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일(카트만두→담푸스.1770m)
  5:30 기상. 일정이 바쁜 하루라서 일찍(07:00) 메케한 네팔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포터들은 짐을 챙기고 우리들은 포가라를 향해서 출발했다.
카트만두에서 포가라로 가는 길은 네팔의 제 1고속도로라고 하는데, 우리 수준에서 생각하면 안 된다. 중앙 분리선도 거의 없고 길이 좁을뿐더러 갓길은 물론 없어다. 게다가 중고차를 수리한 버스는 거의 곡예 운전   <담푸스 가는길 유채꽃과 우리>  을 하면서 달리는데 이건 생명을 담보하지 않으면 타고가기 어려울 정도이다. 어찌나 험하게 운전을 하는지 불안해서 아예 자리를 뒤쪽으로 옮겨 앉았다. 그리곤 아예 체념해 버렸다. "네 맘대로 해라! 너도 죽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도중에 점심을 먹었는데 이름인즉 "달밭"이란다. 이곳의 보통 점심 식사 메뉴인데 강낭콩 삶은 국물에 감자 카레에 인디카 쌀 예의 그 바람에 쌀알이 날리는 밥. 꼬작지그레한 작은 아이가 연신 더 먹으라고 하는데 꼬작지그레한 그 손에 내 마음이 아직 안 열린 듯.............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140㎞ 밖에 되지 않는 길인데 버스는 무려  7시간을 달린다. 마침내 도착한 곳이 페디(15시). 여기서부터 이제 우리의 진정한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쳐다보니 이거 장난이 아닌걸? 지레 겁을 먹은 우리 일행은 단단히 채비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2시간이 지나야 담푸스(1715m)에 도착한단다. 가파른 계단상으로 된 산을 오르기를 30여분. 환하게 시야가 터지면서 언덕배기에 올라앉은 자그마한 티하우스(tea house)가 나타났다. 티하우스를 출발하여 논과 밭을 지나 산골마을을 통과하는데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다. 노란 유채꽃밭과 푸른 보리밭이 원색의 대비를 이루며 군데군데 짚더미나 옥수수더미를 타원형으로 세워놓은 모습은 황토로 벽을 세우고 넓은 나뭇잎으로 지붕을 얹은 집들과 너무도 예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이런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서 모였는지 동네 꼬마들이 졸졸 따라오면서 "Hello!"를 외친다. "나마스테(Namaste: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하자 그저 천진한 얼굴로 웃는다. 확 트인 아래를 바라보니 속이 후련하다. 맑은 공기에 주변의 경관도 아주 일품이다. 버팔로, 염소, 닭(달걀을 부화해서 많은 새끼 병아리를 데리고 다님) 등의 가축과, 400∼500m 높이에 이르는 계단식 논과 밭, 활엽수의 아열대 식물들, 이런 것들은 아주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 나의 유년시절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1960년대 한국의 농촌을 생각나게도 했다.

  30㎏이 넘는 짐을 지고 급경사를 오르는 포터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냥 오르기도 힘든데.....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고 묵묵히 제 일을 하는 그들이 어쩜 부럽다. 처음 묵는 담푸스의 롯지이다. 짐을 정리하고 밖에 나온 우리에게 해 지는 히말라야의 선경은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석양의 마차푸차례와 안나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든 신성함이 깃들어 있어 너무나 숙연하고 고요하다. 아니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                   <산비탈의 병아리집과 농촌>

  처음 걷는 히말라야의 험한 산길일뿐더러 무려 7시간을 버스로 와서 모두는 상당히 피곤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풀기로 했다. 요가를 했다고 했다는 김용국씨 부부의 시범에 따라 실시한 저녁의 요가 몸풀기는 몸의 긴장을 늦추어주고 지친 몸을 유연하게 하는데 아주 유용했다. 고지의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하기 때문에 머리를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대장 김영식이 이야기했다. 고산에서는 오리털 파카와 털모자로 몸을 보온하는 것도 아주 유익했다.
  쿡(Cook : 덴지셀파)의 요리 솜씨는 아주 대단했다. 롯지에서의 첫 저녁 식사는 김치, 깍두기, 오이, 마늘, 고추, 양파, 된장국 등등.... 이것을 누가 이국에서 트레킹의 저녁 식사라고 하겠는가? 식사 후 구수한 숭늉까지! 포만감에 어느 한국 식당 부럽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아주 친절하고 충성스러운(?)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다.
  별이 쏟아진다는 말씀 들어 보셨나요? 담푸스에서 히말라야의 밤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고 했던가? 내가 어린 시절 어느 때인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겨울밤에 오줌이 마려워 무릎이 헤진 내복차림으로 덜덜 떨면서 시골집 뒷간까지 뛰어갔고, 진저리를 치고 나서, 아래위 이빨이 부딪치는 추위 속에서 하늘을 보았을 때 그 무수한 별을 보고 "야아--정말 하늘에는 별이 무지무지하게(졸라게?) 많구나"라고 생각했던 그 별들을 오늘 여기 히말라야에서 다시 보았다.

  식당에서 네팔 소주 '럭시'를 마시고 방에 들어와 쉬려고 하는데 어디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뒤뜰에서 포터들이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서 합류해서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같이 흥얼거리고 같이 춤을 추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레삼삐리리∼레삼삐리리∼' '심심해' 등등 후렴구만 귀에 들렸는데 그들의 애환이 담긴 토속적 노래와 춤 같았다. 우리 아리랑과 같은 곡이라고 하는데 언어는 낯설지만 음악은 만국 공통 언어라는 느낌을 다시 갖게 되었다. 더 어울리고싶었지만 내일의 본격적 걷기를 위해서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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