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은 자연계의 마법공식
일정부피 최소면적으로 감싸
2007년 04월 27일 | 글 | 박근태 기자ㆍkunta@donga.com |
 
누구나 한 번쯤 투명한 비눗방울을 불며 놀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긴 빨대에 비눗물을 묻혀 ‘후’불면 봉곳이 부푸는 비눗방울은 그 자체가 환상적인 세계다. 19세기 영국의 비누회사 ‘A&F 피어스’는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이용하기 위해 신제품 광고에 비눗방울 그림을 삽입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수학의 세계에서도 비눗방울은 놀라운 매력을 떨친다. 단세포 동물에서 올림픽 경기장 지붕까지 세상의 숨은 법칙을 읽는 마법의 렌즈와도 같기 때문이다.

생물-건축-경제학에 널리 활용

세포동물, 외부자극 줄이려 같은 형태로 진화

18세기 화가 장 시메옹 샤르댕은 비눗방울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로 꼽힌다. 그는 어느 화창한 봄날 비눗방울을 불며 노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그림처럼 한동안 비눗방울은 가볍고 투명한 구슬처럼 여겨졌다.

수학은 구(球)를 같은 부피를 에워싸는 곡면 중 면적이 가장 작은 물체로 해석한다. 일정한 길이의 끈으로 가장 넓은 면적을 둘러싸려면 원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이런 성질 때문에 비눗방울의 평균곡률은 일정한 값(상수)을 갖는다. 구 외에 다른 형태를 띨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에서 비눗방울과 같은 ‘수학적 성질’을 가진 사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단세포동물이 대표적인 사례다.

단세포동물은 외부 자극을 줄이면서 생명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편한 형태를 가지려는 성질이 있다. 과학자들은 “단세포동물이 물리적 힘과 생물학적 필요성이 균형을 이루며 진화한 덕에 비눗방울과 비슷한 수학적 성질을 띠게 됐다”고 추측한다.


이룰 땐 외부각도 120도, 내부 109.5도

비눗방울이 여러 개 모여 만든 구조와 같은 성질을 지닌 사례는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비누거품은 낱개의 비눗방울이 서로 만난 부분이 곡면을 이룬다. 이때 곡면을 따라 비눗방울이 서로 만나는 각도는 120도. 내부에 생긴 막은 109.5도를 이룬다(아래 사진 참조).

비눗방울이 모여 120도 구조를 만드는 까닭은 비눗방울처럼 일정 부피를 에워싸는 곡면 중 가장 작은 넓이이기 때문이다.

고등과학원 수학과 최재경 교수는 “자연계는 표면적을 가장 작게 하면서 가장 튼튼한 구조를 가지려는 성향을 가진다”며, “비누거품이 이루는 ‘120도 구조’가 대표적인 예”라고 말한다.

비눗방울의 ‘120도 구조’는 벌집, 현무암 기둥, 잠자리 날개, 방산충 뼈대와 같은 자연계는 물론 자동차 핸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송유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된다.


붕에 응용 건축재료 적게 들고 구조안정

비눗물에 둥근 철사를 담갔다 꺼낼 때 생기는 ‘비누막’ 구조는 건축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활용돼 왔다. 1972년 완공된 독일의 뮌헨 올림픽 경기장은 비누막을 본뜬 지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의 설계자 프라이 오토와 군터 베니시는 지붕을 설계할 때 실제 축소된 구조물을 이용해 비누막 실험을 했다.

그들이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비누막을 큰 건물의 지붕 모델로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비누막 역시 경계가 있는 곡면 중에서 가장 작은 표면적을 가지려 하기 때문이다. 평균곡률이 0인 비누막은 최소 넓이를 가지려는 성질 때문에 매우 안정된 구조를 이룬다. 건축학적으로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안정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성당의 종탑이나 소방서 같은 좁은 공간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회전계단’도 비누막이 확장된 형태다. 최 교수는 “비누막과 비눗방울 구조가 갖는 이런 성질은 자연계나 공학 분야의 해석뿐 아니라 ‘최소 비용에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모델 분석 등 다른 분야의 해석에도 널리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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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의 선박들
실생활과 전시 넘나든 뛰어난 기술 자랑
2007년 04월 19일 | 글 | 편집부ㆍ |
 
