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인천- 카트만두

2019211일 중국 우한을 시작으로, 코로나의 유행으로 일상이 멈추어 버린 듯한 2년의 시간이 지나며 생활의 환경들이 많이 변해 버렸다.

다행히 지금은 위드코로나로 생활방식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계획들을 변경을 해야 했다. 겨울에만 찾았던 히말라야 트레킹을 퇴직하면 꽃피는 4-5월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항공길 멈춰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미루었던 트레킹 계획을 10월에야 시작하게 되었다.

동행하는 4명의 일행은 긴장과 설레임을 안고 인천공항(2터미널)에서 만나 출국절차를 밟았다.

예전처럼 공항은 북적이지 않고, 한산한 편이여서 출국절차는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 되어, 직항편을 이용하여 청정지역인 네팔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2015년 네팔 피상파크 원정을 마지막으로, 다시 우리가 도착한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은 7년전과 다르게 전자식 입국 방식을 채택하여 비교적 빠르게 입국 심사가 진행 되었지만, 짐을 찾을 때는 1시간 이상 넘는 시간을 보내고서 공항 밖으로 나 올 수 있었다.

현지 대행사에서 마련한 전용버스를 타고 5Km 정도 떨어진 숙소까지 45분을 이동하여 체크인을 마치니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나가고 있었다.

한 달 동안 한식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네팔인이 운영 하는 제주도 식당에서 김치찌개랑 제육 덮밥으로 식사를 했다.

긴비행으로 피곤은 했지만, 시작 되는 여정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잠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929(카트만두-베시사하르, 175km) 

아침 8, 우리의 일정을 함께 하며 도움을 줄 현지가이드 다와 라마를 비롯한 보조요리사(밍마 셰르파), 포터(앙다와 셰르파, 선부 라마, 서로주 구룽, 라젠더 구룽)들과 미팅을 하고, 전용 버스를 타고 베시사하르를 향했다.

버스는 신호등, 중앙선도 없는 무질서한 도로를 오토바이와 버스가 뒤섞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카트만두 시내를 벗어나자 맞이하는 포카라를 향하는 도로는 교통지옥이 따로 없었다.

네팔의 제1도시인 카트만두와 제2도시인 포카라를 이어주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부고속도로인 셈인데 도로 상태가 너무나도 열약 길을 달려서. 한참을 지나니 산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에 올 때는 저곳을 통해 더 쉽게 이동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끝도 없는 길을 7시간을 달려 첫 번째 도착지인 베시사하르에 도착하였다.

가이드와 저녁 메뉴를 정하고, 내일 도착지인 차메까지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로컬버스는 없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지프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네팔인은 우리의 절반 가격 트레커인 우리의 비용은 3,000루피라고 한다.

2만 루피에 차메까지 가기로 계약을 하였다.

내일은 또 어떤 길을 달리게 될지.....

 

 

930(베시사하르~차메

약속한 아침 8시가 되자 지프가 숙소 앞에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짐을 싣는 공간을 포함 7인승 정도 될 듯한, 1열에 기사 그리고 나와 재무 원형이,

2열에는 철형과 환영, 그리고 가이드 다와, 치킨보이 밍마 네명, 화물칸을 개조해서 만들 3열에는 포터 네 명을 포함 11명이 탑승을 하고, 깍아지듯 경사지고 산허리르 잘라 만든 아찔한 비포장 도를 지나 65Km6시간 40분을 달려 차메에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다.

계약할 당시 비용이 비싸다고 말했던 원형은 위험한 길을 달리는 내내 “20만원 절대 비싸지 않다.”

오히려 더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네팔에서 긴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갔다.

베르겐에서 관광하고 오다(Odda)로

 

한왕용 대장이 보내준 스케줄표늘 보고 이번 여정 중 비행기 탑승 횟수를 헤아려 보니 무려 8번이나 된다.
8박 9일의 짤은 기간에 8번이라니 무려 하루에 한번꼴 비행기 탑승이다.
비행기 탑승에는 최소한 두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아야되니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코펜하겐에서 베르겐으로 이동하고 관광하고 첫 트레킹을 위해 오다로 이동하는 날이다.

호텔에서 탑승 체크인을 하고 공항에 도착하여 셀프 짐 발송을 하니 탑승 수속이 훨씬 간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서 편리하고 시간이 절약 되었다.
이런 제도른 이용하면 조금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비행 탑승 시간이 지연되어 12시 탑승하니 좌석이 비상구가 있는 곳이라 기분이 좋았으나 그것도 잠시 승무원이 다가와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일행에게 쌀라쌀라 비상시 행동요령을 설명해 주고, 이해하였느냐고 묻는데,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뒷자리에 앉아있는 외국인과 자리를 바꿔앉으라는 수모를 겪었다.

대절 버스로 베르겐 시내 도착하여

베르겐 항구에서 항구와 맞은 편에 보이는 브뤼겐(Bryggen)을 사진에 담고, 브뤼겐 어시장을 구경하며, 4명이 어죽을 비롯한 물고기 요리를 하나씩 주문하여 맛을 보았다. 꽤나 신선하고 먹을만한 요리였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곳 어시장은  베르겐 시민들은 물가가 너무 비싸 거의 찾지 않는 곳으로 가격이 무려 우리나라의 두배 수준으로,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뜨내기인 관광객들에게는 비싸게 바가지(?)를 씌워도 그게 먹혀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란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든 싸든 간에 관광객으로서 외국의 풍물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있다는 것이 여행의 재미를 한층더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제 맛볼 것 맛보고, 배도 채우고, 베르겐에 있는 중세 도시역사지구. 한자 동맹의 중요한 무역활동 중심지로 남겨진 지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브뤼겐(Bryggen)으로 이동한다.

