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논술, 뭐가 나오나요?
2006년 11월 22일 | 글 | 김은주 서울금옥여고 생물교사ㆍ |
 
G 고등학교 3학년 이과반 교실

단비:얘들아, 자연계 논술은 어떻게 출제되는 거야? 대학 입시요강조차 대체로 인문계 기준으로 설명되어 있어 자연계는 어떻게 나온다는 건지 감이 안 오네.

윤경:자연계 논술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내용이나 수리적 내용을 묻는데, 경희대, 동국대, 서강대 등에서는 인문계와 가까운 형식으로 출제하고 있어. 논술 주제로는 자연과학적 상식과 교양이 많이 나오지만 종종 인문계와 별 차이 없는 문제가 나오기도 하더라.

성균관대는 수식이나 풀이가 아닌 자연과학적 추론 방법 등을 묻는 그야말로 자연계형 논술을 출제하기도 했어. 또 동국대의 경우에는 1, 2, 3문항은 문과형으로, 나머지 문항은 자연과학적 교양을 묻는 이과형으로 제시한 복합형 논술을 출제하기도 했지.

민정:이야, 많이 아네. 그런데 이제 영어지문 제시, 문제풀이식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는 낼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몇몇 대학의 수리논술은 거의 문제풀이를 요구하는 것 같던데….

윤경:응, 나도 얼마 전에 논술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몇몇 대학들을 지적하는 신문기사를 봤어. 그럼 그 학교에 지원한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학생들은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문제로 시험을 본거고, 어쨌거나 시험은 이미 끝났으니.

보옥:논술 가이드라인은 2005년 8월에 발표됐지만 상당수 대학이 그 이전인 3월쯤 논술 유형을 수험생들에게 공지한 상태였어. 그래서 대학들이 사전에 예고한 내용을 변경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이번에 지적을 당했으니 내년에는 문제 유형이 좀 바뀌지 않을까?

김샘:(교실로 들어오며) 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지.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란 중에는 해석이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대학에서 반발을 하기도 해. 하지만 각 대학들이 교육부 지침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테니 앞으로는 지적당하지 않을 만한 문제를 내려고 노력하겠지? 이미 고려대와 이화여대는 수리논술 시험을 폐지하고 통합논술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단다.


교육부는 논술고사의 개념을 ‘제시된 주제에 관해 필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도록 하는 시험’으로 규정했다. 이에 몇몇 대학들이 논술고사 형태가 아닌,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정답을 구하라는 식으로 특정 교과의 지식을 평가하는 문제를 출제해 논술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예컨대 고려대, 서강대 등이 출제한 문제는 논술평가가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 지식을 측정하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에서 지적한 부분은 수리논술 영역이 많다. 수리논술에서 풀이형 문제가 출제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논술 가이드라인을 또다시 위반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하자 일부 대학들은 2007학년도 전형방법을 바꾸었다. 고려대와 이화여대는 수시 1학기 전형에서 수리논술 시험을 폐지하고 통합논술을 실시키로 했으며, 한양대는 수시 전형에서 전공적성 검사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배경에서 과학논술 형태는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관심 있는 자연계 논술의 범위는 다소 좁혀진다고도 할 수 있다. 과학적 이론이나 개념과 실생활과의 연관성, 과학사, 과학의 이해, 과학과 사회의 관계 등이 자연계 논술의 대표적인 논제이다.

논술 가이드라인에 대한 2006학년도 수시 2학기 대학별 논술고사 심의 결과는 우측 표와 같다.

대학입시에서 고등학생이 다룰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문제를 내기는 어렵다. 더구나 과학논술 평가의 핵심은 풀이 과정과 사고능력에 있으며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논술 강화는 학교 교육에 따라가며 교과서를 충실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더 유리한 일일 수도 있다.

교과서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는 과학논술 준비에 부족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학생들을 위해 교과서에서 논술문제가 출제된 예를 살펴보자.