항공모함, 잠수함, 이지스함 등 외국의 첨단의 군함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우리는 저런 군함을 만들 수 없는가’하고 한탄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장 우수한 군함을 만들어온 해양국가라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다. 우리는 육지에서 완패한 임진왜란을 바다에서 역전시킨 해양강국이었다. 그리고 이는 고려시대 이래로 이어져온 조상들의 탁월한 선박 건조 능력이 바탕이 됐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선(韓船)의 선구자 완도선

인양된 목재를 이용해 복원한 완도선의 밑바닥.
1984년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어두지섬 앞바다에서 한척의 침몰선이 발굴됐다. 함께 인양된 3만여 점의 도자기를 분석한 결과, 이 배는 고려시대 11세기 중반의 선박으로 해남군 산이면 일대의 가마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가득 싣고 항해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체와 함께 인양된 유물은 도자기를 비롯해서 총 3만여 점으로 고려청자가 대부분이며 잡유 26점, 토제유물 2점, 철제유물과 목제유물이 각각 18점과 9점이다. 이들 유물은 전라 경상 제주도의 지방관청, 민가, 그리고 사찰 등에서 실생활에 사용된 것으로, 배로 이 유물들을 운송하다 이곳에서 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15m 해저에서 발굴된 완도선은 선수와 선미부가 유실된 채 배의 중앙부분만이 남아 있으나, 우리 한선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권에서 발견된 구조선(構造船)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추정되는 완도선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배와 더불어 한선의 발생과 발달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완도선의 구조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①용골이 없고 바닥이 평평한 단면구조이다. ② 가룡목으로 좌·우현을 고정시켰다. ③흠불이로 외판을 접합한 구조로 돼있다. ④ 충해 방지를 위해 연화법(그을리기)을 사용했다. ⑤돛대가 하나인 단주범선이다. ⑥사용된 선재는 한국산 육송 등이며, 나무못이 사용됐다. ⑦복원선의 길이는 약 9m, 선폭은 약 3m, 무게는 약 10t이다.

완도선이 갖고 있는 특성은 바로 우리네 배의 전통적 특성이다. 조선시대 말까지 우리 한선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 형태를 유지했다. 그것은 갯벌이 많은 우리 연안의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배를 갯벌에 올려놓고 물건을 싣고 내리기 편리하고 전투시 배를 은폐시켰다가 유리한 시점에 배를 출항시키기도 좋았다.

한선은 쇠못 대신 참나무나 박달나무로 된 나무못을 사용했다. 쇠못은 염분이 있으면 쉽게 부식되는데 철이 부식할 때 나무도 함께 부식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은 나무못을 사용했다. 배가 물에 들어가면 밖에 있는 선재가 불어 나무못은 오히려 강도가 높아진다. 고려 원종 15년(1274)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일본 원정을 단행했을 때, 일본 군선과 몽고의 군선은 풍랑에 파손됐으나 고려선만은 완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일본과 몽고의 군선이 쇠못을 사용해 풍랑에 쇠못 구멍이 점차 넓어져 자연 파손됐으나, 고려 군선은 나무못을 사용하고 가룡목이 풍랑에도 선체를 지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도시를 만든 조운선(漕運船)

곡식을 실었던 조운선. 유사시에는 병선으로 활용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수도를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성으로 옮긴 이유 중의 하나가 세곡을 옮기는 조운로가 막혀버렸기 때문이었다. 개성을 굽이쳐 흐르던 예성강의 토사가 쌓여 선박의 운항과 접안이 어렵게 됐다. 이로 인해 지방의 세곡과 물산들이 때맞춰 도착하지 못해 개성은 생필품 부족과 물가의 폭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이 위기를 극복해 민심을 안정시키는 방안이 바로 조운이 편리한 한성으로 수도를 정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육로가 개발되지 못한 시절에 각 지방의 특산물과 생산품을 쉽게 유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수로였다. 물의 양이 많고 맑은 한강은 조선을 부흥시킬 조운로로 이용하기에 제격이었다. 작게는 나룻배로부터 크게는 병선이나 조운선이 동원돼 많은 물동량을 적은 노동력과 저렴한 비용으로 먼 지방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특히 조운선은 국가에서 운용하던 관용선(官用船)으로 관청에서 수납한 세곡과 중앙정부에서 소용되는 일용품이 거의 조운선으로 운송됐다. 조운선은 조선 전기에는 병조선(兵槽船)이라 불렸다. 상장(上粧, 구조물)을 설치하면 병선이 되고 상장을 철거하면 조운선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평시에 조운선으로 활용하다 전시에는 상장을 설치해 병선으로 운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사시 재빠른 전시체제로 돌입하기 위한 지혜의 소산이었다.

