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도 흉내 못내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향
그녀의 향기
2007년 04월 13일 | 글 | 임소형 기자ㆍsohyung@donga.com |
 
‘개코.’ 냄새를 잘 맡는 사람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별칭이다. 요즘 스크린에서 천부적인 ‘개코’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최근 개봉한 영화 ‘향수’의 주인공이다. 그르누이는 여인 13명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그는 단지 최고의 향수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체취(體臭) 그대로 말이다.

천연 향 100% 재현은 불가능

그래픽=김수진 동아일보 기자
[꽃에서 향기 내는 성분을 추출할 때 옛날에는 소나 돼지의 기름을 썼다. 넓은 판에 기름을 깔고 꽃을 얹어 두면 향기 내는 성분이 날아가지 않고 기름에 스며든다. 이를 용매에 녹여 기름을 분리해 낸 다음 용매를 날리면 향기 내는 성분만 남는다.

그르누이는 이런 방법에 착안해 여인들의 온몸에 끈적끈적한 연고 같은 물질을 바른다. 체취를 내는 성분을 흡착시키려는 것이다. 엽기적이지만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체취에는 보통 미량의 여러 가지 화학 성분이 다양한 비율로 섞여 있다. 사람마다 체취가 다른 것은 화학 성분의 종류와 혼합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량의 성분이 각각 무엇인지 알아내고 혼합 비율까지 정확히 맞춰야 체취를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특정한 냄새를 내는 수많은 화학 성분이 알려져 있다. 향수나 생활용품 등에 첨가하는 향기를 만들 때 이들 성분을 여러 가지 방법의 화학반응을 통해 조합한다. 그러나 이런 첨단기술로도 체취를 재현해 내기는 쉽지 않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류충민 박사는 “설사 체취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인공으로 만든 향과 실제로 맡는 냄새는 다를 수 있다”며 “코에서 뇌의 후각 영역까지 냄새가 전달되는 동안 냄새를 내는 성분의 화학반응이 미세하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코는 미세한 냄새 변화에도 민감하다는 얘기다. 류 박사는 “10억분의 1몰 농도의 극미량 성분까지 찾아내는 기기인 가스 크로마토그래피가 못 찾는 냄새 성분을 코가 감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LG생활건강 센베리퍼퓸하우스 김병현 부문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화학물질로 체취를 만들어 낸 적은 없다”며 “현대 기술로는 어떤 천연 향도 100% 정확하게 재현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후각 능력 천차만별

사람마다 후각 능력이 천차만별인 것도 체취를 재현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개코’가 있는 반면 특정 냄새를 못 맡는 ‘후맹’도 있다. 후각 능력은 후각 유전자가 얼마나 활발히 활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의 전체 유전자 중 3% 정도가 후각 유전자라고 알려져 있다.

건국대 의대 이비인후과 홍석찬 교수는 “성장 과정에서 겪은 특정한 환경이 후각 유전자가 더 활발해지도록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천적으로 후각이 뛰어난 그르누이가 어릴 때 온갖 악취가 진동하는 시장 한가운데서 자랐다는 영화의 설정은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 후각 능력이 달라지기도 한다. 순천향대 천연향장품연구소 한상길 교수는 “조향사(調香師)가 하루 중 냄새를 가장 잘 맡는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낮 12시”라며 “식사 직후나 피로가 쌓인 오후에는 평소보다 민감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후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감정을 느끼는 영역과 가깝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사이언스’ 2월 23일자에는 후각 능력이 심지어 수명까지 바꾼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베일러대 의대 스콧 플레처 박사팀은 먹이를 조절해 다른 초파리보다 오래 살게 만든 초파리에게 효모의 냄새를 맡게 했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수명이 다시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효모 냄새에 독성이 있지는 않다”며 “냄새를 내는 성분이 초파리의 몸속에서 어떤 생물학적 반응을 일으켜 수명을 조절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을 꼭 안아 보라. 그 체취는 첨단기술로도 재현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이다. 어쩌면 그 향이 당신을 더 오래 살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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