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일기 제9일] (3) 열린 선생님, 열린 온천

De Brett Thermal Holiday park에 도착하였다. 차를 세우고, 아이들에게는 새로 편성된 조의 차량으로 짐을 옮기고 차 안을 정리하도록 하였다. 아이들이 짐을 옮기고 차량을 청소하는 동안 김 사장, 이 피디가 한 편이 되고, 김 팀장, 지 사장이 한 편이 되어 포도주 내기 농구 시합을 벌였다. 결과는 김 사장 팀 승!


이번 저녁에는 양고기 스테이크와 소시지를 구웠다. 박 부대장이 이번 저녁은 분위기 전환 겸 상차림부터 설거지까지 모두 지도자 선생님들이 하기로 하였다고 발표를 한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고, 두 개의 바비큐 철판 위에서는 연신 고기가 익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포도주 한 잔 씩을 맛보라고 따라주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ㅁ' 군이 안 먹는 사람 몫을 수집하여 즐겼다고 하는데, 확인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식사를 끝내고 지도자 선생님들이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역시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 아이들보다 신속하게 처리한다.


이번엔 열린 선생님 역할을 마친 선생님들끼리 모여 앉아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었다. 잘 익은 포도주를 곁들인 양고기 스테이크는 참 맛이 있었다. 늘 요리사를 자처하는 소 선생님과 지 사장, 그리고 김 부장과 김 팀장이 수고를 하였다. 김 사장은 예상과 달리 이렇게 참가자 전원이 양고기를 냄새난다고 멀리하지 않고 즐기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식사를 끝내고 온천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은 생각보다 매우 넓었다. 온천물로 이루어진 온천수영장은 여행 피로를 풀어주기에 그만이었다. 아이들은 워터슬라이드를 타며 놀았다. 몸 사정으로 온천을 못한 아이들을 딱하게 여겼다.


 

[탐사일기 제9일] (2) 그들의 잔치, 우리의 잔치

한참을 타우포 호수를 끼고 돌며 차가 달린다. 마치 그림 위를 달리는 듯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는 정말 힘이 든다. 이참에 외계어를 좀 배워야 할까 보다.


이윽고 차는 번지 점프장에 닿는다. 이곳은 이병헌 주연의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를 촬영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주변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만화가인 허영만 선생도 티셔츠 하나를 공짜로 얻기 위해 뛰어내렸다는 이곳 번지 점프장. 필수 코스가 아니고 옵션이어서 희망하는 사람만 번지를 하기로 했다.


김 대장이 근처에 제트 보트를 타는 곳이 있다고 하여, 지도자들을 모았다. 이 피디, 지 사장, 김 사장이 이곳에 남고, 김 대장, 박 부대장, 임 선생님, 소 선생님, 한 기자, 김 팀장, 김 부장이 이동하였다.


가는 길에 김 부장이 번지는 몇 초 동안 짜릿함을 느끼지만, 제트보트는 30분 동안 번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너스레를 친다. 보트장에 도착하니 직원이 우리의 복장을 보고 "Korean Army?" 하며 농담을 건다. 처음에 8명이 다 탈거냐고 묻더니, 6명만 탈거라니까 주변에 있는 우수마발(牛溲馬勃; 이것은 아이들과 일부 어른들한테는 좀 어려운 표현이므로 주를 달아 주어야겠다. 우수마발은 소 오줌과 말 똥, 그러니까 별 시답잖은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을 다 끌어들이며 12명을 만들어 놓는다. 이곳 사람들은 일을 재미있게 하여 손님들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블랙워터 래프팅에서도 그렇고, OPC에서도 그렇고, 와카파파 매점 점원도 그렇고, 또 여기서도 그렇다.


인원이 차서 출발할 무렵 김 대장과 김 부장이 우리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간단한 의식을 해 주었다. 그리고 보트를 타고 출발. 30분 동안 곡예를 하는 보트를 탔다. 여자와 아이들이 타기에 좋은 레저 시설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코스 마지막 부분 쯤 눈에 들어온 후카 폭포였다. 비록 높지는 않으나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장엄하기 그지없으며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그 바람이 마음속까지 들어왔다 휘돌아 나가는 기분이다.