조운선이 정박하는 나루와 포구에는 관련 관리와 인부, 그리고 상인들이 모였고 이들의 식사와 침식을 위해 또 다른 주민들이 모이게 됐다. 처음에는 조그만 마을로 시작된 나루와 포구는 얼마 되지 않아 번창하는 도시로 변했다. 조선시대 조운선이 정박해 새로운 도시가 된 대표적인 예는 서울의 용산과 마포, 노량진, 동작나루, 양화진, 충청도의 충주, 전라도의 법성, 덕성, 영산포, 강원도의 원주, 춘천, 황해도의 금곡, 조음, 그리고 평안도의 안주, 삭주, 의주 등이 있다.

16세기 동양에서 가장 훌륭한 조선술을 보유했던 조선은 17세기 이후 군선 개량에 소극적이었다. 이는 조선의 지도이념인 주자학이 실용성보다 의례를 중시하면서 집권층이 집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의에 반하는 붕당정치와 세도정치로 일관함으로써 백성들의 창의성과 기술개발을 우대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술자를 쟁이(장인)라는 말을 붙여 천시한 결과였다.

우리와는 반대로 서양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국민의 창의성과 기술 개발을 장려해 증기선을 만들고 위력적인 대포를 제작하게 됐다. 그들 근대식 군함이 조선 영해를 침범했을 때, 인력과 풍력에 의존했던 우리나라의 범선은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해 급기야 강제개항이라는 국치를 당하게 됐다.

해방 이후 우리는 조선업 분야에 괄목한 발전을 이룩해 세계 2위의 선박 수주국이 됐다. 이제 우리들은 전쟁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군함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력과 지혜를 개발하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다.

<장학근의 ‘우리 역사 속의 군함’ 기사 발췌 및 편집>
철갑옷 두르고 바다 지켜내
단단한 목재로 박치기도 우수
2007년 04월 19일 | 글 | 편집부ㆍ |
 
임진왜란의 역사를 읽다보면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지는 육군의 무기력함에 심한 분노와 좌절감을 느낀다. 그래도 우리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살려준 싸움은 이순신 장군이 이끈 해군의 승리일 것이다. 승전보의 한가운데는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과 함께 거북선을 비롯한 우리 전투함의 활약이 있었다.

거북선을 덮은 튼튼한 철판과 날카로운 가시 앞에 왜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의 활약은 대단했다. 수백척의 일본 전함 속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면서 도망가는 배는 천자총통이나 황자총통을 비롯한 대포로 망가트리고 가까이 어른거리는 배는 용머리로 화염을 내뿜어 태워버린다. 하지만 거북선의 진짜 모양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너무 부족해 조상의 위대한 발명품을 명확히 재현하지는 못 하고 있다.

거북선의 생김새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기록은 선조 25년(1592) 5월 1일자 실록에 실렸다. ‘이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했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했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했다. 싸울 때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했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고슴도치 지혜를 빌린 것이다.

거북선이 탄생된 이유는 전투환경의 변화다. 임란 당시 주력군선은 판옥선이었다. 판옥선은 사부와 노군은 판옥 안에 있고 포를 쏘는 포수는 옥상에 있어 전투시 포의 명중률을 높이고 기동을 원활히 하려 했다. 그러나 선체가 커서 속력이 느리고 개방된 위치에서 포를 쏘던 포수들이 적탄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했다.

이순신은 전투시 적진을 혼란케 만든 후 판옥선의 우수한 화력을 이용해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거북선을 만들었다. 거북선은 판옥선의 장점인 노 요원과 포 요원을 구분하고 그들 모두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덮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속력을 보완키 위해 선체를 작게 만들었다.

거북선의 갑판이 둘이라는 점과 포가 판옥선과 같이 상갑판에 위치했다는 것은 정조 때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에도 언급돼 있다. 통영 거북선을 설명하는 부분에 “거북선의 난간을 따라 마루를 깔고 마루 주위에 방패를 꽂고, 그 위에 또 난간을 설치했다. ... 현측 난간 좌우에 각각 포혈 10개 복판(덮개) 좌우에 각각 포혈 10개와 복판 좌우에 각각 6개의 포혈이 있다”는 것은 거북선의 갑판이 중갑판과 상갑판으로 분리돼 있음을 의미한다.

