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에서 무선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KOITA IN



저 점을 다시 보자. 여기 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이 총합,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창백한 푸른 점> 중에서-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은 언제였을까? 누군가에게는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을 하던 순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했을 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극적인 순간은 꼭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가린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살던 토끼를 멸종시켜버리기는 했지만 과학적 성과로 따지면야 조용히 태양계를 횡단했던 보이저 호의 비행이 가장 극적이었을 것이다.


1977년 발사된 두 대의 보이저 위성은 화성부터 해왕성까지를 샅샅이 훑으면서 귀중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목성형 행성이 하나같이 고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목성의 대적점이 거대한 태풍이라는 것도, 고리의 실체가 떼지어 모인 수많은 잡동사니들이라는 것도,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대기가 있다는 것도, 목성의 위성 이오에서 화산이 폭발한다는 것도, 천왕성과 해왕성의 세세한 정보도 모두 보이저가 거둔 수확이다. 보이저가 보내온 정보들은 수많은 과학자와 SF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이후의 목성과 토성 탐사 프로그램이나 토성과 목성을 배경으로 한 SF 작품들에 짙은 흔적을 남겼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두 대의 보이저 위성은 2013년인 지금까지도 지구에서 약 187억km 떨어진 곳을 쉴 새 없이 비행하며 36년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빛의 속도로도 17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다. 칼 세이건이 언급한 창백한 푸른 점은 바로 명왕성 근처에서 보이저가 찍은 사진에 나타난 지구다. 우리가 아옹다옹하는 세상이 푸른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찍은 사진을 우리가 볼 수 있고, 명왕성 궤도를 한참 벗어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보이저와 지구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이런 놀라움은 더 작은 스케일이기는 하지만, 이미 백여 년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12년 4월 14일 밤, 인류가 만든 최대의 이동수단,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다를 빠르게 항해하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시계가 영 좋지 않기는 했지만 바다는 평온했고 빙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순조로울 것 같던 항해는 밤 11시 40분에 재앙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발견한 빙산에 놀라 조타수가 급격히 방향을 틀었지만 얼음덩어리는 배의 수면 아래 부분에 치명적인 균열을 만들었다. 이 틈으로 쏟아져 들어온 물은 보일러실부터 들어차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결국 1시간도 지나지 않은 0시 15분에 조난 신호 CQD를 타전했다. 타이타닉이 내보낸 다급한 메시지는 대서양을 떠돌면서 수십 척의 배에 소식을 실어날랐다.


사고 장소에서 16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열 척의 배가 신호를 접수했다. 그러나 차디찬 북대서양 바다에서 당시의 증기 엔진으로는 달려가기에 너무 먼 거리였다. 캘리포니아호가 가장 가까운 2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타이타닉이 CQD를 타전하기 10분 전부터 무선원이 자고 있어 대응할 수가 없었다. 결국 사고지점에서 90km 가까운 곳에 있던 카르파티아호가 요청에 응했지만 사고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시 55분, 배가 완전히 침몰하고 1시간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큰 비극이었지만 무선통신이 본격적으로 활약한 장이기도 했다. 캘리포니아호는 타이타닉호에서 발사한 신호탄을 직접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캘리포니아의 선원들은 이 신호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가 없어 대응하지 못했다. 타이타닉이 한참 침몰하는 중에 수평선 위로 보일 만큼 가까이 온 포경선이 있었으나 이 포경선은 타이타닉을 해양경비대로 오인하고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견시와 신호탄 같은 전통적인 신호는 정작 위급한 상황에서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선통신은 달랐다. 사람의 눈과 귀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사건을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무선통신이었다.


항해중인 배만 타이타닉의 절박한 메시지를 들은 것은 아니었다. 타이타닉이 발신한 ‘우리는 선두부터 급속히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이 1시 20분이면 대서양 양쪽에 모두 퍼졌다. 뉴펀들랜드의 무선 기지국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구명보트에 타고 있다는 메시지를 우연히 접수했고, 이외에도 대서양 연안의 수많은 무선기기들이 타이타닉의 최후를 지켜봤다. 한동안 수많은 무선국이 쏟아내는 다급한 타전으로 통신 주파수가 마구 엉키기도 했지만 4월 15일 아침에는 이미 유럽과 미국의 사람들이 타이타닉의 침몰사실을 알고 있었다. 규모가 꽤나 크기는 했지만, 북대서양의 망망대해에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한밤중에 벌어진 사건이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주요국가에 모두 알려진 것이다.


타이타닉의 소식은 큰 충격과 함께 경이로움도 전해주었다. 4월 21일자 <뉴욕타임스>에는 무선통신의 힘에 대한 놀라움이 잘 드러난다.


연중 밤낮없이 육지에서는 수백만 명이, 해상에서는 수천 명이 공기를 잡아채서 (통신에)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회선이나 망보다도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745명이 무선으로 구조되었다. 만약 우리가 공기를 통신에 이용하지 못했다면 타이타닉호의 비극은 바다 깊이 도사리는 신비로운 비밀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745는 타이타닉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숫자다. 한편 <런던 타임스>는 4월 16일자 사설에서 무선통신으로 경험의 범위가 확대됐다고 논평했다.


상처 입은 거인의 고통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울려 퍼졌다. 사방에서 거인의 형제들이 서둘러 구조에 나섰다. …우리 모두가 거함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인식한다.


사실 타이타닉이 침몰하던 당시, 무선통신은 보편적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었다. 이전에도 해상구조에서 종종 활약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타이타닉이라는 거대 함선의 침몰은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간격 없이 소식을 접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가장 절박하고 외로운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연락 가능한 무선통신의 힘을 경험하고 나서 무선통신은 모든 선박의 의무사항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쥘 베른이 1888년의 작품에서 상상했던 ‘전화 언론’이 라디오라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현실화되면서 무선통신은 그 전성기를 맞이했다.




19세기는 아직 유선통신의 시대였다. 당시 가장 확실한 무선통신 방법은 프랑스 혁명기 개발된 광학적 통신기로, 미리 약속된 신호를 망원경으로 관찰하여 다음 관측소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매우 간단한 원리지만 이전의 봉화와 같은 방법보다 훨씬 정교한 신호를 알릴 수 있었으며 날씨의 제약도 덜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러 차례 중계하여 소식을 전하는 형식이었던 탓에 메시지가 중간에 왜곡될 위험도 컸고, 중계소 중 몇 곳만 제 기능을 못해도 전체 통신망이 마비되는 문제가 있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유선통신망에 비하면 신뢰성을 보장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말은 미국인 사업가, 사이러스 필드Cyrus Field가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는 데 성공하여 대서양 양안의 통신도 얼마든지 가능해진 시점이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무선통신은 당시 막 태동하던 최첨단 분야로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작동할지 확실치 않은 신기술이었지만 실용화에 성공한다면 전선에 의존하던 당시의 통신환경을 크게 진일보시킬 것이 분명했다. 


