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ActiveX 개체 실행 방지

악성 ActiveX 개체 실행 방지
- SandboxIE와 MS Killbit의 활용


개요

온라인 상의 보안 위협은 점차 지능적이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보안 위협 중 악성소프트웨어는 항상 이슈화되어 왔다. 악성소프트웨어는 ActiveX 형태로 사용자의 실수 또는 동의 없이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호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용자가 어떻게 하면 ActiveX를 통해 설치되는 악성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좀 더 안전하게 컴퓨터 보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사용되는 도구]
- SandboxIE v2.64
- ActiveX Compatibility Manager v1.00

1. SandBoxIE 소개
SandboxIE는 실행 가능한(읽기/쓰기) 가상의 환경 내에서 운영체제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응용프로그램, 시스템 파일, 레지스트리 등을 실행 할 수 있다. SandboxIE를 통해 실행된 임의의 프로그램들은 SandBoxIE내 생성된 가상의 드라이브에만 영향을 미치며 실제 하드디스크에는 데이터 쓰기가 제한되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림 2]는 SandboxIE에 대한 개념을 잘 보여준다.


[그림 1] 일반적인 프로그램 실행 시 데이터 흐름



[그림 2] SandboxIE 환경 내에서 프로그램 실행 시 데이터 흐름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SandboxIE를 통해 인터넷 서핑 중 사용자도 모르게 악성소프트웨어가 설치되었다고 하더라도 단지 SandboxIE의 가상 공간에만 데이터가 쓰여지기 때문에 실제 시스템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테스트를 위해 SandboxIE에서 메모장을 실행하여 문서를 작성한 후에 실제 시스템에서 확인해 보면 해당 문서가 생성되지 않음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SandboxIE 환경에서 실행된 응용프로그램은 [그림 3]과 같이 제목 표시줄을 통해 구분’[#]’할 수 있으며, SandboxIE를 통해 가상 공간에 생성된 모든 데이터는 [그림 4]의 메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 SandboxIE 환경 내 실행된 Internet Explorer



[그림 4] SandboxIE 환경 내 가상 저장 공간 확인


2. Microsoft Kilbit을 이용한 ActiveX 개체 실행 방지(With SandboxIE)

위에서 소개한 SandboxIE v.2.64를 다음 사이트(http://www.sandboxie.com)에서 다운받아 설치 한 후 ActiveX 개체의 실행을 방지해 보도록 하자.
먼저 Microsoft Killbit에 대해 알아보자. Killbit은 Internet Explorer HTML 렌더링 엔진을 사용하여 ActiveX 개체가 로드 되는 것을 막는 보안 기능이다. Killbit은 레지스트리 설정을 통해 수행되며, 일단 Killbit을 설정하면 ActiveX 개체가 완전히 설치되었어도 실행되지 않는다.
MS Killbit을 설정하기 위해선 먼저 실행을 방지할 ActiveX 개체의 Class ID (CLSID, 클래스 식별자) 값을 알아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SandboxIE를 활용하여 의심되는 ActiveX 개체가 직접 시스템 설치되는 것을 막고 CLSID값을 확인할 것이다. CLSID(or GUID) 값을 확인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SandboxIE에서 직접 확인하도록 할 것이다.
그럼 SandboxIE의 메뉴에서 [Function]?[Run Sandboxed]?[Internet Explorer]를 클릭하여 IE를 실행하자. 테스트를 위해 Adobe Flash Player 9 ActiveX를 예로 설명할 것이며 현재 시스템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림 5] SandboxIE 환경에서의 ActiveX 설치


설치를 완료한 후 SandboxIE 메뉴에서 [Function]?[Content of Sandbox]?[Explore Contents]를 선택한다. 일반적으로 설치된 ActiveX 개체는 “C:\WINDOWS\Downloaded Program Files”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가상 공간에서의 해당 경로에 설치된 파일을 확인한 후 [그림 6]과 같이 CLSID(=GUID) 값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림 6] SandboxIE에서 ActiveX CLSID 확인


이제 CLSID값을 가지고 Killbit을 설정하여 보자. Killbit 설정은 매우 간단하다. Killbit이 설정될 레지스트리의 위치와 설정 순서는 아래와 같다.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Internet Explorer\ActiveX Compatibility\CLSID

(1) 레지스트리 편집기 (regedit.exe) 실행
(2) 위 레지스트리 위치에서 실행 중지할 ActiveX 개체의 CLSID값을 키로 생성
(3) Compatibility Flags 를 생성하고 DWORD값을 0x00000400으로 설정



[그림 7] 실제 Registry에서의 Killbit 설정


아래 [그림 8]은 Killbit이 설정된 ActiveX 개체가 응용프로그램 실행 시 실제 호출되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8] IE에서 ActiveX 미 호출


[그림 9]은 ActiveX 개체의 Killbit을 간편하게 설정할 수 있는 자동화된 도구이다. 위 과정이 힘들다면 아래 도구를 이용해도 좋을 것이다. ActiveX Compatibility Manager v.1.00은 다음 사이트(http://www.nirsoft.net/utils/acm.html)에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다.


[그림9] ActiveX Compatibility Manager v.1.00


3. 요약
지금까지 SandboxIE라는 가상화 기술을 통해 실제 시스템에 ActiveX를 설치하지 않고 CLSID를 확인하여 kilbit을 설정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만일 여러분들이 악성소프트웨어를 분석하거나 의심스러운 파일 또는 전자메일을 확인하고자 할 때에도 SandboxIE 기술을 이용하여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확인 할 수 있으며, ActiveX 실행 중지 기법(Killbit) 을 통해 좀 더 안전하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4. 참고사이트
A. http://support.microsoft.com/kb/240797
B. http://www.sandboxie.com
C. http://www.nirsoft.net/utils/acm.html

[저자] 안랩코코넛 전략마케팅 / 기술기획 주임 유상준

[출처] 안랩코코넛 SECU-LETTER 2007년 1월호
내 컴퓨터의 부팅 속도를 빠르게

설치되어 있는 수많은 프로그램들과 설정해놓은 시스템 환경을 뒤로 한 채 컴퓨터에 Windows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한다는 것은 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하드디스크를 새로 포맷하고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한 뒤에 부팅되는 속도를 느끼고 나면 역시 다시 설치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빠른 부팅속도에 답답하게 기다리게 했던 모래시계 아이콘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하고 삭제하게 되는데 쓰면 쓸수록 다시 컴퓨터의 부팅 속도는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글에서는 컴퓨터의 부팅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악성 프로그램을 찾아서 제거한다.

일단 컴퓨터의 동작이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가장 먼저 바이러스나 웜, 스파이웨어와 같은 악성 프로그램의 영향이 아닐까라고 의심해 볼 수 있다. 시스템 설정이 임의로 변경된다든지 잘 실행되던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 오류가 발생한다든지 시스템 부팅시 또는 인터넷 사용 중에 광고 팝업 창이 뜬다면 악성 프로그램에 감염된 경우에 해당한다. 이렇게 사용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어떤 증상을 보여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악의적인 목적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이 몰래 설치되고 사용자 모르게 실행되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안티 바이러스, 안티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시스템에 악성 프로그램이 설치되지않았는지 주기적으로 검사하도록 하자. 또한 운영체제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악성 프로그램으로부터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어판] – [보안센터]에서 자동 업데이트 설정을 ‘자동(권장)’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다. 이는 Windows 운영체제를 최신 버전으로 유지하도록 해준다.


[그림 1] 자동 업데이트로 최신 버전의 운영체제를 유지한다.


2. 불필요한 시작 프로그램을 제거한다.

컴퓨터에 전원을 넣으면 BIOS에 의해서 간단한 시스템 검사가 진행되고, Windows 로고 화면이 보여진 뒤에 로그인 화면 또는 시작 화면을 거쳐서 컴퓨터 사용시 늘 마주하게 되는 바탕화면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바탕화면을 본 이후에도 마우스 커서는 모래시계를 유지하고 하드디스크는 계속 바쁘게 돌아가는 것을 흔히 접하게 된다. 부팅은 완료 되었지만 운영체제가 시작 되었을 때 또는 사용자가 로그인을 했을 때 실행되도록 등록된 프로그램들이 많은 경우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시작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요즘 제작되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운영체제가 시작되는 시점에 자동으로 실행되어서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형태로 많이 제작되는데 메신저 프로그램, 최신 뉴스를 알려주는 Linker 서비스, 각종 제품 업데이트 프로그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앞다투어서 실행되다 보니 운영체제 시작 시점에 많은 대기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작 프로그램에 어떠한 것들이 등록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유지하는 것이 좋다.

Windows에서 [시작] – [실행] 메뉴를 선택하고 ‘msconfig’라고 입력하면 ‘시스템 구성 유틸리티’가 실행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시작 프로그램’ 탭을 선택하면 다음과 같이 시작 프로그램으로 등록된 프로그램의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 시작 프로그램에는 꼭 필요한 것들만 등록한다.


‘명령’ 항목을 보면 실행하려는 프로그램의 경로와 파일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서 시작 프로그램으로 등록되지 않아도 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체크 표시를 해제하도록 하자. 시스템 경로에서 실행되는 파일의 경우 목록에서 해제할 경우 운영체제가 정상 동작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자. (최근 악성 프로그램이 운영체제의 시스템 폴더에 복사되어 실행되고 시작 프로그램에 등록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는데 일반 사용자의 경우 이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면 백신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제거하는 것을 권장한다.)

3. 하드디스크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어 있는 프로그램은 메모리로 읽어 들여진 후에 CPU에 의해서 해당 명령이 실행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하드디스크는 원판 모양의 디스크를 돌려서 필요한 정보가 저장된 위치를 찾아야 하는 물리적인 장치이다. 따라서 CPU나 메모리에 비해서는 매우 느린 저장장치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할 때 CPU를 높은 사양으로 올리는 것보다 보다 빠른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하드 디스크에는 수많은 폴더와 파일들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들 파일들이 모두 연결된 상태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다. 파일시스템 고유의 로직에 따라 저장될 위치를 정하게 되고 필요에 따라 일정 블록 단위로 나뉘어서 디스크에 저장되게 된다. 즉, 논리적으로는 하나의 파일이라도 실제로 하드 디스크 표면에는 여러 개의 단위로 나뉘어서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파일의 크기가 큰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많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최초에 하드 디스크를 포맷한 후에 운영체제를 설치하면 빈 공간에 파일이 저장되므로 비교적 관련된 파일들이 잘 정리된 상태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설치 및 제거하고, 여러 데이터 파일들을 만들고, 복사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내용들이 조각나게 된다. (이를 전문용어로 fragmentation 이라고 한다.) 만약 여러 개로 조각난 파일을 읽으려면 하드 디스크를 물리적으로 더 많이 이동시켜서 읽어야 하므로 그만큼 속도가 저하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Windows 운영체제에서는 ‘디스크 조각 모음’이라는 하드디스크 유틸리티를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탐색기에서 조각 모음하려는 대상 디스크의 [등록정보] – [도구] 메뉴를 선택하면 다음과 같이 조각 모음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그림 3] 디스크 조각 모음으로 조각난 디스크를 정리하자.


위 화면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공간이 하나의 파일이 여러 개로 조각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할수록 정상적임을 알려주는 파란색보다 붉은색 공간이 늘어가게 된다. 주기적으로 조각모음을 실시하여 디스크를 최적화 시켜주도록 하자.

그리고 운영체제의 부팅과 관련한 시스템 파일과 각종 프로그램 파일은 일반적으로 C 드라이브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최근에 P2P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대용량 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지우는 과정을 많이 반복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는 디스크를 조각내는 주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드라이브와 데이터 파일을 저장하는 드라이브를 분리하여 사용하는 것이 프로그램 실행 속도 저하를 방지하는데 좋다.

4. 바탕 화면을 정리한다.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바탕화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따라서 멋진 풍경 사진, 연예인 사진 등으로 꾸미고 더 나아가 최근에는 위젯 기능을 제공하는 각종 유틸리티를 설치해서 바탕화면의 여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하지만 바탕화면은 가장 많이 보여지는 만큼 운영체제의 속도에 영향을 주기도 하므로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책상 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어지럽혀져 있다면 그 속에서 원하는 책이나 필기도구를 찾기가 힘들듯이 바탕화면에 너무 많은 아이콘을 올려 두는 것은 사용하기도 어렵지만 부팅 속도를 느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 바탕화면에 등록된 각종 바로 가기와 파일들의 아이콘을 표시해주기 위해서 많은 작업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탕화면에는 꼭 필요한 아이콘들만 올려두도록 하자.

그리고 배경이 되는 바탕화면에 사진 이미지 파일을 주로 등록해서 사용하는데 이때 파일 크기가 큰 고화질의 사진을 이용하는 경우 이 또한 시스템에 많은 부하가 된다. 디지털카메라의 발전과 함께 몇 메가 이상의 고화질 이미지 파일도 손쉽게 구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런 파일을 배경화면으로 등록해놓으면 그만큼 시스템 속도가 저하되므로 자신의 모니터 해상도에 적절한 이미지 파일을 사용하도록 하자.

5. 닫는 글

이 외에도 인터넷 등을 통해 부팅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는 수많은 툴들, 그리고 민간요법처럼 알려져 있는 많은 팁들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사용자가 쉽게 할 수 있고 검증된 방법들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았다.

Windows XP 운영체제가 출시될 때 기존의 Windows에 비해서 매우 빨라진 부팅속도를 주요 기능으로 내세울 만큼 빠른 부팅 속도는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원하는 궁극적인 바램 중의 하나이다.

과연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우리가 TV 시청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컴퓨터의 부팅 과정을 빠르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 속도를 통해 짐작해보면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하리라 예상해 본다. 그 날이 온다면 컴퓨터는 현존하는 가전제품들을 모두 대체하고 안방에서 나와 거실에 자리잡게 될 지도 모른다.@

[저자] 안철수연구소 김순근 주임연구원, Microsoft VC++ MVP

[출처] 안철수연구소 2007-02-07
알아두면 편리한 윈도우 명령어

인터넷 연결에 문제가 생겨서 ISP 업체에 문의를 하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시작]-[실행] 창을 열어 ping을 쳐보라고 한다. 이 ping은 특정 네트워크와 통신이 되지는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이렇게 유용한 명령어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윈도우는 GUI(Graphics User Interface)를 적용해 그림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윈도우의 전신은 MS-DOS라고 불리는 운영체제로 현재의 그래픽 환경과는 달리 텍스트(text)로 명령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명령어는 현재의 윈도우 내부에 계속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을 콘솔(console)이라고 부른다. 텍스트로 명령을 내려야 하므로 상당히 직관적이며 사용법 또한 간단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러한 명령어들을 많이 알면 알수록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도움이 된다.

