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 9. 리히 - 시얄라 - 사마가온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휴식일.  빙하호수 방문)

3,680m

5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고소적응일.  티베트 국경 방문)

4,0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영혼의 산 마나슬루를 만나다

2007. 10. 21(일)


 

트레킹 둘째날 아침, 아직 텐트 안에 있는데 밖에서 "띨 레리~" 하는 소리가 들렸다. 띨 레리?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텐트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플라이를 여니 빠상이 홍차를 따르고 있다. 그러니까 ' 띨 레리'는 '티 레디(tea ready)'를 빠르게 한 말이었다. 이 소리는 그 후 매일 하루에 세 번 차 마시는 시간에 들려왔다. 남형 씨는 나중에 이 소리가 들을 때마다 "꼴 레리~"라는 말이 생각났다고 회고했다.

짐을 챙기고 텐트 안에서 차 마시고 세수하고 나와 아침을 먹는 일상은 여전하다. 이제는 이력이 나서 모두들 짐을 잘 챙긴다. 매일 아침이면 떠나는 유목민 생활이다. 그러나 몸만 빠져나오면 나머지 일은 알아서 다 처리해주는 우아한 유목민이다. 이런 편리함은 예전 식민지 시대 때 서양인들이 식민지 나라 하인들을 데리고 뻐기며 다니던 제도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보수를 주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변했지만 여전히 상하관계가 적용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7시 10분 출발. 동쪽 계곡이 열려 있어 해가 일찍부터 비춘다. 날이 맑아 하늘이 푸르고 깨끗하다. 길을 나서니 이곳 리히와 나디출리 사이에 있는 심낭히말(Simnang Himal, 6251m)이 잠시 보이다가 곧 무성한 소나무 숲에 가려졌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잡목이 없는 큰 소나무 숲 길을 걸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비히는 좀솜 위의 마을 까그베니(2800m)와 고도가 비슷하지만 풍경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까그베니에서 위쪽은 황량하고 건조하고 환상적인 침식과 풍화작용의 절벽 풍광이 펼쳐진다. 그러나 까그베니 보다 더 높은 이곳 비히에서 시얄라에 이르는 계곡은 몬순의 영향을 받아 울창한 삼림이 형성되어 있다. 비가 내리고 안내리고의 차이로 이같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천천히 내리막을 내려가 지류 계곡인 히난콜라(Hinan Khola)를 건넜다. 히난콜라는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지점에서 남서쪽에 있는 나디출리(Ngadi Chuli)와 히말출리(Hinmal Chuli) 사이의 능선에서 만들어진 리단다(Lidanda) 빙하에서 나온 물이 흐르고 있다. 콜라를 건너기 위해선 산기슭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6시에서 9시를 거쳐(여기에 다리가 있다) 12시 방향으로 타원을 반바퀴 도는 모양새다.

계곡을 건너 계속 우회전하며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앞쪽(북쪽)으로 보이는 쿠탕 히말이 우람하다. 출발한지 30분 후 계곡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고개마루에 우뚝 서 있는 초르텐 카니에 도착했다. 우리가 건너 온 계곡 뒤쪽으로 히말출리의 능선이 조금 보였다. 즐거운 산길이지만 당연히 오르막이 있어 힘을 좀 쓰야할 때도 있다. 초르텐과 긴 마니월을 지나고 건너편 계곡에 있는 마을도 보며 운행을 계속했다.  

manaslu 0607 HH  11  P 0325쇼(Sho, 2930m)마을 입구의 카니에는 리히에서 정확하게 1시간 걸린 8시 10분에 도착했다. 카니 옆 바위벽에는 파란 글씨로 "WELCOME TO MANASLU"라는 글이 쓰여 있어 마나슬루가 곧 나타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계곡이 시원하게 넓어졌다. 그리고 계곡 끝에 하얀 설산이 보였다. 마나슬루는 아니고 그 북서쪽에 있는 나이케 피크(Naike Peak, 6416m)다. 마나슬루 위쪽의 산군은 북서쪽으로 줄지어 마나슬루 북봉(Manaslu North, 7157m), 나이케 피크, 라르키아 피크(Larkya Peak, 6249m)로 이어지고 라르키아 라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티베트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라트나 출리(Ratna Chuli, 6767m)로 연결된다.

길을 가운데 두고 집들이 경작지 근처 여기저기에 그룹을 이루고 있다. 돌집에 너와지붕이다. 잘 마른 누런 보리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밭에는 외로이 혼자 보리를 따는 사람도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보리를 밑둥까지 베지 않고 꼭다리만 따 대나무 바구니에 담는다.

쇼는 마을이 둘이다. 첫 번째 마을을 지나 잠시 나오는 산길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던  한 노숙자가 우리가 지나가자 접시를 두드리며 노래한다. 앞에는 음식을 끓여먹는 시커먼 그릇이 타다 남은 나뭇가지 위에 있다. 언뜻 그 모습을 보고 무애가를 부르면서 유랑했다는 원효스님이 떠올랐다. 그냥 호기심만 가지고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심했다. 보시를 조금 했어야 했다. 그런 자비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절로 우러나와야 한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마나슬루 지역의 7000m 이상의 산들(*보우다는 6672m)

두 번째 마을에 들어서니 설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이곳도 마을 집들이 넓게 흩어져 있다.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는 곳에서 드디어 마나슬루가 나타났다. 트레킹 9일만에 마나슬루를 만나니 감개가 무량하다. 설산 아래 보이는 조그만 동산 위에 로(Lho, 3100m)의 곰빠가 보였다.

9시 10분, 로 마을 롯지 앞 테이블에서 쉬었다. 바람이 세게 분다. 로는 상당히 큰 마을이다. 마나슬루 북쪽에 위치한 마을 중 큰 마을로는 이곳 로와 오늘의 목적지 사마가온, 그리고 마지막 마을인 삼도가 있다. 물을 마시고 보명화 보살님이 늘 공급해 주고 있는 간식을 먹고 있으니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구경한다.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모른체 했지만 우리만 먹고 있자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곡 위로는 마나슬루와 그 북쪽 연봉이 보이고 계곡 아래쪽으로는 가네시 히말의 끝바락이 보인다. 티베트와 북쪽 국경을 이루고 있는 왼편의 쿠탕히말이 우람하다.

20분 쉬고 다시 출발하는데 타시가 한 마을 남자를 안내해 왔다. 약을 좀 달라고 한다. 자기 아내가 입 안이 헐고 부었는데 10일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다고 한다. 내가 무슨 의사도 아니고 환자의 상태도 직접 보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러 약을 처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사정이 딱하니 고개를 저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항생제다. 헐어 부었다는 것은 염증이 있다는 말이고 염증에는 항생제가 특효약이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작용은 없을 것이다.

이틀 전부터 타시가 운반하고 있는 구급배낭을 열어 항생제 7일분(21캡슐)을 주었다. 식후 한 알씩 하루에 세 번 복용하라고 약병에 쓰인 용법을 일러주었는데 음식이 부실하고 항생제 내성이 거의 없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좀 과도한 투약일 것 같다. 하루에 두 알 정도만 복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청전스님의 책 <달라이라마와 함께 한 20년>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길을 나서자 마나슬루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마나슬루를 배경으로 초르텐과 마니월 옆을 지나가는 트레커들의 모습이 멋진 히말라야 고산트레킹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사마가온까지 보이는 마나슬루는 북서면이고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마나슬루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중에 다람살라 가는 도중 북면과 빔탕에서 남서면이 조금 보이지만 우리가 늘 보아 온 마나슬루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모습이다.

두 개의 뿔이 솟아 있는 독특한 모양의 마나슬루는 산스크리트어 마나사(Manasa)에서 유래했으며 뜻은 영혼(soul)이란 뜻이다. 그래서 마나슬루는 '영혼의 산'이다.  예전에는 쿠탕(Kutang) 1로 알려졌으며 인도측량국 조사에서는 단순하게 피크 30(Peak xxx)으로 표기했다. 1956년 이곳을 방문한 스넬그로브에 의하면 마나슬루의 현지 이름은 풍겐(Pung-gyen)이며 풍겐은 마나슬루에 거주하는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고 한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걸었다. 전봇대와 전깃줄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수력발전소 있다는 말을 들었다. 길은 또 하나의 지류계곡을 건너기 위해 계속 내려가고 있다. 리히 이후부터는 더 이상 오른쪽 계곡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다. 내리막은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되다는 뜻이라 반갑지 않지만 히말라야의 길은 높은 고개를 넘을 때 외엔 선택의 여지없이 항상 그렇다.

10시 경 작은 작은 나무다리가 있는 다모난콜라(Damonan Khola)에 도착했다. 이 작은 지류는 풍겐 빙하에서 발원한 물이다.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다모난 콜라를 따라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길가에 한 가족들이 쉬고 있다. 송아지와 말도 있는데 아이들과 10여 명이나 된다. 타시는 앞장 서고 나는 사진을 찍느라 제일 뒤에 처져 있으니 무슨 일로 가족 전체가 내려가는지 물어볼 길이 없다. 그냥 "타시델레!" 인사만 교환했다.

시얄라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어떤 곳은 지그재그로 나 있다.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한다. 다시 무성한 숲을 지나는데 계곡 물가에 있는 수력발전소 돌집이 보인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주변의 여러 마을(쇼, 로, 시얄라,사마가온)로 공급된다. 마나슬루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수력발전소다. 삼툭이 남걀 마을에 설치하고 싶어하는 수력발전소다.  이전에 삼툭과 트레킹을 같이 할 때마다 삼툭은 수력발전소를 보면 관심을 가자고 살펴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로서는 고향을 위해 하고 싶은 평생의 숙원사업일 것이다.

네팔에서 일이란 우리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정국도 불안정하여 약속한 정부보조금은 백년하청이다. 우기는 없지만 겨울철 혹한기가 있어 건설 시기도 제한된다. 건자재 수송도 중요한 것은 헬기로 운반해야 하니 비용이 많이 든다. 기왕에 짓는 수력발전소니 주변 다른 마을도 같이 쓰자는 요청이 들어와 발전 용량을 늘여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용은 기하급수로 늘어나 작년 한국에서 모금만 돈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 큰 프로젝트를 혼자 동분서주 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삼툭 외에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이 남걀에는 전무하니 그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어쨌든 일이 잘 되어 하루빨리 남걀과 그 주변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얄라를 목재소로 묘사한 이전 방문자들의 여행기처럼 주변 나무가 많이 잘려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오르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길에서 숲 위로 설산이 보였다. 히말출리 아니면 나디출리일 것이다. 11시 30분 시얄라(Syala, 3500m)에 도착했다. 지그재그 길을 오르면서 본 마을 입구를 알리는 카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카니를 지나고 다시 멋진 초르텐 카니를 지나자 목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재재소 같은 넓은 마을이 나타났다. 한 노인이 길가에 혼자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레이놀즈가 처음 마나슬루를 방문했던 1992년에 시얄라에는 집 네 채와 작은 곰빠 하나만 있었는데 4년 후 다시 오니 20채 이상의 집이 들어서 있고 주변의 나무들이 무분별하게 벌채되어 파괴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 목재는 티베트로 팔려간다. 경작지가 적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나무가 생계를 보전해 주는 좋은 자원이기는 한데 환경 훼손이 심하다. 올 때 산사태 비슷한 길도 그런 남벌로 생긴 결과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골이라  거주민이 많지 않아 대규모 벌채가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삼림이 워낙 무성하여 별로 표시가 나지 않으며, 주변을 제외하면 대부분 급경사 절벽지대라 나무 베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무를 베더라도 한계가 있다. 2000년 가을 이곳을 지나갔던 칼스텐 네벨(Carsten Nebel)은 그의 여행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 터키석 색깔이 된 부리 간다키 강은 먼 아래에 있다. 우리는 작은 지류를 따라 갈 것이다. 그곳에 수력발전기를 세울 계획이 있는 모양이다. 강력한 기둥을 세우기 위한 숲길이 나 있고 큰 통나무들이 잘려지고 있다. 십여 명의 거칠게 보이는 남자들이 나무를 야크 등에 싣고 있다. 티베트로 나무를 가져가면 많은 이익이 남는다. 나무를 밀과 교환하여 로 마을로 가지고 온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사마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얕은 여울의 진탕길을 조금 지난 후 나는 우리 그룹을 따라잡았다.

전나무 숲 그늘을 걷는 것은 즐겁다. 녹색의 숲 끝 위로 솟아 있는(나디 출리?) 가파르고 얼음이 덮여 있는 능선 아래의 소풍길을 걸은 후 고원을 향해 �은 오르막을 올라 시얄라(Shyala)에 도착했다. 벌목은 시얄라의 번창하는 사업이다. 40채의 나무 오두막들은 가게 또는 벌목꾼들의 집이다. 마을 주변의 나무들은 대부분 벌목되었다. 풍광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것 중 가장 좋지만 시얄라는 슬픈 마을이다.