찍은 사진은 임 선생이 대표로 사서 스캔하여 준단다. 번지 점프장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의 번지점프도 끝이 나 있었다. 김 사장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보나마나 우리 호박탱이 '윤미'를 놀리고 있을 게 뻔하다. 번지가 아니라 밀려서 떨어졌다는 둥, 비명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는 둥. 임 선생의 말에 의하면 '왕삐짐'한 윤미는 번지 증서를 전해 주려 했더니 찢어버리라 난리를 쳐서 할 수 없이 가방에 몰래 넣어 주었단다.


번지를 한 사람은 시각 장애우 대원 5명과 슬기. 슬기의 이번 번지가 '생쌀밥' 사건을 덮어 줄 수 있을까? 여전사 의정이는 몸무게 미달로 그만 번지를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그 동안의 활동으로 보아 그 아쉬움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렇게 그들의 잔치, 우리의 잔치는 끝이 났다.


 

[탐사일기 제9일] (1) 타우포 호수에 기쁨의 눈물을 보태다

8월 18일.

기상 시간은 좀 여유가 있었지만, 늘 습관이 되어 5시가 조금 넘으면 잠이 깬다.


식당으로 갔더니 조장 선생님들이 모여든다. 소 선생님이 수첩에 적은 쪽지를 보여준다. 우리 조는 '만성 공주병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 둘을 보내고, 맏며느리 진주와 귀염둥이 자연이를 얻었다.


그런데 그동안 지글지글 속만 썩였던 슬기가 새로 바뀐 지도자, 조원들이 맘에 든다며 좋아하고 있다. 그동안 미운정만 쌓였는데도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서운한 기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흘러 식당에 놓아두었던 모든 집기들을 다 챙기고 출발하였다.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송어양식장이다. 이 곳은 송어를 식용으로 잡아 팔기 위해 양식하는 것이 아니라, 산란기를 맞이하여 올라온 송어의 알을 받아 부화, 양식하여 다시 방류하기 위한 시설이다. 맑은 물 속에는 치어들이 노닐고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양식장에는 송어의 성장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와 낚시 도구나 그 밖의 낚시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와서 공부하기에도 좋도록 신경을 써 준 것이 좋았다. 이곳에는 이렇게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올망졸망하게 역사와 정보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 많아 산교육의 장이 되고 있었다. 탐방 코스를 따라 조금 더 가니 강에서 낚시하는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호수 주변에서는 어린 아이에게 인조 미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이고, 낚시하는 방법 및 조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인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송어양식장 견학을 마치고, 타우포 호수로 갔다. 분화구에 물이 고여 호수를 이루었다는데, 크기가 서울만 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지는 호수 광경이 장관이었다. 물가에는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갈매기와 흑조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 때문인지 아니면 먹이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사람이 다가가도 그다지 도망가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새들에게 빵과 과자를 던져주고, 먹여주고. 모두들 재미있게 놀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조원과 마지막 오찬을 함께 했다. 메뉴는 컵라면.


 

[탐사일기 제8일] (2) 명(明), 그리고 암(暗)

루아페후 산 등정에 성공한 데 대해 모두들 들뜬 얼굴이다. 저녁에는 '크리스천 라이프' 기자단이 준비한 바비큐 만찬을 하였다. 김 사장의 말처럼 뉴질랜드의 모든 쇠고기를 다 가지고 온 듯하였다.


갖가지 부위별 고기맛을 보니 금세 배가 불러왔다. 후식으로는 골든 키위를 잘라 먹기도 하고, 하룻동안 있었던 이야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그 근처에 머물러 있다간 다리가 돌아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소리를 내며 먹는 데 분주하였다. 아마 그 중에 말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면 오서방과 재준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앞서 이야기 한 외국인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그야말로 잔치분위기였다.