PING
Ping은 네트워크상의 특정 호스트가 통신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명령어다. 특정 호스트로 응답 요청을 보내면 해당 호스트가 네트워킹이 가능하다면 응답을 주므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항상 통신이 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한 ISP업체의 도메인 네임 서버(문자로된 인터넷 주소를 IP주소로 변경해주는 시스템)로 응답 요청을 보내면 나의 컴퓨터가 인터넷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용 방법은 “Ping [옵션] 대상호스트”이다. 실제 예제로 안랩의 한국 홈페이지인 home.ahnlab.com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한다. 만약 IP주소를 알고 있다면 직접 IP주소를 입력해도 무방하다.

ping home.ahnlab.com
ping 211.233.80.22

하지만, 일반적인 환경에서 ping 테스트는 4번만 하므로 지속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옵션 [-t]를 사용하여야 한다. 종료하기 위해서는 [Ctrl] + [C]를 눌러야 한다.

ping –t home.ahnlab.com
ping –t 211.233.80.22


[그림 1] ping home.ahnlab.com


SHUTDOWN
Shutdown은 말 그대로 윈도우를 종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명령어다. [시작] -> [컴퓨터 끄기]를 사용해 컴퓨터를 종료할 수 있지만, shutdown명령은 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또한 윈도우 종료 기능을 중지할 수도 있어, RPC 공격에 의해 윈도우가 갑자기 종료될 경우 추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어 유용한 명령어다. 다음은 shutdown을 통해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능들이다.

(1) 특정 시간 후 윈도우 종료하기
[shutdown –s –t 종료시간]을 입력함으로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종료시간은 초 단위이다.따라서 10분 후 종료하길 원한다면 [shutdown –s –t 600]을 적어주면 된다.


[그림 2] shutdown -s -t 600 -c "윈도우 예약 종료 시험"


(2) 윈도우 종료 중지하기
(1)에서와 같이 예약 종료를 실행했지만 부득이하게 종료를 중지 해야 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는 윈도우 보안 패치가 되어 있지 않을 경우 RPC공격을 통해 위와 같은 메시지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shutdown –a]를 입력함으로 종료 기능을 중지시킬 수 있다.

(3) GUI(Graphics User Interface) 환경으로 실행하기
(1), (2)와 같이 직접 입력하기 힘들다면 [shutdown –i]를 입력함으로 친숙한 GUI환경으로 예약 종료를 실행할 수 있다. 단, 이 경우 반듯이 [설명] 부분에 종료하려는 사유를 적어야 [확인]버튼이 활성화된다.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어려운 사용자들에겐 좋은 대안이 된다.


[그림 3] shutdown -i


이 이외에도 원격지 컴퓨터를 종료하는 기능등이 있지만, 일반적인 환경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는 기능이다.

IPCONFIG
Ipconfig는 TCP/IP 네트워크 관련 설정 사항을 확인하고 또 갱신할 수 있는 명령어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네트워크를 다시 설정하므로 윈도우를 재부팅 하지 않고도 네트워크 설정을 갱신할 수 있다. 네트워크 설정 사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하므로 가급적 명령 프롬프트에서 실행하는 것이 좋다. 방법은 [시작] -> [실행] -> CMD를 입력 후 [확인]버튼을 누르면 된다. 이때 실행되는 검은색 텍스트창이 바로 명령 프롬프트이다. 자주 사용되는 명령어는 다음과 같다.

(1) IP주소 설정 상태 확인
현재 나의 컴퓨터에 설치된 네트워크 장비에 할당된 IP주소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명령어는 [ipconfig /all]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네트워크카드 설명, 물리적으로 설정된 주소(네트워크카드의 맥 주소), DHCP(Dynamic Host Configuration Protocol – 동적 호스트 설정 규약) 여부, 할당된 IP 주소, 서브넷 마스크, 기본 게이트웨어, DNS 서버가 상세히 표기된다.


[그림 4] ipconfig /all


(2) 네트워크 연결 상태 해제/갱신
여러가지 이유로 네트워크 설정이 잘 못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 대부분 윈도우를 종료하고 다시 부팅을 한다. 하지만 ipconfig의 사용법을 알면 간단하게 네트워크 정보만 해제 또는 갱신이 가능하다.
해제의 경우 [ipconfig /release]를 입력하면 연결된 네트워크 연결을 해제한다. 이때는 네트워킹이 되지 않으므로 외부와 통신이 불가능하다. 보안패치가 되지 않은 윈도우를 사용하고 있을 외부 공격이 의심되면 이런식으로 네트워크를 해제하고 보안패치를 수행하면 보다 안전하게 작업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시 네트워크를 사용하기 위해 갱신하는 방법은 [ipconfig /renew]를 입력하면 된다. 갱신이 완료되면 [ipconfig /all]을 입력 했을 때와 동일한 화면을 볼 수 있다.

레지스트리 편집기
윈도우의 중요 시스템 설정사항과 응용 프로그램의 설정이 저장되는 곳이 바로 레지스트리이다. 이 레지스트리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레지스트리 편집기다. 윈도우에 내장되어 있는 레지스트리 편집기는 크게 2가지가 있다. 그래픽 환경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regedit]와 텍스트로 명령을 수행하는 [reg]가 있다.

그래픽 환경의 레지스트리 편집기 실행 방법은 [시작] -> [실행] -> [regedit]를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면 된다.


[그림 5] regedit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실행되면 다음과 같은 화면을 볼 수 있다.


[그림 6] GUI 환경의 레지스트리 편집기


하지만 레지스트리 편집기에서 데이터를 수정하면 별도의 저장 작업 없이 바로 적용 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텍스트 명령어 입력 환경의 레지스트리 편집기는 명령 프롬프트에서 reg를 입력하면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하므로 다소 까다롭다. 하지만 GUI환경을 구동할 수 없을 경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관련 명령어는 [reg /?]를 입력함으로 알 수 있다.


[그림 7] 명령어 입력 방식의 레지스트리 편집기 (reg /? 실행 화면)


단, 레지스트리는 윈도우의 중요한 시스템 정보와 응용 소프트웨어의 각종 설정이 저장되는 중요한 데이터이다. 따라서 해당 데이터가 잘 못 편집되면 윈도우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윈도우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용자가 특별히 변경해야 할 사항이 있을 경우에만 사용 해야 한다.

윈도우 작업 관리자
윈도우는 동시에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이렇게 실행되는 프로그램중 특정 프로그램이 CPU를 혼자 사용하고 있으면 윈도우 전체가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컴퓨터 자원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때도 문득 있다. 이럴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윈도우 작업 관리자이다. 일반적으로 윈도우 작업 관리자는 [CTRL] + [ALT] + [DEL]키를 동시에 눌러야 실행이 된다. 하지만 이 윈도우 작업관리자를 보다 손쉽게 실행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작] -> [실행] -> [taskmgr]을 입력 후 [확인] 버튼을 누르면 윈도우 작업 관리자는 실행된다.


[그림 8] taskmgr (윈도우 작업 관리자)


윈도우 작업 관리자는 [응용 프로그램], [프로세스], [성능], [네트워킹], [사용자]와 같이 총 5개의 탭을 가지고 있다. 각각은 다음과 같은 항목을 보여준다.
(1) 응용 프로그램은 윈도우 바탕화면에 실행되어 눈에 보이는 프로그램들의 목록을 보여준다. 여기서 [상태]가 “응답없음”으로 표기되는 항목은 현재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항목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종료 되지만 그동안은 작업에 방해를 받게 되므로 해당 항목을 마우스로 선택하고 오른쪽 버튼을 눌러 [작업 끝내기]를 클릭하면 바로 종료할 수 있다.
(2) 프로세스는 실행되어 동작중인 프로그램들을 보여준다. 응용 프로그램과는 달리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실행되는 프로그램까지 포함되므로 상당히 많은 프로세스 항목이 보일것이다. 여기서는 특정 프로세스가 어느 사용자에 의해 실행 되었으며, CPU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메모리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컴퓨터가 특별한 이유 없이 느려졌다면 이 항목을 살펴보고 특정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CPU를 많이 사용하는 경우 해당 프로그램을 종료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단, explorer.exe와 같이 윈도우 중요 프로세스를 종료했을 경우 윈도우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 성능은 현재 CPU와 메모리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4) 네트워킹에선 현재 내 컴퓨터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5) 사용자에선 현재 윈도우에 로그온되어 있는 사용자를 보여준다. 사용자 전환등으로 불필요하게 윈도우 자원을 사용하고 있다면 불필요한 사용자를 [로그오프]시킬 수 있다. 기타 접속이 허용되지 않은 사용자가 로그온 되어 있을 경우 [연결 끊기]를 사용하여 접속을 차단할 수 있다.


텔넷(Telnet)
예전엔 자주 사용 되였지만, 최근엔 잘 사용되지 않는 telnet 클라이언트가 윈도우 내부에 내장되어 있다. 따라서 급하게 유닉스나 리눅스 서버등으로 접속해야할 경우 매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telnet [접속할 호스트] [접속할 호스트의 포트번호] 를 입력하면 접속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telnet://server.home.com 이라는 서버에 접속하고 하는 경우 다음과 같이 입력하면 된다.

접속 예제) telnet server.home.com


FTP(File Transfer Protocol)
FTP역시 최근 웹(Web)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잘 사용되지 않지만 서버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의 경우 가장 효과적인 파일 송수신 방법이기에 종종 사용된다. 사용법 또한 텔넷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ftp://fileserver.home.com 에 접속하고자 하면 다음과 같이 입력하면 된다.

접속 예제) ftp fileserver.home.com

NETSTAT
Netstat는 네트워크 프로토콜에 대한 통계와 현재 TCP/IP 네트워크 연결 상태등을 보여주는 명령어다.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주 사용되는 명령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연결 및 수신 대기중인 항목 보기
현재 내 컴퓨터에 연결되었거나 연결을 기다리고 있는 항목들을 확인할 수 있다.
[netstat –a]를 입력하면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2) 네트워크를 사용중인 프로그램 목록 보기
현재 내 컴퓨터에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프로그램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공격자의 명령을 기다리는 스파이웨어들을 확인할 때 주로 사용된다.
[netstat –b]를 입력하면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3) 네트워크 통계 보기
네트워크 카드가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된 시점부터 송수신된 데이터 통계를 살펴볼 수 있다.
[netstat –e]를 입력하면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내 컴퓨터 정보 확인
대다수 사용자들이 내 컴퓨터의 하드웨어에 대한 설정 및 중요 설정 정보를 모르고 있다. 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명령어가 있는데 바로 [systeminfo]가 그것이다.
[시작] -> [실행] -> [cmd]를 입력하고 명령 프롬프트 모드에서 [systeminfo]를 입력하면 현재 내 컴퓨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항목이 너무 많아 미처 다 보지도 못하고 지나가 버린 정보들이 많은데 이를 하나 하나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입력하면 된다.


[그림 9] systeminfo | more


기타 윈도우 중요 정책 실행 명령어
윈도우에서 중요한 정책을 확인하고 변경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이 윈도우엔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꼭꼭 숨어 있어 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다음 명령어를 입력해 쉽게 실행해 볼 수 있다. 실행 방법은 [시작] -> [실행] -> 해당 명령어 입력 후 [확인]버튼을 클릭하면 된다. 각각의 명령어는 다음과 같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 변경은 정상적인 윈도우 사용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으므로 잘 모르는 항목은 수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COMPMGMT.MSC : 컴퓨터 관리로 컴퓨터의 세부 설정을 직접 변경할 수 있다.
DEVMGMT.MSC : 장치 관리자로 컴퓨터에 연결된 각종 장치들을 관리할 수 있다.
DFRG.MSC : 디스크 조각 모음으로 디스크내에 조각나서 저장된 파일을 하나의 조각으로 묶어줘 디스크 읽기 성능 및 수명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EVENTVWR.MSC : 윈도우의 각종 이벤트 로그를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윈도우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FSMGMT.MSC : 공유된 폴더와 파일을 확인할 수 있다. 공유된 폴더와 파일을 한눈에 보여줘 불필요한 공유 폴더를 확인하고 공유를 해제하여 보안성을 높일 수 있다.
GPEDIT.MSC : 로컬 컴퓨터 정책으로 윈도우의 다양한 정책은 물론 보안 정책을 변경할 수 있다.
LUSRMGR.MSC : 로컬 사용자 및 그룹 정책으로 윈도우 사용자를 추가/삭제/관리할 수 있으며, 그룹을 설정하고 보안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PERFMON.MSC : 시스템 성능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볼 수 있다.
RSOP.MSC : 정책의 결과 집합으로 윈도우에 로그인된 사용자에게 적용되었거나 적용될 정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SECPOL.MSC : 로컬 보안 정책으로 현재 컴퓨터의 보안 정책을 확인하고 변경할 수 있다.
SERVICES.MSC : 현재 윈도우에 설치된 각종 서비스 항목과 그 상태를 확인하고 변경할 수 있다. 불필요한 서비스를 중지시켜 불필요한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안철수연구소 2008-2-12]

trek 16. 띨제 - 자갓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고소적응일-빙하호수 방문)

3,680m

3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 티베트 국경 방문

4,2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20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7년 만에 만난 안나푸르나 서키트 길

2007. 10. 28(일)


 

Lamjung_google.jpg어제 아침에 비하면 이곳은 완연한 봄날이다. 텐트 안 기온이 10도를 가리키고 있다. 남쪽으로 터진 계곡 위로 설산이 보인다. 람중히말(Lamjung Hima, 6986m)이다. 그 오른쪽에 뾰족하게 튀어 나온 봉우리는 안나푸르나 2봉(7939m)이다. 2000년 가을,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 시작 마을인 베시사하르에서 처음 본 설산이 바로 람중히말이었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의 설산을 보고 감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포카라에서 보면 제일 오른쪽으로 보이는 설산이다.

pokhara_pano.jpg다들 뽀리지를 싫어해 마지막 남은 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유는 너무 달다는 것이다. 우유에 설탕을 더 넣었는지 모르지만 웬만하면 음식에 입맛을 맛추기로 작정한 나 혼자뽀리지를 먹었다. 모두 단 음식을 전혀 안 먹는 사람처럼 손사래를 치는 것이 이상하다. 요즘 먹을거리에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평소 크림빵은 잘 먹으면서 뽀리지가 조금 달다고 싫어하다니...

