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 8. 갑 - 남룽 - 리히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휴식일.  빙하호수 방문)

3,680m

5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고소적응일.  티베트 국경 방문)

4,0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고산 트레킹이 시작되는 누프리 계곡

2007. 10. 120(토)


 

며칠 째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 기침은 나오지 않는데 콧물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차콜라에서 땀을 잔뜩 흘린 후 찬물에 목욕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무진행 보살님이 주는 감기약을 먹고 있지만 쉽게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주머니에는 여차하면 코를 풀 수 있도록 휴지를 준비하고 있다.

출발 전 1리터짜리 물통에 뜨거운 물을 2/3 정도 받고 차를 조금 넣는다. 둥글레차와 우롱차(烏龍茶), 녹차를 가져왔는데 우롱차가 제일 인기가 있다. 둥글레차 티백은 바로 먹어야지 물병에 오래 넣어두면 흐물흐물해져 지꺼기가 나오고 맛도 별로다. 우롱차의 향은 히말라야의 물 맛을 먹기 좋게 바꾼다. 이 차가 물이 좋지 않은 중국에서 발달된 이유를 알겠다. 녹차는 물이 나쁘면 무용지물이어서 그냥 생으로 먹는 편이 나았다. 우롱차는 차잎이 물에 풀리면 아주 커지므로 10알 정도만 넣어야 한다. 말린 잎이 작다고 조금 많이 넣으면 병의 반이 차잎으로 찬다. 찻물도 너무 진해진다.

7시 15분 캠프를 출발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숲길이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 계곡에 놓인 나무다리가 보였다. 저 다리를 건너가는가  했는데 계속 직진한다. 그 다리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건너편 마을로 가는 길이란다. 무성한 숲길이 계속되었다. 자주 보이는 마니월과 수력으로 돌아가고 있는 마니차만 없다면 이곳이 히말라야가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요세미티 계곡을 걷는 기분이다. 경사도 완만한 오르막이라 힘들지 않았다.

맞은 편 계곡 우람한 절벽을 바라보며 산길을 돌아가다가 8시 경 부리 간다키 강을 건너 오른쪽 사면으로 건너갔다. 이곳은 강이라기 보다는 계곡 수준이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계곡도 좁아지고 수량도 적다. 한 곳은 병목현상이 있어 물이 우렁차게 흐른다. 양쪽 바위가 물에 닳아 반들반들하다.

이곳은 앞 장에서 소개했던 스넬그로브의 글 초반부의 "우리는 불어난 급류 위에 놓인 단단한 나무다리를 건너 왼쪽 사면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곧 천연 바위다리를 통해 오른쪽 사면으로 되돌아 왔다. 아래쪽 깊은 계곡에는 부리 간다키가 포말과 세찬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에 해당하는 곳이다. 스넬그로브는 위에서 내려왔고 우리는 위로 올라가고 있다. 지금은 천연다리 대신 작은 다리가 있다. 그 옆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무너진 외나무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 무성한 숲 사이 바위 옆에서 휴식. 랄리구라스(로도덴드론) 나무와 대나무, 전나무, 호랑가시 나무가 함께 섞인 숲이다. 가이드북을 보니 남룽 까지는 이런 길이며 원숭이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끔 답답한 숲 속을 빠져나와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곧 스넬그로브의 책에 나온대로 바위 위에 걸쳐진 나무다리를 통해 다시 왼쪽 사면으로 건너갔다.

무성한 숲 길이 계속되고 있다. 산기슭 전체가 큰 나무들의 넓은 숲을 이루고 있다. 무성한 숲이 있는 서쪽 능선 위로 설산의 이 봉우리가 보이고 있다. 위치상으로 볼 때 마나슬루 능선은 아니고 나디출리와 히말출리, 보우다히말 연봉 같다. 수풀이 무성하니 길 가 바위에 석이(石耳) 버섯이 가끔 보인다. 야생화에 일가견이 있는 무진행 보살님과 보명화 보살님이 운행을 멈추고 열심히 딴다. 드물기도 하고 운행 중이라 양이 많지는 않다.

이곳 사람들도 석이 버섯을 먹는지 모르겠다. 6년 전 칠불사 살 때 대중공양 들어온 것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쫄깃쫄깃한 것이 정말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났다. 히말라야의 석이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마나슬루에서 석이 버섯이 날 만한 곳은 숲이 무성해 그늘이 져 이끼가 많은 이곳이 유일할 것 같았는데 나중에 빔탕에서 띨제 내려가는 길도 나무에 이끼가 많은 숲이어서 그곳도 가능성이 있다.

