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될지

아님 얼마나 더 긴 세월이 지나야 될는지

장차 나의 보금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향집 뒷뜰에 조그만 텃밭을 마련하고

가끔씩 들려 농사를 짓고 있다.

거의 한달만에 들려

콩도 심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뽑고

또 얼마만에 들리게 될른지

그동안 콩과 잡초는

또 얼마나 자라 있을런지...

 

집앞의 사료용 옥수수 재배 

 

어렸을 적 우리동네에서 제일 높고 아름다웠던 집 

 

 

집앞 버스 정류장

이곳에서 삼년을 매일 같이 등교를 위해 아침 6시 50분 버스를 탔었지 

 

그 동안 많이 변해 버린 길

비포장이었던 도로는 어느새 아스팔트로 새단장을 하고

언덕배기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했던 우리집

일명 장고개였는데

이젠 언덕배기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조그맣게 그림같은 집을 짓기 위해 구입한 밭

여기엔 고무마, 땅콩, 옥수수, 콩, 도라지가

자라고 있지요.

 

77년에 지어진 우리집

흙벽돌 집에

기와지붕이었는데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몇해전 지붕개량 보수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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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덕초등학교 40회 동창들

조상덕, 김태영, 오명택, 지수철, 이관희

 

 

 

박계순, 최진수, 이진권, ?

 

좌로부터 최진수, 이진권, 김태영, 김성우, 장창렬, 박인호

 

선배님들의 공굴리기 경기 모습 

 

나의 선배님들 

 

그리고 나의 사촌 누이들

종님, 영순, 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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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친구 모임을 가졌다.

가깝게는 몇 개월 멀게는 30년이란 세월을 두고 만난 친구들

친구들 모임이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지

아마 지나가는 길에 마주했다면 모르고 지나쳤겠지

친구들아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줘 고맙다

항상 건강하고 11월 정기모임에서 다시보자

함께한이 : 김태영, 박종근, 지미화, 한희숙, 임영희, 류영숙, 박종선

 

 

 

 

 

 

 

 

 

 

좌로부터 임영희, 류영숙, 한희숙, 박종선, 지미화 

 

 

 

 

그래

얼마나 지났지

우리가 얼굴을 마주한지가

족히 삼십년은 되었겠지

반갑다 친구야

 

 

 

 

박종근, 김태영 

 

 

 

 지석아, 성옥아, 종선아 니들은 언제 볼 수 있을까?

 

 

 

 

 

 

 

 

 

 

 

 

 

 

 

 

 

 

 

 

 

 

 

 

 금산장에서 만난 어머니

 

건천리에서 만난 어머니 

 

그들만의 잔치 

 

 

 

 

 

 

 금산의 시내버스 정류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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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세운 서원.
사적 제170호. 1574년(선조 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尙德祠:보물 제211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 향례(享禮) 때 제수(祭需)를 두던 전사청(典祠廳),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 장서(藏書)를 보관하던 광명실(光明室)·장판각(藏板閣),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농운정사(隴雲精舍) 등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농암종택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1467-1555)

자字는 비중'□仲, 호號는 농암聾巖, 본관은 영천永川으로, 안동시 도산 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홍귀달洪貴達 선생께 수학하고, 32세에 문과 급제했다. 36세에 사관으로 사초史草를 바르 게 쓸 수 있도록 직언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얻었고, 38세 때는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으로 유배되었다. 연산군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하니, 친구들은 선생의 이런 강직함을 보고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 했다. 사관史官으로서 유일하 게 사지死地를 벗어난 경우이다.

