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걷기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아침 8시 우리는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했다. 처음이라 다들 신기해 한다. 아열대림의 숲을 헤치고 좁은 길을 향해서 우리는 걷는다. 꾀 여러 곳의 현수교를 지난다. 이런 신기조산대의 협곡은 아주 위험하기도 하고 골이 깊어서 계곡을 연결하는데 현수교는 아주 적격이다. 출렁거림과 스릴도 만점이다. 주변에 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 개간하여 경지로 이용한다. 워낙 경지가 협소하여 급경사도 계단식으로 모두 이용한다. 계단식 경작 방식은 토양의 유출을 막고 경지를 고정시키는 역할도 하고, 평탄하여 작업하기도 좋다. 이곳에서의 가장 합리적인 토지 이용 방식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랑탕 계곡이다. 처음 걷는 것이라 그런지 약간 힘도 들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우선 그 계곡의 깊이와 크기에 압도된다. 주변의 울창한 아열대림은 몇 백 년을 묵었는지 모르겠다. 융설수(融雪水)의 큰 울림과 흐름, 곳곳에 있는 산사태의 엄청난 흔적. 물방아를 이용한 마니차는 쉼 없이 돌고 돈다. 성황당과 같은 만장과 힌두식의 많은 종교적 상징들이 이곳이 성역임을 표시한다. 포터들이 힘겨워한다.

  밤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떡국인데 육수 국물까지 넣어 맛도 좋다. 그릇 바닥에서 약간의 모래가 씹히지만 문제 될 것이 없다. 첫날이라 다들 조금씩 힘들어 하지만 별 문제는 없는데 우리의 장창락 기자가 진땀을 흘린다. 알고 보니 그는 커다란 두 대의 카메라에다가 많은 사진 장비까지 배낭에 지고 오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그는 전문 포터가 아니었다. 결국 사진기 한 대는 최광옥 선생님의 몫이 되었고 최 선생님은 이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최 기자가 되어 버렸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날이 어두워졌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포터들이 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겨울 내내 놀다가 운행 첫날 무거운 짐에 녹초가 된 것 같다. 이래저래 사는 것이 힘이 드는구나. 저녁에 우리는 운이 좋게도 이웃집에서 라마제 굿을 실제 보게 되었다. 정초에 악귀를 물리치는 우리네 옛날 굿판 같았는데 모두 아주 숙연한 분위기였고 멋졌다. 굿판이 끝나고 그네들의 전통 술인 창을 마셨는데 우리 막걸리와 맛이 비슷하다.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밤하늘에 별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히말라야   밤하늘의 별은 정말로 아름답다. 머리 위에서 수없이 반짝이던 그 많은 별들을 잊을 수가 없다.


1월 네팔(5)설 ‘로살’(네팔 설 로살에 관한 글을 옮겨보았다.)


네팔에도 설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가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네팔 사람들도 우리만큼 설을 정겹게 보냅니다.

네팔은 태음태양력인 비크람삼버트력을 사용하는 탓에 양력 기준으로 하면 매년 설 날자가 조금씩 변합니다. 네팔의 설 ‘로살’은 보통 양력으로 4월 14~16일 사이에 찾아옵니다. 로살의 ‘로’는 해(year), ‘살’은 새로운(new)의 의미입니다. 네팔의 신년 맞이는 11월경(양력 2월)부터 시작됩니다.

네팔의 11월은 ‘검은 달’입니다. 나쁜 기운이 강하다고 믿기 때문에 11월에는 결혼식 등 축하할 일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11월에 태어난 아이는 불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이 낳기를 꺼릴 정도입니다. 네팔도 남존여비적인 문화를 갖고 있어 어떤 지방에서는 11월에 태어난 딸은 평생 배필을 얻지 못한다고 하니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라마승려(왼쪽)가 구마의식인 또나고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지 않는 오른쪽에서 북을 두드리며 불경(페자)을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운 11월에 네팔인들은‘또나고숨’이라는 구마(驅魔)의식을 치릅니다. 라마승을 초빙해 집안에서 옥수수와 보리 가루를 섞은 ‘잠바’로 4가지 색깔(동서남북을 의미)의 제웅(除雄)을 만듭니다. 제웅 주변에 작은 촛불을 켜고 악귀를 쫓는 불경(페자)을 읽은 뒤 잠바 가루를 뿌려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악귀가 실린 제웅을 집 주변으로 가지고 나갑니다.

또 나고숨 때 사용하는 제웅. 다양한 크기의 것을 여럿 만들고 촛불을 켜서 신비스런 분위기입니다. 이 의식을 주재하는 라마승이 제웅을 들고 나가는 방향을 정해주거나 사방 4곳으로 모두 들고 나갑니다. 집주인과 이웃 사람들은 제웅을 놓은 뒤 칼을 뽑아들고 강렬한 소리를 질러 악귀를 위협합니다. 힘을 합쳐 다시는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것이지요. 악귀를 이긴 주인과 이웃들은 뺨에 잠바 가루를 발라 승리를 표시하고 창(쌀로 만든 술)이나 럭시(기장과 누룩으로 만든 민속주 둠바를 증류한 독주)를 마시면서 자축합니다.


바닥에 흰 잠바 가루를 뿌린 것이 보이실 겁니다. 악귀가 실린 제웅을 들고 나갈 때 이것을 밟고 나갑니다. 로살 이틀 전 네팔인들은 ‘시마랑구’라는 과자를 만들어 먹습니다. 과자 안에는 한해의 운수를 가늠해볼 수 있는 9가지 상징물이 들어있습니다. 고추, 소금, 숯, 양털, 콩, 밀가루로 만든 해, 달ㆍ별ㆍ네모과자 등은 각각 게으름, 악운, 알뜰함, 수다스러움 등 한해의 운수나 경계해야 할 것들을 의미합니다. 과자 속에서 새해에 스스로를 다스리는 지혜를 찾아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까치설날’로 삼는 그믐날 네팔인들은 집안을 정갈하게 청소합니다. 설날 새벽,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을의 가장 좋은 샘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여기에 버터로 만든 물고기를 띄워 집에 가져옵니다. 가장 먼저 길어 올리는 이와 가정에 복이 온다고 해서 경쟁이 치열한 편입니다. 여기에 띄운 물고기를 ‘금(金)물고기’라고 부르는 것도 특이합니다. 이 물을 4~5일간 집안에 정갈하게 보관했다가 가족들이 나누어 마십니다.

물을 길어온 초하룻날 아침에 사원에 가서 음식을 바치며 복을 기원하는 것 외에 네팔 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쌀로 빚은 술 창과 ‘갑세’라는 밀가루과자를 만들어 먹으며 쉽니다. 이날 이웃집 방문은 금기입니다.

초이튿날부터 한 달 동안에는 반대로 이웃집을 돌면서 그 집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흥겹게 춤추며 놉니다. 레삼삐리리 등 네팔의 민요는 단순하면서도 흥겹고 춤을 동반하기에 여러 사람이 어울려 흐르기에 좋은 노래입니다. 우리 민요의 쾌지나칭칭나네와 비슷한 반복 구조를 가지고 있는 노래입니다. 멀리 떠나 부재중인 가족이 있으면 ‘갑세’를 수북이 쌓아 따로 상을 차려 놓은 채 한 달 동안 그를 기억합니다. 떨어져 있으나 마음속에 언제나 함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당신의 마음속에는 지금 누가 있습니까. 네팔 인들처럼 따로 상을 차려 기억할 그 누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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