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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룸 하이웨이(Karakorum Highway)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필자가 대략 초등학교 3, 4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 학교 도서관을 들락거리던 꼬마에게 학생과학이란 잡지에 이 기사가 눈에 띈 것이다. 이것은 어린 꼬마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남아있었다. 이 도로는 중국과 파키스탄 양국이 1966년에 착공하여 1978년에 개통하기까지만 장장 12년의 세월이 흘렀고, 86년이 되어서야 정식개통이 된다.


▲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중국 신강성 카시카르까지 1,300여km에 달하는 카라코룸 하이웨이의 대부분은 한편은 강을, 한편은 산을 끼고 달린다.

이 도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험준한 지역을 지난다.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중국의 카시카르까지 가는 1,300여km의 기나긴 여정이다. 힌두쿠시 산맥, 쿤룬산맥(崑崙山脈), 카라코룸 산맥, 히말라야 산맥 북단을 가로지르거나 근처를 지난다. 천상의 아름다운 비경만큼 비정하며 쌀쌀 맞다. 도로는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오픈된다. 그러나 여름 7, 8월 몬순 기간에는 비가 내려 낙석이나 산사태 등으로 위험하고,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막혀 폐쇄된다.


필자는 정적인 전문직 일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1년에 한 번씩 괴롭고 힘든 원정을 통해서 안일하고 나태한 나의 삶을 보완할 백신(vaccine)을 맞는다. 괴롭지 않고 어찌 높아질 수 있겠는가(非苦면 何以高乎)!


그러나 원정을 계획하고 있을 때 아프카니스탄 탈레반들에게 샘물교회 교인들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있어 원정이 결렬되기 일촉즉발인 상황이었다. 여름비는 줄기차게 내렸지만 내리는 비 사이로도 가을은 오고 있었다. 예정대로 9월20일 공항으로 갔다. 이번 원정은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종단하면서 기회가 되면 간단한 의료봉사를 하고 갈 계획이었다.


칠라스에서부터 라이딩 시작


필자는 기내식을 먹는 그 순간부터 여행의 출발이라고 선언한다. 이 때는 기존의 현실과 멀어져가는 실존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고통이 가려진 장밋빛 기대에 부풀기도 하다. 오후 2시가 아니고 3시간 연착해 5시경 라왈핀디에 도착했다. 늦게 저녁식사를 하고 이슬라마바드 밤거리를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다음날 스카루두행 비행기가 결항이라 밴을 타고 원래 계획대로 칠라스까지 가기로 했다. 이번 원정은 산이 아니고 길이다. 인더스강은 외롭지만 강하다. 그 강이 인더스 문명을 낳았다. 밤 12시쯤 칠라스의 파노라마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다. 밤 12시까지 운전해준 운전사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를 넣고 버너를 켜서 압력밥솥에 밥을 하고 장비를 세팅했다. 칠라스에서 오전 8시30분 서둘러 출발하였다.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혼재돼 있다. 완만하던 산세가 오후가 되면서 약간 거칠어지지만 아직은 이렇다할 심한 경사는 없다. 다만 강을 따라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 백색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과 녹음과 파란 하늘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가는 카라코룸 하이웨이의 오른편이 히말라야, 왼편이 힌두쿠시산맥,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전방에 카라코룸산맥이 펼쳐진다. 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곳이 유니크 플레이스라는 곳이다. 오후에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멀리 하늘을 바라보니 시커멓다. 인샬라!

우리같이 늘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 거친 자연의 흡인력에 경도되곤 한다. 이 황량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알라하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도다)’란 말을 수도 없이 속삭였다.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벗어나 시내로 4km 정도 들어가 길기트의 루팔인(여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45분이다. 길기트는 카시미르의 옛 주도고, 더 오래 전에는 소발률국의 도읍지였다고 한다.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는 747년에 1만여 군사를 이끌고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4,600m)을 넘어 현재 길기트(소발률국)와 인근 72개국을 정복한다. 신라 출신 혜초 스님도 천축국(인도)에서 이곳을 거쳐서 타시쿠르칸으로 넘어갔다.


