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었다! 바다를, 기름을, 미래를
해저 원유·가스 시추선 ‘드릴십’…한국을 먹여살릴 ‘드림십’
한척에 6000억 황금시장 한국이 세계 점유율 73%
高유가 시대 희망 퍼올리는 기술로
김덕한 기자 ducky@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수심 1500m가 넘는 깊은 해저(海底)에 구멍을 뚫어 원유나 가스를 시추해 내는 선박인 ‘드릴십(drill ship)’. 바다 밑 구멍은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마구잡이로 드릴을 돌려대다간 자칫 해저에서 원유·가스가 분출, 바다만 오염시키고 유전을 망쳐버릴 수 있다. 유정(油井)의 구멍은 쇠파이프가 아닌 특수한 진흙(mud)으로 뚫는다. 깊은 해저 역시 흙인데 어떻게 진흙으로 뚫을 수 있을까. 또 바다 위에 떠서 조류와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다른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며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드릴십 기술의 비밀 세계로 들어가 보자.


6000억원 넘는 ‘황금알’ 드릴십

삼성중공업은 지난 11월 10일 극지(極地)용 드릴십을 세계 최초로 건조, 명명식을 갖고 발주처인 스웨덴 스테나사에 인도했다. 드릴십은 파도가 심한 해상에서 일정한 위치를 스스로 유지하면서 심해 해저를 파내려 가야 한다. 그만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척당 가격은 보통 6000억원이 넘는다. 고(高)부가가치선에 속하는 초대형유조선(VLCC)의 4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2배가 넘는 조선산업의 대표적 블루칩이다. 배를 운용하는 석유회사 입장에서는 드릴십을 빨리 해저 유전에 투입할수록 수익이 커진다. 때문에 계약기간보다 납기를 앞당기면 조선사들은 보너스도 두둑하게 받을 수 있다. 아무나 만들 수 없는 해양설비이기 때문에 계약착수금 역시 다른 선종(船種)에 비해 월등히 많다.

오늘날 수심 1500m 내외의 해저 유전개발 기술은 거의 완성돼 있다. 드릴십이 구멍을 뚫고 나면 FPSO(부유식 원유저장 생산 설비)가 그 구멍을 통해 원유·가스를 뽑아낸다. 원유가격이 많이 오르고, 또 쉽게 원유를 뽑아 올릴 수 있는 지상 유전의 매장량이 줄어들면서 해저, 특히 아주 깊은 심해나 북극해 등 작업이 어려운 곳의 유전 개발 바람도 불고 있다. 그러니 해저 유전 개발 장비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고차원의 기술이 필요하다.

▲ 삼성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극지(極地)용 드릴십‘스테나 드릴막스’
이번에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드릴십 ‘스테나 드릴막스’는 에베레스트(8848m) 높이보다 더 깊은 해저 11㎞까지 파내려 갈 수 있다. 높이 16m의 파도와 초속 41m의 강풍에서도 일정한 지점을 유지할 수 있는 최첨단 위치 제어기술도 채택했다. 특히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도 작업이 가능한 ‘극지용’이다. 작년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기술력 때문에 한국 조선소들은 전 세계 드릴십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2005년부터 전 세계에서 발주된 드릴십 총 22척 중 16척을 수주, 시장점유율 73%를 차지했다. 고(高)유가 시대에 가장 유망한 해양설비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진흙으로 구멍 뚫고 부스러기도 제거

해저에 구멍을 뚫으려면 우선 암석을 파괴할 수 있어야 하고, 굴착된 암석 부스러기를 효과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뚫어낸 구멍이 무너져 내리지 않아야 하고 원유·가스의 분출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채택한 것이 진흙(mud) 순환방식이다.

해저에 시추관을 내리면서 그 안으로 진흙을 흘러내려 보낸다. 시추관 끝에 도착한 진흙은 노즐에서 강한 압력으로 분사되고, 분사 후에는 유정(해저에 뚫은 구멍)의 벽과 시추관 사이 틈을 통해 다시 위로 밀려 올라온다. 그냥 올라오는 게 아니라 파낸 흙·암석 부스러기를 함께 운반한다. 노즐의 압력으로 분사되는 힘으로 바닥에 구멍을 뚫고, 또 진흙의 점착성을 이용해 절삭된 부스러기를 위로 가져 올라오게 됨으로써 구멍 뚫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원리.