외국에 나와서도 꼭 한식을 고집하는 노인네들이 아니라면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 특히 히말라야에 들어와서는 더 그렇다. 식성이 까다로와 잘 먹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밉다. 트레킹 때는 더 밉다. 에너지 부족으로 당사자가 고생하게 되니 옆에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하더라도 운행에 '민폐'를 끼칠 수 있다.

7시 15분 출발. 롯지 바로 아래에 있는 카니를 지나니 바로 현수교가 나온다. 빔탕 이후 처음으로 강을 건넜다. 대나무와 무성한 잡목 숲으로 이어진 산허리길이다. 얼마 후 언덕에 오르니 멀리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의 주 트레일이 지나는 마을 다라빠니(Dharapan)가 보였다. 그 아래 보이는 마을은 톤제(Thoje, 2015m)다. 톤제 아래로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현수교가 보인다. 그곳까지 가려면 한참 내려가야 한다.

출발한지 1시간 지난 8시 20분 경 출렁다리 앞에 도착했다. 힘룽히말과 체오히말에서 발울한 두드콜라의 최하류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아주 길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강폭이 넓어 다리가 항상 길다. 이곳에 비하면 마나슬루 지역의 다리는 높고 짧다. 다리를 건너다 중간쯤 되는 지점 난간이 뻥 뚫려 있어 무심코 지나가다 깜짝 놀랐다.

톤제 마을 입구의 카니는 티베트 초르텐의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지금까지의 마을과는 다른 전형적인 안나푸르나 트레킹 롯지 마을의 깔끔한 모습이다. 마당에는 백일홍이 한창이고 길가 담장에는 장작을 많이 쌓아두었다. 지나가던 한 집 마당에는 어미 염소가 풀을 먹고 있는데 새끼는 그 어미의 젖을 먹고 있는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톤제에서 다시 강을 건넜다. 이번은 마르샹디 강이다. 강을 건너 조금 오르니 바로 다라빠니가 나온다. 안나푸르나 주 트레일로 접어든 것이다. 띨제에서 1시간 30분 걸렸다. 속도가 빠른 팀이라면 빔탕에서 다라빠니까지 당일 바로 올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지나친 속도는 트레킹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골목을 빠져 나와 안나푸르나 주 트레일과 만났다. 7년 만이다. 입구에는 마낭과 라르케로 가는 안내판이 있다. '주의!(Notice)'라는 말을 세 번이나 써 놓아 처음에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 빔탕 쪽으로 가려면 따로 허가를 받아야 된다는 말을 써 놓은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빔탕까지는 안나푸르나 보존지역에 해당하므로 마나슬루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는 사람은 따로 안나푸르나 지역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안나푸르나 허가서만 있으면 빔탕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삼거리에 체크포스트가 있다. 우리는 이미 카트만두에서 ACAP허가를 받았다. 타시가 체크하러 간 사이 잠시 그 앞에서 쉬었다. 몇몇 사람은 허가서를 카고백에 깊이 넣어 둔 상태라 보여줄 수 없었지만 단체로 움직이는데 빼 먹을 일이 있겠느냐고 말해 그냥 넘어갔다. 세 가지나 되는 트레킹 허가서는 나눠주지 말고 처음부터 타시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았다.

조금 내려가니 우리가 내려 온 두드콜라 계곡이 왼편으로 보였다. V자 계곡 아래 꼭지점에 하얀 설봉이 조금 보인다. 마나슬루는 아닐 것이고 라르키아 피크 근처 쯤이나 될 것이다. 지난 16일 동안 저 산군 건너편에서 빙 돌아 깊고 깊은 계곡과 눈덮인 높은 고개, 그리고 다시 골짜기를 지나왔다. 언제 다시 또 그 길을 걷게 될런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다. 아래에서 서양 노인네 단체팀이 올라오고 있다.

안나푸르나의 길은 역시 넓다. 그리고 전체 규모가 크다. 마르샹디 강도 마나슬루 지역의 부리 간다키 강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골짜기도 깊다. 마을도 자주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조랑말 행렬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티베트와의 무역로였다는 관록이 길에 나타나 있다.

Kartenauschnitt_Naar_phu_volle_Grosse.jpg이곳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 토롱 라를 넘어 묵티나트로 간 후 상무스탕을 경유하는 길과 차메(Cheme)에서 오른쪽 꼬또(Koto)로 가는 나르콜라로 들어가 피상피크 동북쪽의 나르(Naar)와 푸가온(Phugaon)에서 바로 티베트로 넘어 가는 길, 그리고 마나슬루 지역의 라르키아 라를 넘어 가는 길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그곳에서 넘어 온 티베트 상인들이 모두 이곳 다라빠니에서 만난다. 그래서 이 지역의 티베트 이름은 갸숨도(Gyasumdo)로 '세 길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넓고 깊은 장대한 계곡과 5416m의 설산 고개, 그리고 티베트 고원 풍의 황량한 들판과 넓고 바람이 거센 깔리 간다키 강, 수백 년간 티베트와의 교역으로 다져진 마을, 저지대의 힌두 문화와 계단식 논밭.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이다. 이런 생태계와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는 네팔에서 이곳 말고는 없다.

경작지를 찾아 강 양쪽으로 마을이 있으니 계속 이쪽 저쪽으로 건너갔다 건너와야 한다. 7년 만에 만난 길이라 그런지 영 낯설다. 그 때는 히말라야 트레킹이 처음이었으니 제대로 주변을 감상할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지금은 마나슬루 '깡촌' 마을을 본 직후여서 더 그럴 것이다. ABC, 쿰부, 랑탕 트레킹은 이런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지만 최근 방문한 곳이 공교롭게도 네팔에서도 오지인 무스탕과 마나슬루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다리빠니에서 다시 현수교를 건너 왼편으로 넘어간 후 카르테(Karte)에 도착했다. 새로 신축중인 롯지가 몇 채 보인다. 이곳에 도나(Dona) 빙하호수로 가는 길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다라빠니의 안내판도 그렇고 이 안내판도 7년 전에는 본 기억이 없다. 도나 호수로 가려면 이곳 동쪽 도나콜라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마헨드라왕 자연보호재단(KMTNC)의 홈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dona_lake .jpg도나 호수는 마나슬루 남서쪽, 해발 4700m 지점에 있는 호수로 마나슬루 호수로도 알려져 있다. 마낭지역에서 틸리초 호수 다음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수로 점차 방문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곳까지는 이틀이 걸린다. 가는 길은 나체(Nache) 마을을 통과하여 빽빽한 푸른 소나무 숲과 다양한 색의 랄리구라스 숲, 그리고 초지를 지난다. 이 지역은 사슴, 사향노루, 꿩, 붉은 판다 같은 야생동물들의 좋은 서식지이며 가축들의 방목지로도 이용되고 있다. [주의] 이 호수로 가는 길은 야생 상태라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없다. 방문자들은 경험많은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고 장비와 식량을 가져가야 한다. 방문시기는 7-8월과 4-5월이 가장 좋다.

Tilicho.jpg구글어스에서 찾아보니 도나 호수는 길이 2300m, 폭 400m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같은 고도에서 틸리초외 비교해 보니 틸리초가 두 배 정도로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호수는 4000m 이상의 높이에 있는 히말라야 호수 중 제일 큰 호수에 속한다. 쿰부의 고쿄 호수, 촐라초, 임자초도 이들보다 작다.

트레킹 초심자는 이런 코스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 그러나 네팔 3대 메이저 트레킹 코스를 마치고 캠핑이 필요한 코스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이런 코스도 '땡기기' 시작한다. 안나푸르나 서키트를 캠핑트레킹으로 할 경우 이곳에서 도나 호수를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곳에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고소적응이 된다. 그리고 다시 틸리초 호수를 다녀오면 더 좋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자금을 더 많이 모아야 한다.

카르테를 지나가는데 한 롯지 식당 입구에 "맛있는 김치 있어요"라고 쓰여 있는 나무판이 놓여 있다. 금년부터 인천-카트만두 직항 정기노선이 생기면서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점점 더 많이 방문하고 있다는 증거다. 롯지촌을 벗어나니 바로 강을 건너는 현수교가 나와 다시 오른쪽 사면으로 건너왔다.

10시 경에 나타난 작은 마을 코또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롯지 식당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조금 이르긴 해도 다음 마을인 딸(Tal)까지 가려면 여기서 1시간 이상 더 가야 한다. 이미 주방팀이 먼저 도착하여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에 얼마 후 바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11시 15분에 다시 출발했다. 계속 트레커들이 올라오고 있다. 중년 이상의 트레커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최근의 경향이다.

골이 깊은 안나푸르나 서키트 길은 초반 계곡길에 폭포가 많다. 마나슬루도 폭포가 많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 않다. 규모도 엄청 나 처음 보는 사람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카르테 아래의 폭포는 지그재그 다단계형의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쏟아지는 물의 양도 굉장하다.

골짜기 풍경이 웅장하다. 다시 현수교를 건너 강바닥으로 내려섰다. 원래는 위로 오르는 계단이 있지만 건기에는 강바닥을 이용할 수 있으니 힘을 덜 수 있다. 위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는 길이다. 잠시 후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가 강바닥 길을 걷는다. 그러나 곧 오르막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안다. 계곡은 항상 이런 식이어서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도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롯지가 중간에 많아 언제든지 쉬어 갈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아주 많아 하루 서너 시간 운행으로 만족할 때의 일이다. 그런 식의 운행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소한 오후 두세 시까지 운행하게 되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힘들다. 거기에 4000m 가까이 가면 고소의 영향으로 한 걸음이 천근같다. 그러므로 트레킹을 가기 전 근력과 지구력 강화훈련을 차분히 해 두어야 덜 고생한다.

절벽길에 올라 코너를 도니 멀리 딸(Tal, 1707m)이 보인다. 이 절벽길도 바닥의 흙과 축대를 보니 산사태로 무너진 것을 다시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상계에서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12시 25분 도착한 딸 마을도 그동안 많이 변했다. 좋게 보면 세련되었고 아쉬운 마음으로 보면 자본주의화 되었다. 자본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가치관은 인심을 각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 도시 문명을 벗어나 히말라야에 왔는데 다시 이곳에서 그런 분위기를 접하는 일은 썩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곳은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 코스에 있는 마을 중 유일한 강변마을이며 가장 목가적인 분위기를 지닌 마을이다. 주변의 산이 높고 계곡이 넓다. '딸'이란 '호수'를 뜻하는 네팔말이다. 한때 이곳은 호수였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아래쪽으로 침식작용이 일어나 물이 많이 빠지자 넓은 터가 생겼고 그곳에 마을이 들어섰다. 안나푸르나 서키트를 한다면 이곳에서 하루 묵는 일정을 고려할 만하다. 네팔 행정구역에서 이곳 딸까지 마낭지역이다. 이 아래부터는 람중지역이다.

안나푸르나 산군의 동쪽지역은 크게 람중(Ramjung) 지역과 마낭(Manang) 지역으로 나눈다. 딸 이전의 마을은 람중 지역이다. 람중 지역은 낮은 지대여서 산에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마낭 지역은 험한 산악 지대여서 계단식 논을 잘 볼 수 없다. 쉽게 티베트 풍의 마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람중 지역은 힌두문화권이고 마낭 지역은 불교문화권이다. 딸은 마낭 지역의 가장 남쪽 마을이다. 마을은 제법 큰 편이다. 롯지와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ACAP 체크포스트도 있다. 큰 마을답게 우체국도 있고 보건소도 있다. 그러나 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이곳 사정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길이 왼편 산기슭으로 급하게 오른다. 작년 몬순 때 홍수로 마을이 고립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물길이 바뀌어 원래의 길을 덮쳤고 그 물길이 고착되어 원래의 길은 물 속에 잠겨 버렸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도도한 물길을 이 낙후된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차라리 새로 길을 내는 것이 더 쉽다.

trek16_map2.jpg그래서 만든 길이 이 산기슭 길이다. 기계가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래도 수작업으로 완성시켰다. 길이 완성되기 전에는 건너편 기슭으로 난 길로 다녔다고 한다. 그 길은 현지인들이 다니는 높은 길이다. 트레커들은 딸을 생략하고 바로 높은 산기슭을 넘어 다라빠니로 가느라 힘이 훨씬 들었을 것이다. 작년(2006년) 여름 마나슬루 트레킹을 마치고 우리처럼 내려가는 길에 이곳을 지난 김지나 씨의 글에는 그 길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있다.

산중턱에서 보니 멀리 앞쪽으로 원래의 길이 보인다. 카니에서 강바닥으로 내려오는 길을 강물이 막고 있다. 카니 아래로 보이는 현수교가 바로 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산중턱에 있는 가랑(Gharang)이라는 마을을 지나 다라빠니로 가는 길이다.  산기슭길을 한참 지나 입구에 도착하니 마오바디들이 책걸상을 갖다놓고 통행세를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마나슬루 지역에서 냈기 때문에 그냥 통과했다. 그곳에서 보이는 가야할 길이 가물가물하다.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정신없이 올라가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트레킹이다. 그래서 체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험한 히말아야 트레킹 길도 산악자전거를 타기 위해 오는 친구들도 있다. 서양인 친구나 앞에 오고 뒤에 네팔인 친구가 따라 온다. 짐을 진 포터는 뒤에 따라 올 것이다. 어쩌면 이들보다 앞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디스커버리 채널인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인가에서 본 적이 있다. 대단한 친구들이다. (나도 일주일만 더 젊었으면 산악자전거를 탔을텐데... 아깝다, 일주일!)

멋지고 웅장한 폭포를 향해 강 아래쪽으로 내려 갔다. 긴 폭포가 아주 인상깊다. 폭포를 지나면 곧 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 오른편 기슭으로 오르니 참제(Chemhe)가 나왔다. 막 오후 3시를 지나고 있다. 마을 중간에 있는 큰 롯지 을 보니 반가웠다. 롯지 모습은 여전하다. 7년 전 묵은 곳이고 그때 이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동포들을 만났다.  당시의 기록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3층짜리 목조 건물인 라사(Lahsa) 호텔에 짐을 풀었다. 우리 방은 3층에 있는 방이다. 방은 갈수록 좋아졌다. 복도를 돌아가니 화장실 겸 샤워장도 있다. 미지근한 물에 땀을 씻었다. 태양열을 이용하여 물을 데우기 때문에 이 시간까지 미지근한 물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다. 옷가지를 빨아 발코니 빨랫줄에 널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잘 마를 것 같았다. 빨래집게가 줄에 몇 개 있었다. 빨랫줄은 준비했는데 빨래집게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빨래집게도 다음부터는 꼭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숙소에는 빨래집게가 없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현지에서는 요긴하게 쓰인다.