루팔인에는 스카르두에서 온 한국 원정대의 일을 도맡아서 하는 알리 마부라는 자이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저녁을 대접한다고 한다. 그는 중간중간에 엉뚱하게 한국어를 구사해서 폭소를 자아냈다. 심한 후두염과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밤 나의 제물이 될 것이다! 방으로 들어와 마부의 틀어진 몸을 기본적인 것부터 맞추어 주었다. 그리고 침을 놔주니 그는 잠시 후 깊은 잠에 빠진다.


억센 낙타풀 가시에 타이어 펑크


다음날 아침 식사가 너무 늦어서 그냥 출발했다. 아침이 빠르면 모든 것이 여유롭고 쉬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카라코룸 하이웨이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리운 훈자를 향해서 페달을 밟았다.


▲ 전형적인 인더스강의 모습. 단애를 이룬 계류와 경작지를 제공하는 평탄면, 그 위로 솟구친 산들.

길기트는 오래된 도시답게 관개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많은 초록을 볼 수 있다. 훈자를 향해 가는 길 중간 중간 오아시스 마을이 끝없이 이어진다. 길기트에서 훈자의 중심이 되는 카리마바드까지 105km 정도 된다. 날카롭고 남성적인 산세와 그 사이를 흐르는 여성적인 훈자강과 사주, 그리고 푸른 오아시스 마을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다.


공사 중 폭파 구간을 지나고 점심 무렵 다리를 건너서 가파르게 언덕을 오르는 도중에 펑크가 났다. 억센 낙타풀 가시에 찔린 것이다. 이 풀이 어릴 때는 연해서 양들도 뜯어 먹을 수 있지만, 조금 더 자라면 가시가 억세져서 낙타도 어쩔 수 없어 이 풀을 뜯어 먹을 경우 피를 철철 흘리며 먹는다고 한다. 생존이란 절대적이고 무서운 사명 같은 것이다. 낙타풀은 삭막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장한 것이다.


카라코룸 하이웨이는 인간만의 위대함(세계 8대 불가사의)을 현장으로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길기트에서 훈자까지 대략 2/3를 넘어서면 라카포시의 빛나는 봉우리가 하얀 구름과 함께 생생하게 보인다. 가게에 앉아서 서성준 대원과 과자와 음료수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사과를 사려고 하니 주인은 그냥 준다. 만년설은 두터워 어느 곳엔가 무너질 것 같다. 라카포시를 보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필자도 산에 관심이 많지만 주거간산(走車看山)이다. 산은 산, 길은 길, 갈 길을 서둘러 가자! 훈자 계곡은 키가 큰 나무들이 계곡을 채우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훈자 계곡은 연두색 광채가 아우라(aura)처럼 솟아 보인다.


▲ 1.무스타그아타가 보이면 타시쿠르칸이 가까워진 것이다. 2.카라코룸 하이웨이의 이정표. 3.낭가파르밧 루팔 쪽으로 갈리는 삼거리. 4.셋이서 함께.

훈자에서 거의 어디에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훈자왕국의 작은 성인 발티트 요새(Baltit Fort)가 보인다. 발티트 성은 명실공히 훈자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티베트의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되어 티베트 건축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훈자 풍경의 기조는 높고 낮음이다. 어느 곳에서든 위를 바라다보면 암갈색 산과 하얀 영봉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아래를 내려다보면 낮은 계곡이 보인다. 절대 숲에 함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6,000m 이상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훈자에 가까이 오니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이들은 파키스탄인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좀 다른 용모를 하고 있다. 파란 눈과 하얀 피부, 갈색 머리들이 눈에 띈다. 치트랄, 칼라시 지방과 훈자지방에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후 남은 그리스 군인들이 씨앗을 퍼뜨렸다고 한다.


언덕 위에 있는 힐탑 호텔이 우리 숙소다. 언덕 위에 하얀 집은 노래 가사에서는 낭만적인 집이지만, 라이더의 입장에서는 입에서 단내, 쓴내를 검은 매연처럼 토하면서 가야하는 마지막 힘든 길이다. 비버리힐즈처럼 훈자힐즈라고 부르면 적당할 높고 전망이 좋은 언덕 위에 있는 나그네 집이다.


마을 풍경이 멀리 아름답게 들어온다. 가파른 산 아래에는 학교가 있고 발티트 성이 굽이쳐 내려다보고 있다. 긴 숨가뿜 뒤 여독 탓인지 포근한 평화와 안식이 다가온다. 아 훈자여!


