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히말라야오지학교탐사대 여행기

(가네쉬히말에서 고사인쿤드까지)

(2011.12.31~2012.1.16)


글 : 영원한 자유인 설상욱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막상 가보면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불편한 나라, 다녀와서는 그 불편이 그립고 아이들의 눈망울과 산의 향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희말라야....... 한 해가 끝나는 날 나는 희말로 가기위해 비행기 안에 있다.


12. 31(토)

광주에서 카고백(등산갈 때 짐을 많이 넣기 위해 만든 커다란 가방)과 배낭을 짊어지고 아들 설창환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는 같이 갈 청소년들과 지도교사들 30명이 합류해서 수속을 밟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인천공항은 정말 크고 어수선하다. 세계속의 한국이 실감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에 취해있을 시간에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1월 1일

오전 7시경에 도착한 카투만두(해발1400M) 국제공항은 우리 광주공항보다 적어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도착한 것에 비해 컴퓨터하나 없이 모두 수작업으로 입국절차를 하는 탓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카고백 50여개를 찾아 트럭에 싫고 버스에 타니 우리를 안내할 포터들이 작은 꽃송이로 만든 목걸이를 환영한다며 걸어준다. 향기가 좋고 비행기에서 답답했던 맘이 조금은 편해진다.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로얄싱기호텔로 가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심한 먼지, 매연, 약 7M정도의 도로를 버스, 화물차, 경운기, 오토바이, 자전거, 릭샤(소형택시) 등등이 동시에 이용을 한다. 시속 30KM를 넘지 못하고 도로 포장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먼지가 심하고, 경제난으로 불량 저질 중국산 휘발유, 경유를 쓰는 탓에 매연이 심해 눈이 따가울 지경이다. 더 심각한 것은 주유소마다 적게는 5KM 많게는 10KM씩 기름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서 최소 6시간 이상 기다린단다. 차량의 경우 10L 오토바이의 경우 3L 이상은 팔지 않는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어수선한 도심을 통과해 도착한 호텔에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전력사정으로 오후 6시만 되면 정전에 단수로 시내 모든 호텔과 상점에서는 자가 발전기와 살수차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인구 200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에 약 450만명이 살고 있으니 당연한 것임에도, 현 공산당 정부는 중국만 쳐다보고 있었고 매일 1명의 장관이 새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임명되고 있다고 한다. 참 신기한 것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텐데 정작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불평불만이 없다.

이런 원인은 전 국민의 90%가 힌두교도이고 이들의 신은 정말 다양하다. 소, 코끼리, 원숭이, 비둘기 등등 거의 모든 짐승이 다 신이다. 가난하지만 신을 숭배하고 현재 자신의 어려움은 전생의 업이고 현재의 불편을 잘 견디고 수행하면 내세에는 정말 좋은 곳에서 태어난다는 확신??을 믿고 살기 때문이란다.


1월 2일

카투만두-트리슐리-둔체-샤브르벤시


고소적응을 위해 카투만두를 벗어나 트리슐리로가는 길은 하나의 여정이었다. 내륙에 위치한 탓에 인접국과 국경이 겹쳐있기 때문에 검문소마다 군인들이 실탄이 들어있는 총을 들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기름을 확보하기 위해 수KM씩 줄을 서 있는 오토바이와 트럭, 버스 등을 보며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이런나라에서 50년 6.25전쟁때 파병과 물자를 보내주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내를 벗어난 길은 보통 폭이 5M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앞차가 마주치면 마치 곡예를 하듯 피하거나 기다렸다 지나간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만약 앞에 가던 트럭이나 버스가 고장나면 그 차를 수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부속을 구하려 카투만두로 왕복하면 몇시간이고 기다려야하고 심지어 날을 새는 경우도 허다하다. 길이 외길이고 좁다보니 방법이 없다. 우리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2번이나 고장난 차가 있어서 5시간 정도면 도착할 길이 8시간 이상 걸려 사브르벤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이 비포장 길은 기본이고 거의 절벽을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난다. 희말에서 이런 절차는 필수라는 말을 들을 무렵에야 도착했다.


1월 3일

샤브르베시(1,647M)- 골중(1946M)- 탐브체트(1,768M)- 칠리매- 따또바니(2,607M)


새해 첫날은 아니지만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쿡이 떡국을 끓여 아침을 대접해 주었다. 오늘은 고소적을을 위해 2박 3일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길고 긴 여정의 시작으로 모두 각오가 비장하다. 어제 타고 온 버스를 이용해 샤브르베시에서 탐브체트까지 이동한다. 어제 온 길도 천길 낭떠러지로 힘들었는데 오는 가는 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간이 크다는 나도 오줌을 절일 정도로 길이 험하고 어떻게 이런 산에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길이 험하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진다.