여기서 한국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을 못했다. 3층에 올라가니 안쪽 방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반가웠지만 짐을 풀고 씻는 것이 급선무라 나중에 확인을 하기로 했다. 내가 씻고 나서 덕문스님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 한 청년이 왔다. 양평에 산다는 남기범(23세)이라는 친구였다. 세 사람이 같이 왔는데 스님도 한 분 있다고 한다. 그 친구가 가고 잠시 후 선일이라는 스님이 왔다. 초면이었다. 그러나 내가 덕문스님과 같이 왔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알고 보니 덕문스님과는 수계도반이며 여러 철 같이 살았다고 한다. 이번 여름에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정진했다고.

잠시 후 덕문스님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덕문스님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라 무척 반가워 한다. 또 한 사람은 서울에서 온 이정숙양(여, 29). 세 사람은 각기 따로 인도를 여행하고 네팔로 들어와 포카라에 있는 인드라 호텔에서 만났으며 호텔 분위기가 트레킹을 하는 분위기여서 덩달아 트레킹에 나섰다고 한다. 파카 등 장비도 포카라에서 빌렸다는데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준비한 우리보다 엉성했다. 신발도 운동화를 신고 있다. (붓다아이, <2000 안나푸르나 서키트 트레킹> day 3)

원래는 이곳 참제에서 오늘 운행을 마칠 생각이었다. 시간상으로도 적당하다. 그런데 점심 때 밍마가 참제에는 캠프사이트가 좋지 않다고 자갓으로 가자고 한다. 사실은 레이놀즈의 가이드북에도 자갓까지 하루 일정으로 나와 있지만 일정을 짤 때 지도상으로 너무 멀어보여 참제로 정한 것이다. 캠프사이트가 좋지 �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어 밍마의 의견을 따라 자갓까지 가기로 했다. 조금 더 걷겠지만 그만큼 내일 일정은 단축될 것이라고 피곤해 하는 동포들을 위로했다.

Manaslu_1456.jpg아닌게 아니라 유일한 캠프사이트인 마을 끝에 있는 학교 마당은 길보다 지대도 낮고 분위기도 영 아니다. 길가로 하수도도 흐르고 있다. 하수도보다 낮은 곳에서 잠을 자고 싶지는 않다. 그대로 통과한 것은 잘한 일이다.

자갓(Jagat) 에 도착한 시각은 4시 20분. 참제에서 1시간 20분 걸렸고 중간에 두 번 쉬었다. 폭포도 지나고 강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오르기를 몇 번 반복했다. 연 3일간의 강행군으로 다들 많이 지쳤다. 체력이 좋은 젊은 사람이라면 5:30~6시간 걸린다고 레이놀즈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8시간(-점심시간 1시간 15분) 걸렸으니 어지간히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자갓은 톨게이트(toll gate)라는 뜻이라고 이미 마나슬루 지역의 자갓을 지날 때 이야기 했다. 즉 이곳은 티베트를 오가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던 곳이다. 그런 까닭에 이곳 주민들은 티베트계인 보티아(Bhotia)족이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지던 소금무역은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국경을 폐쇄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대신 1975년 안나푸르나가 일반 트레커들에게 개방되면서 관광업이 주 산업이 되었다.

아담한 롯지 정원에 스테프들이 캠프를 치고 있다. 바나나 나무도 보이고 꽃이 만발해 있다. 이곳 고도가 1314m이니 이제 따뜻한 중산간 지역으로 내려왔다. 라르키아 라와는 고도차가 4000m 가까이 되는 곳이다. 오늘은 뜨거운 샤워를 할 수 있으려니 기대를 했다. 그러나 늦게 도착한 탓인지 따뜻한 물은 잠시 나오더니 아예 찬물까지도 잘 나오지 않아 여성동포들은 주방에서 데워 준 물로 간단하게 �었다. 나는 오늘도 물수건의 신세를 졌다.

모처럼 분위기 있는 정원 식탁에서 바나나를 사 먹었다. 저녁은 여행사에서 서비스로 준비한 특식이란다. 한국식으로 요리하기 위해 두 분이 주방을 다녀왔다. 무진행 보살님이 요리법을 설명하고 영어가 전공인 보명화 보살님이 통역했다.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생애 최고로 맛있게 먹은 음식"이라고 찬탄했다. 어쩌면 '말짱 도루묵'의 일화와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동안 '배가 고팠다'는 반증일 것이다.

저녁을 잘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힘든 트레킹이 거의 끝나는 시기여서 그런지 동포들의 얼굴이 한결 여유롭고 좋아보인다. 내일이면 실질적인 트레킹은 끝나기 때문에 내일 묵을 나디에서 쫑파티를 준비하라고 타시에게 150불 주었다. 포근한 밤이다.
 

trek 16. 띨제 - 자갓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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띨제 캠프에서 멀리 남서쪽으로 보이는 람중히말. 오른쪽 봉우리는 안나푸르나 2봉(7939m)이다. 띨제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 뒤를 마을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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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지 45분 쯤 지나 언덕에 오르니 다라빠니가 보였다. 그 아래 마을은 톤제 마을이며 톤제로 가는 긴 다리가 두드콜라 하류에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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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제 다리 중간 난간 철망이 뻥 뚫여 있어 깜짝 놀랐다. 톤제 마을 입구 카니는 티베트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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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빠니 도착. 빔탕으로 가는 안내판이 있고 맞은 편에 체크포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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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포스트 앞에서 체크할 동안 휴식. 다리빠니를 벗어나자 마르샹디 강과 두드콜라의 합수점에 있는 계곡 사이로 마나슬루 산군이 조금 보였다. 줌으로 당겨서 그렇지 실제로는 멀어 아주 작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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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서키트 구간은 이런 현수교를 자주 건넌다. 짐을 싣고 오가는 조랑말 무리도 자주 만난다. 이 길은 수백 년 동안 티베트를 오가던 소금무역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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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코또의 롯지 초우따라에서 쉬며 일정을 살피고 있는 �은 두 서양 트레커. 그곳에서 조금 내려가자 지그재그형의 웅장한 폭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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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지나는 트레킹은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가물가물한 길을 따라 내려가면 강을 건너는 현수교가 나온다. 건기에는 위로 가는 계단길 대신 아래 강바닥길을 이용할 수 있어 힘이 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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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길을 지나면 당연한 일지지만 다시 오르막이 나온다. 그리고 계곡이 갑자기 넓어지며 '호수'라는 뜻의 마을 딸(Tal)이 나타났다. 안나푸르나 서키트 지역에서 유일한 강변마을이며 목가적인 분위기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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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까지 가는 길도 산사태가 나 새로 다졌다. 절벽길을 내려와 평화로운 마을를 향해 가고 있다. 제일 뒤에 가는 사람은 밍마 세르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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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는 마니월은 예전에 못 보던 것이다. 그냥 무심코 지나쳤는지도 모르겟다. 그러나 컬러 마니석은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있었다면 당시의 여행기에 이 독특한 물건에 대한 묘사가 없을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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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큼은 낭만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딸은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가장 멋진 곳임에는 틀림없다. 옛길은 물에 잠기고 새로 만든 절벽길로 올라왔다. 예전에 다니던 길에 있는 카니와 길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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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보면 물길이 옛길을 덮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언덕 산허리길은 작년에 사람들이 100% 수작업으로 뚫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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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 마오바디들이 통행세를 거두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야할 길이 가물가물하다. 강바닥 가까이 한참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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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오르막길 꼭대기에 거의 다 올라왔다. 점심 먹고 3시간 운행을 하고 있으니 이제 슬슬 피곤이 몰려왔다. 그곳에서 산악자전거를 타고 온 사나이들을 만났다. 이 친구 뒤로 네팔인 친구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저 자전거를 끌고 토롱 라를 넘어갈 모습은 상상만 해도 숨이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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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웅장한 폭포가 나와 경치를 즐겼으나 다시 아래로 한참 내려가야 했다. 폭포를 지나 오른쪽 사면으로 건너 잠시 오르니 참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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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묵었던 참제의 라사 호텔을 지날 때는 옛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머나먼 길을 바라보며 걸었다. 저쪽 산 모퉁이를 돌아야 오늘의 목적지 자갓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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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마을 자갓의 롯지들. 참제에서 1시간 20분 걸렸다. 우리 포터들이 롯지 입구에서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호텔> 마당의 캠프사이트는 푸른 정원으로 싸인 아늑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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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에서 서비스로 마련한 특별식을 코치하는 두 보살님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트레킹을 마쳐갈 즈음이어서 그런지 차와 바나나를 먹으며 식탁에 앉아 저녁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한결 여유 있어 보인다. 음식은 먹기 바빠서 찍지 못했다.

trek 15. 빔탕 - 띨제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고소적응일-빙하호수 방문)

3,680m

3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 티베트 국경 방문

4,2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20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수목한계선 아래로 내려오다

2007. 10. 27(토)


 

어제보다 훨씬 포근한 아침이다. 밖으로 나오니 살얼음이 얼어 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쌀쌀하다. 어제 안개로 보지 못한 주변 경치를 보기 위해 모레인 제방으로 올라갔다. 티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설산의 모습이 뚜렸하다. 내려다 보니 넓은 빔탕의 전체 모습이 잘 보인다.

일출이 시작되었다. 남동쪽에 있는 마나슬루로 해가 비친다. 이곳에서 보는 마나슬루는 지금까지 보던 모습과 전혀 다르다. 두 개의 뾰족한 봉우리를 보고 마나슬루임을 짐작할 뿐이다. 가이드북과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가 아니었다면 마나슬루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쪽으로는 힘룽히말과 체오히말 봉우리에도 해가 비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은 햇빛이 산의 측면을 비추기 때문에 붉게 타오르는 장엄한 모습은 볼 수 없다.

모레인 제방 아래에는 에메랄드빛의 작은 빙하 호수가 하나 있지만 특별히 가까이 가서 볼 만한 호수는 아니다. 아래에서 무진행 보살님이 아침 산책 중이길래 사진을 찍어 줄테니 올라 오시라고 했다. 20여 미터만 오르면 아주 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으니 숨이 차더라도 구경할 수 있을 때 구경하는 것이 좋다.

around-Bimtang.jpg빔탕에서 하루 더 여유가 있다면 위쪽 힘룽히말과 체오히말에서 내려온 빙하수가 고여 있는 제법 넓은 빙하호수를 방문하는 반나절 소풍을 즐길 수 있다. 또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왼편 숲이 돌출되어 있는 곳으로 오르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에델바이스 자생지인 그곳에서 보는 설산의 풍광이 멋지다고 한다. 레이놀즈의 말이다. 그러나 그런 여유 있는 일정을 가진 팀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빔탕은 빔타코티(Bimtakhoti)라고도 하며 '모래의 평원'이라는 뜻이다. 빙하 모레인 제방과 산 경사지 사이의 넓은 분지인데 모레인 땅이라 경작은 불가능하다. 옛날에 이곳은 라르키아 라 동쪽의 바북과 더불어 티베트와의 중요한 교역장소였다. 1950년에 틸먼이 처음 방문했고 1956년에는 스넬그로브가 방문하고 각각 기록을 남겼다.

빔타코티에는 조(zo)와 양들이 라르키아 고개 또는 톤제(Thonje)에서 빈번하게 오가고 있다. 10여 마리 이상의 조 무리의 목에 달린 종소리는 끊이지 않고 우리의 캠프를 지나 짧은 초지를 향하곤 했다. 모두 둔중한 소리의 종을 달고 있는데 무리의 리더는 밝은 진홍색 야크털 장식 술과 함께 작은 종을 달고 있다. 이곳 창고 담당자는 우리에게 짧은 교역시즌 동안 그는 3000마리 이상의 조가 싣고 온 짐의 무게를 잰다고 했다. 이곳에서 쌀과 소금의 교환비율은 16:25인데 라르키아 라를 넘어가면 소금 25를 사기 위한 쌀은 12면 충분하다. (H. W. Tilman, , pp.860-861)

빔탕은 라르키아 라 동쪽에 있는 바북처럼 단지 여름철 교역장소로 쓰이고 있다. 티베트에서 야크 등에 실려 바북을 거쳐 이곳으로 물건은 소금과 모직물이 오고 네팔에서는  쌀과 곡물, 면제품 옷, 담배, 성냥 그리고 다른 유용한 물건이 온다. 이곳에서 무역을 통한 이익을 얻기 위해 티베트 국경을 넘어 오거나 갸숨도(Gyasumdo) 또는 누프리에서 온 티베트인들을 만날 수 있다. (David. Snellgrove, , p.239)

틸먼이나 스넬그로브도 언급하고 있듯 이곳은 경작지로는 쓸 수 없는 땅이다. 풀이 조금 나 있기는 해도 조금만 파면 마사토 같은 빙하 모래가 나와 작물의 재배가 불가능하다. 냇물도 가까이 흐르는 좋은 조건이지만 모래땅이라 농사를 짓지 못하니 사람이 살지 않는다. 티베트와의 교역이 뜸해진 지금은 서너 채의 롯지만 트레커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침 식사 때 타시가 와서 어제의 일을 정식으로 사과했다. 자기의 가이드 생활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아주 좋은 지적이어서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더 훌륭한 가이드가 되기를 축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하게 넘어가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지적을 해 주는 것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7시 20분 출발했다. 내리막길이긴 하지만 앞으로 3일 동안의 일정은 매일 8시간 이상 운행을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다. 처음부터 중간에 하루를 더 늘이면 편하기는 하나 너무 늘어지는 감이 있다. 2주간의 트레킹으로 피곤하기는 해도 이럴 땐 오히려 조금 졸라매야 긴장감으로 잘 견딘다. 일단 고소로부터 자유로우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길은 개울물 곁을 지나 빙하를 건너기 위해 언덕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빙하 제방 7부 능선길을 빙 돌아 간다.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길이다. 앞쪽으로는  마나슬루 서쪽에 있는 캄풍히말(Kangpung Himal)에서 제일 높은 풍기(Phungi, 6538m)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오늘이 설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내내 눈을 맞추며 걸었다.

언덕을 넘으니 강을 가로질러 다리가 하나 있다. 빙하지대이기는 해도 얼음이 없는 골재채취장 같은 곳을 흐르는 작은 개울 수준의 강이다. 이 강의 이름은 두드콜라이며 이곳이 최상류에 해당한다. '두드'란 '우유'라는 뜻의 네팔말이다. 강물의 빛깔이 우유같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쿰부에도 고쿄의 고줌파 빙하에서 시작하여 루클라 아래로 이어지는 강 이름도 두드코시다. 코시는 콜라와 같은 뜻(작은 강)이다.