 

브뤼겐 지역은 노르웨이 베르겐의 구항구에서 밝게 칠해진 목조 건물 수십 채가 바다를 향해 일렬로 늘어선 지역이다. 날카롭게 솟은 박공 지붕을 한 똑같은 외양에 색깔만 다른 중세풍의 건물들이 있는 이곳이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겐(Bryggen, 노르웨이어로 항구를 의미한다) 지역인데, 중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소속 상인들이 거주하면서 무역활동을 하던 한자동맹의 북해지역 사무소였다고. 이곳에 처음 사무소가 생긴 것은 1360년이며 이를 계기로 이후 400년 동안 지역의 해상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해안에 늘어선 특이한 목조건물들은 항구로 들어오는 무역상품들을 저장하는 창고이자 한자동맹을 주도했던 독일 상인과 점원들의 숙소 겸 사무실이 결합된 다용도 공간이다. 브뤼겐이 한자동맹의 북해지역 거점으로 명성을 날리던 14~16세기에는 독일인을 비롯한 많은 상인과 점원들로 활기가 넘쳤던 곳이다. 물론 창고에는 대표적인 취급 물품이었던 노르웨이 건어물과 곡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고 현대적인 의미의 무역이 발전하면서 중세적인 무역을 대표했던 브뤼겐은 무역항으로는 의미를 상실했다. 다만 당시의 건물들 중 일부가 남아 해상무역 중심지로서의 영화와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브뤼겐의 과거 무역사무소 건물들은 전성기의 4분의 1 정도 규모라고. 현재 브뤼겐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들은 한자동맹이 한창이던 14~16세기에 지어진 것은 아니다. 브뤼겐의 건물들은 주로 목조로 되어 있어 화재에 취약했으며, 건설된 이래 총 여섯 차례의 대화재를 겪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화재가 일어났던 1702년에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려 현재 건물들은 대부분 그 뒤에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브뤼겐의 건물들은 화재가 일어난 뒤에도 항상 과거 모습 그대로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외관은 물론 내부구조도 한자동맹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은 건물들은 대부분 상점이나 레스토랑, 미술가의 작업실,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한자동맹 당시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자 박물관도 있다. 목조건물들이 있는 중세 거리 근처에는 이미 구경하였고 해물 음식을 맛본 바있는 유명한 베르겐의 어시장이 있고, 12세기에 건축된 성마리아 교회(St. Mary's Church)가 있다는데, 이 교회는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 건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이 건물은 관람하지 못하였다.

 

지루하고 고된 이동

아침 2시 40분 모닝콜 알람에 눈비비고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였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벌써 인천공항으로 항하는 승객들이 즐비하게 보인다.
3시 40분 청주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하여 2시간 후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코로나 19로 한산했던 공항이 10만명을 육박하는 코로나 확진자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해외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이번 여행처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여행해 본 것도 참으로 오랫만이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5시 40분  6시에 모임인데, 피켓을 들고 있는 분도 없고 6시가 넘어도 일행을 만날 수가 없어 만나기로 한 D카운트 앞을 서성거리니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고 상대방을 확인하니 다른분들은 출국수속을 받고 있다. 
POLISH AIRLINES로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게이로 이동하였다.
지루한 비행이 시작되었다. 잠을 설친탓에 졸음이 밀려와 수면모드에 들어갔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겨우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비행정보를 보니 거리는 1만여킬로미터로 비행속도를 감안하니 족히 12시간 정도는 걸릴듯하다.
너무 오랜시간 자리에 앉아있다보니 엉덩이도 아프고 간간히 일어나 비상탈출구 앞에서 제자리 걷기로 운동겸 지루한 시간을  달랬다.

이쯤이면 여행도 아무나 못다닌다. 옛 선인들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이 만고의 진리임이 틀림없다.

인천에서 바르샤바 공항까지 14시간여, 바르샤바 공항에서 환승하기 위해 대기시간 3시간여, 바르샤바 공항에서 코펜하겐 공항까지 또 2시간여,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여정이었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짐을 찾는데 한마디로 아비규환. 난리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었다. 그래로 일행들이 짐을 모두 이상없이 다 찾게되어 다행이다.

짐은 찾은 후 공항에서 도보로 5분여 거리의 호텔에 도착 호텔 방을 배정받고 나니 저녁 10시(현지 시간)가 훌쩍 넘어버렸다. 취침이 10시 이후 였으니, 기상하여 꼬박 24시간 하고도 6시간이 더 걸렸다. 순 비행시간만도 인천 >> 바르샤바 >>코펜하겐까지 16시간 정도가 걸렸다.

 

 

산행코스 : 영동 부엉산 출렁다리주차장 - 부엉산 - 안부 - 자지산 - 기러기공원

산행거리 : 7.5 km

산행시간 :

영동 부엉산,자지산.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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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남령 - 월봉산 - 큰목재 - 은신재 - 거망산 - 용추폭포 - 일주문

산행거리 : 14.3 km

산행시간 :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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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광덕고개 - 백운산 - 삼각봉 - 도마치봉 - 향적봉 - 홍룡봉 - 백운계곡 관광지

산행거리 : 10.5 km

산행시간 :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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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대천공원 - 옥녀봉 - 중봉 - 장산 - 습지 - 구곡산 - 원각사 - 양운폭포 -대천공원

산행거리 : 12.2 km

산행시간 : 3시간 30분

구곡산_장산_중봉_옥녀봉.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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