9시 10분 현재 계속 오르막이다. 고도계는 2540m를 가리키고 있다. 30분 후 남룽(Manrung)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 가는 초입에서 마을에서 나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인 체왕 도르제 라마는 3년 전 한국에서 일하고 왔다해서 깜짝 놀랐다. 옷을 보니 스님인 것 같다. 이름 뒤에 붙은 라마라는 것도 그렇다. 네팔 사람들의 제일 뒤에 오는 이름은 그들의 종족을 표시한다. 네팔에서 라마족은 없다.  삼툭 구릉 라마처럼 환속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이 깊은 마나슬루 산중에 사는 사람이 한국에 일하고 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과연 티베트 종족은 유목민답게 국제적이다. 젊은 사람도 가기 힘든 형편인데 40세는 넘어보이는 이 아저씨가 갔다는 것도 놀랍다. 영어나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고 더듬거려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가지고 있던 커피사탕 몇 개를 만난 기념으로 주었다.

남루(Namru)라고도 하는 남룽에는 10시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이 협소하다. 롯지에서 운영하는 식당 안에 가게도 하나 있고 등유를 판다는 간판도 있지만 별로 머물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다. 하루의 운행을 멈추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라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여 여기서 점심 먹고 다음 마을인 리히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처음 계획했던 갑-남룽-로-사마가온의 일정은 갑-리히-사마가온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하루의 여유가 더 생겼다. 사마가온에서는 하루 휴식일이 있으니 남는 하루는 마지막 마을인 삼도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고소적응일은 많이 둘수록 좋다.

마을 길가 담장 위로 장작이 많이 쌓여 있다. 티베트나 무스탕에는 나무가 귀해 평평한 지붕 가에 장작을 빙 둘러 많이 쌓는 것으로 부를 과시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흔해빠진 것이 나무라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붕도 판석이 아닌 판자로 얹은 너와지붕이다. 마을 자체는 앞 뒤의 높은 산 때문에 답답한 느낌을 준다.

식당은 그런대로 괜찮다. 입구쪽 진열장에는 콜라, 라면, 사탕, 맥주 위스키 등이 잔뜩 있다. 2500고지에서 운행을 멈추고 있자니 춥다.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열고 자켓을 걸쳤다. 출입문에서 찬 바람이 들어왔고 깨진 창문에서도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얼마 후 안드레스의 여행기에 나오는 술취한 사우지(남자 주인)가 들어오더니 아무 말없이 종이를 내미는데 초등학교를 위한 기부금 권선문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영수증을 불쑥 내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100루삐만 기부했다. 말 한마디에 천량빚을 값는다고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면 500루삐는 기부받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11시 15분 출발했다. 주방팀들이 미리 도착해서 요리를 준비하므로 점심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지류에 걸쳐 있는 전형적인 히말라야 스타일의 나무다리를 건너니 체크포스트가 나온다. 경찰 한 명이 길가에 책상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다. 타시가 등록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오르막을 올라 무성한 소나무 숲 사이에 있는 마니월을 지나니 시야가 툭 터졌다. 12시 경 반짬(Bhanzam)이라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둔덕에 올랐다. 마을 이정표는 반짬인데 트레킹 지도에는 바르참(Barchham)으로 표기되어 있다. 넓은 운동장과 돌집이 있는 마을인데 운동장은 자세히 보니 보리밭이다. 아직 추수 전인 누런 보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그러나 마니월이 있고 돌담이 정겹게 쌓여 있는 마을에 인적이 없으니 어쩐지 슬쓸하다. 이런 곳은 아이들이 뛰놀고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인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정말 넓은 보리밭이다. 뒤를 돌아보니 설봉이 보인다. 가네시 4봉이다. 마을을 지나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고도는 점점 높아져 본격적인 고산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춤 계곡 입구에서 시작되는 쿠탕 계곡은 남룽을 지나면서 누프리(Nupri) 계곡으로 이름이 바뀐다(쿠탕을 하누프리[lower Nupri]로 부르기도 한다). 누프리는 '서쪽 산들'이란 뜻이다. 그르므로 누프리 계곡은 '서쪽 산들의 계곡'이라는 뜻이다. 이 계곡이 마나슬루, 라르키아 피크 등 서쪽에 있는 산에서 내려와 쿠탕 계곡까지 계속 동진하는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은 원정대는 말할 것도 없고 트레커들도 필연적으로 티베트어를 접하게 된다. 그래서 몇 가지 말의 뜻을 알고 가면 좋다. 티베트어로 동쪽은 샤르(shar), 서쪽은 눕(nup), 남쪽은 로(lho), 그리고 북쪽은 창(chang)이다. 세르파라는 말은 샤르-파(Shar-pa)라는 티벳어에서 나온 말인데 파(pa)가 '~지방 사람'이란 뜻이므로 '동쪽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무스탕에서 중국에 대한 저항 게릴라 활동으로 유명했던 캄파는 '캄 지방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티베트에서도 용맹하기로 유명한 캄 지방 사람들이다.