현대적인 무선통신의 가능성은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열었다. 맥스웰은 1886년 발표한 논문에서 전기장과 자기장이 상호작용하면서 무한히 퍼져나가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예측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헤르츠는 전자기파를 검출하는 장치를 개발해내어 맥스웰의 이론을 검증하고 전자기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헤르츠의 연구는 전자기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확고하게 자리잡아 훗날 양자역학으로까지 연결되는, 물리학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작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전자기파의 존재 자체보다는 검출장치였다. 전자기파가 공기 중을 직진하여 퍼져나가고 이를 검출기로 확인할 수 있다면 전자기파를 펄스처럼 발송하여 모르스부호를 전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전자기파 자체가 전류를 유도할 수 있으니 제대로 된 검출기만 있으면 기존의 유선전신기에 적용하기도 수월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눈이 빠져라 쌍안경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무선통신이 가능한,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전자기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의 가능성을 모색한 사람들 중 단연 두각을 보인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의 구글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였다. 마르코니는 어렸을 때부터 물리학과 전기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과학자라기보다는 사업가이자 발명가였다. 마르코니는 헤르츠의 실험에 크게 고무되었지만 전자기파에 대한 해석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키기는 방향은 아니었다. 실존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전자기파를 어떻게 이용하여 무선통신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가 마르코니의 흥미를 끌었다. 과학자보다는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했던 셈이다.


마르코니는 1894년,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전선 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소규모 실험에 성공했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이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는 육군력에 의존한데다 식민활동에서는 후발주자였던 탓에 딱히 무선통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다. 무선통신을 실용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키려면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했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했기에 마르코니는 영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명성답게 여러 식민지와 함선들을 시간지연 없이 연결해 줄 무선통신의 가능성을 금세 인식했다.


그러나 마르코니의 구상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는 전리층의 존재가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과학자들은 무선통신의 유효거리가 160~320km에 불과하리라고 예상했다. 전자기파는 직진하는데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곡률을 고려하면 그 정도가 전자기파의 신호가 직접 닿을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당연한 결론이었지만 이래서는 망망대해에 듬성듬성 떨어진 식민지와 함선들을 본국과 연결시키기란 불가능했다. 100여km마다 중계기를 설치해야 한다면 그저 거리 제약이 조금 덜한 광학 신호체계에 불과할 뿐, 전통적인 무선통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르코니는 이를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방법으로 정면돌파했다. 영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얻어낸 그는 결과에 대해 의심하기보다 밀어붙이기를 선택했다. 영국에 건너간 지 일 년 만에 마르코니는 동료 데이비스와 함께 세계 최초의 무선전신회사인 무선전신신호회사(Wireless Telegraph and Signal Company. 1900년에 영국 마르코니 무선전신회사로 변경)를 설립하고 무선통신의 작동거리를 꾸준히 늘려나갔다. 마르코니의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898년에는 도버 해협을 가로질러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교신에 성공했다.


바다를 건너 전선 없이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었다. 제국주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수많은 식민지를 운영하던 영국에게는 특히 그러했다. 먼 바다를 건너서까지 무선통신이 가능하다면 식민지와 본국은 물론, 시시각각으로 위치가 바뀌는 함대들끼리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시험해보는 무대가 바로 1900년 시작된 영국과 미국간의 무선통신 실험이었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과학적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무모한 시도였다. 지구가 평평하다면 모를까, 5,000km가 넘게 떨어진 곳까지 중계 없이 전자기파를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나 실험을 시작한 지 1년여가 지난 1901년 12월 12일, 마르코니는 캐나다 동쪽의 세인트존스 수신기지에서 영국으로부터 발신된 모스 부호를 수신하는 데 성공했다. 마르코니의 성공으로부터 2년 후에는 영국의 에드워드 7세와 미국의 테오도를 루즈벨트 대통령이 무선통신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1910년에는 무선통신으로 제공된 정보를 이용하여 미국에서 도주한 살인범이 영국 런던에서 체포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무선통신이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얻었다. 2012년에 이르면 무선통신이 국제 통신망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무선통신이 대서양을 처음으로 횡단한 지 불과 12년 만이었다.




마르코니의 무선통신은 20세기를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대로 만들었다. 무선통신이 사람들의 인식에 준 영향은 철도에 필적했다. 철도가 개인의 생활공간을 크게 넓히고 이동에 필요한 시간을 분 단위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단축하여 국제적으로 표준시를 도입할 단초를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선통신은 의사소통을 공간적으로 크게 확장시키는 한편 시간적으로는 거의 동시에 가깝도록 단축시켰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몇몇 사람들이 유선전화와 전신기를 통해 그런 놀라운 경험을 했겠지만 무선통신은 그 경험을 전지구적인 수준으로 확장시켰다.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그 소식이 퍼져나가는 과정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재확인해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충격은 현재의 우리가 명왕성 궤도에서 창백한 푸른 점으로 간신히 보이는 지구의 사진을 접했을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다르지 않다. 큐리오시티가 생생하게 보여주는 화성의 풍경을 볼 때 느끼는 생경한 신기함과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비유가 썩 와닿지 않는다면,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핸드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놀라움, 웹 브라우징이 자유로운 스마트폰이 처음 선보였을 때의 신기함을 생각해보면 어떤 느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기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꾸준히 인류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던 전파는 출력을 높여 정지궤도의 위성과 지상을 연결해주는가 하면, 극초단파의 영역에서는 우주공간의 탐사선과 지구의 관제센터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 보이저는 160bps의 속도로 지구와 지속적으로 교신하면서 지구로부터 명령을 받아들이고 수집한 자료들을 지구로 쏘아보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외롭게 헤치고 날아온 전자기파 신호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지만, 그 신호가 의미하는 바는 다분히 감성적이고 철학적이다. 적어도 현재 수준에서, ‘인간은 태양계 어디라에라도 존재할 수 있다.’

