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10분 분지골을 출발 -> 11시 10분 황학산 삼거리 -> 12시 40분 백화산 -> 점심 -> 1시 20분 출발 ->3시 30분 사다리재 -> 4시 10분 분지골 원점 회귀

6시간 산행

 

 

 

 

 

 

 

 

 

 

 

 

 

 

 

 

 

 

 

 

 

 

 

 

   

 

이만봉까지 가려했지만 겨울철의 짧은 낮시간 관계로 여기서 접고 하산하기로 결정

 

서청주라푸마 산악회와 함께한 주흘산 등산

30여년만에 가장 춥다는 매서운 추위로 혹한의 추위와 싸우며 산행 

 

산행코스

문경새재 1관문~여궁폭포~혜국사~주흘산 주봉~조곡골~2관문으로 하산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이춘새부부

 

이범훈

 

한병삼

 

함께 산행한 라푸마서청주점 산악회원님들

 

 

 

 

 

 

 

 

 

 

 

다음과제

1관문~여궁폭포~혜국사~주흘산~주흘영봉~부봉1,2,3,4,5,6봉~동화원~마패봉~3관문~1관문 원점회귀

(10시간 정도 예상)

여름에 다시 산행해 봐야겠습니다.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武城里)와 갈산리(葛山里) 사이에 있는 산.

 

낭성면 무성리()와 갈산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영조대왕태실유적(, 충청북도 기념물 제69호)이 있어 현재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태실은 본래 산꼭대기에 있었으나 일제 때 도굴되어 현재 북서쪽의 산중턱으로 옮겨져 있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에 위치한다. 《충청도읍지()》에는 이 태실()이 청주에서 동쪽으로 20리 떨어진 청주목 산내일동면 무쌍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가 바로 현재의 낭성면 무성리이다.

 

이 태실은 1695년(숙종 21)에 조성되었던 영조(1694∼1776)의 태실을 1729년(영조 5)에 다시 왕의 태실 규모와 구조에 맞도록 고쳐 만든 것이다. 태실의 형태는 공주에 있는 숙종의 태실을 모방하여, 중앙에 2단으로 된 정사각형의 대석을 놓고 그 위에 계란모양의 태실석()과 팔각의 갓처맛돌을 놓았다. 그리고 그 주위에 8개의 장대석을 8각으로 놓고, 8각의 모서리에는 우주석()을 세웠다. 8면의 중앙에는 사각의 동자석을 세운 뒤 육각의 장대석을 가로얹은 돌난간을 둘렀다.

태실 앞에는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 상단에 조각한 태실비()를 세웠다. 비신의 앞면에는 〈주상전하태실(殿)〉이라 쓰여 있고, 뒷면에는 〈옹정7년 10월 14일()〉이라 쓰여 있다.

이 영조태실은 한말까지는 나라에서 8명의 수호군을 두어 관리하였으나, 1928년에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구실로 태항아리만 꺼내어 서울 창경궁으로 옮기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그후 태실 자리에는 민간의 묘가 들어섰고, 태실비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옮겨 세웠다. 1982년 청원군에서 갓처맛돌이 없는 상태로 태실을 복원하였다. 청원군에서 소장한 《태실가봉의궤()》(필사본)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별도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충청리뷰와 충북산악연맹이 주최한 ‘삶결따라 이천오백리’ 충북도계탐사가 11일 오송역 인근 낙건정에 해단식을 갖고 5년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행사에 앞서 마지막 탐사에 나선 대원들과 도민도계탐사단 50여명은 청원군 강외면 서평리 미호천 줄기를 따라 충남 연기군 조치원 조천교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탐사를 마무리했다. 도상거리 984.586km, 100회의 걸친 탐사를 통해 인문, 자연환경, 지리, 식생 등을 조사했다.

 

▲ 해단식에 참가한 대원들과 도민탐사단이 낙건정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천교, 충북을 알리는 상징물 고드미.바르미 앞에서 참가한 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0년 12월 11일 충청북도 도청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삼삼오오 모여들고 이른 아침 초겨울의 추위를 털어내며 반가운

손을 잡고 반갑게 흔들며 이야기속으로 들어간다.

5년 동안 진행 되어온 충청북도 도계탐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이기에 아쉬움과 뿌듯함이 함께 어울리는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고 있다. 지난 5년간 눈이오나 비가오나 매월 둘째, 넷째 놀토에는 도청광장으로 6시에 모이는 것이 이제 익숙하여지고

있는데,,,,,,,,,,,

 

충북도청 집결 버스로 이동.

 

청원군 강내면 사곡리와 연기군 동면 예양리가 만나는 594번도로 충북과 총남 도경계선에 도착하여 몸풀기를 하고있다.

예년보다 추위가 일찍시작되어 손이 시리다.

오송과 세종시를 이어주는 4차선 도로공사와 미호천을 건너는 다리공사로 주변이 복잡하다.

미호교 다리공사를 보니 교각의 크기가 대단하다.

 

강바람이 찬 미호천 미호교를 건너

 

경부선 철교수몰두강다리 앞에서 미호천 정비사업 현장을 살펴본다.

 

이름도 신기한 수몰두강다리

 

경부선 철도 위로 화물열차가 달리고

 

미호천 둑방뒤로 강외면 일대가 보인다.

 

충북도계탐사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힘찬 발걸음들

 

연기군에서 내려오는 조천천이 미호천으로 합류하는 모습. 이만하면 강이라 불러도 좋을것 같은데 미호천이다.

도계는 조천천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하천을 따라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말끔하게

 

멀리 조치원으로 건너가는 조천교가 보이기 시작하니 도계탐사 도착점이 다가온다.

 

잠시 보조를 ?추고

 

연기군 조치원과 청원군 강외면을 잇는 조천교. 다리를 건너면 충남남 땅. 이쪽은 충북땅.

군화발이 무겁던 시절 전국에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도 충북은 통행금지가 없어 조치원사람들이 이다리를 건너와

밤늦도록 한잔하고 새벽에 통금이 해제되면 조치원으로 넘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충북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 이곳이 도 경계선으로 보이지만 조치원은 충북지역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해방후 읍으로 승격이 된 조치원이지만 수십년동안 시로 승격되지 못하고 있다 한다.

5년전 이곳에서 충북도계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도보답사를 시작하였는데 ,,,,,

 

오년전 이곳은 들판에 토목공사중이였는데,,,,

 

충북의 발전동력 오송역의 모습

 

탐사단장 연방희 대한산악연맹 충북도연맹 회장이 인삿말을 하고

 

강태재 대표의 축사

 

도보답사로 출발한 충북도계탐사 2006년 5월 13일 출발하여 2010년 12월 11일 현장탐사가 마무리되고 있다.

 

충청북도 도경계선 탐사

기간 : 총 5년(2006년 5월13일~2010년 12월 11일

거리 : 984.586km

시군 : 10개시군(2개시. 8개군. 50개 읍면. 159개 마을)

내용 : 도경계선의 인문, 자연환경, 지리, 식생, 마을

         역사문화

횟수 : 매월 둘째 넷째주 토요일 90회

참가 : 1,710명

출처 : 송태호의 블로그
글쓴이 : 군자산 송태호 원글보기
메모 :

 

 

 

 

 

 

 

 

 

 

 

 

 

 

 

 

 

 

 

 

 

 

 

 

 

 

 

 

 

 

 

 

 

 

 

 

 

 

 

 

 

 

 

 

 

박연수 탐사대장 

 

이진희 교수님 

 

 

 

 

 

 

 

 

 

 

회남대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