훈자왕국은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 4대 장수촌이다. 파키스탄의 훈자왕국, 중국 신강성의 위구르지역(실크로드지역), 러시아의 코카서스지방, 남미 에쿠아도르의 빌카밤바가 세계 4대 장수지역으로 불린다. 이번 코스가 본의 아니게 이 훈자왕국과 신장 위구루 자치구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훈자에는 파키스탄에서 거의 유일하게 양조장이 있어 제법 독한 증류주를 만들어낸다. 무슬림 국가답게 술이 아니고 훈자워터(Hunza Water)가 양조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할 때 이집트에서 가져온 술 증류법이 전달된 것 같다.


이 동네는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마력이 있다. 훈자에서 추석차례를 지내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아래로 사정없이 다운힐로 내려와 카라코룸 하이웨이에 합류하여 바로 다리를 건넜다. 알리 마부는 소스트는 국경도시라 숙박시설이 삭막하니 굴미트에서 1박 하자고 한다. 마을에 가서 옷과 학용품 등을 나눠주고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의료봉사도 할 수 있고 그런대로 괜찮은 제안이다.

굴미트에서는 의료봉사활동도 펼쳐


굴미트의 실크루트 호텔은 사과나무 꽃들이 만발해있다. 멀리 훈자강 건너편 하얀 첨탑은 고딕식 성당의 첨탑을 닮아 캐시드럴봉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아래 훈자강에는 모래톱들이 백사장에 넓게 펼쳐져 있다.


▲ 굴미트에서 보이는 캐시드럴봉. 선당의 첨탑처럼 생겨서 얻은 이름이다.

일단 마을에 들어가 아픈 사람을 왕진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30대 젊은이(?)의 모친이 노환이시다. 이 집은 700년이 되었다는 집이므로 이 마을은 적어도 700년 이상 되었다는 말이다. 한 마을의 역사가 이렇게 변함없이 흘러온 것이다.


일단 무릎을 교정해주고 침을 놓아 주었다. 학교수업이 이미 끝나서 마을을 지나며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학용품도 나눠주었다. 시골 마을 특유의 정적과 평화로움이 흐른다. 오후가 되니 동네 환자들이 호텔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호텔 사장방에 임시 캠프를 차렸다.


마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주로 요통, 각통, 슬통 증상이 많았다. 그냥 ‘차고, 치고, 누르는’ 교정법을 위주로 치료했다. 오늘 밤은 추석 풀문(full moon) 세레모니를 해야겠지만 내일을 위해서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결전의 날이다. 이민국 업무 시간에 맞춰 서둘러서 짐을 챙겨 차에 실었다. 구름이 끼면서 스산한 가을 분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이 소스트(2,800m)는 국경 마을답게 약간은 설레고 어수선한 분위기다. 간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른 먼지와 낙옆들. 타시쿠르간까지 갈 국경통과용 랜드크루저에 짐을 옮겨 싣고서 이미그레이션에서 수속하고 자전거를 탈 준비를 하는데 이 국경구간에서는 자전거 타는 것이 금지됐다고 한다. 실망 또 실망하면서 차에 올라서 국경구간으로 들어갔다.


우리 마음과 상관없이 청량한 바람(風)과 맑은 하늘 빛(景)은 그냥 아름다운 서정을 만든다. 국경지역 아무도 없는 빈 포장도로에는 낙옆이 한가롭게 구른다. ‘가을이었지. 하염없이 낙엽은 지고…’ 에밀넬리강의 시가 흘러나온다. 쿤제랍 패스 직전 17km 구간이 가장 어렵다. 이 길은 자일을 풀어놓은 것 같은 실띠 같은 열두 굽이 길이다. 오인환 선배는 이 지역은 군인들이 없으니 자전거를 타자고 한다. 우리는 마지막 구간을 임영주, 서성준 대원과 함께 천천히 아껴가며 지그재그로 오르기 시작했다.


▲ 1.파키스탄과 신강성 국경인 쿤제랍 패스(4,750m). 2.굴미트에서의 의료봉사활동. 3.마을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고 있다. 4.낙타풀 가시에 펑크난 타이어를 수리하고 있다. 5.쿤제랍 패스 오르막.

길 아래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잿빛 하늘, 싸늘하고 냉량한 고원의 향기는 정신을 각성케 한다. 자전거를 타고 커다랗게 이정표가 있는 고갯마루까지 타고 올라갔다.


