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일(카트만두 시내 全日 관광)
  아침 6시. 눈을 뜨니 온 몸에 한기가 스며온다. 그런데 아침의 정적을 깨는 웬 까마귀 소리가 수없이 들린다. 그것도 한 나라의 수도인 카트만두 한 가운데서 까마귀 소리라니....

  밤새 룸메이트(?...60세의 안병남 선생님)인 안병남 선생님께서 콧물 감기에 걸리셨다. 호텔 투숙에 감기라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 확인해 보니 우리는 창문 하나를 열어놓고 잠을 잤던 것이다. 나는 김영식 선생이 준 오리털 침낭을 그냥 무심코 깔고 잤는데 그것이 도움이 되었나 보다. 호텔이라 별 생각 없이 잤는데 카트만두의 호텔이었던 것이다. 난방도 아니 되었고 온수도 약간 나오다 마는데다가 건조한 이곳의 겨울 일교차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아주 달랐다. 아침이, 새벽이 제법 춥다.
   08:30. 아침(계란, 빵, 찌야-홍차에 우유를 섞은 것)은 남자 요리사의 엉성한 대접에다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잘 해주기를 기대해서인지 썰렁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시내 관광에 나섰다. 시내 곳곳에 현수막(Hearty Wellcome to Head of State/Government of SAARC Nation)이 붙어 있었다. 서남아시아 정상회담이 여기서 열린다고 했다. 그런 관계로 거리는 청소를 해서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변했고, 교통도 통제를 했고 군인들의 경비서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우리가 서남아 정상들인 듯 신이 났다. 외래 관광객은 통행을 용인한단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시내 큰길을 소가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것이 아닌가? 이곳의 한국인 가이드가 하는 말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힌두교를 믿는 이곳에서 소는 시바신과 동격이라고 했다(교통사고가 났을 때 사람을 치면 합의가 가능하지만 소를 치면 대사관으로 피신하란다).

 파슈파시나트 사원(네팔 힌두교의 성지)에서....
'목조의 절’이라는 뜻을 지닌 카트만두에서는 어디를 가도 사원과 마주친다. 우리는 먼저 네팔 힌두교의 성지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가기로 했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동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한 이 황금빛 2층 사원은 힌두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는 곳이다. 정면에는 시바신이 타는 성스러운 소 '난디’상이 수호신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곳은 힌두교의 성인(聖人) 사두(sadhu)나 신자들에게는 메카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네팔 힌두교 성지>
파슈파티를 한층 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원을 휘감고 흐르는 바그마티 강이라고 하는데 건기라 그런지 물이 많지를 않아 작은 시냇물 같았다. 이 강은 흘러 흘러 인도의 강가(Ganga,갠지스강)와 만난다. 그러니까 여기는 갠지스 강의 상류 쪽인 셈이다. 바그마티 강 역시 갠지스 江처럼 가트(ghat,화장장-火葬場)로 성역시 된다. 나무, 볏짚, 시신 타는 냄새 등 매캐한 화장 연기 속에서 태연히 머리를 감는 여인, 식기를 닦는 아낙, 이빨을 닦는 모습까지 보인다.

 

                                                                <화장장>
볏짚에 물을 적셔서 태우는데 그러면 오래 타고 더 많은 열을 낸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사람의 삶과 죽음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를 않았다. 그냥 그렇게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시 3000루피(1달치 월급)의 돈이 든다고 하는데 다리의 경계선 윗쪽은 상류층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 곳이라 했다. 얼마 전 죽은 국왕도 다리 위에서 화장을 했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초연하면서도 계층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것에 아랑곳없이 사람들은 기념품 사라고 야단법석이다. 타임머시인을 타고 아주 먼 옛날로 되돌아 간 느낌이다.

 

 보드나트 사원(티벳의 불교 사원)
  이곳은 중국이 티벳의 독립을 무력으로 탄압하자 히말라야를 넘어 하나씩 둘씩 티벳인들이 망명해서 집단으로 사는 곳으로, 일종의 티벳 난민촌인 셈이다. 마니차를 돌리며 끝없이 오른쪽으로 돈다. 옴마니반메훔........... 사방에서 들려오는 스님의 굵은 음성과 곡조가 어우러져 참으로 경건하게 느껴진다. 한참을 돌아다며 나도 모르게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하고 흥얼거리 다 보니 웬지 마음이 편해진다. 이곳은 석류, 바나나, 사과의 주산지라고 했다. 빨간 석류의 맛이 새콤하다. 수많은 외국인을 접해서 그런지               <불탑>         티벳 수공예품 판매장은 호객 행위도 없고 무덤덤 그저 정직하다. 온갖 수공예품과 생활 용품, 불교 용품 등이 줄 서 있는 바자르 같은 재래 시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카펫공장.......등. 사원의 규모가 아주 크다.

