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찰랑파티-둔체 “ 랑탕히말의 풍경 소리에 잠이 깨다”
오늘 새벽 어디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풍경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뜻 모를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밖에는 가는 눈 바람이 부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생이 모두 남의 덕이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식사 한 끼 돌아다닐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며 내 몸 전체가 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이 내게 부여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얼마나 무지몽매한 인간이었던가?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나만 알고 이기적이며 배타적이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가? 바람에 흔들리는 새벽 풍경 소리는 들리는 듯 끊기고 끊기는 듯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그 소리는 ‘야! 이놈아 잠만 자빠져 자지 말고 너의 내면을 살펴라’라는 소리로 들렸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벅찬 가슴에 두 눈엔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50여년 가까운 세월이 일순 스쳐 갔다. 아주 빠르게. 나는 침낭을 빠져나와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여명의 히말라야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렇게 있었다. 어슴프레함 속에서 그냥 그렇게.... 밖으로 나오다 보니 유리창만으로 한기를 가린 다이닝 룸에서 침낭을 뒤집어쓰고 포터들이 추위에 그냥 잠들어 있었다. 나는 따뜻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었다. 그들이 안쓰럽게 보였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구석 주방에서는 키친 보이들이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자고 있었고, 두 명은 석유곤로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아침 차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Good morning’하고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를 따스하고 반갑게 포옹했다. ‘순수’라는 말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햇살이 나오기 직전의 히말라야와 바람에 휘날리는 솟대의 만장을 바라보았다. 장창락 기자가 나왔다. 사진을 찍으러 나온 모양이다. 역시 기자로서의 프로 정신이구나. 괜스레 눈물이 다시 나왔다. ‘이 선생님 왜 그래요?’ 별로 할 말이 없었고, 장기자는 그런 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롯지로 돌아온 나는 어제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한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정성스레 우리를 돌보아 준 롯지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고별사를 써서 같이 낭독해 보았다. 언제나 우리 옆에는 유능한 통역사 핀조가 있다. 부끄럽지만 고별사를 게재해 본다.
“고별사”
먼저 선배님들과 김하돈 시인님이 계시는데 글이라고 써서 발표하게 됨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느낌이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고향에 마음씨 착한 아내와 사려 깊고 총명한 두 아들이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열심히 일할 직장이 있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뜻 모를 눈물이 사정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먼저 2박을 하는 동안 우리를 따뜻하게 보호해 준 집주인과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빠삐용 같은 두꺼운 안경에 무뚝뚝해 보이나 사려 깊은 안주인, 영롱한 맑은 눈에 티 없이 예쁜 딸, 난로를 덥히며 말없이 우리를 추위로부터 감싸준 집주인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용하고 자연 그대로인 이곳에 이방인이 와서 버릇없이 소란스럽게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고 자신의 일에 충실한 한 사회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교사, 신문기자, 시인, 화가, 농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집주인님이 보시기에 비싼 술을 마구 마시고 돈을 마구 쓰는 것 같지만, 우리는 각자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이 여행을 위해 나름대로 돈을 아끼고 몇 년 동안 모아서 이 귀중한 여행을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자연과 세상에 대한 사고방식이 당신들과 다르지만 가슴이 따뜻하고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찌되었건 당신들의 문화와 생각을 무시하고 우리들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즐긴 것 같아 죄송합니다. 오늘 새벽 나는 어디선가 은은히 들려오는 풍경 소리에 잠이 깼고 그 소리가 “이놈아! 삶을 정직하게, 감사하며 똑바로 살아라” 라는 소리로 들렸고 뜻 모를 눈물이 마구 솟구쳤습니다. 사람은 오만하고 방자하지만 자연은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다. 자연이 사람을 야단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동남ㆍ남아시아의 쓰나미로 그것을 정확히 보았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지금 떠나지만 정직하고, 따뜻하고 사려 깊은 여러분의 깊은 정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다음에 언제 당신들을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히말라야의 신이 언제나 당신들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도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돈네밧.
아침 준비와 짐 꾸리는 소리로 사방이 분주해 지기 시작했다. 눈 덮인 히말라야를 햇살이 어느새 감싸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둔체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둔체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했다. 눈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면서 고산 지대에서 기온이 고도마다 다름을 눈으로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가끔 만나는 이곳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그들은 야크가 풀을 잘 뜯는 것으로 만족하며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채워도 채워도 더 채울려고 하는 한없는 욕심을 가진 여느 나라 사람들 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오후에는 둔체 장거리를 구경했다. 우리가 그네들을 신기하게 보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가 신기한 모양이다. 재기 차는 녀석들, 구슬치기하는 녀석들 아이들은 어디서나 늘 즐겁구나. 이 곳은 경비가 삼엄하다. 반군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에게는 관대하다. 그들의 커다란 수입원이 되는 까닭이다. 둔체 주변의 음식점에서 만두도 사 먹어 보았다. 우리네 만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작은 술집에서 네팔 위스키도 마셔본다. 집 주인은 33살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6명이나 된다. 그러나 두 내외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나와 박종익 선생은 네팔 촌 동네에서 머리를 직접 깎는 체험을 했다. 우리 돈으로 500원 쯤 받는다. 아주 어릴적 꾀죄죄한 동네 이발소에서 이발을 했던 그 기분이다.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이발사는 자기 밑에서 이발을 배우는 초보자 앞에서 자랑스럽게, 그리고 아주 정성스레 머리를 다듬어 준다. 머리를 감겨 주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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