식당에 앉아 있으려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크리스천 라이프 지 기자들도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주제는 교민 사회의 삶의 모습에서, 탐사대의 구성 배경, 이민 생활의 어려움 등 쉴 새 없이 바뀌어 가는데, '라이프'지 기자는 우리를 취재하고, 한 기자는 그들을 취재하고, 임 선생은 또 그들을 취재하고, 온통 취재 열기로 가득하였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지도자끼리 협의회를 하였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조원에 대한 트레이드 이야기가 나왔다. 결론은 애초에 조 편성을 하였던 소 선생님에게 트레이드 권한을 위임하기로 하고 협의회가 마무리되었다. 발표는 내일 아침 조회 시간에 하고, 짐은 타우포에 도착한 다음에 옮기기로 하였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겪었던 맘 고생이 사르르 얼음 녹듯이 녹아내리는 듯 한 기분이다.


차량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평소에 하던 말만 간단하게 전한 후 잠자리에 들도록 하였다.


 [탐사일기 제8일] (1) 루아페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새벽 3시 50분에 눈을 떴다. 밖에 나와 보니 오늘도 날씨가 좋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주먹밥을 준비하였다. 단비 조는 주먹밥에 콩, 김치 등을 이용하여 얼굴 모양을 만들고 있었고, 경록이 조는 김으로 눈사람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오서방이 속해 있는 조는 주먹밥 대신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통가리로 산행시 주먹밥이 너무 차가워 먹기가 힘들었나 보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뉴질랜드 교민이 운영하는 '크리스천 라이프'지 기자 일행이 방문하였다. 오늘 루아페후 등반 과정을 동반 취재한다는 것이다. 오클랜드에서 밤새(8시간으로 기억) 달려 왔단다. 그 정성이 놀랍다. 이곳의 도로는 자연환경을 최소로 훼손하는 방법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거리상으로는 서울~부산 정도이지만 굴곡이 심하여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인터뷰를 하느라 바쁘다. 활달한 윤미는 또 인터뷰의 대상에서 빠질 수 없었다. 어젯밤 석희와 등반 연습을 한다고 스틱을 가지고 돌아다니던 생각이 난다. 내가 그를 발견했을 때는 막 타임캡슐에 묻을 소원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야 그 동안 여러 번 들었기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7시 쯤 되어 차에 올랐다. 40분쯤 걸려 스키장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대열을 정비했다. 크리스천 라이프의 편집인인 이승현 목사님의 기도로 루아페후 산 정상 등반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결의를 다졌다.


이번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 대원에게 안전벨트를 차게 하고, 시각 장애 대원들에게는 특별히 헬멧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대원들은 리프트 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양 빛이 굉장히 강렬하다. 소 선생님의 지도로 즉석 몸 풀기 운동을 실시하였다. 스키를 타러 온 외국인들이(이런, 우리가 외국인인가?) 재미있는 듯 따라한다. 이제 곧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것이다.


처음에는 2인용 리프트를 타고 중간에서 다시 4인용 리프트를 탔다. 리프트에서 내려 대원들이 다시 집결하였다. 여기가 해발 2,100미터. 이제부터 약 700미터 가량은 우리의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건호가 아직 아이젠을 착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어제 착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이미 선발대는 출발한 상태이고 마음이 급하니 아이젠 착용이 잘 되지 않는다. 건호의 아이젠 착용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원들에게 잘 다녀온다고 인사를 하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이러는 와중에 시간을 지체하여 대열과 많이 떨어졌다. 오늘 같은 날은 앞뒤로 돌아다녀야 역동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기에 좀 무리하더라도 부지런히 걸어 대열과 합류하려고 하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후미에서는 오서방이 벌써부터 지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박 부대장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친 아이들을 앞으로 몰고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 선두의 대원들을 만났다. 이곳은 통가리노 크로스 트래킹 지역에 비해 바위가 없고, 길이 넓어 장애 학생들이 걷기에는 한결 수월하나 처음부터 계속 가파른 경사길이어서 모두들 호흡이 거칠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나우로호에 산이 흰빛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하늘은 코발트 빛으로 이렇게 푸른 하늘은 처음 본 듯 싶다. 날씨가 아주 맑아서 정상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데 가도가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그재그로 길을 내며 산길을 오른다.


김 대장과 이 피디는 촬영에 여념이 없고, 석희와 지 사장이 윤미를 이끌고 선두에 섰다. 김 팀장과 친구 사이로 시설에 대해 알아보러 왔다는데, 자기 할 일은 제쳐두고 팔 걷어 부치고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돕는다. 성실한 모습이 가히 남의 귀감이 되겠다.