다리를 건너 빙하 제방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 다시 작은 다리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까지 길이 무너져 있어 보울더 바위 사이를 타고 가느라 조금 성가셨다. 나중에 보니 위쪽으로 새로운 길이 나 있다. 이 다리는 난간도 없다. 다리  위로 서리가 내려 미끄럽다고 타시가 모래를 집어 뿌려주었다. 이곳은 물살이 제법 세다. 북쪽으로 힘룽히말과 체오히말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산의 모습을 보는 것도 여기가 마지막이다. 강물은 빙하 모래층 아래에서 갑자기 꽐꽐 솟아 나오고 있다.

다리를 건너 빙하의 서쪽 제방 꼭대기로 올라가 잠시 쉬었다. 첫 번째 휴식시간이다. 출발한지 1시간 되었다. 이제 빙하지대는 끝났다. 그곳부터는 내리막길인데 갑자기 우람한 나무들이 있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풍경이 이렇게 갑자기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나무에는 이끼와 실 같은 지의류가 많이 붙어 있어 이제 수목한계선으로 내려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도 보인다. 레이놀즈의 책에는 이 길가에 (ABC 트레킹 코스의 데우랄리 못미처 나오는 힌쿠 동굴 같은 모양의) 동굴이 있다고 나와 있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숲속에서 가끔 툭 터진 곳으로 나오면 캄풍히말이 반겨주었다. 기온도 많이 올라갔다. 즐거운 숲 길이다. 큰 전나무가 탄 모습이 보인다. 먼 산에는 산불로 고사목이 되어 불에 탄 전봇대처럼 흉물스럽게 서 있다. 그 너머로 마나슬루 서쪽면의 빙하가 보인다. 쿰부에도 남체바자르에서 텡보체 가는 도중에 이런 산불 흔적이 있다. 히말라야에서 산불이 나면 대책이 없다. 이 험한 산에 올라가 불을 끌 방법이 도저히 없다. 헬기로 불을 끄는 시스템은 먹고 살 만한 나라나 가능하다.

1994년 9월 하순에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이런 산불에 탄 수많은 고목나무들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은 산불이 나도 끄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낙뢰 등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을 자연의 순환현상으로 보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관련기사)  

계곡에 들어서니 숲길이지만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계속 반복한다. 8시 30분, 울창한 숲 속에서 휴식. 그리고 잠시 계곡 위로 난 전망이 좋은 양지녁 오솔길을 걸었다. 마나슬루 정상의 둥근 빙하가 왼편으로 보인다. 1950년 5월 23일, 마낭에서 안나푸르나에 접근할 수 있는 계곡과 빙하를 탐사하기 전 틸먼 탐사대는 이곳 두드콜라 위쪽 마나슬루와 그 주변 봉(체오히말과 힘룽히말)을 먼저 탐사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 그리고 빔탕으로 가는 도중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에서 마나슬루를 똑똑하게 보고 감동을 받는다.  

이 전망대에서 우리는 어두운 숲에서부터 그 너머 마나슬루에서 흘러 나온 둥근 빙하까지 바라보았다. 오른쪽으로 하늘을 찌르는 두 개의 바위탑과 얼음은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주었다. 마나슬루는 거친 모양을 거의 감추고 조용하고 영원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낮은 스노우콜(snow col)로부터 마나슬루의 긴 북쪽 능선은 가볍게 25000피트를 오르고 1000피트를 내려간 후 눈의 고원에 날카롭게 솟아 있다. 그리고 잘 받쳐져 있는 받침대 위에 정상의 피라미드가 서 있다. (H. W. Tilman, 위의 책, p.820)

계곡은 이제 많이 넓어졌다. 산사태의 흔적으로 강물 속에 큰 나무가 넘어져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10시 15분, 롯지가 하나 있는 넓은 캠프사이트가 나왔다. 마나슬루 지역에서의 롯지는 주방과 캠프사이트만 제공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롯지 문은 잠겨 있다. 주인이 있다면 이곳에서 점심을 지어 먹고 갈 수도 있지만 문이 잠겨 있으니 주방팀은 이곳을 그냥 통과했다. 강에서 물을 길어 나르는 등 굳이 번거로운 이곳을 주방팀이 택할 까닭이 없다.

왼편으로 터진 계곡 사이로 탐스러운 설산이 보인다. 이곳은 하루 묵고 싶은 평화로운 풍경이 있는 곳이다. 지도에는 이런 카르카가 몇 개 표시되어 있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통해 숲으로 다시 들어가다가 얼마 후 길은 계곡 바닥으로 내려갔다. 우기 때 생긴 산사태로 길이 끊어져 바닥에 새로 만든 험한 길이다. 아름드리 나무가 가로로 쓰러져 있고 그 아래로 길이 난 곳도 있다.

강으로 쓸려 내려온 흙과 돌더미 사이를 헤치고 오르내리는 길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위쪽에 있는 바위가 언제 또 무너질 지 모르는 일이라 긴장이 되었다. 레이놀즈의 책에도 언급되어 있으니 이 산사태는 적어도 10년 전에 일어난 것이다. 물건을 실은 말이 이런 길을 통해 빔탕까지 다니고 있다. 이 길은 오늘 일정에서 가장 난코스라고 할 수 있다.

from_Bimtang_to_Karche.jpg산사태 길을 지나 다시 숲속 언덕으로 올라가 작은  지류에 놓인 다리를 나왔다. 돌과 나뭇가지를 교묘하게 얽어 기초를 만든 독특한 다리다. 이런 다리는 처음보았다. 다리를 건너니 바로 점심 먹을 장소인 카르체(Karche)가 나왔다. 이곳에 한 가족이 살고 있는 티하우스가 하나 있다. 주변에 제법 넓은 경작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농사를 짓는 모양이다. 시간이 11시 40분을 지나고 있어 배가 고팠다. 이제 고도는 3000m 이하로 내려왔다.

집 뒤마당에 넓은 캠프사이트가 있다. 바람은 불지만 햇볕은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계곡 사이 푸른 숲 위로 설산의 봉우리가 깨끗하게 보인다.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머리를 감으니 개운하다. 이 집의 꼬맹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우리 주변과 주방을 차례로 들락거린다.

점심 먹고 1시에 출발했다. 길은 완연한 저지대 숲길이다. 가끔 계곡 바닥으로 내려가기도 하면서 오르막 언덕을 우회하여 오르내린다. 물건을 싣고 오르는 조랑말 무리도 만났다. 카르체 이후부터는 경작지와 흩어져 있는 집들이 자주 나온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시작된 것이다. 경작지가 있는 곳은 짐승의 출입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아 놓았다. 염소와 양이 떼지어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길가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는 있는 아낙네들과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새로 롯지를 만들고 있는 곳도 있다. 이곳도 이제 트레커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마니월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초우따라가 있는 고개에서 한숨 돌린 후 가족이 메밀 수확을 하는 곳을 지나자 곧 오늘의 목적지 띨제(Tilje)가 멀리서 보였다. 오른쪽 산비탈로 계단식 밭이 보이고 전깃줄도 보이는 큰 마을이다. 마니월과 텅빈 학교를 지나 마을 입구에 있는 카니를 통과했다. 여자 아이 둘이 검은 소를 몰고 와 소를 밭으로 내 쫓은 후 우리를 따라 마을로 돌아왔다.

오후 3시 40분, 띨제에 도착했다. 띨제는 구릉족이 사는 이 근처에서 제일 큰 마을이다. 틸먼이나 스넬그로브 시대에는 이 두드콜라 계곡의 유일한 마을이었다. 캠프장이 있는 집 마당에는 백일홍과 다알리아가 한창이다. 꽃 구경도 오랜만이다. 뎅에서 보고 처음이니 8일만이다. 오늘은 하루만에 풍경이 이렇게 달라졌다. 주방팀은 차 준비를 하고 다른 스태프들은 텐트를 치느라 바쁘다. 어제부터 긴 운행으로 조금 지치긴 했지만 다시 아이들이 놀고 닭이 활개짓하는 마을로 돌아오니 마음이 편해진 한편 섭섭하기도 하다.

트레킹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오늘 아침까지 눈이 시리도록 보았던 설산은 더 이상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 그저 가끔 먼 산 계곡 사이에서 바라 볼 수 있을 뿐이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피로를 풀고 저녁 먹기 전 등산화를 수선(끈 교체)했다. 지금까지 별 탈없이 버텨준 것이 고맙다. 내일은 마나슬루 지역을 벗어나 안난푸르나 라운딩 코스로 접어드는 일정이다. 7년 만에 그 길을 다시 가는데 그동안 어떻게 변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trek 15. 빔탕 - 띨제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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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인 언덕에서 바라 본 빔탕의 아침 모습. 카메라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배경의 명암이 달라진다. 왼편은 마을에 초점을 두었고 오른편은 설산에 초점을 두고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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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한 모습의 마나슬루에 해가 비치고 있다. 건너편 사마가온에서는 불이 붙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나슬루 오른편은 캄풍히말의 풍기(Phungi)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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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인 너머에 작은 빙하호수가 하나 있다.  추운데 굳이 내려가 볼 만한 정도는 아니다. 아래에서 아침 산책 중인 무진행 보살님을 올라오시라고 해 힘룽히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추운 아침의 느낌이 사진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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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아침, 그늘에서 캠프를 철수하는 스태프들. 묵묵히 우리의 트레킹을 도와주는 수호천사들이다. 출발하자 곧 따듯한 햇빛 속으로 들어갔다. 터프한 모습의 캄풍히말이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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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마나슬루 산군 위로 해가 떠 올랐다. 그 오른쪽에 있는 6538m의 풍기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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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를 가로지른 첫 번째 다리를 건너다. 그곳에서 본 힘룽히말과 체오히말. 1950년 안나푸르나 4봉 등정에 실패한 틸먼 일행은 이곳에 와 대신 이 두 봉우리를 오르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중간에서 돌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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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인 언덕을 넘자 다시 나타난 빙하수 여울. 길을 무너져 있어 찾느라 헤메는 중이다. 길은 왼편 언덕 뒤로 나 있었다. 이곳은 두드콜라 최상류다. 두드콜라는 다라빠니에서 마르샹디 강에 흡수된다. 그곳에서 본 마나슬루 정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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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다리를 건너 모레인 언덕으로 오르면 빙하지대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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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인 언덕을 넘으면 풍경이 급변하여 울창한 숲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끔 넓은 초지가 나타나 시야를 시원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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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리구라스 나무도 보이는 숲을 지나면 작은 언덕이 나오고 거기에서 마나슬루 히말의 서쪽면 파노라마를 만난다. 이곳 풍경에 대한 틸먼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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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혀 있는 롯지가 하나 있는 넓은 캠프사이트를 지나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걷는 걸음이 가볍다. 그곳에서 본 마나슬루 히말의 모습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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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정의 가장 난코스라 할 수 있는 산사태 지역. 10여년 전에 일어난 산사태가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모습이다. 이 길을 지날 때 금방이라도 위에서 산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되돌아 본 산사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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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숲으로 올라갔다. 거목 사이로 보는 설산의 풍경이 감미롭다. 물살이 거친 작은 계류 위에 놓인 다리는 기초가 휜 나뭇가지로 돌을 가두어 놓은 구조를 하고 있는 독특한 모습의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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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지나면 곧 롯지가 하나 있는 카르체가 나온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롯지 뒷마당이 캠프사이트다. 날이 따뜻해 이곳에서 오랜만에 머리를 감았다. 소박한 모습의 롯지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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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사이트에서 본 마나슬루 히말의 마지막 모습. 이곳을 지나면 이제 더 이상 마나슬루 산군을 볼 수 없다고 해서 한참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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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오르니 완연한 산간 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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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캐고 있던 마을 아낙네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형적인 구릉족 사람들이다. 드문드문 계속 마을집들이 나타났고 어슬렁거리는 소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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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는 염소떼가 바위에 올라가 풀을 뜯고 있었다. 새로 짓고 있는 롯지도 있다. 트레커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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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이 있는 것은 경작지에 짐승들이 못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길은 계속 계곡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개울물 같았던 두드콜라가 이제는 제법 큰 강이 되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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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15분 초우따라가 있는 언덕에서 마지막 휴식. 모두 조금 지친 상태다. 다시 운행을 시작하자 곧 메밀밭에서 수확중인 가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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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멀리 오늘의 목적지 띨제가 보였다. 전깃줄이 보이는 제법 큰 마을이다. 곧 마을 입구의 마니월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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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중인 학교는 텅 비어 있다. 그리고 바로 마을의 대문인 카니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카니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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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여아 둘이 당차게 소를 몰고 와 밭으로 보내는 모습이 귀여워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띨제 마을은 견고하게 쌓은 돌집이 서로 붙어 있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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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수도를 지나 끝 부분에 캠프사이트가 있다. 오른쪽 움막이 주방이다. 백일홍과 다알리아가 한창인 푸른 화원에 들어서니 지난 며칠 간의 고산지역이 먼 옛일로 느껴졌다.

 

 

 

 

 

 

 

 

 

 


출처 : 마음에 여유와 안정을 주는 **쉼 터**
글쓴이 : 울산 멋쟁이 원글보기
메모 :
알맹이 빠진 로켓발사사업
‘액체로켓’ 기술확보 실패
2008년 02월 01일 | 글 | 박근태 기자ㆍkunta@donga.com |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511만8642m²의 터에 들어선 국내 최초의 우주발사장 나로우주센터. 12월 이곳에서는 과학기술위성 2호를 실은 한국형 우주로켓 ‘KSLV-1’이 우주로 발사된다.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우주 로켓이 발사되는 것. 내년 9월 KSLV-1 로켓은 한 번 더 발사될 예정이다. 그러나 2017년까지 나로우주센터에는 더는 발사 계획이 없다. 현재 상황에서는 3125억 원을△ 투입해 지은 나로우주센터가 꼬박 8년이나 ‘휴업’ 상태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자력발사 불투명해져

한국형 로켓 발사 계획은 전면 수정 중


지난해 11월 정부는 야심 찬 우주기술 개발 계획을 내놨다. 2020년 달에 궤도 탐사선 1호를, 2025년 달 착륙선을 탑재한 탐사선 2호를 보내겠다는 것. 이를 위해 한국형 로켓과 달 탐사선 개발을 포함한 우주개발에 3조6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한국이 추진해 온 우주개발 계획을 전면 수정한 성격이 짙다.