중종반정으로 복직되어 형조참판, 호조참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으나, 그때마다 외직을 자청하여 영천, 안동, 경주, 대 구, 경상도관찰사 등의 8개 고을살이도 했다. 경직京職을 절대적으로 선호한 당시의 정치풍토로 볼 때, 외직의 자청은 남다른 효심孝心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생에 보다 가깝게 가고자 하는 일관된 신념이었다. 동료들의 신망과 존경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안동부사 시절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에는 80세 이상의 남녀귀천을 한자리에 함께 초청하는 파격적인 면모를 보이는데, 이 런 측면은 집안에서도 “자제와 비복들을 편애하지 않았고 혼인도 문벌 집안을 찾지 않았으며, 사람을 대함에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았 다”는 퇴계선생의 행장行狀 기록과 일치한다. 주민이 전출의 길을 가로막는 사건들에서, 선생이 당대에 계층을 초월하고 누렸던 인기 는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선생은 휴머니즘이 가득한 목민관으로, 대시인大詩人이며 대효자大孝子였다. 화산양로연은 고향에서 마련한 ‘애일당구로회愛日堂九老會’로 이어졌고, 여기서도 선생은 70세 노구의 몸으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어 90세 부모와 노인들을 즐겁게 했다. 선생의 효도 와 경로는 98세 아버지가 돌아시는 순간까지 전 생애 걸쳐 계속되었다. 이런 경로모습에 동료친구들이 일제히 축하시를 보냈고, 지 금 그 친필시 40편이 그대로 종택에 보존되어 있으니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보물 1202호)이 바로 그 책이다. ‘애일당구로 회’는 아들, 손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이후 400여 년을 이어오는 농암가문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선생은 국왕과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표연히 귀거래했다. 선생을 위한 전별연餞別宴은 조선조 유일의 정계은퇴식 으로, 국왕은 금포金袍와 금서대金犀帶를 하사했고, 관료들은 일제히 전별 시詩를 지어 선물했다. 한강까지 이어진 행차를 보고 도성사 람들이 담장처럼 둘러서서 ‘이런 모습은 고금에 없는 성사’라고 했고, 퇴계는 “지금 사람들은 이러한 은퇴가 있는지도 모릅니다”라 고 했다. 김중청金中淸은 이 은퇴에 대해 “회재晦齋(李彦迪), 충재沖齋(權□)께서 전송대열 에 서고, 모재慕齋(金安國), 퇴계退溪(李滉)께서 시를 지어 전별했으니, 중국의 소광疏廣, 소수疏受의 은퇴에 어찌 비교되겠는 가. 이는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 이래 없었던 일로, 우리 농암선생이야말로 천백만 명 가운데 단 한 분뿐이다”라고 찬양했다. 『실 록』은 이를 ‘염퇴恬退’라 규정했다.
선생은 ‘돌아오는 배 안’에서 노래 한곡 지었다. ‘효빈가效嚬歌’라 했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말 뿐이오 간사람 없어
전원이 황폐해지니 아니 가고 어찌할꼬.
초당에 청풍명월이 나며 들며 기다리나니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바위 ‘농암聾巖’에 올라 다시 노래 한수를 읊었다. 그 노래가 ‘농암가’다.

농암에 올라보니 노안이 더욱 밝아지는 구나
인간사 변한들 산천이야 변할까
바위 앞 저 산 저 언덕 어제 본 듯하여라

은퇴 후 선생은 농부로 자임自任하고 일게 서생書生과 다름없는 담백하고 물욕 없는 생활을 하여 ‘유선儒仙’으로 추앙받았다. 그 리고 천성적인 시인으로, 분강의 강가를 두건을 비스듬히 쓰고 거닐면서 ‘강과 달과 배와 술과 시가 있는 낭만적 풍경’을 연출했 다. 이 감흥과 미의식이 그대로 문학과 예술이 되었다. 이런 강호생활은 분강, 애일당을 예방한 동료, 후배들에 의해 ‘영남가단嶺南歌壇’이 형성되는 모태가 되었다.
특히 퇴계는 동향의 후배로써 인간적, 문학적으로 남다른 교류를 했으며, ‘어부가’의 발문에서 “바라보면 그 아름다움은 신선 과 같았으니, 아! 선생은 이미 강호의 그 진락眞樂을 얻었다”라고 찬양했다. 관료적문학이 성행할 때, ‘강호지락江湖之樂’과 ‘강호 지미江湖之美’라는 새로운 문학세계의 지평을 열며, ‘어부장가’, ‘어부단가’를 비롯하여 이미 소개한 ‘효빈가’, ‘농암가’와 ‘생 일가’ 등의 시가작품을 남겨, 한국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쳐 ‘강호문학의 창도자’로 평가받았다.
‘어부단가’ 5장 가운데 그 2장’은 이러하다.

굽어보면 천 길 강물 돌아보니 만 겹 청산,
열 길 티끌 세상에 얼마나 가렸는가.
강호에 달 밝아 오니 더욱 무심하여라.