거대한 산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히말 출리와 피크 29(최근 나디 출리로 명명되었다)가 왼쪽에 있고 마나슬루와 큰 빙하는 바로 앞쪽에 있다. 다른 설산 봉우리들은 오른쪽에 있고 우리가 방금 지나왔던 계곡의 먼 끝에는 가네시 히말이 있다. 눈과 얼음의 원형극장이다! 그러나 아래쪽 마을은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벌목은 통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우리는 자연보호구역에 있다. 아마 정부 공무원들의 감시도 있을텐데도 무차별 벌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http://www.myhimalayas.com/manaslu/3.htm)

마을 제일 위쪽 점심을 먹을 캠프사이트로 가자 모두 정신이 없다. 마지막 운행을 오르막으로 장식한데다 이미 11시 30분이나 되어 점심시간이 1시간 이상 지나 허기가 진 탓이기도 하다. 주방에서 내 온 차와 비스킷을 대충 먹고는 쓰러진다. 3500 고지라 고산병이 나타나기 쉽다. 어제 상태가 좋아졌던 혜명화 보살은 오는 도중 구토를 했다. 백산스님과 남형씨는 두통이 있다고 한다.

두통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니 크게 위험하지 않으나 구토는 문제가 있다. 다시 다이아목스를 먹도록 하고 충분히 쉬도록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음식이 잘 넘어갈 리가 없다. 모두 그저 먹는 시늉만 한다. 가장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팀을 이끄는 사람이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비록 전깃줄이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고 목재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어 분위기를 망치긴 해도 설산이 원형으로 둘러싸여 있는 시얄라는 멋진 곳이다. 이곳에서 보이는 설산은 왼편부터 히말출리, 나디출리, 마나슬루, 마나슬루 북봉, 나이케 피크다. 맞은편에는 6천 미터급 쿠탕히말 연봉들이 원형극장의 나머지를 채우고 있으니 그 장엄한 풍광을 한 번 상상해 보시라!

레이놀즈의 가이드북을 보니 시얄라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더 머무는 것도 괜찮다고 쓰여 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도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렀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원형 설산의 멋진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얄라에서 사마가온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니 이곳에서 머문 다음 날 오전에 사마가온까지 간 후 캠프를 치고 오후에 빙하호수를 다녀오는 일정이 가능하다.

점심을 먹고 1시에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카니를 지나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 내리막길을 계속 가다가 두 번째 지류를 만났다. 눔라 콜라(Numla Khola)다.. 이곳은 위쪽 언덕이 무너져 내린 듯한 모양이라 마치 산사태가 난 듯한 모습이다. 이곳이 마나슬루 북서면의 빙하인 풍겐 빙하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는 계류다.

다리를 건너 다시 조금 올라 넓은 길로 들어섰다. 관목이 많이 있다. 이제 수목한계선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코너를 돌자 갑자기 뻥 뚫린 넓은 계곡이 눈 앞에 펼쳐졌다. 사마가온 앞의 초원지대인데 이곳이 마나슬루 지역에서 제일 넓은 초지이다. 이 정도면 히말라야에서 대초원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넓다. 점점이 보이는 것은 말도 있지만 대부분 야크며 수 백 마리가 흩어져 풀을 뜯고 있다.

초원으로 들어서기 전 풍겐곰빠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3시간 거리라고 이정표에 쓰여 있다. 스넬그로브에 의하면 1953년 일본팀이 마나슬루 등정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다음 해 산사태가 일어나 풍겐곰빠가 무너져 버려 당시 곰빠에 거주하던 18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풍겐 신이 이방인들의 무례한 방문에 노하여 그런 일이 있어났다고 믿어 그 해 2차 일본원정대가 도착했을 때 마나슬루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결국 일본대는 마나슬루를 포기하고 대신 가네시로 방향을 틀었다. 나중에 일본은 풍겐곰빠를 새로 재건해 준 후에 마나슬루 초등에 성공한다. 1956년의 일이다.

구름이 몰려와 날은 춥지만 오랜만에 넓은 초원을 걸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초지의 첫 광장 중간에 돌로 쌓아 만든 투박한 초르텐이 있다. 시얄라에서 목재를 가지고 간 포터들이 쉬고 있다. 이들은 전통 있는 여행사 포터들이라 노란 제복을 입고 있다. 트레킹에 목재가 필요할 까닭은 없을 테고 아마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양이다. 넓은 초원에는 야크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렇게 많은 야크를 한꺼번에 본 것은 처음이다.

우리 팀 중 야크를 본 사람은 나와 무진행 보살님 뿐이다. 쿰부 트레킹 때 페리체 부근에서 많이 보았다. 추쿵에서 임자체 베이스캠프 가는 도중 인적 없는 벌판에 야크 떼를 방목하고 있었다. 랑탕 지역에도 야크가 흔하다. 랑탕 트레킹의 종착지인 컁진의 야크치즈 공장은 맛 좋은 무공해 치즈로 아주 유명하다. 안나푸르나 지역에서는 마낭 위쪽으로 볼 수 있다. 초지가 귀한 무스탕에서는 야크들이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고원으로 가 있어 볼 수 없었다.

초원 끝에는 사마가온 마을 입구를 표시하는 크고 멋진 초르텐 카니가 서 있다. 카니를 통과하자 사마가온(Samagaon, 3530m)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마나슬루 북쪽 지역에서 제일 큰 마을이다. 가장 먼저 초르텐과 곰빠와 마니월 무더기를 빙 두르고 있는 있는 마니차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불교복합센터'다. 사마가온의 '대초원'과 더불어 마나슬루 지역의 명물 중 하나다. 마을은 그 뒤쪽으로 보였다.

마을 길에 들어서자 늘 그렇듯 '환영위원회' 위원들이 반겨(?)준다. '히말라야 환영위원회'는 항상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큰 마을이라고는 해도 집을 꾸며 사는 모습은 형편없다. 작년에 무스탕을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사는 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화에 대한 주관적인 충격 때문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충격 받을 일이 아니었다.

마나슬루에 비하면 무스탕 사람들은 멋진 주택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무스탕은 대부분 이층집이다. 나무가 귀해 흙벽돌로 지었지만 외벽은 하얗게 칠해 말끔하다. 평평한 지붕에는 장작더미를 빙 둘러 쌓아 놓았다. 곰빠는 붉은 색으로 칠해 권위가 있다. 곰빠 외벽에는 특별한 상징이 있는 흰색과 붉은색, 푸른색 칠을 해 품위가 있다. 황량함 속에서 빛나는 진주 같은 무스탕 마을의 풍광은 정말로 티베트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피어났던 한 왕국의 문화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이곳은 수 백년 전 티베트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티베트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이곳까지 넘어 올 이유가 없다. 살 길을 찾아 떠난 유랑민들이었다. 나무가 많기는 하지만 경작지가 적은 척박한 땅이다. 고급문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고향에서 보았던 곰빠를 흉내내어 지었고 집도 낯선 몬순의 기후에 맞추어 지었다. 비가 많은 지역은 집 단장을 하지 못한다. 인도의 집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대만에 갔을 때 아파트 외벽이 형편없는 것을 보았다. 그곳도 우기가 길어 여름이면 아파트 벽에 곰팡이가 낀다(보드나트의 불탑을 매년 가을에 새로 회칠하는 이유도 몬순 때 이끼가 끼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우기이다 보니 해마다 성물(聖物)도 아닌 아파트 외벽을 새로 칠할 이유가 없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반복되는 현상에 대한 체념에서다. 그대신 살고 있는 아파트 내부는 아주 화려하게 잘 꾸미고 산다고 한다.

마나슬루의 집들은 이층 양식이기는 하나 겉에서 보면 1층이나 다름없다. 1층은 우리로 치면 조금 높은 마루처럼 보인다. 집도 허름해서 지붕에 건초를 잔뜩 쌓아 놓은 가옥을 보고 처음에는 가축우리인 줄 알았다.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이곳 사람들은 집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의 삶이라는 뜻과 같다.

그래도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는 달리 행복할 것 같다. 문명의 혜택도 받지 않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매일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없다. 제3 세계 국가의 빈민가 사람들처럼 할 일이 없어 방황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집이 있다. 좁은 토지나마 경작지가 있고 목축을 하며 티베트와의 교역을 통해 이익을 남기고 있다. 최소한 먹고 자고 입는데 대한 부족함은 없다. 다만 의료와 교육시설의 부족은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사실 동물처럼 인간의 삶을 단순화하면 의식주 세 가지로 귀결된다. 이 세 가지만 해결되면 걱정이 없다. 나머지는 별로 쓸데없는 욕심일 뿐이다. 그래서 수행자들이나 은둔자들은 깊은 산골에 들어가 소박한 생활을 하며 보다 본질적인 것에 정신을 집중한다. 부와 명예와 권력은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한여름 뜬 구름과 같으며 언젠가는(그리 멀지 않다) 사라질 이 몸을 위해 맛난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비싼 보석으로 치장하며 세상에서 명성을 날려본들 결국에는 한 줌 재가되거나 땅에 묻혀 썩고 만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지 롯지촌이 나타났다. 이곳의 집들은 신식으로 지은 쿰부 지역의 이층집 모양을 하고 있다. 마나슬루 트레킹 여행자들이 늘어나면서 새로 지은 건물이다. 캠프사이트는 모두 이곳에 있다. 캠프사이트마다 만원을 이루고 있다. 길가에 'Video Hall'이라는 팻말이 전봇대에 붙어 있어 웃음이 나왔다. 이곳까지 와서 비디오를 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오후 2시 20분, 초르텐 카니 옆에 있는 <노둡(Ngodup) 롯지> 캠프사이트로 갔다. 길가 간판에는 주방, 식당, 포터용 방, 쇼핑센타, 화장실을 제공한다고 쓰여 있다. 이 롯지에 마침 전화가 있다. 백산스님이 여러 번 시도 끝에 아는 스님과 통화에 성공했다. 필림에서 잃어 버린 신용카드를 중지시켜 달라는 내용이다. 요금은 1분당 100루삐. 산간오지치고는 싼 편이다. 작년 무스탕에서는 1분당 250루삐 주었다.

오늘은 제일 건장한 사람인 남형 씨가 고소를 먹고 헤맨다. 오후에 맛있는 감자를 먹었는데 저녁 식사 때는 텐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소를 염려해 올 때 공항면세점점에서 산 담배 한 포를 트레킹 2일 째 되는 날 포터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금연중인데도 고소가 왔으니 보람이 없다. 그렇지만 흡연을 계속 했다면 상황이 더 나빠졌을지 모른다. 누나인 보명화 보살님의 걱정이 태산이다. 저녁 식사 중 혹 시장하면 먹으라고 삶은 감자를 갖다준다.

고소가 오면 아무 것도 먹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남형 씨에게 다이아 목스를 주고 나서 나머지 사람들도 예방차원에서 한 알씩 먹었다. 낮에 조금 헤맸던 혜명화 보살은 이제 괜찮다고 한다. 내일은 캠프를 이동하지 않는 고소적응일이니 충분히 쉬면 상태가 좋아질 것이다. 내일도 좋아지지 않는 사람은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말에 모두들 긴장한다. 최소한 로까지는 되돌아 가야 한다. 하루 여유가 있으니 다음날 올라오면 되지만 오늘 오르막에서 흘린 땀을 생각하고는 모두 제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표정이다.

