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 17. 자갓 - 나디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고소적응일-빙하호수 방문)

3,680m

3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 티베트 국경 방문

4,2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20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나디에서 쫑파티를

2007. 10. 29(월)


 

모닝 티와 경쾌한 새소리로 아침을 시작했다. 건너편 롯지 창문으로 트레킹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이들은 이제 트레킹 초반이니 힘이 넘칠 것이다. 나는 어제 제법 많이 걸은 탓인지 온 몸이 욱신거렸다.

아침 먹고 7시에 출발했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 바위길이다. 계곡 바닥에서 200여 미터 위로 올라와 있어 계곡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계단식 밭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히말라야 중산간 지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고개에서 뒤를 돌아보니 돌출된 절벽 위에 자갓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길은 이제 내리막길이다. 중간 중간에 집이 하나 둘씩 흩어져 있다. 돼지들은 키우는 집도 있다. 돼지 한 마리가 우리가 지나가자 잽싸게 머리를 내민다. 이 녀석도 지나가는 트레커를 보는 낙으로 사는가 보다. 얼마 후 멀리 계곡 아래로 샹제(syanje, 1136m)가 보인다.

아치형 현수교가 있는 샹제에는 8시에 도착했다. 현수교를 지나 동쪽 사면으로 넘어오니 또 오르막이다. 20분을 올라 오르막 꼭대기에 있는 롯지 앞에서 쉬었다. 멋진 폭포 줄기가 건너편 절벽에서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다. 수량이 엄청나다. 그곳부터 마을이 계속 이어지고 넓은 경작지가 펼져져 있다. 노란 벼는 아직 수확 전이다. 논 사이로 난 평탄한 길을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가노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집 앞에 옥수수 다발을 묶어 저장하는 모습이 특이하다. 스쳐가는 마을도 세련된 것이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 와 당시의 기록을 보니 역시 지금과 다른 분위기다. 그동안 이곳도 발전이 된 것이다. 가장 획기적인 것은 건너편 산허리로 찻길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설마 안나푸르나 트레킹 루트에 찻길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터라 충격이 컸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좁은 절벽길과 여러 번 강을 건너야하는 길이라 결코 찻길이 날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칠불사로 돌아 왔을 때 같이 정진하던 영탄스님이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이야기 도중 "혹시 트레킹 길도 앞으로 차가 다닐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절대로, 영원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내 경험 상 도저히 차가 다닐 길이 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은 순진한 것이기도 하고 단순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반드시 수백 년 된 주 트레일에 찻길을 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7년 후 저렇게 건너편으로 길을 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건 마치 졸다가 뒷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다. 그렇지,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자세히 보니 포커레인 하나가 작업중이다. 길을 내자니 나무를 배고 산허리를 깎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 결과 해마다 몬순이면 산사태로 길이 무너질 것은 뻔하다. 오래 다져진 길이나 산도 무너지는데 새로 팠으니 오죽할 것인가. 몬순이 끝나면 복구작업을 할 것이고 그러면 다음 몬순 때까지는 통행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같으면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일을 지겹다고 하겠지만 네팔에서는 수백 년 동안 반복해오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Manaslu_1500.jpg찻길은 아직 샹제까지 오지 못했다. 지류 계곡이 중간에 가끔 있으니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철교를 건설해야 한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2007년 5월 11일자 <오마이뉴스> 영어판에 따르면 네팔군인들이 베니에서 좀솜까지 65km의 길과 베시사하르에서 차메까지의 65km 길을 찻길로 만드는 공사를 하는 중이며, 좀솜까지의 길은 2년을 예상하고 있고 차메까지의 길은 2007년 내로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서 찻길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곳은 찻길이 강 건너로 나 있으니 견딜 만하지만 베니-좀솜 구간은 트레일이 찻길에 묻혀 버려 걸을 맛이 나지 않는다. 작년 무스탕 트레킹 때 좀솜에서 까그베니 가는 깔리 간다키 강바닥길에서 자주 오토바이를 만났을 때 기분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트레킹을 마치고 좀솜에서 마르파로 산책 가는 길에서도 오가는 오토바이의 소음과 길을 비켜주어야 하는 짜증나는 일을 겪었다. 앞으로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은 좀솜에서 운행을 마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안나푸르나 지역에는 약 10만 명의 주민들이 420개의 거주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주요 종족으로는 구릉족(Gurung), 마가르족(Magar), 보티아족(Bhotia), 타깔리족(Thakali), 마낭기족(Manangis)이다. ACAP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1226종의 식물, 102종의 포유류, 474종의 새, 39종의 파충류, 22종의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건설에 대하여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주민들은 도로가 완성되면 그들의 마을이 다질링이나 캐시미르 또는 스위스처럼 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한다는데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꿈도 야무지시군요."다. 내가 보기엔 풍광이 좋은 동네는 트레킹이 어려운 노약자들도 올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동네는 그나마 지나가던 일반 트레커들도 그냥 차로 통과할 것이다.

