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학년도 수능 과탐 1과목 축소…문과 수학 미적분 포함

교과부, 당초 계획안에서 최소 개편 택해

2008년 12월 15일
 

현재 중3년생이 응시하는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과학탐구(문과생은 사회탐구) 영역 응시과목이 한 과목 축소된다. 또 문과 학생이 응시하는 ‘수리 나형’은 미적분 영역을 새로 추가해 지금보다 출제범위가 확대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12학년도 수능 체제 개편 시안을 16일부터 8일간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이번 개편에 대해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대입 3단계 자율화방안’ 중 수능 응시과목 축소안을 구체화하고, 지난해 2월 개정 고시된 수학 교육과정(7차 개정 교육과정)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과학탐구 최대 3과목 선택

개편안에 따르면 과학탐구에서 최대로 응시 가능한 과목 수가 현행 4과목에서 3과목으로 줄어든다. 또 제2외국어‧한문은 현행대로 1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당초 인수위는 수험생의 입시부담과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과학탐구와 제2외국어‧한문을 통틀어 최대 2과목까지 선택하는 파격적인 축소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국‧영‧수 비중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과학‧사회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이 예상된다는 의견이 많아 교과부는 결국 현행 수능 과목수에서 한 과목만 줄이는 방안을 선택했다.




실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9월 24일 열었던 공청회에서는 인수위의 수능 과목 축소안에 대해 “선택되지 않은 과목은 수업에서 외면받고 고교 과학 교육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이공계 진학자가 필수로 배워야 할 물리Ⅱ 선택율(현재 10% 수준)이 더욱 낮아질 것이다”, “국영수 비중이 올라가 입시와 사교육 부담이 오히려 가중된다” 등 관련 전문가와 교육단체들의 반대 의견이 거세게 일었었다.

이에 교과부는 수능 과목 축소에 따른 갖가지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탐구영역에서 한 과목만 줄이는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 이과 수학 ‘수리 가형’ 출제범위 거의 그대로 유지

수리영역은 이과생이 응시하는 ‘수리 가형’의 경우 ‘수학Ⅰ’, ‘수학Ⅱ’,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를 출제범위로 한다.

현재 수리 가형이 수학Ⅰ과 수학Ⅱ가 필수이고, 미분과적분‧확률과통계‧이산수학 중 한 과목을 선택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출제범위의 변화가 거의 없다.

현행 수학Ⅱ 과목 안에 들어있는 기하‧벡터에 관한 내용이 2012학년도 수능에 반영되는 7차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기하와 벡터’라는 별도 과목으로 신설되고, 현재 대다수 수험생(가형 응시자의 96% 이상)이 가형 선택과목에서 ‘미분과적분’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단원별로 비교해봐도 현행 수리 가형 범위에서 ‘일차변환과 행렬’이라는 단원만 새로 추가되는 등 거의 그대로다.

이 역시 당초 계획안에서 개편의 폭을 최소화한 조치다.

지난 9월 18일에 있었던 공청회 때만 해도 평가원은 ‘적분과 통계’와 ‘기하와 벡터’에 대해 ‘두 과목 모두를 출제범위’로 하는 안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자칫 입시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으로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교과부는 두 과목 모두를 필수로 지정해 결과적으로 현행 출제범위와 거의 대등하게 맞추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 문과생도 미적분 공부해야

반면 문과생이 주로 응시하는 ‘수리 나형’은 평가원이 지난 9월 발표한 바대로 ‘미적분과 통계 기본’ 과목을 추가해 출제범위가 확대된다.

당시 평가원은 “문과생의 수학 실력을 올리고, 수학에 자신이 없는 이과생이 나형을 보고 이공계열로 진학하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수리 나형은 2005학년도 수능부터 미적분이 빠진 수학Ⅰ과목만 출제하고 있어 수학Ⅰ‧수학Ⅱ‧미분과적분 등을 범위로 하는 가형보다 학습량은 절반에 못 미치고 내용도 쉽다. 수험생 입장에서 가형 대신 나형을 선택하면, 수험 부담도 줄이고 성적도 몇 등급은 올릴 수 있다.

이에 상당수 이과생이 나형을 응시하고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적지 않은 대학이 가형 선택자에 가산점을 주고 있지만, 나형을 선택해 상승한 점수가 가산점을 뛰어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7년도 전국 77개 4년제 대학의 공대 정시 합격자 중 60% 이상이 수리 나형을 응시하고 입학한 학생이었다.