당초 정부는 2005년까지 러시아와 공동으로 한국형 로켓 KSLV-1을 개발하고, 2010년 KSLV-2호, 2015년 KSLV-3호를 독자 개발해 발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액체로켓 기술의 확보가 어려워지자 순수 자력 발사 시점을 전면 재조정한 것.

인공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르는 로켓은 2∼4단으로 구성되며, 이 중 맨 아래에 있는 1단 액체로켓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액체로켓 기술은 미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가 독점하고 있다. 한국이 손을 잡은 나라는 러시아다. 로켓의 공동 개발을 통해 핵심 기술을 배우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러시아에 2000여억 원이나 주고 사 온 KSLV-1의 1단 로켓 개발 과정에서 한국 과학자들은 거의 배제됐다. 러시아 흐루니셰프사가 조립한 1단 액체로켓을 그대로 사용한다. 한국은 기술 개발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2단 고체로켓 등 나머지 부분을 맡았다.


기술보호협정 때문에 발사 3년 연기돼

2002년 우주협력이 처음 추진될 때만 해도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러시아는 한국과의 공동 개발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태도를 바꿨다. 기술보호협정(TSA)이라는 새 협상 카드를 내세운 것. TSA는 액체로켓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이 지켜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핵심 기술을 확보하려는 한국과 기술 유출을 염려하는 러시아가 2년여에 걸쳐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TSA는 지난해 6월에서야 러시아 의회의 비준 절차를 마쳤다.

그 사이 KSLV-1 발사 시점은 2005년에서 2007년, 다시 2008년으로 미뤄졌다. 사업이 장기화되면서 개발비도 당초 3594억 원에서 5025억 원으로 뛰었다. 자력 발사라는 말도 슬쩍 빠졌다. TSA에 따라 1단 액체로켓은 기술 이전 없이 그대로 사오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액체로켓 기술은 2002년 자체 개발해 발사한 KSR-III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독자 기술 확보를 위해 KSR-III보다 성능을 2배 향상시킨 30t급 엔진을 2006년 만들었지만, 위성을 쏴 올리기에는 개선할 점이 많다.


“국산화율 목표 달성” vs “핵심 기술 빠졌다”


KSLV-1 사업을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통해 대형 로켓을 설계하고 조립하는 기술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며 “비록 액체로켓 기술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KSLV-1의 국산화율은 당초 목표대로 60%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 거품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민간 전문가는 “로켓이 우주로 나가는 데 가장 핵심은 액체로켓 기술”이라며 “막대한 개발비를 고려할 때 이번 사업의 성과를 명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 목표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의 액체로켓은 세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선진국의 견제로 개발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이용하는 메탄 로켓이나, 고체와 액체 연료를 이용하는 하이브리드 엔진 같은 신개념 로켓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미 공군도 차세대 로켓 엔진으로 메탄 로켓을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이들 로켓 기술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며 “국가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기관으로서 검증되지도 않은 기술을 고려할 수는 없다”고 했다.


연료로 본 로켓의 경제성

액체로켓, 추진력 강하나 발사때 마다 주입

고체로켓, 작동 간단하나 속도 조절 불가능


로켓은 연료의 종류에 따라 구분된다.

액체로켓은 고체로켓보다 추진력이 강하고 발사 뒤에도 점화와 소화를 반복할 수 있다. 주로 등유나 액체 수소가 연료로 쓰인다. 또 가볍고 원하는 궤도에 위성을 정확히 진입시킬 수 있어 1단용 로켓으로 쓰인다. 그러나 발사할 때마다 연료를 주입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군사용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한국은 2002년 과학기술로켓 KSR-III 발사에 성공해 액체로켓 기술을 일부 확보했다.

고체로켓은 일단 점화하면 속도 조절이 불가능하고 작동이 간단해 지상에서는 주로 군사용 미사일에 사용된다. 우주에서는 1단 로켓이 떨어져 나간 후 2단이나 3단용으로 사용된다. KSLV-1에도 2단용으로 고체로켓이 이용된다.

최근에는 메탄 로켓과 하이브리드 로켓이 주목받고 있다. 메탄 로켓은 값싸고 재활용이 가능하다. 액체 산소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는데, 엔진 배관에 검댕이 생기지 않아 여러 번 반복해서 쓸 수 있다.

하이브리드 로켓은 고체와 액체 연료를 섞은 물질을 연료로 쓴다. 2004년 시험 비행에 성공한 민간우주선 스페이스십원이 이 로켓을 사용했다. 메탄 로켓과 하이브리드 로켓은 주로 우주여행용 민간우주선에 도입될 전망이지만, 일반 위성 발사에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는 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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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 - 빔탕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고소적응일-빙하호수 방문)

3,680m

3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 티베트 국경 방문

4,2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20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라르키아 라를 넘어 빔탕으로

2007. 10. 26(금)


 

3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감 탓인지, 아니면 황홀한 달밤을 본 탓인지 잠을 푹 자지 못했다. 텐트 안은 0도로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텐트 안이 영하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물통의 물에 살얼음이 어는 경우는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침낭속에서 모닝콜을 기다렸다. 짐은 대부분 어제밤 미리 싸두었다. 잠시 후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지더니 빠상이 어김없이 "띨레리~"하며 차를 가지고 왔다. 오늘 아침 세숫물은 생략이다.

뜨거운 홍차로 속을 덥힌 후 짐을 챙겨 식당텐트로 갔다. 밖으로 나오니 아주 춥다. 영하 10도는 될 것 같다.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다행히 모두 어제보다 컨디션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식욕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인지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있다. 오늘 긴 일정을 생각한다면 잘 먹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0-brynje_arctic.jpg새벽 운행이 추울 것에 대비해 어제 잘 때 입은 브린제 악틱(Brtnje Arctic) 고소내의는 그대로 입었다. 어제까지는 잘 때만 입었다. '고소내의계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내의는 원래 남극이나 북극 등 세계 오지탐험을 위해 노르웨이의 브린제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제품 설명에 의하면 안감은 브린제 고유의 메라클론 망사조직으로 되어 있어 내부의 땀을 신속하게 배출하고 겉감은 100% 메리노울로 직조하여 외부 한기를 차단할 뿐 아니라 내부 발산열을 가두어 보온력을 높혀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옷에도 결점이 있으니 그것은 부피와 무게가 다른 고소내의에 비해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원정대처럼 고산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몰라도 15일 트레킹 중 이삼일 정도만 고산에 머무는 코스에는 굳이 무게와 부피에 대한 부담이 큰 이런 장비까지 가져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4000m 이상에서 제법 오래 머무는 쿰부 서키트 트레킹 때는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옷을 2년 전부터 토굴에서 입고 있다. 겨울이 되면 내가 거주하는 방안은 기온이 10도 내외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 난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했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난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땅이 거칠어 다니기 불편하다고 모든 땅에 부드러운 가죽을 깔 수 없다. 너의 발만 가죽으로 싸면 온 세상을 가죽으로 싼 것과 마찬가지다."

이말은 원래 현상계는 자기의 마음 상태에 따라 보이므로 모순되어 보이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는 비유의 말씀이다. 그 말에 힌트를 얻어 나도 넓은 공간의 난방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난방이 필요한 내 몸을 직접 따뜻하게 하는 옷에 신경쓰기로 했다. 보온 기능이 뛰어난  등산복은 그 목적에 제격이다.

토굴에서 브린제 내의와 폴라텍 파워스트레치 상하의는 기본이다. 등산양말을 신고 상의는 우모복을 하나 더 걸친다. 목에는 네팔의 특산물 파슈미나 목도리를 두른다. 그리고 빵모자로 마무리 하니 천하가 태평하다.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은 추운 산골살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무리 방이 춥다해도 히말라야  4천 고지의 페리체 롯지보다 따뜻하니 견딜만하다.  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샤워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매일 짐을 싸지 않아도 되고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침낭에 들어가지 않는 잠자리는 편안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집에 머무는 것이 제일 편하다. 돈도 들지 않는다. 짐을 챙기느라 몇 날 며칠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공항까지 끙끙대며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아도 된다. 고소도 없고 두통이나 식욕부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춥고 힘든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 할까? 사람마다 각자 이유가 있을 것이나 인간사를 관통하는 다음의 한 마디 말은 트레킹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

코 아래 얼굴 전체를 가려주는 안면마스크(face mask)와 머리 전체를 뒤집어 쓰는 바라클라바(balaclava)도 이번에 준비했다. 오늘 새벽 단 몇 시간만 필요한 장비지만 없으면 고생이다. 2000년 안나푸르나의 토롱 라를 넘을 때와 2002년 쿰부의 촐라패스를 넘을 때 추워서 혼이 난 경험을 한 이후로 트레킹할 때마다 추위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바바클라바는 써보니 너무 답답해 안면마스크를 쓰고 고소모자를 눌러썼다.

몸은 추위를 느끼면 자동적으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심장에서 먼 손끝이나 발끝의 말초혈관으로 가는 혈액을 줄인다. 그 결과 그곳은 체온이 떨어진다. 만일 추운 상태가 계속되면 몸은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말초혈관으로 가는 혈액공급을 줄이다가 마침내 단시킨다. 혈액이 중단되면 세포가 괴사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동상이다. 그러니까 동상은 문자그대로 '수뇌부'가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시키기 위한 최선의 조치로 생기는 현상이다. 손발이야 잘라도 살 수 있지만 심장이 멎으면 바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텐트에서 나오자마자 세르파들과 포터들이 텐트를 철수시키기 시작한다. 어둡고 추운 새벽에 철수작업을 하느라 고생이 많다. 장갑도 없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정말 그들은 아무리 임금을 받고 고용된 사람들이지만 레이놀즈의 말대로 '인간트럭'이 아닌 '전문노동자'로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짐을 지고 고산을 오르는 일만큼은 지구상에서 네팔사람을 따라 갈  종족이 없다.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를 터전으로 살고 있으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몇 달 전 우연히 디스커 버리채널에서 방영한 <에베레스트, 한계를 넘어서(Everest, Beyond the limit)>를 보았다. 2006년 봄 뉴질랜드인 러셀 브라이스가 지휘하는 상업등반대의 에베레스트 등정 상황을 기록한 내용이다. 6부작이라는데 다 보지는 못하고 점심시간에 어쩌다 나오면 보았다. 내용은 등반 도중 악천후로 동상을 입어 두 다리를 잃었지만 의족을 달고 나선 사람, 암수술을 받고도 참가한 사람, 오토바이 사고로 온 몸의 뼈를 쇠로 이어붙이 사람, 무산소 등정을 시도하는 천식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승리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편에서는 등반대원 중 한 명이, 하산 때 죽어가는 등반가를 발견하지만 구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그 사람을 그대로 두고 지나가는 등반가들이 비정하다는 여론이 있지만 그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8000m  고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오르는 길 가에는 그렇게 죽은 사람의 시신이 많이 있다고 한다, 7년 전쯤 <산>지에서 그런 시신이 방치되어 있는 비인간적인 모습의 사진을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프로에서 내가 받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의지의 군상들이 벌이는 인간한계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다. 캠프 2인지 3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 캠프를 차리고 대장이 세르파 6명에서 2km의 로프를 주고 정상까지 로프를 설치하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 지난 후 무전이 날아온다. "대장님, 모두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다. 정상에 한 번 올라가보겠다고 아래에서 고소 등으로 갖은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세르파들은 이웃집 마실 가듯이 가볍게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무거운 로프와 산소통을 매고. 원정대원들이 할 일은 그들이 깔아 둔 로프를 잡고 오르는 일이다(물론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히말라야 세르파들의 강인함과 위대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진정한 등반은 알파인 스타일의 단독 등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히말라야 14좌를 처음으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 1944~)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메스너는 1975년 가셔브룸 1봉을 등정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루트로 등정을 한다. 게다가 산소용구, 고소포터, 중간캠프, 고정로프를 쓰지 않는 순수한 알파인 스타일로 올라간다. 그는 알프스의 4000m 급 산을 오르는 방식으로 8000m 급 고봉을 사흘 만에 올랐다. 이런 등반방식은 전통적인 방법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죽음을 무릅쓴 도전이기에 메스너의 성공이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로부터 8000m 고봉에 대한 도전 방식이 바뀌게 된다. 메스너는 8000m 급 고봉 14개를 처음으로 모두 오른 사람이다. 게다가 그것도 쉽게 오른 것이 아니라 알파인 방식으로 올랐고, 또 한 시즌에 8000m 이상의 고봉 3개를 등정하는 해트트릭도 한 사람으로 20세기 최고의 등반가라고 한다. (향기로운 책글방 1163호,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마운틴북스)>에서 인용 )

등반의 세계에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등로주의(登路主義)가 있다. 등정주의는 루트에 무관하게 정상 등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등로주의란 보다 어렵고 험난한 루트를 택해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이다. 세계적인 등반가들은 당연히 등로주의를 추구해왔고, 한국 산악인들 역시 등정주의에서 점차 등로주의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AppaSherpa.jpg그런 메스너도 네팔 세르파들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 산악인과 비교할 때 출중할 뿐이다. 2002년 쿰부트레킹 때 남체바자르 서쪽 타미(Thame)의 서미트 롯지에서 머물 때 롯지 주인인 압빠 세르파(Appa Sherpa, 1962~ )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롯지 식당 벽에는 얼마 전 에베레스트를 12번을 올랐다고 해서 기네스북에서 수여한 세계기록증이 식당에 걸려 있었다.

어릴 때부터 원정대와 트레킹 팀의 포터 일을 해온 그는 1990년 뉴질랜드 팀의 세르파로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2007년 5월 17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따져보니 17년 동안 매 년 한 번씩 오른 셈이다. 만일 그가 원정대처럼 스폰서의 후원을 받아 마음먹고 오른다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가장 빠른 기간 내에 마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는 항상 알파인스타일로 오른다. 왜냐하면 그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원정대가 정상에 잘 오르도록 로프를 깔고 대원들을 안내하기 위해 고용한 세르파이기 때문이다. 네팔에는 그와 같은 세르파들이 부지기수다. 압빠 세르파는 2006년 미국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가족(아내와 네 자녀)이 모두 유타주의 드래퍼(Draper)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현지 등산점에서 일하고 강의도 하며 필요하면 에베레스트를 안내하는 세르파 일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신기록은 계속 진행중이다. 말을 하다보니 잘 알지 못하는 등반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세르파와 포터가 없으면 히말라야 등반도 없고 트레킹도 없다. 그러니 항상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자."