지금 무선통신이 당연한 서비스로 인식되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시간간격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듯, 언젠가는 지구를 넘어선 곳까지도 자유롭게 교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연구중인 양자통신이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기술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통신기술은 사람들의 생각의 지평을 또 한 번 확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의 지평에 익숙해지는 순간,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글. 김택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중성미자 연구, 한국이 1등 할까

[S&T FOCUS ‘R&D 포커스’] 국내 첫 중성미자 검출기 가동

2011년 03월 24일

여섯 종류의 쿼크(업, 다운, 참, 스트레인지, 톱, 바텀)와 여섯 종류의 렙톤(전자, 뮤온, 타우,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은 우주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다. 이중 대부분은 성질이 충분히 밝혀졌지만, 아직까지도 비밀을 꽁꽁 숨기고 있는 입자가 있으니 바로 중성미자(뉴트리노) 삼인방이다. 우주가 탄생할 때 생긴 중성미자는 우주 어디에나 있지만 워낙 다른 물질과 반응을 하지 않아 검출하거나 물리적 성질을 연구하기 매우 힘들다.

최근 중성미자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한 거대한 망원경이 남극에 완공되는가 하면 우리나라도 최초로 검출기를 만들어 중성미자 레이스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2006년부터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 근처에 국내 최초의 중성미자검출기 ‘레노(RENO)’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

경쟁 상대인 프랑스의 ‘더블 슈(Double Chooz)’ 검출기와 중국의 ‘다야 베이(Daya Bay)’ 검출기보다 3~4년이나 늦은 출발이다. 한국중성미자연구센터장인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3년 정도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과학기술부를 설득해 연구비 116억 원을 받아 검출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중성미자는 검출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1초에 수백조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지만 평생 동안 한 개가 반응을 할까 말까 한다. 그래도 아주 드물게 중성미자가 물질과 충돌하기도 하는데, 중성미자 검출기는 이 반응을 이용해 중성미자의 존재를 확인한다.

최근 남극에 완공된 거대한 중성미자 망원경, 아이스큐브는 중성미자와 얼음의 상호작용을 이용하여 별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검출한다. 이러한 장치를 이용하여 감마선 폭발이나 활동성 은하핵의 고에너지 중성미자 방출여부, 암흑물질의 정체, 우주선과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연관성 등을 밝히는 등 천문학과 물리학의 핵심 연구를 수행한다.

●중성미자 변환상수 누가 먼저 찾나

중성미자 검출 뿐 아니라 입자의 성질을 밝히는 연구도 활발하다.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중성미자가 질량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힘 중 세 가지인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과 기본 입자의 존재와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중성미자가 질량이 없다는 전제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8년 과학자들은 일본의 수퍼카미오칸데 중성미자검출기를 이용해 중성미자 사이에 서로 변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선이 대기 분자와 부딪칠 때 나오는 뮤온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는 현상을 관측한 것이다. ‘중성미자 변환’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증거다.

세 종류의 중성미자가 서로 바뀌는 비율을 ‘중성미자 변환상수’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뮤온중성미자와 타우중성미자 사이의 변환상수, 전자중성미자와 타우중성미자 사이의 변환상수가 발견됐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전자중성미자와 뮤온중성미자 사이의 변환상수는 입자물리학계의 최대 관심사다. 프랑스의 중성미자검출기인 ‘슈(Chooz)’를 이용해 측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정확한 값을 찾지는 못했다.

현재 마지막 남은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한 국제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국에 비해 출발이 늦은 우리나라지만 레노를 건설하기 시작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레노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1년 앞서서 오는 3월부터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나라가 최초로 마지막 변환상수를 발견할 수 있다”며 “처음에는 외국 과학자들이 의구심을 표했지만 지금은 학회에서 세 나라가 발표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주목을 받는다”고 말했다.

늦게 출발해서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데는 지리적인 이점도 컸다. 김성현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영광은 중성미자검출기를 건설하기 위한 천혜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변환상수를 측정하기 위해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자중성미자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광원자력발전소는 용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 원자로 하나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수가 많다. 원자로 여섯 개도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배열돼있다. 하늘에서 보면 두 검출기를 잇는 선이 여섯 개의 원자로 한가운데 부근을 지나고 있어 각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균일하게 관측할 수 있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터널만 뚫으면 쉽게 지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검출기를 지하에 설치해야 실험을 방해하는 우주선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을 가를 2%

레노는 원자로에서 각각 290m, 1.4km 떨어진 곳에 있는 똑같은 검출기 두 대로 이뤄져 있다. 영광원전의 원자로 하나에서는 1초에 1000경개의 전자중성미자가 나온다. 이 중 검출기에 잡히는 수는 근거리의 경우 하루에 1000개, 원거리는 하루에 50개 정도에 불과하다.

원자로에서 나온 전자중성미자는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에 검출기에 잡히는 수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줄어든다. 거리의 차이를 감안해 각 검출기에 잡히는 전자중성미자의 수를 계산하면 근거리 검출기에서 원거리 검출기 사이의 거리를 움직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전자중성미자가 뮤온중성미자로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전자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려면 100km 정도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보다 휠씬 짧은 거리에서 사라진 전자중성미자는 뮤온중성미자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노는 중성미자를 검출하기 위한 매개물질로 벤젠 계통의 투명한 유기용액을 이용한다. 이 용액을 ‘섬광액체’라고 부른다. 중성미자가 섬광액체 속을 통과하다가 양성자와 충돌하면 양전자와 중성자가 나온다.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는 곧바로 전자와 쌍소멸해 빛을 발한다. 중성자는 약 200μs(마이크로초, 100만 분의 1초) 뒤 수소 원자에 잡혀 빛을 낸다. 이 빛을 광센서로 관측해 중성미자를 검출한다.

김수봉 교수는 “원리는 50년 전과 비슷하지만 섬광액체가 예전보다 화학적 특성이 좋아졌으며 개선된 광센서를 이용해 기존의 검출기보다 감도가 좋다”고 레노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광센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은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레노가 변환상수를 측정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레노의 감도로는 변환상수가 2% 이상일 때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승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이론적으로 예측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검출기로 3년 정도 자료를 쌓으면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변환상수가 2% 보다 작을 가능성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당장 앞서 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중성미자검출기가 세계 최초로 중성미자의 비밀을 밝히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까. 3년 뒤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고호관(동아사이언스 기자)
사진=과학동아