 

● 수와얌부나트(TEMPLE OF SWAYAMBHUNATH : 일명 몽키 템풀) 사원
  히말라야의 백색 설봉을 우러러보고 있는 네팔왕국의 수도 카트만두. 네팔 사람들은 지금도 카트만두에 가는 것을 "네팔로 간다”고 말한다 한다. 산간 오지의 네팔 인들에게 카트만두 분지는 곧 동경의 땅인 것이다. 그 곳에는 깎아지른 듯한 계단식 밭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농사지을 땅이 있고 유서 깊은 사원들 또한 즐비하다. 전설에 따르면 카트만두 분지는 원래 하나의 커다란 산정 호수였는데 만주슈리, 즉 문수보살이 나타나
 ‘지혜의 칼’로 산허리를 자르고 물을 퍼낸 뒤 육지로 일궈냈다는 것이다.(본인의 생각으로는 카트만두 분지(盆地)가 융빙수(融氷水)로 차인 아주 큰 호수였었는데 지각 변동에 의해서 어느 한쪽이 함몰(陷沒)하면서 물이 빠져서 생긴 분지가 아닌가 사료됨 : 이곳이 신생대 3기의 대습곡(大褶曲) 작용에 의해 형성된 곳이므로 지각변동이 잦음) 
  그때 맨 처음 수면 위로 빛을 내뿜으며 떠오른 곳이 바로 카트만두의 성지 스와얌부나트이다. 스와얌부나트는 지금부터 2천여년 전에 세워진 불교사원이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서쪽으로 2㎞쯤 떨어진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사원 입구에 가루다 상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면 힌두 사원도 겸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이야기한다. 가루다는 힌두교의 신 비슈누가 타고 다닌다는 상상의 새이다. 사원 주변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멍키 템플’이라고도 한다. 스와얌부나트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 약간의 다리 운동도 되겠다 싶었다. 갑자기 현란하게 치장된 거대한 탑이 눈에 들어 왔다. 바로 스와얌부나트사원이다. 사원에서는 온통 초와 각종 향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여러 순례자들과, 개, 원숭이, 보시한 식품을 열심히 쪼는 비둘기 등이 어울려........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우리네 성황당에서와 같은 만장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부처님 말씀이 온 사방에 전파되라고 불경을 적은 것이란다.
  네팔 불교에서 룸비니 동산 다음으로 신성시되는 것은 스와얌부나트 스투파라고 하는 탑이다. 솔도파(率堵婆)라고도 불리는 스투파는 불(佛) 사리를 봉안하거나 절의 장엄함을 나타내기 위해 쌓은 탑을 말한다. 하지만 이곳의 스와얌부나트 스투파는 여느 스투파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스투파 상단부 4면에 새겨진 사방을 응시하는 부처의 눈이었다. 그 눈이 어찌나 그럴 듯 하게 그려놓았는지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섬�했다. 만물을 꿰뚫어 본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올 싱 아이즈(all-seeing eyes)’라고 부른단다. 대승불교에서는 과거 겁(劫)과 현재 겁, 그리고 미래 겁에 걸쳐 각각 1천명의 부처가 출현한다고 한다. 이곳의 스투파는 과거 겁의 한 부처인 본초불(本初佛)을 위해 세워진 것이란다. 스투파 주변은 참배객들로 복잡했다. 특히 부처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들은 스투파의 둘레를 몇번이고 돌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스투파를 한바퀴 돌면 불경을 1천 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스투파 옆에 죽 늘어서 있는 '마니차’주위에도 순례자들의 행렬은 이어졌다. 그들은 라마교의 진언(眞言)인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진 원형의 마니차를 연신 돌리고 있었다. 마니차를 돌리는 것은 불경을 외우는 것과 같은 공덕행(功德行)이라고 믿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이다. 이것이 문화의 차이라는 걸까?
불교적 색체가 강하나 힌두교와 복합된 사원이라고 가이드가 이야기한다. 점심은 시내에서 아주 좋은 곳으로 네팔식 양고기를 먹었다. 약간의 땀이 날 정도의 점심 날씨였는데 이때 마신 한잔의  맥주는 진짜 가슴이 시이--------원했다.
 오후에 네팔의 번화가 NEW Road를 관람하다....... 여기도 어김없이 새 물결의 등장하고 있었다. 다양한 전자 제품, 카메라, 대우, 삼성, 엘지 등등......젊은이들의 모습도 이미 자본주의의 돈이 들어와 있었다. 新文明과 완전히 옛날 그대로가 공존하는 곳이다.