평가원이 9월 발표한 올 수능 원서접수 결과에도 이 같은 현상은 고스란히 반영돼 전체 58만 8000여 명 응시자 중 12만 6000여 명(21.5%)이 가형을 선택한 반면 나형 선택율은 71.4%로 가형의 3배가 넘었다. 과학탐구를 선택한 학생이 19만 60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약 7만 명의 이과생이 가형 대신 나형을 선택한 것이다.

교과부 대학자율화팀 관계자는 “나형에 포함될 미적분 내용은 이과생이 공부하는 미적분보다 기초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며 “미적분이 새로 추가된 대신 기존 수학Ⅰ 과목에 포함된 ‘순열과 조합’ 단원은 빠진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행정예고 결과를 바탕으로 ‘수능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달 말까지 수능 개편 최종 확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

장보고호의 대양도전기③…“시계 필요 없어요”

비상식량으로 매일 연명…무료함과 사투

2008년 12월 15일
 

선상 생활은 어지간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보고 호의 서너 평 남짓한 생활공간에서 남자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다. 불현듯 밀려드는 ‘지루함’도 참기 힘든 선상의 일상이다. 그저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애써 머리를 텅 비우는 것 빼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아침 7시, 기상

장보고 호의 아침은 7시부터 시작된다. 한 달이 넘는 항해를 하다보니 이제는 알람시계를 맞추지 않아도 자연히 눈을 뜨게 된다. 사실 장보고 호 선실에는 시계가 없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시계는 어쩌면 그저 사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머리를 깎지 못해 덥수룩해진 머리를 손으로 가라앉히며 권영인(47) 박사는 “파도라도 높게 치는 날이면 기상 시간은 더 앞당겨 진다”고 했다. 어른 한 명 겨우 누울 정도 크기의 한 평이 채 안되는 선실에서 매일처럼 토막 잠을 잔지도 벌써 한 달여. 기지개조차 펴지 못하는 키 작은 선실을 나서는 권 박사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흘러나온다. 맞은편 송동윤 씨의 선실에서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들린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 벌써부터 힘들게 만든다.

아침 세수나 양치질은 건성일 수밖에 없다. 물은 배에서 연료보다도 더 몸값이 높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배에 딸린 물탱크 들어있는 18갤런의 물로는 채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다. 당연히 샤워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다. 집에 있을 때는 매일처럼 샤워를 했던 송 씨로서는 못 씻는다는 것만큼 참기 힘든 일은 없다. 그나마 시설이 좋은 ‘마리나’(선착장)에나 들어가서야 따뜻한 물로 피곤한 몸을 달랠 수 있다. 취재진이 가져온 물 티슈 봉지를 건네자 송 씨의 얼굴이 순간 활짝 핀다.




●‘김치볶음, 쇠고기, 또 김치볶음, 쇠고기’

아침 8시, 장보고 호의 연구실이자 거실, 식당으로 쓰이는 중앙 선실 테이블 앞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오트밀 죽과 비스킷. 코펠에 들어있는 작은 밥그릇에 오트밀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살짝 부으면 죽이 금방 완성된다. 어려운 물 사정은 메뉴에 그대로 반영된다.

두 사람은 밥그릇을 입으로 ‘호호’ 불며 숟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비스킷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후루룩 후루룩’ 숟가락질 서너 번에 금방 밥그릇 바닥이 드러났다. 동윤 씨가 ‘대선배’를 위해 페트병 물을 조심스럽게 따른다. 전날 선착장 인근의 호텔 수도꼭지에서 받아온 것이다. 당일 항해 일정을 논의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항해가 거듭되면서 동윤 씨는 아침을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원래 아침을 잘 안 먹지만 입맛을 점점 잃어간다”고 했다.

점심과 저녁 메뉴도 거의 바뀌지 않는다. 메뉴는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 동결 건조된 군용 비상식량을 민수용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종류는 ‘김치볶음밥’과 ‘쇠고기덮밥’ 달랑 2개뿐. 권 박사는 약 100일치에 가까운 비상식량을 배에 실었다.

때때로 찰고추장이 떨어진 입맛을 돋운다. 미국에서 준비한 플라스틱 4통 분량의 김치는 벌써다 시어 꼬부라졌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냉장고 가동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딱 김치파전 부쳐 먹으면 좋을 만큼 시큼한 냄새가 냉장고 안에 가득했다.