공중에서 바라본 가네쉬(코끼리)희말의 전경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탐브체트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경 드디어 문명과 작별을 하고 산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가볍게 몸을 풀고 시작하는 산에서 처음 마주치는 네팔 여인들이 전하는 말은 나마스테(안녕하세요) 네팔인들은 남녀노소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 반갑게 인사한다. 아주 밝고 맑은 웃음과 눈빛으로...

약 3시간을 걷고 난 후 칠리메 언덕에서 미리 준비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하는데 2천미터가 넘어가니 평소 체력이 약한 중학생이 고소가 오기 시작해 고생을 한다. 배낭을 들어주고 물을 마시게 하니 힘이 나서 다시 열심히 걷는다. 역시 젊다는 것은 좋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오후 5시경에 도착한 따도바니(2,600M)는 놀랍게도 자연온천이 있었다. 시설은 어설프지만 온천수는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린 여기서 정말 즐겁게 온천을 했다. 남성들은 팬티만 입고 여성분들은 반바지에 티를 입고 즐기는 온천에 하루의 피로고 모두 날라갔다.

해발 2600M에서 풀을 먹고 자란 염소(1마리 30만원)로 저녁을 먹었다. 보통 염소는 요리를 하면 묘한 냄새가 나서 잘 먹지 못하는데 여기 염소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전력사정은 카투만두나 여기나 좋지 않다. 솔라이트로 저장한 희미한 불빛은 곧 꺼지고 우리는 해드렌턴을 이용해서 저녁을 먹고 산노래로 하루를 마감했다.


1월4일

따또바니- 브림당 곰파(2,848M)- 나그탈리 기양(3,100M)


아침을 먹고 난후 잠시 소란이 있었다. 우린 따또바니에서 숙박을 하니까 온천이 당연히 공짜?인줄 알았는데 마을에서는 1인당 우리돈으로 5천원씩 내라고 한다. 참 고약하다. 수입이 없으니까 이해는 가는데 미리 말하지 않고 끝나고 가는 길에 돈을 달라고 하니까 참 야속하다.

희말라야 겨울 날씨는 낮에는 무척 덥고 밤에는 몹시 춥다. 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되지만 저녁에는 두터운 침낭속에 있어도 많이 춥다.

곰파를 지나 나그탈리로 향하는 길은 정말 볼 것이 많았다. 3천미터를 넘어서자 눈발이 날리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저지대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식물들과 야생화,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코사인군도의 장관 등등

나그탈리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한 쿡이 팝콘을 커다란 바구니 하나 가득 내 놓는다. 이렇게 팝콘이 맛있었나?? 팝콘에 홍차를 몆잔 마시고 네팔 민요(우리나라의 아리랑) 레쌈피리리를 배웠다. 노랫말이 부르는 사람에 따라 흥겹기도하고 우울하기도 한 곡이다.

5시경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네팔에와서 처음 맞는 눈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리는 눈에 즐거워하고 청소년들은 눈싸움에 열심이다. 항상 입시에 찌든 아이들이 이렇게 자연속에서 즐겁게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념에 빠져본다.

눈이 그치고 새벽녘에 화장실을 가기위해 밖에 나섰다, 바라본 하늘에서는 별이 마치 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손으로 잡으면 잡힐 것 같은 수천수만의 별들이 맑고 투명하게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경이로운 체험 앞에 시간가는 줄도 추운 줄도 모르고 내내 서 있었다.


1월 5일

나그탈리(3,165M)- 뚜만(2,338M)- 샤브르베시


고소 적응을 마치고 하산하는 날이다. 하산 도중 오전3시간 동안 뚜만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과 체험학습을 하고 우리가 모금한 돈과 노스페이스에서 기증한 학용품, 옷가지 등을 전달하기로 했다. 지도 교사들 다수가 교사들로 미술과 체육 수업을 했다. 네팔의 학교는 대부분 산 꼭대기에 있다. 여기 초등학교도 2,300여미터 산자락에 있어 학생들이 학교 오기가 힘들텐데도 학구열일 대단하단다. 네팔 초등학교 학생들의 맑은 눈과 꾸밈없는 표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덩달아 맑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네팔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하루종일 걸어서 다시 도착한 샤브르베시는 어둠에 싸여 있었고 우린 충분히 지쳐있었다. 물이 귀해 3일동안 씻지 못해 답답했던 몸을 찬물에 씻고 나서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잤다.