트레킹의 반이 지났다. 고소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약간 신경이 쓰였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 데다 하루 일정이 그리 길지 않아 체력 부담이 적으므로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삼도에서도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더 머물 예정이라 여유가 있다. 3500고지의 밤은 제법 쌀쌀했다.
 

trek 9. 리히 - 시얄라 - 사마가온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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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지류 계곡을 유턴하여 북쪽 쿠탕 히말을 향해 가는 따뜻한 산길. 잠시 후 오르막 끝 초르텐 카니 앞에서 쉬었다. 뒤로 마나슬루 히말의 설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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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마을 입구의 카니. 바위에 "마나슬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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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의 아래 마을과 윗 마을 사이의 길에서 따뜻한 햇볕아래 접시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유랑자. 이런 산골에서는 드문 일이다. 지금까지 트레킹 중 이런 사람은 나도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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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의 윗마을에서 처음으로 마나슬루(제일 왼쪽)를 보았다. 이곳의 가옥은 아주 소박한 모습이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방이 주거용이다. 이 집도 묵재를 많이 다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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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큰 로 마을 풍경. 조금 어수선하다. 마나슬루가 가까이 다가왔다. 마나슬루를 배경으로 서 있는 제법 큰 규모의 로 곰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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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의 롯지 엎 탁자에서 휴식. 아이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끼리 간식을 먹자니 좀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나누어 먹는 것이 우리의 정서인데... 아래쪽을 보니 그곳에도 지붕에 타르초를 걸어 둔 곰빠가 있다. 왼편은 티베트와 북쪽 국경을 이루는 쿠탕 히말이다. 계곡 사이로 가네시 히말이 조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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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슬루와 마나슬루 노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초르텐과 마니월이 멋진 히말라야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티베트풍의 초르텐을 보았다. 로에서 보는 마나슬루도 멋있다. 예리한 능선이 잘 보인다. 이곳의 일출도 장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일출의 장엄한 모습이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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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보리를 수확하는 아줌마들. 꼭지만 따 바구니에 담는다. 로를 지나 작은 지류 계곡을 건넜다. 마나슬루 히말이 만든 능선 아래에 있는 풍겐 빙하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다리를 건넌 후부터는 계속 오르막이다. 오른쪽 상단의 전봇대가 안내하는 길은 계곡 상류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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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마을에서 내려오는 한 가족을 만났다. 아이들이 많은데 어린 아이들도 잘 걷는다. 오르는 도중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한 산사태가 난 길이 있다. 방향은 마나슬루를 향하고 있으니 계속 계곡 상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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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뒤로 설산이 보였다. 라니피크(6693m)와 심낭히말(6251m),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피크 29로 불렸던 나디출리(7871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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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얄라의 수력발전소 건물. 이곳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주변의 여러 마을(쇼, 로, 시얄라,사마가온)으로 공급된다. 마나슬루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수력발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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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행 보살님이 시얄라를 향한 지그재그길 마지막 구간을 오르고 있다. 전나무 숲 뒤 계곡 건너편으로 우람한 히말출리(7893m)가 나타났다. 히말출리는 삼도에서 제일 잘 보이고 멋있다. 삼도에서 마나슬루는 앞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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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얄라 마을 앞 뒤에 서 있는 초르텐 카니는 문양이 아름답다. 마나슬루 지역에서 유일하다. 시얄라는 설산으로 둘러싸인 원형극장으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영혼의 산 마나슬루가 바로 뒤에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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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에 있는 마나슬루, 마나슬루 노스, 나이케 피크. 전깃줄과 목재가 어지럽지만 이곳 사람들의 생계수단이니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냥 그 장면은 무시하고 감상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마을 위 캠프사이트에서 점심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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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얄라에서 조금 내려오면 다시 산사태가 일어난 듯한 계곡이 하나 나온다. 풍겐 곰빠 아래 빙하에서 내려오는 지류다. 다리를 건너 왼편 사진 중앙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 사진의 넓은 평지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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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 끝 코너를 돌면 갑자기 넓은 '대초원'이 펼쳐진다. 가슴이 툭 트이는 풍경이다. 초원 입구에 돌로 투박하게 쌓은 초르텐이 하나 있다. 주변에는 온통 야크들이 흩어져 풀을 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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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 끝에 있는 초르텐 카니를 통과하면 사마가온이 눈 앞에 보인다. 앞에는 초르텐, 마니월, 곰빠가 한데 모여 있는 '불교복합센터'가 있고 그 뒤로 올드빌리지가 이어진다. 롯지촌인 뉴빌리지의 이층 건물은 그 뒤쪽으로 보인다. 중앙 상단의 동산에는 사마곰빠가 있다. 센터는 마니차를 설치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곳에서는 당연히 마니차를 돌리며 운행하는 것이 심신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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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복합센터의 규모를 보아서 짐작할 수 있지만 사마가온이 마나슬루 북쪽 누프리 계곡 티베트 마을에서 가장 큰 중심 마을이다. 곰빠위 역사도 가장 깊다. 스넬그로브가 방문할 당시 이 마을이 제일 윗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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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와 돌아본 초르텐 카니. 뒷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멋있다. 오늘도 오후가 되자 어김없이 산 아래에서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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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이미 사진을 보았지만 생각보다 더 누추했다. 아마 작년 무스탕에서 본 마을과 은연 중 대조한 탓일 것이다. 그래도 언제나 환영인파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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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빌리지에서 롯지촌으로 가는 짧은 길. '비디오홀'이라는 간판 사진 아래 안드레스는 "놀라운 제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간판 아래 보이는 이층집이 노둡 롯지다. 건물 앞마당이 캠프사이트인데가 타르초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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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안드레스가 찍은 노둡 롯지 사진. 그들도 이곳에서 묵은 모양이다. 오른쪽 방이 식당이고 식당에 들어서면 바로 왼편으로 주방으로 연결된 문이 있다.

줄기세포로 돼지 복제 성공
강원대-충북대-축산과학원-경기도 공동연구 결실
2007년 12월 27일 | 글 | 임소형 기자ㆍsohyung@donga.com |
 
골수에서 뽑아낸뒤 난자와 결합

체세포 복제보다 생산효율 높아


국내 연구진이 세계에서 처음 줄기세포로 돼지를 복제(사진)하는 데 성공했다.

경상대 수의대 노규진 교수는 “강원대 이은송 교수와 충북대 현상환 교수, 축산과학원 성환후 박사,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와 공동으로 돼지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이용해 복제돼지를 만들었다”고 26일 밝혔다.

돼지는 해부학, 생리학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장기의 크기도 사람과 비슷하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을 장기이식용 복제돼지의 생산 효율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동물을 복제할 때 주로 체세포가 이용됐다.

노 교수는 “체세포 복제의 경우 수정란이 일찍 죽거나 기형, 유산, 조산, 사산, 출생 후 조기사망 등의 문제가 생겨 생산 효율이 1∼5% 수준이었다”며 “체세포보다 분화가 덜 된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효율을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장기의 크기가 성인과 가장 비슷한 몸무게인 약 70kg의 암컷 미니돼지 골수에서 중간엽 줄기세포를 뽑아냈다. 성체줄기세포의 일종인 중간엽 줄기세포는 분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초기 단계의 줄기세포. 추출과 배양, 보관 등이 체세포보다 까다롭다.

연구팀은 일반 돼지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다음 중간엽 줄기세포를 주입하고 전기충격으로 융합시켜 복제수정란을 만들었다. 그리고 복제수정란 약 100개씩을 일반 돼지(대리모) 5마리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그중 1마리의 대리모에서 3일 복제돼지 새끼 4마리가 태어났다. 새끼 가운데 1마리는 몸무게가 400g, 나머지 3마리는 800g이었다. 400g짜리는 출생 이틀 뒤 유전자 분석을 위해 연구팀이 희생시켰고, 다른 1마리는 어미젖을 먹다 압사했다. 나머지 새끼 2마리는 현재 건강하게 살고 있다.

다른 대리모 돼지 2마리도 출산을 앞두고 있다.

노 교수는 “일본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해 쥐와 소 복제에 성공한 적이 있으나 돼지는 이번이 세계에서 처음”이라며 “앞으로 면역체계를 조절한 유전자를 줄기세포에 삽입해 복제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이식용 이종장기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현재 국제저널에 투고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농촌진흥청 바이오장기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2007년 동아사이언스 10대 과학뉴스
동아사이언스 ‘태양 5억 배 크기 블랙홀 발견’ 1위
2007년 12월 24일 | 글 | 편집부ㆍ |
 
동아사이언스 독자들은 2007년 동안 어떤 기사를 재미있게 봤을까. 태양보다 5억 배가 큰 블랙홀과 괴생물체 ‘예티’의 정체에 대한 기사가 인기를 끌었다. 동아사이언스 뉴스 중 올 한해 가장 인기 있던 기사 10개를 선정했다. 선정 방식은 조회수를 기준으로 하되 오래된 기사일수록 조회수 누적이 많다는 점을 감안했다. 월별로 조회수에 따라 1~3위 기사를 고른 뒤 기간을 똑같이 설정했을 때 예상되는 조회수를 산정해 최종 선정했다.

1. 태양 5억 배 크기 블랙홀 발견
국제 연합 천체관측팀이 지구에서 13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의 중심에 있는 태양 5억 배 크기의 블랙홀 CFHQS J2329-0301을 지난 6월 발견했다. 즉, 이번에 관측한 블랙홀은 130억년 전의 모습인 셈. 빅뱅 이론에 따르면 130억 년 전은 우주가 탄생한지 겨우 7억 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관측팀장인 캐나다 오타와대 크리스 윌롯 박사는 “우주 탄생 초기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블랙홀이 만들어졌는지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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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괴생물체 ‘예티’의 정체는?
2007년에 발견된 괴생물체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을까. 이들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어떤 동물과 가까운지 알 수 있다. 2004년 벨기에 브뤼셀자유대의 밀린코비치 교수팀은 ‘예티’라 불리는 설인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말과 가장 가깝다고 과학학술지 ‘분자계통학 및 진화’에 만우절 특집으로 발표했다. 현장에서 채집한 털이 예티가 아닌 말의 털일 수도 있지만, 밀린코비치 교수는 “말에서 예티가 진화했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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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성이 뒤집혔어요?
화성의 자전축이 뒤집혀 해안선이 높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결모양의 퇴적층은 과거에 바다였다는 유력한 증거인데, 이 지형은 육지보다 2.5km나 높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타일러 페론 교수는 “과거 화성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거나 소행성이 충돌해 자전축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네이처’에 6월 14일자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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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교체험 KAIST vs. 포스텍
매년 700명의 학부 졸업생을 배출하며 이공계 ‘인재양성소’라고 불리는 KAIST와 300명의 ‘소수정예부대’를 길러내는 포스텍. 과학동아에서 8월호 특집기획으로 KAIST와 포스텍을 비교했다. 대학생의 하루 일과를 살피며 학풍을 비교하고, 2008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을 분석해 각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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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이즈, 조상들이 남긴 빚?
게놈에는 생물을 만드는 유전정보뿐 아니라 그 생물의 조상들이 지나온 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다. 미국 프레드허치슨암연구소의 마이클 에머만 박사팀은 침팬지의 게놈에는 ‘PtERV1’이라는 고대 바이러스의 흔적이 100군데 이상 있지만, 인간에게는 전혀 없다고 ‘사이언스지’ 6월 22일자에 밝혔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에이즈 바이러스에는 약해도 PrERV1는 막을 수 있었던 것. 에머만 박사는 “영장류의 면역체계는 에이즈나 PrERV1 중 하나만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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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쓰레기서 ‘삼중수소’ 노다지로
한국수력원자력은 경북 월성원자력발전소에 삼중수소제거설비를 설치해 7월 26일부터 삼중수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는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체나 물체의 외형과 성분을 한번에 분석하는 중성자 검색대에 쓰이며 1g에 2700만원을 호가한다. 산업용 삼중수소 생산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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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태초에 태어난 아기 은하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다니엘 스탁 교수팀은 약 132억년 전의 은하 2개를 발견했다고 ‘천체물리학지’ 7월 1일자에 발표했다. 이 은하는 우주가 탄생한지 5억년 뒤에 태어난 셈. 연구에 참여한 리처드 엘리스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은하들은 암흑시대에 수소원자들이 어떻게 별과 은하를 형성했는지 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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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문제아 될뻔한 ‘외골수 천재’
올 3월 미국 스탠퍼드대 입학 허가를 받은 부산 한국과학영재고 3학년 김형록 군. 그는 말솜씨도 서툴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영재고 입학 초기 중퇴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1학년 담임이던 김영환 교사는 김 군의 심리를 이해하고 재능을 인정해 조기 졸업과 유학이라는 목표를 설정해 주며 격려했다. 좋은 스승을 만나 재능을 꽃 피운 한국판 ‘굿 윌 헌팅’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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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십자군 전쟁에 쓰인 탄소나노튜브?
사라센 군이 사용한 다마스커스 검은 십자군의 검을 종종 동강냈다. 다마스커스 검에 새겨진 뱀무늬 모양의 잔금이 검을 강하게 만든다고 추측했지만, 실제 이유와 제조법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하지만 독일 드레스덴대 재료공학자 피터 파플러 교수는 다마스커스 검에서 탄화철 합금을 둘러싼 탄소나노튜브를 발견했다고 ‘네이처’ 2006년 11월 15일자에 발표했다. 파플러 교수는 “검의 재료에 함유된 불순물이 촉매로 작용해 제련과정에서 탄소가 나노튜브 형태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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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엄마 쪽 핏줄이 더 당긴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버스 교수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전중환 씨는 친척과 ‘나’의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이타적 행동의 정도를 예측하는 수학모델을 만들어 그 결과를 ‘왕립학회보 B: 생물과학’ 2월 28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내가 위험에 처한 사촌을 도와줄 의향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어머니와 연결된 친척이 더 높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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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내 10대 과학뉴스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핵융합 실험로 ‘KSTAR’ 본격 가동’ 1위
2007년 12월 24일 | 글 | 편집부ㆍ |
 

1. 핵융합 실험로 ‘KSTAR’ 본격 가동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제작된 실험용 핵융합로 KSTAR가 지난 9월 완공돼 시험 가동을 시작했다. 계획부터 완공까지 꼬박 12년이 걸린 ‘대공사’다. KSTAR는 세계 최초로 고성능 초전도 자석만으로 핵융합의 원료인 플라스마를 가두는 ‘토카막 장치’를 제작해 국제 핵융합계의 주목을 받았다. 앞으로 KSTAR는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 장시간 운전(300초 이상)과 제어기술을 실험하는 기반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KSTAR 건설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노하우를 살려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이 추진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 세계 최초 ‘용광로 없는’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
지난 5월, 포스코는 용광로 없는 파이넥스 공법의 상용화 설비를 세계 최초로 준공하는데 성공했다. 파이넥스 공법은 가루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가공하지 않고 바로 사용하는 철강제조 방법. 파이넥스 공법을 사용했을 때 배출되는 환경오염 물질의 양은 용광로 공법의 1~3% 수준이며 먼지 발생량도 28%에 불과하다. 원료를 따로 가공할 필요가 없어 설비투자비도 절감된다. 이번 성공으로 포스코는 세계 철강기술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세계 최초 30나노 64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30나노미터(nm, 1nm=10-9) 공정으로 제작한 64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30나노미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4000분의 1 수준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장비로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40나노미터까지만 좁힐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기존에 있던 60나노미터 반도체 제작 설비를 이용해 회로 사이에 또 하나의 회로를 그려넣는 방법으로 선폭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 제품 16개를 모은 128Gb 메모리카드에는 종이신문 800년치, MP3 음악파일 3만2000곡을 담을 수 있다.