장보고 호의 공식 주방장이라고 밝힌 동윤 씨는 요즘 들어 별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정된 재료, 한정된 물, 한정된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는지 동윤 씨의 손맛은 날로 ‘일취월장’하고 있다. 영양보충을 위해 준비한 미국산 꽁치 통조림과 스팸 통조림, 신 김치, 간 마늘, 비상식량에 들어있는 된장 가루가 재료의 전부다.

어쩌다 항구에 입항하는 날이면 간단한 야채 한 두 개가 더 추가된다. 선실 한 쪽에 마련된 싱크대에서 된장국의 간을 보고 있는 동윤 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권 박사는 “보기만 해도 정말 대견하다”고 했다.

● 생리현상 펌프질로 해결

불편한 것은 샤워와 식사 뿐 만이 아니다. 좁은 배 안에서 매일매일 꼭 찾아오는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생리현상을 해결하러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매번 진풍경이 펼쳐졌다.

장보고 호에는 선실 한 쪽으로 샤워실 겸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변기 한쪽으로는 펌프 손잡이가 달려있다. 펌프의 압축력을 이용해 오물을 내려 보내고 세척용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다. 오물은 보관 탱크에 모아놓았다 항구에서 버리기도 하지만 큰 바다로 나서면 그대로 내보내기도 한다.

물을 아끼기 위해 변기를 씻어낼 물은 바다에서 끌어온다. 이 때문에 볼 일을 다보고 나서는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30~40번씩 펌프질을 해야 한다. 두 사람은 이미 체질이 돼 버린 모양이지만 처음해보는 사람은 이마에 땀이 맺힐 때까지 펌프질을 해야 했다.
장보고 호에는 이밖에도 ‘제2의 화장실’이 있다.

배 뒤에 있는 계단이 바로 그것이다. 권 박사는 “자연의 힘으로 충분히 자정이 가능하다”며 “배 운항 중에 여유가 없을 때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흔들리는 계단 끝에 매달려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일은 보는 사람도 짜릿하다.




●노트북 디지털 현미경으로 꾸민 한 평 연구실

장보고 호의 실험실은 권 박사의 개인 선실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긴 싱크대 모양의 작고 소박한 실험대에는 책 몇 권, 권 박사의 개인 컴퓨터, 디지털 현미경이 올려져 있다. 권 박사는 이곳에서 매일 밤 일기를 쓰고 그날 항해 일지를 정리한다.

닻을 내리고 정박한 날에는 배 뒤편에 설치한 센서를 내려 메탄과 이산화센서를 측정하기도 한다. 섬에라도 상륙한 날이면 모래톱에서 가져온 샘플을 살펴본다. 그랜드바하마 북서쪽 샌드케이의 모래톱에서 가져온 토양 샘플을 살펴보던 권 박사는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정리를 꼭 해두려고 한다”고 했다.

장보고 호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지 못했다. 미국동부운하를 따라 내려오면서 바닷물과 대기 중에 섞인 메탄과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을 뿐이다. 초보 선장과 선원에게 항해와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보고 호는 11월 20일 미국을 떠나기 전 여섯 상자 분량의 자료를 버렸다. 카타마란 형 요트는 가벼워야 빠른 속도를 낸다. 큰 바다에서 속도를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국 무게가 많이 나가는 짐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권 박사는 일부 자료를 제외하고 탐사를 떠나기 전 산 책과 도서관에서 복사해온 자료를 모두 처분했다. 그렇다고 배와 두 사람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항해 장비들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기와 바닷물에 녹아 있는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를 측정하는 컴퓨터도 출항 1주일 만에 고장을 일으켰다. 배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흔들림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진동은 정교한 전자장비의 천적이다.

● 밤 9시면 하루 일과 끝

장보고호 저녁은 일몰과 함께 시작된다. 요즘 들어 낮 길이가 짧아지면서 식사시간은 더 앞당겨졌다. 장보고호의 유일한 동력원은 태양광 발전기와 풍력발전기. 하루 온종일 전기를 만들어도 장보고 호의 전력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해가 진 뒤 2~3시간이면 전기를 꺼야한다. 권 박사가 하루 일지를 정리하는 동안 동윤 씨도 자신의 일기를 써내려간다.

