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낭성면무성리에 위치한다.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이 태실(胎室)이 청주에서 동쪽으로 20리 떨어진 청주목 산내일동면 무쌍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가 바로 현재의 낭성면 무성리이다.
이 태실은 1695년(숙종 21)에 조성되었던 영조(1694∼1776)의 태실을 1729년(영조 5)에 다시 왕의 태실 규모와 구조에 맞도록 고쳐 만든 것이다. 태실의 형태는 공주에 있는 숙종의 태실을 모방하여, 중앙에 2단으로 된 정사각형의 대석을 놓고 그 위에 계란모양의 태실석(胎室石)과 팔각의 갓처맛돌을 놓았다. 그리고 그 주위에 8개의 장대석을 8각으로 놓고, 8각의 모서리에는 우주석(隅柱石)을 세웠다. 8면의 중앙에는 사각의 동자석을 세운 뒤 육각의 장대석을 가로얹은 돌난간을 둘렀다.
태실 앞에는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 상단에 조각한 태실비(胎室碑)를 세웠다. 비신의 앞면에는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 쓰여 있고, 뒷면에는 〈옹정7년 10월 14일(雍正七年十月四日建)〉이라 쓰여 있다.
이 영조태실은 한말까지는 나라에서 8명의 수호군을 두어 관리하였으나, 1928년에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구실로 태항아리만 꺼내어 서울 창경궁으로 옮기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그후 태실 자리에는 민간의 묘가 들어섰고, 태실비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옮겨 세웠다. 1982년 청원군에서 갓처맛돌이 없는 상태로 태실을 복원하였다. 청원군에서 소장한 《태실가봉의궤(胎室加封儀軌)》(필사본)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별도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충청리뷰와 충북산악연맹이 주최한 ‘삶결따라 이천오백리’ 충북도계탐사가 11일 오송역 인근 낙건정에 해단식을 갖고 5년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행사에 앞서 마지막 탐사에 나선 대원들과 도민도계탐사단 50여명은 청원군 강외면 서평리 미호천 줄기를 따라 충남 연기군 조치원 조천교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탐사를 마무리했다. 도상거리 984.586km, 100회의 걸친 탐사를 통해 인문, 자연환경, 지리, 식생 등을 조사했다.
▲ 해단식에 참가한 대원들과 도민탐사단이 낙건정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천교, 충북을 알리는 상징물 고드미.바르미 앞에서 참가한 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