어느 정도 깊이까지 굴착이 진행되면 유정의 붕괴와 원유·가스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시추관을 끌어올린 후 파이프를 유정 구멍에 삽입한다. 그리고 파이프와 유정 벽 사이에 시멘트 반죽을 압축해 넣은 다음에 굳혀 안정된 구멍을 확보한다. 그러면 구멍 지름은 처음 뚫은 것보다 줄어들게 되고, 이후에는 좀 더 지름이 작은 시추관을 이용해 원유·가스가 매장된 곳까지 굴착을 진행한다. 시추에 성공할 확률은 100개 중 2~3개 정도.

자세 유지하는 데 GPS·음파·레이저 총동원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드릴십이 한 곳에 계속 멈춰 있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동적(動的) 위치제어시스템(DPS·Dynamic Positioning System)이 그 해법이다. 모든 선박은 해상에서 전후, 좌우, 상하로 흔들린다. DPS는 이런 움직임을 제어해, 선박의 정확한 기동과 조종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선박운항 시스템의 통합 시스템이다.

우선 디퍼런트 GPS 시스템.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측정한 GPS 정보를 통해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 다음은 음파위치정보(hydroacoustic position reference). 배 아랫부분에 장착된 음파송수신기에서 음파를 발사해, 유정 주변에 오각형으로 배치된 음파반응기의 반응정보를 통해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는 장비로, 수심이 깊은 지역에 적합하다. 또 하나는 레이저 링크(laser link). 지상의 특정 위치에 고정된 구조물에 레이저 빛을 쏴 반사돼 돌아오는 빛의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구조물과 선박 간의 거리와 위치 정보를 획득한다. 토트 와이어(taut wire) 시스템은 해저 면의 일정 지점과 선박을 팽팽한 줄로 연결해 선박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줄의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장비다. 이 같은 복합적인 기술을 통해 드릴십은 떠 있으면서도 똑같은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

해저 유전 개발은 1953년 멕시코 만에 수심 10m 플랫폼을 설치한 것이 최초다. 1970년대 중동전쟁을 계기로 유럽의 북해 유전 개발이 본격화됐고, 최근 고유가 시대를 맞아 또 다른 심해유전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에 한국 조선소들이 서 있다.



드릴십(drill ship)

수심이 깊거나 파도가 심해 고정된 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는 해상에서 원유와 가스 시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선박 형태의 시추설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척당 6000억원이 넘는다.
입력 : 2007.12.05 23:59
“어릴 적 환경이 과학자 만든다”
책을 많이 읽는 가정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 때 뛰어난 과학자를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과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교육학과 오헌석 교수팀은 국내 대표 과학자 31명을 분석해 최근 발표한 ‘과학 인재의 전문성 개발 과정에서의 영향 요인에 관한 연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1987년에서 2007년까지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한국과학상, 젊은 과학자상 등을 수상했거나 각종 기관에서 업적을 인정받은 과학자 31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들의 공통된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대부분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자기 주도적 학습태도’와 ‘다양한 분야에 관한 관심과 강점’을 지녔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책을 많이 읽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거나 어릴 적에 과학자와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진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도 전체의 70%를 넘었다.

또 조사 대상 과학자 90%가 대학시절에 자신의 미래 계획을 혼자 세우거나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에 신경을 쏟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석ㆍ박사 과정과 박사후과정에서 특정 과제에 한껏 몰입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역시 90%에 이르렀다.

창의연구단장 경험서 입증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과학자들의 성장 과정은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집단인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장들에게서도 확인된다.

분석대상인 과학자 31명 가운데 창의연구단장은 6명으로 △유룡 기능성나노물질연구단장(KAIST 화학과 교수) △김빛내리 마이크로RNA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효철 시간분해회절연구단장(KAIST 화학과 교수) △조윤제 구조생물학연구단장(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김규원 혈관·신경계 통합조절연구단장(서울대 약대 교수) △김은준 시냅스생성연구단장(KAIST 생명과학과 교수)이 포함됐다.

이들에게선 자기 주도적 학습태도, 어린 시절의 지적 자극, 연구 과제의 조기 선정과 몰입 등의 특성이 골고루 나타난다. 이달 초 ‘국가과학자’에 선정된 유룡 단장은 고등학교 시절 흐릿한 등잔불 아래에서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경험이 있다. 자신이 정한 공부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유 단장의 활동 무대인 ‘다공성 물질’은 그가 학자로서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 시작한 90년대 초반 이전부터 집중하던 분야다. 당시에는 이 같은 연구가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그는 다른 과제에 한 눈을 판 적이 없다.

과학계의 신인상 격인 ‘젊은 과학자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인 김빛내리 단장도 어린 시절이 범상치 않았다. 여고 때 읽은 고대 과학사 책이 김 단장을 과학자의 길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간접 경험이긴 했지만 아르키메데스 같은 과학자들의 활동상이 김 단장에게 남긴 인상이 컸던 것이다.