성공한 과학자의 10가지 공통점

2003년 09월 05일

성공한 과학자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필자는 장차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나 현재 실험실에서 고민을 하는 젊은 과학도에게 도움이 되기는 바라는 마음에서 그동안 인터뷰했던 33명의 과학자들의 공통점을 모아 ‘성공한 과학자의 10가지 공통점’으로 정리했다. 이글을 읽고 장차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가 한국에서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1. 큰 발견은 행운이다. 하지만 집념이 없으면 행운은 스쳐지나간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틸든 공원에서 함께 한 김성호 교수와 가족, 동료.
지난 70년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원으로서 tRNA의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내 지난 20여년 동안 노벨상 후보로 여러차례 거명됐었던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김성호 교수의 사례는 큰 발견이 우연히 온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tRNA 결정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엑스선으로 구조가 잘 분석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무렵,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우연히 <바이러스>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힌트를 얻어 질 좋은 tRNA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마침내 구조까지 밝혀냈다. 그는 “운은 모든 사람에게 일정량이 오는데 집념이 없는 사람은 운이 그냥 지나쳐 가고, 집념이 있는 사람은 운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최고의 실험물리학자로 꼽히는 칼럼비아대의 이원용 교수도 지난 65년 운 좋게 세계 최초로 반물질을 찾아냈다. 당시 이 교수는 ‘무거운 쿼크’라는 가상의 소립자를 찾기 위해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의 가속기로 입자 충돌 실험을 하고 있었다. 사실 무거운 쿼크가 존재한다는 가설은 틀린 이론이었는데, 이 이론를 믿고 고에너지 입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다가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가 결합된 중수소의 반물질인 ‘반중수소’가 만들어져 운좋게 이를 발견한 것이다.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그렇듯이 큰 발견은 대부분 우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우연히 부딛친 현상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매달림으로써 중요한 자연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만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라.
최재경교수 홈페이지(www.math.snu.ac.kr /~choe/)에는 유학생활기가 소개돼 있다.
60여 년만에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등주부등식과 비유클리드공간에서의 등주부등식을 연속해서 증명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분기하학자인 서울대 최재경 교수는 과학자들에게 기분 전환과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수학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자나 깨나 등주부등식 문제를 푸는데 몇 년 째 매달려 왔던 그는 집에서 아이들과 장난을 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지난 88년 첫 번째 증명 문제를 풀었다. 또 두 번째 증명문제는 문제는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하던 91년 깊이 잠든 아이들을 어머니께 부탁하고 부인과 함께 포항 시내의 한 다방에 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불현 듯 방법이 떠올라 증명에 성공했다.

성공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남들이 생각치 않는 색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어려운 난제를 해결했다. 과학자는 독창적인 연구를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실험실에서 오래 지내는 버릇을 들여라.
캐나다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면서 세계적인 바이러스 학자인 강칠용 박사는 지난 92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자연대 학장으로 초빙을 받아 가면서도 대학과 전체 근무 시간 중 35%는 실험을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특히 지루한 실험이 계속되는 생물학자에게는 실험실을 얼마나 끈기 있게 지키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

미국미생물학회가 성공한 과학자들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들의 공통점은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 가운데 퇴근 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느즈막히 실험실에 출근해 늦은 밤까지 실험에 몰두한 사람들이 많았다.

4. 아는 것을 털어놓고, 협동 연구를 해라.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순수한 초전도체를 만든 이성익 교수.
미국 과학계에서는 요즘 ‘협동해서 연구하지 않으려면 그만두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또 서로 다른 학문의 접점에서 새로운 발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1세기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인 뇌 연구만 놓고 보더라도 생물학, 화학, 물리학, 해부학, 약리학, 생리학, 행동학, 심리학, 전자공학, 인지과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이 총동원되고 있다. 혼자의 힘만으로 좋은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던 시대는 사실상 종말을 고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순수한 초전도체를 만든 포항공대 이성익 교수는 93년부터 매년 두차례씩 5박6일 동안의 ‘초전도 계절학교’를 열고 있다. 이 학교의 구호는 ‘아는 것 모두 털어놓기’이다. 합숙에 참가하는 연사는 무려 7시간 동안 계속되는 강의에서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아야 한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가 초전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5. 편지를 쓰는데 주저하지 말라.
한국 최고의 수학자로 꼽히는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대 명예교수인 이임학 박사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지난 49년 구미의 과학잡지에 논문을 발표한 인물이다.
해방 직후 미군이 남대문 시장 근처에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미국수학회지의 문제를 풀어, 미국의 수학자에게 편지로 보낸 것이 바로 한국인 최초의 해외 발표 논문이다. 그가 53년에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수학잡지를 보면서 미국 수학자가 쓴 논문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강칠용 학장이 세계적인 바이러스 학자의 대열에 끼인 것은 젊은 연구원 시절에 노벨상까지 받은 유명한 바이러스 학자에게 용기를 내 편지를 써서 자신을 연구원으로 고용해달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전북대 김익수 교수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민물고기 신종을 발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루마니아 날반트 박사와의 오랜 편지 교환이 큰 힘이 됐다. 김 교수는 정부가 지난 74년 공산권 국가와 학술 목적의 서신 교환을 허용하는 조처를 발표하자마자 민물고기의 권위자인 그에게 수집한 표본과 연구결과를 보냈고, 그 뒤 22년 동안 서신 교환을 하면서 자신이 발견한 민물고기가 신종인지를 함께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쉽게 전자우편을 보낼 수 있는 시대에는 편지를 쓰는 노력을 아낄 필요가 전혀 없다. 편지야 말로 과학자와 과학자를 엮어주는 가장 큰 무기이다.

6. 최근의 과학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라.
제1회 대한민국 과학상을 수상한 김진의 교수
유력한 암흑물질의 후보인 액시온의 존재를 예언해 제1회 대한민국 과학상 대상을 수상한 서울대 김진의 교수는 항상 제자 물리학들에게 연구의 최전선에 서서 학문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해 무엇이 풀어야할 문제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자신이 액시온 가설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무엇이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자들이 큰 발견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노력과 능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에 가장 첨단의 정보와 우수한 연구집단이 모여 있었던 연구소나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워낙 발전돼 있어 굳이 유학을 가지 않아고 최첨단의 정보와 논문을 받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분야에서 나오는 논문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어보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7. 영어를 못하는 과학자는 성공할 수 없다.
고등학교 때 흔히 학생들은 수학을 잘 하면 이공계쪽을 지원한다. 물론 수학적 자질은 과학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요 조건이다. 하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아무리 수학의 천재라 하더라도 요즘처럼 지식의 유통이 중요한 시대에는 영어 꿀벙어리가 돼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영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최근의 과학동향을 알 수 없을 뿐더러 요즘에는 국내 학술지에조차 논문을 내기 어렵다. 국제적 공인을 받기 위해 국내 학술지들도 영어로 쓴 논문만 받기 때문이다.

