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볼 곳 없는 천리안
디스플레이 기술이 빚어낸 시력 이상의 ‘시력’
| 글 | 서종모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정흠 서울대 의대 안과 교수 ㆍcallme@snu.ac.kr, chungh@snu.ac.kr |
2030년 과학의 힘으로 시력을 업그레이드한 바이오닉맨은 이런 모습일까. 그의 안경은 눈 앞의 영상을 확대하거나 먼 곳까지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대한민국 산업디자인대전 입선작이다.
200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각국의 과학자들이 600만불의 사나이를 재연할 수 있는 인공 눈, 귀, 다리, 팔, 뇌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들의 연구가 현실화되면 한쪽 눈으로 40배율을 줌인 하고, 한쪽 귀는 1km밖의 소리를 듣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시속 100km로 달리고 15m 높이 건물에도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2030년, 전문가들은 바이오닉맨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측한다. 과학을 입고 신체의 각 부분을 업그레이드한 포스트휴먼은 어떤 모습일까. 전문가들이 구상한 설계도를 하나씩 살펴보자.

지난 가을 필자는 몽골의 항올 지구에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할아버지 한 분이 앞이 잘 안 보인다며 진료를 받으러 왔다. 노안 외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얼마나 잘 안 보이는지를 다시 여쭈었다. 할아버지는 “전엔 먼 산 밑에 선 것이 말인지 양인지 구분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도저히 구별이 안 된다”고 대답했다. 의료봉사단원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아연실색했다.

할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시력이 훨씬 더 좋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칠십 년 세월은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시력 감퇴를 막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예전처럼 멀리 볼 수 있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그는 젊은 시절 600만불 사나이 같았던 시력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안경에 1차 코일, 눈 안에 2차 코일?

근시와 백내장은 현대인의 눈 건강을 위협하는 양대 요인이다.
근시를 가진 현대인이 점점 늘고 있다. 한림대 의대 최동규 교수는 2004년 19세 남자 1만 2000명의 시력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실험 참가자의 절반 이상(56.4%)이 근시였고, 그 가운데 1/3은 안경도수가 -6디옵터 이상인 고도근시였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절반이 안경을 쓰고 5~8명 정도는 두꺼운 안경을 쓸 정도로 눈건강이 심각하단 말이다. 최근 레이저로 근시를 교정하는 라식과 라섹수술이 대중화돼 근시 환자들이 안경과 콘택트렌즈로부터 해방된 것은 인간시력강화의 대표적인 예다.

수정체가 탁해지는 질병인 백내장은 노인들의 눈 건강을 위협한다. 하지만 인공수정체가 개발되고 초음파 수정체 유화술이 도입된 뒤 ‘심봉사’는 동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인물이 됐다. 이렇듯 이미 우리는 시력을 강화한 바이오닉맨에 한 발짝 다가가 있다.

시력이 나빠지다 못해 상실될 위험에 처한 환자들도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현대 과학자들은 ‘마지막 철옹성’인 망막 손상 환자를 위한 인공망막을 개발 중이다. 망막은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으로 시각 작용의 중추다. 현재 빛의 굴절을 조절하는 각막과 수정체를 대체할 인공물은 만들어졌지만 망막의 기능을 대체하는 기술은 미성숙한 단계다. 인공망막은 침과 전극으로 이뤄진다.

앞을 거의 보지 못할 정도로 백내장이 심한 환자도 인공수정체(사진)를 이식받으면 시력을 1.0까지 올릴 수 있다.
현재 인공망막 기술은 앞을 전혀 못 보던 환자가 ‘H’나 ‘I’ 같은 간단한 알파벳을 읽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인공망막 연구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 도헤니 안과병원과 세컨드사이트 공동 연구팀은 안경에 미니 캠코더를 부착해 외부의 시각정보를 무선통신으로 망막에 전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코일을 나란히 두면 한쪽 코일에 전류가 흐를 때 다른 쪽 코일에도 전류가 흐르는 상호유도 방식을 이용한 것이다.

안경에 1차 유도코일을 장착하고 눈 안의 인공망막 칩에 2차 유도코일을 넣은 뒤 1차 유도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인공망막으로 전기신호가 전달된다. 눈 안에 넣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이 2차 유도코일로 전달된 신호를 받아 해석한 뒤 칩 뒤 전극으로 전달하면 해당 부분의 망막이 자극받는다. 마치 정상인이 앞을 볼 때 시신경세포가 활성화된 것 같은 효과가 난다. 빛이 수정체와 유리체를 거쳐 굴절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시신경이 바로 받아보는 시스템이다.