4. ‘와이브로’ 기술 3G 국제표준 채택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된 휴대 인터넷 ‘와이브로’(WiBro)가 지난 10월 3세대 이동통신의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이는 국내 독자개발 이동통신 기술 가운데 최초다. 현재 미국, 일본, 영국, 대만 등 40여 개국에서 와이브로 서비스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와이브로를 개발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향후 5년간 약 94조 원 규모의 세계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5. 청소년 과학 실력 추락과 이공계 대학 개혁 바람
OECD가 발표한 ‘학업성취도국제비교 2006’에서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과학 성취도가 57개국 가운데 11위를 차지했다. 이는 2000년 1위에서 10계단이나 추락한 것. 또 최상위 5%이내 학생만 비교한 순위는 세계 17위에 그쳐 국내 이공계 위기론이 재확인됐다.
이공계 위기와 관련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서울대 공대의 개혁이 주목받고 있다. KAIST는 종신교수직을 뽑는 ‘테뉴어 심사’에서 신청자 35명 가운데 15명을 탈락시켜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서울대 공대도 학부생에서 필요한 기초 과목 위주로 교과 과정을 전면 개편하며 이공계 개혁에 동참했다.

6. 장기기억 형성 단백질 발견
서울대 강봉균 교수팀은 지난 5월 뇌가 기억을 오랫동안 저장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 ‘CAMAP’을 발견, 역할을 규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CAMAP은 평소 신경세포 사이의 틈인 시냅스에 있다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핵으로 이동해 장기 저장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움직인다. 이 연구 결과는 기억 형성 과정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기억 조절 기술의 발판을 제공한 점을 인정받아 생명과학분야 최고 학술지인 ‘셀’ 5월호에 실렸다.

7. 한국 온난화 심화와 기상 오보 논란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의 기온 상승량은 세계 평균의 2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반도가 아열대로 바뀌고 있다는 우려가 수치로 나타난 것. 기온과 더불어 올라가는 기상청의 오보율도 우려를 불러왔다. 기상청은 올초 대설과 황사 예보를 연달아 틀리며 기상 예보에 대한 불신을 늘렸다. 지난 2004년 세계 최고 수준인 슈퍼컴퓨터 2호기를 도입하고도 운용 능력 부족으로 인해 예보 정확도를 낮추기만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기상청의 신뢰도는 또 한번 추락했다.

8. 세계 최고 효율 태양전지 개발
지난 7월 광주과학기술원 이광희 교수팀은 세계 최고 효율성의 플라스틱 태양전지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태양전지는 에너지 전환효율이 6.5%로 현재까지 개발된 유기물 플라스틱 태양전기 가운데 가장 높은 효율성을 자랑한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휘거나 접을 수 있고 제작비용이 저렴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손꼽힌다. 이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에 실렸다.

9. 기술유출 논란과 기술유출방지법 시행
올해 대형 기술유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KAIST 교수가 학교의 특허를 자신 소유의 벤처기업에 넘긴데 이어 대우조선해양, 기아자동차, 포스코 등 굵직한 대기업의 간부나 전직 연구원이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다 적발됐다. 정부는 국가를 먹여살릴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10. 최다 안드로메다은하 구상성단과 퀘이사 발견
지난 8월 한국천문연구원 김상철 박사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이명균 교수팀은 10년에 걸친 관측자료를 분석해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113개의 구상성단을 새로 발견했다. 이는 안드로메다 은하 연구사상 최다 갯수다. 이 연구 결과는 천문 학술지 ‘애스로노미컬 저널’에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임명신 교수팀은 먼 우주연구의 ‘장벽’으로 불리는 은하수에서 퀘이사 40개를 새로 찾았다. 퀘이사는 우리 은하에서 멀리 떨어져있지만 블랙홀 주변의 에너지에 의해 태양 같은 항성처럼 밝게 빛나는 특이한 천체. 연구팀이 발견한 것 가운데 13개는 천체등급 18등급 이상의 ‘밝은 퀘이사’로 이는 지금까지 은하수에서 발견된 밝은 퀘이사 전체 갯수(10개)보다 많은 양이다.
사랑하라, 노래하라, 춤을 추라


사랑할 때는 미친 듯이 사랑하라.
노래할 때는 미친 듯이 노래하라.
춤출 때는 미친 듯이 추라.
이것이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것보다
훨씬 나으며, 악몽에 시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균형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에는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이라. 다시 균형을 회복하라.
이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 오쇼 라즈니쉬의《라즈니쉬의 명상건강》중에서 -


* 사랑, 노래, 춤.
이 세가지는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생명력의 빛나는 표본입니다. 기쁘고 좋을 때는 물론이고
지치고 무너지고 흔들릴 때 사랑하고 노래하고 춤추면
곧 힘을 얻습니다. 잃었던 균형을 되찾게 되고
꺼져 가던 생명력도 다시 살아납니다.

trek 8. 갑 - 남룽 - 리히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휴식일.  빙하호수 방문)

3,680m

5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고소적응일.  티베트 국경 방문)

4,0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고산 트레킹이 시작되는 누프리 계곡

2007. 10. 120(토)


 

며칠 째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 기침은 나오지 않는데 콧물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차콜라에서 땀을 잔뜩 흘린 후 찬물에 목욕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무진행 보살님이 주는 감기약을 먹고 있지만 쉽게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주머니에는 여차하면 코를 풀 수 있도록 휴지를 준비하고 있다.

출발 전 1리터짜리 물통에 뜨거운 물을 2/3 정도 받고 차를 조금 넣는다. 둥글레차와 우롱차(烏龍茶), 녹차를 가져왔는데 우롱차가 제일 인기가 있다. 둥글레차 티백은 바로 먹어야지 물병에 오래 넣어두면 흐물흐물해져 지꺼기가 나오고 맛도 별로다. 우롱차의 향은 히말라야의 물 맛을 먹기 좋게 바꾼다. 이 차가 물이 좋지 않은 중국에서 발달된 이유를 알겠다. 녹차는 물이 나쁘면 무용지물이어서 그냥 생으로 먹는 편이 나았다. 우롱차는 차잎이 물에 풀리면 아주 커지므로 10알 정도만 넣어야 한다. 말린 잎이 작다고 조금 많이 넣으면 병의 반이 차잎으로 찬다. 찻물도 너무 진해진다.

7시 15분 캠프를 출발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숲길이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 계곡에 놓인 나무다리가 보였다. 저 다리를 건너가는가  했는데 계속 직진한다. 그 다리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건너편 마을로 가는 길이란다. 무성한 숲길이 계속되었다. 자주 보이는 마니월과 수력으로 돌아가고 있는 마니차만 없다면 이곳이 히말라야가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요세미티 계곡을 걷는 기분이다. 경사도 완만한 오르막이라 힘들지 않았다.

맞은 편 계곡 우람한 절벽을 바라보며 산길을 돌아가다가 8시 경 부리 간다키 강을 건너 오른쪽 사면으로 건너갔다. 이곳은 강이라기 보다는 계곡 수준이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계곡도 좁아지고 수량도 적다. 한 곳은 병목현상이 있어 물이 우렁차게 흐른다. 양쪽 바위가 물에 닳아 반들반들하다.

이곳은 앞 장에서 소개했던 스넬그로브의 글 초반부의 "우리는 불어난 급류 위에 놓인 단단한 나무다리를 건너 왼쪽 사면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곧 천연 바위다리를 통해 오른쪽 사면으로 되돌아 왔다. 아래쪽 깊은 계곡에는 부리 간다키가 포말과 세찬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에 해당하는 곳이다. 스넬그로브는 위에서 내려왔고 우리는 위로 올라가고 있다. 지금은 천연다리 대신 작은 다리가 있다. 그 옆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무너진 외나무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 무성한 숲 사이 바위 옆에서 휴식. 랄리구라스(로도덴드론) 나무와 대나무, 전나무, 호랑가시 나무가 함께 섞인 숲이다. 가이드북을 보니 남룽 까지는 이런 길이며 원숭이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끔 답답한 숲 속을 빠져나와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곧 스넬그로브의 책에 나온대로 바위 위에 걸쳐진 나무다리를 통해 다시 왼쪽 사면으로 건너갔다.

무성한 숲 길이 계속되고 있다. 산기슭 전체가 큰 나무들의 넓은 숲을 이루고 있다. 무성한 숲이 있는 서쪽 능선 위로 설산의 이 봉우리가 보이고 있다. 위치상으로 볼 때 마나슬루 능선은 아니고 나디출리와 히말출리, 보우다히말 연봉 같다. 수풀이 무성하니 길 가 바위에 석이(石耳) 버섯이 가끔 보인다. 야생화에 일가견이 있는 무진행 보살님과 보명화 보살님이 운행을 멈추고 열심히 딴다. 드물기도 하고 운행 중이라 양이 많지는 않다.

이곳 사람들도 석이 버섯을 먹는지 모르겠다. 6년 전 칠불사 살 때 대중공양 들어온 것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쫄깃쫄깃한 것이 정말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났다. 히말라야의 석이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마나슬루에서 석이 버섯이 날 만한 곳은 숲이 무성해 그늘이 져 이끼가 많은 이곳이 유일할 것 같았는데 나중에 빔탕에서 띨제 내려가는 길도 나무에 이끼가 많은 숲이어서 그곳도 가능성이 있다.

9시 10분 현재 계속 오르막이다. 고도계는 2540m를 가리키고 있다. 30분 후 남룽(Manrung)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 가는 초입에서 마을에서 나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인 체왕 도르제 라마는 3년 전 한국에서 일하고 왔다해서 깜짝 놀랐다. 옷을 보니 스님인 것 같다. 이름 뒤에 붙은 라마라는 것도 그렇다. 네팔 사람들의 제일 뒤에 오는 이름은 그들의 종족을 표시한다. 네팔에서 라마족은 없다.  삼툭 구릉 라마처럼 환속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이 깊은 마나슬루 산중에 사는 사람이 한국에 일하고 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과연 티베트 종족은 유목민답게 국제적이다. 젊은 사람도 가기 힘든 형편인데 40세는 넘어보이는 이 아저씨가 갔다는 것도 놀랍다. 영어나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고 더듬거려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가지고 있던 커피사탕 몇 개를 만난 기념으로 주었다.

남루(Namru)라고도 하는 남룽에는 10시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이 협소하다. 롯지에서 운영하는 식당 안에 가게도 하나 있고 등유를 판다는 간판도 있지만 별로 머물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다. 하루의 운행을 멈추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라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여 여기서 점심 먹고 다음 마을인 리히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처음 계획했던 갑-남룽-로-사마가온의 일정은 갑-리히-사마가온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하루의 여유가 더 생겼다. 사마가온에서는 하루 휴식일이 있으니 남는 하루는 마지막 마을인 삼도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고소적응일은 많이 둘수록 좋다.

마을 길가 담장 위로 장작이 많이 쌓여 있다. 티베트나 무스탕에는 나무가 귀해 평평한 지붕 가에 장작을 빙 둘러 많이 쌓는 것으로 부를 과시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흔해빠진 것이 나무라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붕도 판석이 아닌 판자로 얹은 너와지붕이다. 마을 자체는 앞 뒤의 높은 산 때문에 답답한 느낌을 준다.

