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일(히말라야 호텔→M.B.C.3700m)
  히말라야 호텔을 출발했다. 이제 경사가 점점 더 급해진다. 3000m를 넘어서자 어지럼증이 더하다. 빙하 녹은 물은 소리쳐 흐르고 얼어붙은 빙벽이 보이고 북 사면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경사를 갑자기 높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걸으라고 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그냥 걷는다. 도중에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피부색이 검은 여인이 사탕 한 알을 건넨다. 에너지 소스(energy source)라 했다. 우        <MBC에서 주인장들과>        리도 초코렛을 주었다. 이 깊은 안나푸르나의 성역에서는 너와 나, 인종과 문화의 차이도, 언어의 벽도 다 필요가 없는 듯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 멀리 MBC가 보였다. 절로 힘이 솟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하나 둘씩 모두 MBC에 도착했다.
  골바람이 몰아친다. 먼지를 동반한 고약한 바람이다. 안나의 북 사면에서는 거대한 눈바람이 기둥을 만들며 하늘로 솟구친다. 마차푸차례 베이스 켐프에서는 히윤츄리와 안나, 남봉 안나 1봉,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의 설산(雪山)이 산줄기를 형성하여 마치 거대한 빙벽 병풍을 쳐 놓은 듯하다. 빙하에 의해 침식 받은 봉우리들은 날카롭게 솟아 있고 아름답다 못해 두렵고 가슴이 서늘하다. 4000m나 올라왔는데 여기서부터 또 4000m의 안나 1봉이 솟아 있으니 4㎞를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고 상상해 보시라.
  내일의 마지막 ABC 트레킹을 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개별 롯지는 추워서 있기가 좋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식당에 모여 침낭을 옆으로 덮고 휴식을 취하면서 각자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밖에는 안개가 전체 롯지를 휘감아 앞뒤 구분이 안 된다. 잠시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깨끗하다. 천변만화(千變萬化)의 기상 변화다. 기온도 상당히 낮아졌다.
  저녁 식사 후 MBC식당에서 쿡과 포터 그리고 롯지 주인과 우리는 같이 어울려 서로의 전통 노래와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사를 한글로 적어가며 네팔 노래 "레삼삐리리"를 배웠다. 괴산 김용국씨의 대금 연주도 듣고 어설픈 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불렀다.
진도 아리랑 등 등 ..... 네팔과 우리 전통의 교감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전통에 무관심했나를 절실히 느끼는 반성의 시간도 되었다.(갑자기 한국 노래 한 번 해 보라는데 아리랑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추운 날 포터들은 계곡 옆의 동굴에서 비박(Biwak=bivouac : 등산에서, 천막을 치지 않고 바위 밑이나 나무 그늘, 눈 구덩이 따위를 이용한 간단한 야영을 이르는 말임)을 한다고 한다. 남금우 씨가 우리가 약간의 돈을 내서 그          <안나푸르나의 일출>
들을 롯지에 재우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이 추운 날 이 오지에서도 인간의 빈부의 차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인가? 안쓰럽게도 우리는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네들도 포터와 쿡 세계에 질서와 묵시적 규칙이 있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과자를 사 주었는데 먹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왜냐고 물었더니 전원이 다 모여 골고루 먹겠다는 것이다. 그들 사회에 존재의 양식이 따로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트레킹 과정에서 늘 마음에 걸리는 포터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주변 친구들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나이가 70이란다. 칠십 노인이 포터를 하다니? 그들의 평균 수명이 60살 내외라고 하니까 그 노인은 한국 나이로 100세에 포터를 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가 건강하고 장수해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는지 안쓰럽게 느껴야하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선다.
  전기가 없음이 이리 불편할 줄이야... 석유 버너로 불을 밝히고 네팔 노래를 배운다.
  ※렛산 피리리(날아라 나비야!!!)
1.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렛산 피피∼리∼
우데라 쟈우키 다라마 반잘 렛산 피피∼리∼
(비단 옷감이 팔랑팔랑∼ 비단 옷감이 팔랑팔랑∼)
(날아갑시다. 산에 살골짜기에 비단의 옷감이 팔랑팔랑∼)
(날아갑시다. 산에 살골짜기에 비단의 옷감이 팔랑팔랑∼)
(날아갑시다. 산에 살골짜기에 비단의 옷감이 팔랑팔랑∼)  레삼삐리리....

  MBC 롯지에서 일하는 K. B. lama라고 하는 24세의 청년은 기타를 아주 좋아했다. 이 히말라야의 오지 4000m의 롯지에 기타라는 악기가 있다니!(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인도에서 인도인 어머니와 네팔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인도 북부에서 긴 머리를 하고 다니다 인도 경찰에 잡혀서 칼로 머리를 잘려보기도 했고, 마리화나 등의 마약에 중독이 되어 있었는데 모든 것을 청산하고 이 히말라야의 오지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그의 노래는 아주 수준 급으로 느껴졌다.
  ABC의 실제 주인은 옛날 한국 농촌의 보통 처녀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몸집이 비교적 뚱뚱한 처녀였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물으니 결혼은 다음 세상에서 한단다. 그리고 지금은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례가 자신의 애인이란다. 그래서 에베레스트며 강가푸르나, K2, 마나슬루, 갠지즈강 등 다 당신의 애인 하라고 너스레를 떠니 좋아 죽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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