마이크로RNA라는 그의 연구 분야도 이미 박사 시절에 모색한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RNA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박사후과정도 관련 연구를 할 수 있는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보냈다. 이 같은 준비과정에 있었기에 지난 2001년부터 쉴 새 없이 연구성과를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김빛내리 교수는 “생명과학 분야로 진로를 정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며 “현재 수행 중인 연구의 가능성에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이정호 기자 sunrise@donga.com (2007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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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누드화 벗겨보면 기하학이…
2007년 11월 16일 | 글 | 박근태 기자 ㆍkunta@donga.com |
 
미술전람회를 가면 그냥 지나치는 작품이 적지 않다. 미술계 거장의 작품이라고 하니 눈여겨보긴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잘 모르는 탓에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본보 플러스 과학면은 세기적 명화를 과학의 눈으로 새롭게 읽어보는 코너를 7회에 걸쳐 소개한다. 과학자와 미술평론가가 모여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할 때 꼭 기억해 둘 만한 핵심 관람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 회 주제는 ‘누드’로 잡았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정민석 아주대 해부학교실 교수,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누드 작품 2개를 통해 누드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본다.

【포인트 1】그림 속의 황금비율을 찾아라


‘미와 조화, 균형감’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아폴론상 중 최고 걸작으로 불린다. 상체와 하체, 머리와 목부터 허리까지의 길이가 황금비율(1 대 1.618)을 이룬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신체의 비율을 고려해 이상적인 몸매를 만들어 냈다.
미술에 문외한일지라도 가장 편하게 ‘한마디’ 할 수 있는 작품 소재는 몸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누드를 주제로 작품을 만든 것은 그와 다른 이유다.

이명옥=“누드는 원래 완벽한 비례와 균형, 대칭의 산물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은 남성의 몸을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인식했다. 1490년 로마에서 발견된 벨베데레의 아폴론상은 이상적인 남성 누드다. 그리스인들은 이상적인 몸을 묘사하기 위해 키를 기준으로 몸의 다른 부위를 일정한 비례로 만들었다. 카논(‘자’라는 뜻)이라는 이 법칙에 따르면 키가 머리보다 7배(훗날 8배로 바뀜) 길 경우가 가장 아름답다고 봤다.”

과연 당시 예술가들이 수학자나 알 만한 ‘비례’나 ‘법칙’이란 걸 얼마나 의식했을까.

이광연=“가장 이상적인 아폴론상이 만들어졌을 즈음인 기원전 550∼300년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완성된 시기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상을 보면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황금비율이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깨 양끝과 남성의 성기를 이으면 역이등변삼각형을 이룬다. 아름다움마저 수학 규칙을 통해 표현하려는 풍토가 반영된 것이다.”


【포인트 2】S라인에 현혹되지 말라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의 작품 ‘샘’. 자연스럽게만 보이는 그림 속 여인의 도발적 자세는 해부학적으로는 비정상이다.
미술평론가는 요즘 유행하는 ‘S라인’의 기원을 과거 명화에서 찾아낸다.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시대를 관통하는 걸까.

이명옥=“아름다운 몸을 표현하려는 노력은 유럽 르네상스를 거쳐 19세기까지 이어진다. 16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사람 몸을 직접 해부해 작품으로 남겼다. 특히 19세기 화가 앵그르가 그린 ‘샘’의 여성 누드는 이상적 미와 현실감이 조화된 몸으로 꼽힌다. 한 발은 살짝 구부린 채 엉덩이는 치켜세우고 허리는 요염하게 비틀어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요즘 젊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S라인’ 몸매가 한껏 드러나는 자세다.”

과학의 눈으로 볼 때 상당수의 누드화 모델은 해부학적으로 ‘기형’으로 보인다.

정민석=“샘에 등장하는 여성(요정)의 몸은 현실감도 높지만 해부학적 오류가 있다. 그림 속 여인은 오른발을 살짝 들고 있는데, 이럴 경우 골반 오른쪽이 올라가야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오른쪽 골반이 내려간 것은 비정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와 달리 해부를 했다는 기록이 없는 라파엘로의 경우도 그렇다. 라파엘로가 그린 ‘삼미신’의 한 여신은 흉쇄유돌근이 나타나지 않고 다리 무릎 뒤에 있어야 할 오금이 보이지 않는다. 화가는 아마도 좀 더 ‘예술가의 시각으로’ 완벽한 미를 추구하기 위해 사실대로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포인트 3】소품 하나에도 과학이 있다


명화에는 뜻밖에도 당시의 ‘첨단’ 과학지식이 반영돼 나타나기도 한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다. 작품 ‘샘’에 등장하는 여인 어깨에 얹은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은 평행선을 그린다. 그러나 떨어진 물이 바닥쯤 왔을 때 평행선은 사라진다.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광연=“‘샘’이 그려진 1850년대 중반은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이 처음 제시된 때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선은 절대 서로 마주치지 않는 직선이 아니다. 사회 변화에 민감한 화가였던 앵그르는 과거 2000년간 절대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평행선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음을 작품에 반영했을 수 있다.”