식당은 그런대로 괜찮다. 입구쪽 진열장에는 콜라, 라면, 사탕, 맥주 위스키 등이 잔뜩 있다. 2500고지에서 운행을 멈추고 있자니 춥다.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열고 자켓을 걸쳤다. 출입문에서 찬 바람이 들어왔고 깨진 창문에서도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얼마 후 안드레스의 여행기에 나오는 술취한 사우지(남자 주인)가 들어오더니 아무 말없이 종이를 내미는데 초등학교를 위한 기부금 권선문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영수증을 불쑥 내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100루삐만 기부했다. 말 한마디에 천량빚을 값는다고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면 500루삐는 기부받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11시 15분 출발했다. 주방팀들이 미리 도착해서 요리를 준비하므로 점심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지류에 걸쳐 있는 전형적인 히말라야 스타일의 나무다리를 건너니 체크포스트가 나온다. 경찰 한 명이 길가에 책상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다. 타시가 등록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오르막을 올라 무성한 소나무 숲 사이에 있는 마니월을 지나니 시야가 툭 터졌다. 12시 경 반짬(Bhanzam)이라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둔덕에 올랐다. 마을 이정표는 반짬인데 트레킹 지도에는 바르참(Barchham)으로 표기되어 있다. 넓은 운동장과 돌집이 있는 마을인데 운동장은 자세히 보니 보리밭이다. 아직 추수 전인 누런 보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그러나 마니월이 있고 돌담이 정겹게 쌓여 있는 마을에 인적이 없으니 어쩐지 슬쓸하다. 이런 곳은 아이들이 뛰놀고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인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정말 넓은 보리밭이다. 뒤를 돌아보니 설봉이 보인다. 가네시 4봉이다. 마을을 지나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고도는 점점 높아져 본격적인 고산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춤 계곡 입구에서 시작되는 쿠탕 계곡은 남룽을 지나면서 누프리(Nupri) 계곡으로 이름이 바뀐다(쿠탕을 하누프리[lower Nupri]로 부르기도 한다). 누프리는 '서쪽 산들'이란 뜻이다. 그르므로 누프리 계곡은 '서쪽 산들의 계곡'이라는 뜻이다. 이 계곡이 마나슬루, 라르키아 피크 등 서쪽에 있는 산에서 내려와 쿠탕 계곡까지 계속 동진하는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은 원정대는 말할 것도 없고 트레커들도 필연적으로 티베트어를 접하게 된다. 그래서 몇 가지 말의 뜻을 알고 가면 좋다. 티베트어로 동쪽은 샤르(shar), 서쪽은 눕(nup), 남쪽은 로(lho), 그리고 북쪽은 창(chang)이다. 세르파라는 말은 샤르-파(Shar-pa)라는 티벳어에서 나온 말인데 파(pa)가 '~지방 사람'이란 뜻이므로 '동쪽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무스탕에서 중국에 대한 저항 게릴라 활동으로 유명했던 캄파는 '캄 지방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티베트에서도 용맹하기로 유명한 캄 지방 사람들이다.

에베레스트 서쪽에 눕체(Nuptse,7855m )가 있고 남쪽에는 로체(Lhotse, 8516m)가 있다. 로체와 거의 붙어 있는 동쪽 봉우리는 로체샤르(Lhotse Shar, 8400)다. 로체샤르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인 로체의 위성봉으로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봉우리인데 8,000m가 넘으면서도 흔히 8,000m 이상의 고봉을 의미하는 14좌에는 들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독립봉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아 8,505m의 얄룽캉과 함께 16좌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또 에베레스트 북쪽에는 북쪽에는 창체(Changtse, 7553m)가 있다. 이 산들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눕체는 서산, 로체는 남산, 로체샤르는 남동산, 창체는 북산이다.

'탕'은 티베트어로 '평원'이란 뜻이다. 무스탕의 수도 로만탕의 원래 이름은 '만탕'으로 '기원의 평원'이란 뜻이다. 마나슬루 트레킹에서 라르키아 라를 넘어 이르는 곳 이름은 빔탕인데 '모래의 평원'이란 뜻이다. 그곳에는 정말 빙하에서 부서져 나온 마사토 같은 모래가 많다. 따라서 티베트 북부에 있는 고원인 '창탕(Changtang)'이 '북쪽 평원'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창탕에서 발원하여 히말라야와 평행선을 이루며 동진하다가 나중에 뱅골만으로 빠지는 강 이름인 창포(Changpo)의 창도 북쪽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티베트계 사람들의 이름은 종종 그가 태어난 요일을 취한다. 티베트어로 일요일은 니마(Nima), 월요일은 다와(Dawa), 화요일은 밍마(Mingma), 수요일은 락빠(Lhakpa), 목요일은 푸르바(Phurba), 금요일은 빠상(Pasang), 토요일은 �바(Pemba)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락빠는 영화 <히밀라야>에서 죽어서 돌아오는 틴레의 아들 이름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바로 야크 등에 실려 오는 남편을 보고 그의 아내 뻬마가 "락빠!"하고 소리치며 우는 장면이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를 두어 번  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이름을 가진 세르파족의 가이드나 포터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아주 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무스탕의 로만탕에서 만난 니마는 일요일생이고, 지금 우리의 주방팀에 있는 빠상과 푸르바, 그리고 밍마 세르파의 출생요일은 각각 금요일과 목요일, 화요일임을 알 수 있다.

'행운(good luck)'을 뜻하는 타시(Tashi)라는 이름도 티베트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다. '장수(long life)'을 뜻하는 이름은 체링(Tsering)이고 '행운'을 뜻하는 이름은 소남(Sonam)이다. 이렇게 기복적인 이름을 선호하는 것은, 삶이란 끝없는 고통이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불확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한 인간의 보편적인 소망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소망대로 모든 이들이 무병장수를 이루기는 어렵다. <보살의 37가지 수행>을 가르친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톡메 상포 스님(1285-1369)은 병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병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나쁜 업의 영향으로 생긴 아프다는 느낌에서 온 착각된 경험일 뿐이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확실한 특질을 보여준다. 또 병이란 마술적인 환영(幻影)이어서 느끼긴 하지만 여전히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병은 윤회계의 성질을 보여주는 정신적 스승이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참을성을 연마하는 것,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이 바른 대처법이다. 이런 면에서 병은 지난 생에 저질렀던 나쁜 행위와 무지를 정화하는 가장 뛰어난 방법이다. 나는 병을 일부러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이 병으로 죽는다 할지라도 나는 깊이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병든 몸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없다. (<Life and Teaching of Ngulchu Thogme Sangpo>(Translated from Tibetan) Translated By Erik Pema Kunzang, 대원 한글역)

반짬 마을을 뒤로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큰 나무는 없고 낮은 관목이 있는 산길이 나온다. 중간중간에 집들이 흩어져 있다. 이곳 역시 계곡 건너편으로도 마을이 보인다. 조금 더 오른 후 뒤를 돌아보니 가네시 히말 4봉(7102m)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얼마 후 계곡이 넓어지고 마을을 알리는 리히(Lihi, 2905m) 마을의 카니가 나타났다. 제법 큰 마을이다. 집들이 넓은 경작지를 중심으로 그룹을 이루며 여기 저기 모여 있다.

카니 앞에는 마을환영위원회(?) 위원들이 마중나와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마중은 이들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동생을 업고 있는 녀석도 둘이나 된다. 40대 이상이라면 대부분 겪었던 전형적인 우리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마중나온 '위원님'들에게 사탕 하나씩 주고 싶은 유혹을 느꼈으나 마음을 굳게 먹고 참았다. 만일 그런 식의 보답이 계속 된다면 순순한 아이들의 마음은 트레커들이 나타날 때마다 뭔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굴해지고 만다.

카니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옥수수 대를 모으고  있다. 옥수수 수확은 다 끝났지만 보리는 아직 추수 전이다. 마을 중앙의 마니차 담장 옆을 지났다. 캠프장은 마을을 벗어나 있다. 초르텐 카니를 지나는데 또 다른 환영인파가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사탕을 달라고 한다. 이렇게 뭘 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주어서는 안된다.

오후 1시, 카니를 지나 캠프장에 도착했다. 우리 보다 먼저 온 부부 트레커가 마당 탁자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제 우리 뒤에 도착해 아랫집에 캠프를 친 팀이다. 이들은 잠시 후 다음 목적지로 떠났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여기서 1시간 거리인 쇼(Sho)나 2시간 거리인 로(Lho)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등산화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젖은 옷은 잠깐이라도 바람에 말린다. 발목은 이제 많이 나아졌다. 3일 동안 운행했는데 끈으로 묶은 등산화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끈은 닳아 곧 떨어지겠지만 다른 끈으로 매면 된다. 늘 가지고 다니던 비상용 끈을 7번째 트레킹에서 처음 쓰면서 7년간 가지고 다닌 보람을 느꼈다.

등산장비점에서 파는 가는 줄이었으면 더 질기겠지만 그나마 이런 허접한 끈이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포터들은 아직도 슬리퍼로 운행하고 있다. 아무리 습관이 되었다 해도 그것은 힘든 일이다. 등산화를 신으면 신발이 알아서 발을 고정시켜 주니 발을 디딜 때마다 발까락에 힘 줄 일이 없다. 슬리퍼는 매 번 균형을 잡기 위해 신경을 쓰므로 쉬 피로해진다.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오후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북 방향의 맞은 편 계곡 절벽 위로 6천미터 급 산들이 줄지어 티베트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쿠탕 히말이다. 꼭대기에 눈은 그리 많지 않다. 텐트를 다 친 포터들은 카드놀이에 열중이다. 우리 같으면 고스톱 쯤 될 것이다. 40세의 밍마 세르파도 합류해 있다. 도대체 이 친구들은 틈만 나면 카드놀이다. 단순하게 즐기는 거라면 좋은데 외상장부까지 기재하는 것을 보니 단순한 재미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들에게 트레킹 중 유일한 오락거리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짐만 나르는 일이라 일찍 운행을 마치면 할 일이 없다. 히말라야에 오는 것도 우리처럼 히말라야가 그리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들어오는 것이다. 수없이 보아 온 히말라야가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포터들이 그러는 것은 그렇다 치고 나잇살 먹은 타시와 밍마까지(둘 다 40세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별로 보기 좋지 않다.

타시는 운행 때는 물론 아침 일찍부터 텐트 안에서 늘 진언을 외우며 염주를 돌리는 독실한 불자인데 카드놀이 할 때는 영락없이 포터 수준으로 내려간다. 하루 일정이 빡빡하면 스태프들이 한가하게 카드놀이를 할 여유가 없다. 도박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이번엔 대원들이 피곤해 죽겠다고 아우성 칠 것이다. 차라리 그들의 '여가선용'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속 편하다.

2층 주방으로 가니 컴컴한 방안에서 우리 주방팀과 포터 몇 명이 화톳불을 쬐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와 할머니도 있다. 마나슬루 지역의 롯지 주방은 다른 메이저 트레킹 코스에 있는 마을의 주방과는 천지차이다. 그런 곳은 주방이 모두 정갈하다. 조금 엉성한 쿰부 윗지역(특히 닥락)이라도 화로주변이나 찬장은 정돈되어 있다. 이곳은 현지인들 용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수선하다. 마침 콩을 볶아 먹고 있어 뜨거운 콩을 호호 불어가면 얻어 먹었다.

저녁은 언제나 그렇듯 진수성찬이다. 밥에 수프에 빵에 한국산 밑반찬까지 푸짐하다. 저녁에는 촛불을 켠다. 트레킹 둘째날 저녁 소티콜라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주방에 가보니 어두운 곳에 촛불을 켜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빠상에게 식당텐트에도 촛불을 켜달라고 하니 그후부터 매 번 저녁마다 받침대로 쓸 돌을 골라와 촛불 세 개를 켜 준다.

등유를 압축하여 쓰는 밝은 랜턴이 있지만 시끄럽기도 하고 너무 밝아 쓰지 않고 있다. 촛불 세 개가 어두울 것 같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눈에 익숙하면 잘 보인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분위기가 좋다. 92년 여름 독일 갔을 때 제일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그곳 사람들이 저녁 식사 때는 항상 촛불을 켜고 먹는 것이다. 집에서는 물론 식당에 가도 그랬다. 환한 형광등 조명 아래서 시끌벅적하게 먹는 우리와는 정서가 많이 달랐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어쩌면 호롱불을 켜고 밤을 보냈던 유년시절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는 궁핍한 삶이었겠지만 어린 아이 때는 그런 절박함을 알 리가 없다. 다만 항상 배부르게 먹고 싶었다는 기억은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지난 일 중 어려웠던 일보다는 즐거웠던 일이 추억이라는 포장과 향수(鄕愁)라는 간판을 달고 나타난다.

