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일(New Bridge→포카라)
  원래 간드룽에서 자려고 했던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는데 전날의 피로로 인하여 뉴 브리지에서 자고 오늘은 포가라까지 가야하는 긴 여정이 되었다. 계곡을 따라 예의 걸음을 걸으며 내려오다가 간드룽과 만나는 곳에서 능선길을 따라서 걸었다. 이곳은 계곡을 경계로 반대편의 란드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안나 트레킹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이다. 험한 계곡을 건너는 현수교는 중요한 도로 연결 고리이며 출렁거리는       <간드룽의 네팔 가족과>      맛이 좋다. 간드룽의 엄청난 계단식 경작지를 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경지를 개척해 왔나를 짐작할 수 있다. 모두들 체력이 상당히 떨어진 듯 약간은 피곤해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네팔 사람들의 삶은 자연에의 역행이 아니라 절묘한 조화라 해야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포가라 쪽으로 갈수록 날씨는 더욱 따뜻해지면서 오랜지나무에 많은 오랜지가 열려 있었다. 맛도 좋다. 기운들이 많이 빠졌다. 이곳에서 믿을 것은 오직 튼튼한 자신의 두 다리밖에 없다.
  베리뗀테에서의 점심은 그곳의 전통 음식인 달밭과 양고기를 먹었다. 양고기는 그런 대로 맛이 좋았으나 달밭은 예의 그 향이 약간의 비위를 건드렸다. 신기조산대(新期造山帶 - 신생대 제 3기에 습곡, 단층작용으로 형성된 산맥 : 형성 시기가 현재와 가장 가까움)의 활발한 침식과 급경사의 운반 작용이 활발하여 도로의 사정이 좋을 수가 없었고, 울퉁불퉁한 자갈과 돌길은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의 나귀는 짐을 운반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었다. 10여 마리의 나귀들이 곡물과 짐을 수송하고 있었다. 그 나귀들도 아주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체력을 아끼는 듯 하였다. 다 자기 살 궁리를 하는가 보다.
  이날은 이곳이 마침 우리나라의 장날 같아서 간두룽과 주변 촌락에서 나야폴의 시장으로 장보러 갔다가 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 손에는 석유 기름을 들고 등에는 짐을 진 어린 소년에서부터 청년, 노인까지 다양하다. 노부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오는지 포대기에 부모를 업고 가는 청년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 효심이 가상했다.
  나야폴은 이곳에서 큰 길이 지나가는 곳이며 주변 여러 마을에서 장을 보는 곳으로 우리네 옛날 장터를 연상케 했다. 갖가지 음식물이며 생활 필수품을 사서 들고 가는 사람, 닭을 한 마리 들고 가는 사람 양철판 등 건축 자제를 들고 가는 사람 등이 눈에 띄고 각종 물건 판매하는 곳과 옷 수선 하는곳 등이 정겹다. 나의 어린 시절에 보았던 시골 장터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어려움 속에서도 모두 나야폴까지 도착했다. 7박 8일의 진짜 걷는 트레킹의 종점이 여기였다.         <나야폴의 장터>
 가슴이 뿌듯하다. 피곤이 겹쳐서인지 포가라로 이동중인 버스안에서 모두는 잠시 경관을 구경하다가 이내 깊은 잠으로 빠졌다. 포가라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포와湖(Pehwa)로 가서 작은 보트를 타고 모처럼 시원함을 즐겼다. 호수 안에 있는 섬의 힌두교 사원을 관람했다. 포와호는 굉장히 컸으며 주변의 빙하 녹은 물이 유입되어 도시 주변에 있는 호수로는 수질도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이곳에서 보는 마차푸차례와 안나푸르나의 만년설은 가히 절경인데 유감스럽게도 구름이 앞을 가려 절경을 볼 수 없음이 안스러웠다. 남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이곳 포가라에서 Tibet Hotel에 도착한 우리는 모처럼 상쾌하게 샤워를 하고 면도도 하고(모처럼 내가 면도를 했더니 어떤 사람은 나의 놀라운 변신에 나를 구분하지 못했음...어흠!!!) 호텔 옆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에 만두에 피자에 쇠고기·닭 스테이크(닭이 더 비싸다 - 닭은 곡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닭은 초식 동물이 아니라 재배된 곡물을 소비함에 있어서 인간의 경쟁자로 볼 수도 있다)를 즐겼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