[우리문자 한글 수출 안 될 이유 없다] 방법은 뭔가

 

‘한글의 세계화’는 한국어에서 표기 수단인 우리 문자를 전파하자는 주장이다. 문자가 아예 없거나 난해한 문자를 가진 나라나 종족의 언어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한글을 보급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모국어인 한국어를 세계 곳곳에 보급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자는 ‘한국어의 세계화’와는 구별된다.

지금까지 ‘한글 세계화’는 ‘한국어의 세계화’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추진된 것이 사실이다. 문화관광부 국립국어원에서 개방형 한국어 문화학교인 ‘세종학당’을 세계 곳곳에 짓겠다는 계획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지난 10월 3일 한글사랑 나라사랑 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제 1회 한글문화축제.
국립국어원은 2011년까지 몽골과 중국, 구소련 지역에 100개, 2016년까지는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 100개의 세종학당을 지어 현지인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 세계에 500여개의 공자(孔子)학교를 세우겠다는 중국, 현재 10여개의 국제일본어보급센터를 100여개로 확대하겠다는 일본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다.

‘한글 세계화’ 추진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는 역설적으로 ‘한글=한국어’로 보는 문화적 인식이 깊숙이 깔려 있다. 세계 문자로 도약할 수 있는 한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읽지 못하고 국어순화운동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국수주의적인 한글운동, 한국어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 오히려 ‘한글의 세계화’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한국어학과의 로스 킹 교수는 한국어의 세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한국어를 민족어로 생각하는 배타적 사고, 한국어 교육을 국어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고를 꼽았다.

청주대 김희숙 교수는 ‘한국어의 세계화 대 한글의 세계화:더 나은 전략은?’이란 논문에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에서 측은해 하시던 ‘어리석은 백성’은 … 한국 밖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현대의 과학문명을 주도하고 있는 앵글로색슨 국가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수가 그들 글자의 비과학성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한글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이상규 원장은 최근 소멸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권에서 보편 문자(universal letter)로 한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글에 대해 카피레프트(copy-left·저작권 공유)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한글이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글사랑 나라사랑 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심재율·함은혜)는 지난 9월 23일 ‘한글 문화 대 강대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한글은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 유산이자, 민족의 혼이 담긴 세계 최고의 글자”라며 “한글의 세계화·산업화·수출화·지식화를 통해 한민족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본부는 한글을 전 세계 글자 없는 6000여 종족에 전파, 한글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유급(有給) 한글 문화봉사단을 파견, 한글 문화봉사단으로 근무한 청년은 국방 의무를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

한글 세계화 운동에 대한 재정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지난 6월 “경기도에서 영어마을에 투자한 시설비 1700억원이면 동남아 등 세계 각지에 현지인을 위한 세종학당 800개는 더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

인공위성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
스푸트니크호 발사 50년
2007년 09월 28일 | 글 | 이충환, 안형준 기자ㆍbutnow@donga.com, cosmos@donga.com |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7년 10월 4일 미국 백악관은 침묵에 휩싸였다. 러시아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 당시 일부 미국인은 농구공만 한 스푸트니크가 미국 상공을 지날 때마다 러시아가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당시 기술로는 어림도 없는 상상이었지만, 요즘은 누리꾼들이 구글어스를 통해 지구 구석구석을 찍은 위성사진에서 누드로 일광욕하는 장면을 골라낼 정도가 됐다.

스푸트니크는 지름 58cm에 무게 83.6kg의 소형위성이다. 초창기 발사체는 가벼운 위성만 우주로 올릴 수 있는 한계 때문에 세계 각국의 최초 위성은 모두 소형위성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익스플로러(13.9kg), 프랑스의 아스테릭스(42kg), 일본의 오스미(23.8kg), 영국의 프로스페로 X3(66kg), 한국의 우리별 1호(48.6kg) 등이 있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통신방송위성, 정찰위성을 중심으로 1t이 넘는 대형위성이 등장했다. 특히 통신방송위성은 1990년대 이후 4∼6t으로 덩치가 커졌다.