*   *   *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4시에 출발했다. 오늘 구간이 마나슬루 트레킹에서 제일 힘든 구간이다. 그리고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몇 안되는 최고의 풍광을 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다람살라에서 라르키아 라까지 763m 올라간 후 그곳에서 빔탕까지 1493m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트레킹이든 고개를 넘는 구간은 다 비슷한 상황이니 특별할 것은 없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야크와 말이 넘을 수 없는 촐라패스보다는 쉬울 것이다. 촐라패스와 고쿄 사이에는 초오유에서 내려오는 고줌파 빙하를 횡단하여 건너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에서 토롱페디 하이캠프(4800m)에서 토롱 라까지 616m 올라갔다가 묵티나트까지 1616m 내려간다. 쿰부 트레킹에서 촐라패스를 넘자면 닥락에서 고개까지 720m 올랐다가 종라까지 570m 내려간다. 랑탕에서 헬람부로 넘어가는 고개인 로우레비나 패스는 5000m 이하라 조금 수월한 편이지만 그곳도 4321m의 고사인꾼드에서 383m 오른 후 고개 넘어 로우레비나 페디까지 1060m를 내려가는 일정이다.

고개를 안 넘으면 모를까(안나푸르나 라운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넘으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고개를 넘지 않는 4000m 이하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아무래도 설산의 멋진 풍광을 멀리서 보기 때문에 웅장한 느낌이 떨어진다. 예외가 있다면 ABC 트레킹처럼 장엄한 안나푸르나 남벽의 일출을 코앞에서 보는 경우인데, 그 경우 역시 막다른 골목으로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는 하산길은 큰 재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길은 바로 오르막이다. 어두운 새벽에 반딧불 같은 헤드렌턴 불빛이 날아다니고 있다. 타시가 앞장서고 내가 제일 뒤에서 불을 밝혔다. 이번에 오면서 강력한 헤드랜턴을 하나 마련했다. 지금까지 쓰던 프랑스의 페츨(petzl) 헤드랜턴은 작년 무스탕 벽화 감상 때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좀 더 강력한 후레시가 필요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뒤진 끝에 독일제 헤드랜턴 루시도를 발견했다.

lucido.jpg이 헤드랜턴은 정말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자동차의 하이빔처럼 120m 전방을 강력하게 비추는 서치라이트 기능은 압권이다. 트레킹 첫날 밤중 아루갓바자르를 가는 구불구불한 찻길에서 나는 이 랜턴을 든 손을 창문밖으로 내밀어 길을 비춰주었다. 차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어두운 밤길에서도 불도 없이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가는 포터들을 뒤에서 비춰주었다.

평소에는 2단 정도면 족하다. 그러나 오늘 같은 달이 진 후의 어두운 새벽에는 뒤에서 서치라이트로 비춰주면 앞에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내가 살 때인 2006년 8월에는 74,000원 했는데 최근 새 모델이 나오면서 값이 많이 올라 108,000원이나 한다. 그래도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사 둘만하다).

트레커들은 각자 헤드랜턴이 있으니 알아서 잘 가지만 얼마 후 따라 온 포터들은 어두운 길을 불도 없이 추월해 간다. 포터들에게도 오늘 새벽은 헤드랜턴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별로 가져오지도 않고 여행사에서도 지급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네팔의 현실이다. 한참 비춰주며 따라갔다. 속도가 빠른 포터들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dharamsala-larkyala.jpg두꺼운 고소장갑을 껴도 손이 시럽다. 안면마스크가 없었다면 얼굴이 고생했을 것이다. 모레인 언덕길을 오르는 시작부터 모두들 힘들어 한다. 라르키아 라까지 가는 길 전반부는 라르키아 피크에서 내려오는 빙하 모레인지대를 따라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오늘부터 보명화 보살님의 배낭은 타시가 맡고 무진행 보살님의 배낭은 밍마가 맡았다. 이 두 분의 컨디션이 제일 좋지 않다. 고소와 식욕부진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뒤에서 보니 계속 발걸음이 늦어진다. '쉬면서 오르기' 주법을 따라하도록 내가 앞장을 섰는데 얼마나 잘 따라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출발한지 1시간 지나자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왼편으로 빙하호수가 보였다. 타시가 돌맹이를 던지니 호수 위에서 팅겨 나간다. 꽁꽁 얼어 있다. 6시 40분, 일출이 시작되어 해가 서쪽 산 꼭대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이미 만년설 지대로 들어와 주변에 눈이 쌓여 있다.  오르막이라 30분 이상 계속 운행하기 어려워 틈나는 대로 쉬면서 운행했다. 제법 많이 쌓인 눈길로 접어들었지만 얼어 있고 러셀이 잘 되어 있어 체력이 문제지 운행하기에는 어렵지는 않다. 햇볕 속으로 들어오니 일단 추위는 가셨다.

오전 7시, 돌집이 있는 대피소에 도착했다. 키친보이 푸르바가 점심을 가지고 동행하고 있다. 배는 고프지 않고 오직 목이 말라 보온병에 담아 온 레몬 티 한 잔씩 마셨다. 5000m 가까운 고도의 눈길에서 3시간 운행을 한 탓에 모두들 지쳐 양지녁에 돌 위에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다. 아직 정신이 말짱한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나도 두통이 조금 있지만 참을 만하다. 앞으로 두 시간만 가면 고개가 나올 거라고 격려를 했다.

고소를 느끼는 사람은 다이아목스를 먹고 두통이 있는 사람은 두통약을 먹었다. 그곳에서부터 라르키아 라까지는 예상보다 40분 늘어난 2시간 40분 걸렸다. 2시간 40분이라고 하니 가벼운 운행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4000m 이하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5000m 고도에서 두 시간 이상 오르막을 오르는 일은 평지의 10시간처럼 느껴진다.

예전 기록을 보니 2000년 토롱페디 하이캠프에서 토롱 라까지 2시간 30분 걸렸다. 그 때도 무척 힘들었다. 2002년 쿰부의 촐라패스는 출발하여 고개까지 점심시간 포함하여 무려 7시간 15분 걸렸다. 제일 춥고 힘들었다. 2004년 랑탕 헬람부에서는  3641m의 로우레비나 페디에서  4700m의 로우레비나 패스까지 4시간 50분 걸려 올라갔는데 그 때는 중간 모레인 지대에서 간식을 먹고 오르는 등 그리 힘들었다는 기억은 없다(그래도 현장에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라르키아 라로 가는 길은 낮은 언덕을 계속해서 넘는 일이다. 이정표로 언덕에 세워 놓은 말뚝을 보고 저곳에 가면 고개가 보이려나 하는 기대를 갖는데 막상 올라가면 또 다른 말뚝이 멀리서 "나 잡아 봐라~" 하며 서 있다. 그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시야가 너무 탁 터진 것도 걷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운을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그만큼 풍광이 좋다. 끝없이 이어진 넓은 설원과 주변 설산의 풍경은 과연 밥(Bob)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주었다. 라르키아 라에 대한 그의 글은 이번 마나슬루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히말라야의 많은 고개를 넘었다. 그러나 라르키야 라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장엄한 고개 중 하나이다. 아마 가장 장엄할 것이다. 우리 너머로 고개는 빙하로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고 빙하 위로는 거칠 것 없는 수 천 미터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대부분 7000m미터 급(힘룽 히말 등)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도 있다. 안나푸르나는 앞으로 계속 보게 될 것이다. (Bob Rosenbaum, Bob's explores the Manaslu and Nar-Phu region, 2004)

눈표범의 발자국을 본 것은 뜻밖이었다. 눈표범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영광이 없겠지만 은밀하게 움직이는 눈표범을 직접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BBC 다큐멘터리 촬영팀은 위장막을 치고 몇 주씩 기다려서 겨우 찍었다. 우리에게 이런 행운이 온 것은 눈이 내린 덕분이다. 그런데 이 높은 곳까지 어슬렁거리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결론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이곳에도 산양 등이 서식한다는 말이다.

추위는 가셨다. 바람이 불지 않아 이제는 오히려 더워 고소모자를 넓은 챙의 운행모자로 바꾸어 썼다. 장갑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아윈드 스토퍼도 벗었다. 폴라텍 파워스트레치 차림만으로도 충분한 날씨다. 그리고 안면마스크도 벗으려다 설면에 반사되어 오는 복사열이 엄청 뜨거워 그대로 착용했다. TV에서 원정대들의 얼굴(특히 코)이 시커멓게 탄 것이 이 복사열에 의한 화상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뜨겁길래 저 정도일까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니 실감이 난다.

설원에서는 설맹의 위험도 크다. 설맹이란 에서 반사 햇빛 때문 각막이나 결막 일어 염증으로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선글라스를 껴도 눈이 부실 정도다. 도대체 눈에 반사되는 햇빛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서 선그라스를 슬쩍 내려보았다. 그랬더니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이 들어오는데 마치 예리한 칼이 눈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시가 선글라스가 없는 포터들을 위해 일찍 넘자고 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이런 넓고 긴 설원은 처음이다. 랑탕의 로우레비나 패스 넘어 고사인 꾼드 쪽으로 넘어갔을  때 잠시 눈밭을 걸었지만 이처럼 온 사방이 눈으로 둘러싸인 곳은 그리 길지 않다. 촐라 패스도 정상 부근에 있는 만년설을 지나면 그뿐이다. 토롱 라도 눈이 내려 끝없는 설원이 펼쳐진 사진을 보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전혀 내리지 않아 달표면을 걷는 듯 삭막했다.

눈이 있으면 더 힘들기는 해도 그림이 좋다. 그러나 눈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 11월 이곳을 지나간 쉴즈부부와 한달 후 지나간 칼스텐은 모래땅만 보았다.  2004년의 밥과 2005년 12월 안드레스는 눈밭을 지나갔다. 운이 좋으면 우리처럼 며칠 전에 눈이 내려 굳어 있는 상태에서 다른 팀이 먼저 러셀을 해 놓는다. 운이 보통이면 황량한 모레인 지대를 지난다. 운이 나쁘면 눈이 하루나 이틀 전 내려 새로 눈길을 만들며 가야 한다.

가장 운이 나쁠 경우는 눈이 내릴 때다. 이때는 출발 전 기상 상태를 보고 웬만하면 출발하지 말아야 한다. 히말라야의 눈이나 비는 며칠씩 계속 내리는 법이 드무니 하루나 이틀 기다리면 그친다. 눈이 계속 내린다면 눈이 그쳐도 당분간 길을 뚫기 어려우니 미련만 남겨두고 되돌아와야 한다. 목숨까지 담보하면서 고개를 넘을 필요는 없다. 마나슬루 여신의 뜻으로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다. 대자연 속에서는 항상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가 몸에 이롭다.

모두들 지쳐 비몸사몽의 상태다. "내가 짱군가 보다. 뭐하러 이 힘든 곳을 왔지? 절대로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힘이 드는 운행이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편의시설이 완비된 도시의 생활을 하다보면 입에 맞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의 고마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일상이 따분해지면 다시 히말라야의 설산을 꿈꾼다. 그때는 당시의 고생은 옛날 전설처럼 실감이 나지 않게 된다.

오전 9시 40분, 드디어 라르키아 라에 도착했다. 백산스님이 일착이고 내가 두 번째다. 수직으로 오르는 마지막 5m가 그렇게 힘들 수 없다. 돌아보니 가쁜 숨을 쉬며 오는 동포들이 힘들어 보인다. 10여 분 지나 차례로 도착했다. 중간에 오던 혜명화 보살은 꼴찌로 쳐지더니 마지막 오르막 아래에서 "스님, 저는 여기서 쉬면 안돼요?" 한다. "뭐, 거기서 쉬나, 여기서 쉬나 관계없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낭을 풀더니 그 위에 엎드린다. 지치긴 지쳤나 보다. 잠시 후 다시 말했다. "웬만하면 올라와서 쉬지?"

무진행 보살님은 오자마자 물부터 정신없이 마신다. 이삼일 음식을 잘 못먹어 에너지가 많이 부족하다. 입맛이 여전히 없는 것이 문제다. 원래 이곳에서 도시락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아무도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초코릿바도 사양한다. 이럴 때일수록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너무 지쳐 식욕이 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초콜릿바는 나와 스태프들만 먹었다. 나중에 고개를 내려 온 후 누군가 백산스님에게 어떻게 그 힘든 고개에 제일 먼저 도착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백산스님의 대답이 걸작이다.

"말 마세요. 얼마나 두통이 심한지 빨리 고개를 넘어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죽자사자 걸었습니다."

Manaslu_1133.jpg이곳에 걸려고 보드나트에서 산 타르초와 카타를 카고백에 넣는 바람에 허공만 쳐다보고 말았다. 어제 저녁 식당텐트에서 '카고백에 있는 타르초를 배낭에 옮겨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돌아서서 잊어버렸다. 산소가 부족한 고산이 뇌에 미친 영향이다(나중에 타르초와 카타는 토굴에 걸었다). 산 아래쪽으로  지붕이 미완성인 대피소용 돌집이 하나 있다.  안드레스는 "아마 이 건물은 삼도 사람들이 지었는데 이곳을 지나가던 어떤 상인들이 나무를 뜯어 화목으로 썼을지 모른다."라고 쓰고 있다.

갑자기 라르키아 피크 상단부에서 연기가 나더니 구름으로 변한다. 눈사태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처음에는 아주 약한 연기처럼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 내려오는 모습으로 변한다. 사실은 모두 눈이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눈사태를 보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운행중이었다 해도 길과 산 사이에 낮은 계곡이 완충지대로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그래도 눈 바람은 피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열흘 전 내린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오늘 오전 10시, 햇볕에 녹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쓸려 내려온 것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눈사태 위험이 있는 곳은 ABC와 다울라기리 트레킹인데 그 구간을 통과할 때는 반드시 햇볕에 눈이 녹기 전인 오전 일찍 지나가야 한다.

이번 트레킹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마모트에 산양에 눈표범 발자국에 눈사태까지. 마나슬루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티의 발자국까지 보았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2004년 이곳에서 밥은 예티의 발자국을 보았다고 한다. 사진이 없으니 증명할 수는 없으나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yeti_3.jpg예티라는 말은 티베트어 '예'(yeh-눈의 계곡)와 '테'(teh-사람)에서 왔다. 고산지대에 사는,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포착하기 어려운 동물에 대한 개념은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도 적용되어 왔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것을 예테(ye-teh), 마테(mah-teh) 혹은 메턴 캉미(mehton-kangmi)라고 부르는데 메턴 캉미는 '설인'으로 번역된다. 예티 발자국 사진은 1951년 에릭 쉽턴이 에베레스트에서 찍은 것이 가장 유명하다.