에베레스트 서쪽에 눕체(Nuptse,7855m )가 있고 남쪽에는 로체(Lhotse, 8516m)가 있다. 로체와 거의 붙어 있는 동쪽 봉우리는 로체샤르(Lhotse Shar, 8400)다. 로체샤르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인 로체의 위성봉으로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봉우리인데 8,000m가 넘으면서도 흔히 8,000m 이상의 고봉을 의미하는 14좌에는 들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독립봉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아 8,505m의 얄룽캉과 함께 16좌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또 에베레스트 북쪽에는 북쪽에는 창체(Changtse, 7553m)가 있다. 이 산들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눕체는 서산, 로체는 남산, 로체샤르는 남동산, 창체는 북산이다.

'탕'은 티베트어로 '평원'이란 뜻이다. 무스탕의 수도 로만탕의 원래 이름은 '만탕'으로 '기원의 평원'이란 뜻이다. 마나슬루 트레킹에서 라르키아 라를 넘어 이르는 곳 이름은 빔탕인데 '모래의 평원'이란 뜻이다. 그곳에는 정말 빙하에서 부서져 나온 마사토 같은 모래가 많다. 따라서 티베트 북부에 있는 고원인 '창탕(Changtang)'이 '북쪽 평원'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창탕에서 발원하여 히말라야와 평행선을 이루며 동진하다가 나중에 뱅골만으로 빠지는 강 이름인 창포(Changpo)의 창도 북쪽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티베트계 사람들의 이름은 종종 그가 태어난 요일을 취한다. 티베트어로 일요일은 니마(Nima), 월요일은 다와(Dawa), 화요일은 밍마(Mingma), 수요일은 락빠(Lhakpa), 목요일은 푸르바(Phurba), 금요일은 빠상(Pasang), 토요일은 �바(Pemba)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락빠는 영화 <히밀라야>에서 죽어서 돌아오는 틴레의 아들 이름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바로 야크 등에 실려 오는 남편을 보고 그의 아내 뻬마가 "락빠!"하고 소리치며 우는 장면이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를 두어 번  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이름을 가진 세르파족의 가이드나 포터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아주 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무스탕의 로만탕에서 만난 니마는 일요일생이고, 지금 우리의 주방팀에 있는 빠상과 푸르바, 그리고 밍마 세르파의 출생요일은 각각 금요일과 목요일, 화요일임을 알 수 있다.

'행운(good luck)'을 뜻하는 타시(Tashi)라는 이름도 티베트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다. '장수(long life)'을 뜻하는 이름은 체링(Tsering)이고 '행운'을 뜻하는 이름은 소남(Sonam)이다. 이렇게 기복적인 이름을 선호하는 것은, 삶이란 끝없는 고통이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불확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한 인간의 보편적인 소망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소망대로 모든 이들이 무병장수를 이루기는 어렵다. <보살의 37가지 수행>을 가르친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톡메 상포 스님(1285-1369)은 병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병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나쁜 업의 영향으로 생긴 아프다는 느낌에서 온 착각된 경험일 뿐이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확실한 특질을 보여준다. 또 병이란 마술적인 환영(幻影)이어서 느끼긴 하지만 여전히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병은 윤회계의 성질을 보여주는 정신적 스승이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참을성을 연마하는 것,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이 바른 대처법이다. 이런 면에서 병은 지난 생에 저질렀던 나쁜 행위와 무지를 정화하는 가장 뛰어난 방법이다. 나는 병을 일부러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이 병으로 죽는다 할지라도 나는 깊이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병든 몸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없다. (<Life and Teaching of Ngulchu Thogme Sangpo>(Translated from Tibetan) Translated By Erik Pema Kunzang, 대원 한글역)

