭기즈칸이 계단 아래를 굽어본다. 국립역사박물관은 몽골의 역사와 문화, 생활 방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몽골의 역사를 시대와 테마별로 전시했다. 칭기즈칸광장에서 기념일에 만난 사람들이 이곳을 이어 찾을 정도로 몽골인에게는 울란바토르 여행 코스의 정석이랄 수 있다.










간당사원, 몽골 티베트불교의 중심 

몽골인들의 종교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칭기즈칸광장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간당사원이 그곳이다. 티베트(라마) 불교사원으로 500년 역사를 간직했다. 티베트사원에서 떠오르는 둥근 원통처럼 생긴 마니차를 돌리는 것이다. 이 행위는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다는 의미다.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보다는 붉은색 나무기둥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이들에게 눈길이 끌렸다. 입구에서 정문 오른쪽 나무기둥이 그것이다. 알고 보니 간당사원의 500년사는 이 기둥 하나에만 남았다는 것. 사원 모두가 전란 등으로 불탔고 모든 건물은 19세기 초에 재건됐다고 한다.

간당사원은 도심 중심에 있어 찾는 이가 많다. 조금만 지켜봐도 건물 곳곳에 있는 마니차를 돌리는 풍경에 익숙해진다. 여행객들은 자신의 종교에 게의치 않고 마니차를 돌린다. 특히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당의 마니차는 인기가 높다 

관세음보살상은 그 높이가 무려 16m나 돼서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줄 태세다. 때문에 본당 마니차를 돌리는 행렬은 끊이질 않는다. 이 본당에서 인상적인 표지판이 있다. 본당 오른쪽에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설명이다. 소매치기들이 마니차를 돌리는 데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하는 뒤쪽을 노린다는 얘기다.






복드 칸 겨울 궁전

몽골 울란바토르 남쪽에 세워진 복드 칸국 시대의 궁전이다 

비교적 최근에 건설되었다. 몽골의 마지막 칸 젭춘담바 후툭투(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 8세의 궁전으로 1893년부터 1903년 사이에 지었고 20여 년 간 칸이 거주하는 궁궐로 기능하게 된다. 왕정이 폐지되고 나라가 아주 탈탈 털려나간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때나 소련의 간섭을 강하게 받던 냉전기에도 파괴를 면했으며 박물관으로 재활용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름을 보고 짐작했겠지만 여름 궁전도 있었다(이건 완전히 파괴되었다). ···청 등 유목민족 국가의 지도자들은 동날발(冬捺鉢), 하날발(夏捺鉢)이라고 하여 여름과 겨울마다 거주지를 옮겼다.

 

건물 자체도 몽골의 고유 양식이 적용되어 한국이나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궁전들과는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양식들이 눈에 띈다. 아닌 게 아니라 단청의 사용 등 중국이나 일본 건물보다도 은근히 한국 고건물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내부에는 티베트 불교 탱화 등 불교 미술품들과 차르가 보낸 금빛 장화, 80마리의 여우 모피로 만든 예복, 눈표범 150마리의 가죽으로 장식한 게르, 몽골 독립 선언서 등의 전시품이 있다.







카페베네에서

전통공연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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