카시카르 438km, 알마아타 1,320km까지 거리가 표시된 이정표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느끼게 한다. 쿤제랍 패스(Khunjerab Pass·약 4,750m)에 올라선 것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가서 중국쪽 초소가 나타나기 전에 MTB를 차에 실었다. 아쉽지만 마지막 최고 어려운 부분을 올라서 기분이 좋다.


이제 차를 타고 눈물처럼 아름다운 파미르고원을 지나간다.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고원은 넓고 아득하지만 사람과 낙타나 야크 같은 동물들의 흔적이 곳곳에 있어서 아주 적막하지는 않다.


무스타그아타(7,546m)가 보이기 시작한다. 타시쿠르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숨 가쁜 수직과의 싸움을 마치고 수평을 향하는 타클라마칸 사막 종단을 위해서 발길을 옮겨야할 것 같다.<계속>


/ 김규만 굿모닝한의원 원장

 

출처 : 우리클라이밍클럽
글쓴이 : 김영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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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사람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이에 반비례하여 시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인간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삶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의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중에서 -


* 시간은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갑니다.
마냥 주어진 것 같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번 지나가면 끝입니다.
시간의 낭비는 생명의 낭비이며, 자기 삶을
허비하는 엄청난 실수입니다.
(2004년 2월 16일자 앙코르 메일)
기원전 1만 년 지상 최강의 동물은
검치호랑이도 매머드도 아니었다
2008년 03월 14일 | 글 | 김상연 기자ㆍdream@donga.com |
 
20cm에 달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검치호랑이, 숲 속에 도사린 괴조, 사냥꾼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매머드 무리…. 13일 개봉한 영화 ‘10,000BC’처럼 기원전 1만 년에는 인간과 거대 동물들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을까? 화석 전문가인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사와 기원전 1만 년 거대 동물들의 진실을 파헤쳐 봤다.


송곳니 20cm 검치호랑이 1대1로는 최강


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뒤 지구를 지배한 최강의 육식동물은 누구였을까?

“검치호랑이의 한 종류인 스밀로돈입니다. 영화에서 긴 송곳니를 갖고 등장하죠.”

스밀로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발견됐다. 250만 년 전 등장해 1만 년 전 멸종했다. 키는 1.2∼1.5m, 체중은 400kg으로 지금 사자보다 조금 크다. 영화 속 크기는 많이 과장된 셈.

그러나 무시무시한 모습은 사실이다. 송곳니(검치) 길이가 17∼20cm에 이른다. 입을 벌릴 수 있는 각도가 120도나 되고, 턱 근육이 현재의 사자보다 세다. 매복했다가 사냥감을 덮치는데 한번 목을 물면 끝장이다. 어린 매머드와 바이슨까지 잡아먹었다.

스밀로돈에 견줄 만한 육식 포유동물은 아직 화석으로 발견되지 않았다. 임 박사는 “나무늘보의 조상인 자이언트 그라운드슬로가 스밀로돈과 싸워볼 만할 것”이라고 했다. 그라운드슬로는 길이가 6m나 되고 몸무게도 3∼4t에 이른다. 곰처럼 두 발로 서서 나무에 기대 잎을 먹었다. 앞발바닥이 사람 얼굴 두세 배에 달해 한 번 맞으면 스밀로돈조차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머리 쓰는’ 인간 앞에선 모두 약자


영화에서는 열댓 명의 사냥꾼이 매머드 떼에 덤벼들어 한 마리를 덫으로 잡는 장면이 나온다. 창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겁을 먹은 매머드 떼는 도망을 친다.

“매머드는 어깨까지 높이가 4m에 달해 지금 코끼리보다 큽니다. 지방층이 8cm, 바깥에 난 긴 털은 1m나 돼 창에 맞아도 그리 아프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실제로 인간은 어떻게 매머드를 사냥했을까? 과학자들은 인간이 매머드를 절벽으로 유인해 떨어뜨렸을 것으로 추측한다. 매머드는 덩치가 커 한 번 가속도가 붙으면 갑자기 멈추기 어렵다. 실제로 절벽 밑에서 수백 마리의 대형 동물 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다.

