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무기를 발명한 천재 예술가
예술과 전쟁, 모순으로 가득 찬 다 빈치의 삶
2007년 04월 10일 | 글 | 편집부ㆍ |
 
역동의 15세기를 살았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예술, 과학, 의학, 공학 등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과시했다.
르네상스기에 기술적 상상력의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적인 인물은 단연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다. 레오나르도는 현대인에게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최고의 거장 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군사기술자로 인식되길 바랬다. 다 빈치는 밀라노의 군주에게 자신을 천거하는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본업이 화가가 아니라 군사기술자라고 소개했다. 다른 사람이 화가가 아니냐고 물으면 “그림도 그릴줄 안다”는 정도로 가볍게 대답했다. 편지에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발한 무기 9종류가 열거돼 있었다.

하지만 다 빈치의 기술적 천재성은 비단 군사기술에서 발휘된 것만이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다 빈치의 노트에는 현대 기술을 뺨치는 수준의 정밀한 각종 기계 설계도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자연의 원리를 바탕으로 생각해낸 발명품들이었는데, 40여년간 스케치한 3만여쪽의 분량 중 약 6천쪽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그림의 내용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비행기, 낙하산, 장갑차, 소형 전함, 증기기관, 잠수복 등 몇 세기가 지나고 나서야 현실화됐던 기계들의 설계도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러나 다 빈치의 설계대로 장치를 만들었을 때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또 이후의 기술 성장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설계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한계점은 다 빈치가 같은 시대의 다른 기술자들에 비해 너무나 앞섰기 때문에 발생했을지 모른다. 설계 내용을 직접 제작해 충분한 실험 과정을 거쳤다면 상당히 많은 장치들이 당시에 성공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모험심과 상상력, 그리고 독창성을 실현시키기에는 당시의 기술과 인식 수준이 상대적으로 너무 뒤쳐져 있었다.

무기 개량에 힘 기울인 평화주의자

인체의 황금비율을 표현한 다 빈치의 스케치.
다 빈치의 발명품을 꼽아보면 모두 70가지가 넘는다. 그 가운데는 방적기, 인쇄기, 곡면 거울 연마기, 굴삭기, 말뚝 박는 기계, 강바닥을 고르는 준설선, 외륜선, 주행기록계와 같은 산업용 기계장치도 있지만, 전쟁무기로 투입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발명품도 꽤 많다. 성을 공략하기 위해 성 주변 도랑인 해자의 물을 끌어올려 빼는 양수기는 원래 아르키메데스가 개량한 것인데, 다 빈치는 지름을 줄인 호스를 여러 개 묶는 방식으로 흡입력을 강화했다. 양수기뿐 아니라 투석기, 낙하산, 경량형 대포 등도 예전에 쓰던 장비의 결함을 고쳐 성능을 크게 높였다.

그런데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다 빈치가 전쟁무기 설계와 제작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어딘지 이상하게 들린다. 더구나 그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에다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서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16세기 이탈리아 예술가였던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가 쓴 다 빈치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무척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에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현악기 연주를 즐기며 소년들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이것도 끔찍한 대량살상무기를 눈 깜빡하지 않고 뚝딱 만들어내는 전쟁광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수많은 예술가 가운데 다 빈치만큼 예술과 삶이 자기모순으로 뒤엉킨 사례는 다시 찾기 어려울 것이다.

권위에 도전하는 창조성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직접 스케치한 연발대포의 설계도면.
다 빈치의 수기를 훑어보면 섬뜩할 만큼 예리하게 자연을 관찰한 예를 종종 엿볼 수 있다. 갈릴레오보다 앞서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노트 한 구석에 끼적거려놓는가 하면, 난파선에서 떼죽음 당한 사람들의 얼굴과 손금을 일일이 비교한 다음 ‘관상이나 손금이 운명을 말해준다는 예언가와 관상쟁이는 모두 엉터리 사기꾼’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다 빈치는 삼라만상과 자연을 정교한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장치라고 봤다. 전쟁기계를 구상하면서도 살상능력의 효율성보다 구동 메커니즘의 원리를 이해하고 구현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는 밀라노를 통치하던 스포르차의 요구를 받아들여 살상무기를 설계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새로운 기계적 작동원리의 구현에 있었다. 세속의 권위는 그의 자유로운 발걸음을 구속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회화의 거장 다 빈치가 전쟁무기의 디자인에 몰두했다는 사실도 천재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구현이란 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 빈치는 격랑과 혼돈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변혁과 도전의 소용돌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오직 진리의 먼 별빛을 응시하면서 예술과 과학의 역사를 헤쳐 나갔다. 그가 평생 꿈꾸던 이상은 자연이 감추고 있는 궁극의 원리였다.

<노성두의 ‘디지털... 노마드... 아이콘 다 빈치’, 김훈기의 ‘만능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사 발췌 및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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