영조 때 균세사로 연해지방을 감찰하고 돌아온 박문수는 “이충무공의 기록을 상세히 조사한 결과 거북선의 복판 좌우에 6문의 포문이 있다”고 하고 임란당시 거북선은 주갑판에 노군과 사수(활쏘는 사람)가 위치하고 포수는 상갑판에 위치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증언에 따르면 거북선은 3층 구조로 1층은 수군의 침실과 군량 무기 창고로 이용됐으며, 2층은 노군과 사부가, 3층은 포요원이 위치해 전투시 포와 활 그리고 기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던 군선이었다.

튼튼한 몸체로 시원하게 한 방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거북선 내부.
거북선은 ‘박치기’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선조 29년(1596) 11월 7일 기록에 따르면 “거북선은 사면을 판옥으로 꾸미고 형상은 거북 같으며 쇠못을 옆과 양머리에 꽂았는데, 부딪치는 왜선은 모두 부서진다”고 했다. 박치기 한방으로 상대를 메트 위에 시원하게 눕히는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의 모습이다. 조금은 무지막지한 수법 같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속시원한 공격이었다. 박살난 일본 배에서 아우성쳤을 일본병사를 생각하면 땅위에서 당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반쯤이라도 풀리는 듯하다.

박치기에 이기는 데는 우선 들이받는 배의 강인한 구조와 함께 단단한 뱃몸이 필요하다. 우리 배가 강한 이유는 무엇보다 배의 겉판이나 밑판을 만든 나무의 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배는 다른 나라의 배와는 달리 등뼈라고 할 수 있는 용골이 없고, 밑이 편평한 사각통 모양의 평저선 형태다. 구조가 이렇다보니 배의 강도가 약할 것은 당연하다. 이런 단점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판자를 쓸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싸움배에 관한 기록과 당시 숲의 구성을 볼 때 거북선의 뱃몸은 대부분 소나무로 만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소나무는 여름에 만들어진 단단한 세포가 나이테 속에 많이 포함돼 있어, 배의 겉판을 만드는 나무 종류 중에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단단하다.

배 자체만으로도 튼튼한데, 박치기에 알맞도록 주요 부위는 더 강한 나무로 보강했다. 조선시대 싸움배의 앞부분은 진목, 즉 참나무로 만들었다. 참나무는 1cm3에 5백kg의 압축강도를 견딜 만큼 단단하고 질기다. 또한 이보다 더 단단한, 참나무의 다른 종류인 가시나무도 적극 이용됐다. 정종 18년(1794) 호남 위유사 서용보는 임금께 올린 글에서 ‘가서목(가시나무)은 강하고 질긴 좋은 재목으로서 군용으로 수요가 크다’고 했다.

이처럼 크기도 클 뿐더러 참나무를 비롯한 단단한 나무로 주요부위를 보강한 우리 배로, 일본 배를 향해 ‘돌진 앞으로!’를 감행하면 다음 상황은 볼 것도 없다. 꼭 정면 박치기가 아니라 옆면으로 부딪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 배를 만들 때 배의 너비 방향을 고정하고 튼튼히 할 목적으로 장쇠라는 가로 버팀목을 쓰는데, 이 역시 참나무나 가시나무다. 기본적으로 조선재료의 우수성 때문에 임진왜란의 해전에는 일본 배가 맥을 추지 못했다. 여기에 이순신 장군의 꾀가 더해져 육지는 불타도 바다는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상진의 ‘박치기 명수 거북선의 비밀’, 장학근의 ‘우리 역사 속의 군함’ 기사 발췌 및 편집>
뇌도 세상을 본다
눈보다 넓게… 멀리…
2007년 04월 20일 | 글 | 임소형 기자 ㆍsohyung@donga.com |
 
옆에 놓인 컵을 팔로 밀치는 바람에 물을 쏟은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시야는 생각보다 좁다. 정면을 응시하고 서면 시야각이 120도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의 양이 제한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뇌 덕분에 물리적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보다 더 넓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풍경이나 공간을 볼 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진 테두리 확장시키듯 확대해 기억

1980년대 후반 미국 델라웨어대 심리학과 헬렌 인트럽 교수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연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보여 주고 기억하게 한 다음, 몇 분 뒤 동일한 사진을 보여 주고 처음 본 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물었다. 희한하게도 많은 사람이 다르다고 대답했다.

