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1. 05.[]

 

  어제의 눈발은 온데간데없고 날씨는 청명하게 개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롯지 주변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눈세계로 변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부지런한 대원들은 이른 아침에 나그탈리전망대에 가서 가네시 히말의 사진을 찍고 왔다고 했다. 그 열정과 부지런함이 부러웠다. 오늘은 뚜만(Thuman 2,338m) 마을에 있는 뚜만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나그탈리에서 뚜만까지는 약 1천미터 정도의 고도 차이가 나는데, 내리막길이라 한 시간 반 만에 뚜만 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오전 950분이었다. 작은 학교 앞 마당에서도 북동쪽으로 랑탕 히말의 하얀 설산이 멀리 보였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어디에서든지 약간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히말라야의 설산을 볼 수 있으니 좋았다.

  작은 뚜만초등학교에는 젊은 남선생님 한 분과 전체 재학생 40명보다도 훨씬 많은 어린이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에서 후원회사인 영원에서 준비해 준 선물가방을 들고 학교로 들어섰다. 낱개로 되어있는 선물가방 속에는 어린이용 후드 자켓, 잠옷, 속옷, 학용품, 시장바구니 등이 들어 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인 뚜만초등학교에 봉사를 가면 선물을 받으려고 동네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이 다 모여든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먼저 수업봉사활동을 하기 전에 그 곳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재학생과 일반 어린이와 청소년을 분리시켰다. 방학이라서 그런지 선생님은 한 분만 있었다. 학교 건물 앞마당에서 가이드 핀죠의 통역으로 간단한 기념식을 하였다. 탐사대를 대표한 인사말은 김영식 대장님이 사양하여 윤석주 자문위원님이 하였고, 축구공 전달은 최창원 자문위원님이 하였으며, 뚜만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답례인사를 끝으로 기념식을 마치고 바로 수업활동을 시작하였다.

 

  수업봉사활동은 미술 수업과 체육 수업 그리고 우리말 수업이었다. 먼저 첫 수업은 미술 수업으로 오인숙 선생님의 지도로 재학생을 원형으로 둥그렇게 앉히고 청소년대원을 중심으로 전 대원들이 학생 사오 명 사이에 앉아 그룹을 지었다. 준비해 간 물감과 종이를 이용하여, 흰 도화지에 물감을 짜서 접은 후 펼쳐 대칭적인 그 문양이나 얼룩을 보는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수업이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동네 청소년들도 매우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였다.

  이어서 체육 수업은 두 사람이 조를 짜 발목을 묶은 다음 2인 삼각 달리기 중간에 두 사람 사이에 풍선을 넣어 터트리고, 쌀가루에 덮인 사탕을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 먹는 게임이었다. 탐사대원 모두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게임이었는데 코에 하얀 쌀가루를 묻히면서도 모두 즐거워하였다. 우리 탐사대가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김종민 선생님의 지도로 청소년 대원들이 게임 준비나 풍선 준비 등을 잘해두어 보람있는 봉사활동이 되었다.

 

 

[오인숙 선생님이 지도하는 미술 데칼코마니 수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청소년들_김영채 사진]

 

  마지막 수업은 연철흠 선생님이 지도한 우리말 수업이었다. 우리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딱 두 마디만 가지고도 아주 집중도가 높은 재미있는 수업을 하였다. ‘나마스테안녕하세요그리고 돈네밧감사합니다가 같은 말임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는데, 연 선생님의 티칭 노하우가 뛰어나 학생들 모두 처음 듣는 생소한 우리말을 배우려고 눈을 말똥거리며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잘하면 사탕을 하나씩 주니 사탕을 받으려고 어린이들이 더 열중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사이에 한 시간 반의 수업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행사를 마치기 전에 탐사대원과 뚜만초등학교 학생들, 동네 청소년, 구경나온 주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행사를 마쳤다.