● 쿠마리 바히이 (KUMARI BAHEE)---- 살아 있는 현신
 카트만두 시내의 남쪽 뉴 로드라 불리는 신생 거리를 지나 바산트풀 광장으로 가면 쿠마리 바히이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창이 달린 3층의 낡은 목조건물이 세월을 말해준다. 고대 경전을 보면 쿠마리의 신체 조건은 대단히 까다롭다고 한다. 쿠마리의 신체는 반얀(banyan,벵골 보리수의 일종)나무와 같고, 허벅지는 사슴의 그것과 같으며, 눈꺼풀은 소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등 조건이 까다롭단다.
        쿠마리 바이히        쿠마리 바이히에서는 쿠마리를 볼 수 있지만 사진촬영 만큼은 엄격히 금한다고 했다. 우리는 시간이 맞지 않아 실재의 쿠마리는 볼 수 없었다. 12세 이하의 네와르족 어린 소녀 중에서 선발되는 쿠마리는 힌두교 탈레주 여신의 현신(現神)으로 여겨지지만 종교를 초월해 두루 숭배받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초경(初經)을 치르면 쿠마리는 사원을 떠나야 한단다.
 한참을 가다 보니 하누먼더카 사원(HANUMAN DHOKA)이 나타났다. 옛날에 왕궁이었던 곳으로서, 하누먼(원숭이)신을 모신 것으로 유래되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새빨간 원숭이의 좌상과 함께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에로틱한 수많은 힌두 조각이 관광객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내 눈에는 이런 것만 잘 띄는 것일까? 지나가는 박종익 선생을 보고 저 목각 멋진데!!! 한 컷 부탁할까? 이건 외설도 아니요 소위 왕궁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어쩌면 이곳 사람들도 파워풀한 정력과 왕성한 출산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나를 보고 너무 호색한이라고는 하지는 말기 : 문화재를 보는 통찰력이니까--- 어흠!!!)
  목각의 정교함과 규모가 아주 크고 전통과 현재가 뒤섞인 공간이다. 
              

                                                                                                                                 <사원의 목각상>


  (따온글임)카트만두의 바잔트푸르 나바르에 있는 한 사원의 처마 밑을 쳐다보면서 나는, 프로이드가 만일 이곳에 올 수만 있었다면 그의 이론을 좀더 일찍, 좀더 자신 있게 정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공상을 해본다.       
  카트만두 시내뿐만 아니라 네팔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힌두 사원과 밀교 사원이 나란히, 그리고 사이좋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세계 여러 사회에서 금기시 되고 있는 성적 표현들이 이 사원의 곳곳에 아주 진하고 원색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게는 자그마한 조각에서부터 민화, 탄트라, 탑의 처마를 받치고 있는 받침대에 이르기까지 성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다. 밀교에서 특히 성을 중시하는 근원도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의 집약과 합일, 그것이 곧 우주와의 만남이요, 자신의 진정한 본질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 데에 있다. 이러 만남은 결코 지식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며, 감각적인 체험을 통해 성을 본질화 함으로써 자신을 깨치게 된다.
탄트라 라는 말은 이런 감각적 합일을 통해 깨달은 지혜를 확신하고 자족하고 번식시켜 나간다는 뜻이다. 이런 놀라운 지혜는 근대의 정신분석학이 뛰어넘지 못한 여러 장벽을 허무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1세기의 지혜와 20세기의 의학이 만나는 감회는 카트만두의 곳곳, 아니 네팔의 구석구석에서 맛볼 수 있다. 그들은 남성 에너지의 근원적 원형을 시바라고 부르지만 시바는 남성적 특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바의 조각들을 보면 보기에 따라선 남성 같기도 하고 여성 같기도 한 양면성을 보여 주고 있다. 샥티 또한 여성 에너지의 원형으로 설명되지만 시바와 같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의 융 학파에 속하는 정신분석가들이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란 말로써 남성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여성, 여성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남성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룬다.
  이 두 원형의 조화, 집합, 합일은 시바나 샥티, 아니마나 아니무스의 이중성을 초월함으로써 완전히 하나가 될 뿐 아니라 육체를 뛰어넘어 정신적인 승화를 통해 구도적 수준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성은 본질로 향하는 열려진 문이며, 성적 갈망은 그 문을 통하여 만나고 합일하려는 욕구이며, 그 본질과의 만남은 바로 자아와 비 자아의 합일이며 완성이며 신과의 만남이다.
  카트만두에서 보는 성은 어느 것이나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음화나 외설 조각 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명상적 분위기 속에 오래도록 젖어 내려온 탓일까? 단지 감탄의 탄성이 저절로 나올 뿐 하나도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바와 샥티의 조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조화는 바로 이 성적 행위를 통해 만나고 합일하고 깨닫고 탄트라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성은 그 지혜를 깨닫는 첫 문이 된다는 뜻일까? 어쨌든 인간의 기본 에너지가 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일찍부터 깨달은 이곳 사람들의 지혜는, 아직도 성적 억압을 통해 자신을 왜곡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근후박사의 히말라야 민속기행 중에서)  
 
  주변에서는 또 시장이  헐리고 새 건물의 등장하고...... 옛 건물이 아주 망가져 가고 있고 예사롭지 않은 옛 불상과 탑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무작정 상경자, 노숙자, 개들........하염없는 걷는 자. 남루한 사람들, 도인 같은 사람들, 무표정한 사람들 ---- 신호등 없는 거리에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 자전거와 사람들의 뒤섞임.......이 알기 어려운 도시를 보고 다니느라고, 지저분한 먼지와 알 수 없는 향 타는 냄새, 기름 냄새, 음식 냄새, 사람 냄새 등등.......오늘 하루 다른 물질문명과 문화의 향내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이 아주 지치고 혼란스러워 내 정신이 아니었다. 오직 필요한 것은 맑은 공기와 편안한 잠이 필요할 뿐이었다.(카트만두 분지의 대기 오염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이더의 말이 이곳 젊은이의 꿈은 군인이란다. -지원병제이고 7년 후 용병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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