“이곳에서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회가 주어지면 어디 기고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정리 정돈을 잘 하는 동윤 씨의 선실은 한 달 가까운 선상 생활에도 비교적 깔끔했다. 어스름한 불빛 아래로 한쪽으로 책들이, 겨울과 여름옷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가져온 MP3플레이어는 충전이 여의치 않아 무용지물이 된지 꽤 됐다.

섭씨 20씨 안팎의 카리브해 지역이지만 밤바다 날씨는 꽤 쌀쌀했다. 채 10시가 되기도 전 동윤 씨가 선실 불을 끄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권 박사도 일찌감치 침낭속에 들어갔지만 이날 역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파도가 크게 치는 날이면 신경이 쓰여 잠을 잘 수 없어. 무슨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면 나가봐야하고. 잠을 자는건지 마는건지..." 이따금씩 배 바닥을 때리는 파도 소리만 불 꺼진 선실 안을 무겁게 맴돌았다. (계속)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장보고호의 대양도전기②…“사라진 섬을 찾아라”

맹그로브 숲 해안가 황폐화 속도 빨라져

2008년 12월 11일
 



권영인 박사가 지난달 24일 그랜드바하마 북서쪽 우드케이 섬에서 황폐화된 맹그로브 숲을 살펴보고 있다.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 kunta@donga.com


“어? 이상하네. 섬이 없어요. 지도에 있어야할 섬이. 허리케인에 쓸려 나간 모양입니다.”

지난달 25일 오전 10시. 조타석에 앉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모니터를 보며 방향타를 잡고 있던 권영인 박사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권 박사의 옆에서 수심을 확인하는 송동윤 씨도 어리둥절한 표정이긴 마찬가지.

25일 장보고호는 산호와 맹그로브 나무의 생태를 점검하기 위해 섬의 북서쪽 끝에 있는 샌드케이 섬으로 향했다. 두 시간 남짓 주 돛과 보조 돛을 펴고 미끄러지듯 바다를 달린 장보고 호 선수(船首)에 멀리 섬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뒤 GPS 모니터에 알쏭달쏭한 화면이 떴다. 지도상에 나타난 섬 위로 장보고 호가 지나는 모습이 포착된 것.

권 박사는 “최근 이 지역 섬의 지형이 크게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장보고호의 GPS에 넣은 지도 메모리는 10년 전 제작된 것이었다. 10년 사이에 뭔가 큰일이 일어난 셈이다.



24일 권영인 박사가 우드케이 섬 생태계를 탐사하기 위해 북쪽 바닷가로 상륙하고 있다.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망원경 너머로 멀리 야자수 두 그루와 작은 맹그로브 숲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도에 나타난 섬 크기는 지금보다 5배가 훨씬 넘는 듯 했다. 투명한 코발트색 바다 위로 하얀 햇살이 쏟아지며 바닥의 해초와 산호가 마치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어른거렸다.

권 박사는 곳곳에 도사린 암초와 산호를 피해 조심스럽게 배를 모래톱 가까이로 몰아갔다.

“앗!” 권 박사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수심 8피트를 가리키던 수심계가 변덕을 부리더니 갑자기 3피트를 가리켰다. 뒤를 보니 방향타와 추진 프로펠러도 모래톱에 단단히 처박혔다. 방향타와 프로펠러가 바닥에 걸리면 끝장이다. 자칫 배가 큰 파도에 부딪혀 밀리면 그대로 좌초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숨 막히는 위급 상황. 난파의 위기감이 배를 엄습했다. 신속하게 닻을 다시 올리고 배를 후진시켜야 했다. 동윤 씨가 배 앞머리로 뛰어나가 닻을 들어올리는 동안 권 박사는 조심스럽게 후진 엔진을 돌려 배를 섬 바깥쪽으로 뺐다. 잠시 뒤 배는 모래톱을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배와 섬 사이의 거리는 100여m. 이제는 상륙이 문제다. 권 박사와 촬영팀은 장보고호에 있는 카약과 구명조끼를 이용하기로 했다. 권 박사는 사물함에서 부삽과 토양 샘플을 넣는 코어 채취 장치를 꺼내 노란 배낭에 넣었다. 짧은 쇠파이프 형태의 코어 장치를 모래톱에 40~50cm 깊이로 꽂으면 최근 수년간 섬에 쌓인 퇴적물 성분 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

