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일기 제4일] (1) 블랙워터 래프팅

8월 13일


5시 30분 쯤 잠을 깼다. 늦게까지 수다를 떤 덕분으로 잘 못 일어나고 있는 아이들을 두드려 깨우고는 다른조 차량을 돌며 문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깨워주고 세면을 하였다.(이후로는 이런 일이 나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새벽 분위기의 나무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 없이 노출을 길게 주니 떨림이 심하다. 블랙워터 래프팅은 하루 인원이 한정돼 있다 사전 예약제라고 하여 서둘러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김 사장은 동굴 속의 체험이 매우 스릴 있고, 글로우 웜(우리의 반딧불이와 비슷)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도 있어 매우 환상적이라고 했다. 다만 엄청(?) 추운 것이 단점이라고 했다.


3조의 김지은의 말로는 작년 탐사대 활동 중에 이 블랙워터 래프팅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한다. 지은이 아빠의 표현을 빌자면 지은이는 순전히 블랙워터 래프팅을 위해 이번 활동에 참가했다고 한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탐사대를 3개 팀으로 나누었다. 1조(송혜진, 유단비, 오정인, 김자연). 4조(유재준, 박건호, 이석희, 김민상)를 A팀으로, 3조(한윤미, 우진주, 김지은, 김선정), 5조(유재준, 민경록, 이형탁, 김진상)를 B팀으로, 2조(송태리, 이슬기, 이의정, 양예진)와 본부조를 C팀으로 하여 래프팅을 하기로 하였다.


애초 C조와 함께 래프팅을 하기로 되어 있던 이 피디가 촬영을 이유로 극구 참여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슬기가 함께 하면 촬영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회유하였으나 아이들 표현대로 완전 A형(혈액형)의 결과로 끝내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여 다른 외국인 2명으로 대체되었다.


간단한 조서(건강 체크 및 서약서가 맞을 듯)를 작성하고 아래로 내려가 옷을 갈아입었다. 먼저 신발을 신고, 바지, 상의, 장화, 헬멧 순으로 옷을 입는데, 처음에는 내의를 준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내의를 주지 않아 문의하니 내의가 충분하지 않아 지급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더욱 추워졌다. 나와 날씬한 지 사장은 옷을 잘 입는데, 통통한 한 기자와 임 선생은 옷 속에 몸을 구겨 넣느라고 고생 꽤나 한 모양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니 태리가 입술이 파래져서 추위에 떨고 있다. 제자리뛰기를 좀 시키려니 학교에서 운동(매트에서 구르기 정도가 전부라고 함)은 별로 배운 것이 없어 방법을 잘 모른다고 했다. 교민 예진이가 통역 겸 태리의 도우미를 하도록 편성하였는데 동굴속의 환경이 여의치 않아 내가 태리를 도맡아야 했다.


차에서 내려 준비 단계로 튜브를 가지고 다이빙 시 자세와, 단체 래프팅 시 자세, 방법 등에 대한 안내를 받고, 동굴속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을 계곡에서 먼저 실습을 하였다. 겨울의 동굴속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에 뛰어드니 잠수복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물에 든든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추위를 참으러 해도 몸이 와들와들 떨려와 어쩔 수가 없다.


실습을 마치고 동굴로 출발하려니 A팀이 래프팅을 마치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추워 보이기는 하나 얼굴 표정은 모두들 환하다. 가이드를 따라 동굴 입구에 다다르니 입구부터 가파른 길이다. 인위적인 조성을 최소화하고 환경을 보존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튜브를 어깨에 메고 걷기도 하고, 엉덩이에 끼고 뒤로 점프하기도 하고, 기차놀이처럼 다리를 앞사람 튜브 위에 올리고, 뒷사람의 다리를 잡아 주기도 하며 동굴을 따라 내려간다. 한참을 들어가니 밖으로부터 한줄기 빛과 함께 폭포수가 떨어진다. 동굴 높이는 약 65미터. 아파트 2~30층 높이이다. 동굴밖에서 들어오는 빛은 너무 눈이 부셔 보기가 어렵다. 누구라고는 말 못하겠고, 모 기자가 균형을 잡지 못해 자주 전복 위기를 겪고 있다.


한참을 내려가다 가이드가 헬멧의 헤드 랜턴을 모두 끄라고 하였다. 그리고 엉덩이를 튜브에 끼우고 발은 앞사람 튜브에 얹어 기차처럼 엮어서 내려가다 가이드가 위를 보라고 하였다. 아, 동굴 위에는 초록의 별들이 떠 있었다. 영롱하게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는 글로우 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저번 네팔에 갔을 때 쏟아지는 새벽별을 보고 감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동굴속의 별은 나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얼마를 더 갔을까? 막상 물 속에 들어 있으니 추운 줄도 모르겠다. 다만 물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느라 배가 고파오는 것이 문제였다. 가이드가 지고 온 배낭 속에서 초콜릿 한 조각씩을 나누어 준다. 참, 꿀맛이다. 아마 피난가다 백성이 진상한 '묵'을 드셨던 임금의 입맛이 이러했으리라.


동굴 속이 차차 환해지며 바깥에서 빛이 들어온다. 이제 끝이다. 아쉽다. 이 피디가 카메라를 겨누고 있다. 흠,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지, 암.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와 옷을 반납하고, 샤워를 마친 후 올라오니, 맏며느리 진주가 빵을 굽고 있다. 빵 한 조각에 수프 한 컵이 온몸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모험 정신을 기른 날인 것 같다. 차 속에서 아이들은 또 곤히 잠들었다. 아이들의 잠든 모습에 노곤함이 묻어 있다.


차는 이제 화카파파(뉴질랜드는 영국식으로 발음하므로 와카파파보다는 화카파파가 맞는 발음이다.) 빌리지 홀리데이 파크로 향하고 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기후도 달라진다. 도로를 기준으로 화산 지대와 일반 지대의 구분이 너무도 뚜렷하다. 지형, 식생이 한눈에 구별이 될 정도로 차이가 많다.


김 사장의 말에 의하면 화카파파 지역은 5~6년을 주기로 폭발하는 활화산인데, 1996년 폭발한 이후로 잠잠한 상태여서 언제 다시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할 것을 대비해 지도를 상세하게 작성해 놓았는데, 화산이 폭발하면 우리가 묵을 홀리데이파크에서 무조건 길 건너편 쪽으로 달려야 한다고 했다. 10년이면 조만간 크게 터질 것 같은데, 이거 자는 애들한테 얘기를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날씨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였는데, 이곳은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다. 맞은 편 길에는 폭설을 뚫고 나온 듯한 차량이 서 있고, 눈을 싣고 달리는 차들이 제법 보인다.


이곳에서는 OPC 모험학교 활동, 통가리로 크로싱, 루아페후 산 등반이 계획되어 있는데, 이제부터 아이들 고생길이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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