함정을 파서 동물을 잡기도 했다. 임 박사는 “스밀로돈 역시 동물미끼로 유인해 잡았을 수 있다”며 “최강의 육식동물은 바로 인간”이라고 밝혔다.


기후 변화-과잉 사냥으로 거대동물들 몰락


당시는 신생대의 마지막 부분으로 네 번에 걸친 빙하기가 마지막으로 지나고 빙하가 녹는 간빙기였다. 대형 동물이 많이 멸종한 시기이기도 했다.

2만 년 전부터 해수면이 내려가면서 러시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베링해협에 1600km의 ‘육지 다리’가 생겼다. 매머드를 비롯해 많은 동물이 아시아에서 북미 대륙으로 건너갔고, 이들을 사냥하던 인간도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과잉 사냥꾼’ 인간의 등장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대형 동물들은 몰락했다. 북미 대륙의 대형 동물 77%가 이 시기에 멸종했고 남미에서는 80%에 달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는 피해가 덜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제러미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 균, 쇠’라는 책에서 “구대륙의 동물은 이미 인간에게 적응해 숨거나 피했지만 신대륙의 동물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아 더 많이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임 박사는 “사람은 지나친 사냥으로 대형 동물의 멸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앞으로 또 다른 대멸종을 낳지 않도록 자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머드 길들여 피라미드 건설? 영화 속 ‘지나친 상상력’

영화가 그려낸 1만2000년 전 인간의 모습은 실제와는 사뭇 다르다.

영화 속에서 인간들은 피라미드 등 대형 건축물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5000년 전의 것이다. 1만 년이 넘는 피라미드는 아직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다. 영화 속 돛단배도 실제로 등장한 것은 4000년 전이다. 감독의 상상력이 발휘된 대목이다.

영화처럼 인간 지도자가 말을 타는 모습도 사실과 다르다. 말이 인간에게 사육된 것은 5000∼6000년 전이다. 더구나 안장 등이 발명된 건 훨씬 뒤의 일이다. 심지어 영화에서는 신석기 배경에 금속 투구까지 쓰고 있다.

매머드 역시 다르다. 영화에서는 인간이 매머드를 가축처럼 부리면서 피라미드를 짓는 데 쓰고 있다. 그러나 매머드는 너무 덩치가 커서 인간이 가축으로 길들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은 매머드를 사냥해 고기를 먹고 뼈로 집을 지었다.
[우왕좌왕 우주야그] 노아의 방주, 달에 건설한다고?
2008년 03월 12일 | 글 | 이충환 기자ㆍcosmos@donga.com |
 
언젠가 지구 생명체의 정보를 담은 ‘노아의 방주’가 달에 건설될지 모른다. 사진제공 ESA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타락한 생활에 빠져 있는 세상 사람을 대홍수로 심판하려 할 때 특별한 계시를 받은 노아가 120년에 걸쳐 제작한 거대한 배다. 대홍수를 만난 다른 생물은 모두 멸망했으나 방주에 탔던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은 살아남았다는 기록이 구약성서에 나온다.

최근 영국 신문들의 보도에 따르면 일부 과학자들이 달에 ‘노아의 방주’를 건설할 계획이다. 지구에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하거나 핵전쟁 또는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나 지구가 폐허가 될 때를 대비해 지구 생명체 정보를 보관하는 데이터뱅크를 달에 두자는 아이디어다. 참신하다 못해 황당한 발상이다.

국제 달 탐사 연구그룹(International Lunar Exploration Working Group, ILEWG)은 9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회의를 갖고 현대판 노아의 방주에 해당하는 시설을 달에 세울 계획을 논의했다. 이는 지구 최후의 날에 대비해 노르웨이 스발바르 섬에 건설돼 지난해 11월 가동하기 시작한 ‘최후의 날 씨앗 저장고’에 버금가는 계획이다.

먼저 달 표면 바로 아래에 지하시설을 건설하고 노아의 방주라 할 수 있는 이곳에 지구 생명체의 DNA 정보, 철 제련법, 농작물 재배방법 등을 담은 하드디스크를 묻는다. 이 방주는 로봇에 의해 지켜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엄청난 재앙을 겪고도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이 정보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달 노아의 방주에서는 지구에 건설될 4000개의 특수 벙커를 향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로 정보를 전송한다. 생존자들이 이 정보를 받아 지구 문명과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예측이다.