‘어부가’는 이후 퇴계의 ‘도산12곡’에 영향을 주었고, 이한진李漢鎭의 ‘속어부사’, 이형상 李衡祥의 ‘창보사’ 등에 이어지 고, 드디어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로 이어졌다. 윤선도는 ‘어부사시사’의 서문에서 “어부사를 읊으면 갑자기 강에 바람이 일 고 바다에는 비가 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표표하여 유세독립의 정서가 일어나게 했다. 이런 까닭으로 농암 선생께서 좋아하셨으며 퇴 계 선생께서도 탄상해 마지 않으셨다”고 했다.
안동지역에서는 17세기 김응조金應祖, 18세기 권두경權斗經, 19세기 이휘영李彙寧 등의 문집 기록에 “분강에서 농암의 ‘어부 가’를 다 함께 불렀다”고 하여, 학술적 계승이 아닌 현장연출로서 수백 년의 집단적 전승이 있었음을 밝혀놓았다. 그래서 국문학사 에 송순宋純-정철鄭澈로 이어지는 ‘호남가단湖南歌壇’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다고 했다.

만년에 기로소耆老所에 입소되는 영예를 얻었으며, 명종으로부터 “경은 진실로 천하대로天下大老요 당세원구當世元龜라. 염퇴이양恬退□養이 이미 명철보신明哲保身을 넘었으며 정관선기靜觀先幾했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은퇴 후 거듭되는 상 경上京 명령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지 않으니, 나라에서 1품인 숭정대부崇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내려 예우禮遇했다. 그래서 조선전기에 보 기 드문 ‘재야정승在野政丞’이 되었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 직책을 띠고 있었다.
89세에 몰沒하니 나라에서는 ‘孝’와 ‘절개’의 정신을 기려 ‘효절孝節’이란 시호를 내렸다. 조선 500년, ‘대로大老’라 고 불려 진 인물은 흔하지 않으며, ‘효절’이란 시호 역시 선생이 유일하다. 선생은 전 생애에 걸쳐 명예를 포기하여 더 큰 명예 를 얻은 삶을 몸소 보여주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고 있다.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고, ‘분강서원’에 재향되었다. 문화관광부의 ‘2001년도 문화인물’로 선정되어 국가적 차원의 추모행사 가 있었으며, 2007년 11월부터 2008년 1월 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라는 주제로 '농암선생특별 전'이 개최된 바 있다.
농암영정은 1537년 경상감사 집무모습을 대구 동화사 승려 옥준玉峻이 그렸다. 특징으로는 손을 표현한 점이다. 조선시대 사 대부의 어느 영정에도 없는 독특한 표현양식이다. 아마 스님이 그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농암종택에는 이 영정 외에 1872년 추 사 김정희가 추천한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63호)이 그린 별본 영정이 있고, 그 제작 과정이 적힌 『영정개모일 기影幀改摹日記』(보물 1202호)가 있다.
선생의 모습에 대해 연산군은 “검열檢閱은 얼굴이 검붉고 볼에 털이 난 자였다”고 했고, 사관은 “강직하고 공명정대한 공무수행 에 모두들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 했으니, 이는 외모는 검으나 심성心性이 냉엄冷嚴하다는 뜻”이라 했다. 1997년, 삼성갤러리 의 ‘몽유도원도와 조선전기국보전’에 전시된 바 있다.

 

 

 

 

퇴계오솔길 

퇴계오솔길은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퇴계오솔길 전망대에서 고산정 앞 외병대까지 약 6km 의 구간을 말하는데 경관이 그 옛날 퇴계와 선비들이 걸었던 원형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최근에 조성한 퇴계 시비 말고는 "의지의 나무"라는 맷말이 붇은 수백 년은 족히 넘어설 고사 직전의 나무며, 물속에 있는 경암,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는 풍혈, 공룡발자국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협곡 줄기를 타고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며, 강물위에 우뚝 솟아 있는 기암도 변하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청량산을 바라다 보면 넓은 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반대로 고산정과 농암종택에서 퇴계오솔길을 조망하면 기암이 시선을 단번에 사로 잡는다.
고산정 북쪽을 따라 한폭의 병풍처럼 장엄하게 펼쳐진 외병대와 맞은편 독산을 사이로 낙동강 원줄기가 흘러가는 협곡절벽에는 학소대 월명담 벽력함이 유려함을 자랑한다.
이중 학소대는 한속담 상류에 수직으로 속은 절벽이다, 한속이란 추울때 몸에 돋는 소름을 말하는데 이 물이 서늘한 것은 바위아래에 서 찬 기운이 솟아 나기 때문이다. 학소대는 오래전부터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먹황새가 머무는 곳이었는데 어느해 바위가 내려않고 난 뒤부터는 벼락소로 옮겨 갔다고 한다.

