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일기 제4일] (2) 와카파파의 어수선한 밤

홀리데이 파크에 차를 세우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눈싸움을 하느라고 난리다. 그렇지 않다면 저 넘치는 젊은 힘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곳 홀리데이 파크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지 세탁이 가능한데 세탁과 건조를 위해서는 2달러, 1달러짜리 코인이 필요하다. 이곳은 와이토모보다 세탁 비용이 저렴했다.

석희가 우리차에 들려서 빨래감이 없냐고 묻는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빨개감과 10달러를 건데 주면 세탁을 부탁하고, 밴을 둘러보니 차의 증세가 차츰 심각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 동안 집이나, 학교 등을 통해서 익히 여자의 방이 늘 깔끔하고 향기 나고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혹시라도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환상을 깨시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수백 가지 환상 중의 하나이다.), 점점 수납장에 있던 옷가지들이 밖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침구를 정리하지도 않고, 겉옷과 속옷들이 구석구석 발견되는데, 진출 범위도 가스렌지 위, 개수대까지 다양하다. 이러다가는 옷으로 완전히 점령당할 것 같다. 게다가 분명히 쓰레기봉투까지 걸어 놓고도 쓰레기는 발생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아이들이 나가고 나면 이불도 개고, 주변을 치워 주기도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오늘은 불러 놓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리라. 분노의 칼을 갈기 위해 숫돌을 찾아보니 갑자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그렇다면 부드럽게라도 한 마디 하리라.


조원들을 불러 차량 청소의 당위성을 힘주어 역설하니, 이쁘게 웃으며(아이고, 내가 못 살아.) 통가리로 크로싱 끝나고 예비일에 꼭 반드시 기필코 열심히 부지런히 깨끗하게 치워 놓겠노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직도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식당으로 가니 아이들이 식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밥을 먹어 본적이 없다. 다들 귀한집의 공주들이라 주방근처에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나보다. 죽에, 삼층밥에 심지어 슬기는 독특한 음식 문화의 주인공이 된 날도 있었다. 아마 딴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 슬기가 쌀도 씻지 않고 물도 붓지 않은 상태에서 불을 켜 '라이스 블랙 구이'를 만들어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 일이 생긴 이후로 나는 밥만은 직접 해주기로 하였으며 조가 바뀌지 전까지 실행으로 옮겼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난 여행기간 내내 덜 마른 밥(임 선생의 표현)을 먹었어야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것들은 아직도 엉망이지만.


사전 교육 당시에 장애우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자기들도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비장애우 학생들에게 설거지만이라도 반드시 함께 하고, 기회가 되면 요리도 함께 하라고 했기 때문에 태리도 자기 몫이 생기긴 했지만 비장애우 학생들의 비협조로 태리는 거의 여행내내 지루한 시간을 많이 보냈어야 했다.


3조 메뉴는 닭갈비이다. 양이 많아서(역시 진주는 맏며느리감이다.) 덜어서 현지에서 스키를 타기 위해 놀러 온 아이들에게 주었다. 놀랍게도 그들에겐 매울 닭갈비를 잘도 먹는다. 뒤에 들은 바로는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한국인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한국 아이들과 아주 친하고 한국 음식을 먹어 본 적이 많아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날 이후 이 아이들은 며칠동안 우리 탐사대 덕분에 한국 음식을 포식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부 차량에서 지도자 협의회를 가졌다. 중요한 안건은 내일 있을 OPC 모험학교 활동과, 통가리로 크로싱, 루아페후 산 등정에 관한 일정 조정 등이었다. 날씨와 관련하여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참 예민한 사안이다. 제발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이들이 이 머나먼 뉴질랜드까지 와서 루아페후 산 등정에 실패하면 그 실망감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차량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아직 안 자고 있다. 아이들과 좀 이야기를 하다가 매일 일정을 기록으로 남겨둘 것을 당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