통일장이론의 기초를 닦은 논문을 발표해 유명해진 서울대 조용민 교수는 국내 토플 시험 사상 가장 높은 990점을 받은 인물이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의 강칠용 학장은 요즘도 영어 공부를 위해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구약성서 두 장, 그리고 신약성서 한 장을 꼭 읽는다.

8. 인생의 동반자가 연구에도 동반자라면 금상첨화다.
노벨상에 근접했다는 소리가 들리는 한국인 과학자들은 이상스런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노벨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분자생물학자인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김성호 교수는 자신이 소장을 겸직하고 있는 로렌스 버클리국립연구소에서 중국계 분자생물학자인 부인과 함께 일하고 있다.

김성호 교수의 뒤를 이어 현재 노벨상 후보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젊은 유망주인 매사추세츠공대의 피터김 교수 역시 부인이 자신의 대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브랜다이스대의 생물학과 교수이다. 한국 최고의 화학자로 꼽히는 서울대 서정헌 교수도 화학자 부부로, 부인인 백명현 교수가 같은 대학 화학교육과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물론 연애가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의도적인 교제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연구가 둘이서 하는 연구를 당해내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9.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연구에 알맞은 대상을 잘 선택해 세계 최초로 식물이 지닌 자가불화합성을 증명한 배현숙 박사.
똑같은 능력과 지식을 갖고 있다면 어떤 실험 대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경쟁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연구 대상을 잘 골라 성공하지만, 어떤 사람은 실험 대상을 잘못 선택해 번번히 실패하는 일이 과학계에서 흔히 벌어진다.

생명공학연구소의 배현숙 박사는 페츄니아라는 식물을 선택해 식물이 지닌 자가불화합성을 세계 최초로 증명했다. 이로써 배 박사는 최고의 과학권위지인 <네이처>에 표지로 소개된 논문을 발표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1백년 이상 풀리지 않았던 이 문제를 배 박사가 쉽게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은 페츄니아란 식물이 유전자 이식과 발현이 뜻밖에 잘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배 박사와 경쟁을 벌이고 다른 연구팀은 실험 대상으로 적절치 않은 담배 등을 갖고 실험을 했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졌다.

10. 과학자로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하라.
과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있는지, 기여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혹시 사회의 발전과 인류의 복지에 오히려 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로서 현재 명성을 날리고 있는 서울대 임지순 교수는 경기고 재학 시절 3선 반대 시위를 준비하다가 발각돼 정학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 포항공대 이성익 교수도 대학 4학년 때 유신헌법 반대시위로 제적돼 가정 교사, 공무원 학원 강사, 대입반 학원 강사 등을 전전하다가 무려 9년만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다. 이들 두 사람은 늦게 공부에 뛰어들었지만, 탁월한 연구업적을 냈으며 물리학계에서도 지도자적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갖지는 않더라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자신이 하는 연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는 과학자가 많아 개개인이 자신의 흥미를 지닌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면 저절로 기술이 축적되고 사회가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전문 인력이 훨씬 부족하다. 따라서 한국의 과학자들은 개개인의 흥미 외에도 내가 하는 연구가 사회의 요구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더욱 더 깊이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연구비가 한정돼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는 사회적 기여도가 큰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신동호

태평양 전쟁은 시작됐다

[기자의 눈] 미크로네시아 해양연구 전초기지 무너질수도

2010년 09월 14일

태평양의 중요성이 부각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일본과 미국의 군사력이 대치하며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전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미국의 기지가 있던 진주만과 일본의 태평양 전초기지가 있던 미크로네시아 축주의 웨노 섬이다. 미국은 웨노 섬을 공략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주둔시켜 물자 보급을 막고 비행기로 공습했다. 당시 많은 일본군이 사망했는데 대부분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태평양에서는 또다시 강대국의 다툼이 시작됐다.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태평양에서 산호초가 발달한 해역에는 풍부하고 다양한 해양생물이 산다. 독이 있고 화려한 산호와 공생하거나 이를 이용하기 위해 생물들이 나름의 변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나 해양생물을 가져갈 수는 없다.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라 하더라도 엄연한 주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태평양전(戰), 외교전은 앞서고 있다

태평양은 지구에서 가장 넓다는 바다다. 하지만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설정된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이 넓은 바다에 공해는 거의 없다. 태평양 대부분은 넓은 바다에 점점이 있는 작은 섬나라의 EEZ에 포함돼 있다. 참치 같은 수산물을 잡거나 새로운 생물자원을 채취하려면 작은 섬나라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작은 섬나라라고 얕볼 수는 없다. 이들 정부는 이미 생물자원의 가치를 알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공동연구를 제안하려 하면 얼마나 많은 투자가 선행될 것인지 따진다. 그래서 강대국은 공항의 활주로를 새로 깔아주거나 공항에서 연구소까지 도로를 놓아줄 수 있는 막대한 ‘군자금’을 동원한다. 하지만 이런 군자금이 없는 나라는 ‘외교력’으로 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태평양 외교전(外交戰)에서 다른 나라에 뒤지고 있지는 않다. 일본의 전초기지가 있던 웨노 섬에 2000년 일찌감치 한국해양연구원 한·남태평양연구센터라는 생물자원 연구를 위한 전초기지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8월 31일 개소 10주년을 맞은 이곳에서는 한국인 과학자와 현지 인력이 10년째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태평양 생물자원 전쟁의 첨병인 전초기지는 많이 고립된 상태다. 일단 연구센터와 미크로네시아 정부 관료 사이의 협업은 잘 이뤄지지만 이를 문서로 남기기 위해 정부 양식의 서류를 만들려면 절차가 번거롭다. 괌의 영사관이 아닌 피지의 대사관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항공편으로 미크로네시아에 가는 방법은 괌에서 ‘콘티넨탈 항공’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 항공사는 태평양의 섬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을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괌에서 피지에 가려면 축-괌-필리핀-피지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해야만 한다. 박흥식 센터장은 “남태평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피지 대사관에서 처리한다”며 “10년 전부터 외교부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군자금 부족한 전초기지, 국지전 승산 있을까?

군자금(연구비)도 적고 아무 데다 쓸 수 없는 것도 문제다. 현재 연구센터의 운영예산은 연간 3억원이다. 연구원이 한국과 웨노 섬을 오가는 항공료와 현지에서 발전기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연료를 사면 대부분이 소모된다. 웨노 섬은 하루에 12시간만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자체 발전을 하지 않으면 전력 공급이 끊긴다. 전력이 끊겨 바다에서 채취한 해양생물을 키우는 수족관의 산소 공급과 온도 조절이 되지 않으면 오랫동안 키운 생물 종이 몰살된다.