1월 6일

샤브르베시(12,467M)- 툴루샤브르(2,250M)


고소 적응을 끝냈다 해도 고산에서의 산행은 힘이든다. 오늘부터는 많이 걷지 않고 고소 적응을 위한 기나긴 시간의 여정이다. 오늘은 5시간 정도만 걷고 툴루샤브르에 쉰다. 이미 고소적응을 했지만 산행경력이 짧은 청소년들은 힘들어한다. 툴루샤브르에서 점심으로 먹은 볶음밥은 정말 맛있었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빨래도 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지친 몸도 쉬는 하루였다.

네팔사람들은 롯지(우리 민박)를 운영해서 먹고 사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의 꿈은 건물을 지어 롯지를 운영하는 것이고 롯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다. 네팔 사람들은 고산지대여서 농사를 짓는 것 이외에는 따로 벌이가 없다. 특히 겨울에는 남자들이 대부분 그냥 놀고먹는다. 그래서 궁핍하다. 특히 여성들의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가축을 기르거나 살림을 하는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두 수도인 카트만두로 떠나, 마을에는 여성들만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에 한번씩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3일정 머물다 다시 떠난다.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다 커서 알 수 있다. 학교를 가보면 정말 궁핍이 실감난다. 학교에 교사가 1명이고 책상이 없고, 나무 의자와 칠판만 있다. 산 중턱이나 정상에 있기 때문에 운동장도 없다. 그런 곳에서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운다. 땅 바닥에 글을 쓰면서....


1월 7일

툴루사브르(2,250M)- 두르사강(2,650M)- 포프랑단다(3,250M)- 싱곰파(3,350M)


오늘은 하루 종일 걷는 날이다. 그것도 계속 오르막길을 걸어서 싱곰파까지 가야한다. 깊어지는 랑탕계곡을 뒤로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걷고 걸었다. 실컷 걷고 나니 어느새 포프랑단다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가네쉬히말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정말 각별했다. 지금까지 본 경치중 최고였고 점심도 최고였다.

다시 걷는다. 걸으면서 상념에 빠져든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와 있는가? 왜 여기에서 이런 힘든 여정을 보내는가? 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곁에서 말없이 걷고 있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등등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나무를 보며 상념에서 벗어난다. 전나무과로 이름이 랄리글라스다. 높이만 해고 100M 이상에 둘레가 어른 세명이 보둠어야 할 정도로 큰 나무다. 네팔의 1호 국립공원이란다.

싱곰파 롯지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병 마시고 바라본 경치는 참으로 신비롭고, 지는 석양은 길 떠난 여행자를 우수에 젖게 한다. 산 정상에서 노을은 참으로 오랬 동안 이어진다.


1월 8일

싱곰파(3,350M)- 촐랑파티(3,654M)- 라우리비나야크(3.910M)- 고사인쿤드(4,380M)


날짜의 개념이나 요일의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다. 오늘이 무슨요일이고 몇 시인지도 사실 의미가 없다. 전화도 되지 않고 시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들은 이렇게 수천년을 살아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다가 후손에게 이 장소를 물려주고 사라질 것인데!!!

목욕을 하지 않고 2일을 버티면 그 뒤부터는 서서히 감각이 없어지고 가렵지도 않는다. 물이 귀하니까 양치만 하고 얼굴을 물티슈로 해결한다. 사람이 신기한 것이 이런 상황이 되면 거기에 맞게 적응을 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오늘은 고사인쿤드까지 기나긴 여정이다. 하루에 약 1,000미터를 넘어가는 강행군으로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아직까지 아들이나 나는 고소로 고생은 하지 않았는데 체력이 약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걱정이다.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3,900미터에 자리한 라우비나야크호텔에 도착했다. 벌써 여러명이 고소로 고생을 한다. 비라그라를 먹게하고 따뜻한 물을 계속 먹어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평소 운동을 해야 한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고소모를 개당 4달러에 단체로 구입했다.