 

 

[뚜만초등학교에서 우리말 수업 중인 연철흠 선생님_김영채 사진]

 

  오전 1130, 학생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뚜만 마을로 내려갔다. 학교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15분쯤 내려가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롯지(Budda Hotel)에 도착하였다. 마을에 있는 주택은 벽을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집은 이층구조로 되어 있고 아래층은 헛간으로 마굿간이나 창고로 쓰이며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이층이라고 한다. 이 주택들은 오백년 이상 된 집들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마을 전체가 인류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인 셈이다. 롯지에 도착하여 배낭을 벗고 홍차 한 잔 마시니 벌써 점심 먹으라고 한다. 조리팀이 벌써 라면을 끓여 놓았다. 언제나 부지런하고 우리들 입맛에 맞는 식사를 미리 준비해 주는 쿡 리마가 고맙다. 탐사대장님의 주도면밀한 탐사대 관리에 고마워해야 하겠다.

 

  1230분에 뚜만 마을을 출발하였다. 마을을 벗어나니 계단식 논이 나타났다. 산사면의 경사가 급하다보니 계단식 다랑이 논을 만들 수밖에 없겠다. 다랑이 논의 폭이라야 아파트 베란다만 한데 이를 경작지로 만든 네팔사람들의 생존본능이 놀랍다. 뚜만에서 한 시간 반쯤 걸어 달페디(2,317m) 마을 입구에서 쉬었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집 마당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말리거나 키질을 하여 옥수수에서 쭉정이를 걸러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사오십 년 전 가을걷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겨웠다. 다른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절구통에서 곡물을 찧고 있었는데 남자는 없고 여자들만 있었다. 절구통은 돌로 된 것이 아니라 통나무 절구통이었고 절구공이는 원형이 아니라 손잡이 빼고는 사각으로 되어 있었다. 절구통은 옆이 쩍쩍 갈라져있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물건 같았다.

 

 

[달페디 마을에서 절구질에 열중하는 따망족 여인과 촬영에 열중하는 심 피디님_김영채 사진]

 

  뚜만 마을을 출발한지 2시간 만에 보테코시 강가에 있는 도로까지 내려왔다. 보테코시 강(Nadi)은 북쪽 티베트 히말라야에서 흘러온 강물인데 둔체를 지나면서 트리슐리 강으로 이름이 변하여 남쪽으로 흘러 인도로 흘러가는 강이다. 강가에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 시간만 내려가면 샤브루베시 마을이다. 샤브루베시 마을 입구 검문소를 지나 숙소인 호텔(트레커 인)에 도착하였다. 오후 330분이라 아직 오후 햇살이 조금 남아 있다. 샤브루베시는 지도와 마을 안내판에는 Shyaphru Besi로 표기되었으나 여행안내서나 호텔 간판에는 샤브루벤시(Syabru Bensi)로 쓰여 있는데, 브이자(V) 계곡 속에 자리한 마을이라서 아침이 늦고 저녁이 일찍 온다고 여행안내서 나와 있다. 4층 건물인 우리 숙소는 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건물이다. 오늘 트레킹은 8시간이 걸렸다.

 

  전기가 귀한 산 속 롯지에서만 지내다가 전등이 환하고 세면장에 물이 풍족한 여기만 와도 큰 도시에 온 것처럼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비누로 세수하고 발을 씻었고 양말도 빨아보았다. 온수가 많이 나오지 않아 머리는 감지 않았다. 그래도 참 개운하였다. 저녁식사시간까지 숙소에서 룸메이트 연 선생님과 편안하게 쉬었다. 식당에서 심 피디님으로부터 이곳 샤브루베시에서도 국제전화와 문자통신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서 보내는 문자 한 통은 150원이고 받는 문자는 모두 무료라고 한다. 한가한 시간을 내어 휴대폰으로 집사람과 아이들, 가까운 분들에게 문자로 네팔 소식을 전했다. 전화통화는 1분에 1,500원이 넘어 굳이 전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 문자를 보냈더니 반가운 소식들이 날아왔다. 좋은 세상이란 것을 새삼 느꼈다.

 

 

 

 

 

 

출처 : 충북등산학교
글쓴이 : youngch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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