반짬 마을을 뒤로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큰 나무는 없고 낮은 관목이 있는 산길이 나온다. 중간중간에 집들이 흩어져 있다. 이곳 역시 계곡 건너편으로도 마을이 보인다. 조금 더 오른 후 뒤를 돌아보니 가네시 히말 4봉(7102m)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얼마 후 계곡이 넓어지고 마을을 알리는 리히(Lihi, 2905m) 마을의 카니가 나타났다. 제법 큰 마을이다. 집들이 넓은 경작지를 중심으로 그룹을 이루며 여기 저기 모여 있다.

카니 앞에는 마을환영위원회(?) 위원들이 마중나와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마중은 이들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동생을 업고 있는 녀석도 둘이나 된다. 40대 이상이라면 대부분 겪었던 전형적인 우리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마중나온 '위원님'들에게 사탕 하나씩 주고 싶은 유혹을 느꼈으나 마음을 굳게 먹고 참았다. 만일 그런 식의 보답이 계속 된다면 순순한 아이들의 마음은 트레커들이 나타날 때마다 뭔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굴해지고 만다.

카니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옥수수 대를 모으고  있다. 옥수수 수확은 다 끝났지만 보리는 아직 추수 전이다. 마을 중앙의 마니차 담장 옆을 지났다. 캠프장은 마을을 벗어나 있다. 초르텐 카니를 지나는데 또 다른 환영인파가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사탕을 달라고 한다. 이렇게 뭘 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주어서는 안된다.

오후 1시, 카니를 지나 캠프장에 도착했다. 우리 보다 먼저 온 부부 트레커가 마당 탁자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제 우리 뒤에 도착해 아랫집에 캠프를 친 팀이다. 이들은 잠시 후 다음 목적지로 떠났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여기서 1시간 거리인 쇼(Sho)나 2시간 거리인 로(Lho)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등산화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젖은 옷은 잠깐이라도 바람에 말린다. 발목은 이제 많이 나아졌다. 3일 동안 운행했는데 끈으로 묶은 등산화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끈은 닳아 곧 떨어지겠지만 다른 끈으로 매면 된다. 늘 가지고 다니던 비상용 끈을 7번째 트레킹에서 처음 쓰면서 7년간 가지고 다닌 보람을 느꼈다.

등산장비점에서 파는 가는 줄이었으면 더 질기겠지만 그나마 이런 허접한 끈이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포터들은 아직도 슬리퍼로 운행하고 있다. 아무리 습관이 되었다 해도 그것은 힘든 일이다. 등산화를 신으면 신발이 알아서 발을 고정시켜 주니 발을 디딜 때마다 발까락에 힘 줄 일이 없다. 슬리퍼는 매 번 균형을 잡기 위해 신경을 쓰므로 쉬 피로해진다.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오후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북 방향의 맞은 편 계곡 절벽 위로 6천미터 급 산들이 줄지어 티베트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쿠탕 히말이다. 꼭대기에 눈은 그리 많지 않다. 텐트를 다 친 포터들은 카드놀이에 열중이다. 우리 같으면 고스톱 쯤 될 것이다. 40세의 밍마 세르파도 합류해 있다. 도대체 이 친구들은 틈만 나면 카드놀이다. 단순하게 즐기는 거라면 좋은데 외상장부까지 기재하는 것을 보니 단순한 재미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들에게 트레킹 중 유일한 오락거리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짐만 나르는 일이라 일찍 운행을 마치면 할 일이 없다. 히말라야에 오는 것도 우리처럼 히말라야가 그리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들어오는 것이다. 수없이 보아 온 히말라야가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포터들이 그러는 것은 그렇다 치고 나잇살 먹은 타시와 밍마까지(둘 다 40세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별로 보기 좋지 않다.