 

민들레 

민들레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성경의 전설을 바탕으로 꽃말은 '감사의 마음'이다.

 

생태

‘앉은뱅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한국 각처에서 나는 식물로 줄기가 있고 밑동잎이 심장형으로 나온다. 이른봄에 깃털모양으로 갈라진 잎은 뿌리에서 모여나며 구두주걱 모양의 긴 타원형이다. 갈라진 조각은 삼각형이며 끝이 날카롭고, 위쪽은 이빨 모양의 톱니가 있으며 꽃줄기는 약 30 센티미터이다. 꽃은 황색으로 4~5월 또는 10월에 핀다. 두상꽃차례를 이루며 노랑색이고 주로 봄에 핀다. 꽃 필 때에는 흰털이 있으나 나중에는 거의 없어지고 두상꽃차례 밑에만 흰털이 남는다. 두화는 1개가 나며 총포는 종 모양이고, 포편은 2열이며 내편은 줄모양 혹은 바소꼴로 길다. 외편은 긴 타원형으로 끝에 작은 뿔이 난다. 제일 바깥층의 포편은 뒤로 말리지 않는다. 잔꽃은 혓바닥 모양이고 5개의 톱니가 있다. 수술은 5개이고, 수과는 사각뿔 모양이며 열매 표면의 가운데 위쪽으로 가시처럼 뾰족한 돌기가 있다. 뿌리는 실 모양이고 열매의 2~3배의 길이이며 위쪽이 백색이고 갓털은 가는 털 모양이다. 열매에 흰털이 나 있어 열매를 멀리 운반한다.

민들레는 겨울에 줄기는 죽지만 이듬해 다시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마치 밟아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백성과 같다고 하여 민초(民草)로 비유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유럽 원산인 서양민들레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쓰임새

한방에서는 뿌리와 꽃피기 전의 전초(全草)를 포공영(浦公英)이라 하며 해열·소염·이뇨·건위의 효능이 있다고 하여 감기·인후염·기관지염·임파선염·안질·유선염·간염·담낭염·소화불량·소변불리·변비의 치료제로 이용한다.

또, 뿌리와 줄기를 자르면 하얀 젖 같은 물이 흘러서 민간에서는 최유제(催乳劑)로 이용하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고미건위(苦味健胃)의 약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성인병 퇴치의 산채(山菜)로 이용하고 있다. 봄철에 어린잎은 나물로 이용한다. 뿌리에는 베헨산과 같은 지방산과 이눌린과 타락세롤·베타시토스테롤·카페산이 들어 있다.

 

 

 

 

 

 

 

독산에서 바라본 고산정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447 

조선 중기의 학자로 퇴계 선생의 제자인 금난수(1530∼1599) 선생의 정자이다.
선생은 명종 19년(1564)에 이미 예안에서 ‘성재’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어서 당시 선성(예안현)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가송협에 고산정을 짓고 ‘일동정자’라 하였다.
고산정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칸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서 퇴계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선비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던 곳으로 퇴계 선생의 시와 금난수 선생의 시 등이 남아있다. 
 

 

유채 

평지라고도 함.
십자화과(十字花科 Brassicaceae)에 속하는 1년생 식물.
유채 /유채(Brassica napus)
유럽이 원산지이다. 키가 30㎝ 또는 그 이상으로 자라며 대개 가늘고 길다란 원뿌리를 가진다. 잎은 밋밋하고 파란빛이 도는 녹색이며 물결 모양으로 깊게 갈라져 있다. 윗부분의 잎은 밑이 귀처럼 처져서 줄기를 감싼다. 꽃은 연노란색이고 4장의 꽃잎으로 되어 있으며 무리지어 핀다. 각각의 둥그런 꼬투리에는 짧은 부리가 있으며 많은 씨가 들어 있다. 씨에는 유채 기름이 들어 있는데 연료, 요리 재료, 윤활유로 이용되며 비누·합성고무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또한 씨는 사료로도 이용된다. 길쭉해진 식용 원뿌리를 얻기 위해 심고 있는 변종들은 순무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심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중국 명나라 시대에 어린잎과 줄기를 먹기 위한 채소의 하나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기름을 짜내고 남은 깻묵은 사료로 쓰인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심고 있는데,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유채가 전체의 약 99%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른봄에 노랗게 피는 유채밭을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에서 심고 있는 주요품종으로는 미우키·유달·아사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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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나의 고모님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고행의 끈 놓으시고 좋은 곳에서 영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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