그런데 트레킹을 하지 않고 단지 전망을 즐기기 위해 단체 여행자들이 낭떠러지가 있는 위험한 비포장길을 통해 이곳에 올 것 같지는 않다. 여기가 아니더라도 포카라 사랑코트나 담푸스, 카트만두 나가르코트가 훨씬 더 접근이 쉽고 시설도 좋다. 혹 그렇게 올 사람들은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좀솜으로 온다. 좀솜 이전 마을은 히말라야 풍광을 즐길 만한 곳이 없다. 마르샹디 지역도 마낭 정도는 와야 히말라야 설산을 잘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안나푸르나 지역의 도로건설은 관광산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제 트레커들은 안나푸르나 대신 차가 없는 쿰부와 랑탕으로 방향을 돌릴 것은 자명하다. 트레킹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차가 다니지 않고 오직 두발로 다니는 일)가 상실된 곳을 더 이상 찾을 이유가 없다. 나도 다음에 나르-푸가온 트레킹과 틸리초 종단 트레킹을 위해 이곳을 찾을 기회가 있으면 좀솜을 종착지로 삼을 생각이다.

좀솜 아래로 찻길이 나면 좋은 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 좀솜에서 날씨가 나빠 비행기가 뜨지 못할 경우 차량으로 포카라까지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좀솜의 롯지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을 계속 붙잡아두지 못하는 결과가 되므로 결국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바훈단다(Bahundanda, 1311m)로 오르는 급경사 언덕이 나타났다. 서양 단체 트레킹 팀이 자주 지나간다. 캠핑 장비를 갖춘 팀도 있다. 지그재그로 힘들게 오르다 중간에서 쉬었다. 계단식 논이 가지런한 평화로운 중산간 지방의 모습이 보인다. 점점 많은 트레커들이 토롱 라를 향하고 있다.

Bahundanda_google.jpg바훈단다에 오르니 11시 20분이다. 오늘 오전도 많이 걸었다. 바훈단다란 '브라민들의 언덕'이란 뜻이다. '단다'라는 말이 들어 있는 마을은 항상 언덕 꼭대기에 있으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바훈단다는 마르샹디 계곡을 막고 있는 언덕 꼭대기 마을이다. 위성사진을 보면 전체 언덕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인다.

madhav_ghimire.jpg 바훈단다는 네팔 정부에 의해 국민시인(National Poet)으로 추대된  마드하브 프라사드 기미레(Madhav Prasad Ghimire, 1919~)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서정시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히말라야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의 서정을 노래한 가장 네팔적인 시인이라고 하니 우리나라로 치면 김소월 시인 쯤 된다고 하겠다.

마을에는 롯지와 식당, 가게들이 많지만 깔끔한 분위기는 아니다. 그것은 이곳이 트레커들이 묵어 가는 곳이 아니라 점심이나 먹고 그냥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을 중앙 광장에 큰 보리수 나무가 있다. 그곳에서 계곡쪽(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마운틴뷰(Mountain View)> 호텔이 나오는데 날씨가 좋으면 그곳에서 마나슬루와 람중히말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롯지 식당에서 TV를 보니 문명사회로 돌아 온 것이 실감난다. 이집 꼬맹이 여자 아이가 맹랑하다. 남아 있는 풍선이 하나 있어 주었더니 점심 먹고 출발할 때 우리들에게 잘가라고 악수를 청한다. 상당히 사교적이다. 길은 바훈단다 중앙 광장 바로 아래로 나 있다. 황토 언덕 사이를 뚫어 만든 내리막길이라 어렵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오르막의 힘든 코스는 없다. 그냥 슬슬 소풍가듯 가면 내려가면 된다. 아래로 내려오니 특이한 모습의 동산이 앞에 단독으로 우뚝 서 있다. 그 꼭대기까지 계단식 밭이 만들어져 있다.

Manaslu_1534.jpg아래로 내려올수록 벼가 덜 익은 모습이다. 온화한 분위기의 들길과 마을을 지나 작은 마을이 있는 나디콜라(Ngadi Khola)에는 오후 1시 45분에 도착했다. 샹제와 같은 아치형 출렁다리가 나디콜라에 놓여 있다. 이 마을은 아래쪽 나디의 윗마을이다. 롯지와 가게가 몰려 있는 아래 마을과는 달리 을씨년스런 모습의 민가만 있다.