연구를 맘껏 할 수도 없다. 연구센터는 해양생물 종 보존을 위해 현지인에 의해 남획되는 생물 종 양식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을 지급하는 관계 부처에서는 다른 부처에서 할 연구라며 제지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식 방법 연구는 생물 종 보존뿐만 아니라 미크로네시아의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과 미크로네시아가 서로 이익을 얻는 ‘윈-윈’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연구다.

태평양은 지금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 중이다. 옛날처럼 무기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대신 자본과 외교력으로 싸울 뿐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남보다 앞서 전초기지를 세웠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미크로네시아를 아군으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보급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이 기지를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다. 미크로네시아는 한국이 아닌 또 다른 나라의 연구소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이곳을 둘러싼 국지전이 시작된다면 과연 한국은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암세포만 죽이는 로봇나와

2004년 03월 10일

나노 로봇이 혈액을 타고 인체에 들어와 암세포를 공격하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나노 로봇이 움직이려면 모터가 필요한데, UCLA 몽테마노 교수가 개발한 머슬봇은 심장근육세포가 모터 역할을 한다. 연료는 체내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포도당이다. -사진제공 감마
인체 내부를 기어다니며 암세포만을 골라 죽이는 미세 로봇. SF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 ‘꿈의 로봇’이 현실에서 본격적인 출전을 알릴 기세다.

지난달 27일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카를로 몽테마노 교수가 3년에 걸친 연구 끝에 머리카락의 절반 두께인 50마이크로미터 규모의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이 로봇의 구동기관은 생쥐의 심장근육이다. 그래서 근육(muscle)과 로봇(robot)이 결합됐다는 의미로 머슬봇(musclebot)이라 불린다. 생체 내의 세포를 이용해 움직이는 로봇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학자들은 이 연구 성과 덕분에 머리카락 10만분의 1 크기의 나노(nano) 로봇이 몸속에서 돌아다니며 치료할 수 있는 시기가 성큼 앞당겨졌다고 평가한다. 바로 심장근육이 이용됐기 때문에 가능해진 얘기다.

인체의 세포 크기는 나노 수준이다. 폭약(칼과 약물)을 탑재한 나노 로봇 군단을 환자의 몸에 투여하면 비슷한 크기의 적(암세포)과 직접 백병전을 벌일 수 있다.

문제는 구동력. 아무리 작다고 해도 모터와 연료 없이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학자들은 세포 내에서 모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근육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성냥개비 모양의 미오신, 정자가 꼬리로 헤엄치며 난자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해주는 다이네인, 세포 내에서 물질들을 운반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물차인 키네신 등의 단백질이 그것. 모두 인체에서 연료를 얻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천연 모터’다. 나노 로봇에 이들을 장착하면 연료 걱정 없이 몸속을 누빌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 단백질을 순수 분리해 대량으로 얻기는 쉽지 않다. 몽테마노 교수의 실험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심장근육세포는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줄기세포(stem cell)로부터 대량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몽테마노 교수는 연료(포도당)가 차 있는 배양 접시에 생쥐의 심장근육세포를 넣었다. 이 세포는 연료만 공급되면 자발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

여기에 심장근육세포가 잘 달라붙는 특수 화합물이 발라진 아치 모양의 실리콘 지지대를 담갔다. 그러자 심장근육세포가 지지대에 달라붙어 점점 수가 불어나 지지대 전체를 감쌌다. 이때 지지대가 꿈틀거리며 초당 40마이크로미터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마이크로시스템연구센터 김병규 박사는 “머슬봇에 수술용 가위를 부착하거나 항암제를 탑재시키면 인체 장기 내부나 혈관을 연료 걱정 없이 기어 다닐 수 있다”며 “몸의 각종 장기조직으로 자랄 수 있는 줄기세포를 잘 배양하면 심장근육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물량 확보 문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말했다.

미래에는 수술용 가위를 장착한 나노 닥터가 몸 속에서 병균을 직접 제거할지 모른다. -사진제공 포어사이트 인스티튜트
보통 줄기세포는 수정 후 4∼5일 된 배아, 탯줄혈액, 성인의 골수 등에서 얻을 수 있다. 만일 환자 자신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얻어 머슬봇을 만들면 면역거부반응의 위험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목표물까지 정확히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 박사는 “예를 들어 병균(항원)이 침투했을 때 몸에서 면역세포(항체)가 출동하는 원리를 이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암세포를 인지하는 체내 항체를 찾아내 머슬봇에 장착하면 정확히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흥미롭게도 의학 연구자 외에 미 항공우주국(NASA)이 몽테마노 교수의 연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주선 표면에 미세한 크기의 돌조각이 부딪쳐 구멍이 생겼을 때 머슬봇 군단을 출동시켜 이를 보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다. 물론 이 일이 가능해지려면 우주선 표면을 포도당으로 덮어야겠지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센터장 정봉현 박사는 “NASA는 현재 생체 소재 모터가 달린 로봇을 이용해 우주선을 보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 일이 실현되려면 5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훈기 기자

투명망토, 처음으로 3차원 물체 감추는데 성공

독일 연구팀 개발…해리포터의 투명망토는 먼 일

2010년 03월 23일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투명망토는 과연 언제쯤 현실이 될까. 이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3차원 투명망토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이다.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최신호에 3차원 투명망토가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차원에서만 가능했던 투명망토가 평면을 벗어나 3차원 입체에서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관련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2006년 허구에서 현실로

투명망토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허구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들어온 건 2006년의 일이다. 2006년 초, 영국 런던 임페리얼컬리지의 이론물리학자 존 펜드리(John Pendry) 교수가 투명망토의 이론을 내놓으면서다.

그해 가을, 투명망토는 실제로 개발됐다. 미국 듀크대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교수 연구팀이 투명망토를 최초로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2006년은 투명망토의 해가 됐다. 사이언스지는 그해 10대 연구 성과 중 5위로 투명망토를 선정했다.

현재 투명망토는 ‘메타물질(metamaterial)’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인공물질로 만들어진다. 원래 메타물질은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빛의 굴절률이 음인 인공물질을 만들기 위해 연구되었다. 그러다 2006년에 투명망토로 개발된 것이다.

