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1. 11.[]

 

  730, 쿠툼상의 롯지인 쿠툼상호텔을 떠날 때의 주위 풍경은 장관이었다. 동남쪽 아래의 계곡에는 운해가 가득하여 바다처럼 넘실대었고, 마을 북쪽은 눈 덮인 랑탕 히말의 능선이 북쪽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탐사대는 갈 길을 재촉하는 데도 한 발짝 떼고 뒤돌아보고 한 발짝 떼고 뒤돌아보기를 수차례, 여러 장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옮겼다. 10분쯤 걸어 마을 어귀에 있는 스투파(불탑)와 마주쳤는데, 크기는 3m 정도로 어제 보았던 스투파에 비하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스투파 건너편에는 마을 보건소도 있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마을 보건소의 문이 잠겨있었다. 트레킹 도중 아침에 마을을 떠날 때 보게 되는 보건소들은 하나같이 문이 잠겨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탐사대가 아침에 너무 일찍 마을을 떠나다보니 직원의 출근 전이라 잠겨있는 보건소 문만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치플링에서 만난 순박한 어린이들_김영채 사진]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 따뜻한 남쪽을 향하여 계속 고도를 낮추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네팔의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서 남쪽의 카트만두 사이에 있는 평야지대를 헬람부(Helambu) 지역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현재 걷고 있는 곳이 헬람부 지역이었다. 특히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구간은 고사인쿤드 트렉헬람부 트렉이 겹치는 구간이다. , 곱테와 마깅고트 사이에 있는 타데파티반장(Thadepati Bhanjyang 3,690m)에서 순다리잘까지 두 트렉이 겹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 겹치는 구간을 걷고 있는 것이다. 헬람부 지역의 가장 큰 특징은 좁은 계단식 밭인 것 같았다. 급경사의 산자락을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밭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계단식 밭에는 곡식이 자라고 있어 푸르름이 짙게 보였다. 민가 근처의 밭에는 노랑 유채꽃이 핀 곳도 많이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봄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쿠툼상에서 30분 쯤 걸어 내려와 빈 롯지 마당에서 오래 쉬었다. 김영식 대장님이 전 대원들의 인물사진을 한 컷씩 찍고 각 그룹별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학교 선생님그룹과 학교 선생님이 아닌 그룹, 다시 학교 선생님그룹도 퇴직한 선배님그룹과 현재 재직 중인 후배그룹, 여교사그룹과 남교사그룹, 초등선생님그룹과 중등선생님그룹, 청소년그룹, 청주그룹과 충주그룹, 광주전남그룹 또 무슨 그룹과 무슨 그룹 등 웃고 떠들고 즐겁고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짧지만 되돌릴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매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니.

 

 

[치플링을 향해 가는 행복한 길에서(좌로부터_설상욱, 연철흠, 오인숙, 김영채 대원)_탐사대 사진]

 

 

  2시간쯤 걸어 골푸반장(Golphu Bhanjyang 2,130m)에 도착하였다. 구릉족이 사는 제법 큰 마을이라 마을에는 대장간도 있었다. 길가의 가게 앞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따스한 햇볕을 쬐려고 앉아있어 주민들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카메라를 보여주면 마다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사진찍기에 좋았다. 마을을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했으나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딱 한두 번 뿐이었으니 정말 순박한 인심이었다.

  골푸반장에서 2시간을 더 걸어 치플링(Chipling 2,170m)에 도착하였다. 치플링의 라마게스트하우스(Lama Guest House)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메뉴는 요리사 리마가 만든 티베탄브레드와 김치볶음밥인데, 김치볶음밥을 먹고도 숭늉 한 그릇은 다들 마다하지 않았다. 서양인이 빵 먹고 커피는 기본이듯이 우리에게는 숭늉이 식후의 기본음식이었다. 나는 평소에 식사 후 커피 마시는 것을 즐겨했으나 트레킹 중에는 커피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식사 후에 뜨거운 숭늉을 한 그릇 먹어야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한낮의 치플링은 날씨가 얼마나 따뜻한지 우리나라의 5월 어느날 야산에 소풍나온 기분이 들었다. 마당 한쪽에는 촌닭들이 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우는 황구같은 누렁이가 배를 드러내고 자빠져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개 잡아먹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놈의 개팔자가 상팔자였다. 우리 탐사대도 점심식사 후에는 릴랙스하게 쉬는 시간을 가졌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마당의 잔디를 밟고 이리저리 걷는 대원도 있고, 식당 앞마당의 수돗가에서 시원하게 머리를 감는 대원도 있었다. 이러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한가로운 풍경은 네팔에서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쉽지만 1250분 치플링을 출발하였다.

 

 

[치소파니에서 본 히말라야의 일몰 풍경처럼 아쉬움 속에 우리의 트레킹도 끝을 향하여 간다_김영채 사진]

 

 

  치플링을 떠나서는 상당히 급한 경사길을 내려가야 했다. 경사진 산길을 40분쯤 걸어 내려와서 큰 도로와 만났다. 자동차 길이었다. 간간히 오토바이도 지나갔다. 파티반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오후 2시 무렵에 길가의 판잣집 주막에서 쉬었다. 주민들이 주막 안에 몇몇이 앉아 있었고 주모는 양념한 닭고기를 냄비에 끓이고 있었다. 주막 안에서 아궁이도 없이 나무를 때어 요리를 하니 판잣집 속이 연기로 가득 찼다. 네팔 막걸리인 창을 마셔보았다. 어쩐지 위생적이지 않아 보여 한 모금만 마시고 더 마시지는 않았는데, 물을 많이 탔는지 우리 막걸리보다 묽어 심심하고 맛이 없었다. 주막 안에서 요리를 하므로 더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 때문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창 한 모금만 하고 밖으로 나와서 쉬었다. 1월인데도 한낮의 햇살이 따갑고 눈이 부셔 마치 우리나라의 따뜻한 어느 봄날 같았다.

  치플링을 떠난지 1시간 30분쯤 지나 파티반장(Pati Bhanjyang 1,830m)에 도착하였다. 파티반장은 네와르족의 마을이라고 하는데 롯지와 찻집이 있었다. 파티반장의 마을 어귀에서 잠시 쉬었다가 작은 언덕을 한 시간 정도 올라가서 자동차 도로와 만날 수 있었다. 오후 340분에 치소파니(Chisopani 2,170m)에 도착하였다. 숙소인 호텔 안나푸르나마운틴뷰의 옥상에서는 저 멀리 보이는 가네시 히말과 랑탕 히말의 전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제 이 아름다운 풍경과 작별을 해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한라산 정상보다도 높아 석양이 되자 날씨가 추워졌지만, 이 풍경을 두고 객실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많은 대원들이 옥상에서 추위를 참아가면서 히말라야 설산의 일몰 풍경을 놓치지 않고 감상하고 있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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