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호 - 한반도로 대륙이 몰려온다?
2억 5000만 년 뒤 초대륙이 다시 온다!
지구미래 대예측 에피소드 2-판게아 프록시마 원정대
| 글 | 감독 안형준 기자 ㆍbutnow@donga.com |

"초대륙의 중심에서 뭔가 나를 부르고 있어!"
그곳엔 지구 역사의 엄청난 …

Prologue


2억5000만 년 뒤, 지구엔 하나의 거대한 대륙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만 있다.
낮부터 강력한 모래바람이 다시 일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발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탐험을 시작한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주변에 물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는 열사의 땅을 지나면서 동료 2명을 잃었다. 그때 흘렸던 눈물마저 아깝다고 느낄 정도로 이곳은 건조하다.

인류 최초로 대륙의 동서남북 끝을 밟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탐험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선사했다. 남은 곳은 대륙의 중심 뿐. 그리고 이제 ‘지중점’(地中點)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야릇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수천만 년 전, 아니 수억 년 전 대륙의 중심에 살았던 나의 선조가 대륙의 중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훗, 하지만 말도 안 된다. 이런 극한 곳에서 생물이 살았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

순간 거대한 물체가 눈앞을 가로 막았다. 모래 바람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하마터면 부닥칠 뻔했다. 뒤에서 위치를 파악하는 임무를 맡은 탐험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여기가 지중점입니다! 드디어 초대륙의 중심에 도착했어요!”

바로 그때, 모래 바람이 걷히면서 거대한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철갑옷을 입고 한 손에 큰 칼을 든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장군의 동상과 괴물 머리가 달린 철갑선 모형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대체 이곳은 과거에 어떤 곳이었단 말인가.

탐험대가 초대륙의 중심에서 발견한 물체는 바로 현재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다. 2억 5000만 년 뒤 지구에 5대양 6대주 대신 하나의 거대한 대륙만 있다거나, 또 그 중심에 현재의 한반도가 위치한다는 판타지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2억 5000만 년 뒤 지구에 나타날 초대륙 모델 ‘아마시아’와 ‘노보판게아’. 두 모델 모두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예측한다.


초대륙의 중심에 한반도가?
판이 움직일 때 일어나는 일들
A 맨틀에서 마그마가 올라오며 판을 분열시킨다.
B 바다 속에서 마그마가 식으며 거대한 해령을 만든다.
C 새로 만들어진 해양판은 식으면서 밀려나다가 대륙판 아래로 침강한다.
D 해양판과 대륙판의 마찰로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이 폭발한다.
E 대륙판이 밀리다가 다른 대륙판과 충돌하면 높은 산맥이 만들어진다.
F 해양판끼리 충돌하면 한쪽이 침강하며 해구를 만든다.
G 바다 위에 화산섬이 생긴다.

지질학자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용융된 마그마가 식어 화성암으로 굳을 때나 퇴적물이 쌓일 때 기록된 과거 지구 자기장 방향의 변화로부터 지각을 이루는 판의 이동 속도를 계산해냈다. 또한 최근에는 위성으로 정밀하게 측정한 대륙의 위치 변화 자료를 이용해 현재의 판 이동 속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북태평양 해양판이 아래로 밀려 가라앉으면서 태평양은 점차 닫히고 있다. 반면 대서양 바닥 가운데에서는 아메리카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멀어지면서 새로운 해양층이 생기고 있다. 아프리카는 북쪽으로 올라가고, 유럽은 남쪽으로 움직인다. 호주는 동남아시아를 향해 북진하고 있다. 대륙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1년에 약 1~10cm로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하다.

199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지질학자 크리스 하트나디 교수는 이런 대륙판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2억 5000만 년 뒤 지구의 모습을 예측했다. 그는 대서양이 계속 넓어지면서 아메리카대륙이 밀리고 결국 아시아의 동쪽 끝에 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아프리카대륙과 마다가스카르는 인도양을 건너 남아시아와 충돌해 남쪽에 산맥을 만들고 호주는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다 동남아시아와 합쳐진다고 예상했다.

결국 남극대륙만 제자리를 지킨 채 나머지 대륙이 모두 모여 하나의 거대한 대륙을 이룬다는 얘기다. 미국 하버드대의 폴 호프만 교수는 하트나디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며 2억 5000만 년 뒤에 나타날 이 초대륙에 ‘아마시아’(Amasia, America+Asia)라는 이름을 붙였다.

확장하는 해양지각 해양지각의 나이를 색깔로 표시했다. 중앙해령에서 해양지각이 새로 만들어지면 오래된 해양지각은 밖으로 밀린다.
1990년대 후반 영국 케임브리지대 로이 리버모어 교수도 이와 비슷한 모습의 초대륙 모델을 내놨다. 대서양이 계속 확장해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만나고 호주가 그 사이에 낀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남극대륙이 북쪽으로 올라와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사이를 파고들어 초대륙의 일부가 된다는 점만 다르다. 리버모어 교수는 이 초대륙 모델을 ‘노보판게아’(Novopangaea, 새로운 판게아)라고 불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모델 모두에서 한반도가 초대륙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반도에 닥칠 기후 변화의 실상을 알고 보면 그리 반길 일은 아니다. 대륙 지각이 한반도 주변에 거대한 산맥을 만들면서 바다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육지 안쪽으로 들어오다가 전부 사라져 한반도는 비가 내리지 않는 불모의 사막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5~7억년마다 대륙 ‘헤쳐 모여’