권 박사가 카약을 몰고, 이성환 PD와 김태곤 감독이 카약 뒤에 매달려 물장구를 치기로 했다. 동윤 씨는 수심 확인을 위해 배에 남기로 했다. 한국보다 훨씬 남쪽이지만 카리브해의 겨울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할퀴고 깨진 흔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다 한가운데 말라 죽은 맹그로브 나무 등걸이 을씨년스러움을 한껏 더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섬 안팎은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맹그로브 숲과 해안 퇴적물들이 모두 깎여나간 상태였다. 카약에서 내려 섬으로 다가서니 바닷가에 폐허가 된 계단과 사람이 살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허리케인으로 숲과 함께 사람들의 삶의 터전마저 사라지자 섬을 버리고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것이다. 권 박사의 얼굴에 씁쓸함이 번져나갔다.



허리케인의 습격으로 황폐해진 우드케이섬의 맹그로브 숲.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전날인 장보고호 탐사대는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24일 장보고 호는 그랜드바하마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우두케이 섬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서쪽 바닷가에 죽은 맹그로브들이 흉측한 몰골을 드러낸다. 2004년 이 지역에 불어 닥친 허리케인은 바하마 서쪽 섬들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자신을 ‘칼’이라고만 소개한 한 어부는 “이 섬도 원래 맹그로브 나무들이 무성했는데 최근 잇따른 허리케인으로 인해 모두 파괴됐다”고 말했다.

짠 바닷물에서도 살 수 있는 맹그로브는 해안가 침식을 막아주고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 외에도 해안 생태계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맹그로브 나무가 죽자 섬의 침식 속도도 점차 빨라지게 됐다.



지난달 25일 그랜드바하마 서북쪽에 위치한 샌드케이 섬에 상륙하기 위해 카약을 타고 접근하고 있다.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 kunta@donga.com

섬 곳곳에서는 죽은 소라와 고동 껍데기기 무더기로 발견됐다. 나무가 사라진 숲 속에서는 깨진 술병과 사람이 먹다버린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소라를 비롯한 해양 수산물의 남획과 환경 파괴 문제는 바하마가 최근 겪고 있는 심각한 환경 문제이기도 하다.

한동안 바닷가 곳곳과 숲 속을 살펴본 권 박사는 해변에서 모래 코어를 채취해 배로 가지고 돌아왔다. 주 성분이 규소인 한국의 모래와 달리 이곳의 모래는 부드러운 석회질 가루로 이뤄져 있다.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이날 밤 웨스트엔드 선착장으로 돌아온 장보고호 선실 한 켠에 마련된 임시 실험실에서는 이날 채취한 모래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이 진행됐다.(계속)



24일 권영인 박사가 우드케이 섬에 상륙한 직후 모래 코어를 채취하고 있다.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권영인 박사가 우드케이섬 서쪽 해안가에서 파도와 바람에 깎여나간 바위를 살펴보고 있다.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황폐해진 맹그로브 숲 곳곳에서 발견되는 버려진 술병.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 kunta@donga.com



25일 송동윤 씨가 해질녘 샌드케이섬 탐사를 마치고 웨스트엔드 선착장으로 귀환하는 동안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랜드 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장보고호의 대양도전기①…집 채 만한 파도와 싸우다

하루종일 멀미…거센 바람과 맞서며 첫 기항지 바하마 도착

2008년 12월 09일
 

동아사이언스와 동아일보는 신문과 방송, 잡지, 인터넷을 통해 장보고호 탐사대의 활동과 탐사 결과 등을 보도하는 한편 2009년 초부터 연말까지 탐사의 전 과정을 모두 4편의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도로 새해 1월초 방영될 ‘1편 카리브 해의 산호초 생태 및 지구 환경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11월 22일부터 12월 4일까지 장보고호에 승선해 동행 취재를 했습니다.
이번 취재에는 동아사이언스와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아프가니스탄 분쟁 지역 취재로 잔뼈가 굵은 프리랜서 카메라맨 김태곤 감독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입체영상 전문회사 미라큐브의 장비 지원으로 국내 매체사상 처음으로 입체 카메라로 생생한 탐사 현장을 담아 왔습니다. 더사이언스는 장보고호와 권영인 박사, 송동윤 대원의 활약을 10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권영인 박사가 장보고호 조타석에 앉아 배를 조종하고 있다. 바람의 힘으로 가는 장보고호에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 최대 시속 15km로 항해할 수 있는 엔진이 달려 있다.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생전 처음으로 집 채 만한 파도를 봤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어요. 이러다 정말 죽는가 싶었어요.”

