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다라파니-베시사하르)

아침 6시에 키친보이의 모닝콜 소리에 밖을 나가보니 환형이 서쪽 하늘을 가리키며 파란색이라고 하였다.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정말로 하늘이 청명하다. 참으로 며칠 만에 보는 푸른 하늘인지 모르겠다. 어제 점심때 도착하여 3일 동안 발이 묶여 있어서 헬기를 부른다는 다른 트레커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날이 개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하산을 시작하였다. 길에는 굴착기가 굴러간 궤도 자욱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뒤로는 오토바이들의 경적이 요란하게 들려왔으며 그동안 발이 묶었던 귀향객들의 카트만두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몇백 미터를 가자 앞에는 커다란 노란색의 굴착기 한 대가 좁은 골목을 가로막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굴착기 뒤의 오토바이들 행렬 앞에는 누군가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굴착기 옆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가니 도로인지 계곡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으로 커다란 돌멩이들이 드러난 경사진 도로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고, 일찍 서둘러 출발했던 오토바이들은 더는 갈 수가 없는 상태였고, 그제야 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를 갔을까 이번에는 난데없이 나타난 거대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길을 횡단하여 계곡 쪽으로 흐르며 트레커의 발을 묶었다. 다들 등산화를 벗고 쓰러진 전신주의 전깃줄을 안전밧줄 삼아 힘겹게 건너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다른 일행과 마찬가지로 신발을 벗고 혹시나 바닥의 물질에 다칠까 염려스러워하는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 양말만 신은 채 계곡물에 휩쓸리지 않도록 사력을 다하며 어렵게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건너는 데 성공하였다. 또 얼마를 갔을까.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런 상황으로 어렵게 하산하는 와중에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연실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동안 폭설과 폭우로 발이 묶었던 트레커들이 시간에 쫓겨 카트만두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어렵게 새로 생겨난 폭포와 산사태로 막힌 길을 헤치며 딸(Tal)을 지나니 자동차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힘겨운 사투 끝에 참제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우리의 오늘의 목적지인 응야디(ngadi)까지는 10km가 남아 있었고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대원들의 체력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여서 가이드에게 차량 임대를 알아보라고 하였더니 참제에서 베시사하르까지는 30km 안팎인데 25만 원 정도를 달라고 한다. 일행을 설득하여 그대로 도보 하산을 강행하기로 하고, 가이드에게 마지노선으로 15만 원까지는 지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가이드의 협상은 시작하였으나 안 된다고 몇 대의 지프가 그냥 내려가고 할 수 없이 우리 일행은 내가 결정한 대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몇백 미터를 가지 못해 15만 원에 가기로 한 지프를 섭외하였다고 가이드가 달려와 알려주었고 일행은 지프에 탑승하였다. 이것도 대목이라고 그것보다 3배 가까운 거리를 상행 카라반을 20만 원에 올라갔는데, 이런 횡포를 부리다니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갔을까 지프가 동네 한가운데 서더니 서양인 트레커를 우리 일행이 탑승한 차에 태우는 것이 아닌가 분명 우리가 전세로 임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사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 한 무리의 트레커가 탑승한 지프는 산사태로 헤어진 길이 제대로 복구조차 되지 않아 돌무더기가 쌓이고, 미끄러운 진흙탕이라서 금방이라도 수백 미터 계곡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도로를 곡예 운전을 하며 3시간여를 달려, 아니 기여, 토롱라를 넘기 위해 이곳을 출발한 지 꼭 9일 만에 다시 우리 일행을 베시사하르에 내려주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틀어진 일정을 협의하였고, 계속 이어지는 궂은 날씨로 예정된 일정에서 푼힐전망대 트레킹 코스는 제외하기로 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를 여유롭고 체력부담이 적도록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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