미니, 마이크로, 나노…. 최근 스커트에 불고 있는 미니 열풍이 인공위성에도 몰아치고 있다. 지구 재난을 감시하고 고장 난 위성을 수리하는 똑똑한 ‘스푸트니크의 후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주먹만 한 초미니 위성이 대형위성의 자리를 위협할 날도 멀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게 116kg ‘미니급’… 해상도 2.5m 성능은 ‘점보급’


소형위성은 무게에 따라 미니위성(100∼500kg), 마이크로위성(100kg 안팎), 나노위성(10kg 안팎), 피코위성(1kg 안팎)으로 나뉜다. 1990년대 이후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 같은 소형화 기술이 인공위성에 적용되면서 최근 소형위성이 다시 뜨고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최근 소형위성의 활약이 눈부시다.

지구재난감시 위성무리인 DMC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2∼2006년에 영국을 비롯한 알제리, 나이지리아, 터키, 중국이 100kg 안팎의 소형위성을 1기씩 발사해 구성됐다. 5기의 마이크로위성은 해상도 30m급 이상인 카메라를 장착해 자연재난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다. 해상도가 30m인 영상에서는 가로세로가 30m인 지역이 한 점으로 나타난다.

2005년 발사된 영국의 관측위성 톱샛은 작지만 매서운 ‘우주의 눈’이다. 승용차와 트럭을 구별하기에 충분한 2.5m 해상도의 영상을 보내기 때문. 비슷한 능력의 중대형 위성에 비해 개발비용이 20% 이하지만 고해상 영상을 제공할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776kg의 아리랑 위성 2호가 촬영한 영상이 해상도 1m급임을 감안하면 톱샛은 가격 대 성능비가 탁월한 셈.

보통 2t이 넘는 ‘헤비급’ 통신위성의 자리를 넘보는 소형위성도 있다. 영국의 SSTL사가 개발해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서부아프리카에 통신서비스를 할 예정인 400kg짜리 제미니가 그 주인공. 특정 지역 상공에 머물러야 하는 통신위성은 고도 3만6000km의 정지궤도로 한정돼 있어 지난 40년간 줄곧 대형화돼 왔다.


적은 비용에 개발기간도 짧아 우주기술 시험대


우주에서 신기술을 검증하는 역할도 소형위성의 몫이다. 소형위성은 적은 비용으로 빨리 개발해 발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비털 익스프레스 프로젝트는 고장 나거나 연료가 떨어진 위성은 버려야 한다는 기존관념을 바꿨다. 3월 서비스 위성(아스트로)이 파트너 위성(넥스트샛)에 다가가 연료를 주입하고 고장 난 컴퓨터를 교체하는 데 성공한 것.

지난해 3월 발사된 25kg짜리 위성 3기로 구성된 ‘스페이스 테크놀로지-5(ST-5)’는 3개월간 위성이 편대 비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기술을 검증했고, 2003년에 발사된 28kg의 XSS-10은 위성을 검사하고 정비할 수 있는 기술을 시험했다.

한국도 과학기술위성과 한누리 같은 소형위성을 이용해 우주용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 태양전지판, 별 센서(별을 관측해 위성의 자세를 잡는 센서) 관련 기술을 검증하고 있다. 한누리 1·2호를 개발한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국내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서 기술시험용 소형위성을 개발 대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생에서 초등생까지 인공위성 나도 만든다

1999년 6월 5일 지구 밖 387km 상공을 날던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화물칸 문이 열렸다. 잠시 뒤 표면에 작은 거울이 촘촘히 박힌 축구공만 한 물체 하나가 튀어나왔다. 나이트클럽 천장에 달린 ‘디스코볼’처럼 보였다.

이 물체의 정체는 ‘스타샤인’이라는 미국의 초소형 인공위성. 90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며 태양빛을 반사해 별처럼 반짝이는 임무를 1년간 수행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이 인공위성의 거울은 18개 나라 660개 초등학교 어린이 2만5040명이 힘을 모아 닦았다.

