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시누와-데우랄리)

오늘은 평상시보다 약 20분 빠르게 출발한 탓인지 사건이 벌어졌다. 500m쯤 진행하였을 때쯤 전방으로 마차푸차레의 풍광이 들어왔다. 카메라로 촬영을 마치고 휴대폰 촬영을 위해 찾으니 없어졌다는 것을 안 원형이 가이드의 핸드폰을 빌려서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포터의 전화로 알려왔다. 아무래도 짐 속에 있는 듯하여 카고백을 오픈하라고 하니 그곳에 가지런히 잘 보관되어 있었다. 시누와에서 밤부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천연의 원시림 속을 걸을 수 있어 시원하고 산림욕을 맘껏 즐길 수 있었고 이따금 하늘이 열리는 곳에는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3봉이 그 위용과 아름다운 자태를 우리에게 선사해주어 힘든 것을 잊고 걸을 수 있게 해주었다. 밤부 롯지에 도착하여 생강차 한잔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밤부라는 지명이 대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부터의 트레킹 코스는 대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있었다. 11시 반이 되어 설산 아래 양지바른 곳에 있는 도반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등산의 백미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등산의 완성은 안전하게 집에 귀가하는 것이다.

 

도반에서 감자 익힘으로 점심을 먹고 히말라야 롯지까지는 그럭저럭 올라왔으나 히말라야 롯지에서 데우랄리로 오르는 등행길은 너무나도 힘들고 20년 전에 트레킹하였을 때는 전혀 어려움 없이 올라왔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다시는 ABC 트레킹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히말라야 롯지를 비롯해 ABC 트레킹 루트에 대한 예전 기억이 현재랑 아무것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 나이가 든 탓인지, 트레킹 코스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데우랄리 롯지에 도착하여 다이닝홀에서 대원들과 대화를 나는 중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네팔리 한사람이 양 한 마리를 억지로 끌고 내려가고 있다. 양은 안 끌려가려 하고 네팔인은 데리고 가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화가 난 사람은 양을 번쩍 들어내던지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죽으러 끌려가기 싫어하는 양의 모습이 너무나 측은해 보였다. 안 끌려가려는 양과 끌고 가려는 사람 사이에는 계속 실랑이가 벌어졌고, 끌고 가려는 사람의 인상은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언덕 위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던 양들이 무리 지어 내려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양과 실랑이를 벌이던 사람도 그제야 목동이었던 것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무리에서 이탈된 양을 무리 속으로 인도하려고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 혹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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