진화론 창시자 찰스 다윈이 177년 전 탐험한 경로를 따라 북미와 중남미,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탐험에 나선 장보고호가 지난달 20일 영연방 바하마의 최북단 ‘그랜드바하마’ 서쪽 연안에 도착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팜비치 항을 떠난 지 꼬박 하루만이다. 이른 아침 항구를 떠난 장보고호는 동남쪽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그러나 얼마 못가 뜻밖의 장벽을 만났다. 멕시코 만에서 미국 남동부 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강한 ‘걸프스트림’과 북서풍이 부딪혀 만들어낸 거친 파도를 만난 것. 연안에서 벗어나 처음 맞닥뜨린 자연의 힘은 상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장보고호 돛대보다 훨씬 높은 파도와 싸우며 꼬박 하루를 시달렸다. 미국 동부에서의 42일간의 워밍업을 끝내고 본격적인 항해에 앞서 치른 신고식치고는 혹독했다.

권영인 박사의 대학 동아리 후배이자 강동균 대원을 대신해 11월초부터 항해에 합류한 송동윤 씨(20·연세대 1년 휴학)도 한나절을 침대 신세를 져야 했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심한 배 멀미가 찾아온 것. 유일한 처방은 배에서 내리는 길 밖에 없지만 육지에서 멀어진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권 박사가 온종일 키(방향타)를 잡아야 했다.



장보고호 유일의 선원이자 주방장인 송동윤 씨가 장보고호의 앞 머리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송 씨는 올해초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이다.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장보고호는 배 두 척을 널빤지로 이어 만들어서 높은 파도에도 잘 뒤집어지지 않아요. 마치 낙엽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요트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배 두 척을 이어 붙인 ‘카타마란’ 형과 가운데 부분이 물에 깊게 잠기는 ‘모노홀’ 이다. 장보고호는 이중 카타마란에 속한다. 카타마란이 수심이 얕은 연안을 누비기 좋은 연안 형이라면 모노홀은 대양항해에 더 적합한 형태에 속한다.

42일간 미국 동부운하를 통과하는 워밍업 기간 동안에도 장보고 호는 갖은 사건 사고를 겪어야만 했다. 한해 평균 운항시간이 고작 몇 시간 될까 말까한 신출내기 선장과 선원에,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값싼 항해 장비는 결국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다. 제작된 지 10년이 넘은 위치정보시스템(GPS)은 그동안 바뀌어버린 세상 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랜드바하마 섬 서쪽 웨스트엔드의 한 선착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보고호.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항구를 떠난 지 겨우 1주일 만에 돛대가 다리에 부딪혀 부러진 것도 GPS가 ‘고정교’와 ‘가동교’를 구분하지 못한데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미국동부운하(ICW)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다리를 한데 모아놓은 거대한 다리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장보고호는 ‘보험’조차 들지 않았다. 자칫 한대 10억 이상 씩 하는 고급 요트와 부딪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큰 낭패를 볼 상황이었다. 항해를 거듭할수록 심기가 점점 날카롭게 바뀌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22일 늦은 밤 온통 적막으로 감싸인 그랜드바하마 프리포트 국제공항에서 만난 권 박사는 지친 기색을 가급적 내비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한국을 처음 출발할 때도 마른 체형이던 권 박사는 40여일의 항해 기간 동안 더 부쩍 말라 있었다.

취재에 동행한 이성환PD가 “형님 그동안 많이 말랐네”하며 반갑게 농을 던지자 “이제 허리띠 구멍이 2개나 더 채워진다”며 권 박사가 웃으며 받아친다. 이 PD는 지난 10월 장보고 호가 첫 출항에 나섰을 때부터 권 박사와 깊은 친분을 쌓아왔던 터였다.

“다이어트 효과는 정말 만점이던데요. 먹어도 살로 안가고 바로 빠져요. 저도 벌써 구멍 하나 줄었어요.” 옆에서 있던 송 씨가 붙임성 있게 말을 보탠다. 고된 선상 생활을 얼핏 짐작하게 만든다.