연구팀은 2001년 12월부터 시각장애우 자원자 10명에게 실리콘고무 재질의 망막자극용 16채널 백금 전극을 이식했다. 그리고 전극 16개를 다양한 조합으로 자극했더니 눈이 전혀 안 보이던 실험참가자가 H와 I를 손짓으로 따라그렸다. 앞으로의 과제는 인공망막 칩을 눈에 심어 시력을 1.0까지 높이고 다채로운 형태와 색채까지도 볼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천리안 설명서-인공망막
구 성 : 인공망막 칩, 인공망막 전극, 디지털 안경, 유도코일 4개
사 용 법 : 안구의 망막 부위에 전극 삽입
디지털 안경을 쓰면 망막에 전기신호 유입
앞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활동
유통기한 : 몸에 이식한 뒤 평생 사용
사용대상 : 시각장애우와 저시력 환자 모두 사용
주의사항 : 눈이 심한 압력을 받거나 충격을 받으면 망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


서울에서 부산 앞바다 갈매기 보는 법


천리안 설명서-안경형 디스플레이

구 성 : 디지털 안경, 1000만 화소 카메라, 망원렌즈, 적외선렌즈
사 용 법 : 다양한 렌즈를 필요에 따라 안경에 장착
유통기한 : 평생 사용 가능
사용대상 : 시각장애우와 일반인 모두 사용 가능
주의사항 : 땅에 떨어뜨리면 깨질 수 있으니 조심

‘600만불의 사나이’의 눈과 같은 뛰어난 전자눈은 어떻게 만들까? 안경형 디스플레이 기술을 응용하면 사물을 가까이 끌어당기거나 확대해 보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안경형 디스플레이는 안경의 안쪽에 LCD 같은 평판형 디스플레이를 작게 만들어 부착한다. 화면이 작지만 눈앞에서 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40인치 이상의 대형 화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또한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줄 수 있어서 양안 시차를 고려한 3차원 입체 영상도 구현할 수 있다. 양쪽 눈이 보는 화면이 다르면 평면 영상인데도 입체로 지각하기 때문에 같은 화면이라도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휴대전화에 달린 고해상도 카메라도 유용하다. 약 600만 화소인 사람 눈에 비해 최근 나오는 카메라의 해상도는 1000만 화소를 뛰어넘는다. 최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적용한 ‘전자눈’은 두 점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인간의 눈으로 구별할 수 없는 것도 뚜렷이 구별할 정도로 선명한 영상을 출력한다.

이 카메라를 안경형 디스플레이에 장착하면 보통 수준 이상의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줌 인과 줌 아웃 기능도 가능해 영상을 순식간에 2~3배 확대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루무스(LUMUS)사는 2007년 ‘안경형 가상영상’을 개발했다. 이 안경을 착용하면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이 상대의 전투력을 분석할 때 썼던 안경, ‘스카우터’ 같이 상대의 프로필과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이 눈앞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확대와 축소기능은 덤이다.

몽골에 의료봉사 갔을 때 만난 할아버지는 머지 않아 먼 산자락에 있는 동물이 말인지 양인지 다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명 ‘시력 4.0’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카메라 앞에 적절한 망원렌즈를 추가한다면 서울 상공에서 부산 해운대 앞바다(약 400km 거리)의 갈매기가 몇 마리인지 내다보는 ‘천리안’도 가능하지 않을까.
1 특정한 색을 볼 수 없는 색각장애우는 아이보그(Eyeborg)를 착용하면 눈앞에 보이는 물체의 색을 소리로 들을 수 있다. 시각 능력을 향상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다. 2 600만불 사나이의 시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콘텍트렌즈. 이 렌즈를 끼고 먼 거리의 물체를 보면 그 지점까지의 거리가 자동으로 계산돼 눈앞에 나타난다.

밤만 되면 앞을 볼 수 없는 인간 시각의 한계는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야간 투시경으로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 영역의 파장만 볼 수 있어 가시광선이 적은 밤에는 앞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외선을 감지하는 카메라를 안경형 디스플레이에 장착하면 적외선을 볼 수 있다. 야간 투시경을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군인들은 시각을 강화해 적진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다.

굳이 눈 속에 인공망막 칩을 심지 않더라도 간단한 보조장치 하나만으로도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보통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보는 ‘제6의 감각’으로 시각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대신 레이저 스캐닝으로 영상을 직접 망막에 비춰주는 시도도 있다.

인공시각이 안정성과 효용성을 공인받기까지는 시간이 10~ 20년 정도 더 필요하다. 지름이 약 2.4cm로 작은 안구에 칩을 심는 기술과 조직 두께가 50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도 안 되는 무른 망막 위에 칩을 고정하는 기술이 아직까지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2010년대 후반엔 인공망막이 보급될 수 있고 디스플레이 기술이 뒷받침돼 업그레이드된 시각으로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P r o f i l e
서종모 교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안과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았다. 2000년부터 인공망막 연구팀에 합류했고, 서울대 의대 의공학교실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대 전기공학부 조교수로 바이오일렉트로닉스 인공망막을 연구한다.

정흠 교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망막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부 김성준 교수와 함께 나노바이오시스템 연구센터를 시작해 국내 최초로 인공망막 연구팀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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