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일기 제8일] (1) 루아페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새벽 3시 50분에 눈을 떴다. 밖에 나와 보니 오늘도 날씨가 좋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주먹밥을 준비하였다. 단비 조는 주먹밥에 콩, 김치 등을 이용하여 얼굴 모양을 만들고 있었고, 경록이 조는 김으로 눈사람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오서방이 속해 있는 조는 주먹밥 대신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통가리로 산행시 주먹밥이 너무 차가워 먹기가 힘들었나 보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뉴질랜드 교민이 운영하는 '크리스천 라이프'지 기자 일행이 방문하였다. 오늘 루아페후 등반 과정을 동반 취재한다는 것이다. 오클랜드에서 밤새(8시간으로 기억) 달려 왔단다. 그 정성이 놀랍다. 이곳의 도로는 자연환경을 최소로 훼손하는 방법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거리상으로는 서울~부산 정도이지만 굴곡이 심하여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인터뷰를 하느라 바쁘다. 활달한 윤미는 또 인터뷰의 대상에서 빠질 수 없었다. 어젯밤 석희와 등반 연습을 한다고 스틱을 가지고 돌아다니던 생각이 난다. 내가 그를 발견했을 때는 막 타임캡슐에 묻을 소원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야 그 동안 여러 번 들었기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7시 쯤 되어 차에 올랐다. 40분쯤 걸려 스키장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대열을 정비했다. 크리스천 라이프의 편집인인 이승현 목사님의 기도로 루아페후 산 정상 등반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결의를 다졌다.


이번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 대원에게 안전벨트를 차게 하고, 시각 장애 대원들에게는 특별히 헬멧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대원들은 리프트 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양 빛이 굉장히 강렬하다. 소 선생님의 지도로 즉석 몸 풀기 운동을 실시하였다. 스키를 타러 온 외국인들이(이런, 우리가 외국인인가?) 재미있는 듯 따라한다. 이제 곧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것이다.


처음에는 2인용 리프트를 타고 중간에서 다시 4인용 리프트를 탔다. 리프트에서 내려 대원들이 다시 집결하였다. 여기가 해발 2,100미터. 이제부터 약 700미터 가량은 우리의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건호가 아직 아이젠을 착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어제 착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이미 선발대는 출발한 상태이고 마음이 급하니 아이젠 착용이 잘 되지 않는다. 건호의 아이젠 착용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원들에게 잘 다녀온다고 인사를 하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이러는 와중에 시간을 지체하여 대열과 많이 떨어졌다. 오늘 같은 날은 앞뒤로 돌아다녀야 역동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기에 좀 무리하더라도 부지런히 걸어 대열과 합류하려고 하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후미에서는 오서방이 벌써부터 지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박 부대장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친 아이들을 앞으로 몰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 선두의 대원들을 만났다. 이곳은 통가리노 크로스 트래킹 지역에 비해 바위가 없고, 길이 넓어 장애 학생들이 걷기에는 한결 수월하나 처음부터 계속 가파른 경사길이어서 모두들 호흡이 거칠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나우로호에 산이 흰빛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하늘은 코발트 빛으로 이렇게 푸른 하늘은 처음 본 듯 싶다. 날씨가 아주 맑아서 정상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데 가도가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그재그로 길을 내며 산길을 오른다.


김 대장과 이 피디는 촬영에 여념이 없고, 석희와 지 사장이 윤미를 이끌고 선두에 섰다. 김 팀장과 친구 사이로 시설에 대해 알아보러 왔다는데, 자기 할 일은 제쳐두고 팔 걷어 부치고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돕는다. 성실한 모습이 가히 남의 귀감이 되겠다.


그 뒤로는 민상이가 종석이와 함께 길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지쳐가는 대원들이 보이고 저쪽 후미에서는 재준이가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쓰러질 듯 걸어오고 있다. 참 먹는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녀석이 지구력이 좀 부족한 게 탈이다.


앞뒤로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니 남들보다 배는 힘이 드는 기분이다. 산 정상에 올라 주변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산 정상에 아이들의 소원이 담긴 타임캡슐을 묻고,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분화구를 구경하러 내려왔다가 그냥 하산하기로 하였다.


이제 시간이 1시가 넘어가니 그새 눈이 녹아 발이 푹푹 빠진다.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빠져든다. 바람을 피해 어느 정도 내려와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였다. 건호와 종석이가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져온 빵을 나누어 주니 맛있게도 먹는다. 식사 후에는 깜짝이벤트로 김 팀장이 발대식 당시 준비했던 부모들의 영상 편지를 보여 주려 하였는데, 강렬한 햇빛과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산을 서두른다. 오후 3시가 넘으면 리프트가 끊기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산을 올려다보며, 내려다보며 하산을 하였다. 중간에 경사가 급한 곳은 로프를 설치하였는데, 눈이 녹아 한참씩 미끄러진다. 정상에 오르고 난 끝이라 이제는 미끄러지는 것도 즐거운 모양이다.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들며 떠들썩하다.

모두들 성취감을 한아름 안고 하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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