장보고호는 이틀 전 한국에서 온 취재팀을 마중하기 위해 섬 서쪽 끝에 있는 선착장에 입항했다. 바하마 서쪽 해안은 2004년과 2005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곳을 할퀴고 간 허리케인에 큰 피해를 당했다. 평균 풍속 70km의 거센 바람과 산더미 같은 파도는 미국인들이 평생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카리브해 연안의 작은 파라다이스를 한 순간에 파괴했다.

공항에서 섬 서쪽 끝의 선착장까지 가는 차 안에서 보는 차창 밖 풍경은 한층 더 무겁게 다가왔다. (계속)



바하마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그랜드바하마섬 서쪽 끝 지역인 웨스트엔드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그랜드바하마 서쪽 지역은 최근 잇따른 허리케인에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동아사이언스, 동아일보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이 그랜드바하마 인근 무인도 촬영을 위해 모터보트에 올라타고 있다.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이성환PD와 김태곤 촬영감독(앞쪽).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kunta@donga.com


그랜드바하마=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포토]외계 행성, 생명체 존재 단서 발견

기사입력 2008-12-10 11:04 | 최종수정 2008-12-10 12:06

남극, 갈라파고스보다 많은 생물이 산다

영·독 공동조사단 1224종 야생동물 목록 공개

2008년 12월 08일
 

남극대륙에 사는 야생동물 1224종의 목록이 최초로 공개됐다. 영국 남극조사단과 독일 함부르크대 연구팀은 영국의 쇄빙선 제임스클락로스호를 타고 7주 동안 남극 일대의 생태 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알려진 갈라파고스 지역보다 더 많은 생물종을 발견했다. 이번 탐사에서 쥐며느리와 이끼처럼 생긴 동물을 포함해 새로운 5종의 생물을 찾아냈다.

이들은 남극대륙의 야생동물 목록을 완성하기 위해 100년 전 기록된 야생동물의 서식처까지 면밀히 조사했으며 육지 인근 수심 1500m까지 내려가 해양동물의 생태를 살폈다.

연구단을 이끈 영국 남극조사단의 데이비드 바네스 박사는 “남극대륙은 지구에서 기후변화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다”며 “이곳에 사는 동물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는 지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 인류의 생존에 직결된다”고 말했다.


크렙이터해표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턱끈펭귄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황제펭귄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거대한 해면동물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검은이마알바트로스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물개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바다거미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불가사리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나그네알바트로스


사진 제공 영국 남극조사단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symbious@donga.com

인생 마라톤



인생은 종종 마라톤에 비유된다.

특히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결승점까지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경쟁자들은

계속 달린다. 내가 넘어지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그러나 마라톤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인생에서는

1등이 딱 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라톤에서는 기록이 가장 빠른 사람만

1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누구나 1등이 될 수 있다.



- 김영식의《10미터만 더 뛰어봐》중에서 -

 진짜 근육같은 인공 근육 만든다
생체근육연구단 김선정 교수

김선정 생체인공근육연구단장
“상어는 어떻게 빨리 헤엄칠 수 있을까?”
과학자의 궁금증은 상어의 피부를 모방한 전신수영복 ‘레이저 레이스’를 탄생시켰다. 북경 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착용했던 그 수영복이다.

이처럼 생물체의 신비를 모방한 새로운 공학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벌집의 육각형 구조를 모방한 자동차의 충격흡수장치, 벽을 기어오르는 도마뱀의 발바닥 모양을 모방한 접착제 등은 이미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살아있는 생물체의 구조나 기능을 밝혀 공학적으로 활용하는 학문인 생체모방공학은 더 넓은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한양대 생체공학전공 김선정 교수가 이끄는 생체인공근육연구단은 인간의 근육을 모방하는 연구로 이 분야의 세계적 연구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노기술과 의학의 융합

인공근육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수십 ㎛(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크기의 세포를 조작하려면 그보다 작은 것을 다룰 수 있는 나노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2000년 미국 클린턴 정부가 나노기술에 적극 지원하면서 인공근육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인공근육 연구에서 외국은 초소형 로봇과 같은 산업적인 활용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를 가하면 구부러지는 ‘EAP’라는 고분자 물질을 이용해 초소형 비행체나 산호초와 같이 생긴 로봇을 개발한 상태다.

이에 비해 김 교수가 이끄는 연구단은 산업적 활용과 동시에 의학 분야를 염두에 뒀다. 생체에 바로 사용될 수 있는 생체인공근육 연구에 주목한 것이다. 연구단은 현재 서울의대 생리학 교실과 함께 의학과 공학의 융합을 이뤄가고 있다.