타시는 운행 때는 물론 아침 일찍부터 텐트 안에서 늘 진언을 외우며 염주를 돌리는 독실한 불자인데 카드놀이 할 때는 영락없이 포터 수준으로 내려간다. 하루 일정이 빡빡하면 스태프들이 한가하게 카드놀이를 할 여유가 없다. 도박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이번엔 대원들이 피곤해 죽겠다고 아우성 칠 것이다. 차라리 그들의 '여가선용'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

2층 주방으로 가니 컴컴한 방안에서 우리 주방팀과 포터 몇 명이 화톳불을 쬐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와 할머니도 있다. 마나슬루 지역의 롯지 주방은 다른 메이저 트레킹 코스에 있는 마을의 주방과는 천지차이다. 그런 곳은 주방이 모두 정갈하다. 조금 엉성한 쿰부 윗지역(특히 닥락)이라도 화로주변이나 찬장은 정돈되어 있다. 이곳은 현지인들 용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수선하다. 마침 콩을 볶아 먹고 있어 뜨거운 콩을 호호 불어가면 얻어 먹었다.

저녁은 언제나 그렇듯 진수성찬이다. 밥에 수프에 빵에 한국산 밑반찬까지 푸짐하다. 저녁에는 촛불을 켠다. 트레킹 둘째날 저녁 소티콜라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주방에 가보니 어두운 곳에 촛불을 켜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빠상에게 식당텐트에도 촛불을 켜달라고 하니 그후부터 매 번 저녁마다 받침대로 쓸 돌을 골라와 촛불 세 개를 켜 준다.

등유를 압축하여 쓰는 밝은 랜턴이 있지만 시끄럽기도 하고 너무 밝아 쓰지 않고 있다. 촛불 세 개가 어두울 것 같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눈에 익숙하면 잘 보인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분위기가 좋다. 92년 여름 독일 갔을 때 제일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그곳 사람들이 저녁 식사 때는 항상 촛불을 켜고 먹는 것이다. 집에서는 물론 식당에 가도 그랬다. 환한 형광등 조명 아래서 시끌벅적하게 먹는 우리와는 정서가 많이 달랐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어쩌면 호롱불을 켜고 밤을 보냈던 유년시절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는 궁핍한 삶이었겠지만 어린 아이 때는 그런 절박함을 알 리가 없다. 다만 항상 배부르게 먹고 싶었다는 기억은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지난 일 중 어려웠던 일보다는 즐거웠던 일이 추억이라는 포장과 향수(鄕愁)라는 간판을 달고 나타난다.

타시가 이곳에서 들은 소식에 의하면 며칠 전 비가 내렸을 때 라르키아 라에는 폭설이 내려 3일간 길이 막혔다는 소식이다. 지금은 통행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비가 일찍 내린 것이 천만다행이고 앞으로는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날씨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이라 인솔자인 나로서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오늘까지 8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슬슬 체력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 다행히 혜명화 보살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오늘은 백산스님과 남형씨가 고소 조짐이 있어 다이아목스를 주었다. 나는 여전히 콧물을 달고 있다. 두 노장 보살님들은 아직 멀쩡하다. 저녁을 먹은 후 내일의 일정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찍 각자의 텐트로 돌아갔다. 감기도 걸렸고 3000m 가까운 고지라 조금 추워 우모복을 입고 잤다. 내일부터 본격적이 고산 트레킹이 시작된다.
 