연구팀은 이번에는 같은 장소를 가까이서 찍은 사진과 그보다 약간 멀리서 찍은 사진을 차례로 보여 주고 두 사진이 같은지 다른지를 물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같은 사진이라고 대답했다.

인트럽 교수는 사람들이 사진 속의 풍경을 사진 바깥 부분으로까지 확장시켜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카메라 렌즈를 ‘줌 아웃’시키는 것처럼 사진의 테두리를 무의식적으로 확장시킨다는 것. 처음 본 사진의 풍경을 자신도 모르게 ‘줌 아웃’시켜 기억했기 때문에 나중에 본 사진이 먼저 것과 동일하다고 말했다는 얘기다. 인트럽 교수는 이를 ‘테두리 확장(Boundary Extension) 현상’이라고 불렀다.


좁은 시야 보완하려는 뇌의 지혜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천명우 교수팀은 최근 자원자 18명을 모집해 넓은 공간에 있는 물체를 가까이서 찍은 사진과 멀리서 찍은 사진들을 30∼60초 간격으로 두 차례 보여 주면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를 촬영했다. 실험 참가자들의 뇌에서는 풍경이나 공간 정보를 처리하는 시각영역(PPA)과 물체 정보를 처리하는 시각영역(LOC)이 모두 활성화됐다.

시각영역을 구성하는 신경세포는 어떤 풍경이나 물체를 처음 볼 때와 반복해서 볼 때 활동하는 강도가 달라진다. 처음 볼 때 10만큼 활발히 활동한다면 다시 볼 때는 활동 강도가 5, 6 정도로 떨어진다. 처음 보는 것에 더 활발히 작동하도록 조절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의 뇌 영상에서 PPA의 신경세포가 얼마나 활발히 활동하는지를 조사했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 두 장을 차례로 본 경우와 멀리서 찍은 사진 두 장을 차례로 본 경우에는 모두 두 번째 사진을 볼 때의 활동 강도가 첫 번째 사진 때보다 줄어들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이 같은 것이니 당연한 결과다.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여 준 다음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보여 줬을 때는 활동 강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신경세포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처음 보는 사진으로 인식한 것. 서로 다른 사진이니 이 역시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먼저 보여 준 다음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자 희한하게도 신경세포의 반응 강도가 줄어들었다. 분명 다른 사진인데도 신경세포는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실험 참가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 두 사진이 같다고 대답했다.

실험을 주도한 박사과정 대학원생 박수진 씨는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뇌가 스스로 확장시켜 기억했기 때문에 이어서 본 멀리서 찍은 사진과 동일하다고 착각한 것”이라며 “PPA의 신경세포에서 테두리 확장 현상이 일어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PPA와 달리 물체 정보를 처리하는 LOC의 신경세포가 활동하는 강도는 두 번째 사진을 볼 때 항상 줄어들었다. 가까이서 찍든 멀리서 찍든 사진 속 물체는 모두 같기 때문에 두 번째 사진에서는 반복해서 본다고 인식한 것이다.


뇌의 시각영역이 일으키는 의미있는 착각

테두리 확장 현상은 언제나 정확하게 반응할 것 같은 뇌에서도 착각이 일어난다는 증거다. 박 씨는 “PPA의 이런 착각은 제한된 시각 정보를 받을 수밖에 없는 눈의 제약 조건을 극복하려는 인체의 메커니즘일 것”이라고 말했다. 좁은 시야를 확장해 주변 환경까지 자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이 연구결과는 신경과학 전문지 ‘뉴런’ 19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뇌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착각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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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을 만나라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많이 만나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만나라.
운동도 같이 하고 공부도 같이 하라.
건강은 전염성이 강하다.