2006년 12월 인도양에 있는 리유니온 섬에서 화산이 폭발하며 봉우리 몇 개가 새로 생겼다. 리유니온 섬은 지구에서 화산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과거에도 초대륙이 있었을까. 초대륙의 존재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1912년 독일의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다. 그는 2억 5000만 년 전 지구에 판게아(그리스어로 ‘모든 지구’라는 뜻)라는 거대한 대륙이 있었다가 갈라지고 붙기를 반복하며 현재 대륙의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대륙이동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베게너의 이론은 대륙을 이동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판게아는 학자들 사이에서 ‘잊혀진 대륙’이 되고 말았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지구내부의 방사성 물질이 붕괴할 때 나오는 열이 맨틀을 대류시킨다는 ‘맨틀대류설’과 지각이 여러 개의 판으로 이뤄졌다는 ‘판구조론’이 등장하면서 판게아는 약 50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판구조론은 판게아를 부활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이동을 일부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맨틀이 대류하는 속도에 비해 판이 움직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 1980년대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와이 열점과 같은 특별한 지역의 화산활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 1990년대 등장한 ‘플룸구조론’이다.

지질학자들은 과거 대륙의 분포를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미래 대륙의 모습까지 예측한다. 사진은 한 지질학자가 과거 지구 자기장의 방향이 남아 있는 암석을 찾기 위해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
지구 내부의 열분포를 조사해보면 맨틀 하부에서 지구 표면까지 뻗쳐있는 열기둥이 있는데, 이를 ‘플룸’이라 한다. 판구조론은 맨틀이 바다 위의 뗏목처럼 수동적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하지만 플룸구조론은 판 운동의 근본적인 원동력을 플룸의 운동으로 설명한다.

지구 중심에 가까운 곳에서 뜨거워진 플룸이 상승하면 대륙이 분리되고 해저에서는 해령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만들어진 해양판은 점차 식으면서 확대되다가 해구에서 다른 판 아래로 밀려들어간다. 밀려들어간 해양판은 한 덩어리의 차가운 플룸이 돼 아래로 떨어지는데, 이때 생긴 반발력으로 뜨거운 플룸이 다시 위로 솟는다.

플룸구조론은 맨틀의 대류를 잘 설명하는 이론인 동시에 초대륙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구의 진화과정 속에서 차가운 플룸이 대륙판을 끌어 모아 초대륙을 만들고, 뜨거운 플룸이 초대륙을 다시 쪼개는 일을 약 5억~7억년 주기로 되풀이한다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판게아 이전에도 초대륙이 있었을까. 지질학자들은 약 8~10억 년 전에 ‘로디니아’(Rodinia)라는 초대륙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로디니아가 ‘파노티아’(Pannotia)와 ‘곤드와나’(Gondwana) 대륙으로 나뉘었다가 약 2억5천만 년 전 다시 판게아를 이뤘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비슷한 종류의 오래된 암석의 분포를 토대로 18억 년 전에는 ‘컬럼비아’(Columbia) 또는 ‘누나’(Nuna)라고 불리는 초대륙이 있었고, 25억 년 전에는 케놀랜드(Kenorland) 초대륙이, 그리고 30억년 전 지구 최초의 대륙인 ‘우르’(Ur) 초대륙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대략 10억 년 이전의 지질학적 증거가 현재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어 그 이전 초대륙의 존재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분분하다.


‘울티마 판게아’에서 ‘판게아 프록시마’로
지구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지 오래 잡아야 400만 년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 수십억 년 전 지구의 모습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껏해야 100년밖에 살지 못하면서 2억 5000만 년 뒤를 상상하는 일은 오죽할까. 하지만 지질학자들은 시간의 역사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페르시아 걸프만의 위성사진. 아라비아 판(왼쪽 아래)이 유라시아 판(오른쪽 위)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2007년 1월 9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미국 텍사스대의 지질학자 크리스토퍼 스코티즈 교수가 추정한 2억 5000만 년 뒤 나타날 초대륙의 새로운 버전을 소개했다. 스코티즈 교수가 제시한 초대륙은 지금까지 제시된 모델과 달리 한반도가 초대륙의 동쪽 끝에 붙어있다. 스코티즈 교수는 대서양이 계속 확장하다가 2억 년 뒤부터 해양판의 서쪽 즉, 아메리카대륙 쪽 해구에서 차가워진 플룸이 가라앉으며 대서양판을 다시 잡아당기기 시작한다고 예측했다.

그 결과 멀어지던 유럽대륙과 아메리카대륙은 10억 년 뒤 합쳐지기 시작해 경계를 따라 히말라야 같은 거대한 산맥을 만들면서 초대륙이 생기고 남극대륙은 점차 북쪽으로 움직여 ‘얼음모자’를 벗고 초대륙에 합류한다.

스코티즈 교수는 인도양이 초대륙의 중심에 호수처럼 갇힌 모양이 도넛이나 베이글 모양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초대륙 모델에 ‘도넛티아’나 ‘베이글리아’란 이름을 붙이려고 했다. 결국 동료의 만류로 ‘최후의 판게아’란 뜻의 ‘울티마 판게아’라는 이름을 자신의 초대륙에 붙였지만, 스코티즈 교수는 최근 이마저도 ‘판게아 프록시마’(다음 판게아)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초대륙 사이클’에 ‘최후’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초대륙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주기가 가장 길다. 태양계가 우리은하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약 2억 년)보다도 3배나 길다. ‘초대륙 사이클’의 중간쯤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구에 거대한 대륙이 나타나는 장면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을 꿰뚫어 보는 ‘과학의 눈’을 갖고 떠나는 지적(知的)여행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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