그 뒤로는 민상이가 종석이와 함께 길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지쳐가는 대원들이 보이고 저쪽 후미에서는 재준이가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쓰러질 듯 걸어오고 있다. 참 먹는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녀석이 지구력이 좀 부족한 게 탈이다.


앞뒤로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니 남들보다 배는 힘이 드는 기분이다. 산 정상에 올라 주변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산 정상에 아이들의 소원이 담긴 타임캡슐을 묻고,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분화구를 구경하러 내려왔다가 그냥 하산하기로 하였다.


이제 시간이 1시가 넘어가니 그새 눈이 녹아 발이 푹푹 빠진다.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빠져든다. 바람을 피해 어느 정도 내려와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였다. 건호와 종석이가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져온 빵을 나누어 주니 맛있게도 먹는다. 식사 후에는 깜짝이벤트로 김 팀장이 발대식 당시 준비했던 부모들의 영상 편지를 보여 주려 하였는데, 강렬한 햇빛과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산을 서두른다. 오후 3시가 넘으면 리프트가 끊기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산을 올려다보며, 내려다보며 하산을 하였다. 중간에 경사가 급한 곳은 로프를 설치하였는데, 눈이 녹아 한참씩 미끄러진다. 정상에 오르고 난 끝이라 이제는 미끄러지는 것도 즐거운 모양이다.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들며 떠들썩하다.

모두들 성취감을 한아름 안고 하산하였다.


 

8월 16일.


평소 습관처럼 5시 30분에 잠이 깨었다가, 좀 더 뒤척이고 7시쯤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자유시간, 우리조는 아침을 먹을 것인지 아닌지 다른조는 다들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는데 아직도 자고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오늘 아침은 다른조에서 해결하였다.


아침을 먹고 가까운 Visitor Centre에 걸어서 갔다. 그곳에서는 무분별한 파괴를 막기 위해 뉴질랜드 정부에 통가리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주기를 바라며 기증하였다는 마오리 추장(Horonuku, Te Heuheu Tukino IV, Ariki) 흉상이 서 있고, 1996년 화산 폭발 당시 감지 기록 등을 전시하는 전시 공간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다. 안쪽 극장으로 들어가 역사 기록물 "The sacred gift"와 화산 폭발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한 가운데에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모형도를 만들어 놓아 어제 다녀온 망가테포포 새들과 내일 오를 루아페후 산의 모습들을 미리 엿볼 수 있었다. 영상 관람을 마치고 아이들은 선글래스를 써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놀고 있었다.


김 부장에게 오후에 간단히 산책할 만한 코스가 있는지 물어 보니 타라나키 폭포를 추천하였다. 세시간 정도가 걸릴 거라고 했다. 임 선생님, 소 선생님, 한 기자가 함께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그 동안 일정에 쫓겨 이런 좋은 경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차 안에서만 보냈던 시간을 아까워하였다. 길이 평탄하게 이어지므로 노인분들이 많이 보인다. 네팔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나마스테." 인사를 하듯이 우리는 "Hi.", "Hello." 인사를 했다. 모두들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 중에는 우리 일행을 일본인으로 생각했는지 "곤니찌와" 하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 아름다움에 취해 길을 걷다 보니 폭포 하나가 나타난다. 빙하 녹은 물이 높은 바위 위에서 큰 소리를 내며 아래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길을 내려 폭포 아래로 내려가 시원한 빙수 한 잔 씩을 나누어 마시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올 때와는 달리 나무숲이다. 숲길 또한 잘 보존되어 있어 트레킹 코스로는 제격이었다.


돌아와 보니 아침에 정찰 산행을 갔던 김 대장 일행이 도착해 있다. 김 대장의 얼굴에 희색이 도는 것으로 보아 내일 산행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모양이다. 김 대장은 루하페후 등정을 대원들을 10명씩 두 조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산행을 하자고 했다. 지도자들이 이틀 동안 산행에 동행해서 아이들을 모두 산행에 동참시키자는 것이다. 김 대장도 마음에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늦은 오후 시간엔 박 부대장, 임 선생님, 한 기자와 함께 골프장이 있는 곳까지 걸으며 산책을 했다. 그 사이 김 대장은 아이젠, 헬멧 등을 구하러 나갔다. 저녁 햇살을 받으며 잔디 위를 걷는다. "뉴질랜드에 가서 골프를 치고, 스키를 타고 왔다는 말은 못하더라도 골프장을 한 바퀴 돌았다, 스키 리프트를 타고 2,100미터까지 올라갔었다고만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해 주기 때문에 이 코스는 꼭 돌아야 한다."고 박 부대장이 너스레를 친다.