20여 분 쉰 후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15분 거리의 두 번째 고개로 갔다. 이 두 고개 사이는 거의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나누는 것은 편의상 붙인 것이고 실제로는 라르키아 라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이라고 해야 한다. 전망은 빔탕 방향인 동쪽이 좋다. 서쪽 고개는 북쪽의 산비탈이 전망을 비스듬하게 가로막고 있다.

trel_14_sat_1.jpg동쪽 고개에서 본 풍광은 과연 소문대로 굉장하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서쪽인 삼도쪽 풍경은 줄곳 보던 모습이라 이젠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동쪽은 새로운 풍경이다. 강인한 인상을 주는 검은 바위 연봉인 키치게(Kichke) 히말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그 뒤 왼편으로 람중히말과 안나푸르나 2봉(7937m)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오르편으로는 강구루(Kang Guru, 6981m)와 힘룽(Himrung) 히말(7125m)이 고깔모양의 머리를 보여주고 있다. 히말라야는 역시 이런 호쾌한 파노라마를 보는 기분이 제일이다.

일단 동쪽과 서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조금 쉬다가 10시 35분 하산을 시작했다. 그래도 두 고개에서 머문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된다. 급경사 내리막길이라고 하지만 오르막길 보다는 쉽다. 잠시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오더니 말 그대로 고꾸라지는 듯한 비탈길이 나왔다. 눈도 이제 많이 녹은 상태라 발이 빠진다. 아이젠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차라리 눈길이 낫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미끄러운 모래길이라 운행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동쪽 경치는 고개보다 내려오는 도중이 더 좋다. 고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체오체오히말(Cheo Himal, 6912m)까지 파노라마로 보인다. 아래쪽으로는 빙하지대와 파란 빙하호수도 보인다.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스레 걸어야 하니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여유는 없지만 잠시 서서 쉴 때마다 마음껏 풍광을 즐겼다. 길은 지그재그로 끝없이 내려가고 있다. 이제는 눈이 질퍽하여 가끔 미끄러지기도 한다.

멀리 앞에 가던 보명화 보살님이 미끄럼을 타며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잘못하면 빙하 계곡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까이 가 보니 정말로 그랬다. 얼마 전 통화를 할 기회가 있어 그 때 왜 미끄럼을 탔느냐고 물어보았다(네팔에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이 역시 깜박했다). 대답은 일부러 미끄럼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도 힘들어서"였으며 곧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는 내리막길도 힘든 법이다.

12시 15분, 눈밭이 끝나고 모레인지대가 시작되었다. 앞에 가던 타시는 쏜살같이 내려가 이미 모레인 아래에 앉아 있다. 힘이 드니 슬며시 짜증이 났다. 고개에 오를 때에도 먼저 가 버려 따라가던 사람들의 기운이 빠졌다. 각자 자기의 속도로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웬만하면 속도를 비슷하게 해야 뒤에 따라가는 사람의 힘이 덜 빠진다. 하물며 가이드라는 작자가 손님들은 내팽개치고 혼자 휭하니 가 버리다니.

제일 먼저 내려가 인상을 잔뜩 쓰며 앉아 있는 타시를 불렀다.

"타시, 당신은 트레커입니까, 가이드입니까?"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타시가 긴장한다.
"써, 가이드입니다."
"가이드라면 항상 트레커와 같이 움직여야 되지 않나요? 내리막길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약품가방까지 든 당신이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떻합니까? 나는 당신이 트레커인줄 알았어요."
"소리, 써."
타시가 계속 죄송하다고 한다.

일단 알아들었을 것이라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어떤 식으로 가이드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2004년 랑탕 헬람부 트레킹 때 삼툭도 오늘과 비슷한 일로 나에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까다로워 그런 것이 아니다. 짐만 나르는 포터라면 상관없지만 가이드는 항상 고객을 밀착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임금도 더 많이 주는 것 아니겠는가.

4600m.jpg시간을 보니 12시 30분이다. 현재 고도는 4600m. 2시간 동안 줄기차게 내려왔지만 고도를 보니 600m밖에 내려오지 못했다. 이곳의 고도는 다람살라와 비슷하다. 목적지 빔탕이 3720m니 아직도 1100m를 더 내려가야 한다. 풍경은 이곳도 굉장하다. 바로 오른편에 있는 장엄한 산과 빙하는 다른 어느 곳과 견주어도 자랑할 만하다. 마나슬루 트레킹을 "네팔 트레킹에서 가장 장엄한 풍광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칭송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곳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세 개의 거대한 빙하가 하나로 합쳐진다.

풍광은 좋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몸은 지쳤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펼쳤지만 모두 식욕이 없어 삶은 계란만 먹는둥 마는둥 한다. 보온병에 담아 온 레몬티도 다 마시고 없다. 물통의 물도 달랑거리고 있다. 타시가 밍마를 먼저 보내 주방팀에게 누룽지와 물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어떨지 묻는다. 여기서 빔탕까지 얼마 걸리느냐고 물으니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가깝다고!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렸다가 누룽지를 먹고 힘을 내어 내려가도 될 것 같다.

밍마가 임무를 지니고 내려갔다. 동포들은 모두 편안한 자세로 쉬었다. 실제로는 쓰러진 모습이다. 에너지 고갈인 상태인데다 아직 고소의 영향권에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다. 조금 쉬다가 문득 기왕이면 내려가다가 만나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 1시 경 모두 깨워 출발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결정이었다. 네팔리들이 말하는 시간은 항상 자기들 기준으로 말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느긋했던 것이다.

조금만 생각하다면 1100m 하강을 한 시간에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적어도 두 시간 이상 걸린다. 길은 한결 수월했다. 키치케 히말은 여전히 앞에서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작은 고개에서 잠시 쉬면서 체오 히말과 빙하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제부터는 빙하 모레인 언덕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빙하가 보이지 않는다.

Manaslu_1190.jpg그런데 내리막길이 완만하여 도대체 4000m 이하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며칠 전만 해도 언제 수목한계선으로 올라가나 조바심을 냈다. 이제는 반대로 언제 수목한계선 아래로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라르키아 라는 운무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슬슬 운무가 낄 시간이 되었다. 2시 30분이 되어서야 처음 나무를 만났다. 이제야 수목한계선으로 내려온 것이다. 아직 목재는 아니고 '관목 형님뻘' 정도의 가는 가지가 있는 나무다. 가지마다 실 같은 모양의 이끼류 식물이 붙어 있다. 오후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운무의 습기로 생긴 현상이다. 산 아래 작은 개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그곳에서 쉬는데 모두 물이 떨어져 목이 말랐다. 각자 지니고 온 1리터의 물이 모자랐다. 대부분 고개에 올랐을 때 이미 3분의 2를 마셨다. 목은 타는데 물이 없으니 난감하다. 그제서야 이 지점에서 쉴즈부부 팀이 정화제 아이오다인을 이용해 냇물을 마셨다는 대목이 기억났다.

약 2시간 후 우리는 포터들이 자기들의 점심을 짓고 있는 작은 평지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배낭을 풀고 1시간 가량 쉬었다. 우리는 고산병과 싸우고 다이아목스를 먹느라 물을 많이 먹은 탓에 모두 물이 떨어졌다. 톰이 아이오다인 정제를 찾아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근처 개울물을 물통에 채우고 아이오다인을 넣었다. 빌도 중화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계속 내려가는 도중에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 (Tom & Louisa Shields, )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정화제를 사용한 적이 없다. 롯지트레킹 때는 끓인 물을 사먹을 수 있으니 굳이 물값을 아끼느라 정화제를 쓸 일이 없었다. 타시에게 물병을 주며 냇물을 좀 떠오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 히말라야 계곡의 물을 몇 번 먹은 적이 있고 별 탈이 없었다. 이곳은 빙하에 가까운 물이나 지류 계곡이라 그런지 물이 맑다. 랑탕의 랑시샤 카르카에서는 맑은 물이었어도 석회냄새가 진하게 났다. 다행히 이곳은 물맛이 좋다. 모두들 한 모금식 마셔 목을 축였다.

그 때 물은 잘 먹었지만 돌아와 레이놀즈의 글 <트레킹 중 건강문제(On-Trek Health Matters)>를 보다가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경련, 설사, 탈수를 일으키는 불결한 기생충인 편모충은 빙하에서도 살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모험을 하지 않고 정화제 아이오다인을 준비할 생각이다.

길은 점점 넓어졌다. 몇 군데 넓은 초지도 지났다. 운무가 점점 올라와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오후 2시 40분, 주방팀인 빠상과 푸르바가 기다리고 있는 풀밭에 도착했다. 어찌나 반가운지 저절로 "만세~"하는 소리가 나왔다. 멀리 모레인 언덕 아래 끝으로 빔탕이 보였다. 그곳까지는 아직 한참 더 가야 한다.

중국제 보온병에 누룽지를 끓여 담아오고 감자를 삶아와 맛있게 먹었다. 무진행 보살님은 아직도 식욕이 없어 누룽지는 별로 먹지 않고 숭늉만 마신다. 모두들 지쳐 있지만 이제 목적지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한결 느긋한 표정이다. 가장 어려운 코스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수고한 빠상과 푸르바에게 팁으로 100루삐씩 주었다. 안주어도 당연히 제공하는 서비스지만 기분이 좋으면 가끔 특별팁을 주는 것도 좋다.

아주 넓은 초지가 있는 빔탕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20분. 소박한 롯지가 몇 개 보인다. 긴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새벽 4시에 다람살라를 출발했으니 11시간 20분 걸렸다. 웬만한 사람은 9시간 걸린다는데 노약자가 대부분인 우리팀의 +2시간 20분은 그런대로 양호한 성적이다. 이미 텐트는 다 쳐 놓았다. 넓은 초지는 오늘도 우리팀의 독무대다.

타시에 의하면 우리를 추월했던 포터들은 대부분 오전 10시 30분 경에 도착했다고 하니 얼마나 빨리 고개를 넘었는지 알 만하다. 한 포터는 오전 8시에 도착했다고 해서 혀를 내둘렀다. 사고도 있었다. 한 친구가 눈길에서 넘어져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무릎에 약간의 타박상만 입어 절뚝거리는 정도다. 이 친구는 다람살라에서도 감기로 고생해서 약을 타갔다. 무진행 보살님이 가지고 온 한방파스를 붙여주고 진통제를 주었다. 여분의 파스를 주어 내일 또 붙이라고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나머지 4일간의 일정을 마칠 때까지 문제가 없었다.

라르키아 라를 넘었으니 마나슬루 트레킹에서 어려운 구간은 이제 다 마쳤다. 내일부터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라르키아 라를 넘은 기념으로 맥주 두 병(한 병에 270루삐)을 사서 건배를 했다. 3700고지라 밤이 되니 쌀쌀했지만 오랜만에 고소에서 벗어나 편안한 잠을 잤다. 감기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 - 빔탕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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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지 두 시간 지나 왼편으로 나타난 얼어붙은 방하호수. 길에서 한참 아래에있다. 6시 40분 일출이 시작되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에게 스패츠가 필요없다고 한 타시 자신은 스패츠를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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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대피소 오두막 앞에서 휴식. 5천미터에서의 3시간 운행으로 모두 지치기 시작했다.  6249m의 라르키아 피크가 손에 잡힐 듯하지만 실제로는 제법 멀다. 산 중간에 쌓여 있는 눈은 나중에 눈사태로 쏟아져 장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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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나나타는 오르막 언덕. 꼭대기마다 서 있는 말뚝이 약을 올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뜻밖에 눈표범의 발자국을 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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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언덕은 계속 되었다. 며칠 음식을 잘 먹지 못한 무진행 보살님이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가고 있다. 아무튼 대단한 노익장이다. 젊은 사람들도 모두 힘들어 헤매는 중이다. 힘이 드니 이 멋진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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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라르키아 라임을 알리는 타르초가 보였다. 제알 앞에 가던 백산스님이 길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고개에는 9시 40분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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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 마지막 주자인 혜명화 보살이 제일 힘들어 하고 있다. 고개에 도착하여 정신없이 물을 마시는 무진행 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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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고개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눈사태가 일어났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서 눈사태를 보는 것은 행운이다. 도중에 선글라스 알이 하나 빠진 타시는 카타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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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쉰 후 15분 거리의 두 번째 고개로 가다. 조그만 동산에 말뚝이 하나 서 있는 곳이다.  가는 도중 뒤를 돌아보니 팡푸치가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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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키아 라에서 서쪽과 북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히말라야 전체 트레킹 코스에서도 트레킹 도중 이렇게 풍광이 좋은 고개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 춥지도 않은지 밍마 세르파는 어제부터 계속 반팔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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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시 피곤모드로 돌아가 잠시 쉰 후 하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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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 내리막 눈길. 길은 중앙이 아닌 왼편 언덕으로 나 있다. 그래도 눈이 있어 모래길보다는 운행이 쉬웠고 경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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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해 미끄럼타고 내려가는 보명화 보살님을 백산스님이 놀라 돌아보고 있다. 그곳에서 보는 체오히말과 빙하는 정말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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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보이는 키치케 히말의 검은 바위 산 연봉. 이제 눈길은 끝나고 팍팍한 모레인 지대가 나타났다. 멀리 아래쪽 빙하 옆에는 쏜살같이 내려간 타시가 앉아 있다. 나중에 타시는 나에게 한 소리 들었다.

그곳에서 삶은 계란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각자의 취향대로 쉬었다. 아직도 고소의 영향이 빵빵한 4600m 지점이고 이미 8시간 30분 간의 운행으로 많이 지쳤다. 타시가 심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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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케 히말을 바라보며 다시 하산 시작. 마지막 언덕에서 본 체오히말과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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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좀처럼 4000m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 왼편 산모퉁이를 돈 후에도 한참 더 가야 빔탕이 나온다. 돌아보니  라르키아 라는 운무가 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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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팀 빠상과 푸르바가 누룽지와 삶은 감자를 가지고 마중나왔다. 꿀맛이다. 멀리 개여울이 흐르는 넓은 분지의 빔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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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산길에서 초지로 내려왔다. 그리고 오후 3시 20분, 롯지 몇 채가 있는 넓은 초지의 빔탕에 도착했다. 기나긴 하루의 운행이 끝났다. 마나슬루 트레킹은 오늘 일정을 끝으로 어려운 구간은 더 이상 없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텐트를 보니 반가웠다.


라르키아 라에서 본 서쪽 파노라마

라르키아 라에서 본 동쪽 파노라마

라르키아 라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는 도중 본 파노라마

4600m 지점에서 본 북동쪽 체오 히말과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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