다음 제시문을 참고해 공장지대에서 나무줄기가 검은색으로 변한 이유와 산업혁명 이후 후추나방 집단에 검은색 개체가 많아진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라(2005년 서울대 정시).
[제시문]
후추나방(Biston betularia)은 흰색과 검은색의 변이가 있으며, 그 중 검은색은 하나의 우성 대립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영국에서는 18세기 초까지 나무줄기에 착생하는 지의류와 색이 비슷한 후추나방이 많았고 검은색 개체는 거의 채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공장지대를 중심으로 숲의 나무줄기가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검은색 후추나방의 개체는 20세기 초까지 크게 증가했다.

이 문제는 금성출판사 생물Ⅱ 교과서 3단원 ‘생물의 진화’에서 탐구 1번, 자 해석에 나오는 내용이다. 많은 학생들이 문제를 보는 순간 바로 ‘자연선택의 예’라고 답할 것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동물은 보호색이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그러므로 산업혁명 이후 공장이 많이 생겨 환경오염 물질(매연이라고 답하는 학생도 많다) 등으로 나무가 검게 변했다. 검은 후추나방은 검은 나무에서 눈에 띄지 않기에 천적에게 잡아먹히지 않아 그 수가 많아진다’고 답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제시문에서 필자가 밑줄친 곳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나무줄기에 착생하는 지의류’의 색은 무엇이었을까. ‘그와 비슷한 후추나방이 많았고 검은색 개체는 채집이 거의 안 되었다’는 지문에서 유추해보면 지의류의 색은 흰색이고, 18세기 초까지 채집된 후추나방도 그와 비슷한 흰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지의류는 산업혁명 전후로 늘 같은 색인 것이다.

이 문제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은 오염으로 환경이 검어졌다는 것, 또는 나무가 검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오염으로 인해 지의류가 죽어 나무줄기가 검어졌다는 것이다. 오염 전에는 나무에 지의류가 왕성히 자라서 나무가 희었기 때문에 흰 후추나방이 눈에 띄기 어려웠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의류가 죽은 후에는 나무가 검어져서 검은 후추나방이 우세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답은 자연선택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논술시험에서 그리 단순한 대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원인과 간접원인을 분명히 밝혀주는 명확한 답안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위에서 언급한 금성교과서 156쪽의 자료해석 ‘후추나방의 진화’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영국의 맨체스터 지방에는 흰 후추나방이 대부분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이 공업 지역으로 변하면서 지의류가 죽고 나무줄기가 검어지면서 대부분을 차지했던 흰 나방은 그 수가 줄고 검은 나방이 우세하게 되었다.
오른쪽의 그림은 지의류가 왕성히 자라는 오염되지 않은 곳 (가)와, 공업화 결과 지의류가 죽고 나무줄기가 검게 변한 곳 (나)에 앉아 있는 흰 나방과 검은 나방의 모습이다.
[정리]

1. (가)와 (나) 두 그림에서 눈에 잘 띄는 나방은 각각 어느 것인가?
2. 공업화 이후 검은 나방이 우세하게 된 까닭을 자연선택설로 설명해보자.
3. 최근 조사 결과 맨체스터 지역엔 다시 흰 나방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교과서의 정리문제를 개요쓰기의 징검다리로 이용해 후추나방 제시문에 대한 답안작성 연습을 해보자.

① 1번 문항을 응용하여 → 공업화 이전과 이후의 모습을 설명한다.
② 2번 문항을 응용하여 → 자연선택설을 통해 검은 나방의 우세를 설명하되 검은 나방이 우세하게 된 직접원인과 간접원인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짚어두어 글의 논점에 주의를 기울인다. 즉 자연선택설의 내용은 간단히 기술하고 그것의 실제 예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 답안이 될 수 있다.
③ 3번 문항을 응용하여 → 맨체스터에 다시 흰 나방이 우세하게 되는 이유를 지금까지의 자신의 주장에 일관성있게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더불어 다른 지역이나 다른 상황의 응용을 언급하며 환경에 대한 자신의 생각까지 정리해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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