내려가다 보니 1929년에 세워졌다는 샤또 통가리로 호텔이 보인다.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가족들도 있고, 저만치에는 눈사람도 세워졌고, 더 멀리에는 홀을 돌며 골프를 치는 사람도 있다. 갑자기 낭만적인 분위기가 되어 잔디 위를 걷다 해가 질 때쯤 되니 날이 추워지기 시작한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김 대장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부대장을 부른다. 아이젠을 빌려왔으니 아이들에게 지급해야겠다고 한다. 박 부대장이 차를 타고 가고, 남은 일행은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협의회를 하는 중에 산행은 다시 하루에 끝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태리와 혜진이는 체력 여건이 좋지 않아 산행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들은 도우미 학생들이 리프트를 타고 함께 올라가서는, 그 곳에서 잔류학생들끼리 활동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산행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도우미는 자원한 단비, 예진이, 경록이, 형탁이, 선정이로 결정되었다.


곧바로 대원들에게 대여한 아이젠을 지급하고, 내일 일정에 대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전달하였다. 박 부대장이 돌아다니며 아이젠 착용 방법을 교육하였다.


8시부터 본부 차량에서는 시각장애 학생들과 뉴질랜드 교민 학생들의 소원 적기가 있었다. 이들의 소원을 적은 쪽지는 내일 루아페후 산 정상 만년설에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기회가 되면 다시 그곳에 올라 타임캡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조원들에게 내일 산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미리 챙겨놓도록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의 불편했던 심기가 다시 풀리게 되었다.


 

[탐사일기 제6일] (2) 울고 싶어라, 이 마음.

모두들 얼굴에는 성취감이 담겨 있다. 게다가 내일은 예비일로 잡혀 있어 대원들 표정이 여유롭기까지 하다.


저녁을 먹고 협의회를 가졌다. 오늘 혜진이와 태리의 예를 들어 대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올라갈 수 있는 대원과 올라갈 수 없는 대원으로 편성하여 등반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소 선생은 더 나아가 공격조를 별도로 편성하자고까지 하였다.


그리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눈치다. 분위기에 휩싸여 속으로만 생각하고 선뜻 말을 못하고 있는데, 같은 의견을 가진 임 선생이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 탐사대의 활동을 산악인의 등반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고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 눈앞에 다가오는 정상을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김 대장과 김 사장이 난색을 표한다. 기상 상태와 눈의 질에 따라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고, 리프트 시간 때문에 일정한 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책임을 진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결론은 내일 김 대장과 김 사장이 산에 가 보아서 상태를 파악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을 짓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김 대장의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봐는 아니나 심기가 불편해졌다. 생각해 보면 이 많은 아이들이 실내 암장에서, 조령산에서, 또 여기에 와서는 OPC에서, 통가리로 새들에서 모든 대원들이 힘을 합쳐 루아페후 산 정상을 밟아 보는 모험, 극기 활동을 통해 희망을 찾아보자고 이 먼 곳까지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아직 어린 대원들이기에 대표 한 둘이 정상에 가서 깃발을 꽂고 오는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대원들의 마음 속 상처가 클 것이 걱정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마음속에 한 잔 술을 털어 넣으니 금세 감상적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잠시 나와 바람을 쐬니 다시 정신이 맑아진다. 잘 될 거야,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자기 최면을 걸어 본다.


차 안으로 들어와 보니 다시 숨이 막힌다. 건조되지 않은 빨래가 차 안 가득히 널려 있다.


구석에 태리 혼자 쓰러져 잠이 들어있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탐사일기 제6일] (1) 설산에서 바람 맞다

8월 15일, 광복절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밤사이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밖에 나오니 새벽하늘에 별빛이 눈부시다. 정말 많은 별들이 하늘에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이야 언제고 보이고, 별이야 언제고 있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야만 하늘은 비로소 내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이고, 별이 내 마음에 쏟아지는 것이다.