세계 각국에서 우주개발사업이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최근 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DIY(Do It Yourself·손수 만들기) 인공위성’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대학생이 만들거나 개발에 참여한 인공위성의 개수는 2003년까지 세계적으로 채 50개가 안 됐다. 하지만 지난 4년 사이 2배로 늘어났다. 선진국들은 다음 세대를 책임질 ‘인공위성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위성 제작을 장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사된 무게 4.5kg의 ‘진샛-1’은 본체를 미국의 대학생이 만들었다. 2000년 12월에는 유럽 12개 나라 23개 대학 소속 학생 400여 명이 18개월 동안 세탁기 크기의 ‘세티익스프레스’ 위성을 개발해 궤도에 올렸다. 최근에는 아예 조립식 장난감처럼 위성을 조립하는 부품 세트도 나왔다. 2003년 미국의 전자부품회사 펌킨은 ‘큐브샛 키트’라는 세계 최초의 ‘맞춤형 인공위성 조립 키트’를 6000∼7250달러(540만∼650만 원)에 내놨다. 실제로 3월 콜롬비아 서지오아르비아대 연구팀은 이 키트로 만든 ‘리베르타드 1호’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했다.

일반 음료 깡통(350mL짜리)으로도 위성을 만들 수 있다. 깡통으로 만든 ‘캔샛’은 아마추어 로켓이나 기상관측용 풍선에 매달아 지상 30km 높이까지 발사한다. 이 깡통위성은 주로 지상 사진을 찍거나 대기 성분을 분석해 자료를 전송하는 데 활용한다. 캔샛은 현재 한국항공대와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인공위성 교육프로그램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과학동아 10월호는 점점 작아지는 인공위성의 최신 동향을 특집으로 다뤘다.
한국을 빛낼 태양 ‘KSTAR'
세계 최초로 초전도 자석 전면 채택
2007년 09월 07일 | 글 | 편집부ㆍ |
 
지난 8월 31일 완공돼 오는 14일 완공식을 앞두고 있는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 소위 한국산 ‘인공태양’은 사업비만 총 309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KSTAR의 내부. 도너츠 같은 고리 안에 플라스마를 가둔다.
태양의 중심처럼 1억℃가 넘는 초고온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가벼운 수소(H) 원자핵들이 융합해 무거운 헬륨(He) 원자핵으로 변하면서 만드는 엄청난 양의 핵융합에너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 지구상에서 아직 어느 누구도 얻지 못한 ‘꿈의 에너지’. 이런 핵융합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태양처럼 핵융합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초고온, 초고압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KSTAR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 최초로 초전도 자석만을 사용해 만든 핵융합 장치이기 때문이다. 초전도 자석은 전류가 통과할 때 저항이 0이다. 플라스마를 가두는데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지 않으면 1억℃나 되는 고온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초전도 자석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400가닥의 초전도 선을 꼬아 엄지손가락 두께의 케이블을 만들고, 다시 이 케이블을 감아 자석을 만든다. 게다가 초전도 자석은 극저온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400가닥의 초전도 선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틈을 만들어 이 속으로 영하 268.5℃의 액체 헬륨을 주입해야 한다.

특히 액체 헬륨이 새지 않으려면 초전도 자석이 진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KSTAR에 쓰이는 초전도자석은 모두 30개. 그 중 길이가 긴 것은 1700m나 된다. 이들이 진공 상태를 유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처음에는 값비싼 기기를 썼다. 하지만 기기의 감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은 지름 4m, 높이 4m의 팔각기둥 모양의 큰 수조에 자석을 담군 뒤 물에서 기포가 올라오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빵빵하게 집어넣은 뒤 물을 채운 세숫대야에 넣으면 타이어에 균열이 있는 경우 기포가 생기는 원리를 이용했다. 초전도 자석끼리 연결되는 지점에 생기는 저항을 줄이는 방법은 반도체 기판에 얇은 금속막을 입히는 데에서 힌트를 따왔다. 자석의 연결 부위를 은으로 얇게 코팅해 저항을 1나노옴(nΩ, 1nΩ=10-9Ω) 수준으로 낮췄다. 대개 저항이 10nΩ이면 작동할 때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

ITER의 테스트 베드로 활약

KSTAR는 1년간의 시험가동을 거친 뒤 각종 실험을 수행할 예정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죠.” 핵융합연구센터 권면 연구개발부장은 오는 9월 시운전을 앞두고 있는 KSTAR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장치를 만들었을 뿐 본격적인 핵융합 연구는 지금부터라는 것. 10개월간 시운전을 마치고 나면 2008년 6월부터 핵융합발전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시작한다.

운전시간이 300초로 정해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수소 원자핵들이 핵융합하면서 중성자를 대량 방출하기 때문에 300초 이상 운전할 경우 주변 물질들의 방사화가 일어난다. 무엇보다도 핵융합 기초 연구가 목적인 KSTAR로서는 300초로 충분하다. 2015년 프랑스 키다라쉬에 실제 핵융합발전로를 건설할 계획인 국제핵융합로(ITER)가 목표로 하는 운전 지속 시간도 500초다.

