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일(란드룽→촘롱.2140m)
   어제 밤은 지금까지의 여정 중에서 가장 잘 잔 밤 같다. 고지대의 걷기, 기후와 지형, 음식 등이 다른 곳에서 적응 기간이 왜 필요한가를 우리는 체험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긴 트레킹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초반의 오버페이스는 절대로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기슭을 따라 가다가 내려가서 강을 건너고 다시 촘롱까지 올라가는 오늘의 여정은 만만치 않다. 전날 마신 양주 기운이 남아 있어 머리가 약간은 무겁지만 눈부신 경관과 시원한 공기에 마음은 상쾌하다. 트레킹이란 등반(Mountaineering)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으로 결정적인 차이는 산을 정복하거나 정상을 탐하는 법이 없이 산길을 마냥 걷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과 대화를 나누는 등산인 셈이라 할까?
  지금까지 걸으면서, 이러한 급경사 지대에 계단식 경작지를 일구며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쉽게 토양화(土壤化)되는 암석 구조와  아주 조밀한 퇴적층의 함수력(含水力)이 가파른 경사 때문에 물의 유출이 쉬운 이곳을 인간의 거주가 가능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또한 열대식물, 대나무, 이끼류와 작은 초본류(草本類)가 경사도가 큰 이곳의 토양을 지지(支持)하는 작용을 할 것이고, 거기에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고도와 기압과 포화 수증기압 등등 물리, 화학적 이유가 있을텐데..???) 양말을 빨아 널어도 잘 마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분의 증발량이 적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물이 부족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냥 또 걸어간다.
  저 멀리 눈 덮인 안나푸르나의 남봉과 주변 아열대 경관과 경사진 산비탈에 인간들이 자연에 새겨놓은 문화경관(文化景觀)을 보며 걷는 상쾌함이란 이곳을 걸어볼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Landrung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오다가 Modi Khola 강을 건너(New Bridge) Ghinu Danda까지 오는데 땀이 흠뻑 났다. 차와 점심(수제비국과 현지에서 만든 만두를 먹었는데 여기에서 생산되는 밀로 만들었다는데 아주 구수한 맛이었다)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계곡 쪽으로 한 15분쯤 내려가니 Hot Spring(1780m)이 있어서 노천 온천욕을 했다. 옆에는 차디찬 융빙수(融氷水)가 흐르는데 따뜻한 온천욕을 하니 피로가 확 풀리고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Chomrong까지의 구간은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가시거리가 멀어서인지 보기보다 훨씬 멀었고 지금까지의 구간 중 가장 가파른 곳이다. 오광범 선생님이 현저하게 체력이 떨어진 듯 했다. 대부분은 많이 적응된 듯 보이나 좀 힘들어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금 올라가다가는 쉬고, 또 올라가곤 했다. 기압이 70밀리바로 낮아졌다. 도중에 10여 마리의 나귀가 나무토막을 싣고 힘겹게 내려오고 있었다. 이곳 고지에서는 인간이나 가축이나 삶이 힘든 것 같다. 또한 인간과 가축이 공생해야만 삶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했다. 드디어 촘롱에 도착했다. 이제 제법 많이 적응된 듯 찌야(이곳의 차)의 맛이 구수하다. 촘롱은 어쩌면 전망대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례는 장관(壯觀)이다. 짐을 정리하고 저녁 준비중인데 역시 먹는 일은 대단히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제 쿡 덴지의 솜씨를 인정해야만 한다. 오늘 저녁엔 미역국에다 잡채, 오이무침에 깍두기까지 준비되어 있어 이곳이 어디 낯선 외국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그의 한식 요리 솜씨   <나무운반하는 당나귀>  는 일품이다. 그리고 구수한 숭늉까지....
  촘롱은 ABC(Annapruna Base Camp)와 MBC(Machhapuchhre Base Camp)로 가는 요충지로 전망도 좋고 아주 깨끗하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란드룽과 간두룽 쪽의 경관(景觀)과  위쪽 ABC로 가는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트레킹 신고소(The Annapruna Sanctuary Trekking Check-Post)가 있다. ABC와 MBC로 가는 사람들은 모두 여기를 거쳐야 하며 신고를 해야 하는 곳이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 보니 영어를 잘하는 중년 여자 한 사람이 근무하며 다양한 이정표와 지도가 벽에 제시되어 있다.(약간의 통계 수치를 적어 왔는데 후반부에 참고로 기록할 예정임) 그리고 이곳에서부터는 롯지의 가격이 협정가격이란다. 마을 사람들끼리 협정을 해서 그것을 어기면 엄청난 벌금을 물린단다. 그래서 협상보다는 깨끗한 집을 고르는 편이 좋다고 한다. 저녁 후 식탁에 둘러앉아 아이들의 재기 발랄한 재롱과 웃음꽃이 핀다. 저녁 먹기 전에 이곳에서 생산된 감자를 쪄 왔다. 설탕을 찍어 먹으니 맛이 좋다. 그런데 '우리의 호프' 남기표가 피곤한 우리들을 위하여 또 연변 시리즈를 한다. "여러분 우리 옌벤에서는 이 정도의 감자는 감자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촘롱에서 본 마차>
거져 이 정도는 아이들 공기놀이감 밖에 안 됩네다. 500년 묵은 감자 보셨습네까???...........와쌈네다!?!!! ㅎㅎㅎ.....폭소 대잔치!!! 그리고 또 하늘에서는 예의 그 별들이 쏟아진다.
  현저하게 떨어진 기온 탓인지 롯지도 좁고 천정도 낮고 문을 봉쇄하여 열관리를 철저히 한 모습이 지혜롭다. 히말라야의 해는 일찍도 지는구나. 저녁을 먹고 나니 겨우 6시 30분인데 전기 사정이 안 좋아 대부분 7-8시면 잔다고 한다. 전기가 보급되기 전 지금의 이곳 사람들은 긴 밤을 어찌 보냈을까?
도중에 춘천, 인천 등에서 왔다는 용감한 한국인 처녀들을 만났다. 시원한 김치와 고추장이 그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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