4시가 되니 아이들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두런거리며 돌아다닌다. 아마 어떤 꿈 많은 소년, 소녀들은 아직도 단잠에 빠져들어 있을 것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주먹밥을 만들어 챙기고 차에 오른다. 아이들에게 배낭을 잘 꾸려 놓았는지, 잊은 것은 없는지 확인하도록 하고 6시에 출발을 하니 도로 또한 빙판이다.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이동 중 오른쪽에 통가리로 산과 나우로호에 산이 어둠 속에서 수묵화처럼 피어나고 있었는데, 그 위로 산과 똑같은 모양의 구름이 얹혀 있어 새롭고 신기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해가 오르려고 하늘빛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나우로호에 산으로 오르는 도로에 접어드니 차는 이내 비포장길로 접어들고 잠시 달리다가 멈춰 섰다. 앞의 지 사장이 운전하는 차가 미끄러져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려서 차를 밀었다. 뒤에 있던 차들도 탄력을 받지 못해 몇 번 더 차를 밀어야 했다.


바람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옷을 단단히 입으라고 하였다. 움직여서 땀이 나기 전까지는 몸을 따뜻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미처 일출을 볼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장비를 점검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작년에는 이 곳에 눈이 내리지 않아서 나무다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눈이 가득 덮여 산행이 만만치 않을 듯 싶었다.


30여 명의 대부대가 일렬로 늘어서 산행을 시작하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윤미, 종석이, 재준이, 태리, 혜진이는 1명씩 안내 보행을 하였다. 지난 번 사전 교육 때 조령산에서 산행시 안내 보행 실습을 하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이제 앞으로 경사가 급해지면 아이들이 지칠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지도자를 투입하기로 하였다.


길 옆으로 빙하 녹은 물이 내를 이루어 흐르고, 작은 폭포가 물소리로 귀를 잡고, 물빛으로 눈길을 잡는다. 눈밭 위 투명한 고드름은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민상이가 고드름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이 피디, 김 대장, 한 기자, 임 선생님이 각자의 카메라를 가지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저 카메라에는 대원들의 숨소리도 담기고, 눈보라도 담기고, 산도 담기고, 물도 담기고 우리들의 소망도 함께 담기리라.


저만치 산장이 나타난다. 산장에는 어제 미리 도착하여 숙박을 한 듯한 외국인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대원들은 산장에서 한숨을 돌리고, 스패츠, 아이젠 장비를 착용하고, 가방 어깨끈을 조이고, 피켈을 부여잡고 다시 출발을 한다. 길을 안내하느라 도우미들의 목소리가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어느 다리에선가 혜진이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곳도 눈밭이어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도우미들이 더 주의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 지들이 먼저 산행을 하여 길을 만들어 주어야지 장애우를 데리고 가는 우리가 길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김 대장의 너스레가 시작된다. 이 말을 듣기라도 한냥 긴 대열을 이루고 나아가는 우리 대원들의 행렬 사이로 외국인들이 지나간다. 아무래도 보행이 더디기에 늦게 출발한 이들이 우리를 지나쳐 저 앞으로 나가더니 차츰차츰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발걸음은 다시 이어졌고, 김 사장은 후미에서, 선두에서 아이들이게 용기를 주느라 분주하다. 김종민 팀장은 선두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눈을 발로 밟아 길을 만들었다. 참여하는 사람 하나하나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대단하다.


이제 마지막 화장실이 나타난다. 뒤집어 보면 남자들에게는 지금부터 화장실이 더욱 넓어지고 커지는 것이다. 돌아서기만 하면 화장실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 쉬는 중에 혜진이가 통증을 호소한다. 아무래도 어제 OPC에서 다쳤던 다리가 성치 않은 모양이다. 고심 끝에 김 부장이 혜진이를 데리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다른 대원들은 손을 흔들어 혜진이를 배웅하고 산행을 다시 시작했고, 이제부터는 경사가 급해져서 박 부대장이 태리의 산행을 돕기로 하였다.