다리 아래에는 넓은 캠프장이 있는데 제법 인원이 많은 서양의 단체 트레킹 팀이 캠프를 차려 놓고 있다. 나디라는 지명이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전에는 짐작조차 못했지만 지금은 낯이 익다. 그렇다. 마나슬루 바로 아래의 산이 나디출리(7871m)이고 나디콜라는 그 산의 남쪽 빙하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내려와  만든 계곡인 것이다.

harka_gurung.jpg나디는 네팔 히말라야 연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하르카 구릉(Harka Gurung, 1938~ ) 박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디콜라 상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1970년대 히말라야 산 이름을 제정하는 정부위원회에서 일을 했다. 그는 네팔과 히말라야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히말라야의 인구, 지질, 환경, 생태, 개발계획, 관광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한 권위 있는 학자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한 자료를 찾다보면 그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Manaslu_1540.jpg다리를 건너 동네를 벗어나 계류를 따라 10여 분 산모통이를 돌자 나디(Ngdi Bazzar)가 나왔다. 평화로운 농촌 분위기의 초입을 지나면 바로 판석이 깔려 있는 롯지촌이다. 이곳은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첫 날 �이 묵는 곳이라 여행자들이 많다. 2000년 우리가 묵었던 까말라 롯지 길가 식당에도 트레커들이 꽉 들어차 있다. 롯지를 지나면서 도중에 비를 만나 부득이 나디에서 멈추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오후 1시 30분.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바훈단다지만 이 상태로 2시간 이상을 더 걷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일정을 중지하고 가장 가까운 마을인 나디에서 묵기로 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까말라(Kamala) 호텔. 이 집 큰딸의 이름을 딴 롯지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무계단을 올라가 이 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어제보다는 훨씬 아늑했다. 나무로 지은 집이라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린다. 이층에는 방이 네 개인데 나무 판자로 막은 벽으로 옆방 사람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붓다아이, <2000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 day 1)

롯지촌 아래 캠프사이트가 있는 하이커스 롯지 뒷마당에 캠프가 설치될 동안 샤워를 했다. 이곳도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날씨가 따뜻하니 찬물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트레킹을 시작한 후 처음 하는 샤워다. 트레킹 끝나기 하루 전 날에야 샤워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모두들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을 캠프 앞에 설치되어 있는 긴 빨래줄에 널으니 캠프가 빨래터 풍경으로 변했다.

Manaslu_1551.jpg등산화를 보았다. 여기까지 무사히 잘 참아주어 고맙다. 밑창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다. 지난 7년 간 히말라야 산자락을 누빈 결과다. 아직 다른 곳은 멀쩡하니 밑창만 갈아야겠다. 처음 살 때 등산점 주인아저씨가 매년 7월에 독일 본사로 보낸다고 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 보낸다고 한다. 그동안 이 제품의 국내 판매량이 많아진 결과다.

2005년 가을 ABC트레킹을 위해 산 보명화 보살님의 등산화 밑창도 이번에 헤지기 시작하여 수리를 위해 보낼 예정이라고 하여 나중에 같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여섯 달이 걸린다고 한다. 보명화 보살님은 이번까지 세 번의 트레킹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밑창이 헤진 것은 트레킹을 위해 몇 달 전부터 매 주 관악산을 등반한 하드트레이닝의 결과다. 얼마나 열심히 체력단련에 힘썼는지 알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다는 소감이다.

빨래를 널고 느긋하게 오후 차를 마시고 있으니 마을 부녀회에서 찾아왔다. 저녁 파티 때 공연을 하겠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다. 공연비는 기부금 형식이라 정해지지 않고 기부자의 뜻에 따른다고 한다. 트레커들이 오면 롯지 주인만 수입을 올릴 뿐 마을은 직접적인 수입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공연을 통해 마을기금을 모으고 있다. 이러 공연은 캠핑트레킹 단체팀이 아니면 요청할 수도 없으니 마을 사람들에게도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나디의 경우 안나푸르나 서키트를 시작하는 캠핑팀과 마나슬루 서키트를 마친 캠핑팀이 통상 머무는 길목이라 입지조건이 좋다.