ILEWG는 정보뿐 아니라 식물씨앗, 미생물, 동물 배아 같은 생명체도 달 노아의 방주에 집어넣을 생각을 갖고 있다. 유럽우주국(ESA) 과학자들은 달에서 박테리아 생태계와 식물을 가지고 실험할 계획이다. 냉동시켜 장거리를 운송하고 영양분이 거의 공급되지 않아도 잘 사는 튤립이 최적의 후보다. 2012년이나 2015년에 튤립이 달의 온실에서 꽃을 피울지 모른다.

2020년까지 과학자들은 수명이 30년인 시험용 데이터뱅크를 달에 설치해 실험할 생각이다. 완전한 노아의 방주는 2035년까지 달에 건설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재난에 대한 과학자들의 진지함에 경의를 표한다.

물론 이런 노아의 방주가 필요 없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소행성 충돌이야 하늘의 뜻이라 어쩔 수 없다(사실 지구에 충돌하려는 소행성의 궤도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전 세계적인 핵전쟁, 또는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가가린센터에 무슨일이
이소연씨, 고산씨 대신 탑승훈련
2008년 03월 10일 | 글 | 박근태 기자, 모스크바=정위용 동아일보 특파원ㆍkunta@donga.com, viyonz@donga.com |
 
“한국인 첫 우주인 바뀌나” 과학계 촉각

다음 달 8일 러시아 유인(有人)우주선 소유스호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올라갈 ‘한국 최초 우주인’의 영광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러시아 우주인 2명과 함께 소유스호에 탑승할 한국인이 당초 ‘프라이머리(탑승) 요원’으로 선정된 고산(32) 씨에서 ‘백업(예비) 요원’인 이소연(30·여) 씨로 교체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조짐이 나타나 주목된다.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9일 “최근 이 씨가 고 씨 대신 러시아의 정식 탑승팀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두 사람의 임무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씨는 7일(현지 시간) 모스크바 인근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에서 그동안 고 씨와 함께 훈련하던 러시아 프라이머리 우주인 2명과 정식으로 탑승 훈련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씨는 그동안 우주로 올라가는 러시아의 프라이머리 요원이 아닌 지상에서 보조임무를 수행하는 ‘백업 요원’ 2명과 탑승 훈련을 해왔는데 이번에 고 씨와 역할이 바뀌었다.

또 고 씨와 이 씨는 발사 전 마지막 외출이 허락된 8, 9일 러시아 측의 이례적인 외출금지령에 따라 외출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에서 우주인 사업을 주관하고 두 사람이 선임연구원으로 소속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백홍열 원장이 최근 급히 현지를 방문해 러시아 측과 훈련 계획을 조정한 것과,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들이 잇달아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설사 임무가 교체된다 해도 한국 우주인 배출사업 자체는 별다른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씨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동일한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측은 이달 17, 18일 최종 테스트를 거쳐 19일 소유스호에 탑승할 최초의 한국 우주인을 확정할 예정이다.

물론 당초 계획대로 고 씨가 우주선 탑승 요원으로 최종 결정될 가능성도 있어 현재로서 교체 여부를 속단할 수는 없다.

고 씨와 이 씨는 1만8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2006년 12월 한국 우주인 후보에 선발됐으며 지난해 9월 고 씨가 프라이머리 우주인에, 이 씨가 백업 우주인에 각각 선정됐다.
[우왕좌왕 우주야그]태양계 닮은 행성계 발견, 처음 맞아?
2008년 02월 27일 | 글 | 이충환 기자ㆍcosmos@donga.com |
 
우왕좌왕 우주 야그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세계’란 뜻의 코스모스(cosmos)는 우주를 말합니다. 코스모스는 카오스랑 반대죠. 근데 요즘 우주를 다룬 기사를 보면 코스모스가 아니라 카오스처럼 무질서해 보입니다.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야심(?)을 갖고 이 칼럼을 연재합니다. 부디 우왕좌왕 하더라도 재밌게 즐겨주세요.

얼마 전 태양계를 닮은 외계행성계가 처음 발견됐다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됐다. 우리 천문학자가 발견에 참여했고 이 발견 내용은 ‘사이언스’에 게재돼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 기사에 대해 누리꾼들은 “20년(?) 전에도 이런 기사 나왔는데 뭔 소리냐?” “아니 벌써 수천 번(?) 발견됐는데 처음이라니 우롱 당하는 느낌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지난 10여 년간 태양계 밖에 있는 외계행성은 250여 개나 발견됐다. 그럼 도대체 뭐가 처음이란 말인가?