타시가 이곳에서 들은 소식에 의하면 며칠 전 비가 내렸을 때 라르키아 라에는 폭설이 내려 3일간 길이 막혔다는 소식이다. 지금은 통행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비가 일찍 내린 것이 천만다행이고 앞으로는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날씨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이라 인솔자인 나로서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오늘까지 8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슬슬 체력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 다행히 혜명화 보살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오늘은 백산스님과 남형씨가 고소 조짐이 있어 다이아목스를 주었다. 나는 여전히 콧물을 달고 있다. 두 노장 보살님들은 아직 멀쩡하다. 저녁을 먹은 후 내일의 일정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찍 각자의 텐트로 돌아갔다. 감기도 걸렸고 3000m 가까운 고지라 조금 추워 우모복을 입고 잤다. 내일부터 본격적이 고산 트레킹이 시작된다.
 

trek 8. 갑 - 남룽 - 리히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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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바위 수로를 흐르는 부리 간다키 강물. 바위가 물에 닳아 반들반들하다. 스넬그로브의 글에 나오는 장면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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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숲 사이에서 첫 번째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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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말씀이 새겨진 마니월. 불상조각이 없는 마니월은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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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삼림이 있는 능선 뒤로 마나슬루 히말 연봉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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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5분 두 번째 휴식. 이 구간에서 가끔 바위 위에 붙어 있는 석이 버섯을 보았다. 숲 속이라 습도가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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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까지 이런 울창한 이런 숲속길이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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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 마을 들어서기 직전 만난 마을 사람들. 한 사나이가 먼저 "꼬레아?"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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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3년 일하고 돌아온지 3년 되었다는 체왕 도르제 라마. 붉은 색의 옷이 승려풍이다. 한국말은 영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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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 마을 입구 길가에 있는 장작더미. 나무가 흔한 곳이라 연료는 걱정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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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의 롯지 식당. 그늘이고 찬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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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룽의 꼬마. 장작 더미에 말리고 있는 것은 야크가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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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히말라야의 나무다리. 깊은 협곡에 놓여 있으면 아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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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면 바로 체크포스트가 나온다. 경찰관 모습이 서양사람 같다. 저지대에서 파견 나온 브라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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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시야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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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타난 반짬 마을. 좁은 계곡을 다니다가 만난 넓은 보리밭과 돌집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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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짬을 벗어나는 조그만 둔덕에 올라 아래쪽(동쪽)을 바라본 풍경. 설산은 가네시 히말(4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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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건너편에도 이런 마을이 자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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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 마을 입구의 카니. 포터들은 아직도 슬리퍼를 신고 짐을 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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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 마을환영위원회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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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를 지나자 넓은 경적지가 있고 집들이 그룹을 이루며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왼편 탑은 마을 동쪽 초르테 카니다. 야영장은 그곳을 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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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위로 곰빠가 있다. 곰빠 지붕은 항상 뾰족한 급색 탑을 세워두었기 때문에 일반 집과 쉽게 식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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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의 마니차 담. 마니차까지 있는 걸 보면 제법 큰 마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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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날 즈음 두 번째 환영인파를 만났다. 뭔가를 달라고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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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해 보인다고 주어버릇하면 아이들 습관을 나쁘게 만든다. 가난해도 떳떳한 것이 비굴하며 여유 있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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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히의 캠프장. 오른쪽 탁자에 어제 보았던 중년 부부가 먼저 와 차를 마시며 쉬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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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장까지 따라와 구경하는 아이들. 혹 뭔가 얻을 것이 있는가 해서 오기도 하지만 집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구경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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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마친 후 다시 운행을 시작하는 중년부부팀. 가이드가 한 아이와 장난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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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탕 히말을 마주한 캠프장 풍경.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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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카드판을 벌이는 스태프들. 그것밖에 낙이 없으니 말릴 수도 없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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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집 주방 내부 모습. 현지 주민용이라 어수선하다.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다른 지역의 주방과의 차이가 확연하다. 녹색 옷을 입은 총각은 주방 수석보조요원 빠상이고 빨간 옷을 입은 총각은 주방장 노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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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는 항상 촛불을 켜고 만찬을 즐긴다. 매 끼니마다 주방장이 정성들여 만든 요리가 너댓 가지 나오니 롯지 트레킹처럼 입맛이 없어 힘들 일은 없다. 이번 여행에서 달밧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석이(石耳) 버섯

석이버섯은 깊은 산속의 바위 표면에 발생하는 지의류(地衣類, 이끼)의 일종으로 석이과에 속하는 버섯이다. 형태는 잎과 같은 것 껍질 같은 것 아교와 같은 것 나무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중에서 잎모양의 것을 먹는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석이는 성질이 차고 평(平)하다고도 한다.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속을 시원하게 하고 위를 보하며 피나는 것을 멎게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하고 얼굴빛을 좋아지게 하며 배고프지 않게 한다. 높은 산의 벼랑에서 나는 것을 영지(靈芝)라고 한다.또 중국에서는 강정제로 노인이 상용하면 젊어지고 눈이 밝아진다고 한다.

김시습은 석이버섯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푸른 벼랑 드높아서 올라갈 엄두 못내는데
우뢰와 비 이 돌 위의 석이버섯 키웠구려
안쪽은 거칠거칠 바깥쪽은 매끈매끈
캐어다가 비벼대니 깨끗하기 종이같네
양념하여 볶아 놓으니 달고도 향기나서
입에 좋은 쇠고긴들 아름다움 당할소냐?
먹고나자 제모르게 속마음이 시원하니
그대가 송석(松石)속에 배태함을 알겠도다
이걸로써 배 버리어 푸른 산에 서식하니
거(居)하며 양(養)함이 기(氣)와 체(體)에 옮기었네
십년 동안 틀린 행적 벌써 모두 잊고나니
오장육부 가끔 나가 씻을 필요 없어라. (Daum 백과사전)
 

<달라이 라마가 설법한 37 수행법>
-깨달음으로 이끄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 수행법-
Commentary on the Thirty Seven Practices of a Bodhisattva
이창호 옮김 (정우사)

이 책은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수행서 중 하나인 톡메 상포 보살의 원전 <보살의 37수행법>을 달라이 라마가 1974년 보드가야에서 3일에 걸쳐 설법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의 원전을 정확하고도 쉬운 말로 실생활의 이모저모를 수행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일상에서 수행해야 할 가르침 37가지를 설법하고 있다. 모든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난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고자, 깊은 사랑과 대자비심으로 설법한 이 책은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조언서이자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수행서이다.
 

trek 7. 뎅 - 갑

트레킹

출발지

캠핑사이트

고도

소요시간

trek 1

카트만두 - (전세 차량) -  아루갓 바자르

520m

10:20

trek 2

아루갓 바자르

소티 콜라

620m

5:45

trek 3

소티 콜라

마차 콜라

930m

8:10

trek 4

마차 콜라

도반

990m

5

trek 5

도반           

필림

1,550m

7:30

trek 6

필림           

1,895m

4:30

trek 7

뎅               

2,140m

6

trek 8

리히

2,905m

5:45

trek 9

리히

사마가온

3,530m

7

trek 10

사마가온 (휴식일.  빙하호수 방문)

3,680m

5

trek 11

사마가온

삼도

3,850m

3

trek 12

삼도 (고소적응일.  티베트 국경 방문)

4,040m

7

trek 13

삼도

다람살라

4,450m

3:35

trek 14

다람살라 - 라르키아 라(5213m) - 빔탕

3,720m

11

trek 15

빔탕

띨제

2,335m

8:20

trek 16

띨제

자갓

1,314m

9

trek 17

자갓

나디

930m

7

trek 18

나디 - 불불레 - (전세 차량) - 카트만두

1,400m

11

trek


 

쿠탕 계곡과 스넬그로브와 항생제

2007. 10. 19(금)


이번 트레킹에서는 아침과 점심 식사 때마다 식염포도당 두 알씩 먹었다. 식염포도당은 지금까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었는데 우연히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에서 전국일주를 계획하며 준비한 준비물품에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알고보니 마라톤 등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복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름철 더운 환경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작업장은 물론이고 요즘은 군대에서도 혹서기 훈련 때 필수품으로 준비해 둔다고 둔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단순하게 땀을 흘린 후 염분만 보충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전해질 균형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해질이란 우리 몸의 체액을 이루는 중요한 성분이라고 한다. 이심전심이었는지 마침 아는 분이 마나슬루 가는 것을 알고  식염포도당 한 통(천혜당제약, 1000정)을 보내와 100정 정도 가지고 갔다. 준비물 목록에도 넣어 동행자들에게도 가져오라고 했지만 대부분 가져오지 않았다. 내가 가져 온 것을 권유해도 어쩌다 한 번 먹는 시늉만 한다.

나는 이번에 운동을 별로 하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토굴 앞마당을 하루 50분 동안  '뺑뺑이 도는 일'도 두어 달밖에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트레킹 준비에서 가장 부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은근히 일정을 여유 있게 짠 덕을 좀 볼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이번 트레킹에서는 덜 피곤했고 다람살라에서 가벼운 두통이 한 번 왔을 뿐이다. 운행 중 식염포도당을 계속 먹은 나와 무진행 보살님은 고소가 오지 않았다. 쿰부트레킹 때와는 달리 얼굴도 전혀 붓지 않았다.

Na_01.jpg그것이 식염포도당 덕분이라는 것을 100%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무진행 보살님이 막판에 조금 지쳤던 것은 고소 때문이 아니라 60대 중반의 나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체력저하 현상 탓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정기적인 산행으로 체력훈련을 많이 했는데도 나중에 힘들어 했고 대부분 고소로 고생을 조금 했다.

아침은 야외식탁에서 먹었다. 자리는 그대로이고 텐트만 걷은 상태다. 약간 쌀쌀하지만 아직은 2000m 아래여서 그리 춥지는 않다. 식사하러 텐트에서 나오는 즉시 우리의 텐트도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들에 의해 걷힌다(영어로 쓴 글을 보면 이 대목에서 항상 무너진다-collapsed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출발 전 타시와 함께 동네 소년가 이 왔다. 발 한쪽에 상처가 나 있고 곪아 있다. 항생제가 필요한데 구급약이 든 가방은 모두 카고백에 넣었고 포터는 이미 출발한 상태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약에는 항생제가 없다. 우선 급한 대로 관절염 약을 3일분 주었다. 어쨌든 염증약이니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일부터는 구급약 가방을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전 7시 출발. 해가 비치는 시링기 히말을 보며 걸었다. 좁은 협곡에 있는 길은 강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출발한지 30분 쯤 지나자 동쪽 사면으로 건너는 허름한 다리가 하나 나왔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급경사 오르막인데 보통이 아니다. 산사태가 난 듯한 지역은 사다리를 설치해 놓았다. 이런 곳은 말도 다니기 어려울 것 같다.

8시에 1980m의 라나(Rana)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라나는 스넬그로브의 책에는 코야(Koya)로 나온다. 자매로 보이는 아이 둘이 마중(?)나와 있다. 이곳 아이들은 매일 지나가는 트레커들을 보는 게 심심한 산골생활의 유일한 구경거리일 것이다. 아이들이 아주 수줍어 한다. 네팔말로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다. 이곳은 티베트계 방언을 쓰기 때문에 티베트어도 잘 안통한다고 칼스텐은 말했다.

라나를 지나 잠시 후 다시 작은 다리를 두 개 더 건너 절벽길로 접어들었다. 두 번째 다리 아래에는 수력으로 돌아가고 있는 방앗간이 있다. 절벽길 중 한 곳은 산사태가 나 아슬아슬하다. 길이 거의 무너져 있다. 다행히 8시 45분 비히(Bihi)에 도착한 후부터 강바닥에서 한참 올라 온 평범한 산길이다(마나슬루 트레킹 지도에는 비히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 비히에서 오늘의 목적지 갑(Gap)까지 3시간이 걸린다고 마을 이정표에 쓰여 있다. 여기서부터 사마가온까지는 계속 서쪽을 간다.

햇볕이 들어와 따뜻한 한적한 산길을 걷는다. 비히를 넘어서니 산기슭 좁은 경작지를 찾아 마을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계곡 건너편에도 협곡을 끼고 작은 마을이 하나 보인다. 마니월 하나를 지나자 제법 깊은 지류 계곡이 하나 나오고 그 위에 바닥을 나무로 깔아놓은 멋진 다리가 놓여 있다(지도 상단 중앙의 Mani Walls라고 쓰여진 곳). 이 계곡은 이곳 쿠탕콜라에서 제일 높은 시링기 히말에서 내려오는 빙하수가 만든 시링기 콜라다.

