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 3. 소티콜라 - 라푸베시 - 마차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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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이스트 통행세, 개울 목욕 |
2007. 10. 15(월) |
아침 5시에 잠이 깼다. 히말라야에 들어오면 잠이 적어진다. 일찍 잠을 자는 탓도 있지만 책을 보느라 늦게 자도 마찬가지다. 피곤하게 몸을 움직였어도 일찍 누니 떠지고 그래도 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밤에 후레쉬 빛이 텐트밖을 가끔 지나가는 걸 보니 셰르파들이 물건의 분실을 막기 위해 교대로 입초를 선 모양이다.
먼저 화장실부터 다녀 온 후 짐을 싼다. 일단 하루의 운행이 끝나고 짐이 들어오면 갈아 입을 옷가지를 찾느라 다 풀어제쳐 놓는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잘 싸서 가방에 집어 넣는다. 이미 무스탕 트레킹 때 경험한 매일 반복되는 일과지만 며칠 지나면 숙달되어 어렵지 않다. 6시에 모닝티가 배달되고 10분 후 세숫물이 온다. 세수 후 곧 아침식사가 시작되므로 그때까지 침낭을 과 짐을 다 싸서 자물쇠로 채워놓아야 한다. 아침 먹으러 갈 때는 배낭과 스틱, 카메라 가방 등을 다 가지고 나간다.
밖에는 식당텐트가 이미 철거되어 있다. 야외식탁에서 우리가 아침을 먹을 동안 텐트가 철거된다. 포터들은 이미 출발하고 있다. 제일 늦게 출발하는 포터는 우리의 식사가 다 끝나야 짐을 쌀 수 있는 식탁과 의자 담당 포터다. 아침은 간단하다. 뽀리지 대신 누릉지와 가지고 간 라면을 교대로 끓여달라고 했다. 짜파티와 계란 하나가 따라 나온다. 뜨거운 핫초코릿부터 듬뿍 마신다.
6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7시에 출발했다. 무성한 숲 길을 걷고 고도도 300m 정도 오르는 오늘도 그리 힘든 일정이 아니다. 건너편 절벽에서 폭포가 자주 나타난다. 규모가 엄청나다. 얼마 가지 않아 마오이스트 검문소가 나타났다. 어제 저녁 작대기 하나 들고 어린 녀석 하나가 나타나 타시와 말을 주고 받을 때 이미 짐작했던 일이다.
사유재산제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타락과 도덕적 부정을 간파하고, 재산의 공동소유를 기초로 하여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공동사회를 실현하고자 한 공산주의의 이상은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와 레닌이 주창하여 20세기에는 거의 전 세계를 풍미했다. 인류 역사상 현실적인 면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이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20세기가 끝나기도 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권력욕과 사리사욕 등이 너무 강렬해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고상한 이념은 또 다른 형태의 계급사회를 형성하여 피지배계급층에게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실패한 사상이지만 공산주의는 봉건주의와 제국주의로부터 세상의 인민을 깨우는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네팔에 공산주의가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네팔의 사회가 낙후되었다는 말과 같다. 흔히 30년 전 우리와 비교하지만 사회적 구조와 그 구조를 이루는 사상적인 면에서는 우리의 50년대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네팔의 마오이스트들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만일 내가 네팔에서 태어났다면 나도 그 일원이 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그들 내부의 일이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 지배층의 행태는 그들에게 일말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편들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히말라야가 좋아 찾아왔을 뿐이다. 히말라야는 왕족이든 정부군이든 마오이스트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다 받아들인다. 사람과 제도는 잠시 머물다 가지만 수천 만 년 동안 히말라야는 그대로 있다.
마오이스트들이 통행세를 내라고 한다. 명분은 혁명기금이고 그 돈은 나중에 혁명이 완수되면 다 환불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지만, 혁명이 성공할지도 의문이고 설사 성공한다하더라도 그 돈을 다시 돌려준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인당 14일간의 통과비로 1400루삐, 약 23불이다. 트레킹이 허가비로 240불을 네팔정부에 낸 것에 비하면 약소하다. 그나마 지금은 하루 100루삐니 다행이다. 예전에는 1인당 5000루삐를 걷을 때도 있었다.
그 정도는 시비할 것 없이 얼른 주는 것이 좋다. 여기는 그들의 해방구여서 그들이 바로 법이다. 강제징수는 하지 않고 친절하게 싫으면 돌아가라고 한다. 미소를 지으며 그들은 말한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여기서 네팔 정부의 무능함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히말라야를 한 두 번만 들어와 보면 산간오지에서 정부군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오직 한줄기 절벽에 난 길로 아무리 많은 병력이 온다한들, 다이너마이트 하나에 길이 끊어져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길은 계속 숲길을 오르내린다. 9시부터 한 시간은 계속 절벽길이다. 그리고 트레킹 초반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고산지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항상 절벽길을 가야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때도 마찬가지다. 마을은 항상 계곡을 끼고 있으니 그 마을을 지나가는 길 역시 항상 계곡 옆 절벽길로 나 있는 것이다.
작은 지류 계곡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남형씨가 그곳에서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았다. 마차콜라라는 이름이 그 계곡에서 물고기(마차)가 많이 잡혀서 생긴 이름인 줄은 짐작했지만 우리나라 계곡 웅덩이처럼 이곳도 작은 물고기가 사는 것을 이번에 처음 보았다. 이런 지류 계곡은 무성한 나무에서 나오는 물이라 물고기가 있는 것 같다.