현재 KSTAR는 ITER의 테스트 베드로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ITER 연구팀은 건설비를 줄이기 위해 핵융합로를 재설계하면서 KSTAR와 비슷한 방식으로 초전도 자석의 형태를 바꾸기도 했다. 이 때문에 KSTAR는 ITER의 축소판이자 파일럿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영하 268.5℃의 초전도 자석에 1억℃의 뜨거운 플라스마를 가둬놓는 상극의 기술이 만나 빚어낼 새로운 핵융합에너지. KSTAR는 벌써부터 세계를 설레게 한다.

<이현경의 ‘한국에 ‘인공태양’이 뜬다’ 기사 발췌 및 편집>
우주에 발 디딜 2명의 이공계 전사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후보 고산, 이소연 씨
2007년 09월 04일 | 글 | 편집부ㆍ |
 
5일 오전 11시, 고산 씨가 탑승 우주인으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고산 씨는 내년 4월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으로 향합니다. 선발되지 못 한 이소연 씨도 내년 4월까지 예비 우주인으로서 고산 씨와 같은 훈련을 받을 예정입니다. 기사 바로가기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의 임무를 기필코 완수하겠습니다.”

8개월이라는 긴 선발 과정을 통해 1만 8103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우주인 최종후보로 뽑힌 고산(31) 씨와 이소연(29) 씨. 이들은 한마디로 ‘강인한 체력의 젊은 과학자’다.

과학은 짜릿한 모험

구릿빛 피부에 균형 잡힌 몸매. 고 씨의 외모는 과학자의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재학 시절 그는 권투부, 축구부에서 활동했던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2004년 전국 신인 아마추어 복싱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땄고 축구도 수준급이다. 또 고산(高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악부 활동도 열심이었다. 중앙아시아의 지붕 파미르 고원에 있는 해발 7500m 높이의 ‘무즈타크 아타’(Muztagh-ata)를 한 달에 걸쳐 등반한 경험도 있다.

이처럼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고 씨에게 가장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 탐험지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이다. 그는 우주인 후보에 선발되기 전 삼성종합기술연구원에서 ‘컴퓨터비전’을 연구했다. 컴퓨터비전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카메라 렌즈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인공지능의 한 분야다.

고 씨의 인공지능 탐험은 한영외고 재학 당시 ‘생각 그 자체란 무엇인가’라는 사춘기 소년의 다소 철학적인 물음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서 자연과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모험을 택했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들어간 외고에서 과감하게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기로 결심한 것.

그는 1995년 서울대공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했다. 모든 물질의 기본을 이루는 미시세계를 탐구하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전공이었다. 하지만 공대의 학과과정은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주지 못했다. 고심 끝에 재수라는 또 다른 모험을 선택했고 이듬해 자연대에 다시 입학했다.

수학 전공으로 학부과정을 마치고 인지과학협동과정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한 그는 철학, 심리학, 컴퓨터과학, 신경과학을 두루 공부하며 사춘기 시절의 질문에 답을 구했다. 그리고 ‘사람처럼 사물을 보는’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드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고 씨는 이제 우주라는 극한의 공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에게 우주는 인생 최대의 탐험지인 셈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탐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우주인 선발 과정동안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했다”며 “우주실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무인 우주탐사선의 ‘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과학은 생활의 중심

“어릴 때 SF만화영화를 즐겨 봤는데, 우주선에 항상 미모의 여자 박사가 있었어요. 그 역할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주인 1차 선발에 뽑힌 245명을 축하하는 텔레비전 공연의 생방송 인터뷰 현장. 지원동기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 여성 후보가 재미있는 답을 했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이 후보자는 3달 뒤 한국 우주인 후보 2인에 최종 선발됐다.

우주선을 탄 미모의 과학 박사. 이소연 씨는 이런 소원의 성취를 눈앞에 뒀다. 미모는 이미 갖췄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고, 한국우주인 최종후보 2인에 뽑혔으니 우주선을 탈 확률은 이제 50%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에서 4년 동안 준비해온 박사논문도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이 씨의 연구분야는 ‘바이오멤스’(BioMEMS)다. 바이오멤스는 생명공학(Bio Technology)과 초소형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기술을 접목한 분야로,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구조와 원리를 나노 크기의 디지털 바이오칩으로 재현한다. 이 씨는 크기에 따라 DNA를 분리할 수 있는 나노소자 개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해왔다.

이 씨가 한국 최초 우주인 1인에 선발되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18가지 과학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이 씨는 실험과 보고 모두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중학교 시절 교육청 과학영재교실에서 처음 흥미를 붙인 과학실험은 과학고를 거쳐 KAIST 학부와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오는 동안 ‘생활의 중심’이었다.