- 황성주의《10대, 꿈에도 전략이 필요하다》중에서 -


* 비극적인 미국 총기 사건을 접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둡고 비관적인
혼자만의 동굴 속에 외톨이로 오래 머물다 보면,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혼자라고 느껴질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얼른 건강한 사람들 속에 뛰어들어가
그들과 함께 뒤섞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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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선명해지고 이동 자유로워져
2007년 04월 17일 | 글 | 편집부ㆍ |
 
TV가 등장한 것은 세계적으로 70년 남짓, 우리나라도 1956년 첫 TV 방송이 전파를 탄지 50년이 됐다. TV 수상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된 1980년대에는 컬러 TV 방송(1980년 12월 시작)과 함께 ‘1가구 1TV 시대’가 찾아왔고, 온 국민에게 정보와 오락을 제공하는 가장 친근한 수단이 됐다. 그리고 ‘손 안의 TV’가 된 휴대전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제 ‘1인 1TV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TV가 발전하며 가장 달라진 것은 디지털 압축 기술에 의한 고품질의 영상과 입체음향이다. 현재까지 나온 고품질 TV는 SD(Standard Definition)TV와 HD(High Definition)TV가 있다. HDTV는 35mm 영화 수준으로 영상이 선명해지고 음악 CD보다 좋은 음질을 제공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이 계속되면 2010년경 더 높은 해상도의 UD(Ultra Definition)TV와 3차원 입체영상 TV, 향기 나는 TV 등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흔히 ‘대역 압축 기술’로 알려진 디지털 송출기술이 발달하며 지상파와 케이블 TV는 더 많은 채널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케이블 TV만도 디지털화를 통해 200개 가까운 채널을 방송할 수 있고, 최근 월드컵 기간 중 시험 방송한 지상파의 ‘MMS’(Multi-Mode Service)는 기존 채널 하나로 최대 3채널까지 방송이 가능한 서비스다.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 가운데 가장 먼저 서비스되고 있는 것이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실용화한 지상파 DMB는 유럽의 DAB(디지털오디오방송)기술에 비디오 서비스를 결합시킨 것이다. DMB 휴대전화를 쓰거나 차량에 수상기만 부착하면 되고 무료이므로 이미 100만대가 넘는 수신기가 보급된 상태다. 위성 DMB는 SK텔레콤에서 세계 최초로 DMB 위성 ‘한별’을 3만5000km 상공에 쏴 올려 서비스하고 있다.

DMB와 함께 차세대 매체로 꼽히는 IPTV(인터넷 프로토콜 TV)는 초고속 인터넷망(IP)을 이용해 최대 999개까지 채널을 시청하며 다양한 정보 서비스와 동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다. 기존 인터넷TV와 다른 점은 PC 모니터 대신 TV 수상기를, 마우스 대신 리모컨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양방향성이다.

IPTV는 TV를 보면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거나 출연진이 입고 나온 의상을 홈쇼핑으로 즉시 구매할 수 있도록 시청자와 방송사의 양방향 소통을 대폭 강화했다. IPTV에 디지털 정보를 전송하는 전용 모뎀과 셋탑 박스(set-top box)를 연결하면 초고속 인터넷, 전화, 방송 3가지 서비스를 한꺼번에 이용하는 TPS(Triple Play Service)를 실현할 수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유연한 TV

앞으로 TV는 어떻게 진화할까?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TV는 기존 기능을 뛰어넘는 ‘디스플레이 센터’가 될 것이다. 즉 방송시청뿐 아니라 컴퓨터와 결합해 인터넷, 쇼핑, 보안, 홈 오토메이션 등을 통합 제어한다. 이런 차세대 TV 기술로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가 ‘플렉서블’(flexible)이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말 그대로 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다. TV를 둘둘 말아서 갖고 다니거나 가방 속에 접어 넣을 수 있다. 다만 아직은 구부려도 손상이 없는 유연한 재료를 확보하는 등 여러 문제가 남아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면 미래의 TV는 벽에 쉽게 걸 수 있는 초대형, 초박형 무선 TV로 진화할 것이다. 나아가 종이 위에 고해상도 컬러 인쇄를 하듯 디스플레이 전자재료를 인쇄법으로 찍어서 만드는 날도 올 것이다. 대형 TV를 찍어서 만들게 되면 크기와 형태의 제약이 없는 TV를 즐길 수 있다. 벽면 전체를 덮는 초대형 플렉서블 벽걸이 TV를 상상해 보라.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 상상했던 기술이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곁에 다가왔듯, 오늘날 꿈꾸는 기술이 미래엔 자연스런 일상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시각(視覺)이 존재하는 한 TV의 변신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 진화의 핵심은 인간과의 교감이 될 것이다.

<김영신의 ‘TV는 미래를 싣고’, 석준형의 ‘모든 TV는 디지털로 통한다’ 기사 발췌 및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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