작은 바티(bhatti)가 길가에 가끔 나타난다. 바티란 '찻집'이란 뜻이다. 우리로 치면 주막 이다. 현지인 여행자들이 잠시 쉬며 차를 마시는 작은 오두막이다. '에클로바티'란 지명은 안나푸르나의 좀솜 위쪽에도 있지만 이곳 마나슬루에도 있다. 뜻은 '한 채의 찻집'이다. 이런 곳은 반드시 돌로 만든 초우따라가 있어 짐꾼들이 편하게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다.
포터들이 쉬고 있다. 그곳은 또 우리가 쉬어가는 곳이다. 이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된다. 어린 나이에 남의 짐을 들어주며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처지가 안쓰럽고, 적은 보수를 받는 이들 덕분으로 그리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히말라야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이 고맙다. 레이놀즈의 말대로 우리는 이들을 단지 짐꾼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정을 가능하게 해 주는 '노동전문가'로 생각해야 한다.
샌들을 신고 운행하니 아무래도 불편하다. 그러나 아직은 견딜 만하다. 남형씨도 출발 때부터 샌들을 신고 있으니 위안이 되었다. 잠시 쉬면서 물병의 목을 축인다. 캠핑트레킹이 아니었다면 밀크티 한 잔 사 먹었을 것이다. 캠핑을 하면 밀크티를 자주 마시게 되니 굳이 사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땀을 흘린 후에는 물이 제일 맛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차를 팔아주지 못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9시 조금 넘어 두 번째 바티를 지나자 이미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절벽길이 나타났다. 멀리서 보기에도 엄청나고 실제로도 부리 같다키 강과 거의 수직으로 나 있는 멋진(?) 절벽길이다. 나무만 없다면 영화 <히말라야>에 나오는 폭순도 호수 절벽길과 같은 분위기일 것이다. 모두들 열심히 올라간다. 현지인 아줌마들도 짐을 지고 가고 있다. 아래에서 장을 보고 올라가는 모양이다.
오르막이 끝나고 잠시 강물과 평행선을 그리며 난 길이 다시 오르막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평행선 길이 나오고 곧 계단식 논이 펼져진 마을이 나타났다. 점심 먹을 라푸베시 마을이다. 시계를 보니 10시 20분이다. 오전 운행은 3시간 30분 내외인 이 정도 운행이 좋다. 가볍게 먹은 아침의 칼로리가 거의 다 소비되어 배가 고플 시간이다.
날은 점점 더 흐려지더니 빗방울까지 뿌린다. 현지인 여행자들도 말도 모두 점심을 먹기 위해 짐을 부려놓았다. 시장을 보고 가는 윗 마을 아줌마들과 처녀들도 처마 밑에서 쉬고 있다. 아이들도 동행하고 갓난쟁이까지 도꼬(대바구니)에 싣고 있다. 거친 히말라야는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적자생존의 법칙은 어디에서건 같다.
맛잇는 티베트 빵으로 점심을 먹고 12시에 출발했다. 길은 강에서 조금 떨어진 산길이다. 30분쯤 지나자 마나슬루 지역에서 제일 긴 다리가 나타났다. 100미터는 될 것 같다(당시는 이 기록이 나중에 필림에서 깨질 줄 몰랐다). 한 서양인 커플이 가벼운 차림으로 통과하고 있다. 이 다리는 왼편 절벽에서 떨어지는 큰 폭포가 만든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다. 다리가 없다면 강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수고를 해야 했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계곡이 넓어져 툭 터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어느새 오후 2시가 되었다. 별로 힘든 길은 아니지만 온 몸이 땀에 젖었다. 길가에 노점이 하나 나타났다. 굵은 오이와 과자를 팔고 있다. 오이를 두 개 사서 깎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쉬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때 그렇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 때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아무래도 그때만 못하다. '도로묵'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1시간 동안 산허리길을 더 가니 멀리 오늘의 목적지 마차콜라가 보였다. 3시 15분 마차콜라 도착. 제법 큰 마을이다. 룽다가 보이고 붉은 칸나도 보인다. 소박한 산골 마을의 정취가 풍기는 마을이다. 캠프사이트에는 주방팀이 도착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짐을 진 포터들도 도착했다. 스태프들은 텐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캠프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무진행 보살님이 시원한 개울물에서 머리를 감았다고 해서 바지를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개울로 갔다. 기회가 있을 때 목욕을 하고 싶었다. 고지대로 가면 목욕하기가 어렵다. 지류 개울 쪽은 터가 넓어 말들이 짐을 내려놓고 풀을 뜯고 있다. 말들도 오늘 여기서 야영하는 모양이다. 마부도 있고 동네 아이들도 여러 명 보인다.
그동안 젖은 옷을 모두 가지고 와 간단하게 빨고 약간 춥기는 하나 용감하게 개울물에 몸을 �었다. 그런데 그게 아무래도 잘못이었다. 개운하게 씻은 것은 좋았으나 다음날부터 감기가 걸려 이후 열흘 가까이 고생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저녁 식사 전 식당에서 차를 마시는데 대규모 서양팀이 도착했다. 오후 6시가 다 되었는데 지금 도착했으니 오늘 운행이 제법 길었을 것이다. 알고보니 이들은 첫날 우리와 함께 출발한 프랑스 팀이다. 그들은 아루갓바자르 못미처 야영을 하는 바람에 반나절을 까먹었다. 그것을 오늘까지 이틀 동안 보충하려니 늦어진 것이다. 그들은 개울쪽 공터에 캠프를 친다. 일찍 운행을 마치는 우리팀은 항상 동네에서 제일 좋은 곳에 캠프를 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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