여기서 길이 갈라진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다리는 부리 간디키 강을 건너 왼쪽 사면으로 가는 다리다. 그쪽으로 가면 프록(Prok)이 나온다. 그 길로 가도 갑에서 만나지만 길이 험한 편이라 트레커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1056년 9월 중순(14일 전후) 스넬그로브는 남루(남룽)에서 갑(Ghap)으로 내려온 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프록으로 간다. 잠시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쿠탕(Kutang)

다음 날 우리는 남루(남룽) 마을을 통과하여 점점 좁아지는 협곡을 향해 내려갔다. 길은 이제 무성한 수풀에 둘러싸여 있고 우리의 등산화는 미끄러운 바위와 진흙에 위험스럽게 미끄러졌다. 우리는 불어난 급류 위에 놓인 단단한 나무다리를 건너 왼쪽 사면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곧 천연 바위다리를 통해 오른쪽 사면으로 되돌아 왔다. 아래쪽 깊은 계곡에는 부리 간다키가 포말과 세찬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쿠탕으로 들어가고 있다. 1마일 정도 떨어진 곳부터 계곡이 넓어졌다. 길은 협곡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가파른 계단식 경작지로 둘러싸여 있는 높은 산기슭에 있는 마을이 보였다. 우리는 첫 번째 마을 착(Tsak, 지금의 갑)으로 가는 다리에 이르렀다. 우리의 포터들은 그곳으로 갔다. 왼편 사면으로 내려가는 길이 더 쉽기 때문이다. 빠상과 나는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다른 길을 따라 오른쪽 사면의 프록(Prok) 마을로 갔다. 우리는 그 마을에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절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절벽 꼭대기 근처에 그려진 훌륭한 '연꽃에서 태어난' 붓다상을 보기 위해 멈추었다. 그 후 입구 초르텐을 통과하여 수확이 끝난 옥수수 대가 있는 밭 사이의 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마을 중심에 이를 때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길가에 티베트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한 작은 소년 옆에 있던 작고 사나운 개가 우리를 보더니 짖으며 달려왔다. 소년은 놀라는 눈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우리는 소년에게 절로 가는 길을 묻자 소년은 주저하지 않고 길을 가리켰다.

"순례자들이니?" 우리가 물었다.
"예, 우리는 키이롱(Kyirong)에서 왔어요. 그리고 네팔로 순례 가는 중이에요." 소년이 대답했다.
" 아저씨들은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소년이 물었다.
한 여인이 텐트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는 개가 짖는 것을 멈추도록 돌을 던졌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우리는 인도에서 왔단다."' 우리가 대답했다.
"아저씨들도 순례자들이에요?."
"'응, 우리들도 순례자들이야."
"안녕히 가세요."
"잘 있있거라."  우리는 대답을 하고 절을 향해 올라갔다. 비록 아주 판에 박힌 말이었지만 어린 티베트 소년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절 앞 넓은 베란다는 옥수수 알갱이가 든 통과 옥수수 더미로 가득차 있었다. 그 곳에 두 남자가 옥수수 알갱이를 까며 앉아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나타나자 바라보았다. 우리는 절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입니다. 제 아내가 안내해 줄 겁니다." 나이 많은 남자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아내를 불러 열쇠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우리는 간단하게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한 스님이(그는 유명한 라마다) 만일 우리가 가는 도중 낙챠(Naktsa) 곰빠를 방문하면 참배하라고 했다는 것을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아주 좋아했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가 그 사원 아래 마을인 롱(Drong)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잠시 후 그의 아내가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어주었다. 법당 안에는 완벽한 티베트 경전 세트가 왼편 벽 선반에 있었다. 오른편 벽에는 1천 좌의 부처님을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있었다. 가운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고 좌우에는 '무량광(Boundless Light, 아미타불)과 '자비의 눈(Glancing Eye, 관세음보살) 상이 있다.

그 라마는 우리가 불상들을 알아보는 것을 보자 더욱 기뻐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에게 볶은 옥수수를 가져오라고 했다. 우리는 버터 램프 두 개를 사서 공양올리고 발코니에서 쉬면서 그에게 건너편 계곡에 있는 마을 이름을 묻고 춤(Tsum)으로 가는 높은 길을 가리켰다. 옥수수는 내 치아에는 너무 딱딱했지만 빠상의 방앗간에서는 잘 갈렸다. 비록 그가 위쪽 절로 오르는 가파른 길에서 목이 탄다는 불평은 했지만.

경사면 꼭대기에 정원으로 둘러 싸인 몇 채의 집들이 서 있었다. 우리가 부르자 한 비구니 스님이 나와 반갑게 절 안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평화와 분노의 신들'의 프레스코 벽화가 있고 불단 위에는 '연화생(빠드마삼바바)'과 그의 두 여신 아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리고 석가모니 조상이 모셔져 있다.

우리는 버터 램프를 공양 올리고 비구니 스님을 따라 방 두 개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우리에게 음료수 한 대접과 정원에서 따 온 채소 한 다발을 주며 우리의 순례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미안해했다. 스님은 우리에게 자기가 오랬동안 순례길을 다녀보았기 때문에 자주 잠잘 곳과 음식을 구하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전에 우리는 그것을 슬픔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꺼이 감수했다.

우리는 존경스런 이 스님 앞에서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스님은 순례길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을 등에 지고 다녔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8명의 튼튼한 남자들이 우리의 짐을 지고 천천히 계곡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호화로운 원정대에 비하면 우리는 확실히 궁핍했다. 그것은 비단 10명의 대원으로 이루어진 마나슬루 원정대가 600명의 포터를 쓴 일본 팀의 경우와 비교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신선한 채소에 감사했다. (David L. Snellgrove, pp. 251-253)

협곡이 가파른 지형에 놓인 다리는 계곡의 하단부에 설치하기 때문에 다리가 있으면 다리를 향해 내려갔다가 다리를 건넌 후에는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그래서 시링기 콜라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넌 후에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평탄한 산길이다. 건너편으로 긴 폭포가 보였다.

10시 15분 경 이름모를 작은 마을을 지났다. 트레킹 지도에도 없고 레이놀즈의 가이드북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마을에서 나오던 두 여자아이에게 보명화 보살님이 무언가 선물을 준 모양이다. 아주 신이나서 달려오는 표정이 산골 소녀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라 입성은 허름해도 어린 아이들과는 달리 깨끗한 얼굴이다.  

협곡에서 떨어진 산길을 계속 가다보면 또 어느새 절벽길이 나왔다. 그렇게 몇 구비 돌다 밭 가운데 두 채의 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인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주방팀들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다. 이곳에서 갑(Ghap)이 멀지 않다는 사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초르텐형 카니가 보이는 것을 보고 알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카니는 보통 돌을 독립문 모양으로 쌓은 것이 대부분이다. 쿰부의 팡보체 마을 입구에는 돌 대신 나무로 만들어 놓은 카니가 있다. 초르텐형 카니는 고급스러운 카니다. 그것은 조성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곧 마을이 부유하다는 뜻이다. 모양은 위쪽은 초르텐이고 기단부에는 사람이 지나가는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안쪽 사방 벽에는 불보살상 벽화가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만달라가 그려져 있다. 좀솜 위 까그베니와 무스탕의 짜랑에도 초르텐형 카니가 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마당에는 추수를 끝낸 옥수수 알갱이를 덕석에 말리고 있다. 그 한쪽에는 죽은 까마귀를 매단 장대를 세워놓았다. 새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 같은데 과연 약아빠진 새들이 무서워할지는 의문이다. 이 집 꼬맹이 둘이 말없이 우리 곁에 와서 구경한다. 이곳 아이들은 대체로 수줍은 편이다. 정신없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녀석은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곳 사람들을 구경하고 이곳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한다. 아주 공평한 일이다.

점심 먹고 12시 10분 출발했다. 오늘은 점심을 빨리 먹은 셈이다. 트레킹 이래 처음 만난 초르텐 카니를 통과했다. 많이 낡아 있다. 내부의 불상 벽화도 마찬가지다. 이곳 마을의 경제력이 처음 조성했을 때보다 약해졌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40분 후 부리 간다키 강을 가로지른 트러스트 철교를 지나 왼쪽 사면으로 넘어갔다. 서진을 하고 있는 지금부터 사마가온까지 왼쪽 사면은 남쪽이 된다. 다리를 건너 오르니 바로 마니월이 나온다. 경전이나 진언을 새긴 마니석은 많이 보았는데 이곳은 불상을 많이 조각해 놓았다.

오후 1시 갑(Ghap)에 도착했다. 스넬그로브의 책에는 착(Tsak)으로 나오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야영을 할 계획이었는데 이미 캠프사이트에 다른 팀이 와 있어 조금 더 가기로 했다. 다시 마니월과 몇 채의 민가를 지나고 산사태 길을 지나 에 도착했다. 갑에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까지 2000m 돌파하는데 7일 걸렸다. 7일이며 안나푸르나 라운딩 때는 3500m의 마낭, ABC 트레킹 때는 4100m의 베이스캠프, 쿰부 트레킹 때는 4410m의 마체르모, 랑탕 트레킹 때는 로우레비나 패스(4700m)와 고사인꾼드(4321m)를 넘어 4026m의 로우레비나 야크, 그리고 작년 무스탕 트레킹 때는 3800m의 남걀에 도착했다. 마나슬루가 얼마나 천천히 고도를 올리는 코스인지 알 만하다.

롯지 앞 초우따라에서 포터들이 쉬고 있다. 캠프사이트가 넓고 좋아 이곳에서 캠프를 치기로 했다. 계곡 아래쪽(동쪽)으로 어제 보지 못했던 가네시 히말이 보인다. 텐트를 다 설치하고 세수도 하고 빨래도 널며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나중에 또 다른 중년의 서양인 부부가 도착했다. 이곳에 넓기는 하나 8동(트레커용 6, 세르파용 1, 식당용 1, 화장실용 1)의 텐트가 있으니 아무래도 복잡하다. 그들도 4동을 쳐야 한다. 잠시 서성이며 가이드와 상의하더니 아랫집으로 돌아갔다.

심심해서 주방용 움막으로 구경가니 주방 수석보조요원 빠상이 약이 있느냐고 묻는다. 어제 바위에서 미끌어져 발 뒤쪽 바닥이 벗겨져 있다. 슬리퍼를 신고 오다가 미끌어지니 속수무책이다. 딱지가 앉기는 했지만 주변에 고름이 보인다. 소독약을 발라주고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가지고 간 항생제 7일분을 주었다.

이번에 오면서 약을 많이 가지고 왔다. 지난 봄 무스탕을 다녀온 양혜숙님이 보내준 약이다. 원래 같이 가기로 했으나 가지 못하게 된 어떤 의사선생님이 무스탕 갈 때 가져가라고 보내준 것을 다시 내게 보내온 것이다. 제역회사에서 병원에 주는 관절염 약과 항생제 샘플이다. 제일 반가운 약이 항생제다. 이런 오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약 중 하나가 항생제다.

이곳에서는 약이 없어 상처가 나면 어떻게 치료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약을 거의 먹지 않는 이곳 사람들에게 항생제는 기적의 약이다. 페니실린이 처음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오남용으로 박테리아의 내성이 강해져 오히려 건강에 해롭게 되자 선진국에서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도록 하고 있다.

페니실린이란 페니실리움속(屬)곰팡이에서 만들어지는 항생제로 가장 먼저 발견되었으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항생제 중의 하나이다. 1927년에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히 푸른곰팡이로 오염되어 있는 배지에 황색포도상구균(화농균)이 자라지 않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이 곰팡이를 분리하여 액상 배지에 배양해 이 곰팡이에서 인체에 감염을 일으키는 일반 세균들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했으며 1940년에 다른 연구자들이 치료용 주사제로 만들었다.

이 페니실린은 세계 2차대전 때 전쟁의 총상으로 신음하던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졌다. 감기약을 제외하면(이상하게 트레킹 때마다 감기가 걸린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양약을 먹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계'를 떠난 지도 10년이 넘지만 나도 한 때는 테라마이신 연고와 캡슐의 애용자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으니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나설 때마다 몇 가지 약품과 함께 항생제를 가지고 가고 싶었지만 처방이 없어 구할 수 없었다.

감기는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세균감염은 박테리아가 원인이다. 그러므로 감기에는 항생제가 필요없고 써도 듣지 않는다. 최근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사이언스 TV>를 보니 사람들이 감기에 항생제를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의사와 약사 포함) 의외로 많고 처방도 그렇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벨기에가 가장 심해서 약국에서 자유롭게 항생제를 구입할 수 있단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그 프로그램을 보고 비로소 알았다.  

페셀의 책에는 북쪽 계곡 투어 마지막 날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실려 있다. 재미있고도 슬픈, 그러나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다. 항생제로 한 주민을 치료하는 이야기이다.  이 글은 인터넷에 올린 무스탕 트레킹 연재 때 번역해 올렸는데 책으로 만들면서는 '잡설'로 분류되어 삭제되었다. 그러나 번역한 공력과 내용이 아까워 인터넷에 올린 사진 <13.바람부는 광야> 편에 다시 첨부했다.  

페셀이 로만탕 북동 쪽 깊은 계곡에 있는 삼종(Sam Dzong)까지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멀리서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말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협곡에서 돌아왔을 때 타시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작은 먼지구름을 가리켰다. 그것은 누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말갈기와 함께 말을 탄 사람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정말 낭만적이었다. 나는 그가 캄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에게 도착하자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빠르게 말했다. 나는 처음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곧 그가 이틀 동안 나를 찾아 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우리에게 줄 땔나무를 로만탕에 가져다 놓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땔나무를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로만탕에서 우리를 만나지 못한 그는 우리가 서쪽 계곡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서쪽으로 갔다가, 지금 우리가 계곡을 탐사하고 돌아온 이 동쪽 계곡에서 우리를 만난 것이다.

