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철학을 뒤흔든 상대성 이론
문학과 종교에도 영향 끼쳐
2007년 03월 13일 | 글 | 편집부ㆍ |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물리학자이기도 하지만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칠, 드골, 루스벨트 같이 영향력 있는 정치인, 시인 타골, 철학자 러셀, 사르트르, 화가 피카소, 조각가 헨리 무어 그리고 지휘자 번스타인 등을 제치고 20세기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그의 영향력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입체파 미술에 기여

마그리트의 ‘거울을 보는 남자’. 앞이 비쳐야 할 거울에 뒷모습이 비친다. 마그리트는 얼굴의 앞뒤가 뒤섞인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속도로 달리면 길이가 사라져 앞과 뒤가 합쳐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을 보면 죽은 시계가 해변에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정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림 제목처럼 기억이 각인돼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시간이 정지할 수 있을까.

달리가 살았던 시대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과학계에 혁명을 일으키던 때였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추고 길이가 없어진다. 이런 물리학 개념은 달리와 같은 미술가들에게도 사고의 전환을 일으켰다.

상대성이론의 영향은 파블로 피카소 등 입체파 화가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다. ‘아비뇽의 여인들’을 보면 피카소는 사각의 큐빅 모양으로 입체감을 표시하고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하나의 평면에 합쳤다. 아인슈타인이 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더해 4차원 시공간 개념을 만들었듯 피카소는 새로운 차원을 첨가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런던칼리지대 과학철학과 아서 밀러 교수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 깨달았고 피카소는 화폭 위에서 깨달았다.

뒤바뀐 물질과 시공간의 철학

피카소의 ‘우는 여인’.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에서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면 피카소가 속한 입체파 화가들은 화폭에서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
상대성이론은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에는 지은이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의 영향으로 객관적인 진리에 대해 회의가 일어났다. 시공간이 관찰자에 의해 달라지듯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 형식이 강해진 소설이 나온다. 이를 ‘의식의 흐름’기법이라고 하는데 ‘율리시즈’를 쓴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대표적이다.

철학계에서 시간과 공간은 고대 이래로 일반적으로 인간이 경험하기 이전의 것, 물질보다 더 근원적인 것으로 해석됐다. 뉴턴은 이런 영향을 받아 시간과 공간이 물질보다 앞서 존재하고 신의 직관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독일 철학자 칸트도 시간을 인간의 경험을 규정하는 절대적 관념으로 보았다. 모두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시공간은 관측자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물질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사상은 독일의 카시러 등 신칸트학파에 속한 일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아인슈타인의 학문에 대한 태도는 또 다른 대철학자 칼 포퍼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며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 3개를 제시했다. 만일 실험이 잘못되면 자신의 이론은 틀렸다는 것이다. 젊은 포퍼는 이 사건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이처럼 ‘반증가능성’을 갖고 있는 이론만이 과학적인 이론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주장은 ‘반증주의’라는 새로운 과학철학이 됐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영향을 받은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1916년 ‘관점주의’ 철학을 새로 발표했다. 그는 관점의 수만큼 현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관점주의는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

상대적 시간으로 본 기독교

보수적인 성경학자들은 세상이 약 5000년 전에 창조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룡은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공룡 화석이 나오는 지층은 적어도 수천만년이 넘는데 모순이 아닐까.

‘신의 과학’(Science of God)이라는 책은 상대성이론을 이용해 이런 모순을 피해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일반상대론에 의하면 중력이 강한 곳을 보면 시간이 늦게 흐른다. 예를 들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을 지구에서 관측하면 무한히 천천히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빨려 들어가는 당사자의 시간으로는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 우주론에 의하면 우주는 탄생 당시 많은 에너지가 뭉쳐 있었고 밀도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중력이 강하고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1억년이 그 상황의 1초일 수도 있다. 즉 중력이 강했던 창세기의 하루는 지금의 시간으로 볼 때 100억년 일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120억년이 신의 잣대로 이야기할 때는 5000년일 수 있다. 동양에서 신선나라의 하루가 하계의 3000년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여러 불교적인 개념을 상대성이론에 맞춰 설명하는 시도가 있다. 이렇듯 상대성이론은 종교와 과학의 화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제완의 ‘예술과 철학을 뒤흔든 상대성 이론’ 기사 발췌 및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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