생체에 적합하고 늘어났다 줄어드는 물질을 찾아라

(a)DNA가 탄소나노튜브를 감고 있는 모습 (b)이 물질에 전기자극을 주면 수축 또는 이완한다
연구단은 인간의 근육 중 팔다리에 있는 골격근을 모방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료를 찾는 것이 가장 먼저다. 의학적으로 활용하려면 우리 몸에 사용해도 안전하고 독성없는 물질 중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자극을 줬을 때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성질도 필요하다.

이런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물질을 찾다보니 콘택트렌즈에 사용되는 하이드로젤이 떠올랐다. 하이드로젤은 온도나 산성도(pH) 같은 환경이 변하면 부피도 따라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압력이 클수록 부피 변화가 적은 특성도 있었다.

연구단은 특정 pH 조건에서 하이드로젤을 수축시킨 뒤 압력을 제거하면 다시 팽창하지 않고 오히려 더 수축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하이드로젤의 수축현상을 이용하면 미세로봇의 구동장치에 정밀성을 높일 수 있다. 이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2006년 게재됐다.

또한 DNA가 탄소나노튜브에 자연적으로 감기는 성질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물질도 만들었다. 이 물질에 전기자극을 주면 수축 또는 이완한다는 사실을 밝혀 재료과학분야의 권위적인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올해 2월 발표했다.

연구단은 DNA의 물리적 구조를 바꾸어 물에서도 풀어지지 않고 실타래처럼 뭉치는 현상도 발견했다. 이 덩어리가 pH에 따라 수축하거나 이완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국제화학학술지 ‘안게반데케미’에 올해 3월에 소개했다.


인간의 근육을 보완, 대체할 수 있어

연구단은 여전히 생체인공근육으로 사용할 물질을 찾고 있다. 여러 성과물이 나왔지만 보다 좋은 물질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개발된 물질도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특히 생체를 모방한 물질인 만큼 의료용 기구에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눈 안에 나쁜 물질이 쌓이는 녹내장 환자에게 생체인공근육물질을 주머니처럼 달아주면 눈의 압력을 조절하는 펌프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센서나 초소형 구동장치 등에 생체인공근육의 활용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다.

연구단은 개발한 물질이 몸 속에서 직접 에너지원을 얻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우리 몸은 밥이나 빵을 먹어서 포도당을 얻는다. 소화효소가 포도당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전자가 나오는데 연구단은 이것을 에너지원으로 삼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연구하고 있다.

연구단의 최종 목표는 실제근육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인공근육을 개발하는 데 있다. 인간의 근육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 사고나 질병으로 손상된 근육 부위에 쓰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조로봇, 인공 촉감 장치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할 수 있다.


● 김선정 교수 약력

1994년 한양대학교 공학박사
1995년~2001년 산재의료관리원 재활공학연구센터 책임연구원
2002년~2005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 연구부교수
2004년~2005년 미국항공우주국 랭글리연구센터 초빙연구원
2005년~현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전기제어생체공학부 부교수
2006년~현재 생체인공근육 창의연구단장


생체인공근육연구단은?

생체인공근육연구단
생체인공근육연구단은 실제 근육에 이용할 수 있는 인공근육물질을 만들고 있다. 이 물질이 체내에서 에너지원을 얻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나노바이오 연료전지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연구단의 최종 목표는 인공근육이 몸 속의 진짜근육과 잘 어울리게 하는 ‘생체인공근육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있다.

연구단은 박사후연구원 1명, 석사과정 4명, 박사과정 6명, 행정원 1명으로 구성돼 있다. 학부 때 생리학, 화학, 물리학을 전공한 학생부터 기계공학, 전자공학, 화학공학을 전공한 학생까지 서로 전공이 다른 사람이 함께 모여 생체공학을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김 교수는 서로 다른 전공이라는 상황을 적극 활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수시로 열리는 연구 세미나. 각 분야의 관점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조율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독창적인 결론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체공학은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것인 만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이다. 구성원 중 아무나 붙잡고 생체공학을 왜 공부하냐고 물어봐도 하나같이 그 매력에 빠졌다고 답한다.

그래서 김 교수는 연구원들에게 강요하거나 다그치는 법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온 만큼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격려한다. 지금도 잘 하지만 뚜렷한 목표와 열정이 있을 때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전과 열정. 두 낱말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글/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2008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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