투명망토로 쓰이는 메타물질은 빛을 흡수해서도 안 되고 빛을 반사해서도 안 된다.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면 우리 눈에 걸리기 때문이다. 대신 메타물질은 마치 냇물이 돌을 만나면 휘돌아 흘러가듯 빛을 휘게 한다. 빛이 투명망토를 돌아서 가기 때문에 마치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전까지 투명망토는 한 방향에서만 투명했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투명망토는 물체를 전혀 감춰주지 못했다. 투명망토의 위력은 단지 2차원 평면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 감출 수 있어

진정한 투명망토는 어느 방향에서나 투명해야 한다. 최근 독일의 연구팀이 그 일을 세계 최초로 해냈다. 독일 카를스루에 기술연구소(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의 톨가 에르긴(Tolga Ergin) 연구팀이 3차원 투명망토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메타물질에 얇은 금박을 씌움으로써 어느 방향에서나 물체를 감춰주는 투명망토를 만들어냈다.

연구팀은 메타물질에 얇은 금박을 씌우고 이 금박을 움푹하게 패이게 했다. 보통의 2차원 투명망토라면 이 움푹 들어간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연구팀이 개발한 3차원 투명망토는 이 움푹 팬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해리포터의 투명망토가 곧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걸까. 아직은 아니다. 이번에 개발된 3차원 투명망토는 매우 작은 물체만 감출 수 있이다. 연구팀이 움푹 패게 한 금박 부분은 가로 30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다), 세로 10μm에 깊이가 고작 1μm 밖에 안 된다. 확대경 없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연구팀은 “크게 만드는 게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연구 성과가 3차원 투명망토 개발에 첫 발을 내디딘 것”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크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팀이 이 정도로 작은 입체구조를 만드는데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만약 깊이를 1μm에서 1mm로 늘릴 경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인간이나 건물을 감추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왜 가시광선은 힘들까
게다가 이번 투명망토는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의 영역, 가시광선에서는 전혀 투명하지 않다. 그동안 개발된 투명망토는 전자레인지에서 사용하는, 파장이 긴 마이크로파 수준에서 투명하다. 비록 2008년에 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규모의 투명망토에서는 가시광선도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이번 투명망토는 마이크로파보다 긴 적외선 영역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그러나 가시광선에서 3차원 투명망토를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메타물질에 쓰이는 구성물질은 두께가 200nm 정도다.

가시광선에서 가능하려면 이를 10nm으로 줄여야 한다. 두께를 20분의 1로 줄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팀은 이 정도로 작게 만드는 건 현재의 레이저 기술로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성과가 투명망토 개발에서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박미용 동아사이언스 객원기자 pmiyong@gmail.com

중이온 가속기로 ‘갓난아기 우주’ 재현 성공

국내과학자 포함 국제연구진 ‘반입자 원자핵’ 발견

2010년 03월 05일
 

《우주의 시작인 빅뱅 이후 수백만분의 1초 만에 태어난 갓난아기 우주를 한국 과학자들이 포함된 대형 국제 연구팀이 찾아냈다. 유인권 이창환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가 포함된 국제 연구 그룹 ‘스타(STAR)’는 4일 “반입자만으로 이뤄진 원자핵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물질 상태와 초기 우주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5일자에 발표됐다. 스타 프로젝트는 미국 브룩헤이번연구소 중이온 가속기(RHIC)의 대형 검출기를 이용한 실험 프로젝트로 주로 무거운 입자의 성질을 연구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12개국 54개 연구기관에서 500여 명의 과학자가 참가하고 있다.》

금 원자핵 충돌시키자 미니빅뱅 상태서 발생
초기우주입자 추정… 물질탄생 비밀 벗길 단서


○ 금 원자핵 빛의 속도로 충돌시켜

중이온 가속기는 무거운 금속 원자를 충돌시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관찰한다. 정부가 1월 세종시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도 중이온 가속기 설치 계획이 들어 있다. 스타 연구진은 이번 가속기 실험에서 두 개의 금 원자핵을 빛과 같은 속도로 충돌시켰다. 금 원자핵 하나는 무려 1000억 eV(전자볼트)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두 개의 금 원자핵이 충돌하자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수조 도의 상상도 못할 고열이 발생하면서 원자핵이 모두 녹아 거대한 에너지로 바뀌어 버렸다. 우주가 태어나기 직전의 거대 에너지 상태 즉 ‘빅뱅이 일어나기 직전’의 축소판이 된 것이다.

이 에너지는 가속기 안에서 ‘미니 빅뱅’을 일으키며 우주가 처음 태어날 때 만들어졌던 작은 입자, 즉 쿼크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반입자로 불리는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초입자(반람다입자)가 한데 뭉쳐 이번에 발견된 ‘반원자핵(반초삼중수소핵)’을 만들었다. 반입자는 다른 성질은 모두 같은데 전기적 성질만 다른 입자로 양성자가 플러스(+) 전하를 띠는 데 비해 반양성자는 무게, 모양은 모두 같고 마이너스(―) 전하를 띠는 것만 다르다.

유 교수는 “세 개의 반입자가 뭉쳐 만들어진 반원자핵이 발견된 것은 세계 최초”라며 “카드 게임에 빗대면 확률적으로 희귀한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뜬 셈”이라고 말했다. 반원자핵은 수천억분의 1초 만에 붕괴하며 사라졌지만 자신의 흔적을 검출기 안에 남겼다. 유 교수는 “이 현상은 2007년에 처음 발견됐으며 2008년 하반기부터 분석이 시작돼 이번에 논문으로 나왔다”며 “당시 연구원들 모두 ‘어떻게 이런 게 나올 수 있나’ 하고 신기해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와 이 교수, 최경언 씨(박사과정)는 스타 연구그룹 안에서 중이온 충돌 실험 검출기 개발과 데이터 분석에 참여했다.

● 끈적거리는 액체 같은 초기 우주

가속기 안에서 순간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진 이 입자가 왜 중요한 걸까. 빅뱅 이후 태어난 우주의 첫 모습을 밝히고 물질의 신비도 벗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빅뱅 이후 만들어진 첫 물질 중 하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셈”이라며 “우주의 진화와 물질의 탄생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한때 빅뱅 이후 첫 우주는 기체에 가까운 플라스마 상태여서 초기에 만들어진 입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 교수는 “요즘에는 첫 우주가 매우 끈적끈적한 액체와 비슷한 상태였을 거라고 많이 생각한다”며 “이번 연구는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초기 우주에서는 수많은 입자들이 강하게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얽혀 존재한다. 이 중에는 마치 패거리처럼 떼를 지어 다니는 반입자들도 생겨났다. 이들이 뭉치는 바람에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초입자’가 결합한 ‘반원자핵’이 태어났고 이번에 가속기 안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우주 초기에는 기묘한 형태의 원자들이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며 “이번 발견은 그들을 관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초기 우주에서 반입자가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예측도 뒷받침한다. 과학자들은 빅뱅 이후 입자와 반입자가 같은 양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대칭 깨짐’이라는 현상 때문에 입자가 더 많이 살아남았고 결국 지금의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대칭 깨짐 현상이 없었다면 모든 입자와 반입자가 충돌해 사라지면서 현재의 우주도 없었을 것이다.