그런데 태리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다. 평소 운동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태리는 체력이 많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 포기하려는 것을 박 부대장이 가는 데까지 올라가다가 정 힘들면 그 때 내려오자고 달래며 끌고 올라갔다. 올라가며 모처럼 태리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았다. 태리가 곧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신기해했고, 박 부대장은 네가 잘 걸어서 금세 사람들을 따라잡은 것이라고 용기를 주었다.


앞에는 소병조 선생님이 재준이를 데리고 올라가고 있었다. 소 선생님은 스틱을 양 손에 쥐고 끝을 재준이가 잡게 하여 스틱을 당겨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산행을 하며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각자의 방식을 터득하여 산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뒤따라오던 태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속으로 내려갔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잠시 뒤 고개 저 쪽으로 두 명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한참을 따라온다. 그러다 어느 고개 마루에선가 박 부대장이 하산을 결심하고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친다.


부대장과 작별을 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선두 쪽으로 붙었다. 가다가 지은이를 만나고, 선정이를 만나고, 진주와 윤미를 만나고, 종석이를 만나고, 그렇게 선두 쪽으로 나아갔다.


이제부터는 선두 쪽에서 카메라에 아이들을 담기로 하였다.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눈보라가 치기 시작한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이 얼굴을 때린다. 마치 소백산에서 맞는 칼바람, 모래바람을 연상시킨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바람이 더 거세지고 앞사람의 발자국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하이트 아웃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길을 표시하는 나무 표지에는 눈이 쌓여 얼음을 이루고 있었고, 그 얼음은 심한 바람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바람 무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새들 정상이 보인다. 눈보라는 더욱 거세져 이러다 날라가 버리는 건 아닌지 공포에 휩싸인 나는 피켈을 눈에 박고 꽉 잡고 김 대장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니 임선생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앞사람의 발자국을 잃어버려 엉뚱한 곳으로 길을 들어었는데 한 기자가 그 쪽이 아닌 것 같다고 조언을 하여 방향을 바로 잡았는데 임 선생이 엉뚱한 곳으로 올라간다. 바람이 너무 거세 불러도 안 들릴테니 그저 바라만 보고 안전하게 올라가기만 기대할 뿐이다.


눈보라가 좀 약해짐 틈을 이용하여 새들에 오르니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이고 눈빛은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띠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그 아름다운 빛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이제 저쪽에 김 대장, 이 피디를 선두로 윤미 일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새들 정상에 선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뒤 이어 올라오는 대원들을 껴안고 축하해 주었다.


바람이 덜 부는 것을 가려 점심 식사를 하였다. 밥은 이미 식어 위 속으로 한기가 들어간다. 물은 끓여 배낭 안쪽에 넣어 두었더니 아직 따뜻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구름이 걷히고 저 멀리 설산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나우로호에 산도 자꾸만 올라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도록 아름다웠다.


김 대장이 대원들을 불러 경사길 보행법과 미끄러졌을 때 정지하는 법을 가르쳤고, 대원들이 실습을 하였다. 촬영을 하며 굉장한 추위를 느꼈다. 등산화가 방수가 안 되어 양말까지 다 젖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벌 양말을 가져왔지만 신발이 젖은 마당에 양말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다음 루아페후 산 등반 때는 대책을 미리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산길에 들었다. 하산이 쉬울 것 같았는데 그 사이 기온이 올라가 표면의 얼은 눈이 녹아 발이 푹푹 빠진다. 심한 경우는 허벅지까지 빠진다. 밑을 내려다보면 시퍼런 것이 그 밑으로도 아무 것도 없다. 크레바스라고나 할까. 겁이 난다.


소 선생님이 부대장에게 무전을 친다. 박 부대장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주변에서도 무슨 이야기하는지 다 들린다. 내려올 때는 하산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이렇게 하면 루아페후 산 등반도 무난하리라.


이미 많이 지친 아이들이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며 언제 차 있는 곳에 도착하냐고 한 마디씩 한다. 김 사장이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하산을 하니 혜진이, 태리, 박 부대장, 김 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비를 풀고 차에 올라탔다.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곧바로 잠이 든다. 피곤하기도 하겠지. 김 사장이 오늘 날씨가 참 좋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날씨는 계속 맑을 예정이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