trek 8. 갑 - 남룽 - 리히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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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바위 수로를 흐르는 부리 간다키 강물. 바위가 물에 닳아 반들반들하다. 스넬그로브의 글에 나오는 장면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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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숲 사이에서 첫 번째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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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말씀이 새겨진 마니월. 불상조각이 없는 마니월은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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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삼림이 있는 능선 뒤로 마나슬루 히말 연봉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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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5분 두 번째 휴식. 이 구간에서 가끔 바위 위에 붙어 있는 석이 버섯을 보았다. 숲 속이라 습도가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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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까지 이런 울창한 이런 숲속길이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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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 마을 들어서기 직전 만난 마을 사람들. 한 사나이가 먼저 "꼬레아?"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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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3년 일하고 돌아온지 3년 되었다는 체왕 도르제 라마. 붉은 색의 옷이 승려풍이다. 한국말은 영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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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 마을 입구 길가에 있는 장작더미. 나무가 흔한 곳이라 연료는 걱정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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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의 롯지 식당. 그늘이고 찬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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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의 꼬마. 장작 더미에 말리고 있는 것은 야크가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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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히말라야의 나무다리. 깊은 협곡에 놓여 있으면 아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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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면 바로 체크포스트가 나온다. 경찰관 모습이 서양사람 같다. 저지대에서 파견 나온 브라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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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시야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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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타난 반짬 마을. 좁은 계곡을 다니다가 만난 넓은 보리밭과 돌집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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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짬을 벗어나는 조그만 둔덕에 올라 아래쪽(동쪽)을 바라본 풍경. 설산은 가네시 히말(4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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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건너편에도 이런 마을이 자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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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 마을 입구의 카니. 포터들은 아직도 슬리퍼를 신고 짐을 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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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 마을환영위원회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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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를 지나자 넓은 경적지가 있고 집들이 그룹을 이루며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왼편 탑은 마을 동쪽 초르테 카니다. 야영장은 그곳을 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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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위로 곰빠가 있다. 곰빠 지붕은 항상 뾰족한 급색 탑을 세워두었기 때문에 일반 집과 쉽게 식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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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의 마니차 담. 마니차까지 있는 걸 보면 제법 큰 마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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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날 즈음 두 번째 환영인파를 만났다. 뭔가를 달라고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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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해 보인다고 주어버릇하면 아이들 습관을 나쁘게 만든다. 가난해도 떳떳한 것이 비굴하며 여유 있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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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히의 캠프장. 오른쪽 탁자에 어제 보았던 중년 부부가 먼저 와 차를 마시며 쉬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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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장까지 따라와 구경하는 아이들. 혹 뭔가 얻을 것이 있는가 해서 오기도 하지만 집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구경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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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마친 후 다시 운행을 시작하는 중년부부팀. 가이드가 한 아이와 장난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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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탕 히말을 마주한 캠프장 풍경.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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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카드판을 벌이는 스태프들. 그것밖에 낙이 없으니 말릴 수도 없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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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집 주방 내부 모습. 현지 주민용이라 어수선하다.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다른 지역의 주방과의 차이가 확연하다. 녹색 옷을 입은 총각은 주방 수석보조요원 빠상이고 빨간 옷을 입은 총각은 주방장 노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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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는 항상 촛불을 켜고 만찬을 즐긴다. 매 끼니마다 주방장이 정성들여 만든 요리가 너댓 가지 나오니 롯지 트레킹처럼 입맛이 없어 힘들 일은 없다. 이번 여행에서 달밧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석이(石耳) 버섯

석이버섯은 깊은 산속의 바위 표면에 발생하는 지의류(地衣類, 이끼)의 일종으로 석이과에 속하는 버섯이다. 형태는 잎과 같은 것 껍질 같은 것 아교와 같은 것 나무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중에서 잎모양의 것을 먹는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석이는 성질이 차고 평(平)하다고도 한다.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속을 시원하게 하고 위를 보하며 피나는 것을 멎게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하고 얼굴빛을 좋아지게 하며 배고프지 않게 한다. 높은 산의 벼랑에서 나는 것을 영지(靈芝)라고 한다.또 중국에서는 강정제로 노인이 상용하면 젊어지고 눈이 밝아진다고 한다.

김시습은 석이버섯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푸른 벼랑 드높아서 올라갈 엄두 못내는데
우뢰와 비 이 돌 위의 석이버섯 키웠구려
안쪽은 거칠거칠 바깥쪽은 매끈매끈
캐어다가 비벼대니 깨끗하기 종이같네
양념하여 볶아 놓으니 달고도 향기나서
입에 좋은 쇠고긴들 아름다움 당할소냐?
먹고나자 제모르게 속마음이 시원하니
그대가 송석(松石)속에 배태함을 알겠도다
이걸로써 배 버리어 푸른 산에 서식하니
거(居)하며 양(養)함이 기(氣)와 체(體)에 옮기었네
십년 동안 틀린 행적 벌써 모두 잊고나니
오장육부 가끔 나가 씻을 필요 없어라. (Daum 백과사전)
 

<달라이 라마가 설법한 37 수행법>
-깨달음으로 이끄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 수행법-
Commentary on the Thirty Seven Practices of a Bodhisattva
이창호 옮김 (정우사)

이 책은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수행서 중 하나인 톡메 상포 보살의 원전 <보살의 37수행법>을 달라이 라마가 1974년 보드가야에서 3일에 걸쳐 설법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의 원전을 정확하고도 쉬운 말로 실생활의 이모저모를 수행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일상에서 수행해야 할 가르침 37가지를 설법하고 있다. 모든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난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고자, 깊은 사랑과 대자비심으로 설법한 이 책은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조언서이자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수행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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