그가 우리를 찾은 이유는 약품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로만탕에 가져다 놓은 땔나무는 약값이었다. 얘기가 좀 복잡하다. 그러나 이 불쌍한 사내의 끔찍한 상처를 보았을 때 나는 거의 토할 뻔했다. 그리고 이 불쌍한 사내가 이런 상처로 이틀이나 나를 찾아다닌 사실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짜랑 근처에 사는 부유한 농부였다. 어느 날 밤 그는 고주망태가 되어 땅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그는 수로에 발이 담가져 있는 것을 알았다. 그 물이 밤사이에 얼었다. 그가 나를 만나기 6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상이 걸린 이 불쌍한 사내의 발은 상당 부분 떨어져 나갔다. 오직 감염된 그의 상처부위를 먹고 있는 구더기들이 살이 썩는 것과 죽음을 막아주고 있었다.

나는 주사 맞는 것을 싫어해서 치과의사에게 가느니 차라리 치통으로 죽는 것을 택할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상처와 피를 보면 나는 아주 메스꺼워진다. 내가 의사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은 오직 아무것도 모르는 무스탕의 사람들 속에 있을 때다. 지금 나는 빈약한 약품 분배자의 기능을 넘어서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내 의료 능력을 신뢰하여 이틀간 말을 몰고 찾아다닌 이 사내를 돕기 위해 나는 의학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것은 무엇인가? 수술용 마스크를 쓰고 고무장갑을 끼고 마취된 환자의 깊은 곳을 자르는 장면이다!

우리 세 사람은 내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을 끓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붕대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가지고 온 얼마간의 탈지면은 로만탕에 두고 왔다. 나는 결국 세 장의 의식용 스카프를 가지고 이 남자의 상처를 씻기로 했다. 나는 큰 가위로 썩은 피부와 감염으로 딱딱해진 부위를 도려냈다.

나는 이 사내가 이 상태로 어떻게 6개월을 견뎌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오직 로바들의 뛰어난 체력과 높은 고도에 따른 춥고 건조한 날씨로 부패가 아주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른 기후나 다른 나라였다면 그는 몇 달 전에 죽었을 것이다.

1시간 동안 나는 락시를 알코올로, 의식용 스카프를 붕대로, 큰 부엌칼을 외과용 메스로, 그리고 무엇을 할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수술을 했다. 유일한 의약품은 작은 페니실린 연고제 하나였다. 마침내 이 가여운 상처는 붕대에 감겨졌다. 발의 일부분이 잘리고 피가 흐르기는 했지만, 그가 만든 특별히 큰 장화 속으로 그의 발이 다시 들어갈 때 나는 그 발이 충분히 깨끗해졌다고 생각했다.

이 환자의 첫 진료는 끝났다. 그리고 치료비로 로만탕에는 엄청난 양의 땔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3주 동안 그는 계속 나를 따라다녔으며 나는 그에게 붕대를 6번 더 감아 주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내가 로만탕을 떠날 때 그의 상처는 아물었다고 나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Michel Pessel, <Mustang-A Lost Tibetan Kingdom> pp. 233-235)

그 의사선생님 덕분에 이번에 가지고 온 항생제 양은 500mg 짜리 1500 캡슐이다. 관절염약도 가지고 왔지만 그것보다는 항생제가 더 유용하다. 트레킹 도중 필요한 주민들과 스태프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 하이라이트는 트레킹 12일 째인 삼도에서였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다음 네팔 방문 때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네팔에서, 특히 히말라야에서 유통기한은 큰 의미없다. 기한이 지난 것이라도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삼도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때 구경 온 옆집 독일 팀의 한 사나이가 무엇을 나누어 주느냐고 물었다. 항생제를 영어로 무어라 할까? 그때는 잘 몰라 "안티바이러스, 예를들어 페니실린 같은 거"라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돌아와 찾아보니 안티바이오틱(Antibiotic)이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다르니 안티바이러스(Antibirus)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그러나 그 친구도 비영어권 사람의 말이라 대충 항생제를 그렇게 표현했으리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혜명화 보살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이제 겨우 2140m인데 고소증상을 보인다. 보통은 3000m 가까이 올라야 나타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일찍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체력이 저하되면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 고소가 와 두통이 오고 식욕이 떨어진 혜명화 보살은 저녁을 먹지 않고 일찍 텐트로 들어갔다. 가지고 간 다이아목스를 12시간 마다 1정씩 먹으라고 주었다.

트레킹이 처음인 사람은 국토도보종단이나 군대에서 행군 등을 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걸을 일이 없다.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7일을 걸었으니 슬슬 지칠 때도 되었다. 마니슬루 트레킹은 고도를 천천히 올리기 때문에 고소적응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실제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라르키아 라를 넘기 전 기간이 너무 길어 일찍 체력이 바닥나게 된다.  평소 체력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힘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트레킹 중에는 음식을 가리지 말고 잘 먹어야 하고(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염분 보충과 전해질 균형을 위한 식염포도당 섭취도 중요하다.
 

trek 7. 뎅 - 갑   (top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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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북쪽의 시링기 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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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좁은 협곡을 향해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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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다리를 건너 오른쪽 사면으로 넘어가다. 마나슬루 지역은 이런 다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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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산사태 지역을 오르는 길. 사다리까지 있다. 말이 다니기엔 많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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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라나 도착. 아직 그늘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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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의 두 자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이곳에서 쉬면서 사이좋게 사탕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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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지류도 자주 나온다. 왼편의 집 지붕은 수력으로 돌아가고 있는 방앗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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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길이 무너져 있는 곳도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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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을 지날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떨어지면 아래로 한참 미끄러져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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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양편으로 군데군데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햇볕이 따사로운 건너편 양지녁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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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협곡을 돌아보다.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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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월 하나를 지난 후 시링기 콜라에 놓여 있는 낭만적인 다리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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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면 바로 오르막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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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순수한 모습의 산골 소녀들. 쿠탕 계곡에는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집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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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은 여전히 좁으나 계곡 전체는 많이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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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협곡을 돌아가는 절벽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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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에서 가까운 작은 집에서 점심을 먹다. 갑은 여기서 30분 거리다. 멀리 보이는 초르텐형 카니가 갑의 마을 입구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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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 아래 옥수수 알갱이를 말리고 있다. 스넬그로브의 여행기에도 이 지역 옥수수에 대한 언급이 있다. 절벽쪽 장대에 죽은 큰 새를 매달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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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이 끝난 옥수수밭에는 다 못 거둔 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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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수줍은 두 아들내미. 하루종일 무엇을 하며 놀까? 그나마 둘이라서 덜 심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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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텐형 카니. 많이 낡았다. 중간에는 불경을 새긴 마니석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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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 내부 벽화. 이런 스타일의 카니는 무스탕 지역에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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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타난 철제 트러스트 다리를 건너 다시 왼쪽 사면으로 건너다. 역;사부터 사마가온까지 계곡이 동서로 나 있으므로 왼쪽 사면은 남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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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초르텐과 마니월이 함께 있는 산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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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조각한 마니석으로 조성한 마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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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 지나자 바로 산사태 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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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로 삼은 갑의 캠핑장은 다른 팀이 먼저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갑에서 15분 거리인 <마나슬루 탁쿨리 호텔> 야영장에서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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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사이트. 오른쪽 엉성하게 보이는 움막이 주방용 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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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를 친 후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스태프들. 카드놀이를 하는데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돈 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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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모습. 나중에 온 서양의 중년 부부는 다시 아랫집으로 돌아가 캠프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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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동쪽) 계곡 풍경.
 

박테리아는 독립적인 생물체다. 박테리아는 우리 몸에 이로운 특성을 가진것도 많고, 스스로 세포분열을 통해 증식한다. 물론 콜레라 처럼 인체에 해로운 대사물질을 배출하는 박테리아도 있다. 인간의 소화기간 내에서는 약 1kg에 해당하는 천억마리의 세균이 증식하고 있고, 인체의 생리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크기는 몇 마이크로미터 정도다.

바이러스는 독립된 생물체로 인정받지 않는다. 박테리아에 비해 100배 이상 작아 전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  바이러스는 유전자 가닥(DNA)와 단백질로 구성된 외피로 이루어져 있다. 대사작용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물이나 영양분이 필요없다. 바이러스의 유일한 목표는 숙주의 몸에 침투해 다량으로 증식하고 퍼지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세포내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며, 이렇게 생성된 바이러스는 결국 세포를 파괴한다.  바이러스는 세포막이 없어서 항생제가 아무 효과가 없고, 예방 주사만 효과가 있다. (마르틴 보레, 토마스 라인톄<나는 왜 이런게 궁금할까>)
 

크리스마스에 관한 Q&A
엉뚱한 질문, 과학적 답변
2007년 12월 21일 | 글 | 김상연 기자ㆍdream@donga.com |
 
루돌프 코는 표피 밑에 빛을 내는 기관에서 효소가 산소와 루시페린이라는 화학물질을 결합해 빨간 빛을 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마다 아이들은 엉뚱한 궁금증에 곧잘 빠져든다. 산타는 그 많은 착한 어린이에게 어떻게 선물을 전달해 줄까. 루돌프는 잠도 자지 않고 날아다닐 수 있는 걸까. 예수 탄생 때 떴다는 별은 과연 무엇일까. 과학자들이 크리스마스 철마다 나오는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하고 있다.


Q. 산타는 크리스마스에 정말 바쁘겠어요. 얼마나 바삐 돌아다녀야 하는 거죠?

A. 스웨덴 기술 컨설팅 회사 스웨코가 최근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았어요. 종교에 상관없이 지구의 모든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려면 24, 25일 이틀 동안 25억 가구를 방문해야 해요. 계산 결과 산타는 한 집에 도착한 뒤 34마이크로초 만에 굴뚝을 통해 내려가 양말 안에 선물을 넣어야 한대요. 1마이크로초는 100만분의 1초죠. 썰매를 끄는 순록도 1초에 5800km를 날아야 하죠.


Q. 산타도 산타지만 루돌프도 장난이 아니네요. 잠잘 틈도 없는데 어떻게 견디죠?

A. 노르웨이의 트롬쇠대 카를 아르네 스토칸 교수가 2005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순록의 생체시계를 조사해 발표했어요. 동물은 24시간에 맞춰 자고 깨는 생체시계를 가져요. 하지만 극지에 사는 순록은 생체시계가 특이해서 빛이 있으면 오랫동안 자지 않을 수 있대요. 산타가 왜 순록 중에서 특히 루돌프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되네요. 빨간 코가 항상 빛나니까 잠을 더 안 잘 수 있겠죠. 미국의 온라인 출판사 하우스터프웍스는 최근 루돌프 코가 빨갛게 빛나는 이유를 소개했어요. 루돌프 코의 표피 밑에 빛을 내는 기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효소가 산소와 루시페린이라는 화학물질을 결합해 빨간 빛을 낸다는 거예요.


Q. 제 친구는 산타와 사진 찍는 걸 싫어해요. 이상하지 않나요?

A. 결코 친구가 이상한 게 아니에요. 미국 뉴욕시립대를 은퇴한 존 트링카우스 교수는 2003년부터 백화점의 산타 도우미 품에 안긴 어린이들의 표정을 조사해 매년 ‘심리학 보고서’에 발표했어요. 그 결과 6%의 어린이만 신나거나 행복해했을 뿐 90%의 어린이가 심드렁해하거나 내키지 않아 했어요. 3%는 울상을 지으며 산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죠. 반면 보호자의 87%는 즐거워했대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요.


Q. 예수가 태어났을 때 나타났다고 하는 ‘베들레헴의 별’은 무엇이죠?

A. 기독교 성경에 따르면 그 별을 보고 동방박사 셋이 찾아와 예물을 바쳤다고 하죠. 1999년 미국 프린스턴대 마크 키드거 교수는 ‘베들레헴의 별’이라는 책에서 “기원전 5세기 봄 중국 천문 기록에 나타난 염소자리의 혜성이나 신성”이라고 주장했어요. 미국 럿거스대 마이클 무어 교수는 2001년 고대 로마의 천문 기록을 근거로 “기원전 6세기 봄에 달이 목성을 부분적으로 가린 현상이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주장했어요. 당시 이 현상은 새로운 왕의 탄생을 뜻했다고 해요. 어느 쪽이 맞든 예수는 겨울이 아니라 봄에 태어난 셈이네요.


Q. 크리스마스에 태어나면 운이 좋다는데 정말인가요?

A. 실제로 물리학자 뉴턴이 크리스마스에 태어났어요.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와 이스라엘 기술연구소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국경일, 특히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유명인사가 꽤 있대요. 어떤 날에 특별한 기운이 있다기보다는 기념일에 태어났다는 기대감이 자라면서 성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이 가능해요. 또 신앙이 강한 사람일수록 생명이 위급해도 종교적인 기념일을 지나 사망하는 경향이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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