유 교수는 “만일 반입자가 더 많이 살아남아 지금의 우주를 만들었다면 비유적으로 표현해서 원자핵은 마이너스 전하, 전자는 플러스 전하를 띠게 됐을 것”이라며 “우리 우주와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우주에서는 반입자로 만들어진 우주도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컴퓨터 저장용량 1000배 이상 늘린다”
[창의연구단공동기획] 박재훈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장

박재훈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장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컴퓨터 저장용량 뒤에는 물리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다. 1990년대 이전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금속판의 표면을 잘게 나누고 각 구역을 자석의 N극, S극으로 바꿔가며 0과 1(2진수)을 표현하는 방법을 썼다. 한 구역의 넓이가 워낙 작다 보니 N극과 S극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어 용량도 수백 메가바이트(MB) 정도에 그쳤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프랑스 물리학자 알베르 페르가 1988년 거대자기저항(GMR) 기술을 개발한 뒤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알베르 페르는 자기화 방향이 서로 다른 얇은 박막을 겹쳐 붙인 뒤 전류를 흘려주면 매우 큰 전기저항이 생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른바 ‘거대자기저항’(GMR, Giant Magnetoresistance)이다. GMR은 1기가바이트(GB) 이상 고용량 하드디스크가 등장한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현재 거의 모든 컴퓨터 저장장치는 GMR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알베르 페르는 이 연구 성과로 200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GMR 기술을 한 단계 뛰어 넘을 수 있는 신물질 개발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박재훈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은 이 같은 신물질 연구에서는 국내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

원자 속 ‘전자’를 건드리면 미래가 보인다

물질의 표면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박 교수는 크게 4가지 방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먼저 초창기 하드디스크처럼 금속 표면의 자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전자기력을 사용해 물질의 표면 성질을 바꾸는 식이다. 두 번째로는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의 회전 운동을 이용한다. GMR 역시 이런 원리로 만들어졌다. 세 번째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궤도를 조정하는 방법이다. 가령 타원궤도를 도는 전자는 0, 원형 궤도를 도는 전자를 1로 구분하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위치에 따라 데이터를 표현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전하, 스핀, 궤도, 그리고 격자로 불린다.

만약 이 4가지 특성을 한 가지 물질에서 모두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GMR 기술만 해도 물질의 자기장(전하)과 전자의 회전 운동(스핀) 두 가지를 결합했을 뿐이다. 4가지 특성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면 데이터 저장 용량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박 교수는 “GMR 기술로 이전보다 수천 배 더 많은 저장 용량을 손에 넣었다”면서 “4가지 특성을 모두 구현할 수 있는 신물질을 만든다면 저장 용량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가 이끄는 상호결합복합기능성물질연구단은 이런 IT 혁신을 준비하는 현대의 연금술사 집단인 셈이다.

현재 신물질 후보로는 다중강성 물질(다강체)이 있다. 다강체는 필요에 따라 N극, S극을 바꾸어 줄 수 있는 강유전성과 자석과 동일한 성질을 갖는 강자성 등 상반되는 두 가지 특성을 지녔다. 지금까지 개발된 다강체로는 터븀망간산화물(TbMn2O5)이 대표적이다.

이런 물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대부분 순수한 자연물질을 산소와 반응시킨 산화물인 경우가 많다. 물질이 산화되면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물질로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이 산화돼 모래가 되거나, 알루미늄이 산화돼 루비가 되는 것과 같은 식이다. 연구단은 요즘 이런 산화물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필수장비

연구단이 산화물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장비는 바로 거대한 가속기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원자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지름이 80m에 이르는 큰 가속기가 필요하다. 연구단은 포스텍에 있는 포항방사광가속기를 100% 활용하고 있다.

‘빛공장’이라고도 불리는 방사광가속기는 원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분석 장비다. 연구단은 이 분석 장비로 원자 내부의 전자가 전하-스핀-궤도-격자의 4가지 움직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목적이다. 다양한 산화물을 만든 뒤 이 산화물이 터븀망간산화물처럼 다강체의 성질을 갖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방사광가속기를 ‘현미경’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온 빛을 산화물에 쬔 뒤 산화물의 구조를 분석하면 된다. 연구단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많은 빛 중에서도 물질투과에 유리한 X선을 자주 활용한다. X선을 스프링처럼 구부리거나 물결무늬로 만들기도 한다. 산화물의 구조를 더욱 정확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다.

올해 출범한 신생 연구단이지만 벌써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2006년부터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3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동 지금까지 SCI급 논문 7편을 게재했다. 현재 2편의 논문은 준비 중이다. 박 교수는 이런 성과로 4월 한국물리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 박재훈 교수 약력

1981~1985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1985~1987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석사
1987~1994 : 미국 미시간대 물리학과 박사
1994~1996 : 미국 루센트 테크놀로지 연구원(AT&T Bell 연구실)
1996~1999 : 미국 브룩헤븐연구소 연구원
1999~현재 : 포스텍 물리학과 조교수, 부교수
2009~현재 : 상호결합복합기능성물질연구단장

상호결합복합기능성물질 연구단은?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 사진 제공 박재훈 포항공대 교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라. 창의력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박 교수가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박사과정 학생을 포함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대부분은 적극성과 도전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박 교수는 “연구단 제자들을 지도할 때도 항상 질문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연구과정에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실험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스스로 생각하고 대답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아직 젊은 연구자들이다 보니 모르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중요한건 부족한 지식을 스스로 찾아내고 보충할 수 있는 능력이죠. 그래야 연구도 자발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너무 숫기가 없어요.”

IT 신소재 개발의 첨병을 맡고 있는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의 철학은 ‘자신감’ 이다.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내야 한다는 박 교수. 그의 말 속에 IT 강국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미래가 엿보인다.

박사후연구원 1명, 박사과정 7명, 석사과정 3명으로 구성된 연구단은 올해 4월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에 선정됐다.

글/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2009년 1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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