저녁을 먹고 7시부터 파티가 시작되었다. 먼저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타시가 한 말씀 한다. 짐작컨대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일 것이다. 트레커 대표로는 내가 영어로 짧게 하고 타시가 통역했다. "여러분이 없었으면 이 멋진 마나슬루 서키트 트레킹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고 많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이제 팁을 나누어 줄 차례다. 팁을 위해 카트만두에서 루삐를 많이 바꾸어 왔다. 절집에는 '평등공양 차등보시'라는 원칙이 있다. 공양물(음식과 물품)은 지위를 막론하고 똑 같이 배분하고 보시(현금)는 지위에 따라 배분되는 액수가 다르다.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이 더 받는 것은 오히려 공평한 일이다. 그 원칙에 의해 포터들과 키친보이들에게는 1000루삐씩 주었다. 주방장 노르지와 세르파 보조인 겔루에게는 30불, 밍마 세르파에게는 40불, 가이드 타시에게는 50불 주었다. 모두들 만족한 표정이다.

쫑파티는 공연단의 가무로 시작되었다. 원래 오기로 했던 부녀회는 다른 곳으로 가고 대신 교사와 30여 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왔다. 대표로 몇 명의 아이들이 나머지 학생들의 장고 반주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이 페이지의 배경음악으로 일부 실었다). 기부금으로 2000루삐를 주었고 따로 1000루삐를 백산스님과 혜명화 보살이 만들어 주었다. 3000루삐면 50불 정도의 돈이다. 그냥 학교를 방문했어도 기꺼이 그 정도는 기부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단독 공연 후 모두 함께 춤을 추는 뒷풀이가 시작되었다. 포터들은 수줍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춤을 추지 않고 손뼉장단만 맞춘다. 세르파들과 주방팀이 가장 활기차다. 트레커들도 마나슬루 트레킹 회향을 자축하며 같이 어울려 춤을 추었다. 봄날처럼 따뜻한 밤 하늘로 노래와 풍악소리가 울려퍼졌다.
 

trek 17. 자갓 - 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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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갓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내려다 본 마르샹디 계곡. 뒤돌아보니 자갓 마을이 계곡 돌출부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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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먹을 것을 주는가 하여 머리를 내민 돼지. 얼마 후 계곡 아래에 있는 샹제가 나타났다. 샹제에서는 다리를 건너 왼편(동쪽) 사면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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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제 다리를 건너 다시 오르막을 올라 휴식. 건너편으로 멋진 폭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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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부터는 평평한 논 사잇길이다. 중산간 지방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온화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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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사면으로 찻길이 건설되고 있다. 당겨보니 포크레인 하나가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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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마을은 독특한 방법으로 옥수수를 저장하고 있다. 누런 벼가 한창 익고 있는 벼논과 어울려 우리가 내려 온 골짜기의 모습이 평화로운데 도로공사로 파헤져진 왼편 산기슭이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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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훈단다 오르막 중간에서 휴식. 단체 트레킹 팀이 토롱 라를 향하고 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나홀로 트레커 한 사나이가 타시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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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민들의 언덕'이라는 뜻의 바훈단다 도착. 점심 먹고 떠날 때 롯지 꼬마 아이가 안녕히 가시라고 악수를 청했다. 내가 준 풍선을 입에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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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훈단다 마을 광장에서 내려가는 길. 멀리 앞쪽으로 꼭대기까지 계단식 논으로 채워진 동산이 하나 있다. 길이 오른쪽 산허리로 나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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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과 벼논이 그림같은 아늑한 풍경 속을 지나 나디콜라 옆에 있는 나디 윗마을로 내려왔다. 오른쪽 사진은 마을을 벗어나 뒤돌아본 풍경이다. 사진 왼편 다리가 우리가 건너 온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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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 후 나디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마을 입구를 지나면 곧 롯지가 몰려 있는 롯지촌이 나온다. 트레커들이 많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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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촌 제일 아래에 위치한 캠프사이트가 있는 하이커스 롯지. 방도 있으므로 복잡한 롯지촌에 가지 말고 이곳에 묵으면 한가로운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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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 뒤 캠프사이트에는 긴 빨래줄이 쳐져 있다. 샤워 후 모두들 빨래를 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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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는 오후를 즐기는 트레커들. 저녁 식사 때 주방장이 만든 케익이 왔다. 쫑파티 하는 날 주방장이 축하케익을 만들어 주는 것은 모든 캠핑트레킹의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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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파티 시작. 타시의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스태프들에게 팁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학생공연단이 도착하여 흥겨운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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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대표들이 먼저 민속춤을 선보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손뼉과 장고로 장단을 맞추고 노래를 불렀다. 교사들과 스태프들도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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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는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뒷풀이다. 주방팀의 빠상이 제일 신나게 춤을 춘다. 그렇게 마나슬루 트레킹을 회향하는 파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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