또 그는 연구결과를 보고하고 홍보하는 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여러 국제회의에 참석한 이 씨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연구 성과 홍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홍보하고 발표하는 국제회의 기획자가 되기를 꿈꿔 왔다.

이 씨가 가장 기대하는 우주 실험은 무엇일까. 이 씨는 “반도체 공정과 유사한 실험을 많이 해 와서 그런지 ‘분자메모리 테스트’에 흥미가 있다”며 “우주에서 먹는 한국형 우주식은 어떤 맛일지, 무중력 공간에서 얼굴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체력과 지력을 모두 갖춘 우주인 후보들. 이들이 들려줄 우주실험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안형준의 ‘우주실험 임무 걱정마세요!’ 기사 발췌 및 편집>
쓰레기서 ‘삼중수소’ 노다지로
버려두면 방사성 폐기물, 활용하면 1g 2700만원
2007년 08월 17일 | 글 | 경주=전동혁 기자ㆍjermes@donga.com |
 
1g에 2700만 원을 호가하는 방사성폐기물이 있다. 금보다 약 1350배나 비싼 값이다. 이 방사성폐기물은 바로 삼중수소(三重水素).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달 26일부터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산업용 삼중수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산업용으로 쓰이는 방사성폐기물

삼중수소는 중수로형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폐기물이다. 보통 수소보다 3배 무겁다. 중성자가 2개 더 많기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다른 방사성폐기물과 달리 여러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삼중수소는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체(自發光體)의 핵심 원료다. 전기가 내는 자외선이 형광물질을 자극해 빛을 내는 형광등과 달리 삼중수소 자발광체는 삼중수소가 방출하는 베타선(방사선의 일종)이 형광물질을 자극한다. 갑자기 정전이 돼 어두워지면 큰 사고의 위험이 있는 공항 활주로의 유도등이나 건물의 비상구등에 주로 삼중수소 자발광체가 설치돼 있다. 수명이 13년 안팎이라 형광등보다 5, 6배나 오래 쓸 수 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워싱턴 덜레스공항과 뉴욕 케네디공항에 중성자 검색대를 설치했다. 물체의 형태만 검사하는 X선 검색대에 비해 중성자 검색대는 성분까지 분석하기 때문에 모양을 바꾼 폭발물도 바로 적발할 수 있다. 중성자 검색대는 물체에 중성자를 쏘아 폭발물의 주원료인 질소가 내는 특정 파장을 찾아낸다. 이 중성자를 발생시키는 게 바로 삼중수소다.


국내 생산 삼중수소 수출 가능성도

최근 들어 국내 전문가들이 삼중수소를 주목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과 유럽연합,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가 공동으로 프랑스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건설 중이기 때문이다. ITER는 2020년부터 본격 가동돼 삼중수소와 중수소를 충돌시키는 핵융합반응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해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삼중수소가 바로 ITER의 원료가 된다.

현재 산업용 삼중수소를 생산하는 곳은 캐나다 달링턴 원전이 유일하다. 핵융합연구센터 정기정 ITER사업단장은 “캐나다는 ITER 회원국이 아닌 데다 삼중수소 생산량이 연간 700g(추정치)에 불과해 ITER의 연간 사용량(1kg)에 못 미친다”며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삼중수소를 ITER에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성원전은 매년 700g 정도의 산업용 삼중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

월성 원전의 중수로형 원자로. 이곳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부산물로 삼중수소가 생성된다. 사진 제공 한국수력원자력
산업용 삼중수소를 생산하려면 삼중수소제거설비(TRF)가 필요하다. 사실 TRF는 중수로형 원전을 가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중수에서 삼중수소를 분리해 따로 저장하는 설비다. 원전 인근 지역으로 삼중수소가 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월성원전은 이렇게 TRF에 모아둔 삼중수소를 산업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TRF에 저장된 삼중수소는 티타늄이라는 금속에 결합돼 있는 형태. 한국전력공사 송규민 박사는 “티타늄과 삼중수소를 분리하려면 온도를 700도 이상 높여야 하는데, 이때 삼중수소가 다른 금속에 침투해 설비 전체가 오염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중수소가 내는 베타선은 종이나 물로 차단되고 사람 피부도 뚫지 못한다. 그러나 삼중수소가 기체나 액체 상태로 몸속에 들어와 베타선을 방출하면 유전자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황용수 박사는 “일정 지역에 삼중수소가 장기적으로 누적될 경우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시민단체인 경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원자력정책연구소는 “곧 TRF 감시기구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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