한국과 미국이 중심인 국제공동연구그룹 ‘마이크로펀’은 지구에서 궁수자리 방향으로 5000광년 떨어진 별 ‘OGLE-2006-BLG-109L’ 주변에서 질량이 각각 목성의 0.71배와 0.27배인 두 행성을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두 행성이 각각 중심별로부터 지구-태양 거리(AU, 천문단위, 1AU=1억4960만㎞)의 2.3배와 4.6배 떨어져 공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내용이다. 마이크로펀은 2002년 중력렌즈를 이용해 외계행성을 발견하기 위해 충북대 물리학과 한정호 교수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앤디 굴드 교수의 주도로 결성됐는데, 연구팀의 이번 결과는 ‘사이언스’ 2월 15일자에 실렸다.

그동안 태양계 밖에서 목성이나 토성 같은 가스행성이 많이 발견됐는데, 이번 발견에는 배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태양계에는 태양에서 5.2AU, 9.5AU 각각 떨어진 곳에 목성과 토성(목성의 0.3배 질량)이 태양을 돌고 있다. 새로 발견된 행성계는 중심별의 질량이 태양의 절반 정도이고, 중심별과 행성의 질량비, 떨어진 거리 등을 고려할 때 ‘태양-목성-토성’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처럼 행성 배열이 우리 태양계와 비슷한 외계행성계는 처음 발견됐다는 뜻이다.
이번에 발견된 외계행성계는 우리 태양계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계와 비교해보면 외계행성계가 태양-목성-토성의 축소판임을 알 수 있다. 중심별과 행성 사이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한국천문연구원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행성의 질량이나 거리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태양계 축소판이니, 지금까지 발견된 행성계 중 태양계에 가장 가깝다는 얘기만 하니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광년이나 천문단위(지구-태양 거리), 질량에 대한 감이 없는 사람들은 더 이해하기 어렵기만 하다.

어떤 누리꾼은 이번에 찾은 행성계가 지구에서 5000광년 떨어져 있으니 5000년 전에 출발한 빛을 발견한 것이라 지금은 두 행성이 사라져 버렸을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5000년 전의 빛은 맞는 말이지만, 그 별이 5000년간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고 두 행성의 질량이나 거리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니 행성이 없어졌을 것이란 추측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태양도 앞으로 50억년 가량 거의 지금처럼 빛나고 행성의 배열도 변하지 않으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예상이기 때문이다.

외계행성계의 상상도. 질량이 각각 목성의 0.71배와 0.27배인 두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천문연구원
이번에 외계행성계를 발견하는 데 사용했던 중력렌즈란 방법도 일반인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예측한 ‘중력렌즈’란 두 별이 우리 시선 방향에 겹칠 때 앞별 때문에 뒤별의 빛이 휘어져 밝기가 증폭되는 신비로운 현상이다. 마치 앞별이 렌즈 역할을 한 셈이다. 만일 렌즈 역할을 하는 앞별이 행성을 거느리고 있을 때 특이하게 뒤별의 밝기가 2번 이상 밝아지기 때문에 이 같은 중력렌즈를 이용해 외계행성을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롭게 새로 발견된 행성계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사이언스’에 실린 해설기사에서 미국 카네기연구소의 앨런 보스 박사는 “이번에 발견된 행성계에서 중심별과 행성 사이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에서 태양은 평범한 별이지만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를 거느리고 있어 특별하다. 태양계랑 비슷한 행성계를 빨리 만나고 싶은 열망에 자꾸 태양계를 닮은 행성계를 ‘처음’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리라.


이충환 기자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해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즐겨 읽었고, 코스모스를 사랑하는 아내를 만난 자칭 ‘어린 왕자’. 천문학만 무려 7년 공부하고 그것도 모자라 과학언론을 몇 년 더 공부한 가방 끈 무척 긴 학구파. 과학 대중화의 사명을 품고 10년 가까이 현장에서 열심을 내는 고참기자. 전문가뿐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과학, 청소년을 비롯한 일반인에게 꿈을 줄 수 있는 과학을 꿈꾸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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