점심 후 고사인쿤드를 향해 출발하는 우리 모두는 힘들었다. 4천미터를 넘어서면서 기압이 650이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숨쉬기가 많이 힘들었다. 몇 발 걷고 나면 쉬어야 했다. 한 참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고 쉬었다 다시 오르고 우린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바라본 하늘과 고사인쿤드 산자락은 위용 그 자체였다. 거대한 산이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경이였고 신비로웠다. 우리가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산행을 하는지 그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한 참을 걷다보니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큰 산이 양쪽에서 무너져 생긴 것으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여기에서 8월 보름에 열리는 ‘자나이 푸르네마’ 고사인쿤다 페스티발은 힌두인들의 최대 축제로 이날 여기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사라진고 한다.

다운이나 자켓을 입고 걷고 있는데도 몹시 춥다. 높이가 실감난다. 물을 많이 마셔도 화장실을 갈 일이 없다. 워낙 건조해서 피부를 통해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워낙 고산이라 나무가 없다. 그래서 난방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말 춥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롯지에 들어가 누웠는데 추워서 참이 오지 않는다. 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오리털파카를 입고 침낭에 들어가 있어도 춥다. 이런 저런 상념에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얼굴이 추워 잠이 깼다. 물을 먹기 위해 저녁에 배낭에 넣어두었던 따뜻한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영하 25도 이상이다.


1월 9일

고사인쿤드(4,380M)- 라우리비나야크(4,610M)-페디(3,730M)- 곱테(3,430M)

이제 이번 여행의 최고의 높이를 체험하는 날이다. 몸과 맘이 최고로 긴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고소가 심하지는 않고 약간 어지럽고 머리가 멍하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아들의 상태를 보니 전혀 이상이 없다. 역시 평소에 산행을 많이 한 덕을 보고 있다. 어린 학생들과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쿡들이 어렵게 준비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 출발, 고사인쿤드의 새벽은 정말 춥다. 고소 장갑을 끼고, 두툼한 파카를 입었음에도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정말 춥다. 눈보라가 무섭게 몰아친다. 햇빛에 반사되는 눈부심 현상은 시야를 가리고 숨은 턱 밑까지 올라선다. 기압이 거의 550정도로 지상의 절반 수준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다시 걷다 다시 쉬고를 수없이 반복하니 어느새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곧 정상에 올랐다. 이런 것이 삶이다. 힘들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정상이 보이고 정상의 가치를 안다. 누가 업어주던지 헬리콥터를 타고 왔다면 이런 감격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요, 내려가서 더 열심히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같이 온 청소년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긍심과 내부로부터 무한한 에너지가 넘쳐남을 말이다.


1월 10~12일

곱테(3,430M)- 타레파티(3,690M)- 마긴고트(3,420M)- 구트상(2,470M) 1박

쿠트상(2,470M)- 치풀링(2,170)- 파티반장(1,830M)- 치소바니(2,160M) 1박

치소바니(2,160M)- 보르랑반장(2,451M)- 물카라(1,855M)- 순다리잘(1,460M)- 카트만두


곱테를 지나 하산하는 날 오후 내내 눈이 내렸다. 희말라야에서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아이젠을 착용해도 미끄러운 구간이 많아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구트상까지 내려왔고 이어지는 하신길은 마냥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만나는 네팔인들도 정말 반가웠고 길에서 놀고 있는 네팔 어린이들과 기념 촬영도 수줍어하며 카메라를 피하는 여학생들의 미소도 싱그럽고 상큼했다.

12일 도착한 카트만두는 역시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사람과 오토바이를 포함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류와 이동가능한 모든 짐승들이 한데 어루러져 카트만두를 욺직이고 있다. 정말 신기하다.

나는 네팔에서 많은 것을 보고 체험했다. 인간의 순수성, 어린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 어렵지만 참고 견디는 지혜, 여인들의 한없는 가족 봉사, 수행자들의 고행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문명을 떠나 세계 오지 중 오지인 네팔에서의 산행은 참으로 인간의 본성과 내면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점이다. 현재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신에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매래를 위해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다시 만들고 싶다.


1월 16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카트만두를 떠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다시 올 것이다. 열심히 살 것이고 부족한 체력이나 헤이해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도 다시 올 것이고, 네팔 아이들의 맑고 고운 눈을 보기 위해서 다시 올 것이다. 긴 여행 동안 말없이 견뎌준 아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힘들어 가기 싫다던 아들이 내년에 다시 오자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래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가슴속 저 안에서 소리치고 싶을 땐 정말 좋은 곳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해준 노스페이스 성기학 회장님과 청소